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헬조선을 넘나드는 타임리프가 보여주는 것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그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껏 조선과 현재를 뛰어넘는 타임리프가 주로 보여줬던 건 그 다른 환경을 마주한 인물들의 멘붕 코미디에 가까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서로 공존하는 그 장면들이 주는 흥미로움 또한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명불허전>이 하려는 이야기의 진짜 알맹이는 아니었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그 진짜 메시지가 드러난 대목은 허임(김남길)이 두칠(오대환)의 형을 치료해주지만 결국 주인 양반에 의해 맞아 죽게 되는 그 에피소드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어 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놓아도 천출들은 양반의 명 하나로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비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과거 허임은 이미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동막개(문가영)의 어머니를 치료해주지만 그녀 역시 노비라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던 것. 

이러한 신분의 벽은 허임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신분과 상관없이 생명은 귀하다 여겨온 의원이 그였다. 밤마다 아픈 노비들을 몰래 치료해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자신의 노력이 아무 소용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자주 거론하는 ‘헬조선’이라는 그 표현이 이 곳은 표현이 아닌 진짜 현실이 되는 세상이니. 

그래서 그 곳을 뛰어넘어 현재로 넘어온 허임은 과연 좋은 세상에서 마음껏 생명을 살리는 의원이 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양반과 노비로 나뉘는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이 곳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허임은 한방병원에서 VIP들의 병을 고치며 잠시 쾌재를 부르지만 또한 가난해 길거리로 내몰리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노숙자들을 또한 보게 된다. 거대한 한방병원의 VIP들과 길거리 노숙자들이 다른 생명으로 비교되는 현실. 헬조선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명불허전>이 과거로 회귀하는 그 시점이 하필이면 임진왜란이 터지는 그 때라는 건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지점을 명확히 한다. 선량한 백성들은 선조가 도망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최연경(김아중)은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책임을 가져야할 권력자들의 도주가 결국은 백성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암담한 현실이라니.

<명불허전>이 담고 있는 두 개의 헬조선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이 타임리프 설정을 그저 트렌드가 아닌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장치로 바라보게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그것이 어째 다른 풍경이 아니라는 것. 굳이 두 개의 헬조선에서 허임과 최연경이 각각 의원과 의사라는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예사롭지 않은 설정으로 다가온다. 생명에 어디 신분이 있고 빈부가 있으며 계급이 있겠는가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두 개의 헬조선을 오가며 허임과 최연경이 보는 그 암담한 현실과 그래서 그들이 각성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명불허전>의 본색이다. 좌절하거나 분노하고 한탄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이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그 길은 과연 이들에 의해 제시될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이 완전한 해결방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의 노력들이 우리네 보통의 서민들에게 주는 위안과 위로는 그 자체로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JTBC 드라마의 신기원 ‘품위녀’, 무엇이 그리 특별했을까

욕심쟁이 드라마다. <품위 있는 그녀>는 결국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 마지막 회 12%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하며 JTBC 미니시리즈 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백미경 작가는 전작인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성공시키며 JTBC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품위 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하지만 이 작품이 얻은 건 단지 시청률만이 아니었다. 스릴러 장르에서부터 사회 풍자극, 치정극 같은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을 한 드라마 안에 녹여놓은 완성도 높은 대본이 있었고, 김희선과 김선아를 중심으로 빈틈없는 연기의 향연이 있었다. 보통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가고,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삼박자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드라마라고 할 때, <품위 있는 그녀>는 그 기준에 모두 부합한 드라마였다. 

<품위 있는 그녀>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무엇보다 강남 부호들의 위선적인 삶을 들여다본다는 쾌감이었다. 겉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치정과 돈 관계로 얼룩진 구질구질함이 이 드라마가 폭로해낸 것이었다. 욕망으로 얼룩진 그 삶이 실체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허망한 것이라는 걸 백미경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통찰해냈다.

