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을 그냥 넘길 순...”, ‘저수지게임’ 그 질깃함의 이유

다큐 영화 <저수지 게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무려 5년째 추적해온 주진우 기자는 스스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모든 정황들이 있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사진출처:영화<저수지게임>

그리고 이런 결과는 이미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 들어온 관객들은 알고 있다. 만일 주진우 기자의 추적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화관이 아닌 뉴스를 통해 봤을 것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들 대다수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속 시원한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주진우 기자 말대로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저수지 게임>이 담고 있는 것은 속 시원한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담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좀체 시원해지지 않는다.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저 정도라면 포기했을 거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경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진우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5년을 추적했고 지금도 그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결과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담긴 집념을 담는다.

<저수지 게임>의 주진우 기자는 MB의 비자금을 추적하며 하나의 패턴을 발견한다. 해외 투자라는 명목으로 망할 투자를 공기업들이 나서서 하고 그래서 적게는 수백억에 이르는 투자금을 공중분해시켜 버린다. 사라진 돈의 출처가 불분명한 가운데, 이상하게도 손실을 본 투자자인 공기업들은 이를 회수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고소도 하지 않는다. 주진우 기자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진우 기자가 스스로 “열이 받는다”고 말하고 그 말에 관객들도 공감하는 까닭은 그 많은 돈들이 사실은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이다. 결국 우리 돈을 가져가 망할 투자를 하고 돈을 날려버린 뒤 찾으려는 노력도 또 책임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바보로 전락한다. 정부는 혹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공범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주진우 기자가 끊임없이 관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통해 어려운 진술을 받아내고, 또 해외로 직접 날아가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에 우리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제발 증거가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주진우 기자와 함께 사건을 추적했던 김어준은 말했다. 자금 추적을 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이 일상이었다고.

그러니 5년여의 추적이 실패로 돌아올 이 일을 그들 또한 몰랐을 리 없다. 심지어 고소도 당했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일에 집착하냐고 감독이 묻는다. 기자정신 같은 건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눈앞의 “부정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외면할 수는 없다는 거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뒤쫓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것. 

그래서 관객들이 실패담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수지 게임>을 들여다보려는 건 적어도 주진우 기자의 그 질깃질깃한 집념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지지를 표하고 싶어서다. 어떤 안도감이라도 갖고 싶어서다. 보는 내내 화가 나고 허탈한 한숨이 터지지만 그래도 영화관을 나오며 어떤 뭉클함 같은 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그 의아함에 담겨지는 놀라운 집념에서 어떤 작은 희망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 그래서 그의 실패담에는 단서가 붙었다. ‘아직까지는’이라는.

박사모 보이콧 <더킹>의 질문,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더킹>에는 우리네 역대 대통령들이 자료화면 그대로 등장한다.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들은 그저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배경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그들의 앞길이 꽃길이 되느냐 흙길이 되느냐가 결정되고, 그래서 마치 대선은 미래를 판돈으로 내건 도박판처럼 그려진다.

 

사진출처:영화<더킹>

지금껏 시국과 시대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조폭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었다는 건 우리네 정치사에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를 가늠하게 한다. 하지만 <더킹>의 주인공은 조폭이 아니라 검사다. 그것도 상위 1%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검사. 한강식(정우성)은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고 그를 오른팔 역할을 하는 양동철(배성우)은 어느 날 후배검사인 박태수(조인성)를 자신들의 라인에 끼워 넣는다. 영화는 태수라는 인물의 개인사이면서 그의 성공과 추락 과정들이 엮어진 시대사를 그린다.

 

