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여행의 끝, 김용건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그가 눈물을 흘릴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니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늘 유쾌하고 친절하며 배려 깊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는 그것에 즐거워하는 막내 어르신. 그런 모습이 tvN 예능 <꽃보다 할배>가 여행을 통해 보여준 김용건이었다. 

그런데 그는 여행의 끝에서 두 번의 눈물을 보였다. 그 첫 번째는 빈에서 찾았던 음악회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아버지’를 듣다 흘린 눈물이었다. 음악이 가진 힘은 그 노래를 듣던 기억들을 순식간에 소환해낸다는 것이 아닐까. 김용건은 늘 들었던 그 노래를 바로 눈앞에서 들으니 뭉클한 감정이 피어올랐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들이 그 노래를 타고 하나하나 주마등처럼 떠올랐다는 것. “마치 나를 위한 음악회 같았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두 번째 눈물은 실로 의외였고 반전이었다. 여행의 막바지에 나영석 PD가 던진 질문,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 무엇을 하고 싶으시냐”는 그 질문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며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이었다. 그가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한 건 남달랐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떠올려서다. “어릴 때 형제가 많아서 힘들었다. 6.25로 가족이 몰락하기도 했고, 젖을 제대로 먹든 분유를 먹든 이유식을 먹든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눈물은 우리가 <꽃보다 할배>를 통해 봤던 그의 밝기만한 모습 이면에 놓인 아픔 같은 것들을 끄집어냈다. 김용건이 음악회에서 노래를 들으며 주마등처럼 떠올랐던 과거처럼, 나영석 PD의 질문에 떠올렸던 어려운 어린 시절처럼, 그의 눈물은 그간 <꽃보다 할배>에서 그가 주었던 남다른 모습들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생각해보면 마치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듯 끊임없이 농담을 던졌던 그였다. 이동 중에 혹여나 침묵이 흐르면 “건건이는 어디 갔어?”라고 물어볼 정도로 그의 농담은 이들의 여행에는 하나의 공기처럼 존재했다. 그 허허로운 농담에 ‘건건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김용건의 그 농담이 있어 여행은 더더욱 활기를 띨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해 다른 어르신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백일섭 옆에서 괜스레 “홍도야 우지마라-”를 부르며 ‘그 때’를 소환해내는 김용건이 있어 백일섭은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다소 지칠 수 있는 이동 간에도 그의 농담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다. 그건 제작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어르신들과의 여행에서 그는 젊은 제작진들에게도 존칭을 하고 농담을 던짐으로써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떠들면서 입술이 마른다며 립글로즈를 바르는 모습은 사실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마치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스스로를 낮춰 웃음을 주려 했던 김용건. 여행의 끝에서 그가 보여준 눈물은 그의 웃음과 농담들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어쩌면 그냥 즐거운 사람이 아니라 즐겁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노력의 이면에는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삶의 버거움이 가려져 있었다는 것. 본래 농담이란 그 힘겨운 현실을 다소 허허롭더라도 웃음으로 넘기기 위해 우리가 하는 본능적인 행동들이 아닌가. 김용건의 눈물은 그래서 그가 했던 농담들을 다시금 하나하나 떠올리게 했다. 그건 마치 우리가 왜 힘겨워도 애써 웃으며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사진:tvN)

‘수미네 반찬’ 여경래, 편안한 웃음과 요리만으로 충분하다

예능 프로그램인데 예능의 역할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존재감이 적지 않다. 묵묵히 김수미의 레시피를 특유의 손에 익은 솜씨로 척척 해나가고, 김수미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며 맛있는 그 이유를 살짝 설명하는 정도가 그가 하는 역할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tvN 예능 <수미네 반찬>의 여경래 셰프를 보면 꼭 웃기지 않아도 프로그램에 자신만의 색채를 더하는 그의 존재감이 새삼 느껴진다.

<수미네 반찬>의 출연자들은 요리를 중심으로 캐스팅되어 있지만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최적화되어 있다. 그 중심에 선 김수미 자체가 그렇다. 그는 특유의 독한 직설이 그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엄마들의 캐릭터들이 그러하듯이 거친 삶 속에서도 자식들 건사하기 위해 해온 남다른 공력이 묻어난다. 욕이 섞일 정도로 거칠기도 하지만, 그것이 모두 자식 사랑을 담고 있기에 웃음이 터지는 그런 모습. 

