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네2', 단 3분 만에 힐링부부 귀환 알린 이상순·이효리다시 돌아온 JTBC 예능 <효리네 민박2>는 벽난로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장작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효리네 집안의 한 부분처럼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동물친구들. 하늘 가득 채워진 구름과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장작더미와 나뭇잎 위로 쌓이는 눈 그리고 효리네 집 처마에 달라붙은 고드름, 눈발 날리는 효리네집 전경은 이제 추운 겨울이라는 걸 실감나게 한다.그런데 그 내리는 눈을 향해 이효리가 손을 내밀고 난간에 쌓인 눈을 만지며 부감으로 보여지는 눈 덮인 효리네 집은 마치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따뜻하다. 슬로우 모션으로 잡힌 눈발들은 마치 하얀 꽃다발 같고, 얼어붙어 반짝반짝 빛나는 고드름은 마치 달콤한 사탕 같다. 그래서 그런 곳이라면 이효리가 눈발에 얼굴을 내놓는 것처럼 우리도 손을 내밀어보고 싶어진다. 아이처럼 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고 싶다. 눈이 날리는 그 곳이지만 껴안고 빙빙 돌아가는 이효리와 이상순의 모습은 그래서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여름의 효리네를 만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운 겨울이다. 특히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올해를 떠올려보면 겨울, 그것도 섬이기에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칼 같이 차갑게 느껴지는 제주의 겨울이 과연 <효리네 민박>과 어울릴까 의구심을 가질만하다. 우리에게 그토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효리네 민박>의 기억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의구심은 오프닝으로 보여준 단 3분 남짓의 영상만으로 스르륵 풀어져버린다. 추운 겨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간절해지고 더 잘 드러나는 온기. 그 3분 동안의 영상은 창밖의 차가운 겨울의 풍경들이 있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집안의 공기를 담아내기에 충분했고, 무엇보다 그 온기를 삶의 면면으로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이효리와 이상순을 더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오프닝 영상의 끄트머리에 이상순이 소리가 나오지도 않는 기타를 들고 치는 흉내를 내는 과한 모습에 이효리가 “뭐하는 거야?”라고 특유의 지적을 하면서 <효리네 민박>이 즐거움을 담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앉아 오랜만의 카메라들이 비추고 있는 상황의 어색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첫 회의 대부분은 찾아올 손님들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대한 것들로 채워졌다. 새로운 알바생으로 소녀시대 윤아가 찾아와 특유의 털털한 모습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그들은 곧바로 손님맞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효리의 말대로 이번 시즌2는 잘 먹이고 잘 재워 살을 찌워 보내는 게(?) 목표란다. 그래서 웰컴주스를 위한 감귤을 따오고, 따뜻한 침구를 꼼꼼히도 챙겨 사온다. 손님들을 챙겨줄 음식으로 뭘 준비할까 고민이 많은 이효리는 윤아가 마침 요리도 곧잘 한다는 소식에 반색한다.

손님맞이 첫날, 마침 내리는 눈발에 비행기가 제대로 뜰까 걱정을 하지만 다행히 잘 도착한 첫 손님들. 척 보기에도 어딘지 심상찮은 포스를 풍기는 이 소녀들은 유도선수들이란다. 이상순과의 전화 통화에 목소리가 너무 좋다고 반색하고, 첫 대면에 “야 누가 못생겼대?”라며 이상순을 단박에 소길리 미남으로 만들어버리는 소녀들. 그들이 나눌 마음의 오고감이 벌써부터 따뜻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효리네 민박2>의 추운 겨울은 그래서 어쩌면 따뜻한 사람들을 위한 좋은 배경화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춥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온기가 그립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추위를 피해 밥 한 끼를 나누는 일이 더 행복해진다. 추운 겨울인데 더 따뜻한 느낌. 다가온 월요일에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일요일 밤, <효리네 민박2>의 따뜻함은 그래서 잠깐 동안이라도 그 마음을 채워줄 힐링이 되지 않을까.(사진:JTBC)


‘왕사’의 안이함이 만든 부진, 봐야할 이유가 없다

사극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담는다. 즉 과거 역사를 소재로 끌어오지만 그것을 굳이 지금 선택한 것에 대한 현재적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가 지금 이 시점에 고려 충선왕의 이야기가 왜 필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고려왕실 최초의 혼혈왕인 충선왕. 그의 사랑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왕은 사랑한다(사진출처:MBC)'