영화에서 이 1%에 해당하는 비뚤어진 권력욕에 물든 비리 검사들은 조폭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손에 피 묻히고 오물을 만지는 일들을 직접 하는 조폭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점점 권력의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태수에게도 그런 그림자 역할을 자청하는 고향친구 두일(류준열)이 붙는다. 라인을 타고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그에게 가족과 친구는 일종의 걸림돌이 된다. 이 권력 시스템에서 가족관계나 친구관계 같은 수평적 체계는 서열화 되기 마련인 권력 체계에는 점점 맞지 않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비리검사들이 하는 일이란 지속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은 권력을 바꾸게 되고 그럴 때마다 라인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추락하게 되는 게 이 권력 시스템의 룰이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알아맞히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태수의 목소리로 그가 겪은 일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깔린 내레이션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인물이 성공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선택들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하고 심지어 곤두박질치는 그 과정들을 똑같이 간접경험하게 만들고, 그 삶의 선택들을 반추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적 틀을 벗어나 어떤 통쾌함과 속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건 영화가 유지하고 있는 일종의 마당극 같은 풍자적 요소들 덕분이다. 다소 과장된 연출로 보여주는 이런 풍자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고구마 시국에 얹혔던 체기를 시원한 사이다로 가라앉혀주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마취적인 사이다에만 머무는 영화라는 건 아니다. <더킹>의 덕목은 이러한 풍자극의 사이다를 느끼게 해주면서도 동시에, 태수의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나쳐온 대통령들의 면면들과 그들이 대통령이었던 시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주고, 당시의 부조리들이 어떻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국을 만들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는 것.

 

흥미로운 건 영화 중간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모습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결정이 내려지고 비통해하는 야당 의원들 모습이 비춰진 후 국회에서 박근혜 의원이 웃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한 장면만으로 <더킹>은 기묘한 반전을 이루는 현 시국의 이야기까지를 끼워 넣는 효과를 만든다.

 

한편 박사모의 한 회원은 <더킹>을 보이콧 하자는 제안을 카페에 올렸다고 한다. 지난 <아수라> 무대 인사에서 박근혜 나와라고 외쳤던 정우성이 출연하고 있다는 이유다. 갖가지 드러나고 있는 부정들로 인해 탄핵 정국을 맞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여전한 무비판적 추종에 대해 <더킹>이라는 영화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민상토론’, 풍자 가뭄 '개콘'에 단비로 촉촉

 

KBS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민상토론’. 개그맨 박영진은 역시 이런 개그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 살려낸다. 먹는 게 섹시한 자칭 먹섹남유민상과 여자보다 더 섹시한 남자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김대성을 출연시킨 이른바 뻔뻔한 이슈 토크에서 박영진은 이 두 사람에게 뜬금없이(?) ‘무상급식 중단 논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지난3월 경상남도에서 무상급식이 중단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찬반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요. 유민상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몰아붙이기와 덮어씌우기 식의 질문이 박영진의 트레이드마크라면 뚱한 표정으로 내가 왜?’하는 얼굴만으로도 빵빵 터트리는 건 유민상의 장기다.

 

먹섹남을 거론한 것처럼 유민상은 먹는 얘기를 하러 토론 자리에 나왔다가 무상급식질문을 받고 황당해 한다.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을 묻고 답을 못하자 박영진은 설마 무상급식 모르는 아니냐며 유민상을 무식한 사람 취급한다. 그래서 뭐든 얘기해보려 아이들 먹는 거니까 중요한 얘긴데...”라고 말을 꺼내는데 그 이야기를 곧바로 박영진이 가져가 아 무상급식 찬성입니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급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자 이제는 반대입니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 이제는 나는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알겠습니다하고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유민상과 김대성이 처한 상황은 아마도 <개그콘서트>의 상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사실 그간 풍자가 사라져버린 <개그콘서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개그에 대해 심지어 법적인 잣대를 드리우기까지 한 일련의 경험들은 개그맨들이 좀더 과감하고 자유로운 풍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왔다. 김영진의 질문은 그래서 지금 현재 대중들이 <개그콘서트>에 요구하는 현실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런 실로 뜨거운 현실적 이슈에 대한 질문에 유민상과 김대성은 당황하고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작은 얘기도 침소봉대되고 때로는 엉뚱하게 해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찬성이냐 반대이냐를 강요받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아예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홍준표라는 이름을 거론하면 홍준표 도지사가 뭐 잘못됐다는 겁니까?”하고 질문을 던지고, “중요한 문제인데...”라는 말은 갑자기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문재인으로 뒤바뀐다. 여기에 시민논객으로 등장한 개그우먼 김니나는 유민상에게 유장프(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좋아하는 스타일의 도지사가 누굽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도지사 같은 게 어딨냐?”고 되묻자 박영진은 또 지금 현재의 도지사들은 다 마음에 안 든다 갈아엎어야 된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민감한 정치 사안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피하려는 개그맨들은 가벼운 얘기를 하자고 하지만 그런 가벼운 얘기가 덮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민상토론을 슬쩍 수지와 이민호 열애설 기사 밑에 묻혀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00억 기업특혜 의혹기사를 통해 드러낸다. 계속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박영진과 그런 민감한 얘기는 피하고 싶은 유민상. 그러자 김장군이 시민논객으로 일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백억 의혹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면서 입에 물을 넣고 웅얼웅얼댄다. 그러자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

