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텔레토비있던 <SNL코리아>가 그립다

 

지난 115일 솔비가 호스트로 출연했던 tvN <SNL코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신랄한 풍자가 화제가 되었다. 오프닝에서부터 행위예술의 한 포즈라며 솔비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자세로 그 풍자의 포문을 열었고,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코너에서는 켄타우로스 분장을 하고 등장한 유세윤이 최순실로 인해 화제가 됐던 프라다를 외치고, “우리 엄마 누군지 몰라? 엄마 빽도 능력인 거 몰라?”하는 대사로 현 시국에 대한 국민적 감정을 속 시원한 풍자로 풀어냈다. 또 김민교는 최순실 모습으로 분장한 채 등장해 깜짝 웃음을 주었고, ‘나이트 라인에서 탁재훈과 김준현의 최순실 게이트 풍자 역시 계속 이어졌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대중들은 이러한 <SNL 코리아>의 되살아난 풍자정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줬다. 그것이 바로 19금 유머와 시사풍자가 절묘하게 섞어 만들어내는 <SNL코리아>만의 본래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들은 초창기 <SNL코리아>가 보여줬던 여의도 텔레토비나 장진 감독이 진행했던 위켄드 업데이트같은 풍자 코너들이 다시 되살아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한 주가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12일 방영됐던 황우슬혜가 호스트로 나온 <SNL코리아>에는 아예 풍자 코너 자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호스트 황우슬혜를 내세운 19금 유머 코드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19일 방영된 이시언 호스트의 <SNL코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번 주 B1A4가 호스트로 출연한 방송에서는 그나마 시국은 아니더라도 현실 풍자가 조금 가미되었다. 이세영이 출연한 TV’와 유세윤이 출연한 킹스맨코너는 모두 우리네 흙수저 청춘들의 현실이 반영된 풍자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난 솔비가 출연했던 당시의 그 날선 시국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필이면 이 시기에 민진기 PD가 교체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항간에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풍자 때문에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tvN 측은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고 오해라고 밝혔다. 이미 지난 10월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을 민진기 PD가 맡게 돼서 교체가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tvN 측의 얘기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혹들이 나오고 있는 건 최순실 패러디가 나가고 난 후부터 갑자기 사라져버린 시국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다른 <SNL코리아>의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미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것처럼 이미경 CJ 전 부회장이 물러나게 된 결정적 이유로 <SNL코리아>여의도 텔레토비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의혹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는 되살아난 시사 풍자에 대한 기대감이 단 한 주 만에 무너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이렇게 시사 풍자가 잘 보이지 않게 된 상황에 호스트로 출연한 B1A4의 비하인드 영상이 성추행 논란으로 이어졌다. B1A4를 죽 세워놓고 고정 크루인 이세영이 민감 부위를 만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 지금 이 문제는 그간 성추행 하면 남성을 가해자로만 보는 시각을 뒤집어 여성들의 성추행 또한 적지 않다는 식으로 비화되고 있다.

 

<SNL코리아>에 시사 풍자적 요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일과 이번 성추행 논란은 각각 다른 차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미묘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SNL코리아>의 특징이 19금 코미디와 정치 시사 풍자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치 시사 풍자 같은 성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사라지게 되면 그건 성인들의 코미디가 아니라 그저 질 낮은 야한 코미디로 전락할 수 있다.

 

굳이 공식 페이스북에 남성 호스트를 세워놓고 여성 크루가 성추행을 하는 듯한 장면을 과시하듯 올려놓게 된 건, <SNL코리아>가 정치 시사 풍자 같은 성인 공감 요소를 다루지 않게 되자 이제 대놓고 야한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듯한 뉘앙스의 사건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사과문이라고 올려놓은 것이 그 부적절한 성추행적 장면을 과격한 행동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수준이니.

 

시사 풍자는 여전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그저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뿐일까. 시사 풍자가 빠져버린 <SNL코리아>는 스스로를 야한 코미디 정도로 전락시킨다. 이번 논란은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의 <SNL코리아>가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면이 있다. 초창기 여의도 텔레토비같은 코너들이 있었던 본래의 그 <SNL코리아>로 돌아갈 순 없는 걸까. 요즘처럼 답답한 시국에는 더더욱.

