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어째서 ‘보이스’에 눈을 뗄 수 없었나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살인마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가정과 환경 사회에 영향을 받는 후천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한 인물의 예를 들어보죠.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를 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어서 아주 걷잡을 수 없는 끔찍한 살인마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가장 감추고 싶었던 비밀들이 이 시대의 범죄자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보이스(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서 강권주(이하나)는 도주한 모태구(김재욱)를 격동시키기 위해 방송을 통해 그를 자극하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이 대사 속에는 살인마의 탄생이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요소에 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즉 선천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떤 후천적인 악영향이 촉발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살인마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태생 그 자체보다 그 부모나 사회 같은 주변적 상황들이 중요하다는 것.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탄생하게 된 건 결국 어린 시절 아버지 모태범(이도경)이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다. 모태범과 모태구의 잔학한 살인의 연대기는 그 이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살인마가 되어버린 모태구가 저지르는 살인들이 자신 탓이라고 여기는 모태범은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아들 모태구에게 그가 ‘살인마’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고 교육시킨다.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특별한 존재로 교육받는 모태구는 이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는 강권주의 이 격동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무진혁(장혁)에 의해 검거된다. 하지만 모태구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은 피해자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부모와 사회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공감 못하는 인물이 심지어 재계인물이나 고위 공무원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총장까지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갖게 되는 일은 실로 끔찍한 결과를 만든다. 

심각한 연쇄 살인도 살인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성운 통운 버스 사건 같은 비인권적 고용문제와 더불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사고로도 이어진다. 사고가 나면 그 보험금을 사측이 가져가는 계약을 해놓고 사고 위험이 있는 버스를 방치한 채 버스기사로부터 운행하게 만드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안전불감증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사이코패스적 권력자들의 문제를 드러낸다. 칼 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이들만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누군가 사고를 당할 위험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 

<보이스>는 어쩌다 사이코패스적인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골든타임팀’을 투입해 희생자들에게는 절박한 그 골든타임을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을 보여준다. 강권주와 무진혁의 절절함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그 끔찍한 사건들이 주는 충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가 주는 불안감을 빼놓을 수 없다. 꽃다운 나이에 몇 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인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그 골든타임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무엇을 했던가.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버려도 지켜주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는 사회란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는 끝까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그 사이코패스의 귓가에서 울려 퍼지며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 <보이스>가 마지막에 보여준 최후장면은 그래서 정신병동에서 무수한 정신병자들의 손에 의해 난자되는 모습보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보이스>는 잔혹한 장면들의 폭력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하려던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굳이 자막으로 일일이 그간 드라마 속에서 희생됐던 이들을 적어 넣은 건 그래서다. 

‘허지혜씨도 강국환 경사도 복님이도 아람이도 은별이도 박복순(심춘옥) 할머니도 낙원 복지원 희생자 분들도 그리고 성운 통운 버스에서 희생되신 분들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골든타임 안에 그분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억울하고 안타깝게 희생되는 분들이 더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보이스’, 고통스런 고구마 전개에 점점 더 민감해진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몰입감은 놀랍다. 거의 영화에 가까운 긴장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하다. 첫 회부터 등장해 주인공들인 무진혁(장혁)의 아내와 강권주(이하나)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는 해머처럼 생긴 철퇴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차례 피해자를 가격해 죽인다. 2회에는 칼로 찌르고 죽이려는 계모를 피해 세탁기 속에 숨어 경찰의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가 방영됐다. 4회에서는 범인을 홀로 추격하던 강권주가 오히려 범인들에게 잡혀 산채로 매장당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흘러나왔다. 시청자들로서는 다음 회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보이스(사진출처:OCN)'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끔찍한 장면들이 거의 공포영화 수준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보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워낙 현실에서 사건사고를 많이 접하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케이블 채널에서 시청률이 5%를 넘어섰다는 건 이런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몰입감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구마 전개를 이어가고 해결시간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낚고 있다는 비판 역시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보이스>는 워낙 강렬한 사건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어서인지, 한 회에 그것이 마무리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끝을 맺은 후 다음 회를 기약하는 방식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특히 지난 주 4회에서 마지막에 강권주가 포대자루에 묶여진 채 구덩이에 던져져 땅에 묻히는 장면을 보여주고 끝난 건 다음 주 5회까지 1주일 간의 잔상을 남긴다. 

