<개콘> 풍자의 부활에서 느껴지는 개그맨들의 고충

 

민상토론2’에 이어 새롭게 선보인 <개그콘서트>대통형은 더 직접적으로 현 시국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민상토론의 콘셉트는 시사나 정치에 대해 할 말은 있지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상황을 통해 웃음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시사 풍자는 직접적이기보다는 애써 빙 둘러가는 형태로 이뤄졌다.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라고 변명하면서 풍자하는 방식이었던 것.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반면 대통형은 대놓고 서태훈이 대통령 캐릭터로 등장하고 유민상이 국무총리, 이현정이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호가 교육부 장관, 김대성이 문체부 장관, 홍현호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출연한다. 국정 운영의 파행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를 담는다는 점에서 민상토론의 간접적인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깨톡으로 회의하려는 대통령 이야기나, 높은 자리에 있어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내놓는 비아그라, 10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골품체조’, 취업이 어렵다는 말에 대통령도 5년 계약직인데 그걸 다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서태훈의 이야기나, “누구는 말만 하니까 말도 주고 돈도 주더라는 비선실세 최순실 이야기 등등 현 시국에 대한 풍자가 대놓고 다뤄졌다.

 

풍자라는 것이 그러하듯이 보는 이들의 답답한 속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풀어내는 그 힘을 대통형은 그대로 보여줬다. 이런 시사 풍자 개그가 다시금 등장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만 해도 용감한 녀석들이나 사마귀 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같은 시사 풍자가 신랄했던 개그 코너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사마귀 유치원으로 최효종이 피소된 바 있고, ‘용감한 녀석들은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 조치를 받기도 했다. 2014년 등장했던 닭치고같은 코너는 애초에는 신랄한 정치풍자를 담고 있었지만 서서히 이런 색채는 빠지고 대신 몸 개그로 변화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그 때까지는 이런 시사 개그들이 계속 명맥을 이었다. 하지만 2015년에 들어서 시사 풍자 개그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그나마 등장한 민상토론이나 횃불투게더같은 코너는 오히려 제대로 풍자하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코너였다. 게다가 ‘1 1’ 코너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등장해 시사풍자를 보여줬던 이상훈은 어버이연합에 의해 피소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수단체에 고소당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는 일들은 의외로 개그맨들 본인들은 물론이고 프로그램 제작진에도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필자가 만났던 한 개그맨은 이런 압력이 의외로 크다며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걸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 개그맨은 이렇게 스트레스에 시달릴 바에는 아예 시사 풍자 같은 걸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 <개그콘서트>의 시사 풍자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진 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학교든 회사든 길거리든 어디서든 시국에 대한 비판여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상토론2’에 이어 더 신랄해진 대통형같은 코너가 나오는 것에 반가움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짠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개그맨들이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코미디 같은 웃음의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가감 없는 표현의 자유를 열어주는 일.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이런 작은 숨통 하나 틔워주는 일이.

그러면 풍자를 존대로 하란 말인가

 

뭐 대놓고 욕을 한 것도 아니다. 정책을 잘 지키란 얘기였고 그간 정치인들이 해왔던 웃지못할 코미디 같은 짓은 하지 말아달라는 뼈있는 <개그콘서트>식의 덕담이었던 셈이다. 정치와 코미디의 유사점에 대한 농담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 방송 내용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바람직한 정치풍자로 보기 어렵다며 행정지도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치풍자’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참으로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닐 수 없지만, 적어도 방통심의위측의 말을 잘 새겨보면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풍자’가 무엇인가를 가늠할 수 있겠다. 방통심의위는 “정치풍자라 함은 정치권의 부조리나 과오 등을 빗대어 폭로하고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국정을 시작하지도 않은 대통령 당선인을 대상으로 ‘훈계조’로 발언한 것을 두고 바람직한 정치풍자라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묘한 엇나감이 있다. 즉 개그맨 정태호가 한 발언은 박근혜 당선자에 대한 당부이지 잘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다. 비판의 대상은 박근혜 당선인이 아니라, 그간 웃지못할 코미디를 대중들에게 제공(?)했던 정치인들이었던 것. 더 이상 그들처럼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의 개그식 표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방통심의위의 말에는 그 비판을 마치 박근혜 당선인에게 직접적으로 던져진 것처럼 받아들인 뉘앙스가 묻어난다.