 

이 지점은 그간 많은 <개그콘서트>의 풍자 개그가 있었지만 민상토론이 흥미로워지는 부분이다. ‘민상토론은 어떤 현실 문제를 풍자의 장으로 끌어오긴 하지만 거기에 대해 특별한 코멘트를 달지 않는다. 박영진은 계속 질문으로 몰아갈 뿐 어떤 답을 던지지 않고 질문을 받는 유민상도 그 질문을 회피할 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시민논객도 입에 물을 넣고 웅얼거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민상토론은 현실적 사안들을 개그의 장으로 끌고 오지만 거기에 대한 어떤 입장도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민상토론은 응답보다는 질문에 더 무게중심이 가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문제나 연예인 열애 기사에 묻혀버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백억 특혜의혹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풍자의 역할을 해낸다는 점이다.

 

민상토론은 풍자가 사라진 시대에 대한 풍자를 담아낸다. 할 말을 할 수 없는 현실을 끄집어내면서 그 질문들을 통해 오히려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대중들이 <개그콘서트>에 그토록 원해왔던 현실 풍자에 대한 기막힌 접근방식이 아닐 수 없다. 개그가 어떤 입장이나 답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갈채가 이어지지 않던가. 풍자 가뭄으로 말라가던 <개그콘서트>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왜 하필 지금 '정도전'일까

 

왜 하필 정도전이었을까. 여말선초 이 난세만큼 사극이 사랑한 시기도 없을 게다. 거기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라는 인물이 있다. <조선왕조 500>은 물론이고 <용의 눈물>, <대풍수> 같은 사극이 이성계라는 난세의 영웅을 소재로 다뤘다. 변방을 지키던 무장이 왕이 되는 과정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혁기를 매 번 치르게 되는 우리에게 이 인물은 그 때마다 상징적인 의미가 덧붙여진 채 재해석되었다.

 

'정도전(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시기를 다루면서도 KBS가 정통사극의 부활을 알리며 가져온 인물은 이성계가 아니라 정도전이다. 물론 <정도전>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지만 이 사극에서 이성계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극의 첫 시작부터가 정도전(조재현)이 이성계(유동근)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결국 정도전의 정치력과 이성계의 힘이 만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니, 정도전을 다루면서 이성계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드라마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훨씬 효과적인 인물은 이성계다. 무장으로서 원에 쫓겨 고려로 들어온 홍건적을 물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해서는 원나라 나하추의 군대를 대파하면서 고려민들의 구세주로 떠오른 인물. 그의 연전연승 이야기는 조선 건국의 정치적인 이야기와 맞물려 훨씬 다이내믹한 장면들을 보여줄 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다르다. 그가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세운 것은 맞지만 그것은 끊임없는 정치적인 투쟁의 결과다. 즉 정도전을 다루는 사극은 결국 본격 정치를 다룰 수밖에 없고, 그것은 칼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말로써 벌어지는 정치 대결이 사극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극 <정도전>은 고려 말 이색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정도전과 정몽주(임호)를 위시한 신진사대부들과 고려 말 원나라와 결탁해 권력을 잡은 권문세가의 대표 이인임(박영규)과의 정치대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쇠퇴해가는 북원의 끝자락을 잡고 고려 말의 권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이인임과 북원과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등장하는 명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정도전의 대결. 여기에 최영(서인석) 같은 고려의 충신과 공민왕이 시해당한 후 수렴청정을 한 명덕태후(이덕희), 그리고 왕실외척세력인 경복흥(김진태)의 힘겨루기가 들어가면서 정치대결은 더 복잡한 양상을 만들어간다.

