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드라마 경계 허무는 무한상사가 말해주는 것

 

김은희 작가가 쓰고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다. 아쉽게도 조진웅은 스케줄 때문에 합류를 못했지만 <시그널>의 연기자들도 대거 합류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시그널>이 다시 떠오른다. 본격 스릴러 장르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시그널>. 하지만 이건 <무한도전>에서 8월 방송을 목표로 준비 중인 무한상사이야기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상사는 알다시피 <무한도전>의 상황극 콩트 시리즈 중 하나로 만들어졌다. 즉석 상황극으로 시작했던 무한상사는 그러나 <레미제라블>이 주목받는 콘텐츠로 떠올랐을 때는 그 작품을 패러디한 뮤지컬로 기획되기도 했다. 이번 <시그널> 제작진이 합류한 무한상사가 추구하는 건 액션 블록버스터다. 역시 <무한도전>다운 시의적절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무한도전>이 늘 새로운 영역에 열려 있고 그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어 도전해온 건 애초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처럼 김은희 작가 같은 최고의 작가가 아예 대본 작업에 들어오고 장항준 감독이 연출하며 역시 <시그널>의 연기자들이 함께 하는 도전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런 작가, 감독, 배우들의 예능에 대한 열려있는 자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배우들 중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걸 꺼리는 이들도 많다. 또 드라마 작가들 중에도 예능이란 영역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예능이라는 분야가 꽤 오랜 시간 동안 폄훼되고 평가절하 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영역 간의 위계는 깨지고 있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시리즈 성공은 그 신호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예능의 방식이 드라마에서 오히려 힘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프로듀사>처럼 예능과 드라마가 영역을 넘어서 시너지를 낸 작품도 나왔다. 최근의 이른바 성공하는 작가들 중에는 시트콤을 포함한 예능 작가 출신들이 더 많아지는 경향이 생긴 것도 우리가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예능의 방식(집단 창작 같은)이 사실은 얼마나 이 시대에 적합한 방식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김은희 작가 역시 시작은 <위기일발 풍년빌라>라는 시트콤을 통해서였다. 지금의 최고의 작가의 위치에 섰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건 예능적인 창작방식에 익숙한 열려 있는 자세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시그널>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은 김은희 작가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열린 마인드를 꼽기도 했다. 타인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것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

 

제 아무리 <무한도전>이라고 해도 예능 프로그램의 프로젝트에 김은희 작가가 선선히 나서 대본을 쓸 수 있었던 건 이런 드라마-예능 할 것 없이 위계 없는 그녀의 열린 마인드가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최근 잘 되는 작가들은 대부분 열린 마인드로 집단 창작의 시너지를 만들어낸 작가들이다. 이번 무한상사에서 특히 기대되는 건 김은희 작가와 <무한도전>의 만남을 통해 드라마와 예능의 또 다른 시너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예능적 방식이 드라마에도 힘을 실어주었듯이 드라마의 방식이 예능에도 힘을 실어주기를.

<응팔><꽃보다>까지, 이우정 작가의 놀라운 존재감

 

한 매체가 제기한 이우정 작가 부재설은 사실무근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사안이 말해주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우선 이우정 작가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지금껏 참여해온 작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큰 성과를 가져왔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네 방송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12>이 지금껏 KBS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고 있고, <꽃보다> 시리즈는 물론이고 <삼시세끼>까지 연달아 대박을 터트리는 놀라운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응답하라> 시리즈는 예능 인력들이 드라마 판에 들어와 오히려 드라마에 신선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우정 작가 부재설 기사가 나오고 나서 대중들이 보인 반응은 <응답하라1988>에 대한 걱정과 우려였다. 그만큼 이우정 작가를 시청자들은 믿고 보는 작가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응답하라1988>은 속편은 본편을 넘지 못한다는 속설 자체를 뒤집고 매회 최고의 기록들을 경신중이다. 반응도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예능적인 요소보다 드라마적인 요소를 더 만이 발견할 수 있는 <응답하라1988>은 그래서 이우정 작가의 드라마판에서의 지분 또한 확연히 넓혀놓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모든 성취들을 이우정 작가 한 사람의 공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것은 혼자가 아니라 팀이 이룬 성취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우정 작가를 중심으로 나영석 PD, 신원호 PD, 신효정 PD 같은 PD군들이 있고, 그 작가들 중에도 최재영 작가나 김대주 작가는 물론이고 <응답하라> 시리즈를 함께 해온 다수의 작가군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이 모든 걸 진두지휘하고 관리해주는 이명한 본부장까지.

