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원미경에게 슬픔 뒤 인간의 온기가 느껴진다

tvN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996년 MBC에서 방영되어 큰 화제가 됐던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4부작으로 리메이크했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거나 혹은 과거에 봤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시청자들이라도 제목만 들으면 대충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감지할 수 있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다가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된 주부의 이야기. 눈물은 이미 예고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우리가 뻔하게 봐왔던 말기암 판정 주인공을 통한 ‘짜내는 눈물’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이 절망적 상황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극도로 절제하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 사실을 먼저 알게 된 남편 정철(유동근)의 캐릭터가 그렇다. 평상시 별로 말도 없고 누가 물어도 대꾸도 잘 하지 않은 채 표정도 거의 없는 캐릭터다. 물론 절망적인 아내의 말기암 판정을 듣고 이를 부정하고 괜스레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는 이유를 토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말기암으로 더 이상 가망이 없는 당사자인 인희(원미경)는 몸이 고장 났지만 좀체 자신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 자신보다는 가족이 먼저고 그래서 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날에도 집에 혼자 두고 가는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김영옥)의 기저귀 가는 일을 마음에 걸려한다. 여행 계를 계속 친구들과 해왔지만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은 없고, 말년에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조용히 지낼 집이 마무리 되어가는 것에 여전히 소녀처럼 들떠한다. 

그러면서 망나니에 경마 도박에 빠져버린 동생 근덕(유재명)의 아내인 양순(염혜란)의 삶을 더 걱정한다. 그 집을 찾아가 늘 그래왔듯 돈 봉투를 건네는 인희는 그런 망나니 동생과 그래도 지지고 볶으며 살아주는 양순을 미더워한다. 힘겨운 삶 속에서 거칠어진 양순의 말과 행동들을 보면서도 그에게서 어떤 따뜻함 같은 걸 느낀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말기암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소재로 담으면서도 거기에 과도하게 집중하기보다는 인희라는 한 인물이 가진 따뜻함에 더 주목한다. 남편 챙기고 자식들 보듬으며 또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까지 부양하는 그 삶이 이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인희의 삶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 말기암이라는 상황을 던져놓고 보니 사실은 굉장한 삶이었다는 걸 발견하는 그런 시선.

그래서 인희를 통해 한 인간의 숭고함 같은 걸 발견하는 이 드라마는 쉽게 틀에 박힌 말기암 신파의 길을 걷지 않는다. 대신 이 사람이 했던 평상시의 그 행동들이나 선택들, 그리고 말들과 표정들이 남기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찌 보면 돌보는 게 업이 되어 떠나면서도 자신이 돌보던 이들을 걱정하는 이의 따뜻함을. 따라서 이 이별은 슬프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 같은 걸 드러내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배우들이다. 1996년 방영됐던 드라마에서도 같은 역할을 했었던 김영옥을 비롯해 원미경, 유동근의 연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작품에 생명을 더해준다. 특히 이런 따뜻한 슬픔을 고스란히 연기로 녹여내는 원미경은 마치 인희라는 인물 자체가 된 듯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소녀 같기도 한 이 주부를 연기해내는 원미경에게서는 슬픔 뒤에 느껴지는 인간의 온기가 있다. 짧은 4부작이지만 아마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사진:tvN)

‘비밀의 숲’이 남긴 여운,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려면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종영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즌2를 요구하는 등, 이 작품이 엔딩까지 남긴 여운은 지금도 계속된다. 첫 회부터 이토록 숨 가쁘게 달려온 작품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엔딩까지 보여줬고, 또한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 남긴 울림도 결코 작지 않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비밀의 숲>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마지막 회에 이르러 이 모든 사건의 설계를 했던 장본인이 이창준(유재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밀의 숲>이 하려는 이야기는 확실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관계와 검찰이 엮어진 오래된 유착과 그로 인해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적폐청산의 문제였다. ‘밥 한 끼’로 시작하는 관계들이 얽혀 거대한 욕망으로 변질되며 그로 인해 탄생하게 되는 괴물들. 한두 명의 검사가 뜻을 갖는다고 해도 결국 그들만 배제되는 ‘비밀의 숲’. 그 비밀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비리의 숲’. 