김수미가 스승으로서의 카리스마를 확실히 세우고 있기에 다른 셰프들의 캐릭터 또한 살아난다. 최현석 셰프는 조금은 뺀질뺀질하고 김수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듣기 좋은 말만 골라하는 캐릭터로 세워졌다. 이미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도 특유의 예능감을 선보였던 그여서인지, 그는 때론 아부를 하고 때론 실수를 하며 김수미와 예능 밀당을 벌이는 재미를 선사한다.

미카엘은 외국인 셰프라는 점이 김수미와의 독특한 관계를 만들었다. 정량의 계량법을 동원하지 않고 ‘요만치’ 계량법을 얘기하는 통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미카엘은 바보스럽게 웃는 모습으로 프로그램에 웃음을 준다. 무얼 만들어도 외국인 셰프가 한 것 같은 요리는 김수미와 장동민을 웃게 만든다. 외국인이 엄마표 한식을 만드는 그 광경 자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지만.

장동민은 김수미와 마치 2인1조로 짜여진 듯한 찰떡 케미를 보여준다. 빠르게 진행되는 요리 속에서 ‘요만치’ 같은 레시피를 나름 옆에서 보며 양을 가늠해줌으로써 셰프들이 따라오게 해주고, 개그맨답게 계속해서 드립을 침으로써 김수미를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김수미와 셰프들 사이에서 얄팍한 권력(?)을 활용하는 모습 또한 예능적 재미를 더해준다. 

이처럼 <수미네 반찬>에는 요리 프로그램이지만 모두가 예능적인 역할들을 부여받았고 나름대로 수행해나간다. 하지만 여경래 셰프의 역할은 다르다. 연령대가 있어 김수미도 존중해주는 여경래 셰프는 예능을 하기보다는 요리에 대한 진지함을 드러낸다. 가끔 최현석 셰프가 하듯 예능적인 멘트를 하려 하기도 하지만, 김수미는 그런 여경래 셰프의 시도(?)를 하지 말라고 한다. 예능 바깥에 위치해 프로그램에 부여하는 진지함이 그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예능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것은 그의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 속에 녹아 있다. 셰프들 중 맏형이지만 다른 셰프들이 한 요리를 맛보며 너무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자신 역시 만만찮은 셰프 인생을 살아왔지만 김수미가 하는 요리를 마치 초심자처럼 진지하게 배우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가 김수미의 제자 중 모범생(?)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다른 셰프들의 예능적 행동들이 부각되는 점도 있다. 물론 같은 재료로 선사하는 중식을 만들 때는 모두를 집중하게 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이지만.

흔히들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너도 나도 웃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셰프들의 본업은 음식을 만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방송인이 된 셰프들도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셰프들이 웃음을 향해 예능화되어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럴까. 오히려 요리에만 집중하고 예능은 전혀 할 줄 몰라 하는 여경래 셰프가 참신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셰프의 본 모습으로 느껴져서다.(사진:tvN)

‘전참시’ 신현준의 박장대소, 그 기분 좋은 중독

도대체 왜 웃는 거지?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신현준이 처음 그 특유의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을 때 스튜디오에 앉은 출연자들은 모두 의아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전현무는 “같이 좀 웃읍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자꾸만 그 박장대소에 빠져든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 한 마디에도 터져 나오는 신현준의 ‘숨 막히는’ 웃음소리에 왠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도대체 신현준의 박장대소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신현준이 매니저 이관용을 삼겹살로 유혹해 양평의 주말농장에 함께 가는 길은 사실 그다지 큰 사건(?)이랄 게 없었다. 차 안에서 늘 하듯 영양제를 매니저와 함께 챙겨먹고 최근 신현준이 빠져들었다는 ‘불쾌지수송’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러다 잠깐 차를 세워두고 마스크팩을 매니저와 함께 하며 특유의 ‘큰 코’ 때문에 팩의 코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출발해 양평에 도착, 시장을 둘러본다. 

