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저씨’, 공간에 담긴 이 드라마의 진심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이지은)의 캐릭터는 몇 가지 특징으로 제시된 바 있다. 집으로 돌아와 배고픔과 정신적 허기를 자위하듯 마시는 두 봉의 믹스커피, 한 겨울인데도 추워 보이는 옷차림에 유독 시려 보이는 발목이 드러나는 단화, 그리고 이력서에 특기로 적어 놓은 ‘달리기’ 같은 것이 그것이다. 

믹스커피와 단화 그리고 ‘달리기’. 언뜻 보면 별 상관이 없는 요소들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지안이라는 캐릭터는 혹독한 겨울 같은 현실에 내몰려 몸도 마음도 춥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몸을 데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발이 시려도 신을 수밖에 없는 그 단화를 신고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렇게 ‘추운’ 이지안을 바라봐주고 이해해준 인물이 바로 박동훈(이선규)이다. 동훈은 회사에서 믹스커피를 챙기는 이지안을 보고서도 그저 눈감아주고, 단화를 신고 다니는 그의 발목이 시릴 것을 걱정해준다. 또 무엇보다 이력서에 스펙 한 줄 없이 특기로 적어놓은 ‘달리기’라는 항목에 담긴 어떤 절실함 같은 걸 읽어내고 그를 채용한다.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고, 이지안이 자신을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드러났지만 박동훈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거지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이지안을 후계동 아저씨들이 늘 모이던 아지트 정희네로 데려가 잠시 그곳에서 지내게 해준다. 이지안은 마치 오래도록 쉴 곳을 찾지 못하고 그 추운 겨울 길바닥을 헤매다 이제 겨우 둥지를 찾아 돌아온 새처럼 정희 옆에서 잠이 든다. 

<나의 아저씨>에서 후계동이라는 동네도 또 그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드는 정희네라는 선술집도 어찌 보면 현실에 존재할까 싶은 판타지 공간이다. 하지만 이 공간은 바로 판타지이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지위도 위치도 빈부도 남녀도 상관없이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기를 나눌 수 있고,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판타지 공간.

이지안은 여러 차례 거처를 옮겨 다닌다. 사채업자인 광일(장기용)이 찾아내면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집이라고 하면 자신만의 쉴 공간이어야 하지만, 그 곳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버리는 광일 같은 타자는 결코 그에게 쉴 틈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봉애(손숙) 같은 부양해야할 할머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어린 청춘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혹독한 현실이다. 

그나마 그런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박동훈과 정희네에서 만난 아저씨들 그리고 정희(오나라)였다. 그들은 함께 이지안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근처 사는 후배에게 혼자 사는 그를 챙겨주라는 부탁까지 해준다. 차가웠던 그의 공간이 조금은 따뜻해진다. 하지만 박상무(정해균)를 좌천시킨 일이 발각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 이지안은 다시 고시원을 전전하며 떠돌게 된다. 그러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져 춘대(이영석) 할아버지를 찾아오고, 다행스럽게 동훈을 만나 정희네로 오게 된다. 그 먼 여정이 고단하지만, 그래서인지 정희네로 온 이지안이 그토록 안심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드라마가 담으려는 것이 바로 이 여정이었던 것처럼.

공간을 통해 <나의 아저씨>가 담은 진심은 ‘사람의 온기’다. 상처받았어도, 또 망했어도 함께 모여 있어 느껴지는 그 따뜻함. 동훈이라는 인물은 바로 그 ‘온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미운 짓을 해도 사람을 알기 때문에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는 그런 존재. 그래서 이지안이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밉지 않냐고 물었을 때 동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그런 동훈에게 이지안은 비로소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도청을 통해 들었던 동훈의 모든 소리들에게서 느껴지던 그 온기를. “아저씨 소리 다 좋았어요. 아저씨 말, 생각, 발소리. 사람이 뭔지 처음 본 것 같았어요.” 그는 지금껏 살아오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을 비로소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가 말하는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를 얘기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정희네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나듯, 힘겨워도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주며 버티고 서는 그런 존재를 말한다. 너무나 외롭고 괴로워 홀로 제정신에 잠드는 것이 힘들었던 정희는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둥지로 돌아온 듯한 이지안을 만나 비로소 어떤 편안함을 느낀다. 서로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별 이야기 없이도 이해되는 그런 편안함.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온기. 그것이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사람’이 아닐까.(사진:tvN)