 

아마도 그 대상이 대통령 당선인이 아니라 한 정치인이었거나 아니면 그저 일반인이었다면 이런 발언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이나 그저 일반인에게는 해도 되는 훈계조의 풍자가 왜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안 되는 걸까. 늘 정치인들이 대선 때만 되면 얘기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말은 대선 지나고 나면 잊혀지고 지워지는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그 권한은 국민에 의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 어느 누가라도 당부는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통심의위가 말하는 대통령 당선인에게 “잘 들어”, “지키길 바란다”, “절대 하지 마라” 같은 반말이나 ‘훈계조’의 표현이 잘못됐던 걸까. 이 말 역시 특별히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해서 풍자를 하는데 있어 반말이나 훈계조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 과도하고 앞서간 생각이다. 이것은 풍자의 사전적 의미는 알아도 그 진짜 의미는 잘 모르며, 또 그 효과적인 풍자의 방법도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한 생각이다.

 

풍자란 결국 권위의 해체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그러니 풍자에 존댓말을 쓰는 것은 실로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아냥이 아니라면 말이다(만일 비아냥이 담긴 존댓말이라면 그것이 또 문제로 지목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풍자가 들어가는 개그코드들은 심지어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에게도 반말을 쓰고 훈계를 던지는 것이 다반사다. 그것이 풍자의 진면목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풍자를 하지 말라고 하든지, 다 해도 좋으니 높으신 분들을 대상으로는 하지 말라고 했다면 좀 솔직했을 게다. 하지만 같은 풍자를 놓고서 ‘바람직한 풍자’와 ‘바람직하지 않은 풍자’를 나눠놓는 식으로 애매모호한 논리를 만들어 행정지도 조치를 내리는 것은 자칫 정치 풍자 같은 개그의 소재 표현을 위축되게 만들 수 있다.

 

사실 이 정도 풍자는 당사자라도 허허 웃으며 넘어갔을 일이다. 하지만 더 좋지 않은 건 당사자도 가만있는데 알아서 앞서가는 과잉된 행동들이다.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적어도 풍자의 영역만큼의 숨통은 마음껏 열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를 내버려둘 순 없는 걸까. 풍자는 본질적으로 대상의 고저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권위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말이나 훈계조의 표현 정도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치풍자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개콘> 풍자를 바라보는 두 시선

 

<개그콘서트>의 날선 풍자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 <갑을컴퍼니>의 최효종, 새 코너인 <고스톱>의 김기열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가 그 포문을 열었다. <갑을컴퍼니>에서 최효종은 투표에 있어서 공약만 난무했지 실제 된 일은 없다며 늘 국민들이 을인 이유를 밝히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제발 국민 갑갑하게 하지 말고 국민 모두 갑으로 만들어 달라."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새롭게 시작한 코너인 <고스톱>의 김기열은 우유부단한 국회의원으로 등장해 끝없이 말을 바꾸는 정치인을 에둘러 풍자했다. 한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역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서민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기업들을 위한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면서 “하지만 한 가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코미디’를 지목하기도 했다. “웃기는 것은 자신들이 할 테니 나랏일에나 신경 쓰라”는 것.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늘 하던 <개그콘서트>식의 풍자였지만 여기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들의 ‘용감한(?) 풍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들의 개그가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던 것. 심지어 “코미디는 자신들이 할 테니 나랏일에나 신경 쓰라”는 말을 그대로 뒤집어서 “개그맨들은 개그나 해라 정치는 하지 말고” 식의 반응들까지 나왔다.

 

아마도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풍자의 대상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코너의 내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했다기보다는 오히려 풍자를 통해 “과거와는 달리 잘 해 달라”는 염원을 전한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 전이니 사실 업무에 대해 비판할 내용도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정치인들의 행보를 비판하며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번 대선은 참 많은 숙제를 남겼다. 과거에 지역구도가 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숙제였다면(이것은 지금도 그렇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기에 세대 구도가 또 하나 겹쳐진 상황이었다. 지역구도는 지역 간의 갈등을 만들지만, 세대 구도는 가족 내에서도 분열을 만들어낸다. 선거가 프레임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세대 구도를 프레임으로 잡는 건 그만큼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이런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되면 자칫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너무 다른 시선의 부딪침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함께 보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그저 개그 프로그램의 한 풍자 코너에 대해서 이렇게 날선 공방이 생기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풍자 코너 하나를 보면서도 그걸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사실 좋은 사회라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일 것이다. 개그의 한 표현수단인 풍자가 눈치를 보는 그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개그콘서트>의 풍자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누구든.