단지 폭로의 쾌감만 있었다면 <품위 있는 그녀>가 가슴까지 어떤 울림을 주는 드라마가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박복자(김선아)라는 인물이 이 세계에 들어와 파란을 일으키는 이야기지만, 드라마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 인물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담아냈다. 그토록 꿈꾸던 진정한 품위와 우아함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파국을 맞는 그 삶을 통해 우리네 서민들이 갖는 욕망과 그 욕망의 끝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러면서 어떤 길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그 세계로부터 탈주해 나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냈다.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는 돈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평상시에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품위 있는 그녀’의 캐릭터를 통해 드러냈다. 그것이 진정한 ‘품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이처럼 자못 무게감이 있는 메시지를 백미경 작가는 지극히 대중적인 작법들을 통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이미 첫 회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박복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마지막 회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작가가 공언한 것처럼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서야 그 진범이 밝혀지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진범이 누구인가가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장치가 있어서 시청자들은 끝까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누가 범인인가를 추측하게 만드는 그 장치를 통해 여러 용의자들(?)의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도 했다. 마지막 회의 또 다른 떡밥으로서의 풍숙정 김치의 정체는 그 실체가 조미료였다는 게 밝혀짐으로써 어떤 통쾌함을 안겨주면서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맛도 모르면서 비싸게 산다고 진짜 맛이 아니라는 것. 품위가 그러하듯이.

<품위 있는 그녀>는 지금껏 JTBC 드라마가 추구해온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중성까지 확보해낸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남았다.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연기와 연출... 좋은 작품의 교과서 같은 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리얼' 김수현·설리 노출조차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괴작

이 정도면 어쨌든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게 되지 않을까. 영화 <리얼>의 평점은 4,5점대에 머물러 있다. 보통 영화가 개봉 후 바로 이런 평점을 받게 되면 흔히들 ‘평점 테러’를 염두에 두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제목 그대로 ‘리얼’ 반응이 그렇다. 영화에 따라붙는 댓글들에서 좋은 평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 

사진출처:영화<리얼>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이 두 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버티기가 못내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몇몇 관객들은 헛웃음이 섞인 “대박”이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물론 그건 영화가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 반대의 의미로서의 ‘대박’이다. 물론 관객 중에는 자기 돈을 내고 들어왔지만 못내 못 버티고 중간에 박차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리얼>은 시에스타라는 카지노 오픈을 앞둔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나누는 첫 시퀀스까지만 해도 흥미로웠다. 두 개의 인격이 그에게 존재하고, 그래서 다른 인격인 르뽀 작가를 제거하기 위해 의사는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식물인간에게 그 르뽀 작가의 인격을 집어넣은 후 살해함으로써 장태영이 하나의 인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식물인간에게 투입된 르뽀 작가의 인격이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서 두 명의 장태영(보스 장태영과 르뽀 작가 장태영)이 서로 자신이 리얼임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려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고 또 실제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은 마치 원펀맨(원펀치맨)처럼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그러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영화는 마약에 의한 환상인 것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더 큰 그림 안에서 들여다보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태영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두 인격의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재력을 통해 성형수술을 하고 시에스타의 지분 절반을 갖게 된 르뽀작가 장태영은 보스 장태영의 짝퉁처럼 인식되지만, 차츰 그 자리를 장악해나가고 결국 짝퉁과 실제가 뒤바뀌는 상황까지 나간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누가 리얼이고 누가 짝퉁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들어간다. 

시에스타라는 카지노가 의미하는 자본이라는 상징과, 카지노 칩에 들어있는 마약이 의미하는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욕망의 힘. 그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영화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자못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의도일 뿐, 영화는 그 의도를 관객에게 전혀 설득시키지 못한다. 이렇다 할 내적 개연성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는 그래서 그 표피적인 것들만 남게 되었다. 마약, 노출, 섹스, 폭력이 그것이다.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에 110억이라는 제작비만으로도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게 만드는 영화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된 내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게 되자 결국 남게 된 건 자극들뿐이다. 하지만 그 자극들조차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도드라져 보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전라의 노출이 있어도 그다지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사실 김수현의 팬이라고 해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들이 전면에 나오지 않고 대신 김수현과 설리의 파격 노출 같은 이야기만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1인2역을 소화해내는 김수현의 연기력이 아깝지만 어쩌랴. <리얼>은 그 과함이 독이 되어 문제작이 되지 못하고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괴작으로 남게 되었다.