‘나저씨’ 신구 캐릭터는 어째서 갑질 재벌들 비판처럼 보일까

현실에도 이런 회장님이 있을까. 성폭력으로 시작됐던 미투 운동이 이제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어서일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장회장(신구)이 마치 이런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안 E&C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다. 건물을 설계하고 그 위험을 진단하는 일을 하는 회사라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의 대부분이 이른바 ‘성장 지상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 윤상무(정재성) 같은 인물은 실적을 위해 건물의 안전진단도 적당히 하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그것이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이 회사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제대로 일을 하는 인물이 주인공 박동훈(이선균)이다. 그는 건축구조기술사로서 경영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은 건물에 대한 ‘구조적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소신을 지켜나간다. 모두가 라인에 붙어 자리보전을 위한 암투에 몰두할 때 그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는 인물이 바로 장회장이다. 왕전무(전국환)가 쥐락펴락하며 자기 회사인 양 힘을 넓혀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로얄패밀리의 아들인 도준영(김영민)을 대표로 세우긴 했지만 그는 그가 미덥지 못한 인물이라는 걸 알아본다. 실제로 도준영은 이 회사 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의 뒷조사를 하거나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와 바람을 피우고, 장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캠핑장에서의 ‘불 피우기’를 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처럼 보인다.

장회장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사실상 이 회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회장님이지만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봐온 회장님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회사라서 그런지 애사심이 남다르고, 진짜 일을 하는 박동훈 같은 인물에게 선선히 다가가 “밥 한 번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가 남다른 회장님이라는 게 드러나는 대목은 회사의 비정규직이었던 이지안(이지은)이 그의 과거를 뒷조사하는 이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자 버럭 화를 내며 그를 찾아오라고 하는 부분에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상무 심사를 위한 부하직원의 인터뷰 자리에 나가 그가 얼마나 따뜻한 인물이었는가를 피력하며 이 회사에서의 몇 개월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말한 바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장회장은 그래서 이지안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됐고, 그런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소식에 “사과라도 해야겠다”며 찾아오라 했던 것.

스펙과 자기 측근만을 챙기고, 직원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렸다는 재벌가 회장님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이런 회장님은 아마도 판타지일 것이다. 그저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낙으로 여기고, 저 비정규직 사원 하나의 일에까지 이토록 마음을 쓰는 회장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장회장의 면면이 갑질 재벌들의 비판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나저씨’, 우리에게 이런 퇴근길이 있다는 것만으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정희네 가게에는 이제 일터에서 퇴근한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술판이 벌어진다. 일터에서 겪은 스트레스들을 그 퇴근길 술 한 잔으로 풀어낸다. 왁자한 분위기에 술기운에 내놓는 과장된 이야기들은 그래서 어딘지 쓸쓸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퇴근길이 그나마 주는 위로다. 

하지만 정작 정희네 가게를 운영하는 정희(오나라)는 퇴근이 없다. 1층이 주점이고 2층이 집이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이 그의 일과다. 모두가 돌아가는 밤 시간, 정희는 퇴근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자신도 퇴근하겠다고 그들을 따라나선다. 퇴근 기분을 내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정희의 발길 역시 쓸쓸하다. 

정희네 가게가 문을 내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아저씨들과, 그 아저씨들을 따라나선 정희 는 이제 퇴근하고 돌아오는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이지은)을 만난다. 박동훈은 바람을 피운 아내 때문에 퇴근길이 고역이 되었고, 이지안은 늘 그랬듯 휴식보다는 챙겨야할 것들이 더 많은 퇴근길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저씨들과 정희 그리고 박동훈과 이지안이 함께 골목길을 걸으며 퇴근하는 그 길이 달라보인다.

수다쟁이 아저씨 제철(박수영)은 같은 동네에 사는 여직원을 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하고, 그의 이야기에 그만큼 직장 상사가 싫은 거라며 그의 친구가 대꾸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직장 여직원의 퇴근길을 함께 하는 박동훈이 눈치 없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하릴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정겹고 훈훈하다. 제철은 세상의 모든 부장놈들은 “미친 놈, 개놈, 죽일 놈들”이라며 굳이 혼자 가도 된다는데 오버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정희는 갑자기 살갑게 이지안에게 자신들도 아가씨 같은 20대가 있었다며 이렇게 나이들 거 생각하니까 끔찍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지안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한다. “전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이지안의 그 말에 정희도 아저씨들도 자못 진지해진다. 너스레를 떨며 농담을 하던 아저씨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이 20대 같지 않은 이지안을 바라본다. 그 의미심장한 말에 깊은 공감을 하는 눈치다.

계단을 올라 이지안의 집 앞까지 가는 길. 늘 혼자 외롭게 혼자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는다. 집 앞은 이지안에게는 상처가 떠오르는 곳이다. 빚독촉을 하는 이광일(장기용)에게 두드려 맞기도 했던 곳. 그래서 늘 불안함이 느껴지는 곳이지만 이렇게 함께 걸어 도착한 그 곳은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동훈의 형 상훈(박호산)은 갑자기 그 집 앞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창을 향해 누군가를 부른다. 동네 아는 동생이 창문을 열자, 상훈은 그에게 이 집에 사는 이지안의 안전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한다. 

