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줍쇼’ 1년, 무엇이 바뀌었을까

어느새 1년이 흘렀다. 처음 길바닥에 숟가락 하나씩 들고 나와 낯선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모르는 집의 초인종을 누르던 그 순간의 긴장감은 그 1년 사이 많이 사라졌다. “이경규인데요”라고 말했을 때 초인종 저 편에서 들려오는 “그런데요?”라는 반문이 주던 그 당혹감도 이젠 익숙해졌다. 물론 지금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목소리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JTBC <한끼줍쇼>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우리네 대중들이라면 한번쯤 봤거나 혹은 들어봤을 테고,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내 집에 초인종을 누른다면 적어도 낯설어 거부하진 않을 정도는 됐다.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그 1년 사이 무엇이 바뀌었을까. <한끼줍쇼>가 1주년을 맞이해 그 첫 회를 했던 망원동을 다시 가보는 그 행보는 그 달라진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주었다. 이미 망리단길을 알고 또 tvN <알쓸신잡>에서 나왔던 ‘젠트리피케이션’을 들어본 시청자라면 망원동의 주택가가 상가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며 남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게다. 물론 망리단길이 <한끼줍쇼>로 인해 주목받은 건 아니다. 이미 <나 혼자 산다>의 육중완이 망원시장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부터 망리단길은 서서히 만들어져 왔다. <한끼줍쇼>는 방송의 힘이 심지어 동네의 풍경을 1년 사이에 그렇게 바뀌게 해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물론 그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외부 자본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형국이니.

경리단길, 망리단길, 연남동길... 이처럼 많은 길들이 마침 생겨나고 상권도 형성되기 시작할 즈음 방영되기 시작했던 터라 <한끼줍쇼>는 그렇게 새로운 동네와 길들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한끼줍쇼>가 바꾼 건 그런 동네의 외적인 풍경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타인들에 보여주는 따뜻함 같은 것들이 더 큰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낯선 이들의 방문에 문을 열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하지만 적어도 <한끼줍쇼>가 1년 동안 방영되면서 그 불가능해보였던 일들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문을 닫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살 일이 바빠서 타인에게 거리를 두고 있을 뿐, 어떤 기회가 되면 그토록 따뜻할 수 없다는 걸 이 프로그램에 나온 많은 ‘식구’들이 확인시켜줬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망원동에서 이경규와 강호동이 각각 찾은 집은 너무나 상반된 풍경을 보여줬다. 이경규가 이연희와 찾은 집이 추석을 맞아 3대가 모여 잔치 같은 분위기를 보여줬다면, 강호동과 차태현이 찾은 집은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욜로족 청춘의 단출하지만 유쾌한 한 때를 보여줬다. 대가족과 나홀로족. 그 두 집의 풍경은 우리 시대에 공존하는 너무나 다른 삶의 양태를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달라도 그들이 낯선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그 안에서 밥 한 끼를 나누며 보여준 환대는 다를 바가 없었다. 

<한끼줍쇼>가 1년 간 바꾼 것은 그래서 망리단길처럼 동네에 들어온 자본의 물결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따뜻한 정 같은 것을 새삼 복원한 것이 아닐까. 저마다 정글 같은 일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서민적인 사람에 대한 정과 호의. 방송 프로그램이 현실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이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이다. 

이경규는 이미 <일밤> 시절부터 ‘양심냉장고’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방송이 현실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사정은 강호동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던 <1박2일>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우리네 숨겨진 비경과 오지에서 살아도 정만은 그토록 깊었던 분들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꽤 큰 자산들을 확인시켜줬던 경험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한끼줍쇼>가 바꿔 놓은 건 동네가 주는 따뜻한 정감만이 아니었다. 이경규와 강호동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래 자신들이 잘 해왔던 그 초심을 이 시대에 맞게 되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황소걸음이지만 성실하게 그 길을 오래도록 걸어서야 만이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진정성이고, 그것을 통해서 어쩌면 현실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들은 그 1년 동안 보여줬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아직도 식상한 연예인 몰카인가

 

아직도 여전히 몰래카메라? MBC 새 주말예능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는 <진짜사나이>의 빈자리를 차고 들어왔지만 너무 안이한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몰래카메라라는 콘셉트가 신선함을 주기 어려운데다, 새로움의 요소도 그리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사진출처:MBC)'

물론 차별점으로 내세운 게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이경규 혼자 하던 몰래카메라를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는 윤종신, 이수근, 김희철, 이국주, 존박 이렇게 다섯 명이 이른바 출장 몰카단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한다. 하지만 이 다섯 인물들이 이경규 혼자 하던 몰래카메라만큼의 재미를 뽑아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원은 많지만 확실한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 것.

