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마이웨이’ 김지원, 신데렐라 걷어차고 내 길 간다

“무빈 씨 생각엔 백마 태워 호강시켜 주길 바라는 여자들이 세상에 널렸을 거 같은가 본데 그 신데렐라는 이제 드라마에서도 안 먹혀요. 진짜 현실에선요, 자기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수두룩 짱짱하다고. 그니까 유리구두! 개나 주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최애라(김지원)은 박무빈(최우식)이 선물한 구두를 벗어던졌다. 사실은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을 사귀어온 박무빈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되게 해주겠다며 그가 사준 구두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갔던 길을 돌아온다. 그녀를 걱정해 찾아온 고동만(박서준)은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며 분노하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가슴이 떨린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보통의 멜로와 어떻게 결이 다른가를 정확히 보여준다. 최애라가 대사로 얘기했듯이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먹히지 않는 시대다. 그렇게 된 건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현실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 신데렐라가 가당키나 한 판타지인가.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의 전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안에 ‘갑질하는 현실’의 그림자를 제대로 드리워놓고 있어서다. 최애라도 고동만도 갑질을 당하는 건 ‘일’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아무렇게나 쓰다 버려지지만, 그런 갑질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박무빈이 최애라에게 이끌리게 된 계기를 보라. “걔가 좀 나대잖아요? 쥐뿔도 없는 놈이 항상 신나 있고. 그게 거슬린다.”고 말하는 박무빈에게서 느껴지는 건 가진 자의 오만과 독선이다. 그는 단지 고동만처럼 ‘없는 놈’이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꼴이 거슬려 그의 것을 빼앗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 

일터에서 청춘들이 일상처럼 만나는 갑질은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도 끼어들었다. 과거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부자들에 의해 신데렐라가 되는 여주인공을 통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면, <쌈마이웨이>는 보기 좋게 그 유리구두의 판타지를 부숴버린다. 그렇게 드러난 실체는 달달하기는커녕 너무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고동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 헤어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를 반복하며 그 지독한 현실의 신데렐라가 된 박혜란(이엘리야)은 뻔뻔하게도 다시 고동만 앞에 나타나 그를 자기남자로 만들려 한다. 그녀는 이제 고동만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건 그녀가 이제 돈이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그랬으므로.

하지만 고동만도 최애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고동만은 박혜란에게 자꾸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최애라는 박무빈이 만들어주겠다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던진다. 그래서 그들은 오롯이 맨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지켜낸다. 이 맨발의 청춘이 현실에 치여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못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건 그래서다. 

일도 사랑도 갑질 투성이인 세상, <쌈마이웨이>는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청춘이 더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 당당한 <쌈마이웨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깔려 있어 이 청춘멜로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들이 갑질 세상에 날릴 통렬한 돌려차기를 기대하게 된다.

