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진실공방, 사생활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길건이 소속사 소울샵 엔터테인먼트와의 법적 분쟁에 대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소울샵측이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소울샵의 보도자료 내용에 의하면 길건은 불성실하게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소속사에서 죽겠다는 식으로 협박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소울샵 측이 활동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그래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사진출처:소울샵 엔터테인먼트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큰 틀에서 보면 이건 늘 있어왔던 소속사와 소속 연예인 사이에 벌어지곤 하던 분쟁의 하나로 보인다. 길건의 주장에 의하면 김태우와 계약해서 활동할 때만 해도 회사 분위기가 좋았지만 기존 경영진이 바뀌고 새로운 경영진으로 김태우의 아내 김애리 이사와 장모 김민정 본부장이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녀의 진술대로라면 인간적인 모욕감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길건이 기자회견을 갖기 몇 분 전 소울샵 측에서는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영상 속에서 길건은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소리가 없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녀가 그리 흥분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내용도 알 수 없는 CCTV 영상을 소울샵 측은 왜 공개한 것일까. 그것도 기자회견을 갖기 몇 분 전에.

 

그리고 과연 이런 폭로성 동영상 공개는 정당한 일일까. 무슨 범죄 행위를 증명하는 증거자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적인 자리에서의 일도 아닌 이런 사적인 영상을 마구 공개하는 건 지나친 행위가 아닐까. 그것이 법정 같은 법적 판결을 위해 한정된 공간에서 보여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터넷에 공개하는 건 엄청난 폭력이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의 공적인 옷을 홀딱 벗겨 대중들 앞에 세우는 격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사생활 공개, 아니 나아가 폭로가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자행되게 된 걸까. 최근 이태임과 예원을 두고 벌어진 논란을 들여다보면 실로 개탄스러운 사생활 폭로의 지경에 이른 우리네 현실을 보게 된다. 반말을 했건 안했건, 또 힘겨운 환경 속에서 과한 욕설이 나왔건 안 나왔건 그건 공적인 자리에서의 행위가 아니었다.

 

과거 초치기에 쪽 대본이 난무하던 드라마 촬영 현장에 가면 늘상 있는 일이 갖은 욕설과 눈물이라는 건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얘기다. 그만큼 현장은 늘 신경이 곤두세워지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공개되거나 폭로되는 일은 없었다. 그게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행위이고 특별한 상황에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태임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는 건 그 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욕이 나오는 현장 상황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들의 지극히 사적인 영상을 공개했다. 그 영상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이 쏟아져 나온다. 예원이 결국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 이 부분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 동영상 공개 뒤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 사안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태임측도 예원측도 모두 상대방에게 사과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사자 간에 문제가 있었는데 양측은 서로 화해하려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미 공개된 지극히 사적인 동영상은 이 사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사안을 작동시키고 있다.

 

사생활에서 누구나 때로는 잘못을 저지른다. 잘못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말을 뱉어내기고 하며 때로는 잘못된 행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상해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냥 넘어간다. 그것은 한때의 감정적 실수일 수 있고, 무엇보다 공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진실공방 속에서 당연한 듯 공개되는 동영상의 폭로전은 이 사적인 일을 공적인 잣대 위에 올려놓는 행위다. 그 사적인 동영상들은 법적인 것과 무관하게 당사자들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힘을 발휘한다. 진실공방의 격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언론들은 그 진실을 끄집어내기 위한 파파라치성 탐사가 대중의 알권리라고 포장하지만, 사실 이건 폭력이다.

 

이것이 저 연예인들이라는 특정 직업인들의 문제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사적인 장면들의 공개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적인 동영상을 진실공방의 이름으로 당연한 듯 들여다보고 있는 순간, 우리들 역시 각자의 사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공개돼도 된다는 암묵적 허용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 누군가 연예인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생활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부작용들은 지금 현재 무수한 분쟁 속에서 폭로되는 사생활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싸이 행오버의 성취, 순위가 아닌 자기 세계

 

싸이가 새롭게 들고 온 신곡 행오버는 우리말로 숙취라는 뜻이다. 신나게 진탕 마시고 나서 오는 지끈지끈한 두통과 속 쓰림. ‘행오버뮤직비디오는 술 마신 다음날 깨어난 싸이가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쳐 박고 토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번 곡에 함께 참여한 스눕독은 그런 싸이의 등을 두드려준다. 마치 이 장면은 싸이의 구토하듯 쏟아내는 음악과 그 음악을 행오버라는 곡을 통해 다독이며 도와주는 스눕독을 연상케 한다.

