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해' 김영철의 절규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

“왜 제게 벌을 안주십니까? 벌을 주세요 판사님. 죄를 짓지 않았을 때는 잡아서 그 독한 벌을 주시더니 지금 죄를 지었는데도 왜 제대로 벌을 안주십니까? 주세요. 판사님. 죽이지 않았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 때는 안 믿어주시더니 이젠 제가 다 잘못했다는데도 왜? 왜 벌을 안주십니까?”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결국 법정에 서게 된 변한수(김영철)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온 죄의 대가. 그 법정에서 판결을 들은 가족들은 그나마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정상참작이 되어 집행유예를 받음으로써 감옥에 들어가 실형을 사는 것은 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변한수는 왜 벌을 안주냐며 오열했다. 아마도 자신이 살아왔던 힘겨운 삶 전체가 그 판결로 인해 허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게다. 과실치사를 했다는 누명으로 유도 유망주로서의 꿈도 포기한 채 전과자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던 그가 아닌가. 그래서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우고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와야 했던 삶이다.

가족을 위해 선택한 삶이지만 자신을 떳떳이 내세울 수 없는 그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가슴 졸이는 시간들이었을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가슴 졸이며 숨겨왔던 걸 다 드러내고 이제 벌을 받고 떳떳한 삶을 살겠다 마음먹은 그에게 이런 판결은 너무나 허무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이상해>라는 드라마가 그려낸 아버지상은 지나치게 자기희생을 당연시해온 인물이었다. 법정에 가서 판결을 받으면 혹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미리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챙겨두는 그런 아버지. 배우 안중희(이준)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때조차도 자신은 괜찮다며 가족과 진짜 친아들처럼 대해온 안중희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그런 아버지. 

그래서 그 아버지는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보통의 아버지들과는 다른 지나칠 정도로 자기희생을 하는 그런 모습. 물론 그것은 지금의 우리네 현실에서 달라진 아버지들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 게다. 한때는 가부장적 틀에서 자라났지만 이제는 그 틀을 벗어버리고 가족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려는 아버지상.

<아버지가 이상해>는 거기에 아버지의 ‘원죄의식’이라는 구체적 사건을 담아뒀다. 과거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족들 앞에서도 떳떳할 수 없었던 원죄의식. 그런데 법정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변한수의 절규를 들어보면 이상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것뿐이지만 세상의 잘못된 판결은 그의 삶을 뒤틀어지게 했다. 억울함과 미안함의 교차.

물론 변한수가 겪은 특수한 사건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들의 사정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아버지들이 갖는 어떤 ‘원죄의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은 열심히 살았어도 어딘지 나아지지 않은 삶으로 가족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누구나 갖게 되는 그 미안함과 억울함의 양가감정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달라진 세상 앞에 아버지들은 어딘지 이상해졌다. 괜스레 가족에게 미안해지고 그래서 기꺼이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때로는 억울하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건 아버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때론 노력해도 엇나가게 만드는 세상의 잘못된 판결 같은 것 때문은 아닐까. 변한수의 절규가 남다른 울림으로 느껴진 건 그래서다.

왕따, 동거, 워킹맘, 졸혼...‘아이해’가 보여주는 가족의 변화

KBS 주말드라마는 사실상 가족드라마의 최후보루나 마찬가지다. 기본이 20% 시청률부터 시작한다는 이 KBS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의 전통적인 시청층의 충성도가 대단히 높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채널을 이 주말드라마에 고정시켜놓는 것이 당연한 주말의 풍경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하지만 주말드라마는 최근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그 가족드라마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네 가족의 형태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4분의 1을 넘어선 지 오래고, 결혼률은 물론이고 출산률 또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현실의 가족이 가족드라마가 늘 구성하던 대가족 형태에서 이미 벗어나 있기 때문에 주말드라마의 양태들은 어찌 보면 시대와 맞지 않는 틀로 보이기 십상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를 보면 그래서 이러한 시대성을 따라가기 위한 현실적 상황들을 다수 포진시키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변미영(정소민)과 김유주(이미도) 사이를 통해 보여줬던 왕따문제, 변준영(민진웅)이라는 공시생을 통해 보여준 우리네 청춘들의 취업현실,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동거, 계약결혼 등을 통해 보여준 현 세대들의 달라진 결혼관, 임신을 하게 된 후 겪는 경력 단절의 고충을 통해 김유주가 간접적으로 드러내준 워킹맘의 비애, 실력이 출중해도 돈이 없어 아이를 보낼 수 없는 나영식(이준혁)과 이보미(장소연)의 고충을 통해 드러낸 특목고의 문제, 그리고 차규택(강석우)과 오복녀(송옥숙)를 통해 보여준 졸혼이라는 새로운 노년의 풍경까지.

