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바꾸는 일상, <알쓸신잡2>가 보여준 인문학의 쓸모인문학이 이토록 즐겁고 흥미진진한 것이라는 걸 이만큼 극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을까. 물론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강연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인문학을 주로 강단 위에 세웠던 것과는 달리 tvN <알쓸신잡>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여행지를 정하고 그 곳을 여행하며 느낀 소회들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그 과정은 우리에게 인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가를 보여줬다.

총정리편으로 미방송분을 편집해 마련한 <알쓸신잡2>의 마지막회는 그간 이 프로그램이 다녔던 곳과 그 곳에서 나눈 지식수다들을 전체적으로 관망하게 해주었다. 그 세세한 내용들이 갖고 있는 지식의 즐거움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을 푹 빠지게 했었고, 그래서 그 시간이 언제 이렇게 훌쩍 지나가버렸는가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몰입했다. 가을에 시작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어느새 도달해 돌아보니 새삼 이번 편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들이 어떤 것이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보인다.

아마도 이번 시즌2에서 가장 다른 색깔을 가져온 인물은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여행을 하거나 우리가 일상을 겪으며 그냥 지나치곤 했던 건축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자주 쓰던 ‘시퀀스’라는 말은 이제 일반 시청자들도 ‘공간과 건축물을 경험’하면서 염두에 두게 된 단어가 되었다. 일종의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간 하나하나를 겪는 그 과정들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떤 목적성을 띄고 있다는 것. 그걸 들여다보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일상 속 건축물들을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뇌 과학자인 장동선 박사가 조곤조곤 들려주던 뇌 과학에 대한 지식들도 빼놓을 수 없다. 유현준 교수가 건축물이라는 외부 공간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시했다면, 장동선 박사는 인간이 하는 어떤 행동들이 갖는 의미들을 새삼 생각해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시해줬다. 하지만 장동선 박사가 이번 시즌2에 부여한 건 그러한 지식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많은 지식들이 주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결국 “살면서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를 묻는 것이 인문학이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온 인물로서 그가 주는 온기는 지식의 궁극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함께 한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특유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에 갈수록 능숙해지는 방송의 묘를 더해 <알쓸신잡2>가 균형 잡힌 프로그램이 되게 해주는데 일조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모든 걸 이야기하기보다는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더 많이 보였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역시 음식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역사 관련 이야기들을 보태 프로그램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사실상 두 사람의 배려와 주고받음이 있어 새롭게 들어온 출연자들과의 조화로운 수다(?)가 가능할 수 있었다.

시즌1도 그렇지만 시즌2도 역시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새로운 시각이 하나씩 열린다는 걸 <알쓸신잡2>는 보여줬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에 즈음해 돌아본 시즌2를 통해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시즌3를 기대하게 되고 거기에는 또 어떤 다른 인물이 들어와 우리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새해에 새로운 얼굴들을 <알쓸신잡3>로 만날 수 있기를.(사진:tvN)


‘알쓸신잡’, 유시민이 분노한 시대착오적 낙화암 소개 

“지금 여러분이 이용하고 있는 이 강은 백마강으로 낙화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당나라로 하여금 멸망할 때 적군의 노리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여 이렇게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감싸고 백마강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처럼 우리 민족사의 여인들은 백의민족이며 정절을 중요시하는 순박한 여인들로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tvN <알쓸신잡>이 떠난 여행에서 낙화암을 둘러보는 유람선에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의 내용에 유시민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 자체가 무려 1500년 간이나 ‘가짜 뉴스’로 내려오며 진짜 역사적 사실인 양 굳어져 가고 있던 사안이 아닌가. 역사란 팩트 그 자체가 아니라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인정하는 일이다. 이렇게 달라진 역사관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낙화암을 둘러싼 의자왕의 이야기가 여전히 승자들의 윤색에 의해 지금까지도 그대로 믿어지고 있다는 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시민은 사실 ‘백마강’이라는 이름 자체도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며 ‘조룡대’ 이야기를 꺼냈다. 용을 낚았다는 뜻을 가진 조룡대 이야기는 사실상 당시 당나라 장수였던 소정방의 관점으로 기술된 신격화된 무용담으로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는 것. 무왕이 용이 되어 지킨다는 그 강에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해서 그 용을 낚았다 해서 조룡대란다. 그래서 그 강의 이름도 백마강이라는 것. 어떻게 이런 식의 신격화된 해석들이 지금까지도 안내판에 버젓이 담겨 그 곳을 찾는 이들이 읽게 내버려두고 있게 된 것일까. 