“잘 자요”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정희와 아저씨들 뒤로 이지안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상훈은 “잘 자요. 또 봅시다.”라고 말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지안에게 정희는 “우리 가게 놀러오라”고 말한다. 박동훈은 들어가라며 “문단속 잘하고” 무슨 일 있으면 아까 봤던 이웃집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돌아가는 그들을 이지안은 오래도록 문 앞에 서서 바라본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퇴근길. 그 흔한 퇴근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의 아저씨>가 그려낸 이 퇴근길 풍경은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힘들게 살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거라는 것. 그건 나이 들어 이제 퇴직을 앞둔 중년들이나,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청춘들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아저씨>는 그 퇴근길 풍경 하나 속에 누구에게나 마주하고 있는 힘겨운 현실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퇴근길 하나가 주는 위안을 담아낸다. 

이지안을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 정희가 문득 입을 연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려서도 인생이 안 힘들지는 않았어.” 인생 다 산 것처럼 자신들만 힘들다 생각했던 이 중년들은 문득 청춘들의 힘겨움도 만만찮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 가게에 놀러오라는 정희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적어도 퇴근길에서의 작은 위로 정도라도 함께 나누자는. 그래야 최소한 무너지지 않고 또 다른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 테니.(사진:tvN)

망가진 자들의 연대 ‘나저씨’, 괜찮다고 진짜 괜찮은 걸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병치되어 있다. 그 한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도 서슴없이 하는 회사. 왕전무(전국환) 측이 박동훈을 상무로 올리려는 것도 반대파인 도준영(김영민) 대표 측과 대결하기 위함이다. 심사를 대비해 왕전무의 측근들은 박동훈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지안(이지은)과의 관계를 미리 추궁한다. 그들에게 사실관계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 이지안을 잘라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그 관계를 설명할 그럴 듯한 스토리를 짜서 박동훈에게 대비하라고 한다. 

건물의 안전을 진단하고 대비하는 일을 하고 있는 회사지만, 이 회사의 내부는 무너질 듯 불안하다. 경영진들이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살길에만 더 몰두하고 있어서다. 도준영파와 왕전무파의 정치대결은 상대방에게 미행을 붙일 정도로 극에 달해있다.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정치 싸움 속에서 회사가 하는 안전진단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다. 건물주들의 뒷돈을 받아 대충 안전하다 서류를 만들기도 하고, 제대로 안전진단을 한 박동훈 같은 사람을 앞뒤 꽉 막힌 인간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이 세계에 가치 따위는 없다. 오로지 돈과 권력이 가치가 되는 세계다. 

하지만 박동훈의 앞에는 또 다른 한 세계가 있다. 그건 정희네 선술집이다. 그 곳에는 ‘망가진 자들’ 혹은 ‘끝난 자들’이 모여든다. 그 술집을 운영하는 정희(오나라)가 그렇다. 그는 스님이 된 겸덕(박해준)과 연인 사이였지만, 이젠 그렇게 홀로 남아 선술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매일 술에 취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들고, 모두가 돌아갈 집이 있지만 자신은 그 일터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괜스레 퇴근을 해보기도 하고, 빨래와 세수를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아직은 “괜찮은 삶”이라고 말한다. 

그 곳을 찾는 아저씨들은 한 때 그래도 번듯한 직장에 지위까지 있었던 인물들이지만 지금은 한 마디로 ‘망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그 망가진 자들이 함께 모여 술판을 벌이는 그 곳은 왠지 따뜻하고 훈훈하다. 세상에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하나의 연대가 되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그런 세상 밖에 세상이다. 연기력이 없어 늘 구박받고 살아가는 최유라(나라)가 그 곳을 찾아 아저씨들이 “망가진 게 너무 좋다”거나 “끝난 사람들이라 부럽다”거나 하는 건 그래서다. 망가졌어도 끝났어도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박동훈은 그 망가진 자들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저 이전투구의 세상에 발을 디딘 자다. 세상의 더러운 일들이 벌어져도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아 살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도저히 희생이라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아내 윤희(이지아)가 도준영 대표와 바람을 피운 일이다. 그는 친구인 겸덕을 찾아가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겸덕은 말한다. 희생 말고 좀 이기적이라도 먼저 행복해지라고. 

