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김남주 주변인물 모두가 용의자라는 건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방송국 앵커 고혜란(김남주)이 경찰서에서 차량 사고로 죽은 케빈 리(고준)에 대한 조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죽은 케빈 리의 차 안에서 그의 브로치가 발견됐기 때문. 그래서 이야기는 고혜란이 지금 현재 방송국에서 ‘뉴스9’ 앵커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한지원(진기주) 기자와의 경쟁과, 이를 이용해 시청률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방송사가 방송 섭외 1순위가 된 케빈 리를 인터뷰하려 하면서 고혜란이 그와 다시 엮이게 된 사연, 그리고 그가 과거 고혜란이 버린 남자라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고혜란과 남편 강태욱(지진희)이 사실상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과, 케빈 리가 결혼한 서은주(전혜진)가 과거 고혜란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케빈 리의 죽음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편까지 이용하는 고혜란의 욕망의 질주와, 과거 버려졌던 상처로 복수의 일념으로 최고의 프로골퍼가 되어 돌아온 케빈 리가 그 욕망의 질주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살인이라면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고혜란은 스스로 자신의 무고를 남편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그의 그 말을 믿기는 쉽지 않다. 그의 남편 강태욱은 고혜란과 이혼까지 결심한 인물이지만 어딘지 여전히 그에 대한 애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은근히 고혜란의 성공을 뒤에서 밀어주면서, 동시에 케빈 리가 은연중에 암시하는 고혜란과의 관계에 분노한다. 이런 점이 어쩌면 케빈 리의 죽음에 그가 관여되었을 수도 있다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그렇지만 용의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사실상 고혜란과 케빈 리 사이에 얽혀 있는 모든 인물들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케빈 리의 아내인 서은주는 성공한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케빈 리에게 아이를 갖자고 하지만 남편은 아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실제로 아이를 갖게 된 서은주는 고혜란 앞에서 묘한 열등감을 느끼고 한지원과 또 고혜란과도 남편이 관계를 맺고 있고 맺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가 케빈 리의 살해 용의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다. 

한지원은 고혜란과의 앵커직을 두고 벌어진 대결에서 무참히 무너져버린 인물이다. 그래서 케빈 리와 불륜관계를 맺는 것 또한 어떤 면에서는 고혜란과의 또 다른 대결로서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한지원은 직접적인 케빈 리 살해 용의자라기보다는 이런 일들을 조장해내 고혜란을 곤경에 빠뜨리는 걸 더 목적으로 했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심이 가는 또 한 명의 인물은 감옥에서 출소일이 임박하면 사고를 쳐서 형량을 늘려가는 미스터리한 수감자 하명우(임태경)다. 그는 아직까지 고혜란과 어떤 식으로 얽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 고혜란에게 자신은 감옥에 있을 테니 너는 앞만 보고 나아가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만일 고혜란의 앞길에 어떤 장애물이 생겼다면 그걸 제거해줄 수 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역시 케빈 리의 죽음과 연관된 뉘앙스를 주는 이유다. 

결국 <미스티>는 케빈 리라는 한 프로골퍼의 죽음과 고혜란이 살해용의자로 지목되는 가운데,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저마다 가진 욕망들이 드러나는 드라마다. 겉으로는 ‘격정멜로’라는 장르적 틀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살인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들의 충돌을 다루고 있는 것. 

어쩌면 우리가 흔히 신문 사회면에서 발견하는 살인사건들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욕망과 좌절, 분노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을 게다. <미스티>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의 폭주와 그의 걸림돌로 등장한 케빈 리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현대인들이 갖는 욕망을 해부한다. 살인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의 욕망들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욕망들의 부딪침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말해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사진:JTBC)

<마을>, 이 복잡한 미로가 보여주는 것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장르다. 폐쇄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에서 시청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압도적인 몰입감은 오히려 시청자를 유입하는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사진출처:SBS)'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마치 이런 장르적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겠다는 듯 시청자들 앞에 복잡한 미로를 펼쳐놓는다. 하나의 미로를 지났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미로가 나타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불친절한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단서들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의문들을 더욱 증폭시켜 놓는다.

 

사건 없는 마을에 암매장된 시체가 발견됐다는 건 이 드라마의 화두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그저 작은 마을. 그러나 그 고요함 뒤편으로 들여다보면 수군수군 대는 수상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시체가 외지에서 온 김혜진(장희진)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고 그 여자는 이 마을의 최대 권력자인 서창권(정성모)과 내연관계였으며 그것 때문에 서창권의 새 아내인 윤지숙(신은경)과 드잡이까지 했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이들 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 죽은 김혜진이라는 인물이 이 마을에 영어교사로 들어온 한소윤(문근영)의 언니가 아닐까 하는 단서들은 서창권의 가족과 한소윤의 가족이 과거 어떤 일인가로 얽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윤지숙의 배다른 동생 강주희(장소연) 역시 김혜진과 무언가를 함께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이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마을>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회 한 명씩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언가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인물이 용의자로 등장해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단서를 뒤집고, 확실한 이야기를 숨긴 채 용의자를 줄이기보다는 늘려 나가는 불친절함이 의외로 드라마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많은 추리물과 스릴러물이 가진 힘일 것이다. 숨겨진 비밀과 그 비밀이 양파 껍질 까듯 벗기고 나면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반복될수록 궁금증과 호기심은 증폭된다.