'쌈' 박서준·김지원, 갑질 향한 시원한 돌려차기 위해

도둑을 잡았는데 오히려 도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게 한다? 전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네 현실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1천만 원 호가의 시계를 훔쳐 나오다 최애라(김지원)에게 발각되자 이 진상 VIP는 자신의 구매능력을 내세워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도둑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매출을 올려주는 VIP 고객이기에 상사는 도둑 잡은 최애라에게 사죄를 하라고 한다. 돈이면 다 되는 씁쓸한 세상의 한 자락이 그 풍경에 잡힌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는 그 청춘들이 몸담고 있는 공간이 의미심장하다. 최애라가 일하고 있는 백화점은 특히 갑질 고객의 행패가 종종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며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물건이 있고 가격이 매겨져 있고 그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고객에 따라 VIP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백화점이란 공간은 자본으로 재구성된 현대판 신분제를 재현하는 곳이다. 

최애라의 더럽혀진 무릎을 보며 분노하는 고동만(박서준)은 “왜 도둑 잡은 애한테 상은 못줄망정 사과를 하라고 하냐”며 소리친다. 아마도 그 분노는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분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범죄행위까지 눈감아주는 자본의 갑질 횡포라니.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위해 나서준 고동만에게 최애라는 오히려 화를 낸다. 당장 월세가 걱정인 그녀지만 얼떨결에 회사를 나오게 된 그녀는 그깟 무릎 꿇는 일이 대수냐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 속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심경이 담겨있다. 

백설희(송하윤)는 홈쇼핑 계약직 상담원이다. 회식자리에서 그녀는 고기를 잘라주느라 정작 자신은 잘 챙겨먹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그걸 도와주기는커녕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심지어 고기를 너무 잘 자르니 앞으로 회식자리에는 꼭 함께 하자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녀는 오래도록 김주만(안재홍)과 사귀며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새로 입사한 부잣집 딸 인턴이 자꾸 신경 쓰인다. 김주만에게 애정공세를 쏟는 그녀 앞에서 백설희는 자꾸만 의기소침해진다. 

이런 감정은 갑자기 나타나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는 의사 박무빈(최우식) 앞에 선 최애라도 마찬가지다. 고급 자동차로 그녀를 에스코트 해주고 영화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사주지만 어쩐지 최애라는 그게 너무 불편하다. 어느새 그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그녀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백설희가 느끼는 것처럼 최애라 역시 가진 자들 앞에서 위화감을 느끼며 주눅이 든다. 

사실 가진 것이 많거나 적다고 누가 누구를 함부로 대한다거나,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비교되는 현실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딛는 청춘들에게는 절망감을 주는 일이다. 어쩌다 가진 것에 의해 직업도 나아가 그 사람의 존재의 가치까지도 규정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쌈마이웨이>가 담고 있는 청춘들의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갑질 사회의 장벽 앞에서 절망하고 있다. 

고동만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격투기를 하겠다 마음먹는 대목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응원하게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짠한 면이 있다. 하필이면 격투기장이라는 설정은 아마도 가진 것 없는 고동만 같은 청춘이 몸뚱어리 하나로 현실과 맞설 수 있는 상황을 이 공간이 잘 표징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어디 격투기장 이라고 해도 이 갑질 현실의 그림자가 없을까. 고동만은 결국 김탁수(김건우)의 교활한 함정에 빠져 오른 링에서 피를 흘리고 무너져 내린다. 

이처럼 힘겨운 현실 속에서 그나마 이 청춘들이 의지하는 건 서로에 대한 마음이다. 고동만은 박무빈을 만나고 다니는 최애라를 걱정하고, 최애라는 링에서 쓰러진 고동만을 보며 마치 자신이 당한 듯 아픈 표정을 짓는다. 백설희는 힘겨운 현실 앞에서도 일편단심 김주만을 믿으려 하고 김주만은 불안해하는 백설희를 꼬옥 안아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풍경은 짠하면서도 예쁘기 그지없다. 

