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우리들이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

늘 봐오던 풍경이라고? 그래서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MBC 새 교양 파일럿 프로그램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늘 봐오던 풍경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던 시댁의 풍경이 어째서 그리도 이상한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사랑과 전쟁>의 ‘불륜녀’ 역할로 많이 알려진 배우 민지영은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에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친정집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시댁을 간다는 그 부담감에 전날부터 뭘 입고 갈지 고민하고,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했던 민지영.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이바지 음식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도대체 이렇게 많이 음식을 준비하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시댁으로 가는 딸을 보며 엄마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왜 눈물을 흘렸는가는 시댁에 도착한 후 민지영이 금세 체감하는 그 공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치 남자들이 있는 공간과 여자들이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시댁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남자들이 두런두런 모여 술판을 벌이기 시작할 때, 며느리들(시어머니도 며느리다)은 음식 준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어머니는 첫 날은 그렇게 일하는 거 아니라며 며느리를 밀어내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어찌 시어머니가 동분서주하는 걸 보고만 있을까. 

이런 상황은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의 명절 풍경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으로 보여졌다. 남편이 일을 나가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에 어린 아들을 안고 무거운 짐까지 들고 홀로 나서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시댁으로 가는 길 보채는 아들을 달래가며 운전을 하는 모습이라니.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이런 일을 혼자 감당한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명절이니 제사니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시댁에 어렵게 도착했을 때 시아버지는 손주만 덜렁 안고 들어가 버렸고, 앉아 쉴 틈도 없이 바로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박세미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명절 음식들. 먹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걸 차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역이었겠나. 그러면서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며 과거와 비교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며느리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과연 진심으로 좋아졌다 생각할 수 있을까.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지만 며느리는 이방인이었다. 시누이는 그토록 챙기면서 어째서 며느리는 그렇게 부릴까. 보채는 아이 챙기며 음식 준비하고 시댁 식구들 심부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 며느리는 임신 8개월이었다.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남편은 생각도 없이 자신이 사왔다는 술을 꺼내 자랑을 늘어놓고, 어렵게 잠을 청하자마자 새벽부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깨운다. 제사상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제사가 끝났으면 일찍 친정으로 보내주면 좋으련만 시댁 식구들은 어떻게든 더 붙잡아두려 혈안이다. 억지로 윷놀이 하는 걸 지켜보며 웃는 척 하고 있지만 며느리의 마음이 어디 편할 수 있을까. 어째서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토록 없을까. 시어머니도 한 때는 며느리가 아니었던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일상처럼 치부되어 왔던 시댁의 풍경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시금 들여다본다. 그랬더니 드러나는 건 이 풍경에 담긴 놀라울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다. 남자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어떤 일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그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려니 했지만 그걸 확인해보니 더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며느리의 일상. 그 일상에 깊이 공감하며 같이 아파하는 시간은 그래서 굉장히 가치 있는 일로 다가온다.(사진:MBC)

‘예쁜 누나’, 팍팍한 일상 손예진, 그래서 더 간절해지는 설렘 정해인

어째서 그저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평범한 농담을 나누며 집까지 바래다주는 그 일상을 보여줄 뿐인데 이토록 설레는 걸까. 새로 시작된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는 누나 동생의 관계처럼 등장하지만 벌써부터 왠지 모를 멜로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 보이는 눈빛과 작은 손짓들까지 누나 동생의 관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이야기는 그 겉면만 보면 그리 특별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즉 남자친구와 헤어진 윤진아와 그를 위로해주는 절친 서경선(장소연) 그리고 그의 동생 서준희가 자연스럽게 누나 동생 관계로 엮어져 있고, 윤진아와 서준희의 관계가 조금씩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다. 흔히 멜로에서 보게 되는 우연적이거나 운명적 만남 같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만남도 없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흔한 만남 같은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남다른 설렘으로 다가오게 되는 건 윤진아가 겪고 있는 일상의 피로함이 안판석 감독 특유의 디테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만남이 곤약 같다’며 이별을 통보하는 남자친구에, 가맹점 관리를 하며 벌어지는 업무 스트레스들과 술자리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들까지 마치 우리가 겪는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디테일들이 담기면서 윤진아가 가질 삶의 피로를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공감대와 그에 대한 일종의 연민 같은 시선을 고스란히 대리해주는 인물이 바로 서준희다. 