여기서 웃음 포인트는 역시 이관용 매니저의 ‘남다른 고기 욕심’이다. 다른 먹거리들을 얘기해도 오로지 매니저의 머릿속은 고기로 가득 차 있다. 마침 지나치다 보게 된 옛날 통닭집 앞에서 신현준이 말만 꺼내놓고 군침을 삼키는 매니저를 데리고 그냥 지나치려 하자, “먹고 싶다”고 말하는 매니저를 보며 신현준은 웃음이 피어나온다. 결국 통닭을 하나 사서 점심을 먹으러 간 냉면집. 신현준과 매니저 사이에 삼겹살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사실 애초부터 약속대로 삼겹살을 살 생각이었을 테지만, 은근히 통닭을 샀으니 삼겹살을 뭘 또 사냐는 식으로 말을 건네고, ‘밑장 빼기’보다 더 지독한 ‘고기 빼기’를 한 신현준에게 살짝 빈정이 상한 매니저의 모습이 각을 세우며 웃음이 만들어진다. 냉면을 먹으면서도 계속 통닭을 담은 비닐봉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매니저에게 “조성모냐?”고 묻는 신현준은 특유의 춤 동작처럼 보이는 그 동작을 연상케 하며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매니저에게 15일 동안 3킬로를 빼는 다이어트를 시켜주겠다며 그걸 성공시키면 5킬로 찌울 수 있는 고기를 사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자 매니저가 굳이 다시 찌울 걸 왜 빼냐고 되묻고 두 사람은 뭐가 좋은 지 함께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너무 큰 소리로 웃어 가게를 찾은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조심하며.

사실 신현준은 특정한 한 마디를 툭툭 던져서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 <전지적 참견시점>에는 사실 그런 인물들이 많다. 음식이야기만 나오면 특유의 표현력을 동원해 맛깔나게 웃음을 만들어내는 이영자가 그렇고, 가만히 있다가도 한두 마디 툭 던지거나 삼행시 하나를 하는 것으로도 웃음을 터트리는 유병재가 그렇다. 또 새로 합류한 박성광은 그 좋은 심성을 짓궂게 설정 아니냐며 놀려대는 다른 출연자 앞에서 역시 개그맨답게 그걸 받아주며 당황해하는 모습만으로도 웃음을 준다. 

하지만 신현준은 그런 단발성 웃음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그가 하는 행동들을 일관되게 계속 들여다보고 살짝 생각을 하다 보면 그게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라. 음악 하나에 빠지면 한 달 내내 그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영양제가 좋아 엄청나게 큰 짐 가방에 영양제를 가득 담아 다니는 모습이라니. 매니저가 사는 곳 가까이 이사를 갈 정도로 거의 형제처럼 보이는 그 신뢰관계가 주는 흐뭇한 미소도 있다. 또 하다못해 텀블러와 에코백을 챙겨 다니는 그 개념이 주는 흐뭇함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일에도 큰 웃음으로 화답해주어 분위기를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그만의 박장대소가 있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즐거워진다는 게 무엇인지 그는 제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만일 <전지적 참견 시점>에 신현준의 그 웃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조금은 밍밍해지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우리는 그의 박장대소에 빠져들게 되었다. 기분 좋은 중독이랄까.(사진:MBC)

모이기만 해도 훈훈한 ‘꽃할배’, 김용건이 있어 즐겁다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지난 2015년 3월 그리스여행 이후 3년 만에 돌아왔다. 2013년 7월 첫 방송된 후 매년 방영됐었기 때문에 이 3년 간의 공백은 아쉬움이 컸다. 더 이상 <꽃보다 할배>가 시즌을 계속하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 배낭여행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 무릎과 허리가 아파 걷는 것도 영 불편했던 백일섭 같은 어르신에게는 더더욱. 

다행스럽게도 그 3년의 공백 동안 수술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백일섭은 돌아왔고, 워낙 건강했던 이순재, 신구, 박근형은 여전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르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다만 짐꾼으로 늘 함께 해왔던 이서진이 이제 자기도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하다고 말하는 게 우스우면서도 조금 짠해질 뿐.

그런데 이번 <꽃보다 할배>에는 ‘신의 한수’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막내’가 투입됐다. 그 막내는 다름 아닌 연예계에 대표적인 신사로 알려진 김용건이다. 이미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그 유쾌한 모습을 보여줬던 김용건이지만, <꽃보다 할배>는 그에게 더더욱 각별한 프로그램일 수밖에 없었다. 함께 가는 형들이(?) 모두 젊은 날부터 동고동락해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김용건의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 신사다운 모습은 공항에서부터 빛을 발했다. 가장 먼저 도착해 형들을 기다리고, 한분씩 올 때마다 커피를 직접 사다 주는 모습은 그에게 얼마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심지어 이서진에게도 커피를 사다주는 김용건에게서는, 젊은 세대들과도 나이 차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특히 백일섭은 김용건과 50년 지기 선배였다. 방송을 같이 하면서 친구처럼 자신을 챙겨줬다고 한다. 그래서 첫 만남부터 그들은 아무런 이물감도 없이 어우러졌다. 이서진은 지난 여행에서 늘 걷는 게 불편해 뒤처지곤 했던 백일섭이 이번 여행에서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김용건이 함께 하게 되면서 이서진은 훨씬 든든해졌다. 김용건이 알아서 백일섭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도 되고 못가면 다음 생에 가면 된다”고 말하는 백일섭이 숙소를 찾아갈 때 뒤처지게 되자 김용건이 이 대목에서 “마이웨이를 깔아줘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방송으로서도 백일섭을 챙기는가를 잘 보여줬다. 이서진은 솔직히 예전에는 백일섭의 뒤처짐이 다른 어르신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자신도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를 알게 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저마다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것일 뿐이라는 거다.

