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준의 <삼시세끼><집밥 백선생>의 콜라보

 

실로 손호준이 있어 가능한 콜라보레이션이 아니었을까. tvN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의 애제자이자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의 귀여운 막내였던 손호준이 <삼시세끼> 정선에 식구 같은게스트로 돌아왔다. 본인은 게스트임을 주장했지만 결국은 식구처럼 그 누구보다 일을 많이 하게 된 손호준이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더 마음 편한 듯 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흥미로운 건 손호준의 등장으로 <삼시세끼><집밥 백선생>의 콜라보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아침 메뉴를 전담하게 된 손호준은 <집밥 백선생>에서 배웠던 백종원식 강된장을 만들어 모든 출연자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무를 먼저 넣어 낸 육수에 고기와 된장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낸 강된장은 마치 <집밥 백선생>의 실전 버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손호준이 <삼시세끼>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그의 리액션이 100% 진짜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억지로 하려 하기보다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진짜로 가만히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 눈치를 보는 모습이 리얼하게 느껴졌다.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존재감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 건 바로 그 리얼함 때문이었다.

 

그는 <응답하라 1997>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이후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으로 주목받더니 <삼시세끼> 어촌편에서는 장근석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뒤늦게 합류해 차승원과 유해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리고 그렇게 대중들의 마음에 조금씩 자리를 차지한 손호준은 <집밥 백선생>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tvN이 키워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손호준. 그런데 그것이 과연 tvN과의 인연 때문만이었을까. 손호준은 그 많은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면서도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항상 아랫사람으로서 알아서 일을 챙겨 하는 모습이 바로 그의 모습이었다.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바다낚시를 나간 유해진에게 도시락을 챙겨 배달해주던 모습이나,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뭘 시키지 않아도 척척 준비를 하던 모습.

 

흔히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 자기를 알리기 위해 말을 많이 하지만, 손호준은 말은커녕 오히려 어눌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신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성실성을 드러낸다. 식구 같은 게스트로 <삼시세끼>에 돌아온 손호준은 김광규에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는 브로맨스를 보여주는 한편, 옥택연과는 세끼 셰프의 자존심을 건 묘한 대결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손호준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이 독특한 것은 어느 한 예능 프로그램에 오래도록 자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 그 프로그램들에 들어가도 아무런 이물감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 현재 자신의 스케줄 때문에 <집밥 백선생>에서도 나와 있는 상황이지만 그가 그 프로그램을 떠났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이것은 <삼시세끼>도 마찬가지다. 그는 떠나 있어도 다시 돌아오면 늘 거기 있던 사람처럼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리에 없어도 그 존재감을 늘 유지하는 능력.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손호준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tvN의 히트상품들 뒤에는 이명한 본부장이 있다

 

“<삼시세끼><꽃보다 할배>도 이명한 본부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죠.” <삼시세끼>의 최재영 작가는 tvN 이명한 본부장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제작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죠. 또 사업적인 인간관계가 뛰어난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둘을 다 겸비한 사람은 많지 않죠. 이명한 선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삼시세끼>의 나영석 PD에게 가장 존경하는 선배를 물어보자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명한 본부장(사진출처:tvN)

흔히들 이명한 사단이라고 부르는 이들, 이를테면 나영석 PD를 위시해 신원호 PD나 이우정 작가 최재영 작가 등등은 하나 같이 지금의 자신의 위치가 가능하게 해준 인물로 이명한 본부장을 꼽는다. KBS 시절, <해피선데이>에서 <12><남자의 자격>으로 주말 예능의 신기원을 세운 그 이면에서부터, tvN으로 이적해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응답하라 1997> 등의 성공은 물론이고 최근 고민구 PD가 성공시킨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의 이면에도 이명한 본부장이 있다.

 

최재영 작가에 의하면 <삼시세끼>는 실로 기존 예능의 제작방식으로 보면 망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들의 총집합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나영석 PD와 제작진들이 첫 촬영 후 이건 진짜 망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그런 아이템을 누가 선뜻 하라고 지지해주겠어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뒤에서 늘 든든하게 일선의 PD와 작가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이명한 본부장이라는 것이다.