‘수상한 파트너’, 공적인 일과 사적인 감정 사이

“너는 인질이야. 니가 있어야 범인이 나타났을 때 내가 잡을 수 있지.”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에서 노지욱(지창욱)은 은봉희(남지현)를 자신의 집으로 들이며 그렇게 말한다. 변호사일도 접고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려 마음먹었던 은봉희의 마음이 흔들린다. 노지욱은 어느 날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툭 “너 내 사람 되라”고 했던 것이 진심이라고 말한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누가 봐도 이들은 밀당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인질’이라는 표현은 마치 그들의 동거가 범인을 잡기 위한 공적인 일처럼 만들지만 그건 누가 봐도 동거하자는 말이다. 또 “내 사람 되라”는 말 역시 노지욱이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합류해서 일하자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은봉희에게 ‘내 사람’이 되라는 사적이고 멜로적인 감정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은봉희는 ‘인질’이라는 말에 설렌다. 왜 이렇게 잘 해주냐고 묻자 “인류애”라고 했던 노지욱을 떠올리며 “인류애에서 인질로 발전했다”며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좋아한다. 이것은 <수상한 파트너>가 그리고 있는 멜로의 실체다. 거기에는 사적인 차원의 멜로와 공적인 차원의 일(변호, 진범 찾아 누명 벗기)이 겹쳐져 있다. 멜로적 상황이 나올 때마다 인물들은 그것이 그저 공적인 일일 뿐이라고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그 공적인 일 안에서는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적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또 한 축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적 편견의 문제나 진실과 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공적 사안과 사적 감정들은 뒤엉킨다. 은봉희를 아들의 살인범으로 생각했지만 풀려나게 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지검장 장무영(김홍파)은 그 사적인 감정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하는 은봉희에게 그는 그렇다면 진범을 잡아오라고 말한다. 그는 누구든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 셰프의 살해 용의자로 붙잡힌 택배 기사가 은봉희를 변호사로 지목하고, 그녀가 그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을 때 그녀 역시 공적인 선을 넘어 사적인 감정으로 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한다. 그 택배 기사의 상황이 자신이 과거 살인자로 몰려 있을 때의 처지와 너무나 똑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때 노지욱이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주었듯이 그녀는 그에게 동아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에게 노지욱은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말한다. 장무영도 또 은봉희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사적인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드라마의 실체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노지욱과 은봉희는 사건을 맡아 변호를 하면서도 멜로적 상황들을 놓치지 않는다. 택배기사의 변호를 하면서도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사건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얼굴이 아니라 사랑에 이제 막 빠지려는 연인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멜로적 상황을 일로서 슬쩍 감추는 그 방식은 오히려 이 멜로의 감정들은 더 강화시키는 힘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진짜 살인범을 잡아 누명에서 벗어나는 목표를 갖고 있고, 또한 억울한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의 변호를 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이러한 멜로적 상황들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게 만든다. 공적인 입장과 사적인 감정들이 겹쳐져 일과 사랑을 명쾌하게 가르지 못하고 혼재시키는 상황들은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완벽하지 못하고 어딘지 부족하지만 그것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것. 

그래서 <수상한 파트너>에는 그 흔한 갑을관계조차 혹은 절친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불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친구들 관계에서조차 가해자와 피해자로 선악이 구분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노지욱의 모친인 홍복자(남기애)가 운영하는 피자집에 은봉희의 모친인 박영순(윤복인)이 아르바이트로 들어오자 홍복자는 이른바 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전형적인 상황 속에서도 박영순은 결코 만만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갑과 을의 상황은 마치 친한 친구들이 툭탁대는 모습처럼 유쾌하게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오며 절친으로 지냈지만 노지욱의 여자친구와 불륜을 저질러 이제는 멀어져버린 지은혁(최태준)을 대하는 노지욱의 감정은 미움과 분노와 더불어 우정이 겹쳐져 있다. 그래서 노지욱은 지은혁을 결코 앞으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지만 그들을 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저지르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다. 

<수상한 파트너>는 온전히 로맨틱 코미디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또 진범을 찾아내고 그래서 누명을 벗는 법정드라마로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부분이 엮어져 만들어내는 공적인 일들과 사적인 감정들의 혼재와 그 안에서 슬쩍 슬쩍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쩌면 이 드라마만이 가진 특별한 재미가 아닐까. 그 부족하고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하는 모습들이 그토록 예뻐 보일 수가 없으니.

‘윤식당’, 정유미가 말한 오늘의 삶에 집중한다는 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서, 그런 시간 보낸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사실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거든요. 오늘을 산다. 오늘을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먹지만 잘 안 되는데 여기 와서 그걸 쫙 한 거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윤식당(사진출처:tvN)'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종영을 맞아 정유미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오늘에 집중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흔히들 욜로(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사고 싶은 걸 사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걸 마치 시대의 강령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쩌면 진짜 욜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욜로의 정신은 정유미가 말한 “오늘에 집중하는 삶”이 아닐까. 

정유미가 <윤식당>에서 해온 것들을 들여다보면 마음껏 하고 싶은 걸 누리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아침부터 먼저 식당에 도착해 그 날 장사할 재료들을 미리 준비해놓고, 장사에 돌입하면 사장님인 윤여정 옆에서 보조 그 이상의 보조 역할을 한다. 윤여정이 요리를 하기 쉽게 모든 재료들을 미리미리 챙겨주고,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들을 중간에서 정리해 윤여정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물론 가끔 식당을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우유를 나눠주며 잠깐의 여유를 누리기도 하고, 그녀를 은근히 챙겨주는 이서진을 따라서 맥주 한 잔을 마시거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무언가를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힘든 주방에서도 늘 밝게 웃었고 신구와 윤여정을 챙겨주고 이서진을 동생처럼 따르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을 게다. 시청자들이 그녀를 ‘윰블리’라고 부르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게 된 건 그 행동들 하나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들 속에 깃들여진 진심이 느껴져서다. 그것은 그녀가 말한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사실 다른 출연자들이야 이미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인물들이고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 <꽃보다 할배>의 신구, 이서진이 그렇고, <삼시세끼>의 윤여정, 이서진이 그렇다. 그래서 특히 예능이 처음인 정유미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그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유미는 <윤식당>에서 그렇게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보여준 것이 별로 없다. 항상 조용히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타인들을 살피고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가를 챙기는 게 그녀가 한 일의 전부였다. 자신이 하고픈 것들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들어주고 따라주는 것. 그래서 항상 뒤편에 있었던 것 같지만 시청자들로서는 그런 정유미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일 수 있고 어쩌면 막내로서 선배들 앞에서의 조심스러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그녀가 말한 대로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그런 모든 행동들에 진심어린 행복 같은 것들을 느끼게 한 면이 있다. 