<개콘>, 여전히 시청률은 1위지만

 

<개그콘서트>는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다. 한때 17%까지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8주째 20% 선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매주 기록하고 있다. 코너들도 그런대로 화제가 되는 것들이 적지 않고, 이 코너들이 쏟아내는 유행어도 꽤 많다. 무엇보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위상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제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을 다양한 CF에서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렇게 전체적으로 안정된 지표들이 존재하지만 실상 <개그콘서트>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렇게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너들이 전체적으로 적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이미 만들어진 유행어와 상황의 반복으로 웃음을 주고는 있지만 무언가 새롭다거나 신선하다는 인상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몇몇 유행어와 개인기 혹은 상황 연기로 이미 뜬 개그맨들이 매주 비슷한 아이디어의 코너들을 그저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대표할만한 이른바 잇(it) 코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개그콘서트>의 위기상황을 잘 말해준다. <꺾기도>는 이번 주 불방됐지만 이미 너무 맥락 없이 반복되는 바람에 그 기력이 소진된 아이템이기도 하다. <핑크레이디>는 노래와 상황만 제시될 뿐 아이디어가 보이질 않고, <좀도둑들> 역시 유행어의 반복에 머물러 있다. <아빠와 아들>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지만 그 ‘뚱뚱하다’는 아이템 하나에 집중되어 있어 다채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배우들>은 김영희가 새롭게 투입되었지만 박지선이 근근히 코너를 살리고 있는 정도이고, <어르신>도 이른바 소고기 개그를 하는 김대희가 주목될 뿐이다. <갑을컴퍼니>는 그 상황극 자체가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그걸 매주 살려내는 한 방이 부족하게 여겨진다. <생활의 발견>은 좀 더 다양한 상황이 가능하지만 남녀의 이별 상황에만 매몰되다 보니 신보라가 스스로 비판하듯 ‘게스트빨’에 ‘홍보의 발견’이 되어가고 있다. 이승기가 출연한 이번 주 분량은 물론 이승기 본인이 살린 부분이 많았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와 광고를 홍보하는 느낌이 강했다.

 

꽤 주목을 끌었었던 <용감한 녀석들>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박성광과 이승건 PD의 대결구도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것은 코너가 가진 본질적인 재미는 아니다. 김준현을 탑으로 끌어올린 <네가지>도 예전처럼 빵빵 터트리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과 정태호의 <정여사>가 <개그콘서트>의 얼굴이 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반복적인 유행어에 점점 의지하는 인상이 짙다.

 

새로운 코너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개그콘서트>의 위기 상황이다. 새로 시작한 최효종의 <주부9단>은 검사인 아들과 의사인 딸을 둔 주부가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지만 과거 그가 했던 특유의 공감개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코너가 계속 해서 생겨나고 적체된다 싶은 코너는 과감히 사라지던 그간의 방식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어딘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다.

 

신랄한 현실 풍자 같은 날선 느낌과 힘겨운 서민들을 대변하는 듯한 그 헝그리 정신은 모든 코너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있다. 여장남자 캐릭터가 너무 많은 것도 어떤 시대의 트렌드라기보다는 아이디어 부족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좀도둑들>의 김혜수 분장을 하고 나오는 이상훈, <갑을컴퍼니>의 희숙대리 김지호, <생활의 발견>의 김준현, <정여사>의 정태호, 김대성, 그리고 새로 시작한 <주부9단>의 최효종까지 여장남자 캐릭터는 넘쳐난다. 이렇게 많은 여장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높은 반증이기도 하지만 이들 코너가 그런 느낌을 살리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개그콘서트>는 여전히 시청률은 1위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주는 체감은 예전만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것은 코너들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몇몇 톱스타 개그맨들 중심으로 코너들이 유지되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청률 1위와, 배우나 가수 못지않게 잘 나가는 개그맨들(물론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힘든 개그맨들이 대부분이지만)에 도취된 나머지 생겨나고 있는 매너리즘이다. 이를 사전에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개그콘서트>가 계속 예능 전체의 수위를 차지할 것이란 보장을 하기가 어렵다. 위기는 항상 최고 정상에 있을 때 오는 법이다.