물론 그건 시청자들의 시선을 계속 묶어두기 위한 드라마의 정당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영화의 극적인 상황 속에서 갑자기 뚝 끊어버린 듯한 그 전개방식은 시청자들에게는 깊은 이물감으로 남을 수 있다. 아마도 5%라는 시청률에는 이런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이 작용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상 드라마가 늘 해오던 방식이다. 한 주에 2회를 방영하면 2회째에는 늘 다음 주를 위한 떡밥이 던져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고구마 전개’를 통한 떡밥에 대해 시청자들은 몹시 민감해진 모양새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지성의 연기호평과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전개에도 불구하고 ‘고구마 전개’의 불편함을 호소하게 된 건, 그가 계속해서 당하는 장면만을 보고 있어야 하는 답답함 때문이다. 

<보이스>는 물론 계속 새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약 2회분에 걸쳐 해결되면서 범인이 잡히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큰 틀의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인 무진혁과 강권주가 그들의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진범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5회에서도 결국 붙잡게 된 범인이 갑자기 과거 아버지의 살해 현장을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를 던져 강권주를 광분하게 만드는 장면은 그래서 사이다로 끝난 것처럼 여겨졌던 상황을 다시 고구마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보이스> 같은 진범을 찾거나 진실을 찾는 드라마들이 늘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건 해결을 뒤로 지연시킴으로써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방식. <보이스>의 연출을 보면 그것이 상당히 의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범인을 찾기 위해 학교로 간 무진혁과 강권주가 갑자기 나뉘어 수색을 하게 되고 누구나 예감했던 것처럼 강권주 앞에 범인이 나타나 사투를 벌이는 장면과 엉뚱한 곳에서 범인을 찾고 있는 무진혁을 교차해 보여주는 식은 이제 <보이스> 연출의 한 패턴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건 드라마의 효과를 위해 차용한 방식이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고구마 전개의 지연방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참을성은 갈수록 없어지는 형국이다. 그건 아무래도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워낙 현실의 전개 자체가 답답한 형국인지라 드라마 속에서도 그런 전개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물론 정당한 사유들이 있어 사건 전개가 지연되는 건 개연성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명쾌하게 제시되지 않는 지연은 자칫 불편함을 불러올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보이스>가 조심해야 될 부분이다.

<보이스>,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까닭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보고 그냥 채널을 돌린 사람은 없을 듯하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그 지표는 시청률이 말해준다. 2.3%(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는 3회 만에 5.6%를 찍었다. 벌써부터 작년 최고의 스릴러물로 얘기되던 <시그널>과의 비교가 나온다. 작년에 <시그널>이 있었다면 올해는 <보이스>가 있다는 이야기.

 

'보이스(사진출처:OCN)'

물론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 밑에 갈린 정서적인 면들일 게다. <시그널>이 연쇄살인을 막고자 하는 형사들의 간절함이 심지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 판타지까지 허용하게 해줬다면, <보이스>는 생사를 오가는 골든타임에 놓인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형사들의 간절한 마음이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는 주인공의 판타지를 허용해주고 있다.

 

강권주(이하나)가 그 판타지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시력을 거의 잃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남다른 청력으로 보통사람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인물이다. 그가 콘트롤 타워에서 귀에 꽂은 리시버와 마이크 하나로 현장상황을 거의 눈앞에 보듯이 진두지휘하고 때로는 미세한 소리만으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를 찾아낼 수 있는 건 그 판타지적인 능력 때문이다.

