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이러니 적폐청산이 어려울 수밖에

“이원장이 왜 그렇게 죽었냐구? 그걸 밝혀달라구? 그래. 이상엽이. 네가 보고를 해? 원장님한테? 환자가 죽었다니까 원장님이. 덮자 그러셨다구? 내 두 눈 똑바로 보고 다시 얘기해봐. 나 원장님께 보고했다? 김정희. 너. 네 환자 죽었을 때 어떻게 했어? 누가 네 대신 유족 찾아가서 흠씬 두들겨 맞았지? 어떻게 그 와중에 코빼기 한 번 안 비칠 수 있었냐? 서지웅이. 너 요새도 여자환자 만져? 간호사한테 문자 계속 보내? 네 와이프가 원장님께 울고불고 매달려서 너 겨우 안 잘린 거 너 알고 있어? 야 장민기. 누가 네 가족부터 이식수술 해주래? 원장님이 영원히 모를 줄 알았냐? 이 중에 이보훈이 피 안 빨아먹은 인간 어딨는데? 주경문이. 넌 혼자 고고한 척 관심 없는 척 하면서 원장이 챙겨주는 건 잘도 받아먹더라. 네가 정말 자리에 욕심이 없어? 이보훈한테 왜 심근경색이 왔을까? 너, 너, 니들 모두 니들이 갉아먹었잖아? 늙어가는 심장 한 웅큼씩 한 웅큼씩 니들이 필요할 때마다 떼 갔잖아. 근데 뭘 물어?!”

마치 연극의 한 대목을 보는 것만 같은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의 이 장면에서 김태상 전 부원장(문성근)은 거기 앉아 있는 의사들 하나하나를 지목하며 그 과실들을 끄집어낸다. 마치 공개 재판이라도 하듯 이보훈(천호진) 원장이 김태상 전 부원장의 집에서 죽은 일에 대해 예진우(이동욱)가 추궁하지만, 그는 원장의 죽음에 모두가 유죄라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과연 몰랐을까. 자신들에게도 저마다의 죄가 있다는 것을.

결코 떳떳한 인물이 아니지만 김태상 전 부원장의 말은 아프게도 틀린 게 없다. 그래서 그 아픈 일침 앞에 그 누구도 뭐라 반박하지 못한다. 한참을 듣다 못한 예진우가 그에게 묻는다. “스스로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대리수술도 그래서 하신 건가요? 다른 분들과 형평성을 맞추려고?” 타인의 죄를 끄집어내지만 그렇다고 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명백히 한 것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죄가 없는 이들은 없다. 모두가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잘못을 떠안아준 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이보훈 원장이었다.

상국대학병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 장면은 확장해서 보면 우리네 국가와 정치, 사회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보훈 원장이 김태상 부원장의 집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그 장면은 우리네 정치사의 안타까운 죽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을 김태상 같은 인물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인 양 단죄하는 일 역시 우리가 정치사에서 흔히 봐왔던 일들이다.

잘못된 행위를 한 그들을 ‘적폐’라 부르고 그것을 ‘청산’하려 하는 일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진정 적폐가 모두 사라지게 될까. <라이프>가 김태상 부원장의 아픈 일침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 적폐는 김태상 부원장 같은 외부의 적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 시스템 속에서 저마다의 ‘적폐’에 일조한 면이 있다. 그것까지 끄집어내고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다는 것.

<라이프>가 다루는 인물들이 때론 인간다워 보이면서도 때론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타인을 아프게 만드는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건 작가가 가진 인간관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공과 과를 모두 함께 갖고 있다. 적폐는 바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적폐’ 또한 청산하지 않는 한 잘못된 일은 또 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째서 적폐청산이 어려운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외부의 적폐를 제거하는 일만이 아니라 내 안의 적폐 역시 끄집어내 깨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공간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가 이런 우리 사회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의 근원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사진:JTBC)

‘황금빛 내 인생’, 가진 자들의 위선 고발하는 서민 자매들

최도경(박시후)이 “자꾸 신경 쓰인다”고 말할 때 서지안(신혜선)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얘기를 들어주는 그 얼굴에 감정은 1도 섞여있지 않다. 최도경은 내놓고 자신의 호의와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서지안은 안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또 이런 호의도 사실은 위선적이라는 걸. 최도경은 입만 열면 자신은 해성그룹의 오너가 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해진 혼사도 사업 계약하듯 당연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결국 가진 자의 위선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서지안은 알고 있다. 