 

구토 장면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자세히 보면 음악에 맞춰 싸이의 손이 변기를 마치 박자 맞추듯 두드리고 있으며, 그런 싸이의 등을 마치 변기를 두드리는 싸이처럼 스눕독이 두드리고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토해낸다는 의미와 숙취가 풍기는 나른함과 고통스러움의 뉘앙스, 그리고 변기를 두드리고 등을 두드리는 장면의 의미들을 연결해보면 이 장면이 주는 의미심장함은 싸이를 우리가 바라보는 상반된 느낌과 맞닿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불편함과 통쾌함 사이의 어떤 것이다.

 

사실 싸이의 행오버라는 곡이 노래로서 그리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강남스타일과 비교해 한 방이 부족하다고도 말하고, 그럼에도 받으시오-’ 같은 후렴구나 태평소가 들어가 흥을 돋우는 대목에서는 중독성이 느껴진다고도 말한다. 댄스곡과 본격 힙합이라는 장르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취향 때문에 생겨나는 호불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에 현재 트렌드로 자리한 힙합 장르에 겨냥한 곡이기 때문에 아직은 주저리주저리 랩이 거의 채워진 노래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네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행오버는 싸이라는 가수의 취향이고 개성일 뿐 꼭 모두에게 좋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간 순위를 거론하거나, 유튜브 조회 수가 천문학적이라는 수치를 마케팅적으로 내세우는 난감한 지점이 발생하곤 한다. 물론 팝의 본고장인 미국 본토에 진출한 싸이가 대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가대표 응원하듯 취향 무시하고 싸이를 응원할 필요는 없다. 취향이 맞지 않더라도 개성은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되고 그렇다고 싸이의 곡이 싫은 취향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정답은 없다.

 

분명한 건 싸이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분명히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의 근간은 한 번 놀아보자는 흥을 바탕으로 한다. 그 위에서 젠 체하고 예의 바른 척 하며 억누르고 있는 본성을 그는 음악을 통해 밖으로 표출해낸다. ‘강남스타일의 말춤이나 메뚜기춤 그리고 보기 민망한 저질댄스는 모든 걸 잊고 한바탕 뒤집어지는춤의 흥으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젠틀맨동방예의지국의 예의에 눌려진 억압된 본능을 악동처럼 끄집어냈다. 시건방춤은 예의와는 정반대의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행오버는 이제 우리의 과도하게 흥겨운(?) 술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탄주에 러브샷에 12차를 반복하고 노래방에서 입가심을 하며 진탕 마시고 나서는, 다음날 지끈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편의점 컵라면과 삼각 김밥에 숙취해소음료로 해장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우나에서 마치 알코올을 뽑아내겠다는 듯 땀을 빼는 이 기이하게 흥겨운 술 문화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그대로 느끼듯 현실을 벗어난 통쾌한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다시 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쾌한 숙취를 남긴다. 싸이의 이 일관된 우리문화 비틀기는 그래서 불편하지만 통쾌한 정서를 동반한다. 이만하면 싸이는 확고한 자기 스타일과 취향 그리고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빌보드 차트 몇 위의 수치보다 이번 행오버에서 싸이가 성취한 가장 큰 것일 것이다.

 

행오버’,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 집적물

 

싸이의 신곡 행오버는 여러모로 지금껏 쌓여진 그의 성공 노하우가 집적된 작품이다. B급 정서 가득한 뮤직비디오, 한국의 문화와 서구의 유머 코드를 접목시키는 코미디적 요소, 명곡이기보다는 중독성 있는 음악, 유튜브라는 새로운 디지털 유통 채널을 통한 국제적인 규모에 초스피드로 전개되는 유포과정, 따라서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조회수 기록만으로도 화제를 만드는 마케팅 등등.

