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의 폭주, 어째서 막장이 떠오를까

 

SBS 월화사극 <대박>이 폭주하고 있다. 그 폭주는 이인좌(전광렬)의 폭주를 닮았다. 그가 연령군(김우섭)을 찾아가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이 사극이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걸 말해준다. 연령군이 누군가.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비록 서자지만 숙종이 그토록 아끼던 자식이 아닌가. 그런데 일개 이인좌 같은 인물의 폭주에 의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너무 과한 허구다.

 

'대박(사진출처:SBS)'

이인좌라는 인물 역시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는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이런 설정은 지나치다. <대박>은 이인좌라는 인물의 힘이 중요한 게 사실이지만, 너무 이 인물을 크게 그려놓았다. 연잉군(여진구) 따위는 애송이로 바라보는 존재이며 심지어 한 나라의 임금인 숙종과도 대적하는 엄청난 존재다. 이제는 왕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찔러 죽이는 희대의 인물로 그려졌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허구조차도 개연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박>의 여주인공은 담서(임지연). 그런데 담서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고 또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사실은 이인좌라는 걸 알고 있는 담서는 복수를 하려던 인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숙종의 명을 받고 이인좌를 죽이러 온 김체건(안길강)의 앞을 그녀가 막아선다. 그가 자신을 제자로 삼은 것만은 진심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그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기꺼이 김체건의 칼에 맞아 죽으며 이인좌를 살려달라고 말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물의 일관성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걸 보고 역시 이인좌를 처단하기를 그토록 원해왔던 백대길(장근석)이 구생패를 던지며 갑자기 그를 살려달라고 김체건에게 말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갑자기 살인검 활인검이야기를 꺼내며 담서가 목숨을 걸고 부탁한 일인데 그를 살려달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일관성이 없는 캐릭터의 행보다. 모든 비극이 이인좌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대길이 담서의 죽음과 부탁(이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지만)으로 이렇게 이인좌를 살려 달라 하는 대목이 이해될 수 있을까.

 

앞서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대길의 아버지 백만금(이문식)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며 돌아오는 이야기에서도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여주인공으로서 훨씬 더 많은 역할이 가능했을 담서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대목에서는 작품이 너무 쉽게 인물을 죽이고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박>에도 일종의 데스노트같은 것이 있는 것인가.

 

다른 게 막장이 아니다. 충분히 납득될 만큼의 개연성이 없는 것, 인물의 일관성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궁극에는 인물들이 마치 작가의 노리개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런 전개가 바로 막장이다. 이런 막장이 목적하는 건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아니라 자극이다. 충격적인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줘 주목을 끌려는 것이지만 이런 식의 자극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박>의 시청률은 결국 8.5%(닐슨 코리아)로 월화극 꼴찌로 전락했다. 시청률에서 유리한 사극이고, 장근석, 여진구, 전광렬, 최민수 같은 쟁쟁한 캐스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건 결국 폭주하는 이야기 때문이다. 연기는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개연성을 잃어가고 있다

<대박>의 전광렬과 최민수에 가린 장근석과 여진구

 

SBS 월화드라마 <대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최근 들어 사극의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인 경우는 낯설지 않다. <육룡이 나르샤>가 조선 개국의 이야기에 여섯 용을 등장시킨 건 한 주인공의 관점이 아니라 여러 관점들을 교차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대박>은 그 주인공이 명확하다. 숙종(최민수)과 숙빈최씨(윤진서) 사이에 태어나 어린 시절 저자거리에 버려진 대길(장근석)이 그 주인공이다.

 

'대박(사진출처:SBS)'

이 점은 <대박>의 포스터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대길 역할의 장근석이 정중앙에 서 있고 바로 뒤에 훗날 영조가 될 연잉군(여진구)이 그리고 그 뒤에 숙종과 이인좌(전광렬)가 서 있다. 무엇보다 대길이 연잉군과 공조해가며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얽혀있는 연원들을 풀어가고 그런 운명을 만든 이인좌에게 복수하려는 내용이 줄거리라는 점에서 <대박>의 주인공은 이 여정을 이끌어가는 대길이 분명하다.