박동훈이 힘겨운 건 모두가 포기하며 살아가는 가치를 지켜내며 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냥 쉽게 적당히 타협하고 가진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면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에게는 ‘정희네’ 사람들이 가진 그 ‘망가진 자들’을 이해하고 때론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춘대(이영석)가 이지안을 보살펴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존경합니다”라고 말하고, 이지안이 할머니 봉애(손숙)를 보살피며 사는 모습을 보고는 “착하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받는 불이익들을 그는 감수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그가 그런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해고하라고 하지만 박동훈은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런데 과연 현실에서 그 누가 이렇게 홀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을 알아봐 줄까. 또 망가진 자들이 한 때는 저마다 빛나는 존재였다는 걸 그 누가 말해줄까.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세상이 버린 가치를 지키다 망가져간 이들을 위한 헌사를 담고 있다. 이지안에게 봉애가 박동훈은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그는 박동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윤희가 한 불륜이 “넌 이런 대접 받아도 싼 인간”이며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박동훈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이들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세상. 이지안의 눈물은 그들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담고 있다. 왜 우냐는 봉애의 질문에 이지안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인간의 가치가 무너진 갑질 세상 속에서 그 가치를 봐주는 이가 있다는 위로만큼 큰 게 있을까.(사진:tvN)

‘나의 아저씨’가 우리네 비틀어진 현실에 던지는 아픈 질문

어째서 바르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뿐인데 이들은 이렇게 힘들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에게 이지안(아이유)이 함께 사는 봉애(손숙)는 “좋은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도 그랬다. 최소한 바르게 살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건축구조기술사로서 건물의 위험을 미리 알아내고 건물주로 하여금 사고를 예방하는 일이 그의 일이지만, 회사는 고객이기도 한 건물주를 위해 문제를 눈감아주라고 강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본분을 벗어난 일이라며 자신의 일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박동훈의 ‘소신’은 그가 회사에서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장인 도준영 대표(김영민)의 오른팔이 된 윤상무(정재성)처럼 “라인을 잘 타야” 한다. 갖가지 비리와 음모를 저지르며, 일보다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를 하는 것. 그것이 성공의 길이다. 그와 대립각을 세우던 왕전무(전국환)의 라인인 박상무(정해균)는 결국 저들의 계략에 빠져 강등 퇴출되어버린다. 어떻게든 자기 자리로 돌아오려고 도준영의 뒤를 캐는 박상무 역시 다른 인간이 아니다. 그 역시 라인을 타고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못 저지를 부정과 비리가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박동훈은 그러기에는 작은 것들에도 신경을 쓰는 세심한 인물이다. 드라마 첫 회 첫 시퀀스에서 사무실로 날아온 무당벌레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을 때 이를 때려잡으려는 직원의 손을 제지하며 그 벌레를 잡아서 놔주려 했던 그 장면이 박동훈이라는 인물을 잘 말해준다. 그는 벌레 한 마리 쉽게 죽이지 못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렇게 살리는 벌레를 무심하게 툭 죽여 버리는 이지안도 삶이 그를 그렇게 내몰았을 뿐, 그 본심은 착한 인물이지만.

이지안은 그 첫 장면에 벌레를 죽이는 모습에서부터 어딘가 심상찮은 인물이라는 걸 드러냈고, 결국은 박동훈에게 잘못 배달되어온 뇌물을 훔치는 모습으로 그저 사무실 아르바이트 직원은 결코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또 도준영과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가 불륜관계인 것을 알아채고 그걸 은근히 협박하며 도준영에게 박동훈과 박상무를 모두 내보내게 해주겠다며 2천만원을 요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지안의 이런 행동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정의니 소신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들은 그에게는 배부른 소리였다. 그래서 봉애가 박동훈이 “좋은 사람 같다”고 말했을 때 그가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 쉽다”고 한 말은 그의 심사를 잘 드러낸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는 일 같은 건 자신에게는 ‘배부른 사치’로 여긴다. 사채업자에게 빚 독촉을 당하고 말도 못하며 운신도 못하는 할머니 봉애를 건사해야 하는 삶. 눈앞에서 할머니가 당하는 폭력 앞에 결국 칼을 들어 살인자가 되어버린 삶.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그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할머니를 건사한다는 그 상황이 이지안의 숨겨진 실체를 드러낸다. 일하고 들어와 자신은 봉지커피 두 봉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도 할머니에게 홍시를 사다 주는 인물이다. 혹여나 추울까봐 할머니가 누운 이부자리를 이리 저리 옮겨주는 인물이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 할머니가 달을 보고 싶어하자 마트의 카트를 훔쳐 할머니를 태우고 달을 보러 나가는 인물이다. 

그 누구도 바른 박동훈과 착한 이지안의 실체를 봐주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래서 어딘지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것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의 실체를 보게 된다. 박동훈을 직장에서 쫓아내고 대표로부터 돈을 받아내려 그의 핸드폰에 도청장치를 한 이지안은 어쩌다 그의 퍽퍽한 삶과 그 속에서도 바르게 살려는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카트에서 떨어진 과일을 들고 이지안의 뒤를 쫓아갔다가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박동훈은 달구경을 하고 돌아온 할머니를 집까지 업어다 주고는 이지안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착하다.”