어쩌면 유쾌한 기분과 웃음이야말로 힘겨울 수 있는 여행도 즐겁게 만드는 청량제가 아닐까. “싱거운 소리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라 ‘건건이’로 불린다는 김용건은 끊임없이 농담을 던졌다. 예고편에서 슬쩍 나온 것이지만, 지하철에서 내릴 역을 지나쳐온 이서진에게 “지나온 거야? 그럼 후진하라고 해”라고 말하는 대목에게서는, 힘든 상황도 유쾌한 농담으로 한바탕 웃고 넘어가게 해주는 김용건의 진가가 보였다. 함께 다시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꽃보다 할배>. 막내 건건이 김용건이 있어 이 여행은 더더욱 유쾌해졌다.(사진:tvN)

‘거기가 어딘데??’, 황량한 사막? 가득 채워진 사색거리들

사막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황량함’이 아닐까. 아무 것도 없고 버석버석한 모래만 밟히고 씹히는 그 곳을 횡단한다는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해 보인다. 제아무리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예능의 새 트렌드라고 하지만 사막이라는 황량한 곳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담는다는 게 무리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호진 PD가 굳이 사막을 선택한 건 그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또한 넉넉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누는 대화라면 그다지 주목되지 않을 이야기도 사막에서 걸으며 나누니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물론 이 곳에서 나누는 농담은 툭하면 나오는 ‘죽음’이야기와 더해져 웃음 또한 커진다. 희비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그 이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사막은 그 희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역시 넉넉하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사막이 배경이기 때문에 유독 잘 보이는 자막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치 있는 유머도 깔려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사색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귀들이 만들어내는 울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마치 사막이라는 빈 원고지에 하나하나 사색의 글을 적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번지점프 티켓을 샀어도 뛸 차례가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이런 공감 가는 문구로 시작한 3회 분은 ‘왜 굳이 황량한 땡볕을 걸으러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더하고, ‘이제 도로를 벗어나 이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을 적어 넣은 후, ‘이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음’이란 글귀로 이들이 드디어 사막횡단의 시작점에 들어서 있다는 걸 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 여정의 시작에 월프레드 세시저가 쓴 아라비아 사막 횡단기 ‘절대를 찾아서’의 한 대목이 소개된다. ‘우리 주위로는 훤히 드러난 지구의 뼈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래에 씻겨지고 있었다’ 사막이 어떤 곳인가를 잘 드러내는 그 글귀를 통해 ‘모든 안락함’이 40킬로 저편에 있는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막횡단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은 살짝만 뒤틀어내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지병을 토로하는 조세호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고 털어놓고 이어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는 두 번째 지병을 고백(?)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지병 고백은 웃음을 준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힘들 때도 긍정적인 걸 먼저 떠올린다고 말하는 조세호가 잠시 후 급격히 말이 줄어든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짐짓 비장하게 “탐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목표를(말을 못 맺음)..”이라며 무언가 명언을 할 것처럼 하다 결론을 못 맺는 조세호의 모습은 사막이 주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보여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냄으로써 사색과 웃음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사막 횡단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 그 혹독한 환경에 지쳐간다. 차태현은 일행을 살짝 벗어나 모래를 피해 걷기 시작하고 배정남은 동행하는 베두인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를 하소연을 하고 베두인은 노래를 부르며 그 지친 환경 속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 때 붙은 ‘사막 횡단 1시간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간다’라는 자막은 그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베두인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하는 장면에 더해지는 ‘베두인의 삶은 무척 고되다. 이방인은 물론 그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것은 삶 속의 죽음과 같다.’ 같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말이 들어간 자막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삶 속의 죽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뱀이 새를 잡아먹는 기이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장면을 덧붙이기 위해 유호진 PD가 요청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조세호의 과장된 연기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든다. 해가 살짝 저물어 온도가 38도로 떨어지자 “감기 들겠다”고 말하는 지진희의 한 마디가 만드는 웃음은 ‘삶 속의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 삶’ 역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사막의 절경에 감탄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막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해진 자막 역시 저 아이러니한 희비극의 공존을 잘 표현한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지진희가 “우리가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차태현과 조세호가 내놓은 이야기가 너무나 철학적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항상 사람은 생각한대로 하고 싶잖아. 계획대로 되고 싶고. 근데 계획대로 된 건 진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했을 때(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은?” 그러자 그 이야기에 조세호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태현이 형 얘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신인 개그맨 때는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으니까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욕심을 안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들이 또 오더라고요. 희한하게.” 