 

물론 이건 드라마로서는 도전적인 일이다. 시청률을 담보해내지 못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몰입감이 높을수록 시청자들의 새로운 유입은 요원해진다. 중간에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드라마에 발을 디딘 시청자라면 결코 벗어나기 힘든 미로를 만나게 된다. 그 미로는 복잡해도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을>은 이런 미로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건의 전개는 마을 사람 모두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즉 애초에 평화로워 보이던 사건 없는 마을은 회가 거듭될수록 엄청난 의뭉스런 사건들이 숨겨져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고요한 표면 속에 꿈틀대는 욕망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소윤이 외부인으로서 이 마을에 들어와 느끼는 공포감과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에 대한 궁금증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시선에 맞닿아 있다. 시청자들은 한소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의문의 마을을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은폐된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소윤과 우재(육성재) 같은 인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엄청난 욕망들이 뒤얽혀있고 그것은 때로는 범죄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러면서도 그 욕망에 일조한 모두는 쉬쉬하며 숨기는 상황.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이 미로 같은 드라마를 즐기는 법은 매번 뒤통수를 치는 사건 전개의 복잡함에 빠져들면서도 전체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소윤이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라.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가 한 가지씩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미로를 즐기기 위해서는 실타래가 필요하다. 소윤과 우재라는 실타래를 쥐고 걸어가면 의외로 놀라운 마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닥터 이방인>, 권력에 미친 남한, 막연한 괴물 북한

 

이 드라마 참 낯설다. <닥터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주는 복합 장르적 뉘앙스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은 의학드라마와 남북 관계를 엮은 스파이 장르물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장르의 혼재는 이제 대중들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닥터 이방인(사진출처:SBS)'

문제는 이 드라마가 드러내고 있는 남한과 북한에 대한 낯선 시선이다. <닥터 이방인>은 명우대 병원이라는 공간을 폐쇄적으로 다룬다. 드라마는 이 명우대 병원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병원이 수상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던 병원과 사뭇 다르고, 또 의학드라마가 보여주던 병원과도 다르다.

 

어찌된 일인지 이 병원에서 환자들은 총리(사실은 대통령)를 수술할 팀을 뽑기 위한 테스트용으로 수술대 위에 눕혀진다. 박훈(이종석)이 이끄는 팀과 한재준(박해진)이 이끄는 팀은 끝없는 수술대결을 벌인다. 총리 수술 팀을 뽑기 위한 그 수술에서 환자는 일종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환자 가족들의 반발과 고마움이 표현되지만 그것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수술대결의 연장처럼 보여진다.

 

물론 이러한 수술대결이 과거 의학드라마에서 없었던 건 아니다. <하얀거탑>에서 장준혁(김명민)이라는 외과의사는 마치 예술작업을 하듯 수술을 한다. 또 외국에서 온 노민국(차인표)과 수술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이 미학화된 수술은 인간을 예술의 소재로 만들어내는 불편함을 연출한다. 결국 <하얀거탑>의 이야기는 이 욕망덩어리의 문제적 인간 장준혁의 몰락을 다루었다.

 

하지만 <닥터 이방인>에서 수술 대결을 벌이는 박훈과 한재준의 이야기가 이러한 문제적 인간을 다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비인간적인 수술대결에 대해 북에서 온 의사 박훈이 수술대결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메시지를 담는다. 즉 돈과 권력욕에 눈먼 남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박훈이라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여기서 명우대 병원은 우리사회를 상징하는 폐쇄적 공간이 된다.

 

총리가 대통령을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국정을 제 손아귀에 쥐기 위해 북한과 손잡고 특별한 수술 팀을 꾸린다는 <닥터 이방인>의 설정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또한 그런 수술팀을 꾸리기 위해 한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대결을 벌이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즉 이 드라마는 본격 의학드라마가 아니다. 다만 명우대 병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끄집어내는 사회극에 가깝다.

 

이처럼 <닥터 이방인>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이다. 사람을 살리는 병원이 마치 실험실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고 권력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자본과 권력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극화해 병원 수술대마저 경합의 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는 낯설음을 넘어서 불편함을 준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다루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김대중 정권 이후에 <쉬리><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같은 남북한의 화해를 다루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북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막연한 살상용 무기처럼 그려지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용의자> 같은 영화를 보라. 남파 공작원이나 탈북자는 무시무시한 살인기술을 가진 존재들로 다뤄진다.

 

흥미로운 건 이 살인기술자(?)들이 남한에서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활약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로서의 북한 이미지를 가져와 해소시키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다. 남한으로 들어온 이 북한의 슈퍼히어로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비리들을 해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것은 <닥터 이방인>도 마찬가지다. 박훈이라는 이방인은 초인적인 외과수술 능력으로 우리사회의 병폐들에 메스를 대는 슈퍼히어로다.

 

<닥터 이방인>이 담아내는 남북한의 이미지는 양측이 모두 낯설다. 남한은 권력에 미쳐 병원의 환자들마저 도구화하고 수단화하는 비정한 공간이고, 북한은 막연한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괴물과 슈퍼히어로를 양산하는 공간이다. 물론 이 극화된 이야기가 남북으로 갈라진 불안한 우리 사회가 가진 두려움과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극화되다 보면 그 자체로 등장인물조차 메시지를 위한 도구가 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닥터 이방인>의 낯설음은 그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과도한 극화가 인물들을 도구화하는 듯한 불편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마치 박훈이 이건 수술대결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강변하면서도 결국은 그 수술대결의 주인공이 되는 것처럼.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42)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31)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107,685
  • 709463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