<쌈마이웨이>의 이 청춘들은 과연 갑질 하는 세상에 속 시원한 ‘돌려차기’를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너무나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서 이 청춘들의 한 방은 그다지 힘을 발휘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에 던지는 외침이 주는 공명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그렇게 아프기 때문에 서로의 사랑이 공고해지는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의 마음도.

고소영과 조여정, 과연 세상에 '완벽한 아내'가 있을까

이 드라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는 미스터리하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워킹맘 심재복(고소영)이 남편 구정희(윤상현)가 저지른 불륜 때문에 힘겨워하는 초반부에서는 그저 그런 불륜소재의 치정극 같은 느낌이더니,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와 서서히 그 가족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이은희(조여정)의 비뚤어진 욕망이 드러나면서는 거의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을 만들었다. 

'완벽한 아내(사진출처:KBS)'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완벽한 아내>는 이은희라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인물이 엄청난 재력으로 심재복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하는 이야기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심재복이 께름칙하게 여기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이은희의 저택은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거대한 욕망이라는 괴물의 아가리였다고 여겨진다. 

이은희가 그렇게 비뚤어지게 된 이유가 그녀의 어머니 최덕분(남기애)에게서 어린 시절 당해온 학대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녀의 집착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가 비로소 납득이 되고 있다. 자존감이 사라져버린 그녀는 결국 심재복 대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고픈 욕망을 갖게 된 것. 

그렇게 보면 대저택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고, 대기업의 이사인 이은희는 외적으로 볼 때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녀는 갖고 있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집착하는 구정희 같은 남편도, 귀여운 아이들도, 또 자신을 제대로 보살펴준 엄마도, 또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해줄 친구들도 그녀에게는 없다. 

그래서 이 대저택에서 뭐든 척척 원하면 살 수 있는 재력으로 아이들의 선심을 얻고 구정희를 그녀 옆에 잡아두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모두 허망할 뿐이다. 제 아무리 호사스런 요리를 내놓아도 결국 그녀는 혼자다. 심재복과 그 가족, 친구들이 함께 모여 소박한 음식을 먹을 때 그녀는 쓸쓸하게 홀로 식탁에 앉는다. 

<완벽한 아내>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이것이 한 가족과 그 가족을 파괴하고 들어오는 정신질환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자본의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네 현대인들의 삶을 표상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때다. 즉 누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욕망에 뛰어들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이은희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건 돈으로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싼 임대료로 심재복 가족을 끌어들이고 재력을 이용해 구정희를 본부장으로 앉힘으로써 그와 약혼까지 하려고 한다. 이은희라는 괴물은 그래서 그대로 자본의 속성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은희가 사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실체를 드러내는 반면, 정반대로 별로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심재복이 사실은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걸 드라마는 말해준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지지하는 가족도 친구도 회사 동료도 있다. 그건 결코 이은희가 돈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완벽한 아내>는 그래서 이은희와 심재복의 대비와 대결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분열적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소시민들의 평범하지만 바람직한 삶을 얘기하고 있다. ‘완벽한 아내’는 그래서 ‘완벽한 삶’의 또 다른 표현처럼 다가온다. 세상에 ‘완벽한 아내’가 있을까. 있다면 그 기준은 도대체 뭘까. 무엇을 가져야 진정 ‘완벽한 아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 속에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진짜가 들어있다.

‘프리즌’이 그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픈 우화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프리즌>은 감옥이라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도 될 법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리는 감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물에서 봐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회와 격리시킨 공간으로서의 감옥은 범법자들이 들락날락할 수 없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프리즌>은 그렇지 않다. 어찌된 일인지 이 곳의 죄수들은 필요하면 감옥을 빠져나와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스스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법을 집행하는 형사들의 입장에서는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감옥은 범법자를 가두는 곳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종의 알리바이를 선사하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프리즌>

<프리즌>이 이처럼 감옥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된 건 그 안에 익호(한석규)라는 실질적인 감옥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별장처럼 감옥에서 지내며 밖에서 들어오는 청부살인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가 청부살인하는 대상은 정치스캔들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할 증인이거나, 기업에 심대한 타격을 줄 비밀을 캐온 기자 같은 이들이다. 익호의 뒤에는 거대한 자본이 서 있다. 그 자본의 결탁이 있어 감옥은 익호의 세상이 된다. 자본이 더 큰 자본을 모으기 위해 저지르는 사건들 속에서 익호 같은 괴물과 그가 장악하는 이상한 감옥이 탄생하는 것. 