그런데 그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착하다”는 말 한 마디가 너무나 아프고 짠하게 다가온다. 그건 삶이 지독할 정도로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착하게 살아가는’ 그 어려운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 절벽처럼 어두운 현실에서 ‘착하고 바른 삶’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삶의 절망감 같은 것들이 거기서 느껴져서다. 

어쩌다 바르고 착하게 사는 이들은 이렇게 힘겹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게 된 걸까. 오히려 부정을 저지르고, 적당히 비겁하게 현실과 타협하고, 성공과 이익을 위해서는 위악스런 행동들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더 잘 살아가는 현실이 된 걸까. <나의 아저씨>가 우리네 비틀어진 현실에 던지고 있는 아픈 질문들이다.(사진:tvN)

‘나의 아저씨’, 주도권 쥔 이지은이 주는 묘한 카타르시스

이 드라마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기대된다.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첫 회는 한 마디로 짠 내가 풀풀 진동했다. 이지안(이지은)은 사채업자에게 폭행까지 당하며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박동훈(이선균)은 엉뚱하게 상무와 이름이 비슷해 잘못 배달된 뇌물봉투로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했다. 특히 아르바이트에서 손님이 남긴 음식을 싸와 배를 채우고, 운신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할머니(손숙)를 보살펴야 하는 이지안의 상황은 너무나 가혹해보였다.

하지만 단 2회 만에 이 모든 상황이 뒤집어졌다. 회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관계를 눈치 채고 도준영 대표(김영민)가 박동운 상무(정해균)을 퇴출시키려 뇌물을 보냈으며, 박동훈의 아내 윤희(이지아)와 불륜 관계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서 이지안이 모든 주도권을 쥐게 된 것. 이지안이 박동훈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책상 서랍에 넣었던 뇌물 봉투를 훔쳐간 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지안이 그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박동훈이 뇌물을 거부한 모양새가 된 것. 

회사 내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이지안이 도준영과 마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대표이사지만 이지안은 그런 건 아랑곳없이 그에게 맹랑한 제안을 한다. 자신이 박동운 상무와 박동훈 부장을 모두 처리하겠다는 제안이다.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제안이지만 이지안이 보여준 때론 과감하고 때론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들을 떠올려 보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제안이다. 그 순간 대표이사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권력관계는 역전된다.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아저씨’가 아닌 ‘나’ 즉 이지안이 모든 상황을 쥐고 흔드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여기서 아저씨에 해당되는 박동훈은 한 마디로 착해빠진 데다 어딘가 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뇌물 봉투를 받았을 때도 그냥 갖기보다는 양심 때문에 머뭇댔던 인물. 그냥 성실히 자기 하는 일을 해가며, 노모와 형제들을 부양하다시피 하는 가장이고, 아내가 도준영과 불륜관계이며 곧 이혼을 요구할 거라는 것도 까마득히 모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부장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힘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저씨 박동훈과 당장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할 것 같은 영악한 청춘 이지안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박동훈이 이지안을 챙기거나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위치로 보이지만, 이 관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어딘지 불쌍하고 억울해 보이는 박동훈을 이 영악한 이지안이 도와주기를 시청자들이 오히려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거나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두 세대를 주인공을 내세웠다. 하나는 이제 곧 퇴출될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저씨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희망조차 찾기 힘든 삶을 버텨내며 그 살벌한 현실 속에서 단단해진 청춘이다. 과연 이 청춘은 아저씨를 구해주는 존재가 될까 아니면 그가 대표이사에게 제안한 것처럼 그를 퇴출시키는 존재가 될까. 그 모든 주도권이 이 작고 가녀리게 보이는 청춘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금껏 봐왔던 대부분의 빈부와 세대와 성별의 구도를 훌쩍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사진:tvN)

'아저씨' 이선균·이지은, 24살 차이 멜로 괜한 걱정이었나

박동훈(이선균)은 형 박상훈(박호산)과 동생 박기훈(송새벽)과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팍팍한 중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년퇴직 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지워져버리고 있다는 박상훈.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재취업은 아파트 경비 자리 얻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박기훈은 영화 감독이 꿈이지만 만년 조연출로 늙어가고 있다. 한 때는 주목받기도 했었지만 그 후로는 영화판에서 마모되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건축구조기술사라는 그럴 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 박동훈은 나아 보이지만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무게가 온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퇴근 해 혼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게 유일한 휴식이지만 그의 아내는 그가 다니는 회사 대표이사 도준영(김영민)과 불륜 중이다. 