물론 <아버지가 이상해>는 이토록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담으면서도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가족드라마의 공식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방식을 취했다. 즉 변라영(류화영)과 박철수(안효섭)를 통해 여전히 등장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그렇고, 변혜영과 차정환의 결혼 과정을 통해 그려내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도 그렇다. 여기에 배우 안중희(이준)가 뒤늦게 변한수(김영철)가 자신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코드도 빠지지 않았다. 

즉 <아버지가 이상해>는 우리네 가족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가족 형태에 대한 여전한 향수를 가족드라마라는 틀에 녹여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식상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여전한 공식들을 가져오지만(그래서 주제 역시 가족애라는 틀로 많은 갈등들이 봉합되는 보수적 형태를 유지한다), 그래도 그 안에 많은 현실적인 질문거리들을 담아내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특히 변혜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달라진 여성의 면면은 주목할 만하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거를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나, 결혼에 계약 조건을 단다거나, 시댁에 살면서도 시부모와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은 지금의 결혼 세대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사회 현실이 대중들의 생각만큼 변화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래서 김유주 같은 인물이 임신을 한 후 일에서 점점 배제되고 그래서 더 무리하게 되는 그 안간힘은 달라지는 가족의 변화만큼 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네 사회의 면면을 꼬집는다. 아이를 결국 잃게 된 김유주가 뒤늦게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후회하는 장면은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개인의 차원에서 그들의 희생으로 덮여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다. 

물론 가족드라마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양태가 바뀌고 있는 한 그 가족드라마의 틀이 언제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그 과도기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가족을 향수하는 보수적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볼만한 많은 현실적인 변화와 문제들을 꺼내놓고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 이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과연 이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한 때는 가족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의 근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이 같은 질문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를 말해준다. 이른바 ‘가족 해체 시대’가 아닌가. 물론 뿌리 깊은 가족주의의 틀은 여전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양태는 1인 가구로 대변되는 ‘개인주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는 가족드라마의 풍경들은 그래서 낯설거나 혹은 향수어린 추억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는 그래도 이 가족드라마라는 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어도 여기 포진되는 가족드라마들은 기본이 시청률 30%라고 얘기될 정도로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 역시 가뿐히 30%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적인(?) 시청률이 그 드라마가 가진 가치의 바로미터가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더 중요해진 건 반응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가. 괜찮은 시청률만큼 반응도 괜찮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는 이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 가족의 양태들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혼전동거와 ‘결혼인턴제(?)’ 같은 것일 게다. 사실 변혜영과 차정환의 사랑이야기는 양가가 반대하는 전형적인 ‘혼사장애’의 클리셰를 가져왔지만, 그 안에서 이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실로 도발적이다. 

과거의 가족드라마였다면 아마도 혼전동거를 하다 들킨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변혜영은 부모를 힘겹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 말하지만, 자신이 혼전에 동거를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드러낸다. 사실상 동거는 가족주의의 틀을 깨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가족주의 시대에 동거는 금기시되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자체를 선택으로 보는 현 가족 해체의 시대에 동거는 정반대로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변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변혜영은 그래서 결혼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늦추고 1년 정도의 인턴 기간을 갖자는 도발적인 제안을 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이상해>가 갖고 있는 가족주의와 가족 해체의 현실 사이의 어떤 타협점으로 보인다. 

이런 지점은 이 드라마 도처에서 발견된다. 안중희(이준)와 변한수(김영철)의 관계가 그렇다. 어느 날 변한수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찾아온(사실은 변한수의 친구 아들인) 안중희를 변한수는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안중희가 홀로 버려져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변한수는 기꺼이 그와 늦게나마 해주려고 한다. 엄밀히 말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풍경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점점 핏줄로부터 분리되고 있는 가족은 이제 타인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가고 있다. 