풍자가 돌아오니 <SNL코리아>의 진면목이 보인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자세.” tvN <SNL코리아>에 나온 솔비는 오프닝에서 행위예술의 한 포즈를 취해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 등장했던 황당한 문구, ‘우주의 기운을 대놓고 풍자한 것.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SNL코리아>는 방송 내내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농단 사태를 빚고 있는 현 시국을 코너마다 신랄하게 풍자해냈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로마 공주라 불리는 이 날의 호스트 솔비에 맞춘 코너로 보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갑자기 유세윤이 켄타우로스 분장을 한 채 등장해 프라다를 외쳤다. 그러면서 너희들도 빨리 우리 엄마 신발 찾아봐라고 말해 이번 사태에서 화제가 됐던 최순실의 프라다 신발을 풍자했다. 제우스 분장을 한 신동엽이 그의 뺨을 때리자 유세윤은 우리 엄마 누군지 몰라? 엄마 빽도 능력인 거 몰라?” 하고 물었다. 그래도 또 그의 뺨을 때리자 어딘가로 전화를 건 유세윤은 엄마 곰탕 먹고 있어요?”하고 묻기도 했으며, 마지막엔 이따 어디로 갈 거냐구? 이따 광화문 가려고.”라고 말해 그 시간에 광화문에 운집한 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이웃 2016vs1980’ 코너에서는 김민교가 최순실 모습으로 분장한 채 깜짝 등장해 그 모습만으로도 큰 웃음을 주었고, ‘나이트라인코너에서도 탁재훈은 김준현과 곰탕’, ‘독일’, ‘신기같은 어휘로 이번 최순실 사태를 에둘러 풍자했고, 마지막에는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검찰 수사 어떻게 진행될까요?”를 묻고는 애매하게 청와대 들어갈까요?”라고 물어 역시 풍자를 통한 웃음을 주었다.

 

<SNL코리아>의 풍자는 최순실 게이트뿐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이어졌다. ‘신종직업이란 코너에서는 현재의 취업난을 풍자의 소재로 끌어와 댓글관리사’, ‘결정조율사’, ‘얼굴미화원’, ‘문화조무사’, ‘욕받이 기능사등등의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직업들을 소개했다. 창조경제를 말하며 다양한 신종 직업 창출을 내걸었지만 달라진 게 없는 청년 실업 문제를 <SNL코리아> 특유의 과장된 풍자로 신랄하게 꼬집은 것.

 

어떻게 이런 풍자정신을 억누르고 있었을까. 사실 <SNL코리아>는 첫 시즌이 시작할 때만 해도 특유의 신랄한 풍자와 패러디로 화제를 모았던 바 있다. ‘여의도 텔레토비처럼 아예 대놓고 정치권을 풍자하는 내용도 있었고, 특히 장진 감독이 앵커로 등장했던 시사풍자 코미디 위크앤드 업데이트(Weekend Update)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안철수 원장, 강용석 의원 등 뜨거운 정치적 소재들을 끌어들여 거침없는 풍자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을 느끼게 됐던 것인지, 아니면 어떤 압력이 있었던 것인지 <SNL코리아>의 풍자는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시사 풍자와 19금 코미디가 본래 NBC에서 방영되던 <SNL>의 그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던 점을 떠올려 보면 그 리메이크인 <SNL코리아>가 시사풍자를 하지 않게 됐던 건 반쪽짜리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시사 풍자가 빠지자 그저 야한코미디 정도로 인식되게 됐던 것.

 

하지만 이번 시즌에 들어서 <SNL코리아>의 변화는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풍자 정신이 되살아났고 급기야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시국을 대놓고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코너들이 점점 거침없어졌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정치적인 압박을 어떤 식으로든 받고 있었다는 반증은 아닐까. 물론 이런 문제제기가 나올 때마다 그런 건 없다고 잘라 말하지만, 이 일련의 흐름과 변화는 그런 의심을 당연하게 만든다.

 

어쨌든 풍자가 돌아오니 이제 제대로 <SNL코리아>다운 모습이다. 사실 어떤 정권이든 코미디의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풍자가 가능해야 그나마 답답한 서민들이 작은 위안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온 <SNL코리아>가 앞으로도 거침없는 풍자를 해주기를, 또 그것이 가능한 환경이 되기를 기대한다

옹달샘의 급부상과 추락, 그 후폭풍이 의미하는 것

 

