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천우희가 그려내는 시용기자라는 시대의 그림자

“너 파업 때 여기 왜 지원했어?”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에서 앵커인 김백진(김주혁)은 시용기자로 들어온 이연화(천우희)에게 그렇게 묻는다. 애초부터 시용기자인 그녀를 용병기자라 부르며 기자로서 인정하지 않던 그다. 15명이 파업으로 해고됐는데 그 자리에 그녀가 시용기자로 뽑혀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김백진 입장에서는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게 당연하고 기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르곤(사진출처:MBC)'

김백진의 질문에 이연화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한다. “기자가 되고 싶어서요. 기사를 쓰고 싶어서요.” 그것은 그녀의 진심일 것이다. 그 진심을 뒷받침하는 건 그녀가 이 아르곤 팀에 와서 했던 일련의 절실한 취재들이다. 모두가 그냥 지나쳤던 진실들을 그녀는 끝까지 추적해 증거들을 찾아내곤 했다. 물론 이건 <아르곤>이라는 드라마가 상상력을 더해 그려낸 것일 뿐, 모든 실제 시용기자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시용기자라는 낯선 지칭은 최근 몇 년 간 갑자기 생겨났다. MBC, YTN 등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경영진의 압박에 대해 총파업으로 맞섰던 기자들이 대거 해직되면서, 경영진은 시용기자라는 꼼수 채용을 결행했다. 1년 간 계약기자로 일하고 잘 하면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방식이었다. 

결국 이건 경력기자들을 뽑으면서 파업 참여 같은 노조활동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시도였다. 물론 이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는 있겠지만 1년 후 재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에 사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노조는커녕 사측이 요구하는 것들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들을 MBC 기자들은 사측에 복종하는 “영혼 없는 로봇기자”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2012년 MBC 기자들이 시용기자 선발에 관해 내놓은 공식 발표 자료를 보면 “시용은 수습보다도 불안정한 고용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그 일정기간이 끝날 동안 사측의 눈치를 보며 일해야 하고,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사측의 필요에 의해 가차 없이 잘려나가는 게 그들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MBC 기자들은 그래서 이 시용기자들 역시 “나름의 사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고 사측의 꼭두각시 역할을 자처하는 대체인력”이라는 점에서 “언론인으로서 동료애를 나눌 생각이 없다”는 걸 명확히 했다. 그만큼 이들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역할이 가진 잘못됨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

MBC 공채 출신의 <아르곤>의 이윤정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가 다루는 ‘시용기자’가 특정 방송사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기 위해 배려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시용기자들이 가진 고민과 갈등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르곤> 역시 주인공을 시용기자로 세운다는 것이 부담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곤>이 시용기자를 굳이 주인공으로 세운 까닭은 그것 역시 우리 시대의 아픈 방송 언론의 자화상의 한 자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채용을 앞두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인턴들의 모습 또한 거기서는 느껴진다. 기자가 되고 싶은 똑같은 열망을 품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측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을 제 맘대로 움직이기 위해 그들끼리의 싸움을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시대의 치졸함. 결국 그 비뚤어진 시스템을 굴리는 이들이 모든 문제의 원천이 아닌가.

<치인트>, 어째서 끝까지 웃을 수 없었을까

 

소통의 실패는 콘텐츠의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초반부 놀라운 화제를 이끌었던 tvN <치즈 인 더 트랩>이 후반부에 이르러 논란의 논란을 거듭하고 심지어 막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끝을 맺게 된 건 그 소통의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치즈 인 더 트랩>은 원작자 순끼와의 소통에도 실패했고, 배우 박해진과의 소통에도 실패했으며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불편함을 토로했던 시청자들과의 소통에도 실패했다. 이윤정 PD가 내놓은 열린 결말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답답한 결말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엔딩에서 주인공 유정(박해진)이 모든 걸 감싸 안으려는 홍설(김고은)에게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 그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홍설이 보낸 메일을 유정이 열어보았다는 것으로 그들이 다시 만날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그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 물론 원작자 순끼가 원한 결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째서 좋은 시작을 보였던 <치즈 인 더 트랩>은 끝까지 웃을 수 없었을까.