 

그가 본부장이 된 후 tvN은 어떤 안정기에 들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중심 축은 나영석 PD와 신원호 PD라는 쌍두마차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나영석 PD는 금요일 밤의 헤게모니를 tvN으로 가져온 일등공신이다. 그는 지난 수개월 동안 지상파를 압도하는 프로그램들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금요일 밤은 tvN이라는 공식을 암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나영석과 신원호에 대한 콘텐츠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상황, 이제 이명한 본부장이 손대고 있는 건 그런 블록버스터가 아닌 중간 규모의 콘텐츠들이다. 그는 방송사의 힘은 결국 허리가 되어주는 콘텐츠들로 인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 <한식대첩>, <문제적 남자> 같은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집밥 백선생>은 이미 5% 이상의 시청률을 내는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만일 이 중간 규모의 프로그램들이 든든한 허리가 되어준다면 tvN은 앞에서는 나영석, 신원호가 끌고 뒤에서는 이들 프로그램들이 받쳐주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명한 본부장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후배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이다. 또 못하는 걸 하게 만들기보다는 잘 하는 걸 더 잘하게 해주는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나영석 PD는 과거 KBS시절부터 자신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나머지 것들을 이명한 본부장이 처리해줬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흔히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그 주역으로서 PD만을 꼽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가 백상 대상을 받을 때 얘기했던 것처럼 프로그램의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제작진들과 스텝들의 노력이 있다. 이명한 본부장은 그런 점에서 이 괜찮은 프로그램들이 나올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금의 지상파를 위협하는 콘텐츠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tvN의 숨은 심장이다.



지상파 압도 케이블, 그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금요일

 

tvN에 있어서 금요일은 각별한 시간이다. 케이블이 지상파를 압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프로그램이 <슈퍼스타K2>였으며, 그 프로그램이 방영된 시간대가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그 첫 가능성을 보여준 이후 금요일은 tvN의 전략적 편성시간대가 되었다. 가능성 있는 강력한 프로그램들이 금요일 밤에 들어와 쏠쏠한 재미를 봤다.

 

'미생(사진출처:tvN)'

나영석 PD<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은 모두 금요일 밤에 편성되어 크게는 10%에 달하는 시청률을 냈고, 신원호 PD<응답하라 1997>이 화요일에 편성되어 7%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자 <응답하라 1994>는 금요일 토요일에 편성되었다. <꽃보다> 시리즈와 <응답하라> 시리즈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하면서 두 프로그램이 나란히 금요일 밤에 연달아 방영되는 라인업의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지금 현재 tvN의 금요일 밤 라인업을 보면 확실히 이 케이블 채널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미생>에 이어 <삼시세끼> 그리고 <슈퍼스타K6>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좀체 채널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는 지상파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독특한 tvN만의 색깔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생>은 사실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로맨틱 코미디 형태의 드라마들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 하향곡선을 그리던 tvN 드라마에 새로운 전기를 주고 있는 작품이다.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미생>은 생생한 직장생활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거기에는 장그래(임시완)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고군분투는 물론이고 오과장(이성민)으로 대변되는 중년의 고달픔도 들어 있다. 공감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것이다.

 

<삼시세끼>는 이제 나영석 PD 브랜드가 자리를 잡았다는 방증이다. <꽃보다> 시리즈가 아니라도 이제 나영석 PD가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첫 회에 5% 대의 시청률을 가져가는 일이 가능해졌다. 물론 믿고 보는 신뢰만큼 프로그램의 재미 또한 확실하다.

 

<삼시세끼>는 이서진과 옥택연이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말 그대로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단순한 구조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이제 이 단순함 속에서도 촘촘한 재미를 찾아내는데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윤여정을 비롯해 신구나 백일섭 같은 <꽃보다> 시리즈의 출연자들을 적절히 투입시키는 건 하나의 나영석 월드를 구축해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꽃보다> 시리즈의 묘미를 여전히 느끼며 <삼시세끼>라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슈퍼스타K6>는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최초로 이 형식을 정착시킨 프로그램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이번 <슈퍼스타K6>에는 유독 실력자들이 많이 참여해 그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곽진언과 김필, 임도혁, 장우람 같은 개성 강한 실력자들이 포진해 저마다의 색깔 있는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미생>, <삼시세끼> 그리고 <슈퍼스타K6>. <미생>이 보여주는 건 tvN표의 드라마가 이제는 지상파 드라마의 완성도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며, <삼시세끼>가 보여주는 건 나영석PD라는 브랜드 예능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케이블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프로그램으로서 <슈퍼스타K6>가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남아 있다. tvN 금요일 밤의 라인업은 그간 이 케이블 채널이 어떤 진화를 해왔는가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다.