 

한 사람이 아니라 막강한 사단이 함께 이룬 성취라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들의 일들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일종의 시스템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를 연달아 진행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시스템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이우정 작가도 작가군들을 통해 이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애초에 이우정 작가 한 사람의 공백이 있다고 해도 큰 차질은 생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안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지금껏 프로그램에 대한 주목이 PD들에게 집중되었던 것과 달리, 작가에게 시선이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꽃보다> 시리즈나 <삼시세끼>,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면에 나서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였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 부재설이 나오자 즉각적으로 <응답하라1988>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예능에서부터 드라마까지 너무 많은 의존도에 대한 걱정이 쏟아진 건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존재감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물론 드라마에 있어서 작가들은 PD들보다 더 주목받는다. 거의 작가의 의지에 의해 드라마가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예능은 다르다. 예능 작가들은 PD들만큼의 지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만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능에서부터 드라마로 차츰 차츰 영역을 확장해온 이우정 작가는 지금 이러한 예능 작가에 대한 위치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가 가는 험난한 길은 그래서 수많은 예능 작가 후배들에게는 중대한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드라마의 제작방식을 답습하는 드라마도 아니고, 또 보통의 드라마 공식을 따르는 드라마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예능의 유전자를 가진 나무가 드라마라는 텃밭에서 쑥쑥 자라난 새로운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의 연속성을 따라가기보다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별로 구성되는 형태는 시트콤이나 콩트 같지만 그 심도가 드라마 이상이라는 점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우리가 매료되는 이유다. 예능 작가가 아니라면 시도되지도 또 나오지도 못했을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이우정 작가 부재설 해프닝은 그 자체의 사안만이 아니라 나아가 예능작가에 대한 새로운 존재감을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는 그 예능의 경험치들이 하나하나 쌓임으로써 그 경계를 뚫고 나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낸 작품을 <응답하라1988>에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행보와 성취는 향후 예능 작가에 대한 새로운 위상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인물에 최적화시킨 캐릭터의 힘, 연기는 함께하는 것

 

연기는 과연 연기자들만의 몫일까. 조금만 어설픈 연기가 나와도 연기력 논란이 나오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연기력 논란의 비판은 오롯이 연기자의 몫으로만 돌아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응답하라> 시리즈를 두고 보면 과연 연기가 연기자들만의 몫인가가 의심스러워진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응답하라1997>로 단박에 연기돌의 자리에 올랐던 정은지를 떠올려보라. 이 작품 속에서 정은지는 구성진 경상도 사투리를 툭툭 쏘아내며 극 중 캐릭터와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 후에 그녀가 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는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트로트의 연인> 같은 작품에서는 별다른 힘을 보여주진 못했다. 즉 연기도 괜찮은 캐릭터와 만났을 때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응답하라1994>의 고아라 역시 대표적인 사례다. 그녀는 이 작품에 등장하기 전까지 무수한 연기력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눈꽃>이나 <맨땅의 헤딩> 같은 드라마에서는 몰입이 안될 정도로 연기에 문제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응답하라1994>에서는 캐릭터라기보다는 고아라 자신이 등장한 듯한 몰입감을 보여줬다. 물론 그녀 역시 후속작인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는 그만한 연기를 보여주진 못했다.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의 마법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응답하라1988>의 혜리는 작품이 방영되기 전까지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그녀가 보여준 연기라는 것이 거의 없는데다가, 그녀의 인지도는 사실상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서 단 몇 초간 보여준 앙탈이 만들어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 혜리의 연기를 의심하는 시청자들은 거의 없다.

 

할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혜리의 모습이나 누나와 아옹다옹하는 모습, 또 좋아하는 선우(고경표)가 자신의 언니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슬퍼하는 모습은 혜리가 가진 연기의 좋은 잠재력을 드러내줬다. 무엇보다 캐릭터 그 자체인 듯 친구들 사이에서 스스럼없이 망가지는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오게 했다.

 

정은지부터 고아라, 혜리까지 <응답하라> 시리즈가 가진 특별한 무언가가 이들을 오롯이 연기에 몰입하게 해주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알다시피 캐릭터의 힘이다. 이우정 작가와 신원호 PD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러하듯이 드라마에서도 인물이 가진 특성을 파악해 거기에 캐릭터를 최적화시키는 방식으로 200%의 연기를 뽑아내는 이들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오히려 지금껏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거나 기회가 없었던 신인에 가까운 인물들이 훨씬 더 신선함을 주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정은지도 고아라도 혜리도 <응답하라>에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인물이었는지 대중들이 잘 알지 못했다. 연기도 연기지만 그 바탕을 깔아준 작품이 그들의 진면목을 드러내주었다는 것.