tvN 새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들의 위기로 시작한다. 박상훈이 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아저씨가 나오는 공포영화’를 말하듯, 아저씨들은 퇴직 후 사업에 망하고 재취업도 못한 채 심지어 경조사에조차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절망하고 분노한다. 돈이 없어 동생 박동훈에게 손을 벌리는 그 심정이 오죽할까. 그런 형이 큰 일을 낼까 걱정이라며 엄마 변요순(고두심)이 박동훈을 찾아와 가게라도 내주자며 5천만 원 대출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돈을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던 차에 마치 운명처럼 그에게 뇌물 상품권 5천만 원이 퀵으로 잘못 배달된다. 경쟁관계에 있는 도준영(김영민)이 박동운 상무(정해균)를 물 먹이려 보낸 돈이지만 배달사고가 난 것. 결국 도준영은 박동훈을 희생양 삼으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아저씨들의 위기만큼 처절한 청춘의 위기가 겹쳐진다. 그 청춘은 박동훈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알바생 이지안(아이유)이다. 무슨 일인지 사채업자에게 심지어 두드려 맞아가며 돈을 갚아나가고 있는 이 청춘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양원 비용이 없어 청각장애에 운신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다. 음식점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이 버리고 간 음식을 챙겨와 역시 사무실에서 훔쳐온 믹스 커피와 함께 먹는 게 그의 유일한 휴식이다. 불조차 켜지 않는 집에서 꾸역꾸역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입안에 구겨 넣고, 달달한 믹스 커피를 꼭 두 봉씩 녹여 마시는 삶. 그에게 꺼져있는 불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박동훈에게 잘못 배달된 뇌물 봉투를 우연히 보게 된 이지안은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그 뇌물을 훔치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접근한다. 뇌물 봉투를 받고 당황한 박동훈이 대충 서류철과 함께 책상에 구겨 넣어둔 걸 안 이지안은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신 후 그가 집에 간 사이 사무실에 몰래 들어와 그 뇌물 봉투를 꺼내간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혹독한 현실에 내몰린 청춘 이지안과, 이제 돈도 사라졌지만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게 된 아저씨 박동훈. 그들의 위기가 격돌한다. 

<나의 아저씨>가 아저씨라는 중년세대와 청춘의 위기를 동시에 병치한 건,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다. 이제 직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 아저씨 세대는 아예 취업 전선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는 청춘 세대들과 현실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건 일자리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지만, 그래서 비롯되는 갈등은 현실의 차원을 넘어서 감정적인 차원으로까지 치닫곤 한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 세대를 대변하는 박동훈과 그 형제들과, 청춘 세대를 대변하는 이지안이 부딪치면서도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애초에 24살 차이의 멜로라는 소재 때문에 갖게 되는 어떤 불편함은 그것을 단지 멜로 차원으로만 바라봤을 때 나올 수 있는 오해가 아닐까. 어쩌면 <나의 아저씨>는 그 24살 차이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세대 간의 갈등을 화해하는 드라마일 수도 있으니.(사진:tvN)

‘효리네 민박’, 어째서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될까

잠시 동생의 졸업식 때문에 미국에 간 이지은(아이유)의 빈자리는 크다. 이효리와 이상순이 설거지를 하면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또 밥을 먹으면서도 입에 ‘지은이’를 올린다. “지금쯤 지은이는...”이라고 하고, “보고 싶다”는 말을 자꾸만 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JTBC <효리네 민박>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딘지 쓸쓸하게도 보였던 그 뒷모습이나 허겁지겁 뛸 때 뒤뚱대던 모습, 그리고 누군가를 쳐다볼 때 동그랗게 떴던 눈과 우스워 죽겠다는 듯 박장대소했던 그 모습이 그 빈 공간에 어른거린다.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 그 사람의 존재가 더 빛이 난다. 

'효리네 민박(사진출처:JTBC)'

이런 빈자리가 주는 떠난 사람의 온기는 <효리네 민박>을 찾았던 많은 손님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잠시 머물다 돌아간 분들이지만 그 잔상은 그 공간 곳곳에 스며있다. 누군가는 깔깔 웃었고 누군가는 자못 심각하게 속내를 털어 놓았으며 누군가는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저마다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예고 동창생인 태윤씨와 조은씨는 햇살이 내리쬐는 민박집 한 켠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무려 5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간 조은씨가 눈물을 흘리자 이효리가 다가가 그녀를 다독였다. “학교만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존감이 한참 낮아져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이효리는 조은씨에게 “내가 예쁘지 않으면 날 예쁘게 안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내가 나를 예쁘게 보지 않아서 그런 거다. 사람들이 날 예쁘게 안 봐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건 조은씨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이효리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늘 밝아 보이기만 했던 영업사원팀들에도 자신들만의 고충은 있었다. 경문씨는 늘 웃는 얼굴로 대해야 하는 부담감을 이야기했다. 요가를 하며 유독 뻣뻣했던 경문씨에게 호흡에 대해 이효리가 이야기하자, 그는 직업 때문에 사실 한숨도 제대로 내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이 보는 이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효리는 그에게 한숨의 사전적 의미를 되새겨줬다. ‘근심 설움 또는 긴장이 풀려 안도할 때 쉬는 숨’이 한숨이니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 