사막은 ‘평범한 사람도 사색을 하게 하는 땅’이다. 또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온 대신 신비로운 오후가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도 있었다”며 놀랍다는 지진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대목 그대로다. 사막은 황량하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 곳은 더 많은 사색거리와 이야기들을 채워주고 있으니.(사진:KBS)

'휴먼다큐 사랑' 승리커플 위대한 사랑, 처음엔 눈 의심했다

눈을 의심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박항승씨가 수영을 하는 모습은. 4살 때 8톤 트럭에 치여 오른팔 오른 다리를 잃은 그였지만 그 얼굴에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활짝 웃고 있었고, 자신의 장애를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농담까지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역시 늘 웃으며 그를 바라봐주고 지지해주는 권주리씨가 있었다.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승리 커플’로 불리는 이 부부는 정말 이름처럼 사는 것 같았다. 항상 승리하려 하는 항승씨와, 그에게 주고 또 주는 주리씨.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우리가 더 많이 본 건 ‘눈물 가득한 사연들’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나의 금메달!’편은 눈물보다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물론 그들의 웃음 뒤에는 남다른 아픔과 상처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뛰어넘어 웃게 하고, 그 웃음을 통해 도저히 시도조차 할 수 없던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건 바로 ‘사랑’이었다.

첫 만남부터 30분이나 지각한 주제에 애프터 신청도 하지 않고 가버린 항승씨.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고 나갔던 주리씨는 장애사실보다 연락처조차 묻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래서 주선자에게 항의를 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친구로 지내다 연인이 되었다. 연애도 결혼도 모두 주리씨가 먼저 하자고 했다.

장애 사실 때문에 결혼 반대가 있었을 성 싶지만, 주리씨의 아버지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며 그의 선택을 믿어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장애를 갖고 있는 주리씨 동생을 통해 이 가족은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놓여진 현실의 벽을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승부욕이 강해 못하는 운동이 없다고 했지만 항승씨가 물이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못했던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건 주리씨 때문이었다. 팔, 다리 없이도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한 주리씨는 수영장에서 함께 데이트를 하며 항승씨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또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야 한다는 주리씨의 말에 항승씨는 절단된 다리로 스노보드 타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스키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항승씨는 스노보드 선수로 국가대표가 되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배우자가 하고픈 것을 함께 하려 노력했던 것이 그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기적 같은 일까지 만들었던 것. 이 이야기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것이었다. 사랑을 통해 얼마나 우리가 서로를 북돋워줄 수 있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한계를 긋고 넘어서려 하지 않는 마음이 진짜 장애가 아닐까 싶었다.

항승씨와 주리씨가 함께 서로를 내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의 부부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의 장애가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한 손으로 야채들을 잘라 아내를 위한 요리를 하는 항승씨나, 3년 간 자신이 생계를 책임지며 항승씨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고 그 후에는 90년 간 자신의 노예로 살라며 유쾌하게 웃는 주리씨에게서 부부 간의 흔한 역할 구분에 얽매인 마음의 장애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휴먼다큐 사랑>이 전한 박항승씨와 권주리씨 부부의 이야기는 눈물보다는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 결코 쉽지만은 않은 삶의 편린들이 경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 말하는 항승씨의 모습에서 묻어났지만, 그래도 더 이들을 가득 채워주는 건 행복 가득한 웃음이었다.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당신은 나에게 금메달이라며 자신이 만든 종이 메달을 항승씨의 목에 걸어주며 환하게 웃는 주리씨의 모습에서 어떤 금메달로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 느껴졌다.(사진:MBC)

‘우리는 썰매를 탄다’, 그들이 웃을 때 눈물이 났던 까닭

아이스하키를 하지만 이들은 썰매를 탄다. 스케이트 대신 양날이 달린 썰매를. 연습장에서 썰매를 지치고 퍽을 날리고 넘어지고 부딪치면서도 달리고 또 달린다. 그 연습장면을 보는 어린아이들은 그들을 보며 신기한 듯 말한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어.” 

다큐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이 어떻게 피나는 연습을 해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쉽지 않은 삶 속에서도 함께 모여 경기를 하며 웃고 울었는가를 담담히 담아내고 있다. 