가족이 만들어내는 때론 지지고 볶고 때론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 끈끈함은 여전하지만, 그들 각각이 처한 현실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해진다. 이를테면 장남인 변준영(민진웅)이 처한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그렇고, 나영실(김해숙)과 오복녀(송옥숙) 사이에 벌어지는 혼사갈등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갑을갈등이다. 가까스로 취업의 문을 넘은 변미영(정소민)은 가족이라는 틀로 갑자기 묶여진 과거 자신을 왕따시킨 김유주(이미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틀은 오히려 원치 않는 관계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이야기는 그래서 가족을 그리곤 있지만 달라진 현실들이 드리워져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가족드라마가 그리던 풍경과 <아버지가 이상해>가 보여주는 풍경이 다르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거기에는 과거의 가족주의적 가치와 현재의 개인주의적 가치 사이의 부딪침이 보인다. 과거의 가족드라마는 세대가 갈등을 해도 가부장적 가치로 회귀하며 끝을 맺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으로 다시 모여 잘 살게 되었다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그것.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여전히 가족주의의 가치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현 시대의 새로운 가치들을 보여줄 것인가.

‘아버지가 이상해’, 김영철 캐릭터로 본 우리 시대의 아버지

우리네 가족드라마에서 아버지의 쓸쓸함이 느껴지게 된 건 이미 오래다.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2008)>나 <인생은 아름다워(2010)> 같은 작품에서 아버지들은 어느새 집안의 중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앉아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엄마들. 하지만 그래도 이들 드라마에서는 그나마 가족이라는 틀이 공고했고 밖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힘겨운 현실들의 문제들은 대부분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버텨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하지만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아버지 변한수(김영철)의 모습은 어딘지 가족에서 살짝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이 아버지가 숨기고 있는 어떤 과거사 때문이기도 하지만(아마도 친구와 연관이 있는), 그것보다는 집안의 거의 모든 대소사에 이 아버지가 헌신하고 있지만 어쩐지 본인의 삶은 전혀 챙겨지지 않는 그 모습을 당연한 듯 여기는 가족들 때문이다. 

수원의 외곽 동네에서 아빠분식을 하는 그는 어쩌면 자식들을 그토록 성장시키기 위해 한 평생을 해왔을 그 분식집에서 여전히 하루 종일 일을 한다. 그 정도 나이면 좀 여유도 부릴 법 하지만 새벽부터 장을 보랴 음식 준비하랴 손님 맞으랴 쉴 틈이 없다. 마침 새로 온 건물주는 월세를 올리려 하지만 그 앞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이 아버지가 얼마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낮추며 살아왔는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건물 관리까지 해주는 조건으로 이전 월세 그대로 분식집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이 아버지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드러내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아버지가 이토록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그 자식들의 면면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장남인 변준영(민진웅)은 5년째 9급 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합격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변준영은 사귀는 여자친구 김유주(이미도)와 덜컥 아이까지 갖게 되어 이제 직업도 없이 결혼부터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둘째인 변혜영(이유리)은 그래도 개천에서 용된 사례로 로펌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아직까지도 요원하다. 게다가 그녀는 집을 나와 예전에 좋아했던 선배 차정환(류수영)과 동거를 시작했다. 

셋째 딸인 변미영(정소민)은 그나마 이 집안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이다. 한때 유도를 했지만 부상으로 포기했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간신히 인턴으로 엔터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서는 구박덩이 막내지만 그녀는 특유의 긍정 마인드와 맷집으로 버텨내는 근성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줄 든든한 존재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짊어진 짐의 하나였을 것이 분명하다. 

막내 딸 변라영(류화영)은 아르바이트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명품을 사는 등 그다지 개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 인물이다. 아버지로서는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막내일 테지만 현실적으로 가족에는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인물. 

자식들이 주는 이런 부담감에 이 아버지는 또 한 명의 부담을 얹게 됐다. 그건 새로이 나타나 자신이 아들이라 대뜸 말하고는 아버지 취급을 해주지 않는 안중희(이준)의 등장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친자식이 아니라 친구의 아들이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안중희마저 아들로 품으려 한다.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에게 매일 같이 정성스레 만든 도시락을 갖다 준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또 아내를 살뜰히도 위하며 그 가족인 장모와 처남까지 가족처럼 챙기며 살아가는 아버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아버지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정작 자신이 하고픈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가족들이 잘 되는 것만을 바라며 묵묵히 뒤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하며 그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다. 