물론 이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현실적이라고 믿을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즌>의 이야기는 너무나 쉽게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그것은 물론 익호 역할을 하는 한석규라는 놀라운 배우의 연기 흡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그리 낯설게 만 다가오지 않는 우리네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프리즌>의 이야기는 극화된 면이 있지만, 감옥에서도 개털이니 범털이니 불리며 가진 것에 의해 차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이 황당할 수도 있는 설정의 이야기를 마치 우화를 보듯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영화는 굳이 이렇게 자본에 의해 타락한 감옥을 소재로 삼은 걸까. 거기에는 감옥이라는 공간이 과연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단죄를 묻는 최종점이 실질적으로 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깔려 있다. 흔히 엄청난 죄를 지은 권력자의 말로로서 심지어 전직 대통령마저 감옥에 들어가는 광경을 보지만, 대중들에게는 그것이 못내 제대로 된 단죄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옥에 앉아서도 실질적으로는 세상을 제 맘대로 움직이는 권력자에 대한 음모 섞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넌 이 세상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지? 세상 굴리는 XX들 따로 있어. 난 이 안에서 그 XX들 내 손 안에 굴릴 거다.” 익호가 그의 오른팔이 된 유건(김래원)에게 던지는 이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감옥이건 사회이건 상관없이 지배하고 있는 건 자본이다. 그 자본을 굴리는 이들이 세상을 굴리고 있다. 

하필이면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시점이어서일까. <프리즌>의 익호라는 인물을 보면서 관객들은 저마다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을 게다. 그들은 과연 감옥에 들어가서 보통의 수감자들이 지내듯 똑같이 지내며 죄를 뉘우치는 참회의 시간을 가질까. 감옥조차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라면 그 누가 감옥을 두려워할까. “나를 가둘 수 있는 감옥 따윈 없어!”라고 소리치는 익호에게서 어쩌면 우리는 꽤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현 시국을 예견한 <밀회>의 소름끼치는 폭로들

 

그 사람들 기분 좋게 돈 쓰게 하고 또 돈 벌고 그런 걸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먹이사슬. 계급 그런 말 들어봤어?” “꼭대기는 그 여자가 아니라 돈이다. 아니구나. 진짜 꼭대기는 돈이면 다 살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속삭이는 마귀.” JTBC에서 방영됐던 <밀회>의 대사들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아니 최근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국을 이미 <밀회>는 예견하고 있었다.

 

'밀회(사진출처:JTBC)'

그것은 단지 등장인물의 이름과 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거론되는 이름이나 병원 이름이 소름끼치도록 똑같고, 그 상황도 딱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다. <밀회>라는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가 지금 현재 뉴스에서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회>는 상류층에 기생해 살아가며 스스로를 우아한 노비라 부르는 혜원(김희애)이 선재(유아인)라는 순수한 청춘을 만나 일종의 내부고발을 통해 그 더러운 실체를 까발리고 노비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시국에서 <밀회>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일찍이 이러한 내부고발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른바 상류사회의 추악한 진면목이 그저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는 예술재단과 학원까지 운영하는 서한그룹 서필원 회장(김용건)과 그의 아내 한성숙(심혜진), 딸 서영우(김혜은)가 살아가는 첫 번째 세계 상류층과, 서영우의 대학친구지만 지금은 그 밑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혜원이 사는 두 번째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선재라는 전형적인 빈곤층 청춘이 살아가는 세 번째 세계가 등장한다. 이 세 개의 세계를 통해 드라마는 갑질하는 상류층의 삶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포획하고 있는가를 탐구했다.