‘용감한 녀석들’, ‘네가지’에 이어 ‘희극여배우들’까지

 

“나는 까진 여자가 아니다.” 개그우먼 허안나는 잔뜩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도발적인 대사를 던진다. 마치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자리, 그녀 옆에는 박지선과 정경미가 X표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고, 그녀 앞에는 기자들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앉아있다. 허안나는 개그우먼으로서 자신을 왜곡시켰다며 “나를 에로배우 만든 제작진을 고소한다!”고 외친다. <개그콘서트>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희극여배우들’의 한 풍경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허안나가 소리를 질러가며 항변을 할 때마다 관객들은 말 그대로 빵빵 터진다. 어떤 관객은 그녀의 항변에 속시원함마저 느끼는 표정이다. 허안나가 토로를 끝내고 나면 박지선이 나선다. 박지선의 첫 멘트는 “저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다. 그녀는 개그우먼으로서 외모 비하를 통해 웃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한탄한다. 물론 웃기기 위한 설정이지만, 그녀의 발언 하나 하나는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놓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선 정경미는 윤형빈과의 사적인 관계가 윤형빈의 공공연한 애인 선언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에 대한 후회를 웃음으로 바꾼다. 허안나와 박지선이 건드리고 있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부분이라면, 정경미의 설정은 사적인 부분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이 코너가 지나치게 현실 풍자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가 된다.

 

‘희극여배우들’이 흥미로운 것은 김준현과 허경환, 양상국, 김기열이 한 명씩 발언대에 올라 저마다의 항변을 하는 코너, ‘네가지’와 닮아있다는 점이다. ‘희극여배우들’은 마치 ‘네가지’의 여성 버전처럼 보인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외모나 상황에 의해 오해받고 당했던 일들을 발언대 위로 끄집어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상의 비뚤어진 편견이나 오해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한바탕 항변을 하는 이런 코너들의 특징은 웃음과 공감은 물론이고 나아가 속 시원한 통쾌함까지 전해준다는 점이다. 과거 ‘동혁이형’ 같은 캐릭터가 촌철살인의 멘트 하나로 대중적인 공감을 끌어냄으로써 화제를 모았다면, 최근의 ‘네가지’나 ‘희극여배우들’ 같은 이른바 ‘속풀이 개그’들은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공감개그의 ‘끄덕거림’은 이제 속풀이 개그로 와서 막힌 것을 풀어내는 해소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용감한 녀석들’ 역시 속풀이 개그의 한 트렌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힙합음악과 함께 거기에 잘 어울리는 디스 멘트를 덧붙여 답답한 속을 풀어내는 개그다. 남녀 간의 상황을 주로 다루지만 코너 속의 코너로서 한 명씩 나와서 세상을 향해 던지는 발언이 어쩌면 이 코너의 핵심적인 색깔로 인식되고 있는 건 아마도 대중들의 답답한 속을 이 멘트들이 풀어내기 때문일 게다.

 

이른바 속풀이 개그가 최근 들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는 것은 아마도 그만큼 우리 현실의 답답함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는 씁쓸한 반증일 것이다. 사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은 이 웃을 것 없는 사회에서 어쩌면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유일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힘겨운 대중들을 위해 개그에 현실을 끌어와 한 판 속풀이를 해준다는 그 행위는 어쩔 때는 숭고하게까지 여겨진다. 더 날선 풍자로 답답한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기를.

<남격>, 위기를 기회로 삼다

 

“이경규! 한물갔어... 라고 김준호가 말하는 것 들었다!”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 나온 용감한 녀석들의 박성광은 대놓고 이경규를 디스하는 것으로 용감함을 보여줬다. 그들은 기존 멤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간의 문제들을 꼬집었다. 용감한 녀석들의 양선일은 윤형빈을 “무존재감 1위”라고 했고, 신보라는 김태원보다 “박칼린 포에버”를 외쳤다. 정태호는 김국진에게 “<라디오 스타>와 <남격> 중 어느 프로가 더 중요하냐”는 곤란한 질문을 던졌고, 이윤석은 해도 방송에 안 나간다며 아예 아이템을 짜오지도 않는 용감함(?)을 보여줬다.