 

첫 회에 나간 설현과 이적을 대상으로 한 몰래카메라는 어설픈 느낌이 강했다. 타로 점을 보고 그 점괘가 그대로 벌어지는 장면들을 연출한 설현의 몰래카메라는 너무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제 아무리 점괘에 따라 하루 일이 벌어진다는 설정이라고 해도 너무 잘 맞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이제는 몰래카메라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경규가 처음 몰래카메라를 시도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의 상황들이 의심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몰래카메라라는 것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히 이상한 상황을 맞이하면 연예인들이 이거 몰래카메라 아냐?”하고 묻는 건 이제 예삿일이 될 정도다. 그러니 설현의 몰래카메라는 과거와 비슷하다고 해도 더 어설프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링고스타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동석하게 되는 설정의 몰래카메라를 시도한 이적의 경우는 더 어색했다. 일단 분장 자체가 너무 티가 났다. 보는 시청자들 역시 몰입이 잘 안될 정도. 중간에 이적이 의심을 하는 순간은 그래서 긴장감을 높이긴 했지만 그건 이 상황 자체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를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급 전개하며 일찍 몰래카메라임을 밝히고 끝을 맺는 장면도 더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상황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이경규가 했던 몰래카메라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그 시기가 이른바 연예인의 신비주의가 벗겨지던 시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인해 연예인들의 탈신비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내는 몰래카메라가 대중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셀프카메라 시대다. 연예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민낯을 올리는 상황이 아닌가. ‘탈신비같은 것이 갖는 재미가 예전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연예인의 꾸밈없는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점은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갖는 가장 큰 재미의 지점일 수 있다. 하지만 첫 회를 통해 확인된 건 그것이 당사자들을 크게 놀라게 할 정도로 은밀하지도못했고 그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감동을 줄만큼 위대하지도못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지금 같은 시국에 누군가를 속이는 콘셉트의 예능이 잘 어울리는가 하는 지적까지 나오게 된 것은 이런 약점들이 너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단순한 연예인 몰래카메라라는 설정만으로는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과거에는 몰래카메라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제 몰래카메라가 그만큼 익숙해진 현재, 그 설정이 무언가 다른 스토리로 진화하지 못한다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믿고 보는 <무도> ‘토토가’, 반전에 반전

 

역시 위기도 기회로 삼아버리는 <무한도전>이다. 물론 16년 만에 다시 뭉친 젝스키스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옛 멤버들이 다시 모여 옛날로 돌아간 듯 그 때의 추억에 잠기고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한 성격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하지만 모인 그들이 예전처럼 무대에 올라 게릴라 콘서트를 한다는 이야기에 기대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젝스키스의 게릴라콘서트 계획이 기사화되었고, 그 설레는 무대에 대한 기대감도 동시에 무너져버렸다. 플랜B로 내세워진 하나마나 콘서트가 있었지만 제목처럼 어딘지 너무 소소해져버린 복귀 무대라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무한도전>은 게릴라 콘서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마나 콘서트를 하는 것처럼 꾸며 고속도로 휴게소와 민속촌에서 복귀 공연을 선보였지만 바로 마지막 콘서트장이 상암 월드컵경기장이라는 걸 알리며 계획했던 대로 게릴라 콘서트가 열릴 것이라는 걸 젝스키스에게 말했다.

 

사실 게릴라 콘서트의 의미는 과거 <일밤> 시절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SNS가 일반화되어버린 시대에, 굳이 시간을 정해놓고 길거리 홍보를 직접 해서 게릴라 콘서트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어렵게 여겨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누군가 길거리 홍보를 하는 그들의 사진 한 장을 SNS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진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젝스키스가 게릴라 콘서트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래서 그것이 무산된 것처럼 여겨졌다가 다시 콘서트를 강행한다는 그 반전에 반전이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결국 게릴라 콘서트라는 아이템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많은 팬들 앞에 서게 되는 젝스키스의 반응이다.