삶이 힘겹고, 현실은 각박해져 가족 내에서도 각자도생하는 것이 우리네 가족의 삶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각자 생존하기 위해 저마다 살다보니 우리는 어쩌면 그 이면에서 누군가 든든히 우리를 위해 버티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는 지모 모르겠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아버지 변한수가 유독 짠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아버지가’ 이준, 출생의 비밀 아닌 자신을 찾아가는 길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는 일찌감치 안중희(이준)라는 연기자의 출생의 비밀이 공개됐다.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아버지는 수원 외곽에서 아빠분식을 운영하는 변한수(김영철)였던 것. 드라마는 굳이 아버지의 존재를 알면서도 찾지 않으려 하던 안중희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드라마에서 보통의 ‘출생의 비밀’ 코드란 부모의 존재를 모르는 자식이 뒤늦게 부모를 찾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도 바뀌는 그런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안중희는 이런 코드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연기자이고 부모가 살아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다만 찾지 않았을 뿐. 

그런 안중희가 새삼 아버지를 찾아 나선 이유는 연기 때문이다. 그잖아도 발연기로 흑역사를 쓰고 있는 상황. 아버지와의 관계를 담은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그로서는 제대로 배역에 몰입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오디션에서 떨어진 그는 좌절한 채 술에 취해 감독에게 전화를 해 자신이 배역을 위해 아버지까지 찾고 있다는 연기에 대한 진심을 이야기하면서 재차 오디션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그래서 그가 아빠분식을 찾아 아버지를 만나는 그 목적은 새삼스런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연기’ 때문이라는 표면적 이유로 제시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되면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그 길이 몹시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어떤 옷을 입고 갈까를 고민하고 어떤 선물을 들고 갈까를 고민한다. 

겉으론 연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쿨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그 역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회한, 미움 같은 감정들이 저 밑바닥에 꾹꾹 눌려져 있었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실을 오롯이 드러내는 건 그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진심에서 우러나는 연기를 할 때다. 그간 그의 발연기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이들은 그의 이런 연기에 놀란다.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안중희라는 캐릭터가 독특한 점은 그가 연기와 실제 사이에 놓여져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그건 분리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기란 실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발연기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안중희의 연기에 대한 욕심은 자연스럽게 실제 현실을 바꿔나가는 기폭제가 된다. 그리고 그 실제의 변화는 그의 연기 또한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또한 <아버지가 이상해>라는 주말드라마가 여타의 주말드라마와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주말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항상 정해져 있다. 그것은 가족애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어떤 캐릭터에 입혀 다른 방식으로 전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가족애를 안중희 같은 연기자가 걷는 연기의 길을 통해 전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것은 가족애를 찾는 지점이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이 드라마가 꺼내놓은 안중희의 과거사는 그래서 ‘출생의 비밀’ 코드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혹자 똑 떨어져 나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개인주의적인 삶이지만, 그래서 가끔은 우리가 나고 자랐던 그 가족이라는 본질을 잊고 사는 게 우리들이 아닌가. 그걸 찾아내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나 자신을 발견하고 또한 성장시킬 수 있는 어떤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이상해>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저 통상적인 가족애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어떤 현실적인 공감대를 가져가는 건 안중희라는 발연기 연기자의 캐릭터가 남 이야기처럼 여겨지지 않는 부분 때문이다. 누구나 스스로 써나가는 삶의 무대에서 우리는 어쩌면 자신은 혼자라며 그 뿌리를 부정함으로써 인생의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 당당히 서서 제 삶을 제대로 연기해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건 어쩌면 자신을 구성하는 그 본질들과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안중희가 앞으로 걸어갈 아버지를 향한 길이 몹시도 궁금해지는 이유다.

시국이 말해준다, 숨어있는 그들과 당당한 이들

 

최순득(최순실 언니)씨가 유명한 연예인 축구단이 있어요, 회오리 축구단이라고. 여기를 다니면서 밥을 사줍니다. 그래서 연예계 자락을 쫙 만들어놔요.” “국제 행사에 최순실 씨하고 오랫동안 친분이 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그 가수가 국제 행사에서 생뚱맞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초대되어서 노래를 부릅니다.”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온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 이야기는 곧바로 이른바 최순실 라인 연예인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됐다.