이 문제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해결해보기 위해 이수연 작가가 필요로 했던 건 이창준 같은 자기희생까지 해버리는 괴물과 심지어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 제거되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황시목 같은 검사였다. 특히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황시목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폐청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냉철함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이 모든 적폐들이 쌓이게 되는 그 시발점은 <비밀의 숲>이 말했던 것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하게 되는 ‘밥 한 끼’가 만들어내는 부적절한 관계다. 그 관계에서부터 청탁이 시작되고 그 청탁은 법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검사들의 본질을 흔들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린 본질은 가해자들의 죄를 덮어버리고 대신 무고한 희생자들을 남긴다.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황시목 같은 다소 과장된 캐릭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된 조직으로서 여전히 수장의 한 마디가 법이 되는 검찰과,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밥 한 끼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검사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들. 그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일이 이만한 무감함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는 걸 이수연 작가는 통감했으리라. 

검사가 등장하는 많은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황시목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세워뒀다는 사실은 이수연 작가의 만만찮은 공력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신인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작가는 캐릭터가 바로 주제의식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비밀의 숲>에는 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처리된 캐릭터가 없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 ‘애매하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숲 속’에서 황시목처럼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 그 숲을 바꾸는 ‘첫 번째 나무’로서 나아갈 수 있었던 그 이유로 엄청난 두뇌나 힘이 아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를 제시했다는 건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을 희구하는 요즘, <비밀의 숲>의 이런 문제제기는 한번쯤 모두가 생각해봐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입체적인 인물들의 반전, ‘비밀의 숲’이 남달랐던 까닭

첫 회에서부터 몰입하게 만들었던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어느덧 종영을 맞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회가 영화 같은 몰입의 연속이었던 <비밀의 숲>. 검찰의 비리를 담는 이야기가 이전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스릴러물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도대체 이 괴물 같은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빨아들인 그 힘의 원천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이마에 착한 사람, 무서운 사람 써 붙여놨으면 좋겠어요.” 같은 특검에 있던 윤세원(이규형)이 박무성(엄효섭)을 죽인 범인이었다는 것을 못 믿겠다는 듯 김정본(서동원)이 그렇게 말하자 한여진 경위(배두나)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럼 여기도 애매한 사람 꽤 많을 걸요... 있습니다. 그런 사람. 범인 잡겠다고 먼지 뒤집어쓰고 애쓰는 거 보면 좋은 사람 같은데 남한테 몽땅 뒤집어씌우는 거 보면 이건 또 뭔가 싶은 사람.”

한여진이 지목하는 그 애매한 사람은 바로 팀장이다. 열심히 범인을 잡으려 뛰어다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이 문제에 연루되자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려 애쓰는 모습을 한여진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의 동료인 장건(최재웅)이 말한다.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에요. 막 죽일 새끼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사는 거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한여진은 그의 말에 또다시 의미심장한 반론을 달아놓는다. “그렇게 흐르기만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곳에 닿아 버리면요?”

아마도 이 짧은 대사 안에 <비밀의 숲>이 인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과 그로 인해 이 드라마가 얼마나 큰 몰입감을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비밀이 들어 있지 않을까. 그 비밀은 입체적인 인물에 있다. <비밀의 숲>은 우리가 스릴러 장르에서 늘 접하던 착한 사람과 무서운 사람의 경계를 세워두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든 이 양면을 갖고 있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면을 보인다는 것. 

이 점은 우리가 드라마를 보며 믿었던 어떤 인물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영은수(신혜선) 검사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건을 추적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버지가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게 된 것에 대한 사적 복수심을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진 면이나, 서동재(이준혁)처럼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 겉으론 황시목(조승우)을 지원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를 이용하고 있는 이창준(유재명) 수석이나, 결정적인 반전을 보여준 윤세원 등등. <비밀의 숲>의 인물들은 한여진이 말하듯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저마다 갖고 있는 비밀들이 있어 평시에는 그토록 정의롭게 보였던 인물도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정반대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것. 그렇다면 <비밀의 숲>은 어차피 인간은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걸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여진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 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곳 깊숙이 닿아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그 흐름에 자신을 맞기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다. 