이른바 ‘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너도 나도 하고 싶은 대로 지금 당장 하는 것을 욜로라 착각한다. 그래서 욜로를 소비와 자꾸 연관 짓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삶의 자세다. 복잡한 소비적 삶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진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욜로가 아닌가.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지워내고 바로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진짜 삶의 행복을 되찾는 것. 아마도 정유미가 <윤식당>에서 집중을 통해 경험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윤식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의 실체 또한.

<이아바>, 불륜보다 흥미로운 다양한 관점들

 

결혼생활이..... 어느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봐라.. 안 힘들고 안 버거운 사람 있나... 그만큼.. 책임이 따르고...무게가 있기에 결혼서약을하고, 하는거지.. 버겁고. 힘들다고.. 조그만한.. 바람에 흔들리면.. 세상사람 다 흔들리고 쓰러지지...... 나쁜 ×.. 진짜 힘들었을 때.. 말했어야지.. 다른 사람한테 말고.. 그게 예의지.. 나쁜..’ - 한은정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사진출처:JTBC)'

종종 별 보러 오자던 남편은 어디로 가고~~ 그 남편에게 다른 여자들과 둘이서 영화 보고 차 마시고 술 마실 여유는 있었어도, 독박가사에 독박 육아 하는 맞벌이 아내 마음 헤아릴 여유는 없었던 거지... 이 드라마가 위기를 외면하는 부부에게 예방주사가 되면 좋겠다. 이미 일 벌어지고 수습하기엔 상처가 너무 크잖아...’ - 차연

 

이 드라마를 단지 바람 폈다는 사실만 주목하면 안돼지. 이선균과 송지효가 살면서 서로에게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먼저 따져야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정말 결혼한 다음 서로에게 충실한 것하고는 거리가 먼 사회이지. 잡은 물고기에게 왜 먹이를 주냐 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드라마 보지마라. 그런 사람들은 욕밖에 할 게 더 있냐?’ - anjfqhkf

 

JTBC 금토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대한 기사에는 이런 댓글들이 빼곡하게 달려있다. 드라마에서는 마침 불륜을 저지른 정수연(송지효)이 자신이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해 힘들었던 자신의 심사를 눈물을 흘리며 남편 도현우(이선균)에게 말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맞벌이 하는 워킹우먼으로서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잘 하기 위해 뛰고 또 뛰었고 그게 누구에게나 있는 일로 치부하던 차에 그 사람이 보여주는 친절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갔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정을 가진 워킹우먼들의 입장에서 그녀의 말이 공감 가는 쪽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시청자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도현우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가끔 애 데리러 가줬고 또 쓰레기도 치워줬다며 자기도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도현우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며 도현우의 입장을 지지하는 분들도.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그 내용 안에 이 불륜에 처한 정수연과 도현우의 상황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들을 담아놨다는 점이다. 게시판에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제목으로 도현우가 글을 올려놓자 거기에 대한 익명의 여러 사람들이 의견들을 계속 덧붙인다. 당장 이혼하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참치마요처럼 차분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대처해나가라는 조언도 있다. 그 참치마요에게 너무 자기 입장에서 입바른 소리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고, 그가 쓴 한 줄 한 줄의 진심에 감동하는 입장이 올라오기도 한다.