 

'남자의 자격2'(사진출처:KBS)

<남격>이 시즌2로 재시작을 알리며 한 작업은 시즌1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폭로하는 것이었다. 아예 미션을 ‘남자, 너의 용감함을 보여줘’로 세워두고 그간 용기가 없어서 못했던 말들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시간으로 <남격>은 시즌2를 열었다. 이윤석은 기다렸다는 듯 담아 뒀던 얘기를 쏟아냈다. “이경규. 재미없는 말 하지마. 몸으로 웃기려고 하지마. 언제 가냐는 말 하지마. 너 강의 하지마. 너 결혼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말래. 회식할 땐 하고 싶은 대로 다해. 촬영할 땐 하지 마. 제발 하지 말라는 말 좀 하지마.” 이경규가 “미쳤다”며 정색을 하고 나서자, 이윤석은 “나도 이제 절벽”이라며 “나이 50인데 지나치게 혈기가 왕성”한 이경규에게 “제발. 담배를 다시 피워.”라며 독설을 날렸다.

 

비판에는 제작진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새롭게 시즌2를 만들면서 캐스팅에서 불거져 나온 수많은 잡음에 대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윤형빈은 정희섭 PD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정희섭 PD! 윤형빈 퇴출. 다시 기사 났어. 잔류 가능성. 다시 기사 났어. 검토 중, 다시 기사 났어. 긍정적. 다시 기사 났어. 잔류 왜? 기사 나는 동안 나 가만있었어. 내가 당신 장난감인가! 내 신변에 뭔일 생기면 그거 다 정희섭 PD 탓인 줄 알아.” 그간 점잖은 모습으로 일관하던 김국진도 “첫 아이템이 디스”라며 “그런데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자기비판의 시간 속에서 이경규는 자신이 “제일 먼저 반성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윤형빈은 이제 “물고 뜯고 봐주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고, 그런 그에게 새 멤버로 투입된 뉴비덩(새로운 비주얼 덩어리) 주상욱은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지. 왜 이런 계기를 통해서만 그러느냐.”며 “앞으로 지켜볼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경규는 마지막으로 “날로 먹는 거 안 하겠다. 뚜껑 없는 곳에서 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남격>의 쇄신을 다짐했다.

 

주상욱의 말처럼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남격>은 좋은 기획과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수직적인 체계에 가로막혀 몇몇은 병풍이 되어버렸고 몇몇은 날로 먹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땀이 보이지 않고 말만 들리니 진정성도 점점 사라져 갔다. 귀여운 중년들이 노회한 중년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남격>의 매력은 사라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남격>의 시즌2 선언은 여타의 시즌2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그저 몇몇 멤버들이 나가게 됐거나 제작진이 바뀌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시즌2가 아니라 시즌1의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한 구조조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새롭게 투입된 김준호와 주상욱은 끊임없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준호는 특유의 개그로 좌중을 웃게 만들었고, 주상욱은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젊은 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나선 것. 특히 이경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간 <남격>을 어둡게 만들었던 수직적인 분위기를 깨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물론 입으로 한 다짐 몇 마디로 <남격>이 보여준 그간의 많은 문제점들이 단번에 일소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다짐을 매번 되새기면서 늘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실질적인 첫 아이템으로 택한 ‘청춘여행’은 적절하다 여겨진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로만 가는 이 대장정은 무려 스물 한 번이나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18시간을 달려야 하는 고행. 그 노력의 땀이 진심을 보여주길.

 

무엇보다 <남격>이 살아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용감한 녀석들이 출연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용감한’ 모습들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윤석은 자신이 잘못 보좌해 이경규가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경규를 살리는 길은 그를 형님으로 세우고 깎듯이 대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했을 때 이경규도 자신도 살아날 수 있고, 그것이 또 <남격>을 살릴 수 있다. <남격> 시즌2의 성패는 바로 이 수평적인 분위기와 거기서 발생하는 진정성 있는 미션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용감한 녀석들의 노래처럼, 한숨대신 함성으로, 걱정대신 열정으로, 포기대신 죽기 살기로 달리는 새로운 <남격>을 기대한다.