 

'싸이의 행오버(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물론 이러다보니 싸이의 신곡에 대한 반응 역시 과거 젠틀맨이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극과 극으로 양분된다. 정통 힙합이 낯선 이들에게 행오버이게 음악이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스눕독 같은 세계적인 힙합 아티스트의 면면을 인지하는 힙합 팬들에게는 이 곡이 젠틀맨에서 확실히 진일보했다고 평가된다.

 

싸이의 B급 정서에 공감대와 나아가 통쾌함까지 느끼는 이들에게 행오버의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폭탄주로 대변되는 한국 특유의 음주문화가 가진 어두움을 풍자하면서 동시에 한바탕 놀아보자는 싸이 특유의 디오니소스적 끼를 덧붙이고 있다. 즉 이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한국의 음주문화는 부정성과 긍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니 이에 대한 평가도 양분될 수밖에 없다. 폭탄주를 제조하고, 러브샷을 하고, 마치 이소룡이 대결하듯 술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은 우리가 늘상 술판에서 보던 풍경들이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라면 왜 싸이가 한국 문화의 어두운 면들을 자꾸만 들춰내나 싶을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강남의 허위의식을 끄집어냈다면, ‘젠틀맨은 동방예의지국의 이면을 끌어냈고 이제 행오버는 우리네 극단적인 술 문화의 일단을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술 문화는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과시하듯 보여주는 어떤 면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잔치와 축제가 가진 특성, 즉 모든 걸 잊어버리고 한 바탕 놀아보자는 한국인 특유의 흥이 자리 잡고 있다. ‘행오버에서 간간이 들어가는 받으시오-”라는 싸이의 목소리는 그래서 은근하게 우리의 욕망을 건드린다. 단단한 사회의 억압된 틀 속에서 술이라는 뮤즈를 통해 잠시나마 꿈꾸는 일탈을.

 

한국적인 문화의 이면을 끌어오는 싸이 특유의 뮤직비디오는 우리에게는 공감대를 서구인들에게는 신기함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이것은 한류 콘텐츠들이라면 공통적인 요소로 꼽히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적절한 결합이다. 우리 것이 바탕이지만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공감대도 끌어안으려는 노력. 싸이의 유머코드가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서구적일 수 있었던 건, B급 정서를 바탕으로 우리네 문화의 이면을 보여주는 특유의 시선 덕분이다.

 

물론 싸이의 신곡 행오버를 명곡이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곡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팬들에게 어느 정도 즐길 거리를 마련해주는 곡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명곡이라는 잣대는 싸이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지만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싸이는 오히려 그 명곡이라는 권위적 틀을 해체하고 그 허위를 폭로할 때 비로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가수다. 이 음악을 듣고 나면 그래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기억 남기보다는 끝없이 반복되는 행오버라는 후렴구의 중독성이 저도 모르게 입가를 씰룩이게 만든다.

 

스눕독이라는 힙합의 거장이 함께 출연하고 있어서인지 싸이의 음악적 분량이 적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와 음악은 싸이라는 국제가수의 색채와 존재감이 아니라면 도무지 가능한 것 같지가 않다. 싸이와 함께 한국의 음주문화를 즐기는 스눕독 역시 그 그림 속에 들어온 한 부분처럼 여겨질 정도다.

 

유튜브를 통한 엄청난 전파 속도와 조회 수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싸이는 이미 강남스타일에서부터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의 힘을 알리는 스타로서 아이콘화된 인물이다. 그래서 공개 하루만에 1200만 뷰를 돌파했다는 식의 기사들은 숫자에 민감한 우리 정서를 건드리면서 동시에 외국의 반응까지 이끌어내는 마케팅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일단 클릭하고픈 욕구를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신곡 행오버는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들이 집적된 산물이다. 거기에는 풍자와 일탈 양극단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싸이에 대한 역시 양극단의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그 반응은 화제로 이어지며 노래는 디지털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명민한 선택이다. ‘강남스타일이 그의 존재감을 처음 알렸고 젠틀맨이 그 존재감을 어떻게든 이어가려 한 선택이었다면, ‘행오버에서는 이제 조금은 안정된 국제가수로서의 그의 면모가 느껴진다. 때로는 불편함에 지끈지끈하다가도 때로는 이성의 끈을 잠시 놓아둔 듯한 그 편안함을 그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로 담아내고 있다. 마치 숙취처럼.