훗날 충선왕이 되는 왕원(임시완)은 충렬왕(정보석)의 아들이지만 원나라 황제의 딸인 원성공주(장영남) 사이에 난 아들이라는 점에서 그 비극적인 태생의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물론 지금이야 국적이나 혼혈이 무슨 큰 문제일까 싶지만 당대는 고려시대가 아닌가. 그것도 억지로 부마국이 되어 맞은 아내를 통해 낳은 아들이라는 점은 충렬왕이 원에 대해 갖는 애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왕은 사랑한다>에서 주인공 왕원을 가로막는 존재는 다름 아닌 충렬왕이다. 그는 아버지이지만 왕원을 마치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긴다. 아첨하는 무리들 사이에서 사냥과 주연에만 빠져 있는 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본래 역사가 어떻든 이것은 왕원의 입장에서 드라마가 그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시점이다. 

여기에 왕원과 대적하려는 왕전(윤종훈)과 송인(오민석)이 고려 제일의 거부 은영백(이기영)의 세력을 얻기 위해 그 딸인 은산(윤아)과 정략결혼을 하려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원과 그의 친구인 왕린(홍종현)이 그들과 맞서는 대결구도가 들어있다. 그리고 주군인 왕원이 좋아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 앞에서 속내를 밝히지 못하고 은산을 연모하는 왕린의 이야기가 또 한 줄기다. 

그래서 <왕은 사랑한다>의 이야기는 정치적인 대결구도가 밑그림으로 깔려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로 귀결한다. 지금껏 흘러온 이야기들은 그래서 왕원과 은산의 신분을 숨긴 채 서로를 연모해가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정략결혼을 하려는 시도가 은산의 위기를 불러온다면 그 정략결혼이 얼마나 왕실에 위협적인가를 내세워 막는 왕원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멜로 구도로 이어진다. 

100% 사전 제작된 <왕은 사랑한다>의 이야기가 생각만큼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건 그 뻔한 멜로 구도가 그다지 지금의 시청자들의 욕망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현재의 현실적인 어떤 부분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한가로운 사랑타령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혼혈왕을 통한 다양성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치적 대결구도를 통해 당대의 적폐를 청산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차원을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이야기로서 충선왕이라는 당대의 혼혈왕이 의미를 갖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관점도 지금의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관계의 냉각과, 그 사이에 중국 방송사들이 국내 프로그램들을 마구잡이로 베끼는 상황들이 반복되며 생겨난 불편한 정서들로 인해 별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이런 의미들이 실종된 상황에서 <왕은 사랑한다>에 남겨진 건 멜로구도 하나다. 그것이 제아무리 절절한 운명적 사랑의 이야기라고 해도 지금의 대중들에게 닿기는 쉽지 않다. 

임시완 같은 배우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이런 배우의 연기가 아깝게 여겨지는 건 대본과 기획이 너무나 지금의 현재와 맞닿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봐야할 이유가 부재한 사극은 그저 과거의 이야기로밖에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왕은 사랑한다>가 처한 부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케이투>가 깊은 몰입감은 어디서 나왔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마지막 회란다. 이것은 어쩌면 tvN <더 케이투>라는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시작부터 시종일관 액션으로 밀어붙인 <더 케이투>는 막바지에 이르러 피투성이가 된 채 뛰고 또 뛰는 김제하(지창욱)의 액션과 극한의 상황에까지 몰려 있지만 그 안에서도 상대방과 목숨을 걸고 하는 최유진(송윤아)의 체스판 정치 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축은 사실상 <더 케이투>가 가진 막강한 몰입감의 원천이었다.

 

'더 케이투(사진출처:tvN)'

