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꽃' 명작으로 만든 김희원 PD, 특급 드라마 연출자가 나타났다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돈꽃>은 막장이 아니냐는 의심에서 시작해 명작으로 끝을 맺었다. 사실 우리가 막장이라고 부르는 드라마의 범주는 애매모호하다. 지나치게 자극을 추구한다거나 혹은 만듦새가 엉성해 도무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드라마를 흔히 막장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그저 ‘기업극화’나 ‘복수극’ 혹은 ‘출생의 비밀’ 같은 코드들을 무조건 막장이라는 선입견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막장과 명작으로 가르는 건 결국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만듦새에 있고, 또 그 만듦새가 지향하는 일관된 메시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돈꽃>이 그 흔한 복수극과 기업 내의 권력 투쟁 같은 흔한 소재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명작이 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이 작품이 가진 완성도 높은 만듦새와 일관된 메시지에 있다.

<돈꽃>의 완성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김희원 PD의 연출이다. 김 PD는 여타의 막장 드라마들이 하는 ‘속도’에 대한 강박 같은 걸 애초부터 벗어버렸고, 그래서 느릿느릿 읊조리듯 이어지는 대사들에 대한 집중력을 만들었다. 이 부분은 <돈꽃>이 시청자들을 조금씩 빨려들게 만든 가장 큰 힘이다. 막장드라마들의 경우 그 허술한 개연성을 가리고 자극적인 전개를 앞세우기 위해 빠른 속도의 연출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인물들에 깊게 몰입할 수 없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꽃>은 아주 천천히 장면들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들이 그 인물의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바로 이점은 시청자들이 꽤 많은 <돈꽃>의 인물들에 몰입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감정들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대립구도 속에서도 단순 선악구도로 빠지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돈꽃>의 연출에서 큰 역할을 한 건 배경음악이다. 조금씩 깔리는 선율의 리듬감은 일관된 연출의 묘를 만들어냈고, 드라마에 비장미를 더해줬다. 자본의 세상에서 좋아 보이기만 하는 행복의 실체가 결국 돈으로 좌지우지된다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드러내는 이 작품은 그래서 이러한 비장미가 더해져 비극의 형태를 가능하게 했다. 현대판 비극이 어쩌면 자본이라는 새로운 신에 의해 축조된 욕망이 만들어내는 거라는 걸 드라마는 메시지를 통해 보여줬고, 거기서 장중하고 일관된 배경음악은 그걸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돈꽃>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이러한 쉽지 않은 작품을 잘 소화해낸 연기자들의 공이다. 장혁은 자신까지 파괴해가는 복수극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전하는 처연함 같은 걸 제대로 표현해냈고, 이미숙과 이순재는 역시 베테랑 연기자로서 드라마의 극적 갈등을 만드는 양대 기둥을 세워주었다. 이 바탕 위에서 박세영이나 장승조 같은 젊은 연기자들은 물론이고 임강성, 박정학 같은 배우들까지 어느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촘촘한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에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해준 건 역시 김희원 PD의 연출이다.

지금껏 우리는 드라마가 작가의 작품이라고만 생각해온 경향이 있다. 물론 지금도 작가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또 연출자 중에도 몇몇은 작가보다 더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돈꽃>의 김희원 PD만큼 작품에 있어서 연출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연출자는 흔해 보이지 않는다. <돈꽃>이 명작이 된 데 있어서 그의 연출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 면이 있다.(사진:김희원 PD, MBC)


많은 드라마들이 배워야할 ‘돈꽃’의 미학

도대체 이 그리스 비극을 연상케 하는 비장미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제 2회만을 남긴 MBC 주말드라마 <돈꽃>을 되돌아보면 이 작품이 현재의 드라마 현실에 있어서 독특한 아우라를 남기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세태를 담는 가벼운 소품들이거나 고유의 문법을 따라가는 장르물이거나 혹은 자극적인 코드들로 버무려내는 뻔한 막장극 같은 것들이 안타깝게도 지금의 드라마 세상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간간히 명작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더더욱 그런 명작들이 소중하게 다가오지만.

<돈꽃>은 오랜만에 보는 정통 비극이다. 이 드라마의 서사구조는 그리스 비극의 그것을 거의 닮았다. 세상 밖으로 내쳐진 주인공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오는 과정이고, 자신을 버린 자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이다. 그런데 그 복수의 대상이 친족 간에 벌어진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훨씬 근원적이고 원초적이다. 