 

즉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륜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있고, 그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또한 다양한 입장들을 내보이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사실 이렇게 되면서 드라마는 단순히 불륜이 갖고 있는 자극적인 상황들이 무한 전개되는 것을 벗어나 좀 더 결혼이라든가 부부관계라든가 혹은 일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들이 서로 개진되는 장을 마련해준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 드라마 속 정수연과 도현우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여러 의견을 달고 때로는 격론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그간 당연히 생각해왔던 결혼과 부부관계 같은 것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가 가진 독특함이 드러난다. 드라마적 상황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그 일종의 상황극을 통해 저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드라마.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이 드라마를 불륜극이다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공항 가는 길> 김하늘에 대한 깊은 공감이 말해주는 것

 

어쩌다 그녀는 모든 걸 잃어버렸을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에게 남편 박진석(신성록)당신이 생각하는 방식, 움직이는 소리도 싫다.”는 막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침착하다.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싫다는 소리 직접 듣는데 진상 손님 같아. 아무 느낌이 없어.”라고 말한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늘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는 남편의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공항가는 길(사진출처:KBS)'

그녀는 박진석이 자신의 절친인 송미진(최여진)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데 그 절망은 남편에 대한 실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보다 더 오래 알아왔던 송미진이 자신에게 그녀와 남편 사이의 오랜 관계에 대해 숨겨왔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다. 송미진은 박진석이란 인간이 자신과 동거하면서도 최수아를 만나는 나쁜 인간이라는 걸 숨겼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최수아와 송미진의 그 끈끈했던 우정은 금이 가 버린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모든 걸 잊고 빠져들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 때문에 딸 효은(김환희)이 방치되는 걸 새삼 깨닫고 왜 이렇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느껴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러니 이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기댈 곳은 자신을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서도우(이상윤)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 때문에 그에게도 이별통보를 한다. 망쳐진 모든 관계들이 마치 자신이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한 것 때문인 것처럼 여겨져서다.

 

<공항 가는 길>은 애초부터 최수아의 비극적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남편은 그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고 젊은 여자들이나 힐끔거리며 심지어 그녀를 멀리 보내려고만 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의 절친이었던 송미진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딸 효은을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면서, 일하면 일한다고 구박하고 일 그만두면 그만뒀다고 뭐라 하는 시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서도우라는 인물은 위안이자 위로일 수밖에.

 

결국 불륜이라는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공항 가는 길>이 전하고 있는 건 결코 살기가 녹록치 않은 중년의 삶에 어떤 작은 위로와 위안이다. 최수아의 표현대로 하루하루를 미친 년처럼 뛰어다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버텨내는 삶에 던지는 작은 위로. 그것은 그녀를 누군가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때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떤 것일 수도 있고, 피곤한 삶에서 잠시 비껴나 낯선 고택의 아무 것도 없는 방안에서 취하는 잠깐 동안의 낮잠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 가는 길에서 느끼는 그 감정들. 도시의 피곤과 그 속에서 관계들이 만들어냈던 수많은 상처들,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영혼을 잠식해가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들 같은 것들로부터 잠시 동안이지만 떠날 때 느끼는 그 위안. 물론 다시 돌아와야 하지만 그래도 그런 작은 위안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최수아에게 공항 가는 길은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다. 승무원일 때는 그것이 일터로 가는 길이지만, 거기서 서도우를 만나 새벽 내내 이야기를 나눌 때는 힘겨운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일탈의 길이 된다. 그리고 남편도 친구도 잃은 채 딸 효은과 제주도로 가는 길은 아마도 이 도저히 버티기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 그만큼의 거리를 가지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공항 가는 길>이 단순한 불륜 소재가 아니라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는 드라마라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최수아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그래서 최수아의 절망적 상황에 던져진 작은 위로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게다. 그것마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법정극과 멜로 사이, <캐리어>의 애매한 위치

 

MBC 월화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 장르적 정체성이 애매모호하다. 시작은 스릴러가 곁들여진 법정극으로 보였다. 노숙소녀 살인사건이 그 시작을 알렸기 때문. 여기에 차금주(최지우)라는 변호사보다 뛰어나지만 시험공포증으로 사무장으로 살아가는 인물이 겹쳐지면서 법정극의 색다른 시도가 엿보였다. 간판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겨있는 차금주라는 캐릭터가 후에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에 대한 기대감도 충분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사진출처:MBC)'

매회 한 가지 정도의 사건을 에피소드로 갖고 오는 이야기 구성은 마치 저 <동네변호사 조들호><굿와이프>가 보여줬던 법정극의 재미요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 각각의 사건들은 차금주가 사무장으로 있다가 결국 퇴출된 오성로펌과 계속 연결되고, 오성로펌은 그 뒤에 오성그룹이라는 대기업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로펌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진다. 과거 어떤 사건으로 법조계를 떠나 K팩트라는 파파라치 언론의 대표가 된 함복거(주진모)와 함께 차금주는 이 대기업과 로펌 그리고 정재계가 서로 얽혀있는 거대한 부정을 파헤쳐 나가게 된다.