<더 케이투>에서 김제하는 한 마디로 하드캐리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이 드라마에서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라고는 그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대권을 쥐기 위해 대결하는 장세준(조성하)의원이나 그를 조력하는 최유진은 물론이고 그 반대편에 있는 박관수(김갑수) 의원 역시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오로지 권력욕을 내세우는 인물들이다. 이 체스판의 피해자가 일찌감치 되어버린 고안나(윤아) 역시 김제하에게 의지하는 인물. 그러니 김제하는 이 모든 인물들에 관여하며 쉴 틈 없이 뛰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김제하가 이 권력의 체스판 위에서 나이트역할을 맡아 하드캐리를 했다면, 그 체스는 두는 인물로서 최유진은 역할을 맡아 하드캐리를 펼쳤다. 김제하를 연기한 지창욱이 몸으로 보여주는 액션을 보여줬다면, 최유진을 연기한 송윤아는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도 감정을 끄집어내는 또 다른 액션을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최유진이라는 캐릭터는 사실상 <더 케이투>가 하려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최유진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드 나인은 그 무수한 액션 속에서 <더 케이투>가 그리려는 메시지를 표징하는 공간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필요하면 콘트롤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있는 공간. 그러니 정보가 힘인 세상에 이 공간은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 된다. 그런데 그 슈퍼컴퓨터를 최유진은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거울아라고 부른다. 결국 최유진과 슈퍼컴퓨터는 서로 거울로 비춰지는 동일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이 공간을 김제하는 권력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말한다. 그 곳을 그에게 주겠다는 최유진에게 한 번 이 거울의 맛을 들이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유진은 클라우드 나인을 지배하는 마녀이면서 동시에 그 곳에 갇힌 포로가 된 것이라고.

 

클라우드 나인은 그러나 이 지하공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 속에서 김제하가 살아가는 권력 투쟁의 세계는 거대한 클라우드 나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어느 순간 그 공간에 들어오게 된 그가 바깥으로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김제하가 그토록 하드캐리를 하는 그 목표는 복수극이라기보다는 이 곳으로부터의 탈주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 케이투>가 그토록 깊은 몰입감을 줄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이 클라우드 나인이 가진 상반된 욕망의 양면성을 김제하와 최유진이라는 두 캐릭터가 두 개의 서로 다른 액션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양면성이란 그 곳을 쥐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욕망과 그 곳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욕망이다. 지창욱과 송윤아라는 배우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 건 그래서다.

 

반면 남는 아쉬움은 고안나라는 인물의 수동적인 역할이다. 김제하와 최유진이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인 것과 비교해보면 고안나는 이 살벌한 체스판 위에서 특별한 자신만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김제하와 최유진이라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동인 역할만 한 면이 있다. 윤아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이 나온 건 물론 여전히 변함없는 그 연기의 폭에 이 캐릭터가 가진 수동성이 더해진 결과가 아닐까.

 

또한 액션과 멜로가 강조되다 보니 본래 작품이 하려던 보다 현실 정치나 권력구조를 환기시킬 수 있는 메시지들이 가려진 점도 아쉽다. 대통령이 허깨비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대신 차기 대선을 노리는 정치꾼들에 의해 농단되고, 진심 없이 쇼로 이뤄지는 정치 행태가 드러나는 이 드라마는 어쩌면 지금 같은 현실에 더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었을 게다

<더 케이투>에서 조성하의 여러 얼굴이 차지하는 것

 

tvN 금토드라마 <더 케이투>에서 조성하는 도대체 몇 개의 얼굴을 연기하고 있는 걸까. 첫 등장에 여성 편력이 심한 정치인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장세준(조성하)라는 인물이 그저 그런 권력욕에 눈이 먼 전형적인 정치인 캐릭터가 아닐까 선입견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인물은 그 속내를 까면 깔수록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더 케이투(사진출처:tvN)'

아내인 최유진(송윤아)이 테러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자 병문안을 온 그는 전형적인 쇼윈도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최유진이 그의 옷매무새를 흩트리며 이 정도는 되야 아내 걱정한 남편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할 때는 어딘지 이 장세준이란 인물이 아내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 같은 캐릭터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문밖을 나서 기자들 앞에 선 그가 아내를 들먹이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정치 쇼를 잘 해내는 정치인의 얼굴을 보여줬다.

 

그가 청춘콘서트를 하는 도중 마치 젊은 괴한들에게 계란 세례를 받는 것처럼 정치 쇼를 하는 장면이나, 그렇게 단상에서 내려와 출연자 대기실에서 비린내 나는 옷을 벗어던지며 기다리고 있던 여자를 욕실로 부르는 모습에서는 마치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런 그를 김제하(지창욱)가 자신의 딸인 안나(윤아)에게 데려가려 하자 그는 애써 숨겨온 진심을 드러낸다. 자신이 안나를 만나지 않는 건 그것이 그녀를 위험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그가 최고 권력을 향해 폭주하는 것 역시 그래야 그 아이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장세준이 안나를 만나는 장면은 그래서 조성하의 다양한 얼굴들이 교차하는 연기의 백미를 보여줬다. 그는 자신을 CCTV로 감시하고 있을 아내를 의식하며 자신의 딸이 딸기 알러지가 있는 것도 모르는 척 하는 무심함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지켜주고 싶어도 지켜주지 못하는 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연기에 담아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자꾸만 들춰내는 딸 앞에서 그건 어른들의 세계라고 말하며 애써 덮으려는 모습에서는 그녀의 생존을 위해 아픈 말들을 해야만 하는 아빠의 진심 같은 것이 묻어났다.