왜 갑자기 2013년에 있었던 사안이 지금 현재 옹달샘에게 끝없는 논란의 샘이 되었을까. 당시만 하더라고 옹달샘은 이른바 A급 연예인으로 뜨진 못했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말의 수위가 높은 인터넷 팟캐스트 같은 공간을 통해 문제의 발언들을 쏟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수다를 떠는 과정에서 생기기 마련인 일종의 상승작용 같은 것도 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장동민이 거론한 막말의 이유에는 그 내용이 들어가 있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방송이란 틀을 벗어나 저희들이 방송을 만들어 가고 청취자들과 가깝게 소통하며 즐거움을 느꼈고, 더 많은 분들에게 큰 웃음 드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웃음만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내뱉는 발언이 세졌고, 더 자극적인 소재, 격한 말들을 찾게 됐다. 그 웃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재미있으면 되겠지란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그것은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도 그 막말들은 용서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것은 마치 왕따를 시킨 아이들이 그 당사자가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 그들은 후에 피해자가 극단적인 일을 벌인 뒤에야 자신이 했던 일을 깨닫곤 한다. 즉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은 애초부터 악의를 갖고 있는 악의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짓까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 인터넷이라는 조금은 사적인 느낌을 주지만 결코 사적이지 않은 공간에 머물러 있을 때만 해도 문제는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이 막말의 이미지를 캐릭터화하여 성장하고, 지상파 같은 방송 그것도 <무한도전> 같은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오게 되면서 문제는 달라진다. 물론 수위조절을 하겠지만 대중들로서는 그 인터넷 팟캐스트 등에서 했던 B급 막말의 캐릭터들이 지상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막말의 수위는 약자들을 지목한 언어폭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문제는 <무한도전> 식스맨이 촉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도전>과는 무관한 일이다. 옹달샘은 결국 성장을 원했고 B급의 세계가 아닌 제대로 된 세계에서의 활동을 원했다. 그것은 어쨌든 지금까지와의 활동과는 전혀 다른 것을 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책임도 그만큼 막중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당연히 과거 자신들이 했던 발언에 대한 책임도 지고 가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옹달샘을 지지하고 동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그들을 오래도록 봐오며 그 진면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거나 가까이서 응원해온 팬층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옹달샘은 그 소규모 집단의 지지를 넘어서 더 큰 대중들 앞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다. 유세윤이 상대방의 상처와 아픔을 모르고 사태의 심각성도 몰랐다.”고 뒤늦게 사죄를 한 건 그가 여전히 이 과거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걸 말해준다.

 

옹달샘은 프로그램 하차에 대해서 제작진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단지 책임을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넘기려고 하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갑자기 급부상하면서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 발을 들여놓다 보니 모든 걸 내려놓고 하차한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도 너무나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옹달샘 스스로 모든 프로그램에서의 전격하차를 선언하는 것이 또 다른 피해로 이어진다는 미안함이 거기에는 깔려있다.

 

하지만 방송 하차는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정한 휴지기를 갖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좋은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 계속 방송을 강행한다면 과거를 떨치고 나갈 기회를 잃게 된다. 고름은 짜내고 가야한다. 그걸 안고 가다가는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새 살이 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저마다 옹달샘이 괜찮은 재능을 가진 이들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와 지지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제작자들도 일단은 이들을 놓아주는 게 오히려 더 큰 도움을 주는 일이다. 재능은 언제든지 다시 살릴 수 있다. 다만 한번 잃어버린 호감도와 지지는 프로그램을 통해 생겨나기보다는 이들의 선택과 삶을 통한 진정성 같은 걸 통해 회복될 수 있다.

 

옹달샘이 했던 일련의 막말만을 계속 떠올리면 도무지 이들을 이해하기가 어렵게 된다. 하지만 이번 문제에서 그 문제의 막말들이 나올 수 있는 인터넷 팟캐스트의 그 독소적인 환경에 대한 점검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껏 우리는 이 방송들을 사적인 것이라 치부해왔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적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옹달샘은 현명한 선택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재점검 또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이제 옹달샘 멤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정상회담>에서 침묵하는 김구라를 보니

 

JTBC <비정상회담>에 한국 대표로 출연한 김구라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이 프로그램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 MC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체를 이끌어가는 메인 MC로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이 있지만 그들은 이야기의 전면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옆에서 주제를 던지거나 외국인들이 던지는 말에 양념을 쳐서 웃음을 만드는 정도를 할 뿐이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그래서였을까.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김구라는 지금껏 여타의 토크쇼에서는 좀체 보여주지 않았던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가 갖고 나온 주제는 아들에게 뭐든 들어주는 자신이 비정상이냐는 것이었다. 지금껏 아들 동현이가 원하는 건 들어주지 않은 것이 없다는 김구라는, 그러나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는 비정상판정을 받았다.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는 그 어릴 때의 잘못된 습관이 아이의 미래를 망친다며 강도 높게 김구라의 육아방식을 비판했다. 미국 대표 타일러 라쉬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건 괜찮지만 끈기 있게 한 가지를 끝까지 하는 것은 좀 더 종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대표 타쿠야는 무뚝뚝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며 그렇게 아이의 행복을 위해 뭐든 받아주는 김구라의 육아방식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육아방법에서 각자 아버지에 대한 회고로 이어졌다. 타쿠야는 자신이 야구선수로 마운드에 섰을 때 저 멀리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고 있던 것이 감동적이었다는 얘기를 꺼내며 자신이 아버지가 되면 아들과 캐치볼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타일러 라쉬는 알코올에 의존하던 아버지가 알고 보니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고는 그 약해진 아버지와 드디어 소통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김구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루게릭병을 앓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던 사연을 꺼내놓으며 자기 위치에 굳건히 서 있는 것도 효도라고 말했다.