싸이가 되려면 크레용팝이 넘어야할 것들

 

몇 개월 전만 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크레용팝이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놀랍기까지 하다. 소니 뮤직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세계무대로의 한 발을 내딛은 것은 물론이고 빌보드닷컴은 아예 대놓고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 엔터테인먼트)'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크레용팝이 내놓은 ‘빠빠빠’는 여러 모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다. 늘 섹시나 큐티 같은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걸 그룹들이 홍수를 이루는 현재 크레용팝이 내건 B급 걸 그룹 이미지는 실로 충격으로까지 여겨진다. 헬멧과 트레이닝복을 입은 걸 그룹이라니. 그 자체로 참신하지 않은가.

 

춤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멋을 느끼기 어려운 동작들은 차라리 체조나 캐릭터 코스프레 동작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의도적으로 허술하고 웃음이 터지는 어색한 동작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의 앙증맞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빈 구석이 많다는 것은 채워 넣을 구석도 많다는 이야기. 바로 이 완전체 걸 그룹이 아니라는 점은 크레용팝에 대중들이 개입할 여지를 더 많이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수한 패러디들이 만들어지고 SNS상의 화제가 생기는 건 대중의 자리를 남겨놓는 크레용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비교되는 건, 그 유사성 때문이다. 일단 노래가 단순하면서도 쉽게 귀에 달라붙는다. 여기에 B급 감성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직렬5기통춤’은 싸이가 했던 말춤의 걸 그룹 버전처럼 따라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유튜브라는 매체를 활용한 전파 방식도 유사하다. 유튜브 없는 싸이가 존재할 수 없듯이, 크레용팝 역시 단순한 음악 위에 얹어진 유니크한 비주얼로 무장함으로써 유튜브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패러디처럼 팬들의 참여가 중요한 인기요인인 점도 그렇고, 유튜브에 얹어진 만큼 글로벌하게 이어지는 반응도 유사하다. 물론 노래가사가 외국인들조차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런 많은 장점들과 유사성들은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과연 크레용팝의 세계무대 진출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일단 일본 시장을 필두로 한 아시아 시장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나 유럽 시장 같은 곳에 진출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음악적인 실력이다. 유튜브가 띄운 싸이는 마치 비주얼적인 것만 강조된 바가 크지만 그는 음악적으로도 충분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다. 작곡능력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가창실력을 갖춘 데다 무엇보다 그는 무수한 라이브 경험을 통해 관객과 함께 놀 줄 아는 가수라는 점이다. 이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싸이에 대해 미국인들조차 고개를 끄덕였던 셈이다. 크레용팝이 이 정도의 음악적 성취를 갖추었는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싸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소통가능한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언어능력보다 중요한 건 그의 유머감각이다. 미국의 토크쇼 같은 데 나와 그가 언어적인 장벽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영어를 잘한다기보다는 순발력 있게 나오는 유머 덕분이다. 크레용팝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 크레용팝이 넘어야 할 것은 이미지 관리 능력이다. 물론 팬들과의 잘못된 소통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수 있지만 크레용팝은 여전히 일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음악적인 호평도 이런 식의 정치적 색채를 띤 논란에 휘말리면 덮어지기 마련이다. 이념이나 정치성을 넘어서 모두가 응원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 부분은 언제건 크레용팝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크레용팝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함을 갖추고 있다. 늘 비슷비슷한 걸 그룹들의 홍수로 지칠 대로 지친 대중들이라면 이 재기발랄한 걸 그룹의 탄생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어렵게 탄생한 만큼 롱런하는 크레용팝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크레용팝은 차분히 본인들이 부족한 면들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자체도 팬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크레용팝의 매력을 더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세계무대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K팝스타2>, 대중들의 기대 채워준 까닭

 

<K팝스타2>의 첫 무대는 약 1660만 조회수를 기록한 자타공인 유튜브 스타 제니석의 탈락이었다. 지난 시즌1의 top10이 이구동성으로 우승후보로 지목한 인물. 하지만 그녀의 노래에 대해서 박진영은 “노래로는 스킬이나 테크닉이 부족한 게 아니”지만, “자기만의 색깔? 자기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려는 그 느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K팝스타2>가 다른 오디션과 다른 점을 말했다. “노래를 못하더라도 자기만의 목소리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그걸 우리가 보고 나머지는 저희가 힘을 합쳐서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게 다른 오디션 프로와 다른 점이에요.”