자신의 아이가 끔찍하게 죽게 된 사건으로 인해 윤세원이 박무성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건 마치 그런 흐름을 이해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흐름이 잘못됐다는 걸 황시목은 지적한다. “윤세원 씨가 그걸 처벌할 권한이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그러자 윤세원은 자신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던 아픈 이유를 드러낸다. “그럼 권한을 가진 사람은 대체 뭘 했는데요?” 누군가의 잘못된 결정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결과로 돌아온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검찰 비리라는 그 원류가 얼마나 멀리까지 잘못된 흐름들을 계속 양산해내는가를 드러내준다. 그 흐름 안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그 흐름 속에서 인물들은 ‘애매해진다’. 그 애매함이 <비밀의 숲>에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이유였고, 그 애매함을 만들어내는 원류의 잘못된 흐름을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었다. 재미와 의미가 입체적인 인물들의 면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품. 우리가 <비밀의 숲>을 수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비밀의 숲' 잠시 화장실도 가지 못할 긴장감 얼마 만인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이다.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예측을 하다보면 그 예측이 빗나간 자리에 어김없이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자리한다. 그러면서 그 반전은 의혹을 증폭시킨다. 윤과장(이규형)의 어깨에 새겨진 알파벳 글자 DJ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가영이 말한 0과 7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어째서 그가 가영을 납치했고, 또 그런 인물이 어째서 특임에 들어와 황시목(조승우)을 돕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이런 식의 반전은 이미 매회 거의 반복되었다고 보인다. 황시목을 돕는 것처럼 보인 영은수(신혜선)가 박무성(엄효섭)이 살해당하는 날 만났던 인물이라는 게 밝혀질 때도 그랬고, 간신히 살아남은 가영이 병원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할 뻔한 순간에 이창준(유재명)의 아내이자 이윤범(이경영) 회장의 딸 이연재(윤세아)가 현장에 있었다는 게 드러날 때도 그랬다. 그래서 이연재가 범인이 아닌가 의심하게 했지만,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니고 진범은 김우균(최병모) 경찰서장이라는 게 밝혀졌다. 

<비밀의 숲>은 이처럼 황시목과 특임 팀이 추적하는 진실에 대해 끊임없이 시청자들이 추리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추리는 번번이 빗나간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범행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으로 충격을 주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욕망이 어디로 튈지 전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서동재(이준혁)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는 황시목을 돕기도 하지만 이창준 밑으로 들어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윤범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그의 비리를 캐고 다닌다. 그는 한 마디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하는 인간이다. 서동재 같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이 득시글대고 있기 때문에 <비밀의 숲>의 이야기는 예측불가능한 생동감이 생겨난다. 

반전의 반전, 게다가 끊임없이 던져지는 떡밥. 그래서 <비밀의 숲>은 자칫 그 미로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복잡성을 갖는다. 너무 많은 인물들의 감정들이 디테일하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잠시 화장실도 가지 못할 만큼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그 장면 장면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보통 이런 정도의 복잡함과 디테일은 시청자들이 몰입의 피곤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청자들은 <비밀의 숲>의 복잡함을 즐기고 있는 눈치다. 시청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비밀스런 이야기들의 숲이 끊임없이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목표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비밀의 숲’으로서의 진실이 가려진 검찰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가 엇나간 세계다. 그러니 그 진실을 파헤치고 숲의 전모를 드러내는 과정들은 쉽지는 않지만 드라마가 추구하는 목표와 맞닿아 있다. 복잡함이 있지만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에 이미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는 것. 

그래서 황시목이 그 무심한 얼굴로 자신을 회유하고 때론 협박하는 권력자들 앞에서 자신이 갈 길을 가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비밀의 숲>의 이야기는 이제 정치권력과 대기업 그리고 외국기업까지 연루된 방산비리 이야기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어딘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사건들에서 대중들은 아마도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비밀로 자꾸 덮으려는 것들 속에서 그것을 걷어내려는 황시목의 행보가 특별히 사이다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현실 정서가 반영된 시청자들의 욕망은 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된다. 충격적인 반전이 계속 벌어지고, 너무 많은 반전이 등장해 머리가 복잡해져도 결국 그 과정들이 숲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한 통과제의라는 데 공감한다. 황시목에 의해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밝혀질 그 끝을 기대하며.