 

하나마나 콘서트로 시작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첫 무대는 젝스키스가 생각했던 무대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어색하고 심지어 창피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츰 그들은 어떤 장소이건 어떤 관객이건 또 그 숫자가 얼마이건 상관없이 함께 다시 모여 노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라는 걸 체험하게 된다.

 

두 번째 찾아간 민속촌에서의 공연은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무덤덤해하다가 차츰 젝스키스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나이가 조금 있는 분들은 여전히 젝스키스의 노래에 자연스럽게 춤동작을 따라 하기도 했다. 게릴라 콘서트가 젝스키스를 여전히 사랑하는 팬들과의 만남이었다면, 하나마나 콘서트는 현재의 불특정 다수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 조금씩 노래와 춤으로 교감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흥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역시 하이라이트는 예고편에서 잠깐 나왔던 것처럼 안대를 벗고 노란 물결로 가득한 객석을 바라보며 감동하는 모습으로 시작될 젝스키스의 게릴라 콘서트다. 여기에 그간 함께 참여하지 못했던 고지용이 모습을 깜짝 드러내 완전체 젝스키스의 무대를 보여줄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토토가2’는 하나마나 콘서트와 게릴라 콘서트의 콜라보레이션이 됐다. 게릴라 콘서트 하나만 했다면 어딘지 단조로웠을 이야기는 하나마나 콘서트와 엮어지면서 훨씬 다채로워졌다. 역시 믿고 보는 <무한도전> 다운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SBS 예능, 왜 초심에 대한 근성이 부족할까

 

요즘 MBC 예능국은 한껏 환한 분위기다. 파일럿으로 시작했던 두 프로그램이 순항하며 MBC 예능을 전면에서 쌍끌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일밤>에 포진한 <복면가왕><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다. 파일럿에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인 두 프로그램은 정규로 자리를 한 후에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며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복면가왕>의 클레오파트라 신드롬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백종원 신드롬에 이어 정규방송은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인터넷에서 열풍을 만든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은 이 프로그램들이 갈수록 화제를 잇고 있는 이유를 말해준다. 본래 갖고 있던 재미의 핵심을 늘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얹는 노력의 결과다.

 

반면 SBS 예능국은 요즘 울상이다. 역시 파일럿으로 시작해 정규방송이 된 프로그램들이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를 부탁해>는 꽤 괜찮은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저녁에 편성되면서 고개를 숙였다. 많은 이들이 이 편성 변경이 무리수였음을 지적한다. 이 프로그램은 그렇게 강한 자극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말 저녁의 시청패턴이 그렇듯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아니다. 어느 정도의 집중을 요하지만 그게 강한 자극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요일 저녁의 경쟁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를 부탁해>의 난항이 단지 편성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니다. 물론 편성이 주는 부담감이 먼저 작용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초반의 자연스러움을 상당 부분 많이 잃어버렸다. 초반 이 프로그램은 아빠들과 딸들의 집안에 카메라를 그저 설치해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은 관찰카메라 형식에서 갑자기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형식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미션이 주어지고 게임을 하고.

 

이런 문제는 <썸남썸녀>에서도 드러난다. 남녀 간의 진솔한 썸의 이야기를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다루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은 파일럿 때부터 시청자들을 주목시켰다. 물론 정규 프로그램이 된 후 초반에는 그 흐름이 그대로 유지되고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생기면서 괜찮은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시청률이 3%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엉뚱한 곳으로 자꾸 튀고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한계점은 분명히 있다. 즉 연예인들이야 누구를 만나 썸을 타고 연애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들과 함께 하는 일반인들이라면 그게 상당히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일반인 출연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럴수록 썸의 이야기는 풀어내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그들이 썸은 안타고 갑자기 육아 체험을 하거나, 아니면 신부수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김치를 담가 먹는 쿡방 흉내를 내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기왕에 <썸남썸녀>라는 타이틀을 달고 썸에 대한 기치를 내세웠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초심을 이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프로그램이 사는 것은 초심을 지키면서 그 위에 새로움을 계속 쌓는 일일 것이다. MBC 예능과 SBS 예능의 희비쌍곡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뉘고 있다.