 

이렇게 <대박>의 주인공이 대길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굳이 강조하는 까닭은, 이 사극이 그러나 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장면들만 놓고 보면 대길의 분량이 많고 그와 연잉군이 공조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대길이 이인좌와 맞서기 위해 육귀신(조경훈)과 골사(김병춘)를 하나하나 도장 깨기하듯 투전판 깨기를 하고 나면 그것이 결국은 이인좌가 이미 다 예상한 손안의 게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알고 보면 이인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길이라는 청춘이 지금까지 고난과 성장을 거듭해온 그 이면에는 모두 이인좌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인좌는 범 새끼가 아니라 범이 되라며 대길을 칼로 찔러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이인좌에 대한 복수심으로 대길은 성장하고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 복수의 행보를 보이는데 그것이 결국은 모두 이인좌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그의 예상 시나리오대로의 결과라는 것. 드라마는 세상을 통찰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인좌라는 특별한 인물이 한 시대를 어떻게 농단했는가를 다루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사극에서 이처럼 어른의 농단에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청춘의 모습은 대길만이 아니다. 연잉군 역시 금난전권 폐지같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고 싶지만 그 때마다 그는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아버지인 숙종에게 불려가 세상이 네 뜻대로 그렇게 될 듯싶으냐?”라는 식의 무시를 당한다. 그리고 연잉군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걸 숙종은 거의 모두 꿰고 있으며, 심지어 그를 도발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이 판을 움직이려 한다.

 

결국 <대박>의 이야기는 그래서 전면에 대길과 연잉군이 갖가지 시대의 어둠과 싸워나가는 모습을 그리지만, 그 실제적인 대결은 숙종과 이인좌라는 그 배후의 인물들에 의해 계획된 것들처럼 보인다. 대길이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육귀신 같은 인물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통쾌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결국 이인좌의 생각대로의 결과라는 걸 아는 순간 맥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대박>의 이야기는 마치 숙종과 이인좌가 두고 있는 체스판에 대길과 연잉군, 나아가 담서(임지연) 같은 청춘들이 하나의 말로서 등장하고 있는 듯한 구도를 만들고 있다. 이런 구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사실 대길과 연잉군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야기가 엉뚱하게도 숙종과 이인좌의 캐릭터가 강해지면서 그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의심할 수 있는 건 초반 장희빈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숙종의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 다른 캐릭터들이 주목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최민수와 전광렬이라는 배우의 강렬한 연기가 어떤 면에서는 장근석과 여진구의 존재감마저 덮어버린 면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러 연기자들의 연기가 조합이 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드라마에 있어서 이런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독주는 바람직한 건 아니다.

 

세 번째는 이 구도를 작가가 의도했다는 것이다. 숙종과 이인좌라는 어른을 대변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대길과 연잉군 같은 청춘들이 처음에는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다가 후에 이를 뒤집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을 수 있다는 것. 이 관점으로 보면 <대박>은 최근 <육룡이 나르샤><사도> 같은 여러 사극들이 다루었던 어른과 청춘의 대결구도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주인공인 청춘들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깨버린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점이다. 현실에 더 적응되어 있고 판세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노회한 어른들은 청춘들을 때론 도발하고 때론 다독이면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려 한다. 그것은 <대박>이라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드라마의 중견연기자와 젊은 연기자 사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주인공인 청춘들이 숙종이나 이인좌 같은 어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나아가 이들과 좀 더 명쾌하게 대적하는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극을 보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이다. 이 답답함은 물론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지만, 아마도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는 조금 다른 판타지를 원했을 수 있다.

 

고구마보다는 사이다를 더 요구하는 요즘, 이런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도는 시청률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청춘의 답답함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은 이 사극이 가진 미덕일 것이다. 대길과 연잉군이 아니 이들을 연기하는 장근석과 여진구의 안간힘이 느껴질수록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건 그래서일 게다

<상류사회>, 사랑과 계급의식에 대한 솔직한 시선

 

넌 네가 원하면 사람들 마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선민의식 있으니까. 넌 내 마음 못 가져. 네 계급의식 용납할 수 없어. 넌 널 뛰어넘을 수 없어. 이지이와 결혼 못해. 집안이 반대하고 누가 말려서가 아냐. 네 자신이 그걸 용납 못해. 네 계급의식 절대 뛰어넘을 수 없어. .”

 


'상류사회(사진출처:SBS)'

야망을 가진 서민의 자제인 준기(성준)가 친구이자 직장상사인 재벌가 아들 창수(박형식)에게 던지는 이 말 속에는 <상류사회>라는 드라마가 가진 사랑이야기가 왜 뻔한 스토리에 머물지 않는가를 잘 드러낸다. 준기는 자기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동시에 우정과 사랑에 있어서도 솔직한 마음을 보여준다.