 

사진출처:이준 SNS

누구인지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네티즌들은 몇몇 가수들과 기획사 대표에 대한 의혹의 목소리를 덧붙였고 이에 대해 지목된 가수 몇몇은 사실이 아니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른바 최순실 연예인논란이 불거졌고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최순득 연예인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24일자 동아일보는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이 매년 김장철에 서울 강남의 자택으로 유명 연예인들을 초대해 김치 값 명목으로 현금봉투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 모임에 참석한 연예인들은 중년 여배우부터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30대 연예인까지 다양했다고 보도했다.

 

최순실씨의 조카로 알려진 장시호의 인맥 역시 화제가 되면서 이른바 장시호 연예인 라인도 주목받고 있다. 그 인맥에는 정관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운동선수, 연예인들까지 광범위했다는 것. 이번에 구속된 차은택 역시 장시호 연예인 인맥 중 하나였다고 한다. 3주 전 폐쇄된 장시호의 SNS에는 그녀의 연예인 인맥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남겨 있었는데, 23일 뉴시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거기에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 가수 A씨와 한때 인기 절정이었던 혼성그룹 멤버 B, 영화배우 C, 방송인 D씨 등이 들어 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 방송인으로도 활동하던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 이규혁은 장씨와 오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연예인들의 존재에 대한 대중적인 공분과 관심이 집중되는 건 그것이 결국 특혜로 이어졌다는 의심 때문이다. 이처럼 그들과 함께 한 연예인들이 이번 게이트가 터지자 숨죽이고 있는 반면, 당당하게 촛불을 들고 이번 사태의 규탄에 앞장서는 연예인들도 있다. 이들의 할 말은 하고, 할 행동은 하는 모습은 대중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때로는 속 시원하게 해주기도 한다.

 

영화 <아수라> 팬 단체 관람회에 참석해 팬들의 요청에 따라 극중 대사를 패러디해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외친 정우성은, 한때 자신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말라. 그들이 지은 것이지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이라는 이름을 가명으로 써왔다는 사실 때문에 과거 그 역할을 연기했던 하지원은 영화 <목숨 건 연애> 제작보고회에서 의연하게 이 영화의 캐릭터인 한제인은 쓰지 말아 달라고 센스있는 당부의 목소리를 남겼다.

 

촛불 집회에 직접 참가하거나 촛불을 지지하는 인증샷을 올린 연예인들도 있다. 신현준, 김동완, 허지웅, 이준, 유아인, 이기우-이청아 커플, 남보라, 치타, 솔비, 김효진 등등. 그들은 촛불을 들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각자 소신 발언도 남기는 등 이번 시국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대중들이 그들에게 박수를 치는 건 항상 대중들과 함께 한다는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그 소신 행동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평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어떤 시국을 만나면 드러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번 시국에서 누군가는 AB씨로 일컬어지며 저 모자이크 뒤편으로 숨게 됐지만, 누군가는 당당히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내밀고 대중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것이 대중문화의 기수로서 연예인들의 바람직한 모습인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일일 것이다

<우사남><캐리녀>, 동반 추락하는 까닭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걸까. MBC 월화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래도 초반 9.6%(닐슨 코리아)까지 시청률이 오르기도 했지만 7.1%까지 추락했다. KBS <우리집에 사는 남자> 역시 10.6%까지 올랐던 시청률이 7.4%로 폭락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끝난 후 반사이익을 얻어 5.9%에서 9.8%까지 폭등했던 <달의 연인> 역시 9.0% 시청률로 주춤하고 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사진출처:MBC)'

<달의 연인>이야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청자 유입이 여의치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캐리어를 끄는 여자><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다르다. 중반에 접어든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힘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이고, 이제 시작인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초반의 관심을 이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어째 이 두 드라마는 점점 힘이 빠진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이야기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함복거(주진모)의 과거에 얽힌 복수극을 그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시험 공포증으로 변호사가 되지 못하고 사무장으로 살아가는 차금주(최지우)의 성장드라마를 그리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함복거와 마석우(이준) 사이에서 차금주와 벌어지는 삼각멜로를 그리려는 것인지 너무 애매모호하다.

 

사실상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욕망이지만 그것이 썩 자연스럽게 엮어져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드라마 중간 중간에 갑자기 나타나 드라마를 스릴러로 만드는 강프로 같은 캐릭터는 너무 뜬금없이 등장해 드라마의 몰입을 떨어뜨린다. 멜로와 스릴러, 성장드라마가 갖는 감정적 느낌은 잘 어우러지지 않으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기 마련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래서 마치 여러 개의 드라마를 억지로 묶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니 드라마가 순항할 수가 없다.