이경규를 보면 예능의 흐름이 보인다

 

이경규가 SBS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딸 예림이와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은 이런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마치 이 프로그램이 예림이의 연예인 만들기처럼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이런 오해는 사라졌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아빠의 삶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물론 그 아빠를 보는 시선은 딸의 시선이지만.

 

이경규(사진출처:KIBS)

하지만 필자를 더 놀라게 만든 건 이런 기대와 우려가 아니라 이경규의 행보 그 자체였다. 사실 이경규는 KBS <남자의 자격> 이후에 그리 주목되는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못했다. SBS <힐링캠프>는 이미 토크쇼 트렌드가 사라진 현재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종영된 KBS <가족의 품격>은 지상파에서의 집단 토크쇼를 선보였지만 역시 한계를 보였다. 그런데 그가 다시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확실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경규는 MBC <일밤>과 함께 버라이어티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개그맨이었다. 당대에 이경규는 스튜디오 안에서 하는 토크쇼에서도 펄펄 날랐고, ‘양심냉장고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같은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프로그램에서도 확고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버라이어티쇼가 고개를 숙이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열리자 이경규는 다시 이 새로운 트렌드에 뛰어들었다.

 

SBS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MBC <무한도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했다. 하지만 이경규는 KBS <남자의 자격>으로 다시 리얼 버라이어티쇼 트렌드에도 안착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열린 리얼리티쇼 트렌드 속으로 그는 들어오고 있다.

 

그가 예능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트렌드에 따라 변화해왔다. 과거 버라이어티쇼 시절에는 말 그대로 캐릭터를 보여줬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에는 그 캐릭터에 진정성을 얹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아빠를 부탁해>라는 리얼리티쇼에서는 그간 우리가 몰랐던 그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에서 버럭대던 그의 캐릭터는 온데간데없고 딸 예림이와 보내는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친숙해져가는 그 과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그리고 다시 리얼리티쇼로 적응해가는 이경규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이 예능인이 왜 독보적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실 이런 적응력을 보이는 예능인은 거의 없다. 최고의 MC로 추앙받는 유재석, 강호동도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가고 리얼리티쇼가 열리는 지금 현재, 이런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닌가.

 

물론 지금 당대로서는 이경규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훗날 우리 시대를 회고하게 된다면 분명 이경규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존재감은 독보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토록 급변하는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도 밀려나지 않고 자기만의 영역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그의 행보는 많은 후배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일요예능, 편성보다 내용에 신경 쓸 순 없나

 

MBC <일밤>이 편성시간을 10분 또 앞당겼다. 그 이유는 KBS가 지난 20410분에 방송을 시작한다고 고지해놓고 43분에 시작하는 변칙편성을 했기 때문이란다. 사실 시청자들은 이제 누가 잘했고 잘못 했으며 그 원인 제공을 누가 했고 그래서 이런 변칙편성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졌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그도 그럴 것이 이 편성 전쟁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건 다름 아닌 시청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시청자도 거의 4시간에 달하는 주말 예능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영화 런닝 타임보다도 더 긴 시간이다. 과거 예능이 두 시간 남짓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3시간도 적지 않다. 그런데 4시간이다. 이건 결코 시청자를 배려하는 일이 아니다.

 

오로지 시청률 경쟁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양상이다. MBC <일밤>이 시청률에서 우위였을 때 KBS <해피선데이>가 편성시간을 앞당기고 <아빠 어디가>와 유사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같은 시간대에 배치해 재미를 본 건 사실이다. 지금은 시청률에서 <해피선데이><일밤>을 앞서고 있기 때문.