 

즉 계급의식이란 우리가 순수하게만 생각하는 사랑과 우정 관계마저 지배해버리는 어쩔 수 없는 힘이라는 것을 준기는 왜곡 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야망에 필요해 창수에게 접근했다. 그것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는 의도적으로 재벌가의 딸인 윤하(유이)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그렇게 접근했다고 해도 지금의 우정과 사랑이 거짓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 그는 인정 있고 순수한창수에게 친구로서의 우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또한 착하고 바른 윤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 그는 의도가 불순하다고 과정이 계속 불순한 건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창수에게 계급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서민의 딸인 이지이(임지연)와의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집안의 반대가 문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그 계급이 갖는 선민의식을 버릴 수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이가 창수의 엄마를 만난 후 창수에게 이별을 통보하자 그 역시 헤어지자고 말한다. 이것은 두 사이 존재하는 계급의식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사랑이 계급의식에 무조건 무릎을 꿇을까. 갑자기 내리는 비에 이런 날을 헤어지는 거 아니다라고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비를 피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한편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지만 진짜 사랑하게 된 준기의 입장과는 달리, 그 불순한 의도를 알아버린 윤하는 과연 그 계급의식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즉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순수한 면을 가졌지만 의외로 사업가인 아버지의 냉철함을 가진 인물이 바로 윤하다. 상류사회의 그 숨 막힘으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지만 그녀 역시 뿌리 깊은 데는 계급의식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류사회>가 틀에 박힌 이야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이들의 사랑을 다루는데 있어서 서민이든 상류층 자제든 그 안에 존재하는 계급의식의 문제를 공평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준기처럼 야망을 가지고 접근했다고 해도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지이처럼 계급의식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만났어도 현실에서 그걸 맞닥뜨리고는 절망할 수도 있다. 또 윤하처럼 재벌가 자제지만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막연히 판타지로 가지고 있다가 그 상대방이 그 서민들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고, 창수처럼 뭐든 자신이 결정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계급의식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치관을 바꾸려면 먼저 너 자신을 넘고 다른 사람을 넘어야 돼. 다른 사람을 넘고 자신을 못 넘으면 평생 자기비하 속에 살아야 돼.” 창수에게 건네는 준기의 이 말은 우리가 어찌어찌해 신데렐라가 재벌가 왕자님을 만나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통상적인 드라마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과연 그들은 그 후에도 행복했냐고. 그들은 과연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는 계급의식을 먼저 넘어선 사람들이었느냐고.



사랑과 우정 그리고 욕망, <상류사회>의 세 바퀴

 

정체를 알 수가 없는 드라마다. 처음 구도만을 보면 그저 그런 재벌가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안을 살짝 들여다보면 흔한 신데렐라도 없고 흔한 재벌도 없다. 재벌가 딸이지만 천덕꾸러기 신세로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학대당해온 윤하(유이). 그녀는 살기 위해서 재벌가 딸임을 숨긴 채 마트 아르바이트를 한다. 부유하지 못해도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그녀의 숨통을 겨우 틔워주기 때문이다.

 


'상류사회(사진출처:SBS)'

윤하의 절친인 지이(임지연)는 마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지만 누구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 그녀 앞에 나타난 재벌가 자제 창수(박형식) 앞에서도 그 조건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가 전형적인 신데렐라로 그려지지 않는 건 오히려 창수가 그 앞에서 당당하고 자격지심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지이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창수는 재벌가 자제지만 우리가 늘상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런 갑질의 대명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성까지 완벽하게 갖춘 완벽한 인물도 아니다. 그는 친구이자 부하직원인 준기(성준)에게 때론 친구처럼 다정다감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직장 상사와 부하의 관계를 확인시키기도 한다. 어찌 보면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재벌가 자제지만 지이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은 그에게서 어떤 순수함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느껴지게 한다.

 

준기는 친구지만 상사인 창수를 보좌하면서 억눌린 을의 정서를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상류사회에 진입하려는 욕망의 화신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윤하가 재벌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하고는 그걸 질책하는 창수에게 혼테크가 나쁜 거냐고 되묻는다. 어렵게 살아온 부모의 삶을 보며 살아온 탓에 상류사회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을 갖게 된 인물이다.