조은씨의 눈물을 슬쩍 봤던 이상순이 이효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행복할 줄 알았대”하고 이효리가 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새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만 하면, 제대만 하면 그리고 가수로 성공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고 했다. 문득 이효리는 “행복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면 행복한데...”라고 했고 이상순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그냥 사는 거지..”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이 민박집에 찾아왔고 또 떠나갔다. 그들은 너무나 다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공통된 한 가지는 행복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 행복을 위해 꿈을 꾸고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하고 잠시 힘겨운 도시생활을 벗어나 저들끼리의 한가로운 시간을 만끽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고 낯선 곳을 여행한다. 그들은 이 곳에서 어쩐지 행복해 보였다. 무엇을 하기만 하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함께 웃고 때론 아픔도 나누는 그 자체가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마지막 손님을 받는 <효리네 민박>. 하지만 그 꽤 긴 시간들 속에 이 공간에는 많은 사람들의 온기들이 행복한 잔상으로 남겨져 있다. 멀리 떠나 있어 더 그리워지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남겨 놓은 빈자리의 흔적이 더 소중해지는 것처럼 지나칠 땐 몰랐던 것들이 지나고 나서는 행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곤 한다. 아마도 <효리네 민박>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위로가 되는 건 바로 그런 삶의 비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소소하게 겪은 많은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

‘효리네 민박’ 효리·지은·상순, 서로 힐링이 된다는 건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이지은(아이유)이 새벽 요가를 함께 가는 길, 집착하는 게 무어냐는 이효리의 질문에 이지은은 의외의 답변을 한다. “평정심에 집착한다”는 것. 그녀는 자신이 “들떴다는 느낌이 스스로 들면 기분이 안좋다”고 했다. 평정심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이효리는 거꾸로 “너무 슬펐다 너무 기뻤다 하는 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쨌든 너나 나나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평정심에 집착하는 것이나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나 사실 마찬가지라는 것. 

'효리네 민박(사진출처:JTBC)'

성향은 완전히 반대지만 고민은 같다는 결론에 이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바람에 대해 털어놨다. 이지은은 그 감정 절제를 이제는 좀 놓고 “더 많이 웃고 많이 울고 싶다”고 했고, 이효리는 정반대로 “덜 웃고 덜 울고... 기복을 줄이고 싶다”고 했다. 고민을 나누는 자리, 이효리는 서로 정반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깔깔 웃었다. 그러면서 “너랑 나랑 반대 에너지니까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겠다”며 좋아했다. 서로 조금씩 닮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고 너랑 나랑 만났나 보다.” 이효리는 이지은과 고민을 나누면서 그들의 만남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했다. “나는 너를 많이 웃기고 울려줄 테니까 너는 나를 항상 Calm Down 시켜줘.” 이효리의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의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주고 완성해 가는가에 대한 삶의 비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이상순의 평정심에 대한 쪽으로 넘어갔다. 평정심이 없어 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효리를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순은 이해가 안 될 것이라는 것. 그러면서 이상순은 아마도 “의식의 요가”를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몸은 안 움직여도 항상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신혼 때를 떠올리며 이효리는 이상순이 너무 무덤덤하고 이벤트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매일 매일이 이벤트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효리와 이지은이 서로 달라 상보적인 관계인 것처럼 이효리와 이상순 역시 그런 관계로서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한테 궁금한 게 없고,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이지 않고, 나는 효리한테만 잘 하면 되니까...” 이상순이 이지은과 장을 보러갈 때 그녀에게 했다는 이 말 속에는 어떻게 그가 평점심을 유지하는지가 들어있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으로 그는 평온함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지만 에너지 넘치는 이효리가 그에게는 사랑스러움으로 느껴졌을 게다. 이지은이 이효리에게서 느끼는 ‘멋짐’의 정체가 그러하듯이.

사실 <효리네 민박>은 특별한 이벤트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만나고 서로 관계를 맺고 또 헤어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여기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힐링의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각자 살아가면서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삶의 비의들을 이들의 상보적인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효리와 이지은이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보이고, 또 부부로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눈에 띄게 느껴지지만 이효리와 이상순 또한 다르다. 누가 낫고 누가 못 나고 없이 각자 넘치는 부분이 있는 반면 부족한 면들도 있다. 아마도 혼자였다면 그 부족함이 자신을 짓눌렀을 것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함께 함으로써 서로가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 오히려 자신에게는 없지만 타인에게는 있는 그 과도함을 매력으로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조금씩 닮아가고 닮기를 원한다. 