 

최근 김구라에 대한 호감은 과거에 비해 부쩍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특유의 독설이 시청자들에게 심지어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딘지 불편함으로 변모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크쇼가 전반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인지 독설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건 오히려 호불호만을 더 키우고 있다. 특히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불쑥 불쑥 꺼내놓은 그의 이야기 방식은 대중들에게는 어딘지 잘못된 것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런 김구라가 <비정상회담>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경청하는 모습은 심지어 낯설게 다가왔다. 김구라가 아닌 것 같은 모습. 그건 방송에서 보여주던 독설가의 모습이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김구라의 모습이었다. 이건 어쩌면 <비정상회담>이라는 특별한 토크쇼가 부여한 역할일 것이다. 김구라는 처음 테이블에 앉았을 때 프로그램이 잘 되는 이유가 MC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처럼 애써 자신을 누르는 모습을 보였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김구라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건, 그가 던지는 센 멘트들이 그의 고유 성향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 토크쇼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SBS <매직아이>MBC <라디오스타> JTBC <썰전>에서 경청하는 김구라는 불필요하다. 그는 점점 센 이야기들을 요구하는 토크쇼들 속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따라서 거친 독설은 그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런 점은 김구라가 좀 더 새로운 예능의 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방송이 그를 불러준 건 독설하는 김구라였지만 지금은 조금씩 그 호감보다는 비호감이 늘어가는 상황이다. 비슷한 토크쇼 속에 들어가면 자칫 김구라는 그 틀에 갇혀버릴 위험성이 있다. MBC <사남일녀>는 김구라가 하지 않던 야외 버라이어티쇼를 통해 그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 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역시 토크쇼에서 힘을 발휘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직설어법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토크쇼는 없는 것일까. 이건 김구라의 숙제이면서 우리네 방송계가 고민해야할 토크쇼의 숙제이기도 하다.

 

게스트가 묻힌다고? 그것이 <비정상회담>의 묘미다

 

요즘 대세로 불리는 조세호지만 <비정상회담>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터키 대표인 에네스 카야가 한국의 조직문화의 장단점에 대해 열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때 조세호는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이었다. 회식자리 상황극에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나선 조세호가 보여준 반전 춤 실력도 가나 대표 샘 오취리가 나서 의외의 춤 실력을 보여주자 잊혀져 버렸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조세호가 주목된 시간은 엉뚱하게도 춤을 추다 장운동이 과도하게 됐다며 중간에 화장실을 갔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런 조세호에 대해 메인 MC들이나 외국인 대표들이 그걸 언급해주는 모습은 없었다. 만일 지상파의 토크쇼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자리를 비웠다 다시 온 조세호에 대한 토크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에서 그런 건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토크쇼의 주인공은 한국대표가 아니라 외국인대표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메인 MC들인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얘기하는 걸 시청자들이 그리 바라지 않는다는 걸 셀프 디스 코드로 언급해 웃음을 주었다. 메인 MC가 이 정도니 게스트는 오죽할까. 한국대표로 출연한 게스트지만 조세호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건 처음 소개를 할 때뿐이었다. 이것은 조세호뿐만 아니라 이국주가 나왔을 때도 신해철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간에서는 <비정상회담>의 게스트 활용법이 잘못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성 토크쇼들의 틀로 <비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토크쇼를 재단하는 일이 될 것이다. <비정상회담>에서 게스트는 그 날의 화두를 던져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의 입장을 게스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다. 하지만 이런 역할은 메인 MC들도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게스트가 상대적으로 잘 보일 수가 없다.

 

이것은 <비정상회담>의 게스트가 가진 한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아직까지 이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적응을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기존 토크쇼들을 보면 게스트가 나와 자신의 신변잡기를 늘어놓고 때로는 개인기를 선보이는 것이 하나의 공식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지금의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인가를 미지수다. 이미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의 홍보의 장이 되고 있는 지상파 토크쇼에 식상해하고 있다.

 

<비정상회담>이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해 4% 시청률에 육박하고 동시간대 지상파 토크쇼들과의 경쟁에 돌입하게 된 그 원동력이 사실 거기에 있다. <비정상회담>은 연예인 신변잡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회식문화를 외국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집중하고, 또 상하관계가 뚜렷한 조직문화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이는 장면에 시간을 더 할애한다. 메인 MC들은 사실상 이들의 이야기에 효과적인 추임새를 넣거나 리액션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비정상회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대표 게스트들은 어떤 자세로 이 토크쇼에 임해야할까. 일단 스스로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그리고 그저 한국 대표로 거기 앉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외국인 출연자들이 얘기하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며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전형적인 토론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비정상회담>의 다른 게스트 활용법은 여타의 지상파 토크쇼들이 참조할만한 일이다. 일단 연예인이 게스트로 섭외되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방송분량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정해진다. 하지만 이런 기대치 정도로는 무언가 의외의 이야기를 바라는 지금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사보다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와 의견을 원한다.