 

심지어 이것은 이미 여러 가지 연기를 보여줬던 연기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응답하라1988>의 박보검이나 고경표를 보라. 그들은 이미 여러 작품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던 연기자들이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더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다. 류준열이나 라미란, 김선영 같은 연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1988>로 인해 이들은 확실히 매력적인 연기자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물론 연기자는 그 어떤 상황에 어떤 역할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하겠지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그 결과로만 바라보면 연기란 연기자들만의 몫이 아닐 수 있다. 연기자라는 원석을 어떻게 캐릭터와 만나게 해 작품에 최적화시키는 것. 작품 전체로 보면 그것까지도 연기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응답하라>시리즈가 보여주는 연기자들의 마법은 그래서 여타의 무수한 연기력 논란을 잉태했던 드라마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지점이 될 것이다.



<응팔> 오인방,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까닭

 

tvN <응답하라1988> 역시 심상찮다. 이미 <응답하라1997>이 서인국과 정은지라는 가능성들을 발굴해냈다면 <응답하라1994>는 정우, 유연석, 김성균, 손호준 등을 스타덤으로 올렸다. 이제 <응답하라1988>의 차례다. 4회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이 드라마의 이른바 쌍문동 5총사에 대한 호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매력 터지게 했을까.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응답하라1988> 4회의 소주제는 ‘Can’t help ~ing’.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성문종합영어를 통해 영어문법을 배웠던 세대라면 익숙한 이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표현하자면 이제 이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가 되지 않을까. 연전연승을 하던 바둑천재 택이(박보검)가 신예에게 지는 징크스를 보이고 의기소침할 때 덕선(혜리), 선우(고경표), 정환(류준열), 동룡(이동휘)이 그를 찾아와 한 건 위로가 아니라 공감이었다. 골목집 이웃들이 위로할 때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던 택이는 차라리 욕을 하라는 친구들의 말에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저런 친구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응답하라1988>을 보면서 느끼는 시청자들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늘 툭탁거리고 어딘지 무심한 듯 해도 늘 마음으로 신경을 써주는 친구들. 아버지에게 유품으로 받은 목걸이를 풀고 다니라며 으름장을 놓는 선배 선도부원에게 보다 못해 선방을 날려버리고 할 말 안할 말 가리면서 해라고 뱉어내는 정환의 모습은 그들의 우정이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게 한다.

 

덕선과 경주 수학여행에서 우연히 스킨십을 하게 되고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갖게 된 정환이 속내와 달리 덕선에게 툴툴대는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다. 흔들릴 때마다 곡소리가 나는 만원버스에서 덕선을 지켜내려(?) 팔뚝에 힘줄이 빡 선 채 그녀를 보호하는 모습은 그 풋풋함에 보는 이들의 마음 한 구석이 푸근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게다.

 

먼저 가신 아빠를 대신해 반듯하게 살아가며 엄마를 챙기는 바른 생활 사나이 선우는 또 어떤가. 운동 잘 하고 공부 잘 하는 엄친아에다 선배의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두 눈 똑바로 뜨는 정의파다. 그가 맛없는 반찬을 매번 싸주는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고 꾹꾹 반찬을 다 챙겨먹는 모습은 소소해보여도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말이 거의 없지만 어딘지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는 듯한 택이는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모친상을 치르고 돌아온 성동일이 택이가 따라주는 소주 한 잔을 마시며 넌 언제가 엄마가 가장 보고잡냐고 물었을 때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항상 그렇다고 말하는 택이에게서는 이 어른처럼 의젓해 보이는 그가 사실은 엄마가 그리운 아이라는 걸 보게 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늘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고 웃음을 주는 동룡이는 어딘지 겁 많게 생겼지만 귀여운 사고뭉치다. 어떤 또래집단 친구들 사이에 꼭 한 명씩 있을 법한 그런 친구. 늘 주인공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항상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 그 때문이라는 걸 후에야 알게 해주는 그런 친구가 바로 동룡이다.