 

이처럼 주요 인물들이 전형적인 듯 보여도 그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야기 또한 어디로 흘러갈지 전혀 예측하기 어렵다. 드라마는 준기의 비뚤어진 성공에 대한 욕망을 다루는 듯 흘러가다가도, 그와 윤하와의 사랑이 그저 가식만은 아닌 듯 보여지고, 지이가 창수를 만나 벌어지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이다가도 그런 빈부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 그녀와 윤하의 우정을 다룬다. 준기와 창수는 우정처럼 보이면서도 상사와 부하 사이의 긴장감이 엿보이기도 하고, 윤하는 전혀 기업 승계에 대한 욕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철두철미하게 그걸 준비하는 사람처럼도 보인다.

 

한 길 사람 속을 알기 어렵다고 했던가. <상류사회>는 우리가 그 흔한 재벌가 드라마들을 통해 갖고 있던 전형적인 인물의 틀을 깨버린다. 대신 이들은 저마다 양가적인 모습을 동시에 가진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빈부와 무관할 것처럼 당당하지만 막상 신데렐라 놀이에 즐거워하는 지이, 불행한 재벌가의 삶에서 벗어나 지이 같은 보통의 삶을 추구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의 일에도 능력을 숨기고 있는 윤하, 그저 방탕한 재벌가 자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는 창수, 그리고 비뚤어진 욕망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 따뜻한 심성이 살짝 드러나는 준기.

 

인물들이 입체적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가 되려다가도 우정을 다루는 드라마가 되고 그러다가 갑자기 성공과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오빠의 갑작스런 사고에 의심을 품는 윤하의 이야기는 또 어떤 파국을 향해 갈지 예측하기가 어렵고, 준기의 숨겨진 욕망이 드러났을 때 그것은 또 윤하와 지이에게 어떤 충격으로 다가올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상류사회>는 뻔한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다. 도무지 그 갈피를 잡기가 어려운 관계와 이야기 전개는 이 드라마가 왜 점점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상류사회>는 그래서 첫 회만 보면 결말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역시 소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상류사회>라는 정체 모호한 드라마는 그걸 말해주는 것만 같다



<상류사회>, 그건 사랑일까 욕망일까

 

상류사회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선망이자 판타지다. 서민들이라면 도무지 가질 수 없는 화려하고 부유한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이걸 드라마로 다루면 주로 신데렐라가 나오는 멜로가 나온다. 다른 하나는 계급적인 시각이다. 죽어라 열심히 살고 있는데 누구는 점점 더 잘 살고 누구는 점점 못 살게 되는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걸 드라마로 다루면 사회극이 나온다. 그렇다면 아예 제목부터 <상류사회>인 이 드라마는 어떤 시각을 보여주고 있을까.

 

'상류사회(사진출처:SBS)'

<상류사회>는 이 두 가지 패턴화된 시각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회장 아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서민 중의 서민으로 보이는 알바생 이지이(임지연)는 그를 쫓아다니는 재벌가 아들 유창수(박형식)에 대해 무조건적인 호감을 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자들은 다 그러냐며 밀어내고 대신 서민의 아들이라는 최준기(성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온 재벌가 아들과 서민 캔디의 조합하고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한편 재벌가 딸인 장윤하(유이)는 신분을 속인 채 마트에서 알바를 한다. 절친인 이지이에게조차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는 그녀는 창수가 지이에게 접근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재벌가들의 그저 그런 여성편력이라 생각하는 것. 이지이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는 그녀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에 오히려 로망을 느낀다.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엄마와 달리 그녀는 소박한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이것 역시 흔히 보던 재벌가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상류사회에 대한 계급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일까. 윤하네 집안만을 보면 그런 것처럼 보인다. 윤하가 그토록 서민적인 소박한 삶에 대한 로망을 느끼는 건 권위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집안의 분위기 때문이다. 가족이라기보다는 사업체에 가까운 그 곳은 결혼조차 기업 간의 계약처럼 다뤄지는 곳이다.

 

하지만 또 다른 상류사회의 일원인 창수는 이런 시각과는 또 다르다. 창수는 물론 일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친구인 준기에게조차 분명한 상사와 부하의 위치를 드러내지만, 자주 두 사람은 친구관계의 끈끈함을 드러낸다. 창수가 자신과 같은 상류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조금씩 지이 같은 서민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이 두 관계는 애매모호하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우정인지,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의 감정인지 아직까지 모호한 것.