 

정치적 이상과 포부가 큰 정도전이지만 적 아니면 도구로만 상대를 생각하는 현실 정치 9단 이인임을 이겨낼 수는 없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이인임에 맞서 정도전이 유학자들의 성지인 대성전으로 들어가 단식투쟁을 벌이자 이인임이 최영의 힘을 빌려 무력 진압 해버리는 현재의 정치에서도 낯설지 않아 보이는 장면은 그의 만만찮은 정치력을 보여준다. 정도전은 결국 이인임과의 수차례 대결에서 패배한 연후에야 이상과 현실 정치의 봉합을 꾀하게 되는 셈이다.

 

정도전은 이처럼 그 정치적 성장담이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나 그래도 TV 사극으로서는 다루기가 쉽지 않은 인물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가 아닌 정도전을 다루는 데는 그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정도전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과 관련이 있다. 정도전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닌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를 꿈꾸었다. 즉 왕에 따라서 정치가 농단되는 것을 봐온 그로서는 왕이 누가 되던 나라가 제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꿈꾸었다는 점이다.

 

수차례의 대선을 겪으면서 그 때마다 가졌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단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좌절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그토록 꿈꾸었던 민생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했던 양극화 해소 역시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해결점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정치가 바로 서고 나라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제 믿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왕이 아닌 시스템의 개혁을 꿈꾼 정도전이 사극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건 지금 현재 대중들이 느끼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정서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대선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은 이제 표상되는 대표자의 얼굴이 아닌 실제적인 현실 정치 시스템의 변화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이 <정도전>이라는 쉽지 않지만 좀체 눈을 떼기 힘든 본격 정치 사극에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가 아닐까.

‘상처’ 강조한 박, ‘서민’ 강조한 문

 

지난 200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광고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던져진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말 한 마디는 정책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대선 광고를 통해 보여주었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그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광고는 욕 먹으며 밥 먹는 장면을 통해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이 말은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위험한 발상을 담고 있었지만 당시 팍팍한 서민들의 귀에는 달콤하디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사진출처:새누리당, 민주통합당

광고는 물론 실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것이 광고가 가진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밥집 광고에 등장하는 욕쟁이 할머니는 연기자였음이 밝혀지기도 했고 <MB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이 광고의 메이킹 필름을 통해 그 이미지가 얼마나 허상인가를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선 광고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짧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그래서 더 압축적이고 더 이미지적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의 파괴력을 가진 대선 광고는 그만큼 조심스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첫 선을 보인 광고 안에는 어떤 이미지 전략이 들어있을까.

 