소설가 김영하는 기분 나쁜 일이지만 점령군 장군에 대한 숭배는 늘 있어왔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 장군을 신으로 숭배하는 일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 정재승은 그래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로 농담을 섞어 아픈 현실을 꼬집었다. 과거에 역사로 기술되었다고 해도 현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그것이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덧붙였다. 

그런데 저 낙화암에 대한 유람선에서의 안내방송에 담긴 건 단지 역사적 사실의 왜곡 문제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등장하는 ‘정절’ 이야기와 ‘백의민족’ 게다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소개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나 먹힐 이야기가 지금도 버젓이 안내방송에 나오고 있다니...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네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거기 담긴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지만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조차 되지 않고 지나치는 것.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관심을 안 갖고 내버려두니까 있는 대로 그냥 흘러가는 거야. 누가 문제제기를 해야 바뀌어지지.”

<알쓸신잡>은 이런 사안들을 이미 저 강릉의 오죽헌에서도 발견한 바 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율곡의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진 안내판. 조금 있는 신사임당 이야기도 그저 율곡의 어머니로서만 기록된 글들. 세상은 이미 바뀌었는데 그 세상 안에 들어차 있는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은 여전하다. 그 일상에 가득한 문제들을 계속 끄집어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은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해나가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인문학을 그저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인문학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전들이 현재에 어떻게 적용되고, 그래서 현재의 문제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까지 적용될 때 비로소 그 인문학은 효용성을 갖는 것이 아닐까. <알쓸신잡>이 그 많은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문제들을 직접 발로 경험하며 끄집어내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 그래야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

‘알쓸신잡’에 화자 아닌 청자 유희열이 필요했던 까닭

사실 누군가가 가르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그런 가르침의 분위기는 ‘꼰대’의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고, 때로는 권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인문학이 예능의 새로운 소재로 트렌드화되면서도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이미지와 느낌을 어떻게 상쇄시킬까 하는 점이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나영석 사단의 새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즉 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그리고 물리학자 정재승 같은 쟁쟁한 전문가들을 섭외하고 그 안에 유희열이라는 ‘재담꾼’을 투입한 건 그래서다. 

<알쓸신잡>은 첫 회가 방영되고 대체로 반응이 괜찮았다. 나영석 PD표 예능에 대한 여전한 지지가 있었고, 유시민 작가처럼 최근 대중들의 호감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주는 유쾌함이 있었다. 여기에 유시민과 각을 세우는 황교익 그리고 간간이 한 마디씩 던지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김영하와 말 그대로 ‘쓸데없어 보이는’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의외의 예능감을 보여주는 정재승의 합이 썩 괜찮았다. 