 

<꽃보다 청춘>, -PD의 심상찮은 행보

 

나영석 PD<꽃보다 청춘>이라는 타이틀로 유희열, 이적, 윤상과 함께 페루로 출국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영석 PD는 출연자들의 구성만으로도 그 예능 프로그램의 이야기에 기대감을 만드는 연출자다.

 

나영석PD와 신원호 PD(사진출처:CJ E&M)

유희열과 이적 그리고 윤상. 40줄의 중년들이 여행을 통해 청춘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관심거리다. 이미 몇몇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괜찮은 이미지와 발군의 예능감을 보여줬던 그들이기 때문에 웃음에 대한 기대감 역시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 세 사람의 조합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니 음악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중년이라는 연령대가 주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깊이와 회한의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꽃보다 청춘>이라는 똑같은 타이틀로 <응답하라 1994>로 주목된 진짜 청춘들, 손호준, 유연석, 바로가 라오스행 비행기를 탔다는 점이다. 이미 <응답하라 1994>가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드라마라는 점을 두고 보면 이들의 여행은 <응답하라 1994>의 예능 판 같은 느낌을 준다. <응답하라 1994>의 아련한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풋풋한 이 배우들의 면면을 다시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줄 것이다.

 

이렇게 중년과 청춘으로 나뉘어진 여행은 바로 그 연령대가 주는 느낌 때문에 어떤 비교점을 만들어낼 것이지만, 여행이라는 지점은 또한 중년이든 청춘이든 모두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되돌리는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년과 청춘이 어떻게 다른가를 확인하기 보다는 나이를 무화시키는 공유점과 공감대를 발견하는 것이 이 여행의 포인트가 아닐까.

 

또 하나의 기대감을 자아내는 지점은 이 라오스편 <꽃보다 청춘><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출한 신원호 PD가 찍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마도 <응답하라> 3인방이 출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원호 PD는 이들과 가장 가깝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데다 그 만남 또한 자연스러울 수 있는 연출자다. 예능에서 드라마로 또 드라마에서 다시 예능으로 전천후 행보를 보이는 신원호 PD가 다시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지만.

 

신원호 PD와 나영석 PD가 함께 연출한다는 점은 두 연출자의 연출스타일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물론 큰 틀은 나영석 PD가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꽃보다> 시리즈의 특성상 이 두 PD의 면면은 자연스럽게 방송을 통해 보여질 것으로 보인다. PD의 캐릭터는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볼거리다.

 

나영석 PD와 신원호 PD<꽃보다> 시리즈와 <응답하라> 시리즈, 그리고 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행보는 심상찮다. 그것은 이제 연출자가 프로그램 뒤편에 있기 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고 기대하게 만드는 브랜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나영석 PD와 신원호PD가 어떤 작품을 한다고 하면 바로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채널을 주목시킬 수 있다.

 

마치 <어벤져스> 같은 영화가 보여주듯이 브랜드화되고 캐릭터화된 인물들은 각각으로도 힘을 발휘하지만 다양한 조합으로도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한다. 이번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의 조합은 브랜드 PD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조합은 더 다양해질 수 있다. 이미 브랜드화된 PD는 또 다른 인물들을 브랜드화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꽃보다 청춘>은 브랜드 PD 시대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능에 중독된 일중독 사회

SPECIEL 2014.03.29 08:40 Posted by 더키앙

일상이 예능이 된 사회의 디스토피아

 

 

방송의 중심에 교양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예능이 선 지는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존재감은 방송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교양 프로그램이 해오던 사회적 실험이나 관찰은 예능과 만나 이른바 관찰 카메라,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최근 종영된 <> 같은 프로그램은 교양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예능화된 경우이고, <정글의 법칙>은 교양팀과 예능팀이 합쳐져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슈퍼맨이 돌아왔다>, <나 혼자 산다>, <오 마이 베이비>, <백년손님-자기야>, <심장이 뛴다> 등등.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본래는 교양에서 했던 소재나 방식을 예능의 문법으로 껴안아 제작된 것들이다. 이제 예능은 <글로벌 홈스테이 집으로>처럼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과의 공감과 교류를 다루는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

 