 

여자 주인공 덕선은 공부는 잘 못해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고 언니와 매일같이 으르렁대고 싸우지만 그 누구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은 아이다.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오열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나 또 아빠의 심경이 못내 신경 쓰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 마음씀씀이가 엿보인다. 여자가 아닌 여자사람친구로 있던 그녀가 차츰 여자로서의 마음을 갖게 되는 그 과정은 보는 이들마저 설레게 만든다.

 

혜리, 고경표, 류준열, 박보검, 이동휘. 우리는 <응답하라1988>이 시작될 때까지 이들의 면면들을 잘 몰랐던 게 사실이다. 물론 박보검이야 다른 드라마에서도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였던 친구이고 고경표도 최근 들어 영화 등을 통해서 연기변신까지 보여주고 있지만 류준열이나 이동휘는 잘 눈에 띄지 않았던 연기자들이다. 물론 혜리는 연기력 논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벌써부터 매력적인 연기자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 속에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들이 <응답하라1988>의 캐릭터를 만나 그 매력을 풀풀 풍기고 있는 것. 아마도 <응답하라1988>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이들의 매력 터짐의 비결은 역시 찰떡궁합 캐릭터와의 조합에서 나온다. 역시 놀라운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안목이자 재주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단 몇 회만에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다니.



tvN의 히트상품들 뒤에는 이명한 본부장이 있다

 

“<삼시세끼><꽃보다 할배>도 이명한 본부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죠.” <삼시세끼>의 최재영 작가는 tvN 이명한 본부장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제작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죠. 또 사업적인 인간관계가 뛰어난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둘을 다 겸비한 사람은 많지 않죠. 이명한 선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삼시세끼>의 나영석 PD에게 가장 존경하는 선배를 물어보자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명한 본부장(사진출처:tvN)

흔히들 이명한 사단이라고 부르는 이들, 이를테면 나영석 PD를 위시해 신원호 PD나 이우정 작가 최재영 작가 등등은 하나 같이 지금의 자신의 위치가 가능하게 해준 인물로 이명한 본부장을 꼽는다. KBS 시절, <해피선데이>에서 <12><남자의 자격>으로 주말 예능의 신기원을 세운 그 이면에서부터, tvN으로 이적해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응답하라 1997> 등의 성공은 물론이고 최근 고민구 PD가 성공시킨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의 이면에도 이명한 본부장이 있다.

 

최재영 작가에 의하면 <삼시세끼>는 실로 기존 예능의 제작방식으로 보면 망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들의 총집합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나영석 PD와 제작진들이 첫 촬영 후 이건 진짜 망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그런 아이템을 누가 선뜻 하라고 지지해주겠어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뒤에서 늘 든든하게 일선의 PD와 작가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이명한 본부장이라는 것이다.

 

그가 본부장이 된 후 tvN은 어떤 안정기에 들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중심 축은 나영석 PD와 신원호 PD라는 쌍두마차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나영석 PD는 금요일 밤의 헤게모니를 tvN으로 가져온 일등공신이다. 그는 지난 수개월 동안 지상파를 압도하는 프로그램들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금요일 밤은 tvN이라는 공식을 암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나영석과 신원호에 대한 콘텐츠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상황, 이제 이명한 본부장이 손대고 있는 건 그런 블록버스터가 아닌 중간 규모의 콘텐츠들이다. 그는 방송사의 힘은 결국 허리가 되어주는 콘텐츠들로 인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 <한식대첩>, <문제적 남자> 같은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집밥 백선생>은 이미 5% 이상의 시청률을 내는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만일 이 중간 규모의 프로그램들이 든든한 허리가 되어준다면 tvN은 앞에서는 나영석, 신원호가 끌고 뒤에서는 이들 프로그램들이 받쳐주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명한 본부장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후배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이다. 또 못하는 걸 하게 만들기보다는 잘 하는 걸 더 잘하게 해주는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나영석 PD는 과거 KBS시절부터 자신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나머지 것들을 이명한 본부장이 처리해줬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흔히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그 주역으로서 PD만을 꼽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가 백상 대상을 받을 때 얘기했던 것처럼 프로그램의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제작진들과 스텝들의 노력이 있다. 이명한 본부장은 그런 점에서 이 괜찮은 프로그램들이 나올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금의 지상파를 위협하는 콘텐츠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tvN의 숨은 심장이다.