 

물론 후반부에 가서 여러 문제점들을 도출했지만 사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콘텐츠 자체가 그리 큰 흠결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청춘 멜로의 틀 속에 우리네 대학가 청춘들이 겪고 있는 치열한 현실을 투영시켜 놓았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치즈 인 더 트랩>은 청춘 멜로의 겉면을 갖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른으로 표징 되는 유정의 아버지 유영수(손병호)로 인해 심지어 정신병적으로 뒤틀어진 청춘들이 고통스러워하고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유정은 아버지로 인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고, 백인하(이성경)는 정신병동에까지 들어가게 됐지만 사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이들 청춘이 아니라 유영수라는 어른이라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이 의도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었다. 이 얘기가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되려면 유정의 상황이 좀 더 디테일하게 다뤄졌어야 했다. 그가 왜 그토록 모든 걸 안아주고 감싸주는 홍설에게 절실하게 기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들이 드라마를 통해 납득됐어야 했고, 그래서 스스로 서지 않으면 계속 홍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어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유정의 입장이 공감됐어야 했다.

 

이러려면 유정의 이야기가 더 나왔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는 오히려 그 분량이 별로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홍설이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게 되는 건 그런 정도의 충격을 통해서만이 유정이 스스로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드라마가 찬찬히 이야기를 쌓아가며 전개했다면 이런 과잉된 설정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사전제작이 드라마 제작방식에 있어서 궁극의 대안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전제작이라고 해도 이번 <치즈 인 더 트랩>의 후반부 논란들을 통해 드러난 허점은 분명 시사 하는 바가 클 것이다. 사전제작은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만일 필요하다면 추가분의 촬영 또한 보완되어야 한다는 걸 이번 사태는 말해주었다. 제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고 해도 소통에서 실패하면 끝까지 웃을 수 없다는 걸 <치즈 인 더 트랩>은 보여줬다

<치인트>, 도대체 이 잡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잘 나가던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 막바지에 이르러 복병을 만났다. 그간 수면 아래 있던 잡음들이 동시에 터져 나온 것. 그 문제는 두 가지 차원으로 압축된다. 하나는 원작자인 순끼 작가가 제기한 드라마 엔딩에 대한 불편함이고 다른 하나는 시청자들이 제기했던 드라마 주인공 박해진의 분량이 의도적으로 편집됐고 상대적으로 서강준 분량이 많아진 것에 대한 의혹이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먼저 첫 번째 부분은 아직 엔딩이 방영되지 않은 상황이라 확실하게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원작자인 순끼 작가의 불편함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만큼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즉 아직 끝이 나지 않은 원작을 드라마가 종영한 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작가로서는 원작과 다른 드라마의 엔딩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순끼 작가가 토로한 내용을 보면 어찌 된 일인지 드라마의 엔딩이 원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이미 순끼 작가가 드라마 제작진에게 원작의 엔딩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차라리 원작의 엔딩을 얘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원작자가 다른 엔딩을 요구했다면 드라마 제작자는 충분히 그걸 수용하는 게 예의일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드라마의 엔딩이 나온 이후에야 정확히 논의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치즈 인 더 트랩>에 발생하고 있는 더 큰 잡음은 사실 주인공인 박해진의 분량이 너무 적다는 두 번째 문제다. 한 연예 매체가 입수해 공개한 대본에서는 실제로 대본과 달리 분량이 사라진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는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물론 김수현 작가나 김은숙 작가처럼 확고한 작가 파워에 의해 대본의 토씨 하나 빼뜨리지 않고 연출하는 상황도 있지만, 드라마는 때로는 연출자 파워에 의해 완성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윤정 PD는 특유의 감성적인 연출로 주목받아온 연출자다.

 

이런 대본까지 유출되면서 문제가 비화되고 있는 걸 보면 어느 쪽의 이야기가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제작진과 박해진 측이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란 것이 분명해진다. 연출의 의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제작진은 박해진의 분량을 상당 부분 줄였고, 박해진 측은 거기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유정 선배 역할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박해진 쪽에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다를 수도 있다. 배우와 제작진의 갈등은 그 내부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 실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 문제들을 촉발시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반 사전제작제로 찍혀져 이미 촬영이 끝난 상황이라는 점이다. 만일 막바지까지 촬영을 하게 됐다면 이런 문제들은 엔딩이 되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을 상황이다. 물론 섭섭함이 있다고 해도 엔딩이 된 후에는 이미 지난 일이니 문제 삼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즉 사전 제작이 됨으로써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그 섭섭함이 토로되고 있어 그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잡음은 과연 제작진 때문인가 아니면 배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사전제작이라는 시스템의 또 다른 문제점 때문인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좀 더 명쾌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들어 예단하고 속단하는 건 피해야 한다. 아직 엔딩은 방영되지도 않았다. 그것을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치인트> 이윤정 PD 연출의 마법