오픈 기념 선물이 도착하지 않아 가맹점으로부터 호된 곤욕을 치른 윤진아는 사실 그 실수가 남호균 이사(박혁권)가 결재를 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지만 그걸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잘못으로 떠안았다. 그것이 회사생활이기 때문이다. 더러워도 버티기 위해서는 상사의 실수를 덮고 자신의 실수로 떠안는 것.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상한 윤진아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서준희가 있다. 밥 사달라는 핑계로 만난 윤진아를 만난 서준희는 점심에 “금기를 깬다”며 와인을 시켜 마시고 계산도 자신이 한다. 그러니 지친 윤진아는 금세 점심 한 끼에 마음이 풀어진다. “덕분에 맛있게 분위기도 밥도 잘 먹었다. 금기도”라는 윤진아의 말에 “맛을 봤으니 윤진아 이제 큰일 났다”고 하는 서준희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그의 존재가 윤진아에게 이미 특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사들의 성희롱이 난무하는 회식 자리의 피곤을 그대로 떠안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또 일을 하는 윤진아는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춘다. 마침 클럽에 놀러간다던 서준희의 이야기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았을 테고, 그렇게라도 자신을 위로하는 몸짓을 해보고 싶었을 터다. 그런데 그 순간 윤진아를 다시 찾아온 서준희가 그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저 시선을 주고 따뜻한 미소를 짓는 것뿐이지만 그 장면에 시청자들은 설렐 수밖에 없다. 피곤한 일상을 누군가 바라봐주는 그 따뜻한 시선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설렘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 제목처럼 멜로가 일상에 닿아 있다. 그들의 멜로는 엄청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보여주는 판타지적인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루어질 수 없어 목숨을 거는 운명적 사랑도 아니다. 그저 ‘밥 잘 사주는’ 일상에서부터 비롯되어 생겨나는 사랑의 감정을 잔잔한 디테일 속에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설렘은 깊어진다. 손에 닿을 듯한 일상의 공감이 보다 강력한 현실감을 주기 때문이다.(사진:JTBC)

“나랑 놀아요”, ‘키스 먼저’가 말하는 일상의 가치

“원치 않는 일이면 좀 쉬는 게 어때요. 나도 시간을 내 볼 테니까 나랑 놀아요. 우리 못 놀고 살았잖아요.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남들 하는 거 우리도 해봐요. 그만 열심히 삽시다 우리.”

“자러 올래요?”에 이은 “나랑 놀아요.”인가.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감우성)이 툭 던진 그 말에 안순진(김선아)의 마음이 촉촉해진다. ‘놀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그 말에 담겨진 마음의 무게가 느껴져서다. 

베테랑 스튜어디스로 일하다 퇴직한 안순진이 굳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건 “열심히 일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의 친구인 미라(예지원)가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소개받았다는 것 때문에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그게 싫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손무한이 툭 던지는 “그만 열심히 삽시다 우리”라는 그 말이 얼마나 가슴에 콕콕 박혔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런 일상적인 말들이 남다른 느낌으로 전해지는 건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지점이다. “자러 올래요?”라고 묻고 거기에 어떤 의도를 파악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네”라고 말하는 그런 지점에서 느껴지는 특별함. 일반적으로는 육체적 욕망이 먼저 떠오르는 그 말이 몸이 아닌 마음을 반응시키는 특별함이 이 드라마 속에는 있다. 