‘비밀의 숲’은 비밀의 늪,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네

끝없이 궁금하고 의심하게 하라. 아마도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동력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비밀의 숲>은 제목이 가진 뉘앙스처럼 끝없이 비밀로 가득한 숲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헤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빠지고픈 그런 몰입의 느낌. <비밀의 숲>은 그래서 마치 ‘비밀의 늪’ 같다. 한 번도 안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보고 계속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스폰서의 죽음.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일 케이블 수리기사. 하지만 자신이 그 집에 갔을 때는 이미 그 스폰서가 죽어있었다고 항변하는 수리기사는,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차의 블랙박스에 찍혀진 영상에 의해 그 증언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 영상 속에는 수리기사가 마침 그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창가에 한 사내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그래서 수리기사는 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은 무죄이며 억울하다는 글을 남김으로써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생겨난다.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경찰 한여진(배두나)과 이 사건을 수사하다 그것이 검찰의 스폰서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차츰 그 ‘비밀의 숲’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진다. 그 배후에는 서부지검 차장검사 이창준(유재명)과 그의 오른팔인 서동재(이준혁)가 있다는 게 분명해지지만, 또한 신출내기 검사로만 알았던 영은수(신혜선)의 아버지가 전직 법무부장관이었다 비리 누명을 쓰고 물러난 영일재(이호재) 법무부 장관이었고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황시목은 이 모든 것이 영일재가 만든 완벽히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이창준 역시 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다고 의심한다. 한편 이창준의 오른팔이었던 서동재는 자신이 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창준의 성 접대를 했던 업소 여인을 찾으려 하고, 황시목 역시 그녀를 쫓지만 결국 그녀는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결국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수사 과정이 이어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떤 실마리나 단서들을 속 시원해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진실과 연루된 인물들이 오히려 죽어나간다. 게다가 진실을 좇는 황시목은 과거 폭력행위가 드러나기도 하고 또 용의자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 <비밀의 숲>은 마치 미로 같다.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숲이 지목하는 방향이나 그림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나무들만 빽빽이 채워져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 복잡한 수수께끼를 숲 바깥이 아니라 그 숲 안에서 풀어내는 일. 그것이 황시목이 걷는 그 길 하나하나에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이유다. 

보통 이런 정도의 복잡함을 가진 수사물이 좋은 시청률을 가져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4% 대의 괜찮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시청자들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상황전개와 그것에 몰입하게 만드는 각별한 연출력 덕분이다.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사안들조차 <비밀의 숲>은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 연출은 시청자들 앞에 상황을 끝없이 던져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상황들에도 카메라를 비춰 어떤 의구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더 큰 몰입감을 주는 건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추리 과정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냉철한 이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황시목의 시선으로 이 숲을 헤매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황시목이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을 갖고 태어나 뇌 절제 수술을 받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 부분은 두 가지 차원에서 드라마에 잘 녹아든다. 그 하나는 검찰 내부에서 내부자로서 수사하는 인물로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수사를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갖춰야한다는 개연성과 공감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수사과정에서 이를 방해하기 위해 들어오는 갖가지 모략들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감정 자체에 둔감한 캐릭터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는 그래서 거기에 몰입하는 시청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느껴질 힘겨움을 상쇄시켜주는 역할도 해준다. 

이처럼 냉정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보통 “낚인다”고 하면 불쾌한 감정이 들어있기 마련이지만 <비밀의 숲>은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에 의해 약간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그 불쾌함을 상쇄시키고 대신 복잡한 퍼즐을 푸는 재미를 만들어낸다. 풀릴 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가 주는 일종의 ‘낚이는 즐거움’이라니.

<굿와이프>의 쿨한 도발, 충분히 의미 있는 까닭

 

tvN <굿와이프>는 여러모로 도발적이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법정극을 다루지만 우리네 법정드라마들이 하듯 법 정의를 내놓고 기치로 내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혜경(전도연)은 새로 로펌에 들어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의뢰인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이다 로펌 대표인 서명희(김서형)로부터 한 소리를 듣는다. 변호사의 일은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이 대단히 쿨하다 못해 비정하게까지 여겨지는 법에 대한 태도는 <굿와이프>라는 법정드라마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변호인들이 대부분 약자들의 편에 서서 법 정의를 실현해내는 소시민들의 영웅처럼 그려지고 있다면, <굿와이프>에서 변호사들은 프로들이다. 김혜경과 계속 맞닥뜨리는 상대편 변호사 손동욱(유재명)은 이기기 위해서는 별의 별 꼼수까지 다 쓰지만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마치 스포츠라도 한 판 한 듯 쿨하게 그녀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우리네 법정드라마에서 법 정의를 둘러싸고 선과 악이 극명히 대립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다만 의뢰인에 따라 결정되는 직업적인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것에 굉장한 도취감이나 좌절은 없다. 다만 성취나 낙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런 쿨한 태도는 아마도 좀 더 실제에 가까운 변호사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저 선과 악을 운운하고 서민들의 영웅으로 그려지곤 하는 우리네 변호사들이 순진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순진해보여도 바로 우리네 정서인 것만은 분명하다. 드라마가 결국 현실을 그대로 그린다기보다는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건드린다고 볼 때, 우리에게 드라마가 그리는 변호사에 소시민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판타지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에서 희구되는.