 

그것은 자본의 종속관계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친구 사이지만 서영우가 혜원을 비서처럼 부리는 것처럼 첫 번째 세계는 두 번째 세계를 종속하고, 또 혜원이 피아노에 천재성을 가진 이선재를 천거하고 지원하려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세계는 세 번째 세계를 종속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에 의해 나뉜 수직적인 서열이 존재한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있는 상류층의 결정은 저 밑바닥까지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예술재단에서 이선재 같은 천재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보다는 자신들이 사실상 돈거래로 상류층 자제들을 입학시켜주고 있는 것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이렇게 날카롭게 현재 우리가 직면하게 된 부조리한 우리네 종속 시스템을 그려냈을까. 물론 드라마는 세 번째 세계, 즉 선재에 의해 균열을 일으킨 두 번째 세계 혜원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욕망의 도구로 사용했던그 첫 번째 세계를 폭로하는 것으로 상황을 뒤집는다. 지금 현재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 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광화문 광장에 집결한 종속 없는 순수한 세 번째 세계가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던 언론과 야권의 두 번째 세계와 함께 첫 번째 세계의 부조리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혜원이 빠져든 욕망을 부추기는 마귀의 속삭임을 이겨내고 선재가 말하는 순수한 세계를 복원해낼 수 있을까. “모차르트가요. 어느 날 갑자기 난 이제부터 귀족들한테 주문 안 받는다. 내가 쓰고 싶은 것만 쓸 거다. 그러다가 일찍 죽은 거라면서요. 그러다 미치고 병들고.” 선재가 이렇게 말하자 혜원은 애써 부정한다. “부자들 돈으로 먹고 살면서도 얼마든지 제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다. 선재의 그 한 마디에 마치 노예근성처럼 애써 저 견고한 상류사회의 시스템을 변호하지만 그 이야기는 자신이 예전 한 사이트에서 막귀형이란 이름으로 선재에게 던졌던 말과는 상반된다.

 

그래서 선재가 그 막귀형의 이야기를 혜원에게 들려주자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양분된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제가 가끔 가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거기 어떤 형이 그러더라구요. 스펙따위 필요 없고 그냥 막 즐기면서 살라고.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즐겨주는 거요. 저는 이 곡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비트 16, 32 막 쪼개갖고 그래서 어깨 빠지게 연습하고 변주 8번 스타카토 더럽게 맘에 안 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뻥 뚫려서 기분 째지고 그게 최고로 사랑해주는 거죠. 라흐마니노프랑 파가니니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게 장땡이잖아요. 먹이사슬이고 먹이고 뭐.”

 

매일 쏟아져 나오는 저들의 갑질 이야기와 거기에 복무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를 집단적은 우울증으로 몰아넣는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사태의 끝에서 우리는 <밀회>가 보여줬던 결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해줬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 내 의지로는 못 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혜원이 선재에게 남긴 그 허허로운 말에 담긴 희망. 이즈음 <밀회>라는 드라마가 다시 보고픈 까닭은,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실체를 마주하고 거기서 어떤 것이 희망의 길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돌아저씨>, 복수극 아닌 공감의 방식을 택한 까닭

 

만일 웃음을 걷어냈다면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는 얼마나 슬픈 드라마가 됐을까. 뼈 빠지게 회사에서 온 몸을 바쳐 일하다 덜컥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만 그것 역시 자살로 덮어버리려는 현실. 돌연사니 과로사니 하는 사인들이 분명하지만 그 노고를 인정해주기는커녕 부정하고, 그 노고의 과실 또한 가로채는 현실. 무엇보다 모두의 기억 속에 그런 식으로 마지막을 남겨버리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라니. 아마도 억장이 무너질 이야기다.

 


'돌아와요 아저씨(사진출처:SBS)'

또한 이러한 가장의 죽음은 그 가족의 슬픔이자 비극이기도 하다. 김영수(김인권) 과장의 죽음으로 그의 가족들은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다. 당장 살 길이 막막한 그의 아내 다혜(이민정)는 발도 딛기 싫을 남편이 죽은 그 백화점에서 일한다. 무엇보다 자살로 알려진 사인은 가족을 충격 속에 빠뜨린다. 가장의 자살이라면 그 가족에게 남을 깊은 죄책감과 부채감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너무나 큰 비극이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이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물론 그 비극은 슬프고 나아가 당사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이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코미디의 형태로 담아낸다. 인물들은 과장되어 있고, 상황은 판타지다. 이미 죽은 자들의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드라마는 여기에 코미디와 판타지를 엮어 이들을 되살려 놓는다.