 

다양화된 사회는 온리 원(Only one)에서 원 오브 뎀(One of them)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것은 연예인처럼 과거 온리 원의 입장에 늘 있던 이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시선의 변화다. 하지만 많은 사람 중의 하나라는 인식의 변화는 우리의 소통방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 <비정상회담>은 그러한 달라진 소통방식을 통해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게스트가 묻힌다고? <비정상회담>은 오히려 그걸 즐기는 토크쇼다. 그리고 이것이 온리 원으로 출연하는 게스트에 대해 집착하는 여타의 토크쇼들과 다른 점이다.

 

우연과 필연이 만든 <라스>와 구라의 기막힌 재회

 

이건 마치 헤어졌던 연인이 어느 날 우연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재회한 것만 같다. <라디오스타>와 김구라의 헤어짐과 만남(?) 얘기다. 물론 사전에 MBC 측과 김구라는 <라디오스타> 출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디오스타>의 대표선수격이 김구라이며, 김구라의 대표 프로그램 역시 <라디오스타>이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복귀 후 케이블과 JTBC에서 맹활약한 김구라지만, 그 여세가 지상파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상파 바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김구라의 토크 방식이 지상파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화신>이나 <두드림>에서 김구라는 늘 하던 대로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렸을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로서는 편집되는 부분도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이런 편집된 방송은 김구라의 토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두드림> 같은 조금은 진중한 프로그램은 김구라가 들어감으로 해서 어떤 교조적인 분위기를 상당 부분 없앤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김구라만의 뾰족한 토크 스타일도 조금은 유화됐던 것도 사실이다. 즉 김구라와 <두드림>같은 지상파의 진지한 토크 프로그램과의 만남은 그다지 시너지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화신>은 어떨까. <화신>은 김구라가 들어가면서 토크 형식을 바꾸었다. 공감 설문 토크 방식에서 벗어나 신설된 ‘한 줄의 힘’과 ‘풍문으로 들었소’는 연예인이 스스로 던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와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는 토크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서 김구라의 역할은 좀 더 과감한 ‘풍문’을 끄집어내는 일일 게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미 <라디오스타>에서 즐겨 하는 것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라디오스타>의 팀워크는 완벽한데 반해 <화신>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반면 <라디오스타>는 지상파이면서도 김구라가 자신의 토크 스타일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즉 김구라에게도 <라디오스타>는 지상파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간 <라디오스타>에 복귀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김구라가 이해는 하면서도 늘 아쉬움을 표명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사정은 <라디오스타>도 마찬가지다. <라디오스타>는 김구라가 빠져나간 후에도 그 독특한 색깔을 잘 유지해왔다. 대타로 들어온 유세윤은 김구라의 빈 자리를 특유의 콩트식 재연으로 채워주었다. 하지만 <라디오스타>는 그러면서도 늘 김구라를 위한 빈 자리를 남겨두기도 했다. 규현이 정신적 지주라며 김구라의 인형을 꺼내 그의 존재감을 맥거핀화 하는 것은 <라디오스타>의 김구라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지상파에 김구라가 입성한다면 제일 먼저 복귀할 프로그램이 <라디오스타>라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생각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김재철 MBC 전 사장이 김구라의 <라디오스타> 복귀에 대해 불가방침을 내려 돌아올 수가 없었고,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후에도 공석이 되어버린 사장 자리 때문에 김구라의 복귀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김구라가 <두드림>에 먼저 합류하고 <두드림>이 수요일 밤 편성이 되면서 사실상 김구라의 <라디오스타> 복귀는 물 건너간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드림> 폐지가 결정된 것은 김구라나 <라디오스타> 양측에게는 기막힌 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불운하게도 유세윤이 ‘음주운전 자수’라는 해프닝으로 하차하게 되면서 MBC 내부에서도 <라디오스타>에 김구라의 복귀를 서두르는 것에 대한 확실한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물론 필연적으로 양측이 갖고 있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거기에는 기막힌 우연이 따랐다는 점에서 이것은 실로 인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김구라는 지상파에 확실한 자기의 무대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또 <라디오스타>도 그간 잃었던 대표주자를 복귀시킨 셈이다. 그간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유세윤이 아쉽긴 하지만 김구라가 만들어내는 기대감은 유세윤이 그랬던 것처럼 또한 그 빈 자리를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 김구라와 <라디오스타>의 재회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것은 그간 팬들을 못내 아쉽게 했던 끝없는 어긋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김구라의 <라디오스타>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없으면 더 열심히, <라스>의 비결

 