 

물론 거기에는 늘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던 <아빠 어디가>에 비해 다양한 스토리를 엮어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대한 호응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편성전쟁에서도 드러나듯 변칙편성은 여전하다. 이미 현장에서 PD들은 늘어난 방송 분량 때문에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승자 없는 출혈경쟁인 셈이다. 고작 1,2% 차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시청률 전쟁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방영시간이 이렇게 늘어나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양이 늘다보니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방송3사의 일요예능이 전반적으로 밀도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많다. 실제로 <아빠 어디가>는 최근 들어 아빠들의 분량이 많이 늘어났다. 물론 물오른 예능감을 보여주는 아빠들의 모습이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아빠 어디가>의 본령은 아이들에 대한 집중에서 나왔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사뭇 달라진 편집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고 또 있던 인물이 나가는 게 <아빠 어디가>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서인지 늘어난 방송분량에 그다지 큰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일상이 여행보다는 더 이야깃거리도 많은 법이다. 늘어난 시간만큼 <슈퍼맨이 돌아왔다><아빠 어디가>보다 유리한 데는 그런 콘텐츠적인 이유도 들어있다.

 

<룸메이트>에서 최근 벌어진 논란들은 어찌 보면 이 늘어난 방송분량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즉 어쩔 수 없는 방송분량을 만들려다 보니 인위적인 설정이 자꾸 들어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방송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편성전쟁이 광고와 밀접한 방송사들의 이익에 달린 문제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먼저 반칙을 했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MBC의 입장이나, 개의치 않는다는 KBS의 입장이 전혀 공감을 주지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짜증만 유발시키는 건 바로 이런 시청자를 배제한 배려 없는 방송사들의 행태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방송3사가 만나 어떤 식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그걸 지키는 모습이 절실하다.

 

이경규는 왜 유재석처럼 방송에 임하지 않았을까

 

이경규는 자타공인 예능의 달인이다. 콩트 코미디에서부터 버라이어티쇼로 넘어오는 시기에도 이경규는 늘 전면에 서 있었고, 버라이어티쇼에서도 몰래카메라나 이경규가 간다같은 캠페인형 공익 예능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줄곧 주도해왔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을 때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이경규는 <남자의 자격>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기도 했다.

 

'힐링캠프(사진출처: SBS)'

그런데 그런 이경규가 요즘 잠잠해 보인다. 방송을 안해서가 아니다. 지금도 SBS <힐링캠프>, <붕어빵>KBS <풀하우스>를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존재감과 임팩트다. 과거 <남자의 자격>을 했을 때만큼의 이경규 존재감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잘 나오고 있지 않다. <붕어빵>이야 이미 육아 예능이 나오는 시대에 그 트렌드가 그리 뜨거운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고, <힐링캠프> 역시 토크쇼의 황혼 시대를 맞아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다. <풀하우스>는 종편에서 열풍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집단 토크쇼의 KBS버전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그 어느 것도 지금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경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tvN<화성인 바이러스>가 종영했고 JTBC에서 새로 시작한 <한국인의 뜨거운 네모> 역시 단 10부로 마감했다. 과거의 이경규를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종영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방송 현실은 과거처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잘라내는 것이 요즘 방송의 흐름이다.

 

사실 이경규에게 가장 아쉬운 건 종영된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좀 더 유지되고 진정성을 살려냈다면 이경규는 충분히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떠올려보라. 유재석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성실하게 방송에 임하기만 한다면 아마도 <무한도전>과 함께 행복하게 늙어갈 것이다. <무한도전>의 아저씨판처럼 보였던 <남자의 자격>도 충분히 이경규를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경규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인다. 이경규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날방의 이미지. 방송을 하다가 재미없으면 빨리 끊으라고 보내는 사인은 이경규의 캐릭터 중 하나다. 물론 이것은 캐릭터화 되면서 웃고 넘어가는 느낌을 만들지만 사실 제작진들에게는 심각한 사안이다. PD가 멀쩡히 있는데 출연자가 커트를 날리는 것만큼 당황스런 일이 있을까. <남자의 자격>을 처음 연출했던 신원호 PD는 그래서 초반에 이를 두고 상당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다행스럽게도 <남자의 자격> 초반에는 이경규 스스로도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 PD의 입장을 따르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신원호 PD가 나가고 <남자의 자격>이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방송은 어딘지 방만하게 촬영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것을 모두 이경규의 책임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장 어른으로서 조금은 솔선수범하는 자세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재석이 <무한도전> 위기론이 나올 때마다 보여주는 것처럼.