왜 박근혜는 ‘상처’를 끄집어냈을까

박근혜 후보는 첫 광고에서 ‘상처’를 끄집어냈다. 2006년 신촌 피습 사건 장면이 스틸 컷으로 들어가고 뺨 부위에 테이프를 붙인 박 후보의 옆얼굴과 그로 인해 남게 된 상처의 흔적을 클로즈업하면서 그 위에 ‘그날의 상처’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 후보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촛불집회 장면이 삽입되고 “여러분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남은 인생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하고 자신의 출마 근거를 제시한 후 마지막에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입니다.”라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캐치 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이 광고가 끄집어내는 건 박근혜 후보가 가진 ‘상처’의 이미지다. 물론 독재 정권이 가진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어찌됐든 그녀의 부모가 모두 총탄을 맞고 사라진 사실에 대한 보수층의 동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이것은 정치와는 무관해보이지만 박근혜 후보가 가진 이미지적인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정책을 끄집어내면 낼수록 과거 독재정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반면,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때 동정적인 이미지는 더 커진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유독 대선 토론을 회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정책적인 약점이 있다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드러낸 박근혜 후보의 첫 대선광고는 바로 그 정책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동정적인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부가되는 것은 ‘여성’이라는 위치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희생’ 같은 이미지다.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라는 말은 그래서 다양한 뉘앙스로 읽힌다. 그것은 자신을 살려낸 국민들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국민들을 살려낼 차례라는 뜻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개발시대의 향수를 가진 보수층들에게는 그녀의 부모를 잇는 희생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민’을 끄집어낸 문재인이 주장한 세 가지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문소리가 부르는 가수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 바탕으로 깔리고 문재인 후보의 자택 일상이 광고에 담긴다. 이것은 여러모로 박근혜 후보가 갖고 있는 귀족적인 이미지와의 차별화를 위한 포석이다. 가사가 전하는 ‘하늘’과 ‘그대 얼굴’은 기묘하게도 대통령과 서민의 이미지로 전화된다. 일상적인 장면 속에는 문재인 후보가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지만 그 깔리는 목소리기 무수한 연설 속에서 그가 했던 목소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즉 일상과 정치가 하나로 엮여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수평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다. 한 편에서는 열심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일상이 깔려 있고 서민이 스며있다는 것. 문재인 후보는 광고를 통해 국민여러분에게 묻는다.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십니까? 나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해주는 정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아마도 서민들이 지금의 정부에게 가진 가장 큰 아쉬움일 것이다. 나라는 세계 몇 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연일 대서특필되지만 정작 더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의 삶. 문재인 후보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그런 서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던진 세 마디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을 잡아낸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그럼으로써 생겨나는 정의로운 결과가 바로 문재인 후보가 국정 운영을 통해 세우려는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라는 것. 그럼으로써 마지막 슬로건이 제시하듯 ‘사람이 먼저’인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 이 광고의 주 메시지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첫 광고 이미지 전략은 이처럼 서로 판이하다. 박근혜 후보의 광고가 정책적인 내용이 쏙 빠져버린 한계를 지니면서도 동정적인 이미지가 가진 힘을 한껏 강조함으로써 박근혜 후보가 가진 장단점을 제대로 활용해내고 있는 한편, 문재인 후보의 광고는 서민적인 이미지와 함께 자신의 핵심적인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광고의 이미지적인 힘으로만 보자면 문재인 후보의 첫 번째 광고는 이미지와 정책 기조가 결합됨으로써 박근혜 후보의 광고에 비해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 정책 기조가 현실로 다가오는 서민들에게는 어쩌면 그의 광고가 훨씬 더 실제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첫 포문을 연 두 후보들의 이미지 전쟁. 향후의 전략적 행보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MB의 추억', 유인촌도 울고 갈 명연기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럴 에이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우리는 욕쟁이 할머니가 이렇게 맛깔난 욕을 툭툭 쏟아냈던 이명박 대통령의 당시 선거 광고를 기억한다. 뜨거운 국밥을 연거푸 입에 넣으며 욕을 듣는 이명박 당시 후보. 그런데 욕쟁이 할머니의 욕들은 조금씩 뉘앙스를 바꿔나간다.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 밥 더줘? 더 먹어 이놈아.” 이제 욕은 욕쟁이 할머니의 진술과 행동을 통해 밥이라는 격려로 바뀌게 된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져지는 이 말은 설사 욕먹을 짓을 했더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데 밥이라도 챙겨주자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끌어낸다. 밥은 여기서 표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진출처:영화

기가 막힌 이 이미지 광고는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확고히 심어주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MB의 추억>은 이 광고를 다시 끄집어낸다. 당시 광고에 자막과 함께 내레이션으로 들어간 “이명박은 아직 배고픕니다”라는 말은 그러나 이제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것이 사실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 의지의 배고픔이 아니라,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탐욕의 배고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든 게 거짓 이미지였다.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사실 연기자였고, 광고 속 내용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는 제작진의 칭찬을 들을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산 코미디’라고 붙였고, 그래서 이명박 당시 후보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끝날 때까지 웃음이 빵빵 터지지만 절대 웃을 수만은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MB의 추억>이다. 그 화면 속에는 유인촌 전 장관이 등장해 “지금 우리에겐 영웅이 필요한 시절, 그분은 누구인가”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그 유명한 747공약(7% 성장, 4만 달러 시대, 7대 강국)을 설파한다. 유인촌은 90년에 방영되었던 KBS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드라마는 이명박을 모델로 했다)을 했던 연기자. 그런 그가 ‘영웅의 시대’를 말한다. MBC에서 당시 방영되었다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를 미화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영웅시대>를 끄집어낸 것. 이미지는 그렇게 당시 힘겨웠던 서민들의 눈을 현혹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당시 대선의 풍경을 조목조목 잡아내가며 그것이 일종의 쇼였음으로 상기시킨다. 대선 후보들이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주는 음식을 꾸역꾸역 받아먹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다. 여기서 이명박 당시 후보는 국수를 두 그릇이나 뚝딱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동영 당시 야권 후보가 연설 도중에 한 유권자가 자꾸만 먹으라는 음료를 “연설 끝나고 먹겠다”고 버티는 장면과 병치된 이 국수 시퀀스는 당시의 야권의 무능까지도 포착해낸다. 당시 야권은 이 정치쇼에서 연기조차 출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이명박 당시 후보는 안 해본 것 없는 백전노장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뭐든 다 해봤다고 말하는 그는 풀빵 장수에게 자신이 어설프게 만들어 잘 익지도 않은 풀빵을 서민들에게 건네면서 불이 약하다고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한 순발력이다.