MBC 김재철 사장의 강호동은 돼도 김구라는 안 된다는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라디오스타>의 멘트 하나 자막 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상해 공연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못 타서 당일 첫 비행기를 타고 오는 중이라 자리를 비운 규현을 두고 다른 MC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윤종신은 “더 이상 집나가는 형제 있으면 안 되는데.. 예전에는 살짝 비기만 해도 이상했는데.”라고 운을 띄우자, 유세윤이 받아서 “이 자리가 어쨌든 규현이만의 자리는 아니잖아요.”라고 농담을 했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그 주고받는 농담 속에 ‘열린 자리’라는 깨알 같은 자막이 들어가 웃음을 주었고, 유세윤은 규현의 빈 자리에 대고 마치 그가 있는 것처럼 “상해 클럽 갔다며. 어 진짜로? 3명이랑?”이라고 말하며 장난을 쳤다. 이것은 <라디오스타>가 빈 자리가 생겼을 때 대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서로의 방송분량 경쟁이 하나의 설정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누군가의 빈 자리를 환영하는 모습으로 장난으로 친다.

 

물론 심각한 사안으로 MC가 하차하게 됐을 때는 조금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 장난이 멈추지는 않는다. 신정환이 하차했을 때도 <라디오스타>의 MC들은 서슴없이 그의 이야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또 김구라가 빠졌을 때는 그를 <라디오스타>의 사실상 멘토로 대하면서 그의 분신(인형)을 꺼내놓고는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규현이 주로 그랬다). 이것은 <라디오스타>가 김구라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누군가 자리를 비울 때 그를 깎아내리고 때로는 독설을 하는 건 <라디오스타>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김구라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는 뜬금없이 양배추(조세호)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를 웃음의 재료로 쓰기도 하고 염경환을 호명해서 깎아내리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 이들의 이름을 프로그램에서 꺼내놓는 것은 그 내용이 어떻든 그 자체로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악플보다 힘든 게 무플이 아닌가.

 

김구라가 tvN의 <택시>로 복귀하면서 많은 이들이 <라디오스타>에서 그의 모습을 다시 보기를 바라게 되었다. 물론 과거 잘못된 발언으로 인해 잠정하차하고 자숙의 기간을 가졌지만, 많은 이들이 그가 다시 열심히 방송에 임하는 모습을 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어두웠던 과거가 어떻든, 현재에 그가 많은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구라는 김재철 사장의 발언에 대해 서운함을 표현하면서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대중들의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어쨌든 <라디오스타>만큼 MC들이 갑자기 빠져나가고 새롭게 채워진 토크쇼도 없을 법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라디오스타>가 굳건히 버텨낼 수 있었던 데는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뒤늦게 도착한 규현에게 다른 MC들은 그가 없이도 잘 진행이 됐고 분위기도 좋았다며 그를 놀렸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랬다. 규현의 부재가 그다지 두드러지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그 이유는 그의 존재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규현이 “저 없이도 잘 하셨나요? 걱정이 되가지고.”라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자, 유세윤이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저희는 누구 없다고 못하는 프로그램 아니에요.” 그러자 규현도 수긍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없으면 더 열심히 해.” 아마도 이것이 <라디오스타>가 김구라 같은 프로그램의 뿌리가 사라져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라디오스타>, 차 떼고 포 떼도 괜찮은 이유

김구라의 빈 자리는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디오스타>가 갖고 있는 특유의 색깔이나 스피드, 분위기가 달라진 건 없었다. 김국진은 여전히 <라디오스타>의 전체 분위기를 정리했고, 윤종신은 게스트들이 던지는 말을 잡아채서 제 멋대로 이리저리 부풀리고 덧붙이면서 재미를 만들었다. 김구라의 멘티(?)로 자리한 규현은 독한 질문을 천연덕스럽게 툭툭 던졌고 유세윤은 특유의 콩트 감각으로 대화 중에 나온 상황을 연기로 재현해내면서 웃음을 만들었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빈 자리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껏 꽤 여러 차례 MC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겪은 터라 이런 상황에 대한 적응력도 남달랐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꽤 오래 호흡을 맞췄던 신정환이 하차하고 김희철이 군 입대 문제로 빠져나간 후, 규현과 유세윤이 들어와 적응단계에 접어들 때, 김구라가 하차하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의 스타일 그 자체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규현의 말 대로 "너무 잘하면 서운할거다"라는 말은 그저 농담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구라의 빈 자리를 놓고 남은 네 MC가 서로 헤게모니 싸움을 하듯 서로를 견제하고, 그러면서도 김구라가 해왔던 역할, 즉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서로 분담하듯 하는 모습은 <라디오스타>가 얼마나 형식적으로나 구성원들로나 견고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아마도 규현의 말 대로 김구라가 봤다면 서운했을 정도로, 이들은 빈 자리를 잘 메워나갔다.