 

사실 50이 넘은 나이에 현역으로 여전히 예능의 중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경규의 대단함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말하는 것은 이렇게 뛰어난 MC가 향후 60에도 70에도 계속 현역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증언하는 걸 들어보면 이경규 만큼 프로그램 장악 능력이 뛰어난 MC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예능 MC의 힘이 점점 약화되는 요즘 더더욱 필요해진 덕목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진정성의 문제. 요즘 같은 리얼리티 시대에 진정성은 하는 것처럼 보이는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예민한 시청자들은 이제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진짜처럼 보이는 것인지를 단박에 눈치 챈다. 그런 점에서 이경규에게 시급한 것은 이미지라도 날방의 느낌을 진정으로 날려버리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계속 해서 변화해온 예능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거기 분명한 이경규의 자리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전설로 남기보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만들어진 관성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뛰어넘으려는 고통이 반드시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기만 한다면 이경규는 진정한 우리 예능의 기둥으로 추앙받을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일요예능, 늘어지는 4시간보다 촘촘한 3시간을

 

이러다 4시부터 시작하는 거 아냐. 이런 예감을 가졌던 분이라면 지금 현재 실제로 4시에 거의 가까워진 일요 예능 시작 시간대가 놀랍기만 할 것이다. 본래 두 시간 방송의 일요 예능은 이로써 거의 4시간 방송으로 확대됐다. 420분 시작 공지를 먼저 내버린 KBS <해피선데이> 때문에 MBCSBS도 방송시간을 앞당기기 시작했고, 지난주에는 방송3사가 모두 420분 편성을 공지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점입가경인 것은 이런 공지조차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KBS17분이나 앞당긴 43분에 방송을 내보냈고, SBS412, MBC418분에 방송을 내보냈다. 10분 정도야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17분이라는 시간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이렇게 되자 이번 주 SBS45, MBC410분 편성 공지를 내보냈다. KBS420분으로 시작 시간을 공지했지만 지금껏 해온 행태를 통해 보면 이것이 지켜질지는 실로 믿기 어려운 부분이다.

 

처음 이 편성전쟁의 시작은 KBS<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시작 시간대를 지난해 121일 편성 고지보다 13분 빠른 오후 442분에 방송하면서 시작됐다. 이후에도 조금씩 점점 시간대가 앞당겨지더니 지난 1월에는 아예 430분에 방송이 시작되었다. MBCSBS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방송 시작이 앞선다는 건 시청자들을 선점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과 광고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MBCSBS도 방송 시간대를 앞당기기 시작했다.

 

편성 경쟁이 지나치다는 여론이 생기자 KBS는 아예 지난 달 30일부터 오후 420분으로 또 MBCSBS는 같은 달 23일과 16일부터 오후 430분으로 방송시간을 변경 고지했다. 그리고 이 시간 역시 점점 앞으로 당겨지더니 420분으로 결국에는 45분으로까지 당겨지게 됐던 것. 이렇게 된 데는 KBS의 책임이 크다. 이 편성 꼼수 전쟁을 촉발시킨 것도 KBS이고, 3사가 합의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이 결렬된 것은 KBS측의 거부 때문이며, 최근에는 아예 공지된 편성시간까지 지키지 않고 있는 것 역시 KBS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PD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MBC 예능국에서는 지금이라도 방송3사가 모여 몇 가지를 합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하나는 지금처럼 예능 두 편을 한 프로그램으로 묶어놓은 것을 이제는 각각 나눠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방송 분량이나 시작 시간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 제작진은 점점 늘어나는 방송 분량이 주는 압박감을 토로했다. 이것은 제작도 제작이지만 시청자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했다.

 

5시부터 8시까지 하던 3시간도 사실 적은 시간은 아니다. 그런데 거의 4시간이라는 것은 지나친 양적인 팽창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4시간 동안 집중해서 예능 프로그램을 쳐다볼 수 있는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프로그램이 주는 몰입감은 따라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관에 가도 겨우 두 시간 남짓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제작진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니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똑같은 분량을 찍어와 방송을 한 시간 가까이 더 만든다는 건 아무래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간다. 고무줄처럼 늘리면 늘리는 대로 왜 시청자가 봐야 하는가.