<삼시세끼>, 더할 나위 없었던 손호준이라는 대타

 

이런 친구가 잘 돼야 하는데...” <삼시세끼>의 손호준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나영석 PD는 물론이고 제작진마저 좀 쉬면서 하라고 할 정도로 손호준은 쉴 새 없이 일을 찾았다. 차가워진 날씨에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는 건 기본이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수수밭으로 들어갔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다소곳이 앉은 모습은 영락없는 이서진이라는 대선배 앞에서 칭찬받고 싶은 후배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스트로 방문한 최지우에게 지금껏 본 사람 중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모습 역시 그저 예의가 아니라 진심이 묻어났다. 신문지를 구겨 건네주는 최지우 때문에 절로 미소가 번지는 손호준은 진심 그녀가 옆에 있다는 게 신기한 눈치였다. 김장을 담그기 위해 고춧가루를 빻으면서도 손호준은 최지우에게 칭찬받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손호준은 20대를 그리 평탄하게 보내지 못했다. 일이 없어 배고픈 나날들을 보낸 적도 많았고 그럴 때 도움을 준 지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언 30대에 접어들어 겨우 청춘의 꽃이 핀 인물이다. <응답하라 1994>로 이름을 알린 손호준은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했다.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옥택연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잠시 출연한 것이지만 손호준은 확실한 자기만의 존재감을 남겼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어딘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표정과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일을 하는 몸에 밴 습관은 보는 이들마저 짠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 짠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우리네 청춘들의 고단함이다. 열심히 하려고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청춘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그에게서는 역력히 느껴졌다. 이서진이나 최지우 같은 선배들이 자신이 만든 된장국을 먹고 맛있어 하자 얼굴 가득 숨길 수 없이 번지는 미소에서는 웃음과 함께 짠함도 동시에 묻어났다. 도대체 얼마나 절실한 삶을 그는 살아왔던 것일까.

 

옥택연의 대타로 잠깐 들어왔지만 이서진의 말대로 택연이보다 더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은 손호준에게서는 저 <미생>의 장그래가 느껴진다. 자신 앞에 놓여진 현실 앞에서 노력이 부족했다고 오히려 자신을 탓하는 장그래처럼 <삼시세끼>의 손호준은 마치 남다른 노력을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노력은 질이 다르다고.

 

<삼시세끼>의 손호준을 보며 <미생>의 장그래가 떠오른 건 그 남다른 노력이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심지어 자학적인 절실함으로까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옥택연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준 손호준은 <미생>의 장그래에게 오차장이 써준 문구처럼 더 할 나위 없는출연자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로 이런 친구들이 잘 되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꽃청춘>에서 느껴지는 이우정 작가의 진가

 

<꽃보다 청춘>을 보니 <응답하라 1994>의 캐릭터들이 새롭게 보인다. <응답하라 1994>의 해태 손호준의 순수하다 못해 순진할 정도의 촌놈 기질이나, 칠봉이 유연석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착한 모습, 그리고 빙그레 바로의 나이는 어려도 의젓한 모습은 <꽃보다 청춘>이 보여주는 그들의 진짜 모습에서도 묻어나왔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비행기 기내식조차 신기하게 생각하는 토종 손호준은 이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에서 얼떨떨한 표정이 역력했다. 먹는 것조차 토종 한국식만을 고집해온 탓에 라오스에 도착해서도 입맛에 맞지 않아 아무 것도 챙겨먹지 못하는 손호준은 <응답하라 1994>에서 보여줬던 촌놈 캐릭터 그대로였다.

 

반면 유연석은 손호준과는 정반대로 뭐든 잘 먹고 어떤 상황에서든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 것도 못 먹는 절친 손호준을 챙기기 위해 과일을 챙겨 먹이는 유연석에게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속 깊은 자상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 역시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가 보여주던 그대로다. 능력자지만 타인을 바보처럼 묵묵히 챙기는 그런 캐릭터.

 