물론 통영이라는 지역이 가능케 하는 역사적 담론들(이순신 관련)이나, 문학 이야기(난중일기,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어서 식사시간마다 자연스럽게 깔리는 먹방의 분위기 그리고 동피랑, 서피랑 마을을 갖고 있는 곳의 볼거리 등이 어우러진 것도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갖는 지나친 무게감을 떨쳐낼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쓸신잡> 역시 인문학 소재가 갖는 ‘먹물’의 느낌이나 ‘지식의 나열’에서 비롯되는 부담감 같은 건 피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지식을 쏟아내는 유시민 작가의 달변은 먹거리에서부터 역사, 문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들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것이었지만 그런 달변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와 부딪치는 지점에서는 고집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물론 이런 고집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이대가 유시민과 황교익 그리고 김영하와 정재승 이렇게 두 세대로 나눠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유시민과 황교익이 끌고 가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들보다 더 주목되는 건 간간히 한 마디씩 터트리는 김영하와 정재승이었다. 김영하가 슬쩍 던진 “햇살이 바삭바삭하다”는 말 한마디가 이들의 여행의 공기를 전해주고, 정재승의 그 황당한 ‘이순신의 숨결’ 이야기가 <알쓸신잡>의 독특한 지적 유머코드를 담아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유시민과 황교익이 쏟아내는 전문지식들 속에서 예능으로서의 어떤 균형점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유희열이었다. 유희열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간간히 한 마디씩 덧붙임으로써 가르치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즉 유희열이 던진 “이 분들 옆에 있으니까 바보가 된 기분”이라는 말은 시청자들이 느낄 그 기분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런 지식을 털어놓는 그들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물론 <알쓸신잡>은 그 주인공이 ‘말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특정 여행지에 합류시킨 건 보통 사람들의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각자 전문분야를 가진 이들의 생각들을 그 공간을 통해 풀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하는 예능’에서 더 중요해지는 건 유희열 같은 ‘들어주는 인물’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이야기가 과할 때는 그 사실을 얘기해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놀라운 상상력에는 같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때론 그들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과 똑같다는 사실을 드러내주기도 하는 인물. <알쓸신잡>에서 유희열이 없었다면 자칫 지루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알쓸신잡’, 쓸데없어 보여도 신기하게 재밌는 

왜 ‘인문학 어벤저스’라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 목적지인 통영으로 가는 길, 무얼 먹을까 생각하던 중 무심히 나온 장어탕 이야기에 황교익은 장어의 종류들을 줄줄이 설명한다. 민물장어부터 바닷장어 나아가 사실은 장어과가 아니라는 꼼장어까지 우리가 그다지 자세히 알지 못했던 자잘한 지식들이 쏟아진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여기에 유시민은 장어가 왜 양식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산란을 하기 위해 바다로 돌아가는 장어에게 추적기를 달아도 심해로 들어가면 신호가 잡히지 않아 그 이후의 과정들이 ‘신비’에 가려져 있다는 ‘신기한’ 장어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희열이 오늘은 꼭 장어를 먹어야겠다고 말하자, 김영하가 불쑥 끼어들어 그 고생을 해서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애들을 꼭 먹어야겠냐는 감성적인 유머를 덧붙인다. 

한편 강연 일정이 있어 저녁 자리에 겨우 합류한 정재승 박사에게는 과학적인 궁금증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장어를 먹으면 정력에 좋다는 것이 과학적 근거가 있냐는 질문에 “근거 없다”고 선을 긋자, 황교익이 ‘플라세보 효과’는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정력은 그렇게 함부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해 빵 터지게 만들었다.

장어 하나만을 갖고도 이처럼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각각 자기 분야가 확실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취향도 제각각이다. 같은 소재를 갖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점심을 먹는데도 저마다 취향이 달라, 황교익은 자신이 자주 가던 단골집을 찾았고, 유시민과 유희열은 자신들의 촉을 따라서 걷다가 문득 걸린 집에서 맛난 한 상 차림을 즐겼다. 한편 김영하는 바닷가 마을에 가면 짬뽕을 먹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놀라운 해물 비주얼을 갖춘 특제 짬뽕을 챙겨먹었다. 

그들이 간 통영이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황교익은 충렬사를 찾아 거기 세워진 백석 시비를 읽으며 백석의 연정을 공감하고, 유시민은 역시 작가답게 거북선 안내문을 읽으면서도 잘못된 문장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한편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찾아간 김영하는 소설가 선배를 대하는 후배의 살뜰한 마음을 담았다. 

각각 자신들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여행을 해도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 한 자리에 모인 그들은 그 짧은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나 생각한 것들을 줄줄이 풀어내는 즐거운 수다 시간을 갖는다. 각자 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저마다의 생각들이 저녁 시간에 한데 어우러지는 그 느낌이 주는 풍족함이라니.

사실 우리가 생활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보면 이런 수다는 쓸데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것이 본래 생활의 차원을 살짝 넘어서 있어 마치 쓸데없어 보이고 그래서 우리가 자주 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신기한’ 느낌을 갖게 된다. 사고의 확장이랄까. 혹은 사고의 전환이랄까. 생활 속에 매몰되어서는 나오기 어려운 생각과 이야기들이 거기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역시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가능해진 건 이처럼 각각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일이다. 유시민 작가는 나영석 PD가 함께 하자고 했을 때 항상 모니터링을 해주는 아내에게 의향을 물었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온 이야기가 나영석 PD라면 항상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었다는 것.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이런 인문학 어벤저스의 조합은 나영석 PD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일이 아니었을까.