이런 점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건 주인공인 강필주(장혁)와 정말란(이미숙) 그리고 강필주와 장국환(이순재)의 관계다. 강필주는 자신의 가족을 모두 비극으로 몰아넣은 정말란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가깝게 지내온다. 그건 마치 부모 자식 같은 관계이면서도 연인 관계이기도 하다. 결국 강필주가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면서 이 모든 관계를 깨버린다. 이건 정말란에 대한 복수지만, 그 과정에서 관계의 당사자였던 강필주 역시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된다.

이건 강필주와 정말란의 아들 장부천(장승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오며 형제 같은 우정관계를 만들어왔다. 물론 겉으로는 강필주 스스로 ‘장부천의 개’라고 지칭하며 그를 위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애증만큼 끈끈한 형제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죽을 위기에 처한 장부천을 강필주는 애써 구해낸다. 물론 그들은 청아그룹의 권좌를 놓고 죽고 사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운명이지만.

강필주와 나모현(박세영)의 관계는 더더욱 애처롭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모현에 의해 강필주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자신이 청아그룹과 얽히게 된 것도, 그래서 진짜 사랑이라 여겼던 장부천과의 부부관계도 모두 강필주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걸 확인했고, 장국환(이순재) 명예회장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 사실을 확인한 나모현으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강필주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강필주는 청아그룹의 꼭대기에 오르게 되지만 그건 자신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극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복수극은 자신이 한 평생을 들여 만들어온 관계들을 깨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자신 또한 파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강필주가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복수극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자신을 파국으로 모는 과정과 동일하다. <돈꽃>이 정통적인 비극의 틀을 갖추고 그 어떤 드라마보다 비장해지는 건 이런 드라마의 비극적 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복수의 완성과 정점으로 오르는 성공의 과정이 동시에 파국의 과정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이 드라마의 제목 속에 그 답이 들어가 있다. 모두가 꿈꾸는 꽃처럼 화려해 보이는 욕망이 사실은 돈으로 만들어진 허상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 <돈꽃>이 특별한 가치를 가진 드라마라는 것은, 자본이라는 물질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낸 흔치않은 비극이라는 점 때문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자손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는 장국환 회장이라는 캐릭터는 이 <돈꽃> 세상의 추악함과 비정함을 현시하는 인물이다. 그는 순혈만을 인정하고 혼혈은 심지어 그룹을 위해 제거해야할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인물이다. 필요하면 정략결혼을 시키고, 또 필요하면 장인에게 자살을 사주하기까지 하는 인물. 갖가지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먹고 모든 걸 말 한 마디로 다 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는 <돈꽃> 세상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그 거대한 괴물과 마주하고 그를 무너뜨릴 신탁을 받은 강필주라는 운명적인 영웅의 서사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로 우리네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보는 무게감 있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비장미 넘치는 연출과 절제미가 뛰어난 연기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돈꽃>의 미학은 갈수록 가벼워지기만 하는 드라마들이 배워야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사진:MBC)

<질투>, 조정석표 웃픈 멜로 제대로 터진 까닭

 

사랑해요 표나리그의 방안 가득 채워진 그림들은 아마도 이 짠내 가득한 남자의 마음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이화신(조정석)의 방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표나리(공효진)는 그 그림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간 이화신이 했던 어린아이 투정 같던 그 행동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화를 내고 삐치고 투덜대던 그 모든 행동들이 사실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가 서로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도 억지로 괜찮은 척 하려했던 이화신의 짠내나는 사랑과 우정이었다는 것을.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질투의 화신>처럼 희비극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단번에 보여주는 멜로는 흔치 않다. 표나리를 사이에 두고 친구인 고정원(고경표)과 갯벌에서 주먹다짐을 했던 이화신이 온 몸에 뻘을 묻힌 채 홀로 걸어가는 장면은, 표나리와 고정원이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묻은 뻘을 닦아주는 장면과 교차된다. 그러니 혼자 그들을 위해 자리를 뜨는 이화신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슬프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렇게 걷던 그가 목 뒤에서 꿈틀대는 낙지를 쑥 꺼내놓는다. 그 짠한 장면을 깨는 이 웃긴 상황은 그러나 낙지에게 괜스레 화를 내며 떨어지라고!”를 외치는 이화신의 모습을 통해 더더욱 웃기면서도 짠한 장면이 된다.