이렇게 드라마 속 캐릭터와 실제의 모습이 같은 건 바로도 마찬가지. 가장 나이 어린 막내지만 툭하면 말다툼을 벌이는 유연석과 손호준에게 싸우지 마세요라며 중재를 하고, 때로는 서먹해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의젓한 막내. <응답하라 1994>에서 남다른 고민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빙그레의 모습이 그 진짜 모습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아마도 <응답하라 1994>의 팬이라면 손호준, 유연석, 바로가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반색했을 것이다. 그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면면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캐릭터와 진짜 실제 모습이 늘 같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꽃보다 청춘>3인방의 경우에는 그 드라마 속 캐릭터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마치 <응답하라 1994>에서 막 밖으로 나온 것 같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응답하라 1994> 이우정 작가의 남다른 드라마 캐릭터 작법 덕분이다. 사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 작가들의 가장 큰 장점이 캐릭터라는 옷을 배우들에게 그저 입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가진 실제 모습에서 캐릭터를 찾아낸다는 점이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작가들의 작품 속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자연스럽고 또 그 매력이 드러나는 건 바로 이런 작가의 세심함 덕분이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이 더욱 흥미로워진 건 그래서 상당부분 <응답하라 1994>를 쓴 이우정 작가의 공이 크다. 이 특별한 여행에서 우리는 손호준과 유연석, 바로의 드라마 속에서 봤던 모습을 실제 리얼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캐릭터들이 그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진 모습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 가능해진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면서 출연자를 살펴 그 실제 모습을 캐릭터화 하는 이우정 작가가 가진 고유의 영역. 그것이 아니었다면 <꽃보다 청춘>의 완결편이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벌써부터 막 입고 막 먹어도 막 멋있는 이들의 여행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꽃할배> PD가 현장 자극제가 된 까닭

 

이게 오줌 누지 말라고 그러는 거래.” 나영석 PD가 골목 한 켠에 기묘한 각도로 타일을 붙여 놓은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한 <꽃보다 할배> 이서진과 나영석 PD가 주차 때문에 함께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나영석 PD의 이 한 마디는 난데 없는 초딩 대화를 이끌어낸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여기다 오줌 못 눠?” 이서진이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며 묻자 나영석 PD는 이순재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순재 선생님 말씀은 오줌을 누면 자기한테 다 튄다는 거지.” 심지어 입사각이 어떻고 반사각이 어떻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자 이서진은 대뜸 나영석 PD에게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황당해 하며 형이 해봐라고 맞받아치는 나영석 PD. 이서진이 투덜댄다. “난 좀 아까 눠서 없어 지금. 그럼 하루 종일 먹은 것도 없는 데 뭐가 나오겠냐 내가.” 그리고 붙는 자막. ‘이게 뭔 초딩들의 대화인가.’

 

이 짤막한 장면에는 나영석 PD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만일 나영석 PD가 그 순간에 오줌 논쟁의 화두를 꺼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장면에서 이런 마치 만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뭔 초딩들의 대화인가라는 자막은 이 짧은 순간에 촉발된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해준다. 이처럼 현장에서 출연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때론 자극을 주는 방식은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이 왜 밋밋한 순간 없이 자잘함 속에서도 뾰족한 재미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준다.

 

여기 앞치마 형 이따 요리할 때 필요하지 않아?”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가게에서 앞치마를 보게 된 나영석 PD는 또 이렇게 이서진에게 툭 던진다. 요리하는 게 싫다고 그토록 얘기하던 이서진을 마치 골려주겠다는 식으로 약간은 깐족대는 것을 즐기는 듯한 목소리. 그러자 예상한대로의 반응이 이서진에게서 나온다. “이따 요리를 왜 해 내가.” “한 몇 번 더 할 거 같은데 이번에.” 나영석 PD의 이 말은 결코 그냥 지나치는 농담이 아니다. 의외로 이서진이 요리할 때 재밌는 장면들이 연출되는 걸 나영석 PD가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자극제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나영석 PD아무 연출이 안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되면 그게 그냥 여행이지 방송 프로그램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다 보니까 그게 제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는데 저희는 대본도 없고 미션도 없는 대신에 보이지 않는 그런 자극 같은 걸 하죠. 내버려두면 지나칠 것들을 일부러 이서진씨 한테 꺼내놓는 거예요.” 나영석 PD가 굳이 방송 한 가운데 들어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최근 들어 더 프로그램 속으로 깊게 들어온 이유에 대해 나영석 PD는 이렇게 말했다. “1박에서는 강호동씨처럼 MC가 있었는데 지금은 특별히 MC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의 특징은 묻기 전에 대답을 안해요. 예능인들은 묻지 않아도 먼저 말을 하고 더 크게 부풀려 가고 이렇게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옆에서 툭툭 건드리는 거죠. 대놓고 질문을 하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어떤 말이 나오게끔 현재 상황을 자기들이 알아서 설명하게끔 물꼬를 터줄려고 옆에서 자꾸 이렇게도 찔러보고 저렇게도 찔러보고 하는 거죠.”