 

이처럼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법정극의 요소들만 갖고 오면 권음미 작가의 전작들인 <갑동이><로열패밀리> 같은 작품들처럼 충분히 흥미진진한 면들이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여기에 조금은 과한 삼각 멜로의 틀을 집어넣었다. 함복거와 마석우(이준) 변호사 사이에서 차금주를 멜로의 중심으로 세워둔 것. 직장상사로서 일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때로 사심을 드러내는 함복거와, 대놓고 마음을 드러내며 직진하는 마석우 사이에서 차금주는 갈팡질팡하는 여성이 된다.

 

사무장에서 변호사가 되려는 꿈이나, 또 자신이 맡은 사건을 자기 이름이 남는 것도 아니면서 변호사보다 더 열심히 풀어나가는 차금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일에 있어서의 매력을 보여주는 차금주를 함복거와 마석우라는 남성들은 자꾸만 여성으로 끌어 앉힌다. 일을 빙자해 연애를 하려하고, 심지어 같은 로펌의 대표와 변호사이면서도 연적으로서의 대결구도를 보인다.

 

물론 법정극이든 스릴러든 심지어 연쇄살인이 소재로 담겨진 드라마라고 해도 멜로가 없어야 한다는 공식 따위는 없다. 특히 요즘처럼 여러 장르를 뒤섞은 이른바 복합 장르물이 이제는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멜로가 들어간다고 해도 법정물이나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멜로의 이완은 적절하게 균형이 맞아야 하고, 또 그 이질적 장르를 연결해주는 맥락이 있어야 자연스러워진다. 과연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장르 혼용은 이런 자연스러움이 있을까.

 

차금주라는 캐릭터가 흔들리는 걸 보면 이 결합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즉 처음에 이 캐릭터에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던 일의 요소들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대신 뜬금없이 이어지는 두 남자 사이의 멜로가 법정극 사이사이에 맥락 없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정극에서 멜로로 넘어갈 때나 혹은 그 반대로 넘어갈 때 마치 극이 툭툭 끊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저 두 장르를 이어붙인 듯한 안이한 구성과 편집 때문이다.

 

굳이 차금주라는 입지전적인 인물을 자꾸만 멜로로 주저앉힐 필요가 있었을까. 로펌 사장이라며 함복거가 그녀에게 9천만 원짜리 외제자동차를 선물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왜 필요하고, 사건 수사를 하러 성소수자들이 가는 바에 함께 간 마석우와 차금주가 굳이 갑자기 키스를 하는 장면이 왜 필요할까. 물론 그 멜로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본 스토리가 갖고 있는 법정극의 긴장감을 과도하게 이완시킴으로써 드라마 전체의 느낌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본말을 전도시킨다는 것이다.

 

한때 본격 장르물은 안 된다는 게 지상파 드라마의 공식처럼 되어 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멜로도 조금 넣고 가족드라마적인 요소도 넣으며 심지어 판타지도 넣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점점 높아지면서 이런 공식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 <시그널> 같은 본격 장르물이 tvN 같은 케이블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걸 보라.

 

물론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법정물을 다루면서도 로맨스물의 성격을 더해 독특한 톤 앤 매너를 시도하려 했다는 의도는 분명히 보인다. 하지만 그러려면 좀 더 정교한 봉합이 있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멜로를 넣더라도 먼저 차금주의 일에 있어서의 욕망이나 정의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을 좀 더 전면에 내세우는 편이 지금의 드라마 트렌드에는 더 맞지 않을까. 연애하는 사무장이 아닌 변호사보다 더 열 일하는 사무장 차금주가 더 매력적이다.