 

죽음 앞에 그 사람의 존재보다 더 큰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심지어 생명보다 더 큰 가치인 양 내세워지는 돈보다 더 큰 가치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당장의 삶과 나아가 큰 돈의 유혹은 모든 걸 덮어버리기도 하니까.

 

이해준(정지훈)의 몸으로 역송된 김영수가 결국 그것이 자살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밝혀내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차재국(최원영)은 거액의 돈으로 이를 덮어버리려 한다. 그 돈이면 다혜네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다혜는 이를 거부한다. 그것이 마치 남편의 죽음을 돈으로 가치 매기는 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최근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진 자들의 갑질을 담은 무수한 복수극과 소재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 최근 많아진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우리가 공분하는 건 가진 자들이 생명조차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다. 어찌 보면 자본화된 세상의 극단에 대한 비판이 최근의 무수한 범죄 스릴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의 소재라고 해도 <돌아와요 아저씨>는 그 시선이 사뭇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복수가 주는 판타지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돌아온 자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금 알게 되면서 갖게 되는 위로와 위안이다. 적어도 그들은 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존재를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판타지를 담은 코미디 장르로 변환되면서 역송된 이들은 한 가지 지켜야할 약속을 갖게 된다. 그것은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설정을 집어넣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겨진다. 복수를 통한 해결이 아니라 이 드라마는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커져가는 사회적 분노와 그것을 반영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흔한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른 이 드라마만의 가치다. 어쩌면 자본 세상에 고군분투하다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지만 기사 한 줄 없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그들의 입장을 다시금 공감해보는 일.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잠시나마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코미디의 가벼운 웃음을 주는 이 드라마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결혼계약>의 판타지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은 촌스럽다. 어찌 보면 과거 7,80년대에나 어울릴 법한 신파적인 인물 강혜수(유이)가 주인공이다. 어찌하다 보니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딸 은성(신린아)과 함께 꿋꿋이 살아간다. 하지만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한지훈(이서진)의 제안은 유혹적이다.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거짓 결혼을 하고 이식을 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주겠다는 것.

 


'결혼계약(사진출처:MBC)'

돈 때문에 거짓 결혼에 장기 이식까지. 요즘 같은 세상에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 설정만 보면 너무 전형적인 신파극의 여주인공인지라 새로움이라던가 트렌디한 면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캐릭터의 전형성은 이야기 역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를 쉽게 짐작하게 만든다. 즉 어찌 어찌해 계약을 통해 거짓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차츰 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한지훈이라는 인물이 조금씩 강혜수와 그녀의 딸 은성에게 사랑과 정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들이 자신의 장기 이식을 위해 거짓 결혼까지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오미란(이휘향)이 자살할 결심을 하고 다행히도 그녀를 강혜수가 살려내고 설득하는 장면 역시 전형적인 신파의 한 대목 그대로다. “구차하게 살아도 사는 게 좋다는 혜수의 말에 오미란은 마음을 돌린다. 혜수의 처지와 오미란의 처지는 어떤 면에서는 통하는 구석이 생겨난다.

 

돈 밖에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는 한지훈이 강혜수와 은성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겉으로 보기엔 장기이식을 전제로 하는 결혼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차츰 거기에서 그의 무심한 듯 드러나는 진심이 보이는 건 역시 공식적인 관전 포인트다. 동정할 수밖에 없는 비련의 여주인공과 그녀와 계약으로 만나지만 차츰 계약 그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남주인공의 밀고 당기는 멜로. 이만큼 전형적이고 나아가 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드라마가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이야기의 설정부터 전개까지 다 알고 있는 뻔한 드라마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특별히 막장적인 자극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혜수라는 인물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그녀가 그 수렁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더 사랑받기를 원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복수극의 또 다른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복수극들 역시 그 공식은 정해져 있다. 치가 떨리는 악역(요즘은 갑질 재벌2세가 대세다)이 등장하고 그에 의해 처절하게 당하는 주인공이 끝내 그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 권선징악이 그것이다. <결혼계약> 역시 다르지 않다. 복수극의 악역을 이 드라마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돈 세상이 맡는다. 결국 이 드라마에 대해 시청자가 원하는 권선징악이란 돈이 아닌 사람에게 무릎 꿇고 계약이 아닌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결혼계약>이라는 촌스럽고 뻔한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래서 드라마 바깥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왜 사람들이 이런 뻔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실제로 돈이면 다 된다는 그 현실에 얼마나 마음을 다쳤으면 뻔한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그것을 뒤집는 판타지를 간절히 원하게 된 걸까. 이것이 <결혼계약>이라는 드라마의 뻔해도 결코 약하지 않은 판타지의 정체가 아닐까.