 

새로 시작한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웹툰 원작답게 그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초반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수애의 연기 변신도 주목할 만했고, 김영광의 가벼움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연기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이 발랄한 느낌이 어떤 굵직한 한 가지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고 자잘한 에피소드로만 이어지면서 드라마가 마치 시트콤 같은 느낌을 주게 되었다.

 

새 아빠라고 갑자기 나타난 고난길(김영광)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홍나리(수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궁금한 대목이 맞지만, 그 한 가지 에피소드에만 맞춰져 홍나리와 고난길이 벌이는 좌충우돌은 너무 지루하게 이어진다.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 제사상을 차리는 고난길과 그가 가진 열쇠를 복사하기 위해 옛 남자친구인 조동진(김지훈)을 불러 그와 술을 마시고 취하게 만드는 설정은 아무리 코미디라고 해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매회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메인 스토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건 이런 새로운 드라마들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캐리어를 끄는 여자><우리집에 사는 남자> 모두 메인 스토리가 중심을 잡아주지 못한 데서 생긴 일이다. 동반 추락하고 있는 두 드라마는 과연 부족한 그 지점들을 채워 넣고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

법정극과 멜로 사이, <캐리어>의 애매한 위치

 

MBC 월화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 장르적 정체성이 애매모호하다. 시작은 스릴러가 곁들여진 법정극으로 보였다. 노숙소녀 살인사건이 그 시작을 알렸기 때문. 여기에 차금주(최지우)라는 변호사보다 뛰어나지만 시험공포증으로 사무장으로 살아가는 인물이 겹쳐지면서 법정극의 색다른 시도가 엿보였다. 간판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겨있는 차금주라는 캐릭터가 후에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에 대한 기대감도 충분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사진출처:MBC)'

매회 한 가지 정도의 사건을 에피소드로 갖고 오는 이야기 구성은 마치 저 <동네변호사 조들호><굿와이프>가 보여줬던 법정극의 재미요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 각각의 사건들은 차금주가 사무장으로 있다가 결국 퇴출된 오성로펌과 계속 연결되고, 오성로펌은 그 뒤에 오성그룹이라는 대기업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로펌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진다. 과거 어떤 사건으로 법조계를 떠나 K팩트라는 파파라치 언론의 대표가 된 함복거(주진모)와 함께 차금주는 이 대기업과 로펌 그리고 정재계가 서로 얽혀있는 거대한 부정을 파헤쳐 나가게 된다.

 

이처럼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법정극의 요소들만 갖고 오면 권음미 작가의 전작들인 <갑동이><로열패밀리> 같은 작품들처럼 충분히 흥미진진한 면들이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여기에 조금은 과한 삼각 멜로의 틀을 집어넣었다. 함복거와 마석우(이준) 변호사 사이에서 차금주를 멜로의 중심으로 세워둔 것. 직장상사로서 일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때로 사심을 드러내는 함복거와, 대놓고 마음을 드러내며 직진하는 마석우 사이에서 차금주는 갈팡질팡하는 여성이 된다.

 

사무장에서 변호사가 되려는 꿈이나, 또 자신이 맡은 사건을 자기 이름이 남는 것도 아니면서 변호사보다 더 열심히 풀어나가는 차금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일에 있어서의 매력을 보여주는 차금주를 함복거와 마석우라는 남성들은 자꾸만 여성으로 끌어 앉힌다. 일을 빙자해 연애를 하려하고, 심지어 같은 로펌의 대표와 변호사이면서도 연적으로서의 대결구도를 보인다.

 

물론 법정극이든 스릴러든 심지어 연쇄살인이 소재로 담겨진 드라마라고 해도 멜로가 없어야 한다는 공식 따위는 없다. 특히 요즘처럼 여러 장르를 뒤섞은 이른바 복합 장르물이 이제는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멜로가 들어간다고 해도 법정물이나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멜로의 이완은 적절하게 균형이 맞아야 하고, 또 그 이질적 장르를 연결해주는 맥락이 있어야 자연스러워진다. 과연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장르 혼용은 이런 자연스러움이 있을까.