 

드라마의 경우 72분 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실 방송 분량은 광고를 넣을 수 있는 편수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시간을 늘리면 광고도 더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방송 분량을 조금씩 늘리는 편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시청률에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금씩 시간을 늘리다보면 결국 프로그램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송3사에서 머리를 맞대고 일종의 협의를 한 것이 ‘72분 룰이라는 것. 물론 가끔 이 룰도 깨져 문제가 되지만 그래도 드라마판은 어느 정도 이 룰을 지키는 편이다.

 

이번 일요 예능 편성 전쟁 역시 그 해법은 드라마처럼 방송3사가 머리를 맞대고 어떤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동을 원하는 MBC, SBS와 달리 KBS는 협의 자체를 거부했다. 공영방송인 KBS에서 이런 독불장군식의 행보는 좋게 보일 수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에게도 일요 예능 4시간은 너무 피곤한 일이다. 시간은 줄여야 하고 또 두 개의 프로그램이니 각각 나누어 방영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토록 시청자를 위한 방송을 강조하는 지상파3사가 아니던가. 시청자들의 정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일밤'의 힘 알 수 있었던 이혁재 해프닝

 

개그맨 이혁재가 <세바퀴>에 출연해 <진짜사나이>와 <아빠 어디가>에 대해 언급한 일은 의외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물론 약간의 농담이 섞인 이야기였을 테고 따라서 이 정도까지 파문이 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얘기와 덧붙여 생각해보면 두 프로그램에 출연을 희망한다는 식의 멘트는 자신의 절실함을 표현한 말 그대로의 희망사항일 것이기 때문이다.

 

'세바퀴(사진출처:MBC)'

하지만 그럼에도 파문이 커진 것은 과거 술집 종업원 폭행사건 이후 급전직하한 그의 이미지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사건은 이혁재가 그간 보여주었던 건실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폭력예방 홍보대사로까지 활동했던 그가 연루된 ‘폭력사건’은 그 자체로 대중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사건으로 2년 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하지만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이혁재는 “<무한도전>의 수명이 1년 반”이라는 식의 멘트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것도 종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TV조선에서, <무한도전>이 MBC 파업에 동참하고 있을 때 던진 이 멘트는 실로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것은 TV조선의 MBC 파업에 대한 비아냥을 그대로 담은 듯한 인상을 주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색채를 떠나 같은 방송인으로서 제 아무리 자신이 급박하다고 해도 이런 식의 멘트는 상식적이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혁재의 이미지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진짜 사나이>와 <아빠 어디가>의 출연 희망을 언급한 것 역시 경솔한 행동이었다. 그것은 이혁재가 대중들에게 비춰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일밤>의 두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가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혁재에게 남아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잔상은 <아빠 어디가> 같은 청정 순수 프로그램에는 심지어 위협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지금 현재 <일밤>의 <진짜 사나이>와 <아빠 어디가>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말 예능의 최고 위치에 오른 것은 재미있고 신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꺼이 이들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싶은 시청자들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윤후의 안티카페가 생겼을 때 대중들이 모두 나서서 결국 카페를 폐쇄시키고, ‘윤후야 사랑해’로 검색어를 바꿔놓은 사건(?)은 대중들의 이 프로그램에 대한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것은 <진짜 사나이>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으로 김영옥 선생님에 이어 변희봉 선생님이 들어간 것에 대해 대중들의 호평이 이어진 것은, 거기 출연한 병사들을 자식처럼 여기는 대중들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가족과 형제를 위해 기꺼이 땀 흘리는 병사들에게 어찌 뭉클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맨발의 친구들>에서 강호동이 ‘위기설’을 얘기하고, <1박2일>에서 이수근이 프로그램의 위기를 얘기하게 된 것은 <일밤>의 힘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긍정적인 지지에서 비롯된다. 개그맨 이혁재는 물론 급박한 자신의 사정을 요즘 대세가 된 <일밤>을 거론하면서 강조하려 했던 것일 테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해프닝은 대중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그의 둔감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혁재가 만일 진정으로 재기를 하고 싶다면 먼저 대중정서를 읽어야 한다. 자신을 대중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멘트가 어떻게 읽힐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또한 타 프로그램을 언급할 때는 그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일밤>처럼 정서적인 지지를 받는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스타 MC 없는 <일밤>, 그 부활의 비결은?