주춤하는 <용팔이>, 초반 기세 이어가려면

 

11.6%로 시작해 단 6회만에 20.4%로 거의 두 배의 시청률을 돌파했던 <용팔이>의 그 기세는 왜 주춤해졌을까. 사실 시청률 20%는 최근 주중 드라마의 최대상한선처럼 굳어있다. 그 이상을 넘겨 30%까지 치고나가는 게 드라마 시청패턴 변화와 미디어 환경 변화로 인해 쉽지 않아진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용팔이(사진출처:SBS)'

하지만 <용팔이>20% 시청률에서 주춤하고 있는 건 이런 환경적 요인과 그리 상관이 없어보인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초반의 기세를 생각해보면 30%는 힘들어도 25%까지의 시청률은 무난하게 돌파할 것이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용팔이>는 지금 현재 우리네 대중들의 심중에 자리하고 있는 불편부당한 정서의 뇌관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VIP 병동에서 호화롭게 병원서비스를 받는 고객님(?)들과 일반병동에서 의사가 제때 돌봐주지 않아 죽어나가는 환자들. 같은 한신병원이라는 공간 속에 자리한 이 확연한 계급구조는 우리네 사회의 축소판처럼 여겨졌고, 그 안에서 속물을 가장한 휴머니스트 의사 김태현(주원)과 재벌 상속녀지만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병원에 감금되어 있는 가련한 여인 한여진(김태희)이라는 인물들은 부조리한 자본 시스템이 양산한 양극단의 희생자들처럼 보였다.

 

그러니 이들을 둘러싸고 자본 쟁탈전을 벌이는 한도준(조현재) 회장과 한신건설 고사장(장광) 같은 인물은 생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본이 부리는 하수인으로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결국 <용팔이>의 파괴력은 이들과 김태현, 한여진이 벌이는 팽팽한 대결구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VIP병실에 감금되어 누워 있던 한여진이 깨어나면서 <용팔이>의 이야기는 갑자기 김태현과 그녀의 멜로로 흘러간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멜로라기보다는 너무 급진전되는 양상으로서 흘러가는데다, 한 회 분량을 거의 이 멜로에 쏟아 붓는 바람에 자칫 지금껏 존재해온 팽팽한 대결구도가 흐려지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용팔이>에서 멜로는 독보다는 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즉 김태현과 한여진 사이에 만들어지는 멜로의 강도는 이들을 다시 떼어놓으려는 한도준 회장 일파로 인해 드라마에 긴박감을 넣어줄 수 있다. 이미 사랑하는 남자를 잃게 됐던 트라우마를 가진 한여진에게 있어서 김태현에게 다가오는 위기는 분명 극의 긴장감을 높여줄 것이다.

 

하지만 그 멜로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너무 눈에 보이게 관계를 진전시키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한신병원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마을의 성당에서 알콩달콩한 멜로를 키워가는 모습은 잠시간의 휴식처럼 다가오지만 한참 달려야할 드라마가 너무 한가롭게 흘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주춤하고 있는 <용팔이>는 아직도 더 달릴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초반 쉴 틈 없이 돌아가던 사건과 액션을 다시 가동시켜야 한다. <용팔이>처럼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드라마에서 멜로는 극의 감미료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빨리 제 궤도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김태현이 다시 저들과 팽팽하게 맞붙는 이야기를 통해 서민들의 판타지와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초반의 기세를 계속 이어 용두사미가 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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