유시민 작가와 나영석 PD의 조합 그리고 +α에 거는 기대

사실 요즘 같아서는 유시민 작가만 섭외해도 기본 이상일 듯싶다. JTBC <썰전>에 출연하며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그가 아닌가. 아는 분야를 찾는 것보다 모르는 분야를 찾는 게 빠를 정도로 박학다식함은 기본이고, 그 정보와 지식을 전하는 방식이 너무나 친절하다. 시사나 정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라고 해도 그가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현 시사문제들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리는 느낌이다. 

'차이나는 클라스(사진출처:JTBC)'

<썰전>은 작년 말부터 불거진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이어진 올해 박근혜 탄핵 인용까지 정치 시사 사안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에 힘입어 심지어 10%를 넘기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건 단지 이슈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당면 사안들에 대해 서로 밀고 당기며 풍부하게 해준 분석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유시민 작가였다. 

토론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유시민 작가가 패널로 들어가면 대중들의 관심은 더 집중되었다. JTBC가 새로 편성한 <차이나는 클라스>는 초반 4회를 유시민 작가로 시작해 4.2%의 높은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거뒀다. 이 정도면 시청률 보증수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나영석 PD와 손을 잡았다. 프로그램 제목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이다. 그런데 이 <알쓸신잡>은 도대체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담는 예능 프로그램일까. 많이 보도된 대로 ‘인문학’을 소재로 하고 있다. 유시민이 출연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인문학의 어떤 분야든 모르는 것 없이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유시민이 아닌가. 

하지만 나영석 PD가 슬쩍 귀띔으로 들려준 이야기로는 유시민만이 아니라 알려진 대로 유희열도 출연하고 또 다른 인문학자들도 합류한다고 한다. 즉 유시민이 혼자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자들이 저마다의 지식들을 풀어놓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인문학을 풀어내는 방식은 역시 나영석 사단의 주 소재인 여행이다. 여행과 인문학의 조합. 우리는 이미 그 조합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발휘하는지를 과거 <1박2일>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와 함께 했던 답사여행이 그것이다. 그 때 시청자들이 경험했던 건 지식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번 나영석 사단의 예능 프로그램이 그 때의 그 방식을 그대로 보여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원톱 유시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유시민과 함께 다른 인문학자들도 출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유홍준 교수와 떠나는 답사여행은 그 지역의 문화유산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시민을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자들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어느 곳을 가든 말 그대로 인문학적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는 풍성함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tvN이라는 오락 채널이 간간히 시도했지만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했던 교양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사실 지난 탄핵 정국에 tvN이 좀체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건 오락 채널로서 그 시국을 담을 그릇들이 일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이 프로그램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tvN이라는 채널만이 가질 수 있는 교양 예능의 물꼬를 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나오지도 않은 프로그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보태는 건 섣부른 일이다. 또 예상과 달리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섣부른 예측을 먼저 던져보는 이유는 나영석과 유시민이라는 그 조합만으로도 벌써부터 프로그램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설레고 기대된다.

<어쩌다 어른>과 황정수씨의 일갈

 

“<어쩌다 어른> 채널 서핑하다 가끔 봤는데 전반적으로 어쩐지 애들수준이더군요...전문가들이 침묵하면 그냥 재방송과 다시보기로 계속 돈 많이 벌겠지요.” 황정수씨가 쓴 ‘tvN 미술 강의로 본 인문학 열풍의 그늘이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글에는 또한 이런 날카로운 댓글이 달려 있다. 황정수씨는 인문학이라는 포장 하에 제대로 된 전문적 식견을 갖지도 못한 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미술 장사를 꼬집었고, 그 글에 달린 댓글은 그런 장사를 무분별하게 방송으로 내보낸 프로그램을 꼬집었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른 걸까.