 

그렇다면 나영석 PD는 그 상황이 어떻게 재미있을지 없을 지를 알아차리는 걸까. 거기에 대해 나영석 PD는 자신도 100%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건 시청자도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 대신 자신만 믿지 않고 주변에 물음으로써 좀더 객관적인 조언을 들으려 한다고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이우정 작가라는 것. 늘 한 발 더 뒤에서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 못했던 부분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제가 나서서 말을 나누지만 그 중 50%는 뒤에서 오는 말이에요. 이우정 작가가 예를 들어서 아까 보니까 이런 상황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 한 번 물어봐 주거나 끄집어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미처 제가 생각 못했던 부분이라도 일단 하죠. 믿으니까.” 그냥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제로서 기능하는 나영석 PD. 그리고 그 과정까지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연출. 이것이 <꽃보다 할배> 같은 어찌 보면 소소한 여행의 일상을 마치 모험처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내는 힘일 것이다.

<응답3> 제작 가능성과 당면한 문제들

 

신원호 PD는 과연 <응답하라> 시즌3를 제작할 것인가.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을 보냈던 시청자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 관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보조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로 인해 <응답하라> 시즌3 제작이 마치 정해진 것 같은 뉘앙스의 기사가 나오자 대중들은 반색했다. 하지만 곧바로 신원호 PD는 이를 부인했다.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인 건 맞지만 그것이 <응답하라> 시즌3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사진출처:tvN

왜 신원호 PD는 부인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PD라면 새로운 콘텐츠에 도전해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거푸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PD는 아마 없을 터다. 게다가 이 시리즈의 특성상 특정 연도를 소재로 해야 하는데 19971994만큼 확실한 이야깃거리를 가져올 수 있는 연도가 과연 있는가 하는 점도 미지수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가능했던 것은 참여한 이우정 작가를 비롯한 후배작가들이나 신원호 PD 당사자들이 대학시절 겪었던 실제 경험이 그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있기 때문이다. 예능 출신 작가와 PD가 선뜻 드라마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기에 대해 분명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다. 하지만 다른 연도는 어떨까. 이를테면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80년대의 이야기나 2002년 같은 월드컵 시즌의 이야기는 소재로는 괜찮지만 이들의 경험이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또 시즌3를 제작한다고 해도 중요한 당면과제는 이전 시즌과는 다른 느낌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시즌2촌놈들의 전성시대를 전면에 내세워 시즌1과 다른 느낌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즌1에 이어 시즌2로도 이어지는 향후 배우자 찾기 같은 장치는 시즌3에서 또 사용한다면 식상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당면과제들이 남아 있어 시즌3가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예감케 하면서도 그 제작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버리기에는 아까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응답하라> 시즌3는 아마 제작된다면 그 성취와 상관없이 마케팅적으로는 이미 성공한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tvN, 아니 나아가 CJ라는 회사 차원에서 보면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카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신원호 PD도 수긍하는 입장이다. PD이기에 앞서 한 회사의 직장인으로서 그는 회사의 입장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굳이 시즌3를 거부하고 다른 작품을 시도했다가 실패할 경우 이중으로 오게 될 부담감도 결코 적지 않을 터다. 그러니 신원호 PD 입장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응답하라> 시즌3를 포함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끌어 모으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 어떤 섣부른 단정도 오히려 그에게는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꿈을 위해 현재의 작은 행복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신원호 PD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최근 청춘은 무조건 아파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안에도 그의 지극히 현실적인 성향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성향은 그가 지금껏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행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었지만 방송국에 들어와 본인이 원하지 않던 예능 PD로 시작해 성공하고 드라마 PD로서도 입지를 마련했다. 최근에는 영화판에서도 심심찮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현실적인 성향을 통해 봐도 <응답하라> 시즌3의 제작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이 될 지 아니면 다른 작품을 한 연후에 제작될 지는 알 수 없다. 또 그것이 반드시 신원호 PD가 전담해서 해야 할 작품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그는 필자에게 늘 그렇듯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모든 게 열려진 상태에서의 기획회의를 마치 휴식처럼 즐기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바로 그런 열린 자세에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탄생했듯이.