 

강권주가 콘트롤 타워를 지키며 전체를 관망하고 행동할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 손발이 되어주는 건 현장을 뛰는 무진혁(장혁)이다. 그는 강권주가 연결된 통신장비 하나를 의지 삼아 현장에 뛰어든다. 남다른 관찰력과 현장에서의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길바닥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아내에 대한 기억은 그를 때로는 물불 안 가리고 몸이 먼저 앞서게 만들기도 한다. 강권주의 콘트롤과 무진혁의 현장에서의 능력은 그래서 이 살벌한 사건들에 놓여진 피해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과 만나며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사건들은 눈을 뜨고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다. 아버지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해온 피해자가 다시 나타난 그 아버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아동학대를 자행하는 두 번째 사건은 그 피해자가 아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계모의 칼에 찔린 채 세탁기 속에 숨어서 강권주와 통화를 하며 구해 달라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는 시청자들에게 공포물에 가까운 충격을 주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아이를 죽이라 사주한 비정한 아버지가 사실 그 아파트의 경비원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고 그가 무진혁마저 죽이려는 반전은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들었고, 또한 미리 알아챈 무진혁이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그 경비원의 잔혹한 범죄들을 토로하게 만드는 장면은 또 다른 반전의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이야기는 다시 무진혁의 아내와 강권주의 아버지가 동일한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드라마에 추진력을 달아주었다. 결국 강권주를 믿지 않던 무진혁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자신들의 가족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를 잡는 궁극의 목표로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그널>도 그렇지만 <보이스> 역시 최근 우리네 대중들에게 어떤 정서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간절함이라는 코드를 담고 있다. 골든타임 내에 구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피해자들이 있고, 자신들의 가족도 그 골든타임을 넘겨 죽음을 맞게 된 트라우마를 가진 형사들이 있다.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구하려는 형사들의 몸부림이 시청자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이스>의 예사롭지 않은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을 덧붙인 까닭

 

즉석사진도 경찰과 응급환자들을 위한 비상출동 시간도 세계 어느 곳이든 3분이다. 왜냐하면 3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기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3분력>의 저자인 타카이 노부오의 문구는 왜 OCN <보이스>에 들어가게 된 걸까. 마치 tvN <시그널>을 연상시키는 형사물의 색채를 깔고 들어온 <보이스>는 거기에 골든타임이라는 콘셉트를 장착했다.

 

'보이스(사진출처:OCN)'

<시그널>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판타지를 활용해서까지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그 간절함을 형사물에 담아냈다면, <보이스>는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오가는 몇 분이 될 수 있는 사건 후 몇 분 간의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을 형사물에 녹여낸다. 그 시간은 단지 몇 분에서 몇 십 분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대한 몰입이 그 어떤 작품들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건 골든타임이라는 장치를 달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112 콜센터에 피해자의 전화가 울린다. 그 전화 저편에서는 살려주세요라는 피해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울려 펴지고 강권주(이하나) 센터장은 피해자와 지속적으로 통화하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불의의 사고로 눈을 다친 후 남다른 청각을 소유하게 된 그녀는 작은 소리까지도 듣고는 피해자의 상황들을 추리해낸다. 그리고 그녀의 지시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무진혁(장혁)은 온 몸으로 부딪쳐 골든타임에 몰려 있는 피해자를 가해자들로부터 구해낸다.

 

물론 우리가 흔히 많이 봐왔던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의 장면들처럼 보이지만 <보이스>는 여기에 현실적 공감대들을 더 얹어 놓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적인 트라우마가 되어 있는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이 그것이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살려주세요라는 말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몰입시킨다. 어떻게든 그 절박한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얹어지면서 <보이스>는 흔한 스릴러물 이상의 미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이 일련의 골든타임을 요구하는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강권주와 무진혁이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로 엮여 있는 이야기 구조는 현실에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시청자들을 심적 공감대로 연결시켜 놓았다. 3년 전 무진혁의 아내가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마침 당시 콜센터에서 일하던 강권주는 검찰 측이 내놓은 범인이 목소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진범이 아니라는 증언을 내놨다. 결국 당시의 진범은 따로 있을 것이지만 이 사건으로 무진혁은 강권주를 오해하게 된다.

 

결국 이 오해가 서서히 깨지고 강권주의 진심을 알게 되는 건 이들이 함께 골든타임을 요하는 많은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형사물이 갖고 있는 편편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들의 이야기를 또 통합적으로 이어가는 힘이 된다. 매회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걸 해결해가는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그건 결국 강권주와 무진혁이 연관된 사건을 해결하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큰 이야기 틀 속에 담기게 된다.