 

<일밤>은 그간 스타 MC를 거의 쓰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였던 몇 년 전, 강호동이 <1박2일>에, 유재석이 <패밀리가 떴다>에 이어 <런닝맨>에 연달아 출연했을 때까지, <일밤>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여기에 <일밤>의 간판스타였던 이경규가 SBS <라인업>을 거쳐 KBS <남자의 자격>으로 합류하면서 <일밤>은 더 어려워졌다. <일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타PD인 김영희 PD를 내세워 <나는 가수다> 같은 새로운 예능을 실험하는 일이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스타급 MC가 프로그램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그 누구도 잡지 못한 <일밤>은 끝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트렌드도 서서히 바뀌었다. 먼저 바뀐 트렌드는 연예인 프리미엄이 점점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 징후가 먼저 보인 곳은 토크쇼였다. 한때 연예인들의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시청률을 끌어 모았던 토크쇼들은 점점 추락했다. 오히려 비연예인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반색하는 분위기였고, 차라리 일반인이 게스트로 나오는 프로그램을 더 애호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신변잡기가 식상해진 탓이다.

 

<1박2일>이 무려 40%의 시청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연예인 프리미엄이 분명했던 시절에 그들이 혹한기에도 야외에서 자고 일어나는 극단의 맨얼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야생’이라고까지 표현했던 <1박2일>이지만 그것도 <정글의 법칙> 같은 더 강한 야생이 나타나자 고개를 숙였다. 연예인 프리미엄이 사라지면서 몇 명의 연예인 MC가 고정으로 출연해 유사가족을 형성하고 캐릭터쇼를 반복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더 이상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중들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했다.

 

이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비연예인이 나오거나 연예인이 나오더라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거나(캐릭터가 아니라). 알다시피 전자가 <일밤>을 구원한 <아빠 어디가>이고, 후자가 <진짜 사나이>다. 결국 <일밤>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트렌드가 유리하게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스타 MC가 없는 관계로 연예인 프리미엄을 제외하고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계속 실험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회를 제공한 프로그램은 단연 <아빠 어디가>다. 물론 연예인이 등장하지만 <아빠 어디가>는 아이들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또 연예인이라는 위치가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김성주는 아나운서 김성주가 아니고, 성동일은 미친 존재감의 배우 성동일이 아니다. 그들은 민국이 아빠이고 준이 아빠일 뿐이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다큐 예능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계기이기도 했다. 물론 KBS에서 <인간의 조건>을 통해 다큐 예능은 그 가능성을 먼저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처럼 그것이 일요일 저녁 예능의 격전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미지수였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설정 없이 다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제작과 편집은 바로 그 연출의 조미료를 뺀 점 때문에 각광받는 의외의 수익을 얻었다.

 

<나 혼자 산다> 같은 독신 혹은 독거남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큐적으로 담는 예능이 호평을 얻게 된 것이나, <일밤>에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투입한 데는 바로 이 다큐 예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큐 예능이 보여주는 것은 연예인으로서의 모습이나 캐릭터가 아니다. <진짜 사나이>에서 김수로보다 샘 해밍턴이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것은 다큐 예능이라는 형식이 연예인을 어떻게 비추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마치 군대 들어가면 사회에서의 지위나 명성과는 상관없이 다 똑같이 시작하는 것처럼, 다큐 예능은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그간의 캐릭터와 무관하게 진짜 모습을 포착해낸다.

 

결과적으로 <아빠 어디가>가 13%대 시청률로 SBS <일요일이 좋다>와 1,2위를 경쟁하는 것이나, 이제 2회에 불과하지만 무려 9% 대의 시청률과 화제를 몰고 있는 <진짜 사나이>의 선전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같은 스타 MC 없이도 <일밤>이 부활한 비결? 그 답은 질문 속에 이미 들어있다. 스타 MC에 기대지 않고 연예인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는 것. 그것이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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