시작부터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건 이들의 낡은 썰매에 새겨진 무수한 스크래치들이다.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빙판 위를 달리고 넘어지고 했으면 그런 스크래치들이 생겨났을까. 그런데 그 스크래치는 그들의 낡은 썰매에만 새겨진 것 같지 않다. 그건 그들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하고 불쑥 찾아온 장애 앞에 모든 게 무너졌던 그 순간들을 이겨내며 갖게 된 상처들처럼 보인다. 

정승환 선수는 어릴 적 다리를 다쳐 결국 절단하게 됐지만, 부모님은 그 다리가 나무처럼 자라날 거라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걸 믿고 살았다고 한다. 결국 학교에 들어갈 때 자신은 남처럼 달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힘들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런 구김살 없이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이들을 오히려 웃게 만들었을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대부분이 그런 웃는 표정들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피가 나고 고름이 차 경기 후 스스로 주사기를 꽂아 그걸 뽑아내며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웃는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딸의 운동회에서 함께 달려주지 못해 씁쓸해하면서도 애써 아이에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누군가는 나이 들어가는 노모와 살아가며 자신을 걱정하는 노모에게 “오래 사시라”며 자신은 걱정할 것 없다 말하며 웃는다.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새벽에 빙상장을 겨우 빌려 연습을 하기도 하고, 묵을 여관비가 없어 라커룸에서 함께 잠을 자며 경기에 나가기도 했으며, 해외 원정 경기 때는 국가대표가 비행기표를 지원받지 못해 각각 개인비용을 치르고 나가 경기를 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그래도 웃는 얼굴이었다. 그 웃음이 그저 웃음일 뿐일까 싶지만, 그들은 어찌 보면 경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커다란 행복처럼 보였다. 

그런 그들이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땄다. 세계 언론이 한국대표팀에 대해 “기적을 써나가고 있다”고 대서특필했지만, 우리들은 그런 일에 대해 관심을 거의 주지 않았다. 해외에서 열린 그 경기에서 상대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가득 채워진 반면, 우리 측 응원단석에는 쓸쓸한 플래카드 하나만 걸려 있을 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은메달을 따고 귀국한 그들을 공항에서 맞아주는 이들도 가족들뿐이었다. 

하지만 정승환 선수는 이 운동을 하면서 이제 정상인으로 돌아가는 걸 꿈꾸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이 운동과 함께 하는 이들과의 시간이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우리는 썰매를 탄다>라는 제목이 주는 뭉클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것은 메달을 따온다고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썰매를 탈거라는 스스로의 ‘다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이들은 일본에 이어 체코를 누르고 2연승을 하며 또 하나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사진:영화'우리는 썰매를 탄다')

‘1박2일’의 혹한기 캠프, 그 ‘변함없음’이 갖는 빛과 그림자

KBS 예능 <1박2일>에게 사계 중 최고의 호기는 겨울이고, 최고의 아이템은 ‘혹한기 캠프’가 아닐까. 물론 여러 효자 아이템들이 많았지만, 배고픔과 추위를 ‘혹한기 적응’이라는 명분으로 대놓고 끄집어내, 복불복 게임을 하는 ‘혹한기 캠프’는 웃음과 자극 면에서 따라올 아이템이 별로 없다. 그래서일까. 이번 강원도 인제 연가리에서 펼쳐진 ‘동계 야생 캠프’도 제목만 살짝 다를 뿐, 변함없는 ‘혹한기 캠프’의 재미를 보여줬다. 

아무 것도 없는 산 속에 땅을 파고 나무와 비닐로 얼기설기 하룻밤 지낼 캠프를 짓는 모습은 그 과정 자체가 큰 웃음을 줬다. 그럴 듯한 계획을 내세우고, 그래도 군대에서의 경험이 있다는 윤시윤이 등장해 뭔가 남다른 신뢰를 주다가도 금세 무너져버리는 캠프 앞에서 점점 바보 같아지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 허무함과 황당함 때문에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과정은 말 그대로 야생이다. 실제로 짓는 것이고 잠자리 복불복에서 지게 되면 그들이 들어가 하룻밤을 자야 한다. 그래서 웃음을 위한 상황들이 벌어지지만 그건 리얼이다.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캠프를 짓지만 번번이 무너지는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동계 야생 캠프’만의 생 리얼 웃음의 묘미가 되살아났다. 