 

형사물이 골든타임 설정을 만나면서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야기는 실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마치 진짜 골든타임(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리는)처럼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보이스>는 거의 공포물에 가깝게 극악무도한 범인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아이가 칼에 찔려 범인으로부터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골든타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한 자극들을 자극으로만 그치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

 

무엇보다 침착하고 냉철하게 소리들을 분석해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강권주 역할을 연기하는 이하나의 연기변신이 흥미롭다. 지금껏 조금은 풀어지거나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해오던 그녀는 이번 역할에서는 훨씬 무게감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추론해가는 그 내면의 목소리들이 사건과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긴박감은 <보이스>라는 형사물만의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준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이라는 설정을 덧붙인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골든타임에 목말라 하는가를 이 드라마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에 콘트롤타워는 얼마나 빨리 침착하게 대응했던가. 콘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래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결핍을 채워줄 판타지에 대한 욕망. <보이스>는 이 정서들을 건드림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수목극 점령한 <착하지>의 세대적인 안배와 공감대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는 세 세대별로 각기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강순옥(김혜자)과 장모란(장미희)의 복잡 미묘한 심리전이다. 사라진 남편을 사이에 두고 본처와 내연녀인 두 사람의 관계는 앙숙인지 동지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면이 있다. 처음 만나자마자 강순옥이 장모란의 가슴을 발로 차버린 것에서 드러나듯 거기에는 넘을 수 없는 앙금이 깔려 있지만, 그럼에도 시한부 인생인 장모란을 집으로 초대해 좋은 약과 밥을 챙겨 먹이는 강순옥에게서는 여성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의 정 혹은 동지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사진출처:KBS)'

아마도 강순옥과 장모란의 이런 관계는 그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공감가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이 나이대의 시청자들이 자주 봐왔던 불륜이라는 익숙한 소재가 들어와 있지만, 거기에 대한 접근방식은 새로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불륜 코드라고 하면 본처와 내연녀가 드잡이를 하는 설정이 하나의 클리셰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틀에 박힌 이야기에서 벗어나 있다. 남성을 중심으로 두고 보면 대결구도가 되지만 동시에 여성들만의 관점으로 보면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점도 생긴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다른 관점이다.

 

강순옥의 딸 김현숙(채시라)은 중년 여성들의 삶에 대한 성취와 회한 같은 것들이 관전 포인트다. 레이프 가렛의 열혈 팬이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고등학교 퇴학을 당하게 된 그녀는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세운 편견 덩어리 선생님 나현애(서이숙)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자신의 굴곡진 인생의 시작점이 거기서부터 비뚤어졌다는 걸 알고는 분노하게 된 것.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식교육에 집착하는 김현숙이라는 중년의 캐릭터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어떤 상실감을 가진 여성들의 그 답답함을 대리해주는 인물이다. 그녀를 끝까지 지지해주는 친구 안종미(김혜은)와의 끈끈한 우정이나, 전시회에서 그녀를 모욕하던 나현애의 머리채를 잡고 사과하라고 하는 장모란과의 부모 자식 관계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인간적인 관계는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여기에 남편 정구민(박혁권)과의 은근한 멜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포인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청춘들의 멜로가 빠질 수는 없다. 김현숙의 딸 정마리(이하나)의 이루오(송재림)와 이두진(김지석) 사이에 벌어지는 화학작용은 젊은 시청자들이 흐뭇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검도 도장을 하는 이루오에게 배경음악을 잘못 보내줘 엉뚱하게도 자신의 호감을 드러내게 된 정마리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든다. 또 엄마와 그렇게 각을 세우고 있는 나현애가 이두진의 모친이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복잡미묘하게 만든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MBC <킬미힐미>를 제치고 또 SBS <하이드 지킬 나>를 따돌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이런 김혜자, 채시라, 이하나로 대변되는 각기 다른 세대를 그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공감시키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자가 어르신들의 공감대를 끌어간다면, 채시라는 중년이 겪는 상실감과 성취 욕구를 그리고 이하나는 젊은 세대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세대적인 안배와 다층적인 공감대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착하지>, KBS가 발견한 새로운 성공 방정식