예능의 확장은 드라마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열풍을 만들어낸 <별에서 온 그대>를 보면 그 안에 꽤 <개그콘서트>류의 코미디가 엿보이는 걸 볼 수 있다. 극중 여주인공인 전지현이 하지마-”하고 외치는 장면은 개그우먼 오나미의 유행어를 패러디했다. 이런 코미디 코드들이 능수능란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의 박지은 작가가 한때 예능 작가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능의 드라마 분야로의 확장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을 쓴 이우정 작가는 <12>부터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같은 히트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방송국에서의 예능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 때는 교양PD, 드라마PD 그리고 예능PD 순으로 암묵적인 순위가 있었지만, 지금은 예능PD가 첫 번째로 꼽힌다. PD 지망생들 중에도 예능PD가 되겠다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른바 스타 PD가 과거에는 드라마에서 나왔다면 요즘은 예능에서 주로 배출된다. <무한도전>의 김태호PD, <12>의 나영석PD는 대표적이다. 예능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회가 교양의 시대에서 재미, 놀이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경쟁력인 사회다. 호이징가가 말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의 출현이다.

 

하지만 예능의 위상이 놀이의 시대를 말해준다고 해도, 사회가 일보다 놀이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일 중독 사회혹은 피로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심한 경쟁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늘 1위다. 일에 대한 강박으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들은 일도 일이지만 가족들이나 지역사회 같은 타 집단들과의 교류가 끊겨버리는 문제를 겪는다. 심지어 주말에 집에 있어도 대화와 교류가 없던 가족들이 투명인간 취급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 때문에 시간이 없는데다, 관계도 소원해진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건 다름 아닌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바빠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빠들은 <아빠 어디가>를 보며 위안을 받고, 변변한 여행 한 번 가기 힘든 이들은 <12>을 보며 대리 충족을 받는다. 현실 여건이 맞지 않아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세상에 혼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다. 좀체 새로운 도전을 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이 <무한도전>을 보고, 제대로 된 교제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은 <>이나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이성의 심리를 읽어보려 애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은 그나마 이런 현대인들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예능에 푹 빠진 사회가 보여주는 일중독 사회의 디스토피아는 우리 사회의 어둠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청춘(靑春), 소통의 키워드가 되다

SPECIEL 2014.02.06 11:36 Posted by 더키앙

복고를 타고 온 청춘, 세대를 진정 소통시키려면

 

청춘(靑春)은 아름답다. 지금 그 청춘을 누리는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그 청춘이 한참 지나가 추억으로 자리한 세대도 마찬가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이 시기는 그래서 젊은 세대든 나이든 세대든 똑같은 감성으로 공감할 수 있는 지대가 된다. 흔히들 복고 트렌드를 현재에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어떤 것으로 말하곤 할 때, 그 트렌드의 중심에 늘 청춘이 서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써니>의 최루탄이 뽀얗게 깔리던 80년대도, <건축학개론><응답하라 1997, 1994>의 김동률의 음악에서 아련한 향수를 느끼던 90년대도 그 시기만 달랐을 뿐, 거기에는 늘 당대의 청춘들이 주인공으로 서 있었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이 그 멀고 먼 유럽까지 날아가 배낭여행을 하면서 발견한 것이 다름 아닌 청춘이다. 어르신들은 한껏 청춘을 향수하고 그리워했고 또 그 때로 돌아간 듯 마냥 아이 같은 모습으로 유럽을 활보하는 모습으로 세대를 넘어선 공감을 얻어냈다. 청춘이라는 마법의 시기는 그렇게 어르신들과 현재의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마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그토록 화제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 역시 이 청춘의 마법과 무관하지 않다. 외계에서 온 다소 비현실적인 도민준(김수현) 같은 캐릭터가 판타지로 허용되는 이유는, 4백 년을 살면서도 그 늙지 않는 몸때문에 영원히 청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4백 년간 쌓아온 재력과 전문적인 경험과 지성, 감성을 모두 겸비하면서도 여전히 청춘을 유지한 존재로 살아간다. ‘청춘에 대한 강력한 판타지는 이제 단지 젊은 시절의 젊은 몸에 대한 향수를 넘어서 늙지 않는 몸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개봉한 <수상한 그녀>에서는 이 청춘에 대한 욕망이 시간을 거슬러 젊어지는 몸으로 나타난다. 어느 날 우연히 청춘사진관이라는 곳에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간 나문희가 심은경이라는 젊은 몸으로 변신하는 그 판타지. 그렇게 나이든 세대의 감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젊은 몸을 갖게 된 이 인물은 그래서 그 몸 하나에 신구 세대가 공존하게 된다. 몸은 젊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칠순의 감성을 갖게 되는 것. 하지만 그녀 앞에 나타난 잘 생긴 남자 앞에서 다시 설레기 시작한 그녀의 마음은 나이를 제 아무리 먹는다 해도 청춘의 설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작년 대선 때 최대 이슈로 떠올랐던 것이 세대 간의 단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선의 결과 그 자체보다도 더, 이토록 깊어진 세대 간의 골에 충격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지금 현재 대중문화의 키워드는 복고로 위장되어 있지만 다름 아닌 소통과 공감에 대한 갈증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소통과 공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청춘이라는 공유지점이다. 어떻게 하면 이 물과 기름처럼 섞여지지 않는 세대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을 것인가.