이런 특별함이 더해지게 된 건, 손무한과 안순진이라는 조금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치가 얹어져서다. 10년 전 아이를 잃고 이혼까지 하는 그 아픈 상처를 겪고 수면제 없이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안순진에게 “나랑 놀아요”라는 말은 그 어떤 청혼 프러포즈보다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손무한의 청혼이 진심이 아니라 가여워서라는 강석영(한고은)의 말에 안순진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나도 그 사람이 가여우니까. 가여워서, 혼자인 게 두려워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더라고요.” 보통 사랑이 아닌 동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실망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워낙 많은 상처를 겪고 나이든 안순진에게 그런 ‘가여운 마음’은 어쩌면 ‘사랑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랑이 아닌 죄책감 때문이라는 모호한 강석영의 말에 안순진 역시 손무한을 10년 전 동물원이 아닌 그 이전에 만난 적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되지만 그런 불안감 또한 결혼을 막지는 못했다. 또 손무한이 말기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는 백지민(박시연)에게도 안순진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그 사람과 “더 놀고 싶어서”였다. “지금 돌이키면 나 그 사람이랑 못 놀아. 그 사람이랑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책 읽어주는 그 사람 목소리 더 듣고 싶어.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 시선 속에 조금 더 살고 싶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일에 치여 살아가는 삶. 그런 삶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 죽어라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게 우리 보통의 사는 모습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 후에야 그 중요한 것이 일상 속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하다못해 잠을 자는 일이나 노는 일 같은 너무나 쉬워 보이는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더더욱.

“일생이 후회인데, 내일 후회하더라도 오늘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일이 아니라 오늘.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일상의 행복. 그런 것들을 <키스 먼저 할까요>는 툭툭 건드리며 꺼내놓는다. 하지만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던지는 그 이야기들은 남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누구나 도달하지만 흔히들 부정하며 살아가는 삶의 끝을 상정했을 때에만 나오는 일상의 가치들이 거기에는 반짝반짝 빛난다.(사진:SBS)

지식이 바꾸는 일상, <알쓸신잡2>가 보여준 인문학의 쓸모인문학이 이토록 즐겁고 흥미진진한 것이라는 걸 이만큼 극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을까. 물론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강연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인문학을 주로 강단 위에 세웠던 것과는 달리 tvN <알쓸신잡>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여행지를 정하고 그 곳을 여행하며 느낀 소회들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그 과정은 우리에게 인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가를 보여줬다.

총정리편으로 미방송분을 편집해 마련한 <알쓸신잡2>의 마지막회는 그간 이 프로그램이 다녔던 곳과 그 곳에서 나눈 지식수다들을 전체적으로 관망하게 해주었다. 그 세세한 내용들이 갖고 있는 지식의 즐거움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을 푹 빠지게 했었고, 그래서 그 시간이 언제 이렇게 훌쩍 지나가버렸는가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몰입했다. 가을에 시작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어느새 도달해 돌아보니 새삼 이번 편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들이 어떤 것이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보인다.

아마도 이번 시즌2에서 가장 다른 색깔을 가져온 인물은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여행을 하거나 우리가 일상을 겪으며 그냥 지나치곤 했던 건축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자주 쓰던 ‘시퀀스’라는 말은 이제 일반 시청자들도 ‘공간과 건축물을 경험’하면서 염두에 두게 된 단어가 되었다. 일종의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간 하나하나를 겪는 그 과정들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떤 목적성을 띄고 있다는 것. 그걸 들여다보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일상 속 건축물들을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뇌 과학자인 장동선 박사가 조곤조곤 들려주던 뇌 과학에 대한 지식들도 빼놓을 수 없다. 유현준 교수가 건축물이라는 외부 공간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시했다면, 장동선 박사는 인간이 하는 어떤 행동들이 갖는 의미들을 새삼 생각해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시해줬다. 하지만 장동선 박사가 이번 시즌2에 부여한 건 그러한 지식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많은 지식들이 주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결국 “살면서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를 묻는 것이 인문학이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온 인물로서 그가 주는 온기는 지식의 궁극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함께 한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특유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에 갈수록 능숙해지는 방송의 묘를 더해 <알쓸신잡2>가 균형 잡힌 프로그램이 되게 해주는데 일조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모든 걸 이야기하기보다는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더 많이 보였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역시 음식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역사 관련 이야기들을 보태 프로그램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사실상 두 사람의 배려와 주고받음이 있어 새롭게 들어온 출연자들과의 조화로운 수다(?)가 가능할 수 있었다.