 

‘우리가 강제한 것이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대가를 치르는 거야.’ 이 괴벨스의 어록으로 시작해서 이 어록으로 끝나는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단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를 혐오하고 그래서 무관심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각종 거짓말과 연기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호도되어 치렀던 그 대선이 가져온 대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아픈 꾸짖음을 감독의 목소리가 아니라 당시 선거운동을 하며 소리쳤던 이명박 후보의 목소리로 전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잘한다고 할 게 아니라 지난 5년간 잘했어야지, 어제 못한 사람이 내일 잘할 수 있어요? 정권을 바꿔야 합니다." 이 당시 유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발언은 2012년 <MB의 추억>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온다.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MB의 추억>을 통해 보여주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당시의 이 유세 발언은 지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또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X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문제”라고 한 전여옥 전 의원의 발언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MB의 추억>은 우리에게 거짓말과 명연기로 코미디가 되어버린 당시 대선의 풍경을 아프도록 웃기게 보여준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 명연기.

정치광고 속 후보들의 이미지 전략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흘러내리던 한 방울의 눈물, 그리고 쐐기를 박는 말.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 TV광고는 이미지가 정책보다 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정치광고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물론 대중들이 그 광고에서 존 레논의 ‘이매진’이 담고있는 반전, 무신론, 무정부주의 등의 사상을 보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고 속에는 아무런 정책이나, 적어도 정책에 관련된 뉘앙스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왜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것은 대선을 며칠 앞두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대선 광고는 이미지 전쟁 중이다.

좋은 대통령 정동영, 네거티브 전략
정동영의 광고전략은 네거티브 전략이다. 메인 타이틀로 ‘좋은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은 반대로 ‘나쁜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인 셈. ‘프리허그’를 차용한 첫 광고는 서로 안아주는 장면들과 정동영이 등장하면서 ‘이제 희망을 안으세요. 여러분의 희망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연결되고 거기에 사람들의 “좋은 대통령 되세요”라는 말에 정동영이 “따뜻하고 행복한 나라 함께 만드시죠.”라고 하며 끝난다. 광고 컨셉은 따뜻하고 행복한 이미지를 프리허그를 통해 보여주면서 여기에 정동영 후보의 모습을 넣어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행복을 꿈꾸는 소년’편 역시 이 범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의 행복을 꿈꾸는 정동영과 그간의 정치행적을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약속하는’ 말로 집약적으로 풀어내면서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정동영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광고들은 본격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끄집어낸다. 다분히 젊은 세대의 표심을 의식한 ‘랩 배틀’편은 랩이 가진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컨셉을 이명박 후보의 ‘나쁜 대통령’ 이미지를 끄집어내는데 활용한다. 또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락 버전으로 흘러나오면서 ‘나쁜 대통령’의 거짓말을 부각시킨 ‘거짓말’편도 이 맥락을 거의 이어가고 있다.

정동영의 광고는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에, 상대편 후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병치한다. 지나친 네거티브 전략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가운데, 정동영 후보는 이에 대해서 “상대편이 워낙에 문제가 많다”는 쪽으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정동영 후보의 광고는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 ‘상대방이 나쁘니까’ 라는 진술방식은 자칫 국민의 선택을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몰고 가는 정치적 냉소주의로 흐를 수 있지 않을까.