 

대중문화에서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이 갈급한 세대 단절을 봉합할 수 있는 소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나이든 세대들의 정서에 맞춰 소비되는 일회적인 복고나 향수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거꾸로 지금의 청춘들에 대한 나이든 세대들의 위로와 배려, 나아가 그들의 꿈을 함께 꾸어줄 수 있는 노력까지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 아름다운 청춘을 그저 과거의 한 때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청춘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가는 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케이블과 종편은 되는데 지상파는 안 되는 것

 

한 때 지상파는 특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거대 자본을 가진 케이블 방송들이 콘텐츠 경쟁력을 갖고 지상파를 위협하고 있으며, 종편들도 조금씩 자신들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들을 생산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지상파의 대응은 굼뜨기 이를 데 없다. 다양한 뉴미디어가 TV라는 올드미디어를 밀어내고, 케이블, 종편이 콘텐츠 경쟁력으로 압박해오면서 지상파의 시청률은 이미 반 토막이 난 상태가 아닌가.

 

'1박2일(사진출처:KBS)'

사극 하면 무조건 50% 시청률은 나오는 줄만 알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사극도 20% 넘기가 쉽지 않은 지금 현대극은 15%만 넘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이라고 여겨질 판이다. 그래도 30%를 넘기는 주말극들이 있지만 자극적인 설정의 막장드라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이런 드라마의 시청률을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능 프로그램은 사정이 더 안 좋다. 주중 11시대에 포진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 10% 넘기기도 힘든 실정이다. <놀러와> 같은 장수 프로그램이 폐지되었고, 한때 새로운 토크쇼로 각광받았던 <무릎팍도사>는 강호동이 돌아왔어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라고 할 수 있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은 무려 두 시간에 가까운 파격편성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15% 시청률을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tvN이나 Mnet 같은 CJ 계열의 케이블 채널과 JTBC 같은 종편의 성장은 점점 눈에 띈다. <슈퍼스타K>로 Mnet이 지상파를 포함해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상파와 케이블 사이에 어떤 벽을 허문 이후, <보이스 코리아>, <응답하라 1997>, <푸른 거탑>, <SNL코리아> 같은 프로그램들은 끊임없이 지상파 프로그램과 비교되었다. JTBC는 <무자식 상팔자>가 무려 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데 이어 <썰전>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히든싱어>는 4%대의 좋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MBN의 <황금알> 같은 집단 토크쇼는 2%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어 유사한 토크쇼들이 종편에서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다. 대중들은 지상파가 어딘지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반면, 그 틈새를 파고 들어오는 케이블 같은 지상파 이외의 채널들이 끊임없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실제로도 그렇다.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 결국은 무언가 위기 상황이나 절실함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때 잘 나가던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10% 시청률로 곤두박질 쳐도 지상파는 이를 과감히 폐지하고 새로운 예능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그 포맷이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제작 책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실적에 모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도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 지상파가 유명 MC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는 고작 리스크를 줄이는 것을 새로운 시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여기는 것이고, 문제가 생겨도 유명 MC 책임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있다. 결국 이런 복지부동의 자세는 제작진의 의욕을 꺾기도 한다.