시즌1도 그렇지만 시즌2도 역시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새로운 시각이 하나씩 열린다는 걸 <알쓸신잡2>는 보여줬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에 즈음해 돌아본 시즌2를 통해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시즌3를 기대하게 되고 거기에는 또 어떤 다른 인물이 들어와 우리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새해에 새로운 얼굴들을 <알쓸신잡3>로 만날 수 있기를.(사진:tvN)


짧지만 큰 울림, ‘세상에서’ 같은 리메이크 더 없을까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맛없는 된장국 먹을 때, 맛있는 된장국 먹을 때,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잘 때, 잠 깰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님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그 놈 대학갈 때, 정수 대학 졸업할 때, 설날 부침할 때, 추석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이제 떠날 것을 직감한 인희(원미경)가 남편 정철(유동근)에게 자신이 언제 보고 싶을 것 같냐고 묻자, 남편은 그렇게 하나하나 떠오르는 장면들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전부 다 아내가 그리울 것이라는 걸 말하는 것이지만, 그 그리움의 순간들은 무슨 대단한 일들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함께 해왔던 일들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르고, 앞으로는 많은 날들을 혼자 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리게 다가온다. 

다음 날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은 인희를 발견한 정철은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카메라는 그들이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벽에 붙어 있는 바다에서 가족이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집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창 밖 풍경, 나란히 놓여 있는 신발, 널어놓은 빨래들, 함께 앉아 있던 의자, 남편이 읽어주던 책, 바다에서 사진 찍던 그 날의 기억을 훑어나간다. 마치 떠나는 인희가 그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듯.

tvN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담으려 한 것이 바로 이것일 게다. 죽음에 이르러 누군가의 한 삶이라는 것이 이처럼 소박한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시한부의 삶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그 시선으로 인해 짧은 4부작임에도 큰 울림을 전해 주었다. 

사실 1996년에 만들어진 작품이고 그러니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지금의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의구심으로 다가왔던 리메이크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픈 몸에도 치매를 앓는 노모를 걱정하는 자기희생적인 주부의 면면들은 윗세대들에게는 큰 울림을 줄 수 있었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리메이크 작품이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노희경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 더더욱 간절해지는 그런 가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리메이크작으로 남은 건 4부작이라는 압축미 때문이었다. 본래 1996년도에도 MBC 창사 35주년 특집 드라마로 4부작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이지만, 그 압축적인 스토리는 리메이크작에도 한층 힘을 실어주었다. 만일 이 아름답지만 슬플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장편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해보라. 이만한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또 하나 거둔 성과는 단막극이 가진 그 짧은 형식만의 가치다. 갈수록 단막극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이 작품은 어째서 단막극이어야 더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짧은 인희의 삶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었듯이.

향후에도 이 작품처럼 거장들의 명작을 짧은 리메이크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미니시리즈나 장편이라도 단막극 형식으로 압축적인 리메이크를 통해 재탄생한다면 아마도 그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명작을 리마인드하고 단막극의 가치도 살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같은 명작 단막극 리메이크가 더 나올 수 있기를.(사진:tvN)

‘감빵생활’ 박해수, 첫 회부터 빠져드네 이 캐릭터

뭐 이렇게 따뜻한 감방 이야기가 있나. tvN 새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리가 감방을 소재로 한 장르물들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그런 클리셰들을 뒤집는다. 동생을 성폭행하려는 괴한을 제압한 것이 뭐 그리 큰 죄일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슈퍼스타 프로야구선수인 김제혁(박해수)은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 판결을 받아 구치소에 수감된다. 일단 감방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 자체가 우리가 흔히 뉴스 사회면에서 발견하는 그런 사건이 주는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다.

판결을 받으러 법정으로 가는 길 형이 태워준 차를 타고 가는 김제혁은 자신의 삶이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맑은 날 기상예보가 말하는 눈이 오겠냐는 생각을 깨버리고 눈이 내리듯, 금세 빠져나올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길게 느껴질 감방생활이라는 터널 속으로 김제혁은 빠져 들어간다. 