 

그래도 법 정의의 문제일 때는 <굿와이프>의 이런 직업적이고 프로적인 쿨한 태도는 그런대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또 한 축, 즉 남편과 남자친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삼각관계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정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김혜경의 남편 이태준(유지태) 검사는 한 마디로 나쁜 남편이다. 그는 이미 불륜을 저질러 김혜경을 배신한 바 있고, 그래서 잘못했다 말하면서도 아내의 그 좋은 이미지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김혜경은 그 남편과 살아왔던 세월을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하지만 거기서 상사이자 오랜 친구인 서중원(윤계상)과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국 선을 넘어버린다. 이 부분은 미국적 정서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간 김혜경이 살아온 세월과 당해온 일들을 생각해보라. 그녀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당연히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 마음이 걸리는 건 아직 아이들이 있고 남편과 이혼을 명쾌하게 하지 않은 사이에서 김혜경과 서중원이 선을 넘는 모습이다. 그건 마치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남편과 똑같이 옳지 않은 행동으로 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러한 행동도 선과 악의 윤리적 잣대로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과는 상당히 다른 미국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굿와이프>는 우리네 드라마 정서에는 태생적으로 문제작일 수밖에 없다. 제목이 <굿와이프>지만 그것은 좋은 아내로서의 김혜경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이른바 좋은 아내로 상정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력 같은 것들을 보기 좋게 깨버리는 김혜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그래서 일에 있어서는 쉽게 선악으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프로페셔널로 서는 것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좋은 아내같은 때로는 폭력적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굿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도발적이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으로 우리네 대중들에게 100% 공감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가진 가치는 지금껏 선악구도와 윤리적 잣대에만 매몰되어 아무도 질문을 건네지 않았던 일과 사랑에 대한 파격적인 질문들을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욱씨남정기>의 갑질들, 현실적이라 더 슬프다

 

갑의 권력을 이용한 각종 갑질들. 그 갑질에 의해 몸도 마음도 상처 입는 을들. 하지만 갑질은 갑을관계에 놓인 회사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같은 회사로 심지어 늘 을의 입장에 있는 회사 안에서도 갑질이 벌어진다. JTBC <욱씨남정기>가 보여준 계약직 여직원 장미리(황보라)에게 정규직 평가를 내리는 위치에 있다는 권력을 이용해 접대자리에 데리고 나가 술을 따르게 하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하는 신팀장(안상우)의 이야기가 그렇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러블리코스메틱이라는 회사에 대외적으로 늘 갑질을 해온 황금화학의 김환규(손종학)상무가 있었다면 신팀장은 마치 러블리코스메틱의 리틀 김상무 같은 존재다. 밖에서 당하는 갑질은 그나마 안에서의 위로와 격려라도 받지만, 안에서 당하는 갑질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비참한 일이다. 신팀장이 장미리에게 성추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입을 열지 못하는 박현우(권현상)는 사내에서 벌어지는 갑질이 왜 더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잘 드러내준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술자리로 불러내 겁탈을 시도하는 극단적인 사건들은 예외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눈에 띄는 사건이 아니라도 부지불식간에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접대나 성희롱의 사례들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일 게다. 많은 이들이 그런 피해를 당하면서도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넘기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남정기(윤상현)와 조동규(유재명) 사장이 소셜커머스 업체의 담당자에게 자신들의 배너를 좀 더 위쪽에 배치해달라고 청탁하며 벌이는 접대와 향응은 또 어떤가. 그것은 남성들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만일 그들이 여성들이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엄청난 희롱과 폭력의 현장이라는 게 그 실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죽을 듯이 술을 마셔대고 갑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그 익숙한 장면은 그래서 너무 현실적이라 슬프다.