 

유명 PD들이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이적하는 것은 이러한 회사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다. <해피선데이>에서 이명한 PD, 나영석 PD, 신원호 PD, 그리고 이우정 작가가 모두 CJ에서활동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KBS 같은 지상파 조직이 가진 한계를 일찌감치 본 것이다. 그래서 조금 리스크가 있어도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케이블로 옮겨간 것. 실제로 신원호 PD 같은 경우, 본래 영화를 전공했던 경력을 살려 <응답하라 1997> 같은 드라마를 시도해 큰 성공을 일궈내기도 했다. 이러한 인력의 유출은 지상파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최근에는 지상파에는 불가능하지만 종편이나 케이블이기 때문에 가능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JTBC의 <썰전>이 하고 있는 정치 시사 토크쇼나 예능 비평 토크쇼는 종편이라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형식이다. 또 19금과 정치 시사를 묶어서 라이브 콩트 코미디로 풀어내고 있는 tvN의 <SNL코리아>도 마찬가지다. 이런 프로그램을 지상파에서 했다면 당장 공영성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하지만 종편이나 케이블은 으레 그런 것인 양 넘어가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역차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상파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잣대는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 하락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 저하는 잘못된 시청률 추산방식이 야기하는 면도 크다. 지금처럼 모집단의 TV 본방만이 시청률 추산에 들어가는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프로그램을 TV 앞에서 그 시간대에 맞춰 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보고, 또 지나간 방송을 IPTV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롭게 보는 시청 패턴이 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들의 시청 패턴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의 시청률 추산은 지상파의 콘텐츠를 기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지금의 시청률이 주로 기록하는 중장년 세대에 맞춰진 콘텐츠들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이런 경향이 짙게 나타나고 있다.

 

지상파 프리미엄이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오히려 지금은 지상파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들이 있는 시대다. 결국 다매체 시대에 접어든 이상, 지상파는 콘텐츠 경쟁력을 이 변화된 환경에 맞게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지금의 시청률 추산 방식이나 지상파라는 안온한 시스템에 여전히 취해 있어서는 곤란하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상파이기 때문에 역차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상파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개발해나가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지상파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영석 PD까지 CJ행을 선택한 이유

 

이명한 PD, 신원호 PD에 이어 이우정 작가(그녀는 물론 KBS 소속은 아니었지만)도 합류하더니 결국 나영석 PD도 CJ E&M 행을 택했다. 이로써 한때 <해피선데이>를 최고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던 주역들이 모두 KBS를 떠난 셈이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나영석 PD 본인은 부인했지만 그의 이적설은 끊임없이 나왔으니까. 아마도 KBS라는 조직의 생리를 아는 방송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나영석 PD 같이 재기발랄한 인재가 이 조직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것은 KBS가 가진 제작 여건이 열악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제작상의 많은 이점들을 갖고 있다. 전국망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고, 폭넓고 보편적인 시청층을 갖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그 공영성에 부합한다면 시청률에 있어서도 그다지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조직이다. 이런 면은 오히려 CJ E&M과 상반되는 것들이다. CJ라는 조직은 케이블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갖고 있고 좋은 제작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시청률이 낮다면 KBS처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이적한 PD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작 환경에 있어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런 선택을 왜 모두 하는 걸까. 혹자들은 그것이 결국 돈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모든 직장인(PD도 한 사람의 직장인이다)들에게 있어 급여 문제만큼 첨예한 것이 있을까. 그러니 더 대우를 해주는 직장이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회사가 능력에 맞는 대우를 제대로 해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KBS는 그런 점에서 몇몇 실력 있고 도전적인 PD들에게는 매력 없는 직장이다. KBS가 원하는 것은 그 전체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서의 PD이지 저 스스로의 확고한 영역을 만들어 이른바 스타가 되는 그런 PD가 아니다. KBS는 스타PD를 키우지도 또 용인하지도 않는 그런 조직이다.

 

또한 KBS는 제작환경은 좋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마인드는 떨어지는 편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다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시즌 프로그램들이 그토록 많고,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도 넘쳐나는 건 보수적인 시청층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무언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젊은 PD들에게는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남자의 자격>을 연출했던 신원호 PD가 CJ E&M에 가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연출해 큰 화제를 일으킨 것은 나영석 PD에게는 꽤 큰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제작여건은 어려워도 새로운 도전정신이나 상상력의 기회는 늘 열려 있는 그런 조직.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승부를 볼 수 있는 그런 조직. KBS는 물론 안정적이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PD들에게는 아마도 그 안정적인 것 자체가 힘겨웠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거기에는 예전부터 손발을 맞춰왔던 그들(이명한 PD,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이 있다.

 

한때를 풍미했던 <해피선데이>팀이 모두 KBS라는 둥지를 떠나 CJ E&M에 새 둥지를 세우게 된 것은 물론 대우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PD들이 갖기 마련인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픈 그 도전정신을 KBS라는 조직이 그다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새 둥지에서 이른바 히트작을 터트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젊은 날에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게다. 새 도전 앞에 서 있는 나영석 PD의 건투를 빈다.