 

<더 케이투>라는 드라마가 독특한 건 특정한 절대 악을 그리기보다는 저 마다의 입장에 처한 인물들의 서로 다른 관점의 부딪침을 담아낸다는 점이다. 물론 악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건 장세준이 말했듯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처음에는 그저 욕망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멈출 수 없어 어떤 선을 넘어버리는 어떤 것. 하지만 그 욕망이 만들어내는 탈선을 차치하고 들여다보면 장세준도 최유진도 저마다 그들이 힘겨워도 버텨내려는 이유가 드러난다.

 

조성하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연기가 <더 케이투>라는 작품에서 중요한 건 그래서다. 그는 여러 입장들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권력을 향한 욕망의 얼굴이 있지만, 동시에 딸을 지켜야 한다는 부성애의 얼굴도 있다. 여성 편력이 심한 비뚤어진 얼굴이 있지만 거기에는 동시에 아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를 쥐고 흔드는 최유진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들도 어른거린다.

 

정치적으로 뒤얽혀 있어 생겨난 안나의 비극이 바로 이 장세준이라는 인물과 무관하지 않고, 그 더러운 정치판에서 미묘하게 얽혀 있는 아내 최유진과의 갈등이 있어 <더 케이투>라는 드라마의 스토리는 힘을 얻는다. 결국 주인공인 김제하가 두 사람의 갈등 사이에서 안나를 보호하는 이야기는 결국 이 장세준이란 문제적 인간이 있어 가능해지는 일이다. 이 결코 쉽지 않은 여러 얼굴을 연기하는 조성하라는 배우가 주목되는 건 그래서다

액션 블록버스터 <더 케이투>, 지창욱에 기대는 까닭

 

tvN 금토드라마 <더 케이투>는 말 그대로 액션 블록버스터 드라마.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연출자인 곽정환 감독의 <추노>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극이지만 영화적 연출을 통해 한편의 서부극 같은 장르물의 색채를 만들어냈던 <추노>. <더 케이투>는 그래서 액션 연출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더 케이투(사진출처:tvN)'

이런 점은 첫 회의 대부분이 고안나(윤아)의 끝없는 탈출신과 그녀와 우연히 맞닥뜨린 도망자 김제하(지창욱)가 자신을 구해달라는 그녀의 애원에 괴한들과 한바탕 맞붙는 액션들과, 그로부터 6개월 후 간판 일을 하는 김제하가 건물 외벽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현수막을 정리하다 우연히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 장세준(조성하)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고, 장세준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침입자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걸로 확인될 수 있다.

 

곽정환 감독의 액션 연출은 확실히 <더 케이투>를 몰입시켜주는 힘을 발휘한다. 물론 지금은 일반화된 액션 장면 연출기법이기는 하지만,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여러 대의 카메라를 순차적으로 찍어 허공에 붕 뜬 인물이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는 장면을 빙 돌아가며 보여주는 장면 같은 것들은 드라마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연출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곽정환 감독의 액션 연출에만 기대고 있는 건 아니다. 화려한 액션의 이면에는 <용팔이>를 쓴 장혁린 작가의 선 굵은 스토리들이 깔려 있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이로 인해 희생되는 인물들의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 대립구도를 만들고, 따라서 액션 속에는 이렇게 희생을 당하는 인물들의 감정 선 같은 것들이 녹아든다.

 

쫓기는 신세가 된 김제하가 길에서 고장 난 차 때문에 오도가도 못 하는 노부부를 도와주고 그들의 집에서 잠시 기거하며 마음을 나누는 장면은 이 인물이 갖고 있는 감정을 잘 드러낸다. 아들의 49제를 하고 와 절망감을 드러내는 할아버지가 돌보지 않아 꼴이 흉해진 과수원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달라고 하자 김제하가 듬성 자란 풀을 베어주는 장면은 이 액션 히어로의 친 서민적 정서를 드러낸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자신을 죽이라 명한 최유진(송윤아)을 찾아가게 되는 것도 사실은 그 노부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다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김제하라는 인물은 자신의 죽음 따위에는 초탈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자신의 주변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걸 견디지 못할 뿐.