 

결국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수목극을 평정했다. 다중인격의 캐릭터들이 현빈과 지성이라는 연기자의 몸을 빌어 수목극 경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슬며시 들어온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사진출처:KBS)'

이 드라마의 시작은 아주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마치 하나의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왜 이런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진 드라마가 주말이나 일일이 아닌 주중에 포진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에는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하고도 신선한 실험을 예감케 했다.

 

또 놀라운 점은 이 평이해 보이는 드라마의 대단한 캐스팅이다. 김혜자, 이순재, 장미희, 채시라, 이하나도 모자라 손창민, 박혁권, 서이숙 같은 쟁쟁한 중견들이 포진하고 여기에 김지석이나 송재림 같은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주목받는 배우까지 들어가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전세대를 다 커버하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캐스팅이 가능한 건 여러모로 김인영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에 대한 배우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양의 여자>, <적도의 남자>로 김인영 작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가족드라마가 아닌 대담한 실험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기존의 가족드라마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야기는 그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특별함들을 극적으로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그저 나쁜 여자들이 아니고 <착하지 않은 여자들>인가에서도 드러난다.

 

나쁜 여자착하지 않은 여자는 같은 말 같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다. ‘착하지 않은 여자착하다라는 표현이 반어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은 착하지만 여러 사정과 환경에 의해 착하지 않게 된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이 많은 캐릭터들에 주목시키는 방식은 이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깨는 방식과 유사하다. 드라마 초반 김현숙(채시라)은 엄마 강순옥(김혜자)이 평생 번 돈을 사업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려먹고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수배되는 입장에까지 처한다. 이 때만 해도 김현숙은 가족드라마가 흔히 그려내는 민폐 캐릭터처럼 보였다. 하지만 차츰 이 착하지 않은 여자의 학창시절 선생님 때문에 당했던 왕따와 퇴학 이야기가 나오고, 때론 대책 없이 정의로운 정 많은 심성이 드러나면서 이런 선입견은 깨져버린다.

 

강순옥은 절망한 김현숙이 죽은 아빠의 무덤 앞에서 자살기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장모란(장미희)이 과거 남편의 내연녀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발로 가슴을 차 기절시킨다. 이때만 하더라도 강순옥은 꽤 모진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어찌된 일인지 깨어난 장모란을 강순옥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지내려고 한다. 겉으로는 모진 척 하지만 그녀 역시 남다른 정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 같은 외피를 갖고 있어 연령대가 높은 세대들을 보다 쉽게 끌어들이면서도 그 안에 미니시리즈의 극적 스토리가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어 젊은 세대들까지 포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조용하지만 당연해 보이는 수목극 평정은 KBS라는 플랫폼에 어울리는 틀을 가져오면서도 거기에 세련된 어법을 구사하는 작품의 완성도에서 나온다.

 

사실 KBS의 주중 드라마들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것은 타 지상파 방송사들의 장르 드라마 실험을 그저 비슷하게 따라하다 보니 채널의 특성과 부딪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어쩌면 KBS가 찾아낸 주중드라마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은 아닐까 싶다. 꼭 장르를 해야 세련된 것이 아니고 가족드라마라고 해도 구태의연한 것도 아니다.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다. 마치 착하지 않아 보이던 인물들이 다시 보이는 이 드라마처럼.