<응답> 이우정 작가, 예능 드라마 못하는 게 뭐야

 

이쯤 되면 연타석 홈런이다. <1박2일>로 한 방을 날리고, 그 여력을 모아 <남자의 자격>까지 세워놓음으로써 명실공히 <해피선데이>를 주말예능의 최강자로 만들었던 그녀였다. 당시 예능가에서는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이 남자들의 예능(?) 두 개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여장부로 이우정 작가라는 존재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여러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두 예능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난항을 겪었던 것에는 아마도 그녀가 <해피선데이>를 빠져나온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응답하라 1997'(사진출처:tvN)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예능이 아닌 드라마로 홈런을 쳤다.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97>로 케이블로서는 어마어마한 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둔 것이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이 드라마는 첫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디테일과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90년대의 대중문화사적인 풍경들을 청춘들의 성장담과 엮어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대중문화가 가진 대중의식을 담은 드라마의 메시지는 재미를 넘어 의미까지 거두기에 충분했다 여겨진다.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이런 연전연승의 성과물을 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녀가 가진 예능작가라는 위치에서 비롯된다. 사실 예능작가라고 하면 몇 년 전만해도 방송작가들 사이에서는 가장 밑으로 치부되던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능작가들은 프로그램 속에서 거의 모든 일들에 관여하는 소모인력처럼 치부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라고 하면 무언가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가는 그런 자의식을 가질 만한 역할이 예능작가에게는 거의 없었다. 순간 순간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 예능작가로서 자의식보다 중요한 건 같이 손발을 척척 맞춰주는 그 공동작업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그녀가 첫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7>을 성공으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 드라마는 그녀를 필두로 <해피선데이>의 작가들(모두 예능작가들이다)이 대거 참여한 작품이다. 그 작업과정을 들어보면 그것이 일반적인 드라마 제작방식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즉 일반적인 드라마라면 작가가 (일방적으로) 쓰고 연출자가 그것을 연출하며 연기자는 연기하는 식으로 역할이 분담되는데, 이 작품은 거의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협업을 하는 이른바 ‘예능식’으로 작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수많은 아이디어들과 실제사례들을 모아서 그것을 캐릭터와 작품에 녹여내는 과정에서부터 작가들과 연출자가 머리를 맞대는 이 예능식 작업은 신원호 PD의 말대로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영상’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매번 웃음을 주거나 짠한 느낌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 땀 한 땀 성실하게 채워 넣는 방식. 물론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흐름과 조망을 놓치지 않는 그런 작업방식이 있었기에 <응답하라 1997>의 성과가 있을 수 있었다.

 

또한 예능작가 특유의 캐릭터를 끄집어내는 방식은 이 작품의 연기자들이 돋보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의 드라마 작가들이 캐릭터를 쓰고 그 연기를 연기자의 몫으로 돌리는 반면, 예능작가들은 연기자에게서 캐릭터를 발굴하는데 능하다. 서인국이나 정은지가 여타의 다른 작품에서보다 더 캐릭터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예능작가가 가진 장점이 작품에 녹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최근 들어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 작가들이 승승장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예능작가 출신인 박지은 작가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보면 예능적인 감각(풍자와 콩트)과 캐릭터에 얼마나 발군인가를 느낄 수 있다.

 

이우정 작가는 이제 드라마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놓고는 이제 다시 tvN이 준비하는 주말예능에 도전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참여하는 인력들이 주목을 끈다. 초대 <해피선데이>를 이끌었던 이명한 PD와 <응답하라 1997>을 함께 했던 신원호 PD는 당연히 참여하고 거기에 은지원, 이수근 같은 이들의 패밀리라 할 수 있는 연기자들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모두 <해피선데이>의 패밀리지만 어찌 보면 이것은 이우정 작가가 가진 인맥이기도 하다. 작가 하나가 가진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힘은 이처럼 강력하다.

 

또 그 포맷이 버라이어티와 드라마 형식, 두 코너로 진행된다는 점은 이제 이우정 작가가 이 두 형식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이미 결과물로 보여주었다) 대체불가의 작가라는 걸 입증해준다. 이우정 작가의 승승장구를 보면 그래서 그간 전면에 얼굴조차 나오지 않던 예능작가들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우정 작가는 그 가능성의 길을 맨 앞에서 열어가는 작가다.