 

홍설(김고은)이 혼자 사는 자취집은 좁고 허름하다. 한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다. 그래서인지 유정(박해진)이 홍설의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공간은 더 좁아 보인다. 홍설이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따라주는 장면은 그래서 꽤 불편해 보인다. 물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아마도 욕실 같은 곳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데 그 좁고 불편해 보이는 공간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더 설레게 한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바닥에 매트리스 하나 깔려 있고 앉은뱅이책상이 하나, 옷장이 하나 정도 놓여진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좁은 공간이 너저분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가난한 여대생의 자취방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만, 어찌 보면 꽤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마저 든다. 아마도 실제라면 사뭇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tvN 월화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 나오는 공간들은 현실적인 요소들로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웹툰이 그려내듯 예쁜 느낌을 주는 걸까.

 

자취방은 문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와야 되고 창문 방범창이 걱정될 정도로 그 밖은 으슥하다. 실제로 속옷 도둑 같은 변태가 출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입구에서 유정이 처음 홍설에게 우리 사귈까?”라고 묻는 그 장면의 배경을 보면 초록빛의 나무 이파리들이 드리워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초록빛의 색감은 이제 파릇파릇 피어나는 유정과 홍설의 사랑을 더 풋풋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런 같은 장면이라도 거기서 어떤 따뜻함이나 설렘을 특유의 색감과 연출로 풀어내는 건 이윤정 PD의 대단한 재능이다. 이미 MBC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우리는 그녀가 드라마 공간들을 어떻게 마치 잡지 화보처럼 구성하고 연출해내는가를 목도한 적이 있다. 물론 이건 배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 배경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때론 세련되고 때론 정이 가며 때론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홍설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설정 상 굉장한 미인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김고은이라는 배우 역시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미모의 연기자로 세워진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런 미적인 것을 깨고 털털함을 드러내온 것이 김고은의 필모그라피였다. 그런데 <치즈 인 더 트랩>이 회를 거듭할수록 홍설이란 캐릭터가 점점 예쁘게 느껴지고 그것이 김고은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매력으로까지 여겨지는 건 아무래도 이윤정 PD의 연출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결국 좋은 PD란 캐릭터든 배우든 그 안에 숨겨져 있으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매력을 끄집어내는 연출자가 아닐까.

 

홍설의 부모가 하는 국수집은 동네 어귀에 있을 법한 작은 음식점에 불과하지만 이윤정 PD의 카메라에 잡힌 그 집은 마치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미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 미닫이문을 열고 나온 백인호(서강준)가 쓰레기를 들고 나와 옆 골목 쓰레기통에 툭 던지는 장면에서 그 동선 뒤편으로 보이는 국수집 외관이나 화장실처럼 보이는 문짝의 무심한 듯 칠해진 페인트 색깔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연출은 조명이 상당부분 역할을 할 것이지만 그 이전에 아기자기한 소품 하나까지 신경 쓰는 데서 가능해지는 것들이다. 사실 드라마라고 하면 모든 게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드라마는 결국 스토리와 캐릭터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재료들이 있어도 그걸 제대로 느낌 있게 만들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게다. <치즈 인 더 트랩>의 이윤정 PD는 그 연출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다못해 굴러다니는 쓰레기조차 예뻐 보일 지경이니.


'트리플'이 막장? 과연 그럴까?

블로거의 시선 2009.06.25 15:49 Posted by 더키앙
'트리플'은 인물의 관계로만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렌디한 설정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그 첫번째는 신활(이정재)-이하루(민효린) 사이에 싹트는 멜로 라인이다. (물론 피는 한 방울도 안섞였지만) 오빠-동생 하던 사이인 이들은 조금씩 애정의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신활-최수인-장현태(윤계상)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 멜로 라인이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고 그렇게 된 것이지만) 현태는 친구 신활의 아내인 최수인을 사랑하게 된다. 세 번째는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지만 조해윤(이선균)-강상희(김희) 사이의 멜로 라인이다. 이들은 우연히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강상희의 거리두기로 인해 조해윤은 그 사정거리 바깥에서 늘 마음을 졸이게 된다.