 

김제하 역할을 연기하는 지창욱의 액션 연기는 과거 <힐러>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저 몸을 쓰는 연기가 아니라 그의 액션에는 어떤 감정 같은 것들이 묻어난다. 이번 <더 케이투>에서 그의 액션에서 독특하게 느껴지는 건 맞아가며 싸우는액션이라는 점이다. 많은 액션물들에서 주인공들이 자신은 한 방도 맞지 않고 손쉽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면 <더 케이투>의 김제하는 온 몸에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어가며 싸운다.

 

이런 액션 연기는 그 액션 자체에도 어떤 감성을 만들 수밖에 없다. 단순히 통쾌함만 선사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살아나가는 방식의 힘겨움같은 것들이 거기 묻어나기 때문이다. 지창욱의 연기는 그 무심한 듯 보이는 얼굴과 상반되게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몸 사이의 어떤 긴장감 속에서 그 특유의 감성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액션 블록버스터를 아예 지향하고 있고 그 액션 속에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감성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결국 <더 케이투>는 지창욱이라는 배우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지창욱은 확실히 채워주고 있다. 그의 액션으로 시작해 그의 액션으로 끝났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제시카의 소녀시대 탈퇴가 말해주는 것

 

다가오는 공식 스케줄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었으나, 회사와 8명으로부터 오늘 부로 저는 더 이상 소녀시대의 멤버가 아니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저는 소녀시대 활동을 우선시하며 적극적으로 전념하고 있는데, 정당치 않은 이유로 이런 통보를 받아서 매우 당혹스럽다.”

 

'소녀시대(사진출처:SM엔터테인먼트)'

소녀시대 제시카가 SNS에 남긴 짤막한 글은 대중들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런 일로 다가왔다. 그만큼 의혹도 클 수밖에 없었다. 탈퇴냐 방출이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고, 그녀의 연인으로 알려진 타일러 권이라는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하루 종일 랭크되었다.

 

이유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제시카가 타일러 권과 사업적으로도 얽혀 있어 소녀시대의 단체 스케줄과 마찰을 일으켰다는 얘기도 나왔고, 그런 사업이 소녀시대 전체의 이미지를 도용하는 듯한 뉘앙스에 대한 불편함도 제기되었다. 제시카의 글에는 일방적인 통보의 뉘앙스가 들어 있지만, 이전부터 제시카의 단독 행보에 쌓인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SM측은 밝혔다.

 

탈퇴인지 방출인지, 그게 어느 것이든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제시카 탈퇴 혹은 방출 같은 사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소녀시대는 그 이름에 걸맞게 우리네 걸 그룹의 대명사처럼 된 존재들이다. ‘소녀들이 가진 그 풋풋함과 활력 하나만으로도 이미 대중들의 마음에 들어왔던 그녀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녀라는 아이콘은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녀시대라는 걸 그룹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녀들은 어느새 성장했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이가 됐다.

 

윤아, 수영, 티파니에 이어 태연 그리고 이제는 제시카까지. 소녀시대가 연애시대가 됐다는 건 이제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나이에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제시카의 일로 또 하나 상기되는 건 이제 이 소녀들이 사업을 꿈꿀 만큼 훌쩍 자라나 있다는 점이다. 걸 그룹으로서 음악 활동에만 집중하던 소녀시대가 이제는 제각각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들이 이제 더 이상 우리가 그간 생각해왔던 그 어린 소녀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물론 8인의 소녀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것이다. 제시카 역시 단독으로 충분히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가수다. 팬들 역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소녀시대는 영원한 소녀시대니까.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녀들이 점점 여인으로 성장해가고 그 성장한 만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것이란 점에서 소녀시대는 이미 한 시대를 떠나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제시카의 탈퇴 혹은 방출은 이제 이 소녀시대라는 한 틀로서만 보이던 멤버들이 각각 한 사람씩의 존재로 분리되어가는 현 과정을 드러낸다. 성장과 독립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팬들로서는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비' 시청률 5%가 전부는 아니다

'사랑비'의 시청률은 5%에 머물러 있다. 배용준을 잇는 차세대 한류스타라는 장근석과 K팝의 중심에 서 있는 소녀시대의 윤아, 그리고 1세대 한류의 선봉장 역할을 한 '겨울연가'의 윤석호PD와 오수연 작가, 게다가 방영 전 이미 일본에 80여억 원의 외화를 벌어들였다는 성과까지. 이렇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성공요소로 지목되는 것들이 많은 드라마로서 5%라는 시청률은 가혹할 정도다.