1997년에 대중들이 응답한 이유

 

왜 굳이 1997년이었을까. <응답하라 1997>이 상정하는 1997년은 두 가지 상징으로 표현될 수 있는 해다. 그 하나는 HOT와 젝스키스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의 폭발기였다는 점이고(이 당시 음반 판매량은 몇 백만 장 단위로 기록되곤 했다), 다른 하나는 IMF 사태가 터지는 해로서 그 해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우리 서민들의 경제생활이 계속 추락해왔다는 점이다(이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응답하라 1997'(사진출처:tvN)

이 전혀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사건, 즉 대중문화의 폭발과 IMF사태라는 경제현실은 그러나 그 안에 ‘대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얽혀져 있다. 대중들은 이 힘겨운 시기를 무엇으로 버텨냈을까. 그 해답을 제시하는 드라마가 바로 <응답하라 1997>이다. 2012년 한 동창회 풍경으로부터 끊임없이 1997년도로 플래시백 하는 이 드라마는 수많은 당대의 대중문화 트렌드들을 담아낸다.

 

거기에는 HOT가 있고 젝스키스가 있으며 그들을 추종하는 이른바 ‘빠순이’들이 있다. 또 다마고치가 있고, 삐삐가 있으며, PC통신과 채팅이 있고 당대를 달구었던 영화와 드라마들, 프로야구 심지어 815독립콜라 같은 상품은 물론이고 ‘광수생각’ 같은 책도 있다. 그런데 이들 수많은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들이 과연 그저 당대를 추억하게 하는 목적으로 동원된 것일까. 설마.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오브제들이 떠올리는 결과가 아니라,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 그 오브제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경제적인 부를 가진 이들은 다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중들은 무엇으로 이 힘겨운 시기를 위로받으며 살았는가 하는 점을 질문해보면 대중문화가 가진 새로운 힘을 실감하게 된다. 청춘의 격랑을 버텨내고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그 긴 시간 동안 성시원(정은지)을 끝까지 위로해준 것은 다름 아닌 HOT 같은 당대의 대중문화였다.

 

누군가는 팬클럽이 되어 열렬히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위안을 받았고, 누군가는 농구대잔치와 영화에 빠져들었으며, 또 누군가는 음성적인 빨간 책(?)에서 도피적인 위안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지냈지만 그 위로의 재료는 다름 아닌 그들이 공유한 대중문화였다. 그 지평 위에서 그들은 같은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며 공감함으로써 계속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당대 서민들에게 있어서 대중문화가 어떤 의미였는가를 가장 잘 드러낸 시퀀스는 시원의 아버지인 성동일이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장면이다. 같은 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위무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드라마다. 그 속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에 흠뻑 빠져있는 환자들은 그러나 그 주인공이 암에 걸리는 장면에서 고개를 돌린다. 성동일의 아내인 이일화는 투병하는 남편과 같은 병동 환자들을 위해 그 드라마 작가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주인공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대중문화를 통해 위로받고 심지어 살아갈 수 있었던 당대의 풍경을 압축한 장면이다.

 

그런데 왜 하필 대중문화일까. 그것은 IMF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 물론 값싼 대중들의 여가라는 점이 대중문화를 당대의 가치로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IMF가 가져온 것은 대중들의 각성이다. 대중들은 이때부터 위로부터 주어지는 삶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 등등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 인터넷 같은 수평적인 대중들의 매체가 생겨나는 시점과 궤를 같이 하면서 대중들에 의한 대중들을 위한 대중들의 시대를 소망하게 만든다. 그간 어딘지 폄훼되어왔던 대중문화가 점점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의 성공은 그저 복고에 편승한 추억콘텐츠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IMF로 표징되는 저들의 문화의 거품이 빠지는 시기였던 90년대 말, 대중문화가 폭발하는 그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데서 비롯한다. 그리고 97년 이후 2012년에 이르기까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대중문화를 통해 위무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 공감대가 그 성공의 진면목이다.

 

그래서 작금의 대중들, 즉 90년대를 경험했던 중년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지금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청춘들은 모두 이 1997년에 기꺼이 응답하게 된다. 거기에는 대중문화만이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는 살풍경한 현실과, 그럼에도 우리에게 어떤 대중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대중문화에 대한 경험이 깔려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대중문화로 공유되는 대중들의 힘은 현실을 바꿔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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