 

러블리코스메틱의 옥다정(이요원) 본부장이 접대없이 영업을 하라는 이야기를 강조하게 된 건 스스로도 그토록 했었던 접대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걸 몸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정기와 조동규가 접대하는 그 담당자는 같은 시간에 김상무와도 자리를 함께 하는 더블 접대를 받고 있음이 드러난다. 사실 이것도 극화된 내용일 수 있지만 이건 아마도 실제 현실일 게다. 경쟁사들의 경쟁적인 접대자리를 갑들은 이리저리 옮겨가며 받아왔을 테니.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 원리원칙을 추구하고 모든 갑을관계에서 관행처럼 벌어져온 갑질과 을의 행태들을 부정하는 캐릭터인 것은 거꾸로 우리네 부끄러운 현실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옥다정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이다로 느껴지는 건 그것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고구마 현실 때문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욱씨남정기>는 코미디지만 웃음 끝에 남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옥다정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속 시원한 한방을 선사하지만 그것이 지목하는 일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남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옥다정 같은 원리원칙이 상식이 되는 현실은 요원할까. <욱씨남정기>가 웃음 끝에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적지 않다

<욱씨남정기>의 세태풍자, 웃기지만 눈물 난다

 

<욱씨남정기>는 아마도 조선후기에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에서 따온 제목일 것이다. 내용적으로 유사성은 없으나 두 작품이 모두 당대의 세태를 풍자했다는 것만은 같다. ‘사씨남정기가 인현왕후를 내몬 장희빈의 패악을 풍자했던 고전소설이라면 <욱씨남정기>개저씨들이 수시로 갑질 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드라마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남정기(윤상현)는 중소기업 러블리 코스메틱 마케팅 본부 과장. 그에게 황금화학은 자신은 물론이고 회사 동료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절대 갑이다. 황금화학의 김환규(손종학) 상무는 전형적인 갑질 하는 개저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러블리 코스메틱 사장 조동규(유재명)는 그의 밥인 절대 을이다. 어떻게든 김환규 상무의 줄을 잡고 신제품 납품을 하려는 조동규에게 김 상무는 그 제품의 라이센스 자체를 넘기라고 한다.

 

괜찮아 보이는 중소기업의 제품을 갈취해 자사 제품으로 둔갑시켜 파는 행위는 대기업들이 해왔던 관행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갑의 권력으로 갈취해가는 것도 계약은 계약인지라 김환규는 노골적으로 접대를 요구한다. 속으로는 울고 있지만 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 라이센스도 넘기고 심지어 그것이 마치 기쁘다는 듯 접대까지 해야 하는 상황. 갑자기 황금화학 마케팅 팀장인 욱다정(이요원)이 그 판을 깨고 나선다.

 

특유의 당당함으로 김환규 상무가 상사의 권위를 내세우며 얼굴에 물을 뿌리면 그에게도 얼굴에 물을 뿌리는 그녀다. 그녀는 갑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을의 입장을 탐탁찮게 여긴다. 억지로 끌려간 접대자리에서 욱다정은 남정기에게 왜 이런 계약을 하냐고 묻는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제품 생산 시작하라고 한 거 아닙니까? 완제품 찍어서 다른 데로 넘길 수도 없게 만들어놓고 불리한 계약조건 들이밀면 저희 같은 을들은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 다음에도 황금화학이 계약을 해줘야 저희가 살아남으니까요. 아니 왜 모르는 사람처럼 그러실까? ? 허허 참. 지금 저희 심정이 어떤 줄이나 아세요? 자식 넘기는 부모처럼 가슴이 너덜너덜하니까 너희가 선택한 거니까 후벼 파지 마시라구요.”

 

아마도 남정기의 이 말은 사업 현장에서 무수한 을의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주는 얘기일 것이다. 결국 밥줄을 쥐고 있는 대기업에 질질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그들이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문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욱다정은 그런 을의 항변을 듣고만 있지 않는다. 그런 불공정 계약과 싸우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을들은 갑의 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자식이면 지켜야 부모 아냐? 이런 개 같은 계약을 요구하면 당연히 던질 줄 알았지. 협상할 생각도 못하고 호구노릇 계속 해주니까 매번 당한다는 생각은 못합니까?”

 

접대 자리에서 도장을 찍은 계약서를 찢어 던져버리는 욱다정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판타지겠지만 그것이 답답한 을의 현실에 속 시원한 사이다 한 방을 전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황금화학을 때려 치고 나와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으로 오게 된 욱다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건 그래서다. 향후 그녀는 과연 을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이다 캐릭터가 될 것인가.

 

실로 세상은 넓고 갑질 하는 개저씨들은 많다. 그 답답한 세상에 드라마를 통한 잠깐 동안의 통쾌함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잠깐의 유쾌함이 갑과 을의 부조리한 관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는 점에서 <욱씨남정기>는 그저 우습기만 한 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웃고 있지만 눈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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