 

이렇게 웃픈이야기들은 애초에 이화신이 남자의 몸으로 유방암에 걸리는 흔치 않는 상황을 통해 예고된 바 있다. 아무리 남자라고 하더라도 유방암은 유방암이다. 그러니 수술 받고 항암치료 받는 그의 상황은 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표나리와 함께 수술을 받고 수술 후 가슴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하기 위해 보정 브래지어를 하는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망한 형의 장례식장에서 이화신은 깊은 슬픔에 빠지지만 보정 브래지어를 하고 있는 게 엄마에게 탄로나 흠씬 두드려 맞는 장면은 또 웃음을 준다. 웃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웃긴 이 기묘한 희비극적 상황들. <질투의 화신>의 멜로가 독특해지는 지점이다.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 건 이화신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덕분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그는 이 양자를 모두 버리지 못한다. 고정원과 표나리가 가까이 지내는 것에 대해 질투하지만, 표나리가 그에게 잘 해주는 것이 불쌍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화신은 고정원이 생일이라며 그가 뭘 좋아하는지를 줄줄이 표나리에게 알려준다. 그 때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지으려 노력하는 이화신의 표정과 행동들은 짠내가 가득하다.

 

그렇게 갯벌에서의 주먹다짐을 한 후 고정원과 이화신은 관계가 데면데면해지지만, 그들은 동네 슈퍼에서 함께 거하게 소주를 마시며 금세 우정을 재확인한다. 계성숙(이미숙)과 방자영(박지영)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안주를 시켜달라며 두 사람의 양볼에 뽀뽀를 한다. 즉 그들의 우정은 계성숙이나 방자영처럼 남녀 간의 사랑으로 얽혀질 수 없는 대상 사이에서는 그 애정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돈독하다. 하지만 그들 앞에 표나리가 나타나자 관계는 다시 어색해진다. 애써 술에 취한 척 표나리를 연호하지만 그들 밑에 깔려 있는 어색함은 어쩔 수 없다.

 

<질투의 화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웃픈 캐릭터 이화신이고, 그 이화신이란 캐릭터를 가능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배우 조정석이다. 화를 내지만 쓸쓸해 보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그게 안쓰럽게 느껴지며, 지독히 슬픈 상황에서조차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건 조정석의 연기가 그만큼 디테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조정석표 웃픈 멜로.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 웃음도 짠함도 배가시키고 있다.

질투가 사랑이다,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

 

난 더 질투하는 엄마랑 살 거야. 더 질투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니까.” 빨강이(문가영)는 치열(김정현)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녀를 좋아하는 치열과 대구(안우연)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의 기준이 질투라는 걸, 자신을 두고 서로 같이 살자는 두 엄마들(친 엄마와 새 엄마) 이야기로 에둘러 말한 것. 이것은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독특한 사랑방정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이 드라마에서 빨강이가 중요한 것은 그녀가 흩어져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모두 엮어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절망한 그녀가 클럽에 갔다가 실랑이가 벌어져 경찰에 끌려가자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녀가 삼촌이라 부르는 락 빌라의 주인인 김락(이성재)은 물론이고, 그녀의 친삼촌인 이화신(조정석), 그녀와 함께 있던 치열의 누나인 표나리(공효진)와 그녀와 같이 온 고정원(고경표), 그리고 그녀의 친엄마인 계성숙(이미숙)과 새엄마인 방자영(박지영)이 모두 모인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모여 경찰서에서 나오며 그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진다. 표나리와 고정원, 이화신이 한 팀이고, 빨강이와 치열, 대구가 또 한 팀, 그리고 김락과 계성숙, 방자영이 나머지 한 팀이다. 그들은 그렇게 각자 팀을 이뤄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표나리를 사이에 두고 고정원과 이화신이 밀고 당기며,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치열과 대구가 또 친 엄마인 계성숙과 새 엄마인 방자영이 그리고 김락을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

 

<질투의 화신>은 이처럼 고교생의 풋사랑, 성장한 남녀의 일과 사랑, 딸을 두고 벌어지는 모성애 그리고 중년의 사랑 같은 다양한 양태의 사랑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 한 사람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론 앙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친구 그 이상이다. 심지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계성숙과 방자영이지만 그들은 빨강이의 엄마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빨강이의 집에 들어와 같은 침대에 누워 빨강이가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니 이 관계는 의외로 팽팽하다. 표나리와 고정원이 가깝게 지내는 걸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이화신은 질투로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그렇다고 거의 형제처럼 친한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회식 2차 노래방에서 부르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그저 유행가가 아닌 것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두 사람만이 공유한 비밀이 있다는 건 남은 한 사람을 굉장히 질투하게 만드는 일이다. 표나리와 이화신은 유방수술 동기(?)로서의 절대적인 두 사람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형의 장례식장에서 이화신이 절망하게된 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형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던 표나리와 고정원이 함께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웃는 장면 때문이었다. 자신과의 비밀인 유방암 수술을 한 사실을 고정원과 공유하는 줄 착각한 이화신은 그 비밀이 공개되는 것이 단지 창피해서 그렇게 화를 낸 것일까. 그것보다는 둘 만의 비밀이 공개됐고 그러면서 그들만의 비밀이 생긴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을까.