 

'사랑비'(사진출처:KBS)

그러나 더 가혹한 건, 5%라는 시청률이 아니다. 그 5%라는 수치 정도의 작품성으로 이 작품이 치부되는 현실이다. 시청률 추산이 대중적인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은 맞지만, 이미 TV시청률이 중장년층들에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이고, 또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작품성이 좋다는 등식은 이미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사랑비'에 대한 비판 여론을 보면, 5%라는 시청률에 지나치게 경도된 느낌이 있다. 이것은 거꾸로 '해를 품은 달'이 실제 작품의 완성도는 한참 떨어졌지만 40% 시청률을 넘어선 것만으로 마치 작품성이 좋았다는 착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실제 작품은 어떨까. '사랑비'의 드라마 전개는 느리다. 그래서 마치 한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이야기가 폭주하게 된 드라마들(언제부턴가 이런 자극이 우리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해왔다)을 보던 눈에 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완행열차를 탄 풍경 같은 드라마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전개가 빠르다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다. 그건 자극의 문제다.

'사랑비'는 그런 점에서 자극이 별로 없는 드라마다.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보면 여타의 폭주하는 드라마들이 다이내믹한 서사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사랑비'는 서사가 아닌 서정에 더 집중하는 드라마다. 멜로드라마로서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이런 전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랑비'는 그래서 서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별 얘기가 없는 것 같다(혹은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것 같다). 하지만 서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의 고저와 강약을 섬세하게 느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마치 서사 중심의 소설과 서정적인 시의 차이라고나 할까.

70년대식 첫사랑이 주는 느낌도 답답하게 다가올 수 있다. 왜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까. 왜 당장 전화해서 마음을 전하지 못할까. 하지만 이것은 2012년 현재적 관점에서의 생각이다. 휴대폰으로 언제든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시대의 정서와 아직도 편지를 쓰던 시대의 정서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왜 그 답답한 70년대식 첫사랑을 보여줄까. 그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멜로'라는 장르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미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 가진 우연성과 운명적인 느낌들은 미디어들에 의해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인스턴트식 사랑의 시대에 '멜로' 같은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는 장르는 어딘지 잘 맞지 않아 보인다. 멜로가 사극 같은 이야기(운명적 사랑이 가능하다) 속으로 자꾸만 도망치거나, 로맨틱 코미디처럼 유머로 바뀐 것(운명적 사랑이 유머처럼 그려진다)은 다분히 이런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사랑비'는 이 사라진 시대의 멜로를 마치 서랍 속에 구겨 넣었던 편지처럼 꺼내 읽는다. 시청률 5%와, 그 시청률 수치만큼으로만 곡해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대한 혹평들은 그래서 이 시대가 얼마나 사랑을 달리 읽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언젠가부터 사랑은 소리치고 대놓고 말하고 주장하고 쟁취하는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4회까지 다뤄진 이 아련한 70년대식 구식 첫사랑은 그래서 2012년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유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비'가 단순히 그 70년대식 구식 사랑에 대해 추억만을 담은 드라마는 아니다. 5회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2012년식의 사랑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70년대 식 구식 사랑과 2012년식의 신식 사랑 사이에 표현은 달라졌어도 그 바탕에 깔린 비슷한 정조를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미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디지털 환경 속에 내던져져 있지만(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아날로그를 희망하기도 한다. 빈껍데기 같은 허무한 즉석 사랑의 연속 속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추억하기도 한다. 마치 시대는 달라졌어도 여전히 내리고 있는 '사랑비'처럼.