경제 대통령 이명박, 다 나빠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
정동영 후보의 공세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광고는 그 자체로 답변을 담고 있다. ‘욕쟁이 할머니’편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왜 하필이면 이명박 후보가 찾아간 인물이 욕쟁이 할머니여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광고는 고도의 심리적 장치들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먼저 욕쟁이 할머니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을 감정이입시키는 부분에서부터 살아난다. 이명박 후보는 그것이 뭐든 이 광고 속에서 욕을 먹는다. 이것은 현실에서 그 자신이 이런 저런 구설수로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을 고스란히 광고 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 욕은 욕쟁이 할머니라는 캐릭터로 들어오면서 부정을 위한 욕이 아닌 긍정을 위한 욕으로 치환된다.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럴 에이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이것은 욕쟁이 할머니의 입으로 나오는 국민들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욕들은 조금씩 색깔을 달리한다.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 밥 더줘? 더 먹어 이놈아.” 욕을 먹던 이명박은 이 부분에서 밥을 먹는다. 즉 욕은 욕쟁이 할머니의 진술과 행동을 통해 밥이라는 격려로 바뀌게 된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져지는 이 말은 설사 욕먹을 짓을 했더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데 밥이라도 챙겨주자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끌어낸다. 밥은 여기서 표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어지는 이명박 후보의 ‘살려주이소’편도 결국 경제 이야기다. 여기서는 “살려주이소”라는 말의 힘에 기대어,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부각시키면서‘경제를 살려달라’는 의미를 끄집어낸다. 시장과 서민들의 이미지에 눈물을 보태면서 이명박 후보는 상대적으로 허점이 될 수 있는 구설수들을 ‘경제를 살리라’는 지상과제 아래 불식시킨다. 한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 다른 한편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넣어 지역배분까지 고려하는 이명박 후보의 광고는 치밀한 전략과 한 가지 메시지에 천착하는 힘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컨셉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놓고 보면 위험한 발상은 아닌가 짚어봐야 할 것이다.

반듯한 대통령 이회창, 아직도 반듯한 이미지?
광고 전략으로서 개인의 이미지보다는 정책이 가진 이미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회창 후보의 광고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 된다. 광고는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 무너진 교육을 안타까워하는 선생님의 마음, 어려운 현실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가장의 마음을 안다는 진술 끝에 이회창 후보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출마선언과 낙방을 ‘국민의 마음을 알게된 계기’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로써 이 광고는 가정, 교육, 사회, 경제 전반을 모두 담으면서 거기에 ‘반듯하다’는 한 마디로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를 세워놓는다.

감정적인 소구를 하기보다 그저 담담하게 내용을 담았다는 점은 인정할 만 하지만, 이미지 정치광고가 한창인 요즘, 광고로서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광고에 힘을 쓰지 못했던 이회창 후보의 광고가 다시금 떠오르는 건, 당시에 보였던 정책적인 뉘앙스들이 여전히 광고 속에 스며있고, 이회창 개인의 이미지가 지난 대선과 거의 다르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똑같은 반듯한 이미지가 이번에는 힘을 발휘할지 두고볼 일이다.

광고의 이미지, TV토론으로 이어지길
문국현 후보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실제로 국민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깨끗함, 글로벌 경제인, 존중하는 인물로 내세운다. 문국현 후보가 광고로 세우는 이미지는 ‘믿을 수 있는 경제대통령’, 즉 경제도 알고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서 끌어온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점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광고 중간 이후부터 컨셉이 하나로 집중되기보다는 문국현 후보의 다양한 일면을 나열하고 있어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권영길 후보는 그 칼날을 삼성에 직설적으로 겨누면서 정치가 혼탁하고 경제가 어려운 것이 ‘60년 부패 고리’에 있으며 그것을 끊는 자신이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 될 것임을 강조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삼성을 대변하는 TV와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터뜨리는 장면은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하지만 경제적 이슈가 최고의 가치가 된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이런 이미지가 효과를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권영길 후보는 광고를 통해 확실한 자기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정치광고시대에 대선 후보들의 광고는 이제 어떤 이미지를 내세우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감성적인 이미지로서 후보를 어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언어가 영상이 된 영상시대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광고 이미지들이 정책으로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상시대에 광고가 아닌 정책 대결을 보여줄 수 있는 TV토론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광고의 이미지가 TV토론에서의 정책과 잘 맞물리는지, 유권자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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