잠시 베이스캠프인 산장으로 내려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곯아떨어져버리는 멤버들의 모습 또한 안쓰러움과 동시에 웃음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웃음만큼 강한 자극을 만들어낸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뜨끈한 아랫목의 대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그들이 지은 캠프에서 하룻밤과 이 뜨끈한 아랫목에서의 하룻밤을 놓고 벌이는 잠자리 복불복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포대자루를 갖고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다 표시된 지점에 정확히 안착하는 게임은 동계올림픽과 맞물려 스켈레톤과 컬링을 붙여 놓은 듯한 묘미를 선사한다.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벌이는 아이스크림 빨리 먹기 대결과 맨발로 양말을 집고 물에 적셔 빨랫줄에 거는 이른바 ‘플라잉 삭스’ 게임은 웃음과 함께 그 차가운 냉기가 주는 촉각적인 자극을 더해준다. 

그리고 결국 복불복에서 진 멤버들이 다시 산을 올라 그들이 지어놓은 비닐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 추운 곳에서 어떻게 하룻밤을 보낼까 걱정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코까지 골며 잘 자고 일어난 그들은 마침 내리는 눈으로 절경을 이룬 연가리의 풍광 속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1박2일>의 이른바 혹한기 캠프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찾아와 큰 웃음을 줬다. 하지만 이런 광경들이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이전에 했던 혹한기 캠프에서 박스를 이용해 집을 짓고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었고, 계곡의 얼음물을 깨고 입수를 한 적도 있었으며, 갖가지 ‘동계올림픽(?)’을 흉내 낸 복불복게임을 한 바 있다. 물론 멤버들과 스텝 간의 대결도 빼놓을 수 없다. 

<1박2일>은 그래서 ‘변함없는’ 웃음을 주었지만, 바로 그 ‘변함없다’는 점이 주는 장수프로그램의 딜레마 또한 분명 존재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변함없는’ 재미가 ‘즐겁다’는 시각과 ‘이제는 달라질 때’라는 시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변함없는 모습으로 동시에 조금은 다른 면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건 <1박2일>이 앞으로도 계속 풀어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여행 소재 예능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사진:KBS)

‘키스 먼저 할까요?’ 감우성과 김선아의 멜로 웃긴데 슬프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요.” ‘오늘만 살자’며 다짐하듯 손목에 그 글씨를 문신하고 안 마시던 술을 진탕 마셔버린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은 누가 더 절망적인가를 내기하듯 자신의 불행을 하나씩 내놓는다. 안순진은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지만, 늘 미소 짓는 그 웃음이 진짜가 아닌 가식이었다고 말한다. 

“전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어요.” 안순진이 내놓은 불행담에 손무한이 내놓은 불행은 울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그것이 무슨 불행인가 싶지만 그건 그런 감정 자체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아픔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안고 이제는 별 다른 희망 따위도 사라진 어른들은 그렇게 만나 당장 오늘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 안하던 짓을 한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손무한과 안순진의 만남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설렘과는 전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같은 불행 속에서 그 아픔을 공유하며 만났다. 6년 전 흔들리는 기체에서 승무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나 서로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죽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토로했던 그들. 이혼한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손무한은 안순진에게 건네며 태워 버려달라고 했고, 안순진은 차마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안순진은 그 때 한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동물원을 찾아갔고, 손무한은 그가 준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안순진 때문인지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 눈 내리는 동물원, 한 켠에서 오열하는 안순진에게 손무한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건 그의 아픔과 상처를 똑같이 느끼는 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사진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줄곧 따라왔다는 손무한에게 안순진은 사진을 버렸다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은 영영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손무한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서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말해주었던 것. 

그 후로 6년이 지난 후 윗층 아래층 이웃으로 다시 안순진을 만나게 된 손무한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그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절망감에 죽음까지 결심했던 안순진을 애써 구해냈던 그 때의 기억을. 하지만 안순진은 그 때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겨버린 것. 하지만 손무한의 등장은 그에게 그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놓는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로부터 안순진과 손무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진짜로 웃어본 일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울 정도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먼 길을 돌아온 두 사람은 그래서 ‘오늘만 살자’며 그간 안 해본 일들을 해보려 한다. ‘키스 먼저’ 하는 일도, ‘함께 자는 일’도 그들에게는 그래서 남다른 일이 된다. 그건 각자 버텨내던 삶에서 이제 ‘함께 버텨내는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든 함께 할까요?” 기억을 되살려낸 안순진의 이 제안은 그래서 도발적이면서도 가슴 먹먹한 느낌을 준다. 너무 아픈 기억 속에서 살아와 메말라버린 것 같던 웃음과 눈물이 그 ‘함께 하자는 말’ 한 마디에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다 보면 뭐 새로울 것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 설렘도 기대감도 없는 ‘오늘’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도 서로가 겪고 있는 그 무뎌짐을 공유하고 누구나 가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으로 새로운 사랑의 문이 열리기도 할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가 중년들에게 주는 공감은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진짜 웃음과 눈물을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중년들에게는 더더욱.(사진:SBS)