 

'어쩌다 어른(사진출처:tvN)'

황정수씨가 지적한 사안들을 보면 이번 tvN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최진기 스타강사의 어른들의 인문학, 조선미술을 만나다라는 강의는 재난 수준이다. 장승업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조선시대의 화가를 이야기하면서 엉뚱한 사람이 그린 그림을 버젓이 세워두었다는 것. 또 장승업의 그림을 칭송하기 위해 정조나 심사정의 그림을 제법 그린 작품이라는 식으로 폄하 수준의 발언을 했다는 것. 그리고 동양화가 아니라 조선화라고 불러야 한다는 식으로 학문의 갈래를 난도질했다는 것 등등. 미술을 연구한 이들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방송이었을 법 하다.

 

황정수씨의 개탄은 이것이 우리네 인문학 열풍의 진면목이라는 인식에서 나오고 있다. 스타강사라는 미명 하에 본인의 주전공도 아닌 미술이라는 분야를 갖고 이야기하면서도 검증이나 고민 없이 아무렇게 난도질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심지어 환호하고 나아가 방송을 본 이들은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며 강의에 감명 받기까지 한다는 사실. 황정수씨는 최근 불거진 조영남씨 대작논란 역시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사태로 보고 있다. 미술이라는 인문학에 대해 너무 가볍게 접근하고 또한 무지한 데서 나온 소치라는 것이다.

 

그는 조영남씨가 방송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놨던 백남준 선생의 말 원래 예술은 고등사기다라는 말의 진위 또한 곡해되었다고 지적한다. “전위 예술은 한마디로 신화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지요.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입니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백남준 선생의 말처럼 여기서 고등사기라는 표현의 방점은 고등에 찍히는 것이지 사기에 찍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황정수씨는 조영남씨의 이런 미술에 대한 가벼운 태도에 대해 한 평생 히트곡 없이 남의 노래에 기대어 살아온 가수의 길과 남의 손을 빌어 그림을 그린 화가의 길이 너무도 유사하여 측은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고 일갈했다.

 

다른 이야기 같지만 조영남씨의 대작논란과 이번 <어쩌다 어른>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거짓 방송은 그 연원이 다르지 않다. 결국은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이 장사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깊이는 사라지고 대신 단순화되고 자극적인 재미들로만 채워지면서 생겨난 사태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쩌다 어른> 같은 프로그램이 인문학이나 교양적인 소재들을 예능화 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건 아니다.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관심을 갖게 해주고 그 저변을 넓혀준다는 데서는 그 좋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본질을 벗어나 단지 교양적인 소재를 갖고 와 예능으로 장사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때다. 정보에 대한 고증이나 검수 없이 몇몇 스타 강사의 언변을 빌어 시청률을 가져가려는 태도는 본말을 전도시킨다.

 

최근 방송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소재들을 예능화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SBS <동상이몽>현대판 콩쥐소재가 방영된 뒤 커다란 논란이 되었던 건 그 사안이 웃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 전문가의 심리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교양이나 특정 전문분야를 예능화하려 한다면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자리해야 하는 건 이제 필수적인 일로 다가오고 있다.

 

<어쩌다 어른>은 그 제목처럼 진정한 과정을 거쳐 제대로 성숙된 어른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우리들을 지칭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어른들을 대상으로 그 눈높이에 맞는 강좌를 한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부박한 내용을 채워진다면 한 대중의 말마따나 <어쩌다 어른>어쩐지 애들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

김미경, 힐링과 자기계발 열풍의 양면성

 

한 달에 무려 40여회의 강연을 나가고, 가는 곳마다 부흥회에 가까운 반응을 얻고 있는 김미경. 최근에는 자기 이름을 내건 김미경쇼를 선보였고, <무릎팍도사>에 나와서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강호동마저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녀. 이제 국민 강사라고까지 불리던 김미경은 왜 잇따른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을까.

 

'김미경쇼(사진출처:tvN)'

인문학 비하 논란에 이어 생긴 논문 표절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벌어진 일 그 자체보다 논란이 훨씬 더 크게 번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사건의 경중 그 자체보다 일종의 대중정서가 작용했다는 얘기다. 김미경쇼에서 했던 발언이 뒤늦게 논란으로 이어진 이른바 인문학 비하 발언은 편집된 장면이 가져온 착시현상에 가깝다.