 

<SNL>, 왜 시사풍자보다 19금이 세졌을까

 

<SNL코리아>는 왜 최일구 아나운서 대신 유희열이 필요했을까. ‘위캔드 업데이트’ 코너에 고정 크루로 들어온 유희열은 ‘감성변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능글능글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19금 코미디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신동엽이 이엉돈 PD로 나온 ‘몸으로 풀다’에서 서로 젖병에 담은 모유를 나눠먹는 장면은 실로 이 두 변태(?)들의 시너지를 최고조로 보여준 압권이었다. 유희열 말대로 그들은 19금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메시와 호날두’ 같은 느낌이었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하지만 유희열이 들어온 ‘위캔드 업데이트’는 특유의 야릇한 분위기가 주는 19금 유머는 강화되었지만 특유의 시사풍자 코드는 약화된 게 사실이다. 서울 심야버스 확대 운행을 언급하면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다”며 야릇한 웃음을 던지고, 데니스 로드맨이 방북해 김정은을 만난 이야기에서 그들의 나이차가 30년 차가 난다며 갑자기 그 정도 나이차가 나는 수지에게 영상편지를 보낸다. “수지야 근데 너 지금 뭐 입고 있니?”

 

손석희 앵커 복귀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살짝 비틀기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이미지”라며 자신의 위캔드 업데이트 복귀에 맞춰 복귀하는 것이 ‘위기의식’ 때문이 아니냐는 식으로 웃음을 주었다. 과거의 장진 감독이나 최일구 아나운서가 했던 ‘위캔드 업데이트’가 시사 문제를 비틀어 그 시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던 반면, 유희열의 그것은 시사 문제를 끌어오긴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는 사적인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유희열의 탓이 아니다. <SNL 코리아>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텔레토비’가 없어지고 그 유사한 형태로 생긴 ‘tvN 동화 행복한 세상’은 인어공주 이야기를 가지고 ‘일본 방사능 유출 공포’에 대해 다뤘지만 ‘여의도 텔레토비’ 만큼의 날선 시사 풍자는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SNL 코리아>의 다른 코너들에서도 똑같이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다.

 

승리가 호스트로 나온 지난 <SNL 코리아>는 거의 전 코너들이 풍자를 다루기보다는 19금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코너인 ‘더 테러 라이브’는 이 본래 영화가 보여주던 계급정서는 쏙 빠지고 대신 야한 생각하면 팬티 속의 폭탄이 터진다는 식의 19금 코미디를 보여주었다. 테러범 여동생으로 클라라가 등장해 신동엽에게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들고 그걸 참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시루떡 보이즈’는 홍대클럽, 헬스클럽, 실버클럽, 파이트클럽 등 각종 클럽을 다니며 부비부비 하는 남자들을 보여주었다. 내용이 있다기보다는 과장된 동작들의 반복이 주는 단순한 웃음이 대부분이었다. ‘승리의 품격’은 폼생폼사의 승리가 점점 망가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는데 여기에도 클라라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승리와 야릇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하룻밤을 위해 자취방을 대실해준다는 ‘승리의 자취방 대실 서비스’나, 흘린 걸 닦아주는 여자 때문에 더 야한 부위에 일부러 흘리는 남자들을 보여주는 ‘심야식당’ 역시 19금을 내세운 야한 설정으로 꾸며진 코너들이었다.

 

그나마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것이라고는 ‘꽃보다 할배’라는 코너로 예능의 베끼기를 풍자한 것이 유일했다. 자신도 베끼자며 ‘전국 안녕하세요 꽃보다 진짜사나이 할배 무한도전 하러 어디가? 스플래시’라는 프로그램을 찍는 장면은 그나마 속 시원한 풍자의 한 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시사 풍자 코드는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클라라가 코너 전편에 거의 들어가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도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SNL>의 핵심은 균형에 있다. 즉 시사 풍자 같은 조금은 무거운 주제의 코미디와 19금 코미디 같은 야하고 가벼운 코미디가 적절히 균형을 잡았을 때 이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나 시사 분야가 가진 권위적인 부분들을 상당 부분 무너뜨리면서 웃음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또한 19금도 그저 저질스런 코미디로 전락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시사 풍자 같은 코너들이 없는 19금 코미디는 자칫 시사적인 이슈들을 뭉개버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19금으로 덮어진 어설픈 시사 끌어오기는 그래서 오히려 마취적인 역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SNL코리아>가 클라라를 크루에 합류시킨 것에 이어 유희열이 ‘위캔드 업데이트’를 진행하게 된 데는 그래서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클라라야 지금 가장 핫한 야한 이미지로 떠오른 인물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희열은 어떨까. 그는 특별히 현실적인 이슈에 대해 그다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던 인물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자리를 잡기 전에 그 시간대 음악프로그램의 MC가 윤도현에서 이하나로 넘어가던 시절의 잡음들을 떠올려 보라. 유희열은 현실적인 이슈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매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러니 이 뜨거운 ‘위캔드 업데이트’의 자리를 적절히 식혀주고 그 방향을 19금쪽으로 틀어놓는 데 그만한 인물이 없는 셈이다.