힘들 때 내 편인 사람, 공표진표 로코의 핵심

 

사랑보다 더 강력한 게 내 편에 대한 판타지인가. 로맨틱 코미디가 그저 사랑만을 다루던 시대에서 이제 일과 사랑을 동시에 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이렇게 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양상은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고 또 영원히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는 사실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서숙향 작가는 일찍이 <파스타> 같은 작품을 통해 살벌한 일터에서 피어나는 로맨틱한 사랑의 이야기를 달달하면서도 짠 내 나게 그린 바 있다. 거기서도 주목되는 건 그 힘든 일터에서 남모르게 그녀를 챙겨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셰프라는 인물이 제공한 강력한 판타지다. 그저 사적인 남녀의 만남과 사랑의 과정이 아니라, 이제는 일과 얽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만큼 커진 현대인들의 욕망이다.

 

SBS <질투의 화신>은 그 배경을 방송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는 이 방송국의 구박덩이로 살아간다. 나름 프로이고 세세하게 준비해 내보내는 그녀의 일 기상예보는 아무도 주목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이 뉴스인지 아니면 쇼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어떤 일로 치부된다. 그런 그녀의 기상예보를 매일 매일 보는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어패럴업을 하고 있는 재벌3세 고정원(고경표)이 그 사람이다.

 

모두가 주목하지 않을 때 그녀를 주목해 바라봐주고, 그녀가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의 계략에 의해 해고통보를 받을 때도 그걸 알아봐주는 인물. 아무도 챙기지 않는 그녀에게 옷을 챙겨다주고 후배와 누가 방송에 나갈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때 은근히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 방송 후 쓰러져버린 그녀를 안고 병원에 바래다주고 엉망진창이 됐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도 잘 했다며 다독여주는 이가 바로 고정원이다.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표나리에게 완벽한 자기 편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고정원보다 더 가까이서 그녀의 진짜 편이 되어주고 있는 인물은 사실 이화신(조정석)이다. 그는 툴툴대는 성격 때문에 그녀에게 버럭 대기 일쑤지만 그러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의 기상예보 방송을 볼 정도로 그녀의 편에 서 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방송을 강행한 그녀에게 응급차를 보내려고 하지만 그 마음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고정원이 그녀를 향해 직진해온다면, 이화신은 쭈뼛쭈뼛 아닌 듯 다가와 버럭대며 슬쩍 마음을 꺼내놓는 츤데레다.

 

<질투의 화신>에 첫 눈에 반하고 확 불타오르는 그런 사랑은 없다. 또 재벌3세가 가진 현실적인 능력에 휘둘리는 신데렐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로맨틱 코미디에는 그녀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고 편들어주며 외적인 조건, 상황과 상관없이 그녀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고정원이 그렇고, 그 고정원의 배려에 마음이 흔들리는 표나리를 보며 질투하면서 조금씩 그녀의 편에 서게 되는 이화신이 그렇다.

 

<질투의 화신>이 코미디보다도 더 웃기고 때론 그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면서도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의 공감대를 가져가는 건 바로 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거기에는 삶과 일의 문제가 끼어들고 그저 확 타오르는 사랑 그 이상의 현실적 공감과 위안이 들어간다. 시종일관 웃다가 조금씩 그 인물들의 마음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현대인들이 가장 갈급해하는 그 욕망, ‘내 편에 대한 욕망때문이 아닐까.

<질투의 화신>, 웃긴데 짠한 이 기분은 뭐지

 

표나리와 피나리.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공효진의 이름이 표나리라고 붙여진 건 다분히 캐릭터의 성격을 담고 있다. 기상캐스터로서 분명 뉴스의 한 부분을 채우고 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존재. 그래서 그녀는 재벌3세인 고정원(고경표)이 그녀의 날씨 예보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반색한다. 그러면서 항의전화라도 좋으니 전화를 해달라고 한다. 그녀는 관심 받고 싶다. ‘표가 나고싶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그런데 회사에서 표나리라는 이름표를 잘못 본 이화신(조정석)은 그녀를 피나리라고 부른다. 이런 지칭 역시 다분히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 그녀는 일터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다. PD 커피 심부름은 물론이고 아나운서들 잔심부름까지 하며 자신이 맡은 날씨 예보를 한다. PD가 요구하는 이상한 포즈를 기꺼이 취해가며.

 

하지만 그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후배 기상캐스터 때문에 술에 취해 날씨 예보를 하게 된 표나리는 그 자리에서 해고통보를 받는다. 그래서 시간이 난 그녀는 유방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장으로부터 날씨 예보를 하러 오라는 명령을 듣는다. 그녀가 했던 예보가 시청률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방송국에 가서 예보 준비를 한다. 실로 피가 나는치열한 일의 현장이다.