 

게스트로 <슈퍼스타K>의 서인국과 허각, 그리고 <위대한 탄생>의 손진영과 구자명이 같이 출연한 것도 적절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MBC 출연이 처음이었을 서인국과 허각의 소회도 그렇지만, 이렇게 두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이색적인 조합이었다. 그들은 팽팽한 신경전을 보여줌으로써, 자칫 김구라의 공백이 가져올 수도 있는 <라디오스타>의 느슨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손진영은 탁월한 예능감으로 이 대결구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나머지 세 명이 모두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한 이들이라는 사실과 대척점에 서서 '열등감' 운운하며 이들을 쏘아붙였다. 또 허각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고,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의 비교점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허각을 추종하는 구자명에게는 "너마저도..."하는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금은 독할 수도 있는 이런 멘트들이 손진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하자 구수하고 순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손진영이라는 새로운 예능감의 발견은 그 동안 수없이 차 떼고 포 떼면서도 굴하지 않고 달려온 <라디오스타>가 여전히 그 동력을 잃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라디오스타>는 그 특유의 몰아붙이는 분위기 속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게스트의 예능감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가장 빛나는 토크쇼가 아닌가.

 

김구라의 미니어처를 규현이 꺼내놓을 정도로 여전히 김구라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중간에 전화 연결로 김태원이 말한 '용서'의 의미가 짠하게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렇게 비어있는 자리가 있어도 여전히 팽팽 돌아가는 저력, 이것이 밟으면 밟을수록 더 잘 자라는 잡초 같은 예능, <라디오스타>만의 매력이 아닐까.


'승승장구'에서 '라스'까지, '개콘' 전성시대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승승장구'에 MC가 아니라 게스트로 출연한 이수근은 그간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좌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무속인인 어머니, 투병중인 아내, 장애를 가진 아들 이야기는 늘 밝게 웃으며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는 이수근이라는 개그맨을 다시 보게 해주었다.

한편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유세윤와 개식스(김준호, 김대희, 장동민, 유상무, 홍인규)는 돈독한 우정과 탁월한 개그감으로 웃음과 눈물의 롤러코스터를 선사했다. 힘겨웠던 과거의 아픔과 치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눈물마저 개그로 풀어내는 그들은 진정한 개그맨이었다. 유세윤이 드러낸 화려함 이면에 있는 우울은 보는 이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존재감이 갈수록 빛을 내고 있다. 단지 시청률이 전체 예능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개콘'이 배출하고 있는 개그맨들의 존재감이 빛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개콘'이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한정짓기 어려운 영향력을 방송 전체 예능 프로그램에 미치고 있다.

'1박2일'의 중추가 된 이수근, '라디오스타'는 물론이고 'UV신드롬' 등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유세윤, '정글의 법칙' 같은 극한 예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김병만, '무한도전'의 미친 존재감이 된 정형돈처럼 이미 '개콘' 바깥에서 확고한 자신의 위치를 구축한 개그맨들뿐만이 아니다.

현재 '개콘'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준호를 비롯해, 각 코너에서 주목받고 있는 최효종, 김원효, 정범균, 허경환은 '해피투게더 시즌3'에 출연해 그간 정체된 분위기를 일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개콘'이 배출한 신봉선은 이 토크쇼에서 때론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개콘' 안팎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된 배경은 결국 '생존'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개그맨들의 무대가 있었지만 내홍을 겪으며 전부 사라지는 와중에도 '개콘'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그것도 그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예능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렇게 버텨낼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개그맨들의 산실이 될 수 있었다. 현재 예능의 새 피를 수혈해주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개콘'이 된 것이다.

'개콘'의 이런 경쟁력은 그 독특한 시스템에서 나온다. 마치 샐러리맨처럼 출퇴근제를 하고 있는 '개콘'은 매일 개그맨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연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과정에서 선후배 간의 독특한 위계질서가 생겨난다. 무조건 선배가 주인공을 하는 그런 식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걸맞는 최적의 인물을 찾아서 서로 꽂아주고 세워주는 협업시스템이 '개콘'의 진정한 힘이다. 매일 서로의 개그 스타일을 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짜면서도 상대방의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이다. 이수근은 '개콘'에서 봉숭아학당을 할 때만 해도 이미 그만두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수민PD가 "후배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말 한 마디에 아무 조건 없이 6개월을 버텨주었다고 한다.

'승승장구'에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우정을 느끼게 해준 이수근과 김병만처럼, 유세윤을 생각하는 장동민과 유상무의 마음 역시 각별하다. 누가 잘 나가든 누가 조금 못나가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우정은 '라디오스타'에서 유세윤과 유상무가 잠깐 보인 눈물 속에 모두 들어가 있다.

한편 '개콘' 선배들이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세윤이 김준호, 김대희에게 "'개콘' 출신 개그맨이 타 방송 개그 프로그램('코미디 빅리그'를 말하는 것이다)에 나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대희의 답변 속에 들어있다. 그건 방송사들의 문제이지, 개그맨들은 각자 위치에서 개그를 하면 된다는 그 말에는 선배로서 후배 개그맨을 생각하는 진심이 담겨져 있다.