 

사실 유희열이나 클라라는 잘못된 것이 없다. 그들은 <SNL코리아>가 원하는 새로운 방향성에 의해 새롭게 투입되어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보여줄 뿐이다. 다만 이들의 투입으로 보여지는 <SNL코리아>에서 점점 실종되어가는 날선 시사풍자 코미디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도대체 무엇이 잘 나가던 <SNL코리아>에 이런 급격한 변화를 만든 것일까. 실로 아쉬울 따름이다.

‘페퍼민트’, 이하나와 김광민의 특별한 만남

순간 ‘수요예술무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이미 무대 위에 서있던 김광민은 이하나에게 앉으라고 권했고, 이하나는 어색한 듯 앉으며 “제가 게스트가 된 것 같네요”하고 말했다. 그 농담은 92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3년 간이나 수요일밤을 예술로 만들어주었던 ‘수요예술무대’의 진행자 김광민에 대한 이하나의 헌사였다.

‘수요예술무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클래식이든 재즈든 팝이든 가요든 장르에 구애받지 않던 음악프로그램이었다. 장르는 달랐지만 그 다른 장르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능성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무대 위에 올려지고 라이브로 펼쳐지는 음악과, 그 음악을 듣는 관객이 있다면 다른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진행자로서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이하나에게 김광민은 자신이 13년 동안 했어도 지금의 이하나보다 못하고 어색했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렇게 진지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진행자의 자리에 서면 그렇게 수줍어하고 어눌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색해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김광민을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시켰다.

그것은 김광민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수요예술무대’라는 프로그램의 특징이 되었다. 놀라운 입담을 가진 진행자의 매끄럽고 재치 넘치는 멘트는 사실 음악프로그램의 사족과 같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고, 그 음악과 관객과 어떻게 교감하느냐였다. 김광민의 음악 속에서의 진지함과 진행자로서의 어눌함은 그런 면에서 ‘수요예술무대’가 가진 음악중심주의를 그대로 표방하고 있었다.

이것은 ‘페퍼민트’가 지향하는 것과도 같다. 이하나의 ‘페퍼민트’에는 잘 마련된 무대와 관객이 있다. 그러니 이 음악중심주의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대를 채워줄 음악인들이다. ‘페퍼민트’가 열어놓은 무대 위에는 재즈연주자도 있고 록커도 있고 포크 가수도 있고,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 가수들까지 누구나 오른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무대가 순위도 아니고 인지도나 인기도 아닌 오로지 음악을 통한 소통을 위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하나는 진행자로서 어색하다. 진행자가 관객과 시청자들을 대신해서 무대에 오른 음악인들을 만나는 역할을 갖고 있다면 어색함은 어쩌면 불편함을 주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하나의 어색함에는 다른 것이 있다. 음악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한 존경과 애정에서 그것이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저 ‘수요예술무대’의 김광민이 보여주었던 어색함과 맞닿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미니콘서트를 하던 김종서가 객석에 앉아있는 이하나에게 말했다.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이네요. 왜 거기 가 앉아 있어요?” 그러자 이하나는 “미니 콘서트에는 저도 관객의 한 명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김종서 옆에서 기타를 치던 김태원이 옳다며 한 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거들었다. “예. 좀 그렇게 들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하나의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정리하는 듯한 마지막 멘트. “뮤지션을 향한 페퍼민트의 무한한 애정은 계속됩니다.” 이하나는 그렇게 ‘페퍼민트’의 향기가 되어가고 있고, 그 기분 좋은 향기는 음악을 타고 차츰 세상으로 퍼져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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