 

<상류사회>가 그리는 건 우리가 상류층에 대해 갖고 있는 밑그림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은 맞지만 청춘남녀의 사랑은 계층과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서로 다른 계층이 사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을 그저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스파크들과 감정들이 우리의 통상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뛰어넘어 그려지는 건 <상류사회>가 가진 괜찮은 덕목이다.

 

최근 들어 가면코드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등장하고 있다. 가면이 이렇게 트렌드가 된 건 일종의 편견을 없애주거나 편견을 벗어버리기 위함이다. 이 드라마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역시 그 가면을 벗기고 드러내는 상류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면이 있다.

 

편견의 가면을 벗으니 드라마는 상류사회를 소재로 다루었던 그 어떤 드라마들도 잘 보여주지 않던 새로운 관계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윤하와 지이의 사랑 그 이상의 우정이 주는 감동 같은 것이다. 윤하의 실체를 모르는 지이는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준기가 윤하에게 관심을 보이자 선선히 친구에게 자신이 준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친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것. “유일한 친구면서 가족이야 넌.” 이 대사는 그래서 가족조차 기댈 곳이 되어주지 않는 윤하의 마음을 울린다.

 

사실 재벌가와의 사랑을 얘기하면서 쉽게 재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욕망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것이 실제일 것이다. <상류사회>가 어째 지금까지 봐왔던 재벌가 이야기들과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건 그 클리셰와 편견의 가면을 훌쩍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민낯에서 발견되는 의외의 감동이나 관계 같은 것. 그것이 <상류사회>가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상투성을 깨는 묘미, 이게 바로 하명희 작가의 힘

 

어찌 보면 너무 뻔한 제목이다. <상류사회>. 드라마들이 지금껏 가장 많이 다뤄왔던 그 소재. 그래서 상투성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재다. 서민들의 선망과 호기심, 궁금증을 자극하려면 서민적인 이야기보다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다루라는 건 드라마계에 오랫동안 내려왔던 불문율 같은 것이기도 하다.

 

'상류사회(사진출처:SBS)'

<상류사회>는 그 캐릭터들의 구도 또한 익숙하다. 전형적인 재벌가 남자인 창수(박형식) 같은 인물도 있고 남다른 실력으로 그 상류사회에 편입하고픈 욕망을 가진 준기(성준), 그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살아가면서 신데렐라를 꿈꾸기도 하는 지이(임지연)나 재벌가 안에서도 차별을 받는 윤하(유이) 같은 인물도 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캐릭터들이다.

 

보통 이 정도 되면 기대할 게 별로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뻔한 소재에 뻔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이니. 하지만 여기에는 이 모든 걸 뒤집어엎는 변수가 있다. 그것은 이 뻔해 보이는 드라마의 작가가 다름 아닌 바로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주목받은 하명희 작가라는 점이다. 불륜이라는 뻔한 소재를 완전히 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떠올려보라. 상투성을 가져와 그것을 뒤집는 건 하명희 작가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상류사회>의 첫 회를 다시 돌이켜보면 그 안에 무언가 다른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윤하 같은 인물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재벌가 사람들과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녀는 그 상류사회의 삶에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녀의 엄마인 혜수(고두심)는 제왕적인 남편 밑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 그녀는 딸 윤하에게 자신에게 쌓인 화풀이를 해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윤하가 신분을 숨긴 채 지이 같은 치열한 삶을 사는 청춘과 친구사이로 지내는 건 그가 상류사회에서는 도무지 마음을 열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걸 말해준다. 윤하의 캐릭터는 흔하디 흔한 상류사회의 삶을 통해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를 질문한다.

 

창수와 준기는 사적으로는 친구지만 공적으로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다. 이 미묘한 관계는 아마도 사적인 사랑이 얽히게 되면서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상류사회에 편입하고픈 욕망과 사적인 사랑에 대한 욕망의 부딪침은 준기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놓는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청춘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상류사회>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도 그 삶이 고착화된 인물들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외적 환경과 무관하게 순수와 욕망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요컨대 적어도 하명희 작가에게는 그래서 뻔한 구도와 소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대감을 더 높여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 뻔한 구도와 소재의 상투성에 갇혀 있는 것을 이 작가가 깨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과연 <상류사회>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1회보다 2회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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