'사랑비'는 느리지만 바로 그 느림의 미학이 지금 2012년 우리네 속도에 경도된 드라마들에 오히려 의미를 던져주는 드라마다. '사랑비'의 사랑은 구식이지만, 바로 그 구식이기 때문에 작금의 인스턴트식 사랑 속에서 하나의 판타지이자 희망이 되기도 한다. '사랑비'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내뱉는 대사들,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그 말은 비트로 쪼개지는 이 시대의 삶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비'에 내려진 5%라는 시청률은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작품성 이외의 문제들이 뒤엉켜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같은 시적인 영상의 드라마는 그 매체적인 차이 때문에 오히려 집중이 안 될 수가 있다. 영화라면 집중해서 보겠지만 드라마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달라진 매체 환경과 멜로의 관계에서 전술했듯이, 어쩌면 정통 멜로라는 장르 자체가 우리에게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을 수 있다. 또 한류를 너무 강조하는 것은 거꾸로 반감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한류가 거의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현실은 드라마가 그들만을 겨냥하고 있다는(그래서 국내 팬들은 소외되었다는) 곡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5%라는 시청률로 '사랑비'라는 드라마를 전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70년대가 초반 4회를 차지하고 또 그 정조가 후에도 이어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70년대에 주저앉아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제 2012년의 시점에서 이어질 드라마는 그 70년대를 추억하면서도 그 시절이 주는 아날로그가 지금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길 것이다. 그 질문이 혹시 우리 중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든다면, 자극과 속도에 경도된 우리들에게 조금은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랑비'를 뿌려줄 지도.

'사랑비', 행복과 슬픔의 변주곡

'사랑비'는 초록의 담쟁이 잎사귀들에 떨어지는 빛에서 시작한다. '청춘(靑春)'이다. 그 길에서 윤희(윤아)를 마주친 인하(장근석)는 단 3초 만에 사랑에 빠진다. 청춘의 첫사랑이다. 70년대의 대학 교정, 윤형주의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하는 그 감미로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울려퍼지고, '러브스토리', '어린 왕자', 일기장 같은 7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의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저마다의 첫사랑을 툭툭 건드리는 것으로 '사랑비'의 모티브는 시작한다.

우리네 모든 첫사랑의 기억(이것은 아름답게 채색되기 쉬운 것이다)이란 것이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전형적일 수밖에 없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전하지 못하는 마음에 열병을 앓는 그런 기억, 엇갈림,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 안타까움 같은 것이 우리가 첫사랑으로 저마다 채색해놓은 한 때의 기억일 것이다. 윤희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친구 때문에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인하의 열병은 그래서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강하게 다가온다. 이 드라마는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첫 기억을 꺼내놓고 그 3초 만에 빠져버린 사랑이 어떻게 온 삶을 뒤흔드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그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대사는 윤희의 일기장에서 인하의 독백에서 또 엇갈리게 되는 동욱(김시후)의 작업 멘트에서 계속 반복된다. 왜 첫 사랑에 "미안하다"는 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걸까. 윤석호 PD의 '겨울연가'가 그러했듯이 이 청춘의 첫사랑은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슬픔과 상처를 주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 말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인하의 해석처럼 "사랑은 진심이니까, 서로의 진심을 아니까"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비'라는 제목은 이 첫사랑이 주는 슬픔과 행복을 잘 표현해주는 조어다. 도서관 앞에서 만난 인하와 윤희가 고장 난 노란 우산을 함께 쓰고 첫 장면에 3초 만의 사랑을 예감케 했던 그 초록 담장 앞을 걸어가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전체 정조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잡아낸다. "비 좋아하세요?"라는 윤희의 질문에 "좋아해요.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라고 인하가 답하고, 윤희는 '어린왕자'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은 행복과 슬픔이라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는. 그렇게 사랑과 비는 닮아있다. 그녀에게 우산을 받쳐주느라 온몸이 젖어버린 인하의 행복한 얼굴처럼.

'사랑비'는 이 첫사랑의 기억이 다시 현재 시점으로 되돌려지는 드라마다. 나이든 인하와 윤희가 다시 만나고, 그들의 자식들인 서준(장근석)과 하나(윤아)가 만난다. 몇 십 년이 흘렀지만 어찌 보면 이미 나이 들어버린 그들이 청춘의 시간과 함께 공존하는 신비로운 장면이 그 속에는 들어 있다. 청춘과 첫사랑에 대한 현재적 관점으로의 추억.

자극적인 스토리와 팽팽 돌아가는 속도에 익숙해진 시청자라면 '사랑비'는 어딘지 너무 느리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뭐든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는데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인하와 윤희의 말 못하는 열병이 못내 갑갑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사랑비'는 바로 그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사랑을 원석처럼 꺼내놓는 드라마다. 따라서 빠른 속도의 자극적인 영상을 즐기기보다는 그 느리게 돌아가는 그림 같은 영상이 주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촉촉함을 느끼는 것이 감상 포인트다.