'개콘'은 이제 그저 하나의 개그 프로그램을 넘어서 전체 예능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개콘'을 발판삼아 성장해 나온 개그맨들의 성공담은 그래서 현재 '개콘'에서 묵묵하게 조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젊은 개그맨들에게는 하나의 꿈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전체 예능을 꿈꾸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이제 김병만이 없는 '정글의 법칙'을, 이수근이 없는 '1박2일'을, 유세윤이 없는 '라디오스타'나 'UV'를 떠올릴 수 없는 건 그들의 꿈이 만든 예능의 새로운 세계를 실감하게 한다. '개콘'을 통해 더 많은 개그맨들의 꿈이 예능 전체로 퍼져가길.


경계 해체의 시대, 당신의 선택은?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이승기는 가수일까 연기자일까 아니면 예능인일까. 최근 새 앨범을 낸 김종민은 가수일까 예능인일까. UV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유세윤은 개그맨일까 가수일까. TV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들은? '제국의 아이들'의 광희는 아이돌 가수가 맞을까. 과연 노래 못하는 가수를 가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왜 '1박2일'에서 강호동과 이수근은 그토록 "우린 코미디언 아이가!"하고 외치는 걸까.

사실상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연예인들은 한 가지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점점 확장해나가고 있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 정체성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연예인 당사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걸 바라보고 있는 대중의 혼동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정체성에 집착하는 '나는 □다' 식의 제목과 그 패러디들이 눈에 띈다.

그 촉발점은 아마도 '나는 가수다'였을 것이다. 사실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속으로만 생각해왔던 가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이 예능 프로그램은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동안 각종 뮤직차트 프로그램을 가득 메웠던 아이돌가수들만을 봐왔던 시청자들에게, 놀라운 가창력과 최고의 무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노력을 통해 그 진정성을 보여준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은 대중들에게 새삼 가수란 존재의 다른 실체를 보여주었다.

'나는 가수다'가 던진 가수의 최고 덕목으로서의 가창력에 대한 질문은 거꾸로 가창력 없는 가수들에 대한 역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너는 가수냐"하고 질문이 되돌아온 것이다. 많은 아이돌 그룹에서 활동하는 아이돌들은 겨우 몇 초 노래를 하고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으로 그 정체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뒤늦게 가창력의 잣대로 다시 들여다보니 과연 가수가 맞나 하는 의구심을 대중들이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수의 정체성을 가창력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가수는 가창력 이외에도 작곡능력이나 창조적인 퍼포먼스, 아니면 메시지 그 자체만으로도 가수라는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즉 '나는 가수다'는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의 정체성을 보여줬던 것뿐이지 모든 가수의 정체성을 그 예능 프로그램이 대변한 것은 아니다. 결국 '나는 가수다' 역시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가. 지금 달라지고 있는 방송 환경 속에서 가수의 정체성은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은 가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1박2일'에서 "우린 코미디언 아이가"하고 강호동과 이수근이 외치는 건 거꾸로 말하면 점점 좁아지고 있는 코미디언들의 입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리얼화되어버린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코미디언보다는 예능이 낯선 가수나 배우를 더 선호한다. 엄태웅이 '1박2일'의 순둥이가 된 것도, 양준혁이 '남자의 자격'의 새 멤버가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니 개그맨들 역시 이제 타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달인'팀의 류담은 '선덕여왕'에 이어 '로열패밀리'에서 연기를 하고 있고, 개그맨 정성화는 뮤지컬 배우로 스타덤에 오른 후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 미친 존재감을 보이고 있으며, 유세윤은 'UV 신드롬'으로 말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정체성 혼돈의 시대를 가까스로 붙잡으려는 몸부림처럼, '나는 □다'라는 제목과 패러디가 넘쳐난다는 점이다. tvN에서 '오페라스타'가 방영되자 '나는 오페라스타다'라는 문구가 등장했고, 오랜만에 '로열패밀리'에서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염정아에 대해 '나는 배우 염정아다'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가창력을 지닌 솔로가수들에 대한 주목에 대해 '나는 솔로가수다'라는 지칭이 등장했고, 심지어 '나는 아빠다'라는 영화는 굳이 그렇게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도 '아빠의 정체성'을 볼모로 삼았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 '나는 관객이다'라는 댓글로 응수하기도 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모든 경계들이 허물어지는 시대다. 과거에 가진 정체성은 이 변화 속에서 흔들리고 있고 새로운 정체성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혹자는 이 변화를 탐탁찮게 여긴다.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것까지 변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과거의 정체성만을 주장하는 것도 자칫 공허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이 혼돈의 시기에 그 경계 위에 선 이들은 스스로도 이제 자문해봐야 한다. 나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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