'흥부', 해학과 웃음이 더해졌다면 훨씬 좋았을

영화 <흥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흥부전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담고 있는 영화다. 당연히 허구지만 그 탄생에 대한 재해석 속에는 현재적인 관점이 녹아 들어있다. 은혜를 갚은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가 커다란 박이 되어 그걸 타자 엄청난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19세기 조선시대의 힘겨웠던 민초들의 꿈과 힘겨웠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재해석된 영화 <흥부>가 지금 2018년 서민들의 꿈과 현실을 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흥부>는 여러모로 2016년 촛불정국을 그 재해석의 모티브로 그려내고 있다. 광화문 현판이 보이는 곳으로 횃불을 들고 모여드는 민초들의 광경은 2016년 너도 나도 들고 거리로 나오게 했던 촛불집회의 그것과 다를 바 없고, 조항리(정진영)와 김응집(김원해)으로 대변되는 세도정치 당파싸움에 힘없는 왕 헌종(정해인)의 상황은 관객으로 하여금 ‘비선실세’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핍박받는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 홍경래의 난이 벌어지고 좌절된 꿈들이 더 이상 희망을 얘기하지 못하게 될 때, 흥부전의 이야기는 아마도 당대의 민초들이 잠시간 현실을 잊고 웃음 속에 꿈을 담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을 게다. <흥부>는 촛불정국의 이야기를 저 헌종 시대로 끌고 가 흥부전을 쓴 흥부(정우)의 이야기로 다시금 그려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려운 정국에 작가가 민초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담아낸 영화이기도 하다. 

어지러운 정국 속에 정감록이 등장하고, 그 정감록을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작업을 흥부는 하게 되지만, 그는 당시만 해도 작가로서의 소명 같은 걸 갖지 못한다. 하지만 조혁(김주혁)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그 글쓰기가 민초들이 그래도 계속 꿈꾸게 할 수 있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힘겨운 민초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조혁과 그의 형이지만 조선을 가지려는 야심가 조항리는 그래서 흥부가 쓰는 흥부전의 모티브가 된다. 사실상 조혁이 흥부이고 조항리가 놀부이지만 그 실명을 쓰지 못하자 작가인 흥부가 자신과 자신의 형 놀부의 이름을 붙인 것. 

이렇게 재해석을 하게 되니, 당대에 날아가던 제비 한 마리, 지붕 위에 얹어진 박들이 달리 보인다. 저잣거리에서 연희되는 흥부전에 민초들이 찡그리고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모습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가진 것 없이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민초들이 보이는 그 웃음은 그 가슴들 속에 여전히 피어나는 작은 희망의 촛불들이 남아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고전의 재해석은 이미 많은 작품들이 시도된 바 있다. <춘향전>은 고전극으로도 또 현대극으로 재해석된 작품이고, 특히 <방자전> 같은 참신한 시도까지 이뤄진 작품이다. <홍길동전>이나 <심청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직까지 <흥부전>에 대한 시도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워낙 권선징악의 선명한 구도가 너무 뻔해 보이고 박이 가진 판타지는 너무 황당한 결말처럼 보여 재해석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부>는 그런 점에서 보면 2016년 촛불정국의 상황들을 흥부전의 기원을 따라가는 것으로 담아냈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남는 아쉬움은 많다. ‘흥부전’이 갖고 있는 해학과 웃음이 촛불정국의 민심을 드러낸다는 그 무게감 때문에 상당 부분 지워져버린 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작품의 얼개 또한 지나치게 현 시점이 주는 의미에 집착하다보니 자연스럽기보다는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면도 아쉽다. 또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김주혁의 사망이라는 비보가 준 무게감이 너무 커져 작품 또한 ‘故 김주혁을 위한 헌사’에 집중한 것도 <흥부>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그래도 고 김주혁이 조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는 ‘백성’의 이야기가 그가 배우로서 ‘대중’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읽혀지는 면이 있고, <흥부>라는 작품 자체가 주는 ‘선한 민초들’의 승리라는 이야기가 지금의 현실에도 여전히 주는 울림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런 면들은 많은 허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흥부>가 인상 깊은 작품으로 남은 이유다. (사진:영화'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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