제2의 김준호를 꿈꾸는 차세대 유망주, 정태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정태호라는 이름은 아직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발레리노', '감사합니다'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에서 랩을 한다고 하면 누구나 "아 그 친구!"하고 그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코너를 만들고도 한 켠에서 누군가를 받쳐주는 개그를 주로 해왔다. 그가 들어간 코너는 늘 대박이 났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코너의 한 파트로 기억될 뿐 중심이 된 적은 별로 없다. 아이디어도 좋고, 연기력도 좋으며, 성실한 그에게 이른바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사실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서 서운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 자주 받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김준호 선배님도 제 연차 때 그랬거든요. 그리고 신인 때 주인공 역할을 한번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역할에서는 별로 배우질 못했죠. 받쳐주는 역할을 하면서 개그에 대해 배우는 게 생겨요. 개그는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앞에서 어느 정도 깔아줘야 뒤에서 터질 수 있는 거죠. 그 흐름을 이해 못하면 주인공 역할을 해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워요. '개콘' 시스템은 이런 것들이 잘 되어 있죠. 물론 개인적인 성격도 좀 있어요.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저도 언젠가 김준호 선배처럼 되는 날이 있겠죠."

최근 '개콘'을 다룬 '다큐3일'에서는 단 몇 마디의 대사를 치기 위해 일주일을 전전긍긍하면서도 늘 웃으며 열심히 하는 개그맨들의 일상이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3분에서 5분의 무대를 위해 일주일을 꼬박 준비하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성실함' 그 자체였다. 정태호에게서 보이는 것은 그 특유의 '성실함'이었다. 코너의 한 구석 역할이지만 너무나 열심히 연기하는 그 같은 개그맨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코너 전체의 웃음이 빵빵 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같은 코너는 아이들에게는 거의 아이돌 수준이었죠. 아마 어른들은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개콘'은 다양한 세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서수민 PD는 '개콘'이 가족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4인용 밥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코너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거죠. 처음에는 '개콘'에는 어울리지 않는 개그라고 해서 꺼려졌던 코너이기도 했죠. 좀 반복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의외로 이 반복적인 개그가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이 코너로 증권광고도 찍었죠."

정태호가 얼굴을 제대로 알렸던 '발레리노'라는 개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데가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 성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개그, 그것도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기존 개그의 금기를 깬 듯한 인상이 짙었다.

"꽤 성공한 코너지만 '발레리노'는 빨리 없어졌죠. 아줌마들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어딘지 남편이랑 보기에는 민망했다고 해요. 우울증 있는 어머니들이 방에 들어가서 웃음을 참고 봤다는 그런 개그였죠(웃음). 여러모로 모험이긴 했죠. 특히 발레를 희화화하는 그런 느낌을 주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홍록기씨를 통해 소개받은 유니버설 수석 발레리노를 찾아가 첫 시연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수석 발레리노의 감수를 거친 개그가 된 거죠. 후문이지만 그 발레리노분은 단장님한테 당시 무지 혼났다고 합니다. 물론 후에 코너를 통해 발레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발레단하고 교류하기도 했지만요."

'용감한 녀석들'은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느낌을 주는 개그다. 시작은 마치 예전에 있던 '독한 것들'처럼 뭔가 직설적으로 독한 이야기를 던지다가, 중간에는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끝은 랩이 이어지면서 음악 개그로 연결된다. 아직은 앞쪽에 배치된 '독한 멘트'에 더 주목되는 경향이 있다. 신보라가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난립에 대해 "지겨워"라고 한 것이나, 박성광이 줄곧 "개콘 PD가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개콘' 조예현 작가와 결혼한 정태호도 이 코너에서 한 방을 날렸다. "기자들 잘 들어. 앞으로 기사 똑바로 써. '정태호 미녀 작가와 결혼하다?' 그냥 작가와 결혼이다."

"'용감한 녀석들'은 작년부터 고민했던 코너죠. 다 만들어 놓고 뭔가 빠진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신보라가 힙합 개그를 짜왔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붙여서 지금 코너가 생긴 거죠. 신보라가 너무 잘해서 '신보라와 아이들'이라고 불리지만요(웃음). 사람들은 아직까지 앞부분 독한 멘트에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랩이 들어가는 뒷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개그입니다. 개그를 구성하고 완성도 있게 만드는데 선배님들이나 PD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정태호는 분명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지만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개그맨이기도 했다. 어쩌면 착하다는 건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한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세상,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서수민 PD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디어가 좋고 구성력도 뛰어난데 정작 자기가 잘 안 보이는 개그를 짜 와요." 과연 그가 자신이 어떻게 하면 돋보인다는 걸 모르고 그러는 것일까. 정태호의 부드러운 인상 뒤편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그것이 그저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 했다. 그가 말했듯이 언젠가 우리는 '제2의 김준호'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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