 

'K팝스타'(사진출처:SBS)

양현석 역시 제니석이 노래는 너무 잘하지만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똑같다”며 기승전결이 없어 지루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 역시 제니석의 노래가 “아마도 유튜브 스타일일지는 모르겠지만 K팝스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두 번째 나온 김우진 역시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경력을 가졌지만 “너무 일관적으로 단순한 창법”이고 “너무 노래를 하려고 하는 꾸밈”이 있으며 심지어 “노래대회를 나가다 보니까 노래대회용 노래를 부르게 된 것 같다”는 혹평을 듣고는 탈락했다.

 

백아연과 비슷한 음색을 가진 문희원, 아델 노래를 부른 한상희, 허스키하고 소울풀한 목소리를 가진 김명주는 모두 지난 시즌 top3(박지민, 이하이, 백아연)와 비교되면서 탈락하게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보아는 탈락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너무 시즌1 top3와 비교해서 참가자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찾는 건 제2의 박지민, 이하이, 백아연이 아니에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그래서 그 색깔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을 찾느라 조금 많이 탈락하신 거 같아요.”

 

<K팝스타2>가 처음 보여준 것은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타의 오디션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이다. 심사위원들이 제니석이 탈락할 때 일관적으로 얘기한 것처럼 <K팝스타>는 가창력만 좋은 가수를 뽑는 오디션이 아니다. 노래는 좀 못해도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원석을 찾는 게 <K팝스타>만의 다른 점이라는 것. 이것은 작금의 오디션 난립의 환경 속에서 <K팝스타>가 정확히 읽어낸 대중들의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은 이제 가창력에 지쳐버렸다. 기성가수들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 색다르고 개성적인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이들을 찾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대중들이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에 원하는 것이라는 걸, <K팝스타2>는 정확히 읽은 것이다.

 

여기에 <K팝스타2>는 시즌1과의 선도 확실히 그어버렸다. 박지민, 이하이, 백아연으로 기억되는 시즌1. 하지만 그들과 비슷한 창법이나 스타일을 가진 참가자들은 모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들 역시 시즌1을 경험한 후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아니 이게 애매한 게 뭐냐면 시즌1때는 그게 충격적이었고 신선했는데 시즌2때는 우리도 눈이 높아져 버리니까 어려워.” 보아가 끝없는 탈락의 연속 속에서 넋두리처럼 던진 이 말 속에는 대중정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시즌1보다 높아진 눈은 대중들도 마찬가지다. 심사위원과 대중의 눈높이가 맞춰지는 이 부분에서 시즌2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열린다.

 

그리고 이어서 보여준 무대들은 그 기대감이 어떻게 실제 참가자들을 통해 보여지는가 하는 점들이다. 싸이의 <챔피언>을 독특한 리듬으로 편곡해서 율동까지 섞어 부른 메롱 소녀 최예근, 박진영을 좋아한다는 감정전달이 뛰어난 감성적인 발라드의 최영수, 파워풀한 보이스에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겸비한 곰돌이 푸를 닮은 소울 보컬 윤주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 방송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던 남매 천재 어쿠스틱 듀오 악동뮤지션(이수현, 이찬혁). 특히 노래가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것인가를 알려준 악동뮤지션의 자작곡 <다리꼬지마>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양현석은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빌어서 이렇게 표현했다. “정형화된 가수들을 대중들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난립한 오디션 프로그램들 속에서 오디션 트렌드는 한 물 갔다는 통념을 깨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매력과 개성을 먼저 찾는 <K팝스타2>는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새로운 기대감을 다시 채워주었다. <K팝스타2>는 확실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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