 

차금주라는 캐릭터가 흔들리는 걸 보면 이 결합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즉 처음에 이 캐릭터에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던 일의 요소들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대신 뜬금없이 이어지는 두 남자 사이의 멜로가 법정극 사이사이에 맥락 없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정극에서 멜로로 넘어갈 때나 혹은 그 반대로 넘어갈 때 마치 극이 툭툭 끊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저 두 장르를 이어붙인 듯한 안이한 구성과 편집 때문이다.

 

굳이 차금주라는 입지전적인 인물을 자꾸만 멜로로 주저앉힐 필요가 있었을까. 로펌 사장이라며 함복거가 그녀에게 9천만 원짜리 외제자동차를 선물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왜 필요하고, 사건 수사를 하러 성소수자들이 가는 바에 함께 간 마석우와 차금주가 굳이 갑자기 키스를 하는 장면이 왜 필요할까. 물론 그 멜로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본 스토리가 갖고 있는 법정극의 긴장감을 과도하게 이완시킴으로써 드라마 전체의 느낌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본말을 전도시킨다는 것이다.

 

한때 본격 장르물은 안 된다는 게 지상파 드라마의 공식처럼 되어 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멜로도 조금 넣고 가족드라마적인 요소도 넣으며 심지어 판타지도 넣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점점 높아지면서 이런 공식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 <시그널> 같은 본격 장르물이 tvN 같은 케이블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걸 보라.

 

물론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법정물을 다루면서도 로맨스물의 성격을 더해 독특한 톤 앤 매너를 시도하려 했다는 의도는 분명히 보인다. 하지만 그러려면 좀 더 정교한 봉합이 있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멜로를 넣더라도 먼저 차금주의 일에 있어서의 욕망이나 정의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을 좀 더 전면에 내세우는 편이 지금의 드라마 트렌드에는 더 맞지 않을까. 연애하는 사무장이 아닌 변호사보다 더 열 일하는 사무장 차금주가 더 매력적이다.

<캐리녀> 최지우, 그녀가 캐리어를 끄는 까닭

 

근데 꼭 뭐여야만 하는 겁니까? 아무 것도 아니면 안 되는 거냐구요? 꼭 변호사, 검사, 의사 이런 게 되야 하는 거냐구요?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 안 되는 거냐구요?” MBC 월화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차금주(최지우)는 직업을 묻는 형사에게 그렇게 되묻는다. 바람 난 남편 때문에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그녀는 왠만하면 쿨하게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으려 했다. 하지만 남편의 내연녀가 아기까지 가진데다 너무나 뻔뻔하게 이혼을 요구하는 모습에 분노해 남편의 차를 박살낸 죄로 경찰서에 오게 된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사진출처:MBC)'

조서를 꾸미는 형사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차금주의 말에 금세 목소리 톤이 바뀐다. “그럼 변호사님이셨어요?” 그러나 변호사 아니라는 말에 다시 말투가 바뀐다. 비서도 경리도 아니라는 차금주에게 계속 직업이 뭐냐고 추궁하자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누군가의 아내이자 바람 핀 남편의 아기가 곧 태어날 거란 사실에 분노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될 자격이 있다는 걸 입증할 방법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 짧은 장면은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갖고 있는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무언가 간판을 요구하는 사회. 그래서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험을 봐 그 간판을 따내야 하는 현실. 법정드라마가 주인공인 차금주라는 인물을 변호사나 검사가 아닌 사무장으로 세운 건 그래서다. 그녀는 로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사실상 해결하는 인물이다. 찾아내지 못해 난항을 겪었던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고 거짓 증언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증인의 마음을 돌려 양심선언을 하게 만들기도 하는 인물.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실제적인 역할을 하는 차금주는 사실상 진짜 현실의 무대에서는 뒤편으로 밀려나 있다. 변호사가 있어야 사무장이라는 자신의 존재가 가능한 현실이기 때문에 지금껏 이복동생인 박혜주(전혜빈)를 변호사로 만들어 뒤에서 실제로 일을 해왔지만, 그녀는 박혜주로부터 사무장이라는 처지를 조롱받는 입장에 처해 있다. 이겨도 그녀의 사건이 되지 못하는 차금주의 아픈 처지를 박혜주는 가시 같은 말로 콕콕 찔러댄다.

 

이것은 일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헌신해왔지만 그 남편은 그녀가 감옥에 다녀온 사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살림을 차린다. 사실상 자신이 다 꾸려온 집안이지만 그녀는 내연녀가 떡 하니 자리한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살아간다.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그녀는 그녀 스스로 자조하듯 아무것도 아닌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경찰서에서 빼내 집까지 바래다준 함복거(주진모)에게 그녀가 자고 갈래요?”라고 불쑥 묻는 질문에는 그녀의 절실함이 담겨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그렇게 해서라도 느끼고 싶다는 것.