구치소에 수감된 김제혁에게 벌어지는 일들도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예상을 뒤집는다. 구치소 풍경은 마치 갖가지 인물들이 모여 난장판이 되곤 하는 파출소 풍경을 닮았고, 수감되기 전 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비인권적인 몸수색은 의외로 인권을 고려한 몸수색을 바뀌어 있다. 이러한 클리셰 뒤집기는 그가 신참으로서 감방에 처음 들어가 고참들에게 당할 것으로 생각됐던 신고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신고식이라며 눈을 가리고 손목을 그어 그 피를 나눠 마실 것처럼 꾸몄지만 사실은 김칫국물을 떨어뜨려 그를 놀려먹었던 것. 

김제혁이라는 감방이 낯선 인물의 시점으로 들여다보는 감방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감방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장르물들이 하나의 상투적인 소재들로 활용됐던 그런 내용들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따뜻한 물에 샴푸를 하고, 소고기뭇국을 먹으며, 원하면 사과를 얻어먹을 수도 있는 곳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보여주는 감방의 정경이다. 

그래서 김제혁은 이 낯선 감방생활에서 고충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갑자기 구치소로 들어오게 되어 집에 택배로 온 전복과 문을 열어놓고 나온 일과 보일러를 켜놓고 온 일, 카드 값 같은 것들을 더 걱정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리와는 유리된 세계로 생각되던 감방이 사실은 우리 일상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곳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이렇게 감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클리셰를 여지없이 깨버리고 그곳 역시 일상적인 공간이라고 보여주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로 다가온다. 물론 같은 방에서 지내는 할아버지가 ‘묻지마 살인범’이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지만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물론 수감자에 대한 교도관의 체벌 같은 폭력은 없지만, 조주임(성동일)처럼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권력을 유용한 부정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감을 준다. 

그런데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도대체 왜 감방을 이토록 보통의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그려내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래서 엄청난 일이 또 벌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또 그 곳 역시 하나의 일상적 공간이라는 걸 통해 우리네 삶에 공존하는 일상과 비일상을 말하려는 건 아닐까. 

김제혁이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그는 야구는 잘하지만 일상생활은 어딘가 모자라는 듯 습득력이 느린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충격적이어도 다소 무디게 덤덤히 그걸 받아들이는 인물이며, 그러면서도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나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조금 모자란 듯 보이지만 돈을 요구하는 교도관에게 뇌물을 주기보다는 감방 동기의 어머니 수술비를 대신 내주는 그 행동에서 이 캐릭터가 굼뜨긴 해도 명쾌한 자기만의 사리분별을 갖고 있고 이를 거침없이 행동에 옮기는 인물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요즘 사람 같지 않은 훈훈함은 아마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그려내려는 감방으로 축소된 살풍경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고,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꿋꿋이 지켜나가며 살아가는 김제혁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사실상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이자 주제 그 자체처럼 보인다. 그래서 왜 신원호 PD가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박해수라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세웠는지 이해가 된다.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을 통해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라면 오히려 캐릭터에 어떤 선입견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별로 없는 하얀 도화지 같은 박해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김제혁이라는 인물 그대로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단 첫 회만으로 작품이 가진 인간적인 훈훈함을 그 무뚝뚝한 표정을 통해 드러내줄 정도로.(사진:tvN)

‘고백부부’, 가족을 위한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릴 때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왜 맨날 죄송하고 미안하고...” 최반도(손호준)의 이 말 한 마디는 어째서 이리도 아프게 다가올까. 마진주(장나라)를 찾아가 그간 속으로 억누르고 눌렀던 마음속의 아픔이 담겨져 있어서다. 장모님의 임종을 자기 때문에 마진주가 지키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가장 큰 회한으로 남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마침 한 아이를 집단 구타하는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을 뿐.

 금토드라마 <고백부부>는 최반도와 마진주의 이혼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이혼의 계기가 된 일도 알고 보면 오해가 빚은 것이었다. 제약회사 영업을 하는 최반도는 병원장인 박현석(임지규)의 내연녀까지 관리해주며 살아가고 있었고, 마침 병원장 아내에게 들통 날 위기에 처한 내연녀를 데리고 나오다 찍힌 사진이 불륜인 것처럼 오해하게 했던 것. 자신은 가족을 위해 간 쓸개 빼놓고 술자리 시중 들어가며 살아왔을 뿐인데, 마진주는 바로 그런 삶 때문에 불행하다고 토로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진주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불행하게 느낄 일들이고, 그것은 또한 최반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의 토로가 특히 더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의 말처럼 그는 언제나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또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가족을 위해 밖에서 뛰고 또 뛰는 샐러리맨들의 일상일 게다. 일 때문에 잘 해주지 못하며 살아왔어도 가족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을 테니.