호의라면 상대방이 그 배려를 받아야 호의라고 할 수 있지만, 최도경이 내미는 호의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재력을 가졌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실천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애가 그 호의의 실체라는 것. 진짜 호의를 베풀 것이라면 먼저 서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최도경은 ‘젠틀맨’이라는 자신의 허상에만 붙잡혀 있다. 서지안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유다. 서지안은 그 허상뿐인 가진 자들이 호의라며 내미는 화려한 식탁과 옷과 돈과 차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것.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의 가족들은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나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라는 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을 밀어내며 그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면, 서지수는 해성그룹의 재벌가의 딸로 들어가 뼛속까지 가진 자의 허위로 똘똘 뭉쳐 있는 노명희(나영희)와 그 세계를 공격하는 중이다.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고, 마치 그들은 먹는 것조차 다른 걸 먹는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려 드는 노명희에게 서지수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서지수를 해성그룹의 딸로 바꾸기 위해 그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방에서 치워버리자 굳이 쓰레기차까지 쫓아가 그걸 가져와서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버리는 건 예의냐”고 따진다.

자신이 엄마라고 강변하는 노명희에게 “낳기만 하면 엄마냐”고 되묻고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갈 테니 방 하나 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노명희에게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자신을 길러준 부모들을 단죄하려 했었다는 걸 들은 서지수는 대노하며 “그럴 자격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화를 낼 자격은 “자신 뿐”이라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이 서지안과 서지수라는 평범했던 서민층 자매가 사건을 겪으면서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지안은 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했던 ‘속물근성’을 발견하고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결국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된 것.

서지수는 늘 순응하며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잘 적응해 밝게 살아왔지만 이 일을 겪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의외로 당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늘 언니의 그늘 아래서 커왔지만 이제 스스로 서야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가 둘이 생긴 상황 속에서 결국 중요해진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지안과 서지수는 이 아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서지안은 그토록 희구했던 대기업 입사가 허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공일 같은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서지수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하려 했던 제빵의 길을 접지 않는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을 할 때만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황금빛’의 허구에 한때 눈이 멀었던 이들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저마다 ‘내 인생’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금빛’ 인생일 것이니.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금수저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현실이지만, 그 금수저가 가진 위선을 이토록 신랄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도 없을 게다. 그 어떤 사회극보다 신랄해진 주말드라마라니. 서지안과 서지수의 일침이 은근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KBS)

<낭만닥터>도 피해가지 않는 멜로의 족쇄

 

사랑해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강동주(유연석)가 윤서정(서현진)에게 불쑥 그렇게 말하자 윤서정은 오글거림을 못 참겠다는 듯 그러지 마라하고 정색한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윤서정. 그래서 병원사람들이 눈치를 챈 것 같다며 두 사람은 짐짓 대판 싸우는 모습을 가짜로 연출하기도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드라마 첫 회부터 강동주의 마음이 윤서정에게 있었다는 건 다소 급작스럽게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그러니 이런 달달한 상황이 언젠가 시작될 거라는 건 시청자들도 알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달해진 <낭만닥터 김사부>에 남는 아쉬움은 뭘까.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사회성 같은 것들이 이 달달한 멜로에 의해 희석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제목이 지시하고 있듯이 김사부(한석규)라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의사의 다소 낭만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이 귀기울여야할 이야기들을 그 기획의 의도로 갖고 있다. 그간 김사부가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답답한 현실에 대한 속 시원한 일갈이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는 돌담병원이라는 현실의 축소판 같은 공간을 통해 기득권 세력들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고발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벌어진 위기 상황을 통해 제대로 된 콘트롤 타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요즘 같은 답답한 시국에 이런 이야기들은 그 울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낭만닥터 김사부>도 역시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피해갈 수 없는가 보다. 그것이 이야기상 개연성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이 멜로보다는 좀 더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펼쳐나가기를 바라는 건 왜일까. 사적인 멜로가 주는 달달함이 지독한 현실을 접하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동주와 윤서정의 달달한 멜로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느슨해졌다. 긴박하게 굴러가던 돌담병원의 응급실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물론 강동주와 도인범(양세종)이 수술 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보다 강동주와 윤서정의 멜로 상황과 그걸 눈치 채고는 눈을 찡긋 해주는 오명심(진경)이나 기묘한 눈빛을 던지는 장기태(임원희)의 다소 코믹스런 장면들이 더 많이 채워졌다.

 

이렇게 되면서 바로 드러나는 건 김사부의 분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김사부는 신회장(주현)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심장수술을 접으려고 하고 그러다 결국 신회장 스스로가 수술 강행을 결정함으로써 상황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강동주와 윤서정 멜로의 급 전개는 김사부를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게 했다.

 

물론 이건 잠시 쉬어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몰아치며 긴박감 넘치는 사건들을 통해 통쾌한 김사부의 일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너무 느슨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멜로는 당연히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이 드라마가 지향하려는 방향성을 매회 잊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이 중요하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조금은 쉬어가는 달달한 멜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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