단순하게 표피적으로 그리고 부박하게 이들 관계를 말한다면 1. 오누이 멜로 컨셉트 2. 불륜 컨셉트 3. 자유를 빙자한 방종한 자유연애 컨셉트 정도라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트리플'이라는 드라마를 이렇게 쉽고도 단순하게 트렌디라는 색깔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항간에는 그래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고까지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막장이라는 용어가 참 애매모하하다. 나 역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늘 꺼림칙한 느낌을 갖곤 했는데, 이미 대중들에게는 막장이라는 용어가 그만큼 친숙하게 침투해 있었던 터라, 결국에는 다른 표현을 굳이 찾지 않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꽤 많은 오류들과(심지어는 심각할 수도 있는) 왜곡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막장이라는 용어부터 생각해볼 일이다. 막장은 말 그대로 바닥까지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 첫 번째는 윤리적인 것이다. 근친상간이나 성희롱의 뉘앙스가 들어 있다거나, 불륜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완성도에 관한 것이다. 인과관계가 잘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 얼개나 전혀 개연성이 없는 캐릭터의 행동 같은 대본의 요소들, 또 엉성한 연출과 이른바 우리가 발연기라고 하는 연기력까지 모두 이 완성도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데 예를 들어 김수현 작가가 쓴 '내 남자의 여자' 같은 작품은 불륜이라는 소재가 비윤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막장 드라마(당시에 막장드라마라는 용어는 없었으나 대신 논란드라마라는 용어는 있었다)라 불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륜이라는 그 소재를 끝까지 탐구하는 드라마로서 '명품 드라마'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마찬가지로 '가을동화'의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만들어가는 오누이 멜로 컨셉트를 가지고 역시 막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유는? 완성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흔히 막장이라고 부르는 용어에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윤리적인 잣대와 완성도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라는 것이다. 사실 소재만 가지고 윤리적인 잣대로만 판단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고대 비극을 막장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윤리적인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윤리와 비윤리를 넘어다니는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 놓이게 되는 인간 실존의 문제 같은 것이 오히려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재가 완성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 소재를 자극을 위해서만 끌어왔을 뿐, 아무런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거나 나름의 완성도를 구축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소재를 보고 "저거 또 막장이네"하고 쉽게 판단하고 또 그 판단이 대개는 맞는 이유는 작금의 드라마 시장이 작품보다는 상품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시청률에만 목을 맨 나머지 윤리적으로 뒤틀린 자극적인 소재만을 끌어왔을 뿐, 그저 그런 늘 보던 대로의 식상한 전개를 보여주는 드라마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소재가 등장만 해도 그런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리플'로 다시 돌아가서 이 잣대를 대보면 어떨까. 트리플이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소재들은 윤리적인 잣대로 봤을 때는 분명 오인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트리플'이 보여주는 이윤정 PD 특유의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연출은 실로 놀라운 영상경험을 하게 해준다. 4회에서 연출된 비오는 날의 정경은 영상 연출이 그 축축한 느낌이나 그 안에 서 있는 인물들의 감정선까지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윤정 PD의 카메라 앵글은 우리가 보통의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관습적인 앵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멈춰선 카메라 속에서는 인물들의 소소한 감정들이 그들의 동작에서는 물론이고 배경에서조차 묻어난다.

특히 배경은 이윤정 PD에게는 드라마의 또다른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드라마가 드러내는 감정을 잘 포착해주는 공간이 된다. 이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도 그렇고 '트리플'에서 세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소녀가 사는 공간에서도 그렇다. 이들은 종종 공간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색깔을 입히고 또 심지어는 지붕 위의 공간(수인의 집) 위로 올라감으로써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혹자는 이윤정 PD의 이러한 연출이 '막장을 위장하기 위한 위장전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연출이 가지는 작품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결과가 된다. 연출은 스토리에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스토리가 되기도 한다. 이윤정 PD의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트리플'이 가져온 소재들과 이 연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물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주제와의 맥락을 가질 때 우리는 이 드라마를 쉽게 막장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리플'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드라마일까. 막장이라 판단한다면 그 얘기는 뻔해진다. 그저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일 테니까. 하지만 이 공들여 만들어진 듯한 '트리플'을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억울한 점들이 많다. 아직 5회밖에 진행되지 않았던 고로(또 그 5회의 주제가 '웜업'이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는 아직 워밍업 단계였을 뿐일지도 모르므로 더더욱) '트리플'이 하려는 이야기를 속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본격적인 얘기조차 들어가지 않은 이 작품이 벌써부터 막장이라는 칭호로 보여지기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는 기우는 무리해서라도 '트리플'이 하려는 이야기를 예단하게 만든다.