‘당연한 건 없었다’는 부제가 들어간 <고백부부> 10회는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게 됐던 것들이 사실은 그 어느 하나도 당연한 건 없었다는 걸 새삼 되새겼다. 아픈 마진주를 위해 약 하나를 사러가도 그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 약을 사는 일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었고, 생리통 때마다 꼼꼼히 생리대와 약을 사다 주는 일도 일상이 되어버렸다. 생리통으로 아파하는 아내의 허리를 밤새 두드려주는 일도.

이런 일들은 일을 하면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병원에 약을 넣기 위해서 마치 개인비서나 되는 것처럼 갑질을 참아내는 일들 또한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그러니 병원장이 내연녀를 만나기 위해 모텔을 잡는 걸 자기 카드로 결제하는 일도 또 그 내연녀를 관리하는 일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살려고 아등바등하며 살다 보니. 

물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최반도의 이야기가 특히 가슴 아프게 다가온 건 그것이 그저 드라마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당연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어느새 그것들이 당연해지게 된 그 순간 느껴질 수밖에 없는 많은 샐러리맨들의 허전함과 쓸쓸함 그리고 아픔 같은 것들이 거기에는 담겨져 있다. 

아마도 잘못된 건 이들 부부들이 아니라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게 만드는 세상이고 현실일 것이다. 영업이라고 하면 죽어라 술을 마셔대야 하고 당연히 갑과 을이 나뉘어져 갑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해줘야만 하는 그런 현실. 그러니 그 불행한 일터의 삶은 고스란히 가정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에서 당연하지 않은 일들은 그렇게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최반도의 눈물과 토로는 그래서 이 비틀린 현실에 숨죽이며 살아왔던 이들의 아픔이 녹아 있었다.

(사진출처:KBS)

‘마녀의 법정’, 사이다 정려원과 반가운 김여진의 등장만으로도

“내가 부장님을 흥하겐 못해도 망하겐 할 수 있죠. 어차피 나도 못 들어가는 특수부 부장님도 못 들어가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며)웁스 쏘리. 죄송한 김에 야자타임도 잠깐 하겠습니다. 야 오수철. 만지지 좀 마. 너 왜 내가 회식 때 맨날 노래만 하는 줄 알아? 니 옆에 앉기만 하면 만지잖아. 그리고 굳이 중요한 일도 아니면서 굳이 귓속말 하면서 귀에 바람 좀 넣지마. 무슨 풍선 부니? 아 맞다. 너 처음에 회식할 때 내 얼굴 뽀뽀하면서 딸 같아서 그랬다고? 어우 이걸 친족 간 성추행으로 확 그냥.”

'마녀의 법정(사진출처:KBS)'

일상화 되어 있는 성추행과 성폭력. KBS 새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이 첫 회에 꺼내놓은 화두는 그 시작부터 강렬하다. 성추행과 성폭력을 막고 그런 짓을 저지른 자들에게 단죄를 해야 할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이라니. 회식 자리에서 찾아온 기자의 다리를 주무르고 어깨에 손을 얹고 피해서 나온 그 기자를 쫓아가 강제로 입맞춤을 하는 부장 검사. 자신도 그런 일상적 성추행을 당해왔지만 상사이기 때문에 덮고 넘어가려 했던 마이듬(정려원)은 그렇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분명히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곤 그간 억눌렀던 공분을 터트린다. 

결국 이 일로 마이듬이 좌천된 부서가 예사롭지 않다. 검찰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인 여성아동범죄 전담부서인 것. 거기서 그가 만나게 되는 여진욱(윤현민) 검사는 소아정신과 출신으로 타자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남다른 공감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 역시 부장검사의 성추행 사건에 피해자 쪽을 대변하다 이 부서로 오게 되었고, 그 부서를 직접 만든 인물은 민지숙(김여진) 부장검사로 마이듬의 엄마가 과거 성고문 사건을 폭로하려던 그 검사다. 