 

김미경이 해명한 것처럼 그녀는 인문학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다만 자기계발서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말인 “시건방을 떨고...” 같은 다소 강한 표현이 논란의 촉매제가 되었다. 그녀는 해당 논란이 된 방송에서, 자기계발서가 인문학을 치열하게 읽고 남은 지혜가 한 사람의 책으로 쓰여지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 서적이 내 머리로 들어오고 몸으로 들어와서 내 몸과 그 지식이 치열하게 소통하는 거야. 치열하게 소통하고 나면 한 방울 지혜로 남아. 인문학은 지혜 만들기 위해서 읽는 거라구. 근데 그 사람의 지혜가 삼백 페이지 책으로 쓰여지면 그가 자기계발을 해온 거고, 그게 자기계발서적이야. 근데 안 읽는다고? 웃기고 있어. 시건방 떨고... 나는요. 책은 아무 문제없어요. 사람도 아무 문제없고. 읽는 사람이 문제예요.”

 

인문학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하에 자못 감정적인 논조를 섞어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들어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녀가 그토록 강연을 통해 설파했던 것들이 바로 그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하는 자신에 대한 비하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김미경이 얘기하는 것처럼 자기계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오히려 문제는 읽는 사람이 문제일까. 이 부분에서는 김미경이 갖고 있는 계몽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 생길만 하다. 즉 세상과 사회의 잘못과 부조리가 아니라 문제는 바로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 사회 시스템이 갖고 온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시각은 듣는 이에게는 마치 고해성사 같은 카타르시스를 줄 지는 몰라도 그 사람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사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권력이 대중들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과거에 권력은 총과 칼로 대중들을 통제해 왔지만 근대 이후에서는 이른바 푸코가 얘기하는 파놉티콘처럼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는 기술들을 만들어왔다. 왜 우리는 굳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고, 왜 우리는 굳이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강박적으로 해야 하며, 왜 우리는 사회생활을 위해 무수한 처세들을 따라야 할까. 또 굳이 왜 그렇게 꿈을 강박적으로 가져야만 할까. 꿈이 있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것에 강박을 갖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아도르노가 이미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명저를 통해 얘기했듯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자연을 통제해왔지만, 그 자연의 일부가 인간 자신도 포함하고 있다는 데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또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고 조직화되는 비인간화를 꼬집었던 것이다. 과연 김미경은 이러한 자기계발서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김미경이 하는 이야기는 속 시원하면서도 달콤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걸 여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논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왔던 개발시대의 사회와 작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는 다르다. 지금의 달라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해서 김미경은 과거의 해법을 들고 나오는 셈이다. 일종의 복고와 보수주의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지금 네가 안 되는 것은 네가 죽어라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여전히 얘기하고 있다. 과연 그 말이 이 시대에도 맞을까.

 

갑작스럽게 나온 김미경의 논문 표절 논란은 그 사안 자체만 보면 뜬금없어 보인다. 사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석사 학위 논문, 그것도 직장인들을 위한 석사 과정에서의 학위가 얼마나 아카데믹할 수 있는지를. 박사 학위도 아니고 석사 학위에서 타인의 논문을 인용하는 것은 늘 있던 일이다. 그만큼 우리네 사회가 가진 학위에 대한 강박과 이제는 심지어 상술이 되어버린 학교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어쨌든 이런 엄밀한 잣대로 논문을 들여다보면 아마도 표절 아닌 것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즉 김미경의 논문 표절 논란은 그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놓여진 그녀에 대한 대중정서가 폭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 강사라는 명성을 가졌으니 그만한 실력에 대한 일종의 검증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김미경은 분명 스피치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피치는 말하는 기술이다. 정작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 아닌가.

 

김미경 신드롬과 논란 속에는 그래서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자기계발과 힐링 열풍의 뒤안길을 보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예 들어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 세상 앞에 청춘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미경의 꿈은 달콤하다. 적어도 몇 십분 동안 ‘나도 할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연을 듣고 나선 현실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라지면 현실도 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이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라져야 할까. 그것은 또 다른 보수적인 순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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