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을 웃음으로 채우는 개그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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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멤버들의 주 직업은 가수다. 그 가수들 틈에 유일하게 개그맨으로 끼어 있는 이수근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가수들이 웃기는 것은 덤이지만, 개그맨이 웃기지 못하는 것은 존재 자체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그맨들이야 언제 어디서건 억지로라도 설정을 만들어 웃기려고 노력하는데 적응이 되어있기 마련. 하지만 꾸미지 않는 모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이수근이 ‘1박2일’에서 웃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일꾼을 자처한 점은, 개그맨으로서의 이수근보다 시골 생활에서의 맥가이버 같은 이수근 개인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초반부 웃기는데 있어서 가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이수근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가 개그맨이라는 점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반면, 이수근이 개그맨으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자신 속에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랑비에 옷 젖듯 보여진 그의 캐릭터는 일꾼 이미지를 바탕에 만들어줬고, 그 위에서 개그는 좀더 생활 밀착형이 되었다.

‘1박2일’ 백두산 특집편의 첫 번째 방송에서 출연진들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배라는 한정된 공간은 사실 무언가를 늘 보여줘야 한다는 쇼의 입장에서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특정 공간에 도착해 어떤 미션을 수행하거나, 돌발적인 상황을 맞아 새로운 여행의 국면으로 들어가거나 하는 것이 ‘1박2일’의 묘미라면, 그 중간 중간 이동시간 같은 빈 공간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이 빈 공간은 이수근에게는 단독으로 올려진 개그콘서트 무대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어딘가로 떠날 때, 그 지루해질 수 있는 시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던 재주 많은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1박2일이라 엉덩이에 새겨진 운동복을 보고는 “중국사람들이 보면 꿰맨 자국인 줄 알겠다”고 하거나 다들 엉덩이를 쭉 빼면서 “1박2일!”하고 소리치며 즐거워할 때, 혼자 거꾸로 옷을 입는 것만으로 큰 웃음을 주는 이수근은 그가 역시 개그맨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배 안에서 중국인 출신 여승무원들과 벌어진 즉석 짝짓기 게임에서 후춧가루댄스를 추고, 엉터리 중국어로 웃음을 주는 것은 저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서는 어쩌면 식상한 개그일지 모르지만, 이렇듯 딱히 할 것 없어 무료해질 수 있는 시간 속에서는 포복졸도의 웃음으로 다가온다.

‘1박2일’속에서의 개그맨 이수근이 가진 이미지는 지금 세상에서 비범함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을 닮았다. 그들은 늘 어느 한 분야에서는 베테랑이었지만 이 어려운 시국 속에서 평가절하 되었고, 그것을 또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요즘처럼 일보다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진짜 일꾼이면서, 그 어려움조차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존재들이다. 인생길이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길에서의 그 과정을 닮았다면, ‘1박2일’에서 ‘생활 속에서의 개그콘서트’를 보여주며 빈 공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는 이수근은 그 여행길에서 힘겨울 때마다 얼토당토않은 말로 웃음을 주는 오랜 친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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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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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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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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