<마녀의 법정>이 첫 회의 포진만으로도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해졌다. 그것은 여성과 아동 관련 범죄를 본격적으로 세우는 법정드라마다. 부장 검사마저도 그게 범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듯 일상화된 폭력. 그래서 더더욱 잘 보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그 어떤 범죄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건들을 이 드라마는 정조준하고 있다. 

많은 법정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검사는 최근 드라마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직업일 게다. 이 모든 것이 적폐청산에 대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법정 드라마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이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범죄들이다. 심지어 그것이 범죄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던 사건들. 

이런 점은 <마녀의 법정>이 그 어떤 사이코패스가 등장해 연쇄살인을 벌이는 드라마들보다 더 강렬한 이유다. 그런 사건들보다 더 빈번하게 일상 속에, 통상적인 관례라는 이름으로 혹은 그것이 당연한 사회생활이라고 치부되며 남모르는 피해자들을 양산해왔던 사건들이기에 더 피부에 와 닿는 것. <마녀의 법정>은 그래서 마이듬과 여진욱이라는(이 두 성의 조합이 마녀다) 남다른 검사들이 마녀처럼 사회의 악과 싸우는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와 사이다 검사로서의 면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정려원도 반갑지만,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한동안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김여진이 돌아왔다는 건 더더욱 반갑다. 게다가 이들이 KBS 새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 또한 반갑다. 그토록 많은 성폭력이나 성추행, 아동학대 같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음에도 어째서 이제야 이를 정면에서 다루는 드라마가 나왔는지 그게 의아할 지경이다. 물론 드라마가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것이 범죄인가는 확연히 보여줄 거라는 점에서 <마녀의 법정>에 거는 시청자들의 기대는 적지 않다.

여성, 정착, 일반인... 알고 보면 ‘청춘불패’ 안에 다 있었다

KBS <1박2일>이 폐지됐던 <청춘불패>의 추억을 되살렸다. 지난 2009년 시작해 1년 넘게 시즌1이 방영됐고 2011년에 시즌2가 방영되다 결국 폐지됐던 <청춘불패>다. 사실 시즌2에 와서는 본래의 색깔이 많이 사라져 아쉬움을 주었지만, 강원도 홍천 유치리에서 정착해 농촌의 삶을 사계에 걸쳐 보여줬던 시즌1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1박2일> 당시 <청춘불패>에 출연했던 김신영, 나르샤, 구하라 등을 출연시켜 그 때의 추억이 남아있는 유치리를 방문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비닐하우스에는 그 때 마을 잔치도 벌이고 게임도 했던 기억들이 사진들 속에 담겨 있었고, 출연자들이 머물며 찍었던 빈농가에는 직접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이 여전했다. 그리고 <청춘불패>에서 스타가 됐던 마을 어르신 로드 리(이기욱)는 이들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처럼 반겨주었다. 로드 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막걸리 한 잔으로 발그레진 얼굴로 출연자들을 기분 좋게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1박2일>이 1회성으로 방문한 <청춘불패>의 유치리지만,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한 시청자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박2일> 멤버들과 짝을 이루고 게임을 하는 모습 속에서 <1박2일> 멤버들을 쥐락펴락하는 김신영이나 나르샤, 구하라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시청자들에이 <청춘불패>를 다시 되살릴 순 없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프로그램이 가진 기획적인 면들을 두고 보면 <청춘불패>는 여러모로 앞서갔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행 버라이어티가 유행했던 시절에 <청춘불패>는 정착형 예능을 시도했다.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삶에 그대로 녹아드는 걸 택했던 것. 그런데 알다시피 요즘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여행만큼 정착해서 보여주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된 건 일시적으로 이벤트적인 여행보다는 훨씬 더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정착의 풍경이 리얼리티 예능으로서 시청자들이 더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별다른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소소함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요즘의 시청자들이 더 원하는 것이 됐다. 물론 <청춘불패>가 방영되던 당시만 해도 이건 너무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게다가 <청춘불패>에는 역시 요즘 예능들에 빠질 수 없는 일반인들의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었다. 로드 리는 이렇게 프로그램에 들어오면서 스타가 됐던 일반인이었다. 그 이외에도 그의 친구인 유치리의 전 이장 왕구 아저씨(이왕구)도 있었고 그 분들의 부인들이나 동네 어르신들도 <청춘불패>의 출연자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했다. 