 

이미 빨강이가 말한 것처럼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은 그래서 누가 누구에게 더 친절하고 더 잘해주느냐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다. 그걸 바라보는 누군가의 폭발하는 질투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다가 차츰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사랑임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질투의 화신>이 그려내는 사랑법이다.

 

하지만 과연 질투만 더 많이 한다고 진짜 사랑일까.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대립하는 구도는 마치 솔로몬의 선택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치열하지만 결국 진짜 엄마를 가르는 건 아이를 위해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과연 <질투의 화신>은 어떤 선택을 하는 인물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미스코리아>, 치열한 일과 멜로가 만났을 때

 

역시 서숙향 작가의 멜로는 확실히 다르다. 그저 그런 잘 난 남자와 신데렐라의 이야기 따위는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드라마에는 치열한 일터의 현실이 있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구원하는 왕자 같은 남자? 아마도 여성들은 그런 판타지를 꿈꿀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서숙향 작가의 작품 속 남자들은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있음직한 그런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리얼리티 멜로라고나 할까. <별에서 온 그대>가 심지어 외계인을 등장시켜 여심을 사로잡는 판타지 멜로의 극점이라면 <미스코리아>는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리티 멜로의 극점이다. 97IMF 시절, 한창 벤처 붐이 일었던 그 시대의 공기를 <미스코리아>는 제대로 포착해낸다. 순수한 벤처 정신을 가진 많은 창업자들이 한편으로는 조폭 같은 대부업체의 손에 의해 도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벤처 투자가라는 명목으로 된다 싶은 업체를 사냥하는 이들에 의해 회사를 빼앗겼던 시절이다.

 

비비화장품 주변을 맴도는 정선생(이성민)이나 이윤(이기우) 같은 캐릭터는 그래서 당시의 조폭과 벤처 투자가라는 벤처의 위협을 표징하는 인물들이다. 비비화장품 사장 김형준(이선균)은 순수한 벤처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지만 바로 그렇게 곧기 때문에 번번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성희롱이 일상이 된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연희) 역시 이 사라져버릴 직종의 끝자락에서 미스코리아라는 지푸라기를 잡고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다.

 

미스코리아라고 하면 어딘지 부정적인 인상이 먼저 떠오르지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를 선택하는 건 그녀가 결국 가진 것이 몸뚱어리 하나뿐이라는 그 절박함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그녀가 미스코리아를 키워내는 마애리(이미숙)가 아닌, 가진 건 없지만 진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미스코리아로 만들어주려는 김형준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멜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상품화되는 몸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몸으로서 오지영이 미스코리아가 되려는 진심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 언젠가부터 멜로는 사랑 하나만이 아닌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성들의 달라진 삶이 반영된 탓이다. 점점 늘고 있는 직장여성들에게 사랑은 일과 무관하지 않고 또 일 역시 사랑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을 다루는 멜로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실로 드라마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서숙향 작가의 멜로드라마가 남다른 것은 그 일의 세계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차별이 존재하고 그러기 때문에 파리 목숨이 되기도 하는 일하는 여성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파스타>가 라스페로라는 이태리 레스토랑의 주방을 사나운 불길과 날카로운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그려지듯이 <미스코리아>의 드림백화점의 엘리베이터라는 폐쇄된 공간은 숨 막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텨내는 감옥 같은 공간으로 그려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 앞에 나타난 남성들이 사랑 그 자체의 마취적인 탈출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일을 지지해지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물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일에서의 성공과 사랑으로의 성공. 이것은 현대여성들이 꿈꾸는 가장 현실적인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별에서 온 그대>에 밀려 조금 저조한 시청률을 냈지만 그렇다고 <미스코리아>가 실패한 드라마는 아니다. 97년의 한 시대적 풍경 속에서 그려낸 서숙향 작가의 일과 사랑은 충분히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서숙향 작가가 여성들의 성장 멜로에 있어서 각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선악을 넘어, 관계의 화학반응으로 가는 '신데렐라 언니'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 '신데렐라 언니'의 그 언니인 은조(문근영)는 그녀를 향해 해맑게 미소 짓는 기훈(천정명)에게 다짜고짜 쏘아댄다. 기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넌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니?"하고 되묻는다. 어쩌다 은조는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고 여기는 아이가 되었을까. 기훈의 질문은 전통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그 언니가 왜 그토록 악독했던가 하는, 지금껏 아무도 던지지 않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이 악독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소외된 그 언니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그녀가 그토록 독해지고 매정해진 사연을 찾아낸다.