 

<질투의 화신>이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사랑과 일을 엮어내는 바로 그 지점이 표나리에서 심지어 피나리로까지 불리는 치열한 일터다. 그녀는 표가 나기 위해 피가 나게 뛰어다닌다. 그것은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무려 3년 간 그녀는 자신이 짝사랑해온 이화신의 주변을 뱅뱅 맴돌며 살아왔다. 그를 위해 비 내리는 날 우산을 갖다 놓아주고, 회식 자리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신발들 속에서 그의 신발만 가지런히 챙겨 놓아줬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표가 나지않는다.

 

그녀가 표가 나기 시작한 곳이 유방암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부터 였다는 건 우습기도 하지만 짠하기도 한 일이다. 그녀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어서야, 그것도 자신이 짝사랑해왔던 이화신과 함께 병실에 있게 되어 이제는 남녀 관계라기보다는 수술을 앞둔 환자로서 동병상련의 입장이 되어서야 비로소 표가 나기 시작한다. 늘 그녀가 해왔던 뉴스의 한 자리가 그렇고, 늘 이화신을 쫓아다니며 짝사랑해왔지만 이젠 관심 없다고 말하자 왠지 그에게 느껴지는 빈 자리가 그렇다.

 

<질투의 화신>은 결국 이 피가 나게 노력해온 표나리가 표가 나는 인물이 되는 로맨틱 코미디다. 어찌 보면 이미 정해진 결과가 뻔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의외로 우리는 이 표나리라는 인물이 주목받길 원한다. 그녀의 사정이란 어쩐지 지금의 현실에서 남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화신이라는 이름도 그러고 보면 이 작품 속 캐릭터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보인다. 마초적인 남자지만 어쩌다 보니 그는 여자인 표나리에게 가슴을 내주었고, 그녀와 함께 유방 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그녀의 기습키스를 당하기까지. 어찌 보면 이 마초적인 남자에게 남녀 사이의 관계는 역전되어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질투의화신이 되어갈 것이다.

 

뻔해 보여도 이 기꺼이 표나리를 응원하게 되는 마음은 의외로 강력한 판타지를 준다. 무엇보다 거의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코믹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웃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표나리의 진심어린 얼굴을 쳐다보게 되면 먹먹해지는 상황. <질투의 화신>이 조금씩 시청자들의 마음을 열고 있다. 피가 나게 일터를 뛰어다니며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표가 나려 안간힘을 쓰는 표나리에 대한 심정적지지

<굿와이프>의 시도와 성취 그리고 남는 한계

 

종영한 tvN <굿와이프>의 엔딩은 파격적이다. 김혜경(전도연)과 이태준(유지태)는 이혼하지 않고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남게 된 것. 김혜경의 이런 선택은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던 결말이다. 그것도 <굿와이프>라는 제목에 이런 결말을 낸다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온 좋은 아내라는 이미지에 대한 도전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우리네 드라마에서였다면 어땠을까.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이혼을 해서 김혜경이 온전히 홀로 서는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그것이 윤리적으로도 또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하지만 <굿와이프>는 보다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으로서의 김혜경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윤리니 진심이니 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위한 실리적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

 

<굿와이프>가 보이는 인간관은 확실히 이 실리에 맞춰져 있다. 처음 변호사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던 김혜경이 직업적 프로로서가 아니라 동병상련의 공감으로 의뢰인을 대하던 모습을 이 드라마는 순수함이나 열정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런 자세는 실리가 없는 아마추어적인 행동이라고 일침한다. 김혜경은 차츰 일에 빠져들면서 이 직업적 프로로서 지극히 실리적인 변호사가 되어간다. 설사 의뢰인이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변호하는 일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는 걸 자각한 프로의식.

 

이 일에 있어서의 프로의식은 또한 김혜경의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즉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순진한 사랑이나 신뢰 같은 걸 추구하던 김혜경은 마지막에서는 마치 파트너십처럼 서로를 이용하는 실리적 관계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태준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건 그래서 부부 간의 사랑 때문도 아니고 그를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녀에게 유리한 선택이라는 것뿐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열린 결말이 아니다. 작품이 하나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은 양갈래로 나뉜다. 개인의 성장을 이뤘으니 해피엔딩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실리적 선택이 성장이 아닌 지독한 현실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새드엔딩이 되는 셈이다.