무엇보다 <청춘불패>가 가치 있게 여겨진 대목은 요즘에 찾아보기 힘든 여성 출연자들이 중심이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너무 남성 출연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요즘의 편향된 예능 프로그램의 추세 속에서 <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1박2일>로 인해 다시금 재조명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청춘불패>는 지금의 예능 트렌드에 오히려 더 잘 어울렸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신혼일기2', 신혼과 육아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충돌

tvN <신혼일기2>는 사실 나영석 사단이 만든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별로 힘이 없는 편이다. 첫 회 시청률이 그나마 3.1%(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건 나영석 사단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신뢰감이 우선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회가 방영되고 의외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더니 2회에는 2%로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신혼일기2(사진출처:tvN)'

장윤주는 시청자들에게도 이미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괜찮은 호감을 가진 톱모델이자 방송인이다. 연하지만 꽤 배려심 깊은 남편 정승민도 그 행동 하나 말 하나가 주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여기에 웃는 모습이 예쁜 귀여운 딸 리사 역시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게다가 제주도에서 그들이 지내는 집은 낙조에 산책 나가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놀라운 바다와 어촌의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다. 저런 곳이라면 단 하루라도 지내보고 싶을 정도다. 

각각의 요소들을 떼어놓고 보면 <신혼일기2>에 현재 보이는 시청자들의 시큰둥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리사를 챙겨야 하는 육아의 부담이 있지만, 부러움이 묻어나는 그 그림 같은 영상들이 줄곧 펼쳐지는데 어째서 반응은 영 신통찮을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신혼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것과 이번 장윤주네 가족이 보여주는 것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다른 관점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이들의 신혼 속으로 쑥 들어온 ‘육아’라는 현실이다.

물론 육아 자체의 고충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공감 가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아내가 운동을 하러 간 사이 독박육아를 하게 된 남편이 겪는 시간은 혹여나 혼자 육아를 해본 부부라면 충분히 공감 갈 내용이다. 또 외식 같은 걸 할 때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하고 아이를 챙겨야 하는 고충 같은 것도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신혼일기2>가 그리고 있는 육아가 일상의 육아라기보다는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실제로 제주도의 이곳이 이들이 사는 터전이 아니고 잠시 프로그램을 위해 머무는 곳이라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들은 그래서 마치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것을 ‘육아의 고충’이라고 얘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 관점은 실제로 일상에서 육아를 접하고 있는 부부에게는 공감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신혼일기> 시즌1에서 구혜선과 안재현이 지낸 곳도 그들이 실제 사는 공간이 아니라 강원도에 있는 렌트를 한 집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것이 ‘육아’ 같은 일상의 틈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혼이라는 것이 이미 경험한 이들은 알다시피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달달한 판타지가 존재한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게다. 그러니 그들의 여행지에서의 신혼일기는 그 자체로 리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신혼일기2>가 붙여낸 육아와 여행지는 정서적 충돌을 일으킨다. 이렇게 육아 같은 예민한 문제가 진짜처럼 보이지 않게 되면, 그것은 자칫 일반인들과의 정서적 괴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저들은 저렇게 육아를 하면서도 집 앞만 나가면 기가 막힌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실제 일상의 육아에 지친 이들에게는 그것이 그저 남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출산 후 몸을 만들기 위해 갖가지 운동을 계속해왔다는 장윤주의 이야기는 그래서 대단하다고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나는 할 수 없는 박탈감 같은 뉘앙스로 다가온다. 

차라리 일 때문에 육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그럼에도 육아로 지치기도 했을 테지만) 그것을 잠시 벗어나기 위해 제주도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런 이야기라면 조금은 수긍이 갔을 수 있다. 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의 육아 현실이 이만큼 첨예한 일이 아니라면 그나마 이해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신혼일기2>가 그 알콩달콩한 그림으로 ‘육아의 현실’을 얘기하는 건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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