그녀의 어머니 송강숙(이미숙)은 한 때 걸핏하면 계집질 하는 남자를 잡아놓기 위해 광목천을 끊어다 죽으려고까지 했던(물론 연기지만) 독한 인물. 그녀는 인생은 그처럼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며, 그러다 끽 잘못되더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얻을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토록 진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엄마가 그 모든 것이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 은조가 느꼈을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 자신의 삶이 지독히도 구차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효선(서우)이 아버질 좋아는 해? 효선이 아버지 그냥 뜯어먹을 게 많은 남잔 거야?"하고 묻는 은조는 그래서 필사적이다. 하지만 엄마 송강숙에게 그건 '거지같은 질문'이고 괜한 '청승'이다. 그래서 "좋아서 산다고 말해주면(거짓말이라도) 용서해준다"는 은조에게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잔인한 말을 해댄다. 은조를 엄마를 통해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더 이상 악역이 아니라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다. 술독에서 술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회초리를 맞아 피멍이 든 종아리에 고기 점을 붙여주는 기훈이 그저 "은조야"하고 불러주는 것에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달까지도 가겠다'는 기쁜 마음을 갖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기훈에게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듯이 따오기가 따옥 따옥 울듯이 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는 그 내레이션이 깊은 공감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은조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면서 그 독해진 사연을 들려주는 동안, 신데렐라인 효선은 그 몰이해 때문에 거꾸로 악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은조의 독한 행동 뒤에 숨겨진 상처받은 영혼을 보여준 후, 그로 인해 다시 상처받게 되는 효선의 마음을 찾아간다. 무엇하나 손에 쥔 게 없던 은조가 무엇이든 쥐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동안, 모든 걸 쥐고 있었던 효선은 차츰 은조에 의해 자기 것이 사라져가는 불행한 상황을 맞이한다.

그녀는 도저히 은조를 따라갈 수 없다는 데서 절망을 느끼면서, 질투가 존경의 차원으로까지 넘어가는 그 지점에 이르자, 입으로는 "언니야. 내가 잘 할께. 죽지마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죽어버려라'하고 외치는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형편없어지는 내 옆에서 근면성실하고 잘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은조에게 "네가 꼴도 보기 싫다"며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하고 외치는 효선의 마음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은조와 효선, 부딪치게 되는 이 두 인물의 속내를 이해하면서, 우리는 그녀들이 모두 악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진짜 악역은 누구일까. 눈앞에 언뜻 보이는 인물은 은조의 어머니 송강숙이다. 그녀는 자신의 구차한 인생의 이유가 모두 은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은조의 삶 또한 구차하게 만들어버리는 존재이며, 또한 모성애를 갈구하는 효선에게 엄마인 척 행동하면서 오히려 그녀를 망치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몹쓸 행동들도 자식을 가진 모성애의 한 차원으로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너 업고 쓰레기통도 뒤졌어. 더러운 거라도 안 먹이는 거 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뒤져 먹이고 너 탈났을 때, 밤새 열 오르고 니 눈동자 뒤로 까무룩 넘어가 흰자만 번뜩일 때,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신령님, 내 새끼 죽이기만 해보라고, 내가 가만 놔둘 줄 아느냐고, 하늘이고 나발이고 간에 한 입에 꿀꺽 삼켜 잘근잘근 씹어주겠다고, 사람으로 품위 지키면서 사는 거 그날 밤으로 포기했어." 송강숙의 이 대사는 진짜 악역처럼 보이는 그녀에게서 그 독한 행동의 이유를 찾게 해준다.

보통의 드라마가 선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는 반면, '신데렐라 언니'는 악역을 위한 드라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독한 면모를 가진 악역들의 뒤에 숨겨진 독한 사연을 끄집어내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드라마.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에는 실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어떤 화학작용을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신데렐라 언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술도가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화학작용이, 상당부분 술이 주는 상징과 맞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소재들이 모여 부딪치며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결국 술이라는 하나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래서 술은 독하면서도 감미롭다.

세상에 진정으로 악하고 독한 자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세상의 악역은 어찌어찌하다 그 역할을 맡게 되었을 뿐, 실제 악이 아니다(실제 악은 오히려 '가난' 같은 엉뚱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인물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내면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악역이 되어버린 그들이 서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하나로 얽혀 만들어내는 소리는 아비규환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가 될 수도 있다. 저 은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술독에 술이 익어가던 그 소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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