 

어째서 이런 파격적인 결말을 내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이 미드 원작 리메이크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적인 실리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굿와이프>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선악과 윤리를 추구하는 삶이 현실적으로 개인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굳이 왜 그걸 선택한단 말인가. <굿와이프>는 그래서 쇼윈도부부라도 이용가치가 있다면 그걸 활용하면서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문제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하지만 이건 미국 정서이고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개인적 실리보다는 가족과 부부간의 신뢰 그리고 지켜져야 할 것들을 지키면서 얻는 행복에 더 가치부여를 하고 있다. 그러니 <굿와이프>의 선택은 성장이라기보다는 타락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어쨌든 미드 원작이기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면서 이런 도발적인 선택의 드라마를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천편일률적인 좋은 아내의 이미지들을 내놓는 여타의 드라마들 속에서 문제적 인물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정서적 차이는 한계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완성도 높은 좋은 드라마였던 건 분명하지만 미진한 아쉬움 같은 게 남는 건 그래서일 게다.

<굿와이프>의 쿨한 도발, 충분히 의미 있는 까닭

 

tvN <굿와이프>는 여러모로 도발적이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법정극을 다루지만 우리네 법정드라마들이 하듯 법 정의를 내놓고 기치로 내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혜경(전도연)은 새로 로펌에 들어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의뢰인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이다 로펌 대표인 서명희(김서형)로부터 한 소리를 듣는다. 변호사의 일은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이 대단히 쿨하다 못해 비정하게까지 여겨지는 법에 대한 태도는 <굿와이프>라는 법정드라마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변호인들이 대부분 약자들의 편에 서서 법 정의를 실현해내는 소시민들의 영웅처럼 그려지고 있다면, <굿와이프>에서 변호사들은 프로들이다. 김혜경과 계속 맞닥뜨리는 상대편 변호사 손동욱(유재명)은 이기기 위해서는 별의 별 꼼수까지 다 쓰지만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마치 스포츠라도 한 판 한 듯 쿨하게 그녀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우리네 법정드라마에서 법 정의를 둘러싸고 선과 악이 극명히 대립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다만 의뢰인에 따라 결정되는 직업적인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것에 굉장한 도취감이나 좌절은 없다. 다만 성취나 낙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런 쿨한 태도는 아마도 좀 더 실제에 가까운 변호사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저 선과 악을 운운하고 서민들의 영웅으로 그려지곤 하는 우리네 변호사들이 순진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순진해보여도 바로 우리네 정서인 것만은 분명하다. 드라마가 결국 현실을 그대로 그린다기보다는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건드린다고 볼 때, 우리에게 드라마가 그리는 변호사에 소시민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판타지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에서 희구되는.

 

그래도 법 정의의 문제일 때는 <굿와이프>의 이런 직업적이고 프로적인 쿨한 태도는 그런대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또 한 축, 즉 남편과 남자친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삼각관계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정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김혜경의 남편 이태준(유지태) 검사는 한 마디로 나쁜 남편이다. 그는 이미 불륜을 저질러 김혜경을 배신한 바 있고, 그래서 잘못했다 말하면서도 아내의 그 좋은 이미지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김혜경은 그 남편과 살아왔던 세월을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하지만 거기서 상사이자 오랜 친구인 서중원(윤계상)과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국 선을 넘어버린다. 이 부분은 미국적 정서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간 김혜경이 살아온 세월과 당해온 일들을 생각해보라. 그녀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당연히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 마음이 걸리는 건 아직 아이들이 있고 남편과 이혼을 명쾌하게 하지 않은 사이에서 김혜경과 서중원이 선을 넘는 모습이다. 그건 마치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남편과 똑같이 옳지 않은 행동으로 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러한 행동도 선과 악의 윤리적 잣대로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과는 상당히 다른 미국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굿와이프>는 우리네 드라마 정서에는 태생적으로 문제작일 수밖에 없다. 제목이 <굿와이프>지만 그것은 좋은 아내로서의 김혜경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이른바 좋은 아내로 상정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력 같은 것들을 보기 좋게 깨버리는 김혜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그래서 일에 있어서는 쉽게 선악으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프로페셔널로 서는 것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좋은 아내같은 때로는 폭력적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굿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도발적이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으로 우리네 대중들에게 100% 공감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가진 가치는 지금껏 선악구도와 윤리적 잣대에만 매몰되어 아무도 질문을 건네지 않았던 일과 사랑에 대한 파격적인 질문들을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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