나영석, 신원호, 유호진PD까지, 그들의 성공 비결

 

최근 예능계에 단연 돋보이는 제작라인은 이른바 <해피선데이> 라인이다. tvN의 이명한 CP는 그 뿌리나 마찬가지다. 초창기 KBS <12>의 야생을 살려놓고 나영석 PD에게 바톤을 이어준 후, 신원호 PD를 통해 <남자의 자격>을 런칭시켰다. 이들은 지금 현재 모두 CJ로 이적해 이른바 이명한 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나영석 PD는 이적 후 첫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로 적시타를 치더니 배낭여행 연작 프로젝트인 <꽃보다 누나>는 첫 회에 10% 시청률을 넘기며 훌쩍 펜스를 넘기는 홈런을 날렸다. 신원호 PD 역시 첫 작품인 <응답하라 1997>을 성공적으로 끝내더니 후속작인 <응답하라 1994>도 우려와 달리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며 화제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12> 초창기에 몰래카메라로 만들어진 식당에서 폭주하는 강호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던 유호진 PD 또한 최근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새로 <12> 시즌3의 메가폰을 잡자마자 시청률이 반등하면서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 있어서 이런 승승장구가 가능해질까.

 

가장 첫 번째 이유로 지목되는 건 이들 뒤에 서 있는 이우정 작가라는 존재다. 사실 이들 프로그램의 전면에 거의 PD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시선이 거기에만 집중되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이는 이우정 작가라고도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2>, <남자의 자격>,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모두 이우정 작가가 뒤에서 든든하게 작가로서 지켜냄으로써 가능했던 콘텐츠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콘텐츠의 성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역시 작가의 영역이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상품으로 치면 기획과 스토리에 해당하는 것.

 

하지만 여기서 한 차원 더 들어가 보면 이우정 작가를 비롯한 이른바 이명한 사단이 가진 콘텐츠에 대한 특별한 접근방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모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인물의 심리. 여행지나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 상태의 미묘한 변화를 이들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것은 대본을 써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발견하는 눈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영석 PD의 일련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는 특별함은 그래서 발견이다. 그것은 인물의 발견일 수도 있고 여행지의 발견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여행 그 자체의 발견일 수도 있다.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에서 가장 두드러진 발견은 할배누나로 지칭되는 인물군들의 재발견이다. <꽃보다 할배>가 어르신들의 새로운 면을 배낭여행을 통해 재발견했다면 <꽃보다 누나>는 남자들이 잘 몰랐던 여성들의 새로운 면을 재발견하고 있다. 재발견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자세다. 특히 후반작업에 강점을 보이는 나영석 PD는 오히려 현장의 돌발적인 상황들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열린 자세로 현장에 들어가 거기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반면 신원호 PD는 드라마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물의 심리를 영상 안에 그 정서적인 느낌까지 묻어나게 연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를 들어 <응답하라 1994>에서 정우와 바로가 비오는 날 가겟집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에서 정우는 발을 쭉 뻗어 떨어지는 빗물에 적시며 술을 마시는데 이런 감각적인 연출은 보는 이들에게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서를 전달한다. 똑같은 대사라고 해도 전화기 앞에 머뭇거리는 손이나, 감기로 아픈 병상에서 느끼는 그 특별한 정서 같은 것들이 묻어나면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감각적인 느낌들을 잡아내기 때문에 그의 연출로 포착되는 인물들은 훨씬 더 몰입이 가능해진다.

 

<12> 시즌3 혹한기 입영 캠프에서 선보인 유호진 PD의 이른바 야생 5덕 테스트복불복은 PDMC들 간의 팽팽한 대결의식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구덩이 하나를 파놓고도 50여 분의 방송분량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결국 인물들의 외부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에 천착하는 제작방식이 이들의 예능을 특별하게 해주는 이유가 된다는 점이다.

 

이명한 PD는 그간 웃음을 주는 것만을 오로지 목적으로 했던 예능 프로그램에 이른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PD이기도 하다. 그는 웃음만이 아니라 눈물, 감동, 놀라움 등등 다양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꿈꾸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예능은 다큐와도 맞닿게 되었고, 현재는 드라마적인 극적 요소도 갖추면서 이 장르 간 벽을 해체시키고 있다. <해피선데이> 제작 라인들의 승승장구는 그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본 서사를 바탕으로 장르적 차이가 붕괴되고 있는 현재 콘텐츠의 변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이른바 이명한 사단의 승승장구는 우리네 일반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타인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거기서 특별함을 발견해내는 능력은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정해진 룰에만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놓여진 벽을 해체하는 실험적인 도전정신 또한 융복합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섣불리 규정짓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세상을 발견하겠다는 그 자세는 창의적인 정신의 기본전제가 될 것이다. 2014년은 <꽃보다 누나>가 여성들을 재발견한 것처럼 당신이 재발견되는 꽃보다 당신의 해가 되기를. 훗날 응답하라 2014’로 기억 될 멋진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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