따라서 여기부터는 나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는 '트리플'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트리플'은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삼고 있다. 김연아 마케팅을 위한 포석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 피겨스케이팅이 갖는 특징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이 드라마의 매회 구조가 그 특징들을 소제목을 삼고 어떤 삶과의 연관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빙판에 서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 미끄러운 공간이 가진 위험성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예술로 승화된다. 아슬아슬함과 위험함을 뛰어넘었을 때 발견하게되는 것은 극한의 아름다움이다.

'트리플'을 피겨스케이팅이 갖는 이미지와 연결시켜보면 바로 이 아슬아슬한 관계들 위에서 빚어내는 어떤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닐까. 드라마의 주축이 되고 있는 세 남자의 멜로 관계는 저마다 빙판 위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서로 빗나가고 엇갈리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그 일련의 모습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극적인 설정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미려한 연출이 말해주는 것은 "그래도 청춘은 아름답다"하는 전언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동성애 코드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우리에게 잘잘못으로 판단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청춘을 되새겨 보여주었다. '트리플'이 그 연장선에 있다면 이윤정 PD는 일관된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일련의 작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시작도 전에 논란에 휩싸이고, 막장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여전히 이 드라마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는 이 예감이 빗나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순정만화 판타지, 피겨스케이팅, 승부의 세계

'트리플'이 기대되는 것은 이윤정 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이름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녀들이 새롭게 들고 온 '트리플'에서도 '커피 프린스'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멋진 남성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온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겪는 달콤한 로맨스를 다루었다. '트리플' 역시 멋진 세 남자들, 즉 신활(이정재), 조혜윤(이선균), 장현태(윤계상)가 함께 사는 공간에 이하루(민효린)가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커피 프린스 2호점'에 해당하는 판타지 공간 속에서 피겨 스케이팅의 꿈을 키워나가는 이하루는 멋진 세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로맨스를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저 마다의 매력을 보여주는 세 남자와 또 등장할 젊은 미소년 지풍호(송중기)는 이 드라마의 멜로 구조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장선으로 보게 해준다. 순정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남성들이 얼마나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인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트리플'은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을 뜻하는 용어이면서 동시에 이 세 커플(신활-조혜윤-장현태와 이하루-최수인(이하나)-강상희(김희))의 로맨스를 뜻하기도 한다.

'트리플'의 두 번째 기대감은 커피라는 문화적 코드에서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좀 더 동적인 예술적 코드로 바뀌면서 좀 더 다이나믹해질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정아 작가는 이러한 동시대적 문화적 감수성을 이야기의 향기로 피워낼 줄 아는 작가이며, 이윤정 PD는 마치 트렌디한 잡지를 구성하듯 경쾌하게 그 감수성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커피 자체가 드라마의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아름다움과 힘이 절묘하게 예술적으로 엮어진 새로운 문화코드는 '트리플'에 어떤 아우라를 형성한다.

피겨 스케이팅은 운동과 예술의 접목이 그 정점에 서 있는 스포츠다. 거기에는 기예를 방불케 하는 기술이 있고, 파괴력이 넘치는 힘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힘과 기술을 예술로 만드는 음악과 율동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가 현재 각광을 받는 것은 물론 김연아 선수 같은 세계적 스타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로마저 승화되어 있는 이 스포츠 자체가 갖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미 '태능선수촌'으로 스포츠를 다룬 전적이 있는 이윤정 PD가 이 미적인 운동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도 이 드라마에 걸게 되는 기대의 하나다.

세 번째 기대감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트리플'만의 승부의 세계에 대한 것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말 그대로 경쟁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의 판타지를 마음껏 그려냈다면, '트리플'은 끊임없이 주인공들이 경쟁 속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성장 과정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된다. 남자 주인공들은 광고의 세계에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이하루(물론 코치역을 하게 되는 최수인을 포함하여)는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승부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가진 조금은 자폐적인 판타지(경쟁이 배제된 공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를 '트리플'이 좀 더 열려진 세계 속에서의 판타지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경쟁 관계 속에서의 판타지란 때론 진정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콩달콩한 로맨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현실을 동시에 등장시키는 것. 이것이 '트리플'에서 느껴지는 세 번째 기대감이다.

물론 이 세 가지 기대감은 말 그대로 기대감일 뿐, 아직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가 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연출했던 판타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 지점에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트리플을 하기위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결국엔 해내는 이하루처럼, 과연 드라마도 이 세 가지 기대감을 동시에 넘는 트리플을 성공해낼 수 있을까.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의 사각거림처럼 그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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