 

그녀가 늘 뒤편으로 밀려난 까닭은 이른바 시험 공포증으로 고시에서 연거푸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사나 검사가 아니라도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사무장이라는 일에 깊은 만족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그녀 말대로 변호사, 검사, 의사가 아니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세상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렇게 번드르르한 간판을 가진 직업이 아니라도 실제로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거기서 능력을 발휘하는 삶에 대한 재조명이다. 도대체 직업의 위계라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법정에서 변호를 하든 그 변호를 할 수 있게 현장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든 그건 똑같은 일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

 

그녀의 간판이 아니라 능력을 봐 주는 두 인물, 함복거 대표와 마석우(이준) 변호사와의 멜로가 판타지를 주는 건 그래서 단순한 남녀 관계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그녀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그 시선에서 만들어지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일과 사랑이 얽혀지는 그 지점에는 그래서 간판 사회에 대한 작가의 날선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무도> 웨딩싱어즈, 왜 하필 축가를 선택했을까

 

사실 <무한도전>에서 음악을 소재로 한 아이템들은 많았다. 대표적인 게 2년마다 치러지는 가요제이고 연말에 가끔 한 해를 보내는 의미로 하던 콘서트도 있었다. 최근에는 토토가가 또 하나의 음악 소재 빅 이벤트로 떠올랐다. 젝스키스가 다시 모여 했던 게릴라 콘서트는 그 다시 모였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이 <무한도전>의 음악 소재 아이템에 이제 웨딩싱어즈가 포함되어야 할 듯 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많은 다른 아이템들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웨딩싱어즈 특집이 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팀이 꾸려지는 과정은 그저 소소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실제 결혼을 앞둔 커플들의 사연을 받고 그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하면서 아이템은 생각보다 훨씬 커졌다. 부랴부랴 <듀엣가요제>의 무대를 빌려 중간점검 경합을 벌인 건 어떤 면에서는 너무 많은 신청자들이 몰려 모두 챙기지 못하는 마음을 콘서트 형식으로나마 챙겨보려는 데서 생긴 일일 게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진짜 결혼식 이벤트는 특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첫 번째로 보여준 광희, 정용화, 이준이 꾸린 웨딩보이즈는 제자의 신청으로 스승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는 것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마치 대단한 작전이라도 치르듯 몰래 결혼식장으로 들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신랑 신부들 앞에서 정성껏 준비한 축가를 부른다는 그 마음 자체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환하게 웃는 신랑 신부와 이들의 등장만으로도 반색하는 하객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 순간을 <무한도전>은 담담히 포착해냈다.

 

두 번째로 하하와 그의 아내인 별이 함께 축가를 부른 부산의 결혼식장은 눈물바다였다. 암 투병을 하시면서도 딸에게 좋은 결혼식의 기억을 남기고픈 아버지와, 역시 아버지에게 행복한 결혼식의 모습을 보여드리려는 딸의 이야기는 사연만으로도 뭉클하게 만들었다. 역시 결혼식 한 달여 만을 남기고 고인이 되신 별의 아버지 이야기는 그녀가 얼마나 이 사연의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사실 결혼식장에서 딸이 부모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할 일이었다. 하지만 암 투병하는 아버지를 대하는 딸은 오죽할까. 하지만 행복한 결혼식으로 기억되기 위해 애써 눈물을 참는 딸과, 최대한 즐겁게 축가를 부르는 하하와 별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여기에 사위가 장인에게 편지로 전한 마음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웨딩싱어즈특집은 노래와 춤을 경연하던 여타의 <무한도전> 음악 소재 아이템하고는 그 지향점 자체가 달랐다. 그것은 온전히 <무한도전>이 전하는 팬들에 대한 마음이었고, 결혼식이라는 누구에게나 클 수밖에 없는 이벤트의 순간을 통해 들여다보는 그 당사자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사연들이었다.

 

무엇보다 그 분들을 위해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주겠다는 <무한도전>의 마음은 고스란히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되었다.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같이 행복해지는 느낌. 그것은 <무한도전> 웨딩싱어즈가 생각보다 커져버린 감동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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