윤석호PD는 역시 색채의 마술사답게 이 첫사랑의 만남과 열병을 완벽한 색의 대비로 보여주었다. 청춘을 상징하는 초록 잎들의 배경 위로 촉촉한 비가 내리고 가녀린 노란 우산을 들고 운명이 어떻게 굴러갈 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슬픔과 행복을 느끼며 남녀가 걸어간다. "사랑은 진심이니까." 같은 진부하고 상투적인 대사마저 떨림으로 바꿀 수 있기를 이 드라마는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만 같다. 과연 '사랑비'가 진부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자극에 익숙해진 걸까.

가수들의 세상, 다시 올까

네모난 세상/명랑TV 2008.06.10 00:51 Posted by 더키앙

예능, 드라마를 장악해 가는 가수들

한때 가수는 모든 연예인들이 선망하던 직업. 하지만 가요계는 음원의 디지털화라는 외부적인 악재에, 기획된 가수들의 범람이라는 내부적인 문제가 결합되면서 급격한 하락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가요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저조로 하나 둘 사라지자 가수들은 설 자리마저 잃었다. 90년대 200만 장씩 팔렸던 앨범은 이제 10만 장을 넘으면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다. 가수들은 위기였다.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가수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가요계가 가진 이런 총체적인 위기는 가수들의 방향전환을 요구했다. 가수들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창기 이 현상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노래는 안하고 안 되는 연기력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가수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즉각적인 연기력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서 노래보다는 말로 살아가는 가수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가수들의 예능 출연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기에 드라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역전되고 있다. 가수들이 드라마에서도 예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 작품마다 연기력 논란을 일으켰던 윤은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드라마에 안착했고, 역시 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성유리 역시, ‘쾌도 홍길동’으로 그 논란에서 벗어났다. 한편 논란은커녕 연기 호평을 받는 가수들도 늘어났는데, 대표적인 연기자가 윤계상이다. 그는 ‘사랑에 미치다’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영화 ‘비스티 보이즈’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비는 ‘풀 하우스’로 주목받으면서 최근에는 헐리우드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도 출연할 정도로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인정받았다. 에릭 역시 ‘케세라세라’에서 호연을 보여준 후, 곧 방영될 ‘최강칠우’의 주연을 맡았다. 이러한 가수들의 드라마 출연은 점점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앞으로 방영될 MBC의 ‘일지매’로 낙점을 받은 이승기와, 현재 ‘너는 내 운명’에서 주연을 맡은 소녀시대의 윤아는 이제 가수들의 드라마 외출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능에서 전성기 맞은 가수들
한편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은 가수들의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그들의 입지가 확고해졌다. 일찌감치 탁재훈과 신정환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탁재훈은 개그맨들을 제치고 작년 KBS 연예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는 사실상 가수들의 가상결혼 프로그램이라 할 정도로 가수들로 장악되었다. 크라운제이와 알렉스, 서인영, 황보, 김현중 등이 그들이다. 여행버라이어티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1박2일’은 MC몽, 은지원, 이승기, 김C 등이 출연하면서 가수들의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다.

가수들이 이처럼 드라마와 예능에 대거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가요계 불황이 만든 결과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가수들만이 가진 장점들이 드라마와 예능의 필요조건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드라마는 자칫 고정된 이미지의 연기자들보다 더 신선한 이미지를 갖춘 가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예능은 가수들만이 가진 버라이어티적 요소, 즉 춤과 노래 같은 다양한 볼거리에 대한 호감이 있다.

가수들이 점점 드라마와 예능까지 속속 들어오게 되면서 그들의 본래 목적이었던 가수로서의 활동이 또한 탄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것은 특히 점차 가상시트콤화 되어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네들의 노래가 마치 OST처럼 주목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챠트에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곡들을 보면 대부분이 드라마나 예능에 쓰여진 곡들이 많다. 이것은 노래에 부가된 영상이 가진 힘이라 할 수 있는데, 가수들의 예능 출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게된 효과로 볼 수 있다.

가수들은 가요계의 총체적인 위기의 나락 속에서 한참을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생존방식으로 현재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이것이 긍정적인 현상인지 부정적인 현상인지는 아직까지 단언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점점 더 영상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요계의 당연한 변화일 수도 있고, 오히려 노래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고 영상 속으로 침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가수들은 끊임없이 현재의 위치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이 위기의식이 가진 긍정적인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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