<효리네 민박>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왔다가 돌아가며 잔상을 남긴다. 모두가 떠나갔을 때 그 빈자리에 여전히 그들의 흔적들이 남아 가슴에 어른거린다. 그것은 아마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이 서로에게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뜻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차츰 충만하게 채워가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효리와 이지은 그리고 이상순을 보기만 해도 어떤 힐링을 갖게 되는 건, 그네들의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가 우리들이 사는 삶의 비의라는 걸 부지불식간에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슈퍼스타K>, 어쩔 수 없이 오디션은 막을 내리나

 

어차피 우승은 김영근? Mnet <슈퍼스타K 2016>의 첫 회에 김영근이 무대에 올랐을 때 벌써부터 시청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첫 회의 출연자가 최소한 톱10에 들어가고 그 중에서 독보적인 칭찬을 받은 참가자는 최종까지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이미 <슈퍼스타K>의 공식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2016(사진출처:Mnet)'

2014년에 치러졌던 <슈퍼스타K6>에서는 첫 회에 곽진언이 출연해 후회라는 노래를 불러 심사위원을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바 있다. 곽진언은 결국 파이널까지 진출해 김필과 대결을 벌였고 그 해에 우승했다. 이런 상황은 작년 <슈퍼스타K7>에서도 비슷했다. 첫 회에 출연했던 뉴욕 태생 엄친아 케빈 오는 결국 파이널에서 그 해의 슈퍼스타K가 되었다.

 

이번 <슈퍼스타K 2016>에서는 파이널에 오른 김영근과 이지은이 모두 첫 회에서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참가자였다. 물론 이미 우승자로 거의 심증이 굳어진 김영근을 위협하는 이지은의 추격이 있었지만 그래도 김영근이 우승할 거라는 건 대부분 짐작하는 일이었다.

 

어째서 이런 뻔한 전개일 수밖에 없었을까. 이렇게 된 건 <슈퍼스타K>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게 되면서 생겨난 악순환이다. 그 조짐은 2013<슈퍼스타K5>에서부터 조금씩 생겨났다. 2009년 첫 해에 서인국을 비롯해 매해 허각, 울랄라세션, 로이킴으로 이어지는 말 그대로의 슈퍼스타를 배출했던 <슈퍼스타K>는 그러나 2013년 박재정을 우승자로 내놓으면서 화제성이 뚝 떨어졌다. 사실 이 해에 우승자가 누구인지도 대중들의 기억에서는 가물가물해질 정도. 그 후 박재정은 그다지 가요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2014년 곽진언과 김필이 <슈퍼스타K>에 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올렸지만 케빈 오와 천단비, 자밀킴 같은 출연자들이 나왔던 그 다음해에는 그다지 화제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된 것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스토리텔링이 너무나 쉽게 읽히는 오디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그 해의 참가자에서 비롯된 일이다. 곽진언 같은 인물은 그 자체로 새로운 스토리가 가능해지는 출연자다. 지금껏 오디션에서 중저음으로 이만큼의 매력을 뽑아낸 참가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슈퍼스타K>가 악순환에 빠져버린 건, 참신한 참가자들이 출연하지 못한 것이 그 첫 번째다. 그래서 몇몇 가능성 있는 참가자들이 첫 회나 2회에 걸쳐 그 잠재적 매력을 보여주고 나면 사실상 새로운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소진되어 버리는 결과가 생겨난다. 중간과정은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지만 파이널 무대는 어차피 첫 회나 2회에 출연해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은 이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시청자들의 예측과 결과적으로 그대로 되어버리는 상황은 오디션을 맥 빠지게 만든다. 이렇게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 되면 다음해에 참가자들이 더더욱 모이지 않고 이야기는 더 앙상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SBS <K팝스타>가 그나마 흥미진진한 오디션의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는 건 결국 매력적인 참가자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진 건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을 걸어서다. 이번이 마지막 시즌이기 때문에 소속사가 있는 출연자에게도 문호가 열렸고, 또 오디션을 꿈꾸던 참가자들도 그 마지막이라는 선언에 더 이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K팝스타>는 그래서 마지막을 내걸음으로써 적어도 풍성한 오디션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시작부터 규모를 축소하는 등 이번 <슈퍼스타K>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과거처럼 대국민 오디션을 지향할 수도 없는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시즌을 끝내고 난 <슈퍼스타K>는 고민스러운 지점에 봉착하게 됐다. 과연 계속 이대로 오디션을 지속할 수 있을까. 물론 <K팝스타>가 파이널을 내걸은 만큼 향후 <슈퍼스타K>가 온전히 유일한 오디션이 된다면 그만큼 새로운 참가자들을 끌어 모으는 데는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익숙해져버린 공식대로<슈퍼스타K>가 가진 이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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