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 <기황후>, 제목만 달랐더라도...

 

<기황후>는 예상대로 승승장구다. 시청률이 4회 만에 14%를 넘겼고 매회 끝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은 이 드라마가 화제성면에서도 압도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언플이라고 비난받지만 드라마 내용을 주로 다루는 기사도 호평 일색이다. 만일 <기황후>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지 않았고 역사와는 상관없는 창작물이었다면 칭찬이 쏟아졌을 사극이다.

 

'기황후(사진출처:MBC)'

남장여자라는 설정은 흔할 수 있지만 이 사극에 등장하는 기승냥(하지원)이라는 인물은 특성상 여러 극적인 코드를 동시에 갖고 있다. 기승냥을 사이에 두고 왕유(주진모)와 타환(지창욱)이 벌이는 삼각구도는 바로 그 남장여자라는 설정 때문에 남자들 사이의 우정처럼 읽히면서도 동시에 남녀 사이의 멜로가 된다. 남녀 시청층을 동시에 끌어안을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라는 얘기다.

 

게다가 많은 남장여자 캐릭터들이 나왔지만 하지원만큼 이를 잘 소화해내는 배우도 드물다. 잔뜩 눈에 힘을 줄 때는 여장부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다가도, 남자들 앞에서 짐짓 부끄러워하고 두근거림에 토끼 눈을 할 때는 전형적인 여자 신데렐라로 돌변한다. 무엇보다 액션 연기를 이만큼 강렬하게 해낼 수 있는 여배우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이미 <대조영>같은 대하사극에서부터 <자이언트>같은 시대극까지 넘나들며 마치 삼국지 같은 스케일의 인간사를 즐겨 그리는 타고난 이야기꾼 장영철 작가의 스토리는 지지부진함 없는 속도감을 선사한다. 팽팽한 스토리에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 그리고 그걸 최대치로 연기해내는 배우까지 있으니 드라마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좋은 요소들은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 앞에서 이 드라마가 돌팔매질을 당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기승냥이라는 인물에 우리를 몰입시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성패일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것은 동시에 더 철저한 역사 왜곡의 문제로 비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고려 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으며,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 이 같은 사전고지를 하고 있지만 기황후라는 제목은 여전히 실제 역사의 이름 그대로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다는 것은 가상과 허구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재해석이라는 뉘앙스를 깔고 있다. 고려의 정사를 농단하고 침공하려고까지 한 인물을 입지전적인 성공사례처럼 재해석하는 건 국민정서상 용납되기가 어렵다.

 

애초에 제목을 달리하고 누구나 허구임을 알 수 있는 판타지라던가 무협적인 요소를 덧붙였다면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게다. 연기자가 연기를 잘 하고 작가가 작품을 잘 쓰고 있지만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 되는 상황. 잘 하면 잘 할수록 고려를 핍박한 인물을 오히려 미화하게 되는 이런 상황은 작가는 물론이고 연기자에게도 고스란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안타까운 건 하지원이라는 늘 대중들의 호감을 받는 여배우가 겪는 부담이다. 하지원은 연기자로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만 그 결과는 혹독한 비난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것은 재능의 이중성으로까지 비춰진다. 좋은 재능은 잘 사용될 때 좋을 수 있지만 반대로 사용되면 독이 된다는 것. 도대체 무엇이 하지원이라는 괜찮은 배우를 이런 시험대에 오르게 했단 말인가. <기황후>는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두고두고 거기에 편승한 이들에게 부담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초한지'의 힘, 김서형에게서 나온다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우리에게 김서형은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로 기억된다. 물론 '자이언트'에서 깊은 모성애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주었던 유경옥 여사 역할을 했지만,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민소희-"를 외치던 그 강렬한 모습을 떨쳐버릴 순 없었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진시황(이덕화)회장의 비서 모가비 역할로 돌아온 김서형은 그러나 초반에 그다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악녀 본색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어느덧 이 드라마의 중심부에 서있다.

현재 모가비라는 캐릭터가 하고 있는 역할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의 모든 사건의 동력이 여기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시황 회장의 인슐린을 바꿔치기 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유서를 조작해 천하그룹의 모든 걸 손에 쥔 모가비는 모든 걸 잃은 채 쫓겨난 진시황 회장의 손녀 백여치(정려원)라는 캐릭터를 복수의 화신으로 바꾸었다. 현실을 모르고 철없게만 굴던 백여치가 할아버지의 죽음이 모가비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폐인인 척 속내를 숨기며 복수를 꿈꾸는 인물로 변신하는 그 과정은 이 드라마에 힘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모가비라는 악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우(정겨운)와 손잡고 유방(이범수)이 이끄는 팽성실업을 무너뜨리려는 것도 모가비다. 자신이 진시황 회장을 죽게 한 사실에 대해 유방이 낌새를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가비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팽성실업을 먹어치우려 한다. 하지만 모가비에게 주어진 악역은 단지 이 복수극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모든 걸 다 쟁취한 모가비는 특유의 미인계로로 남자들을 쥐락펴락한다. 그녀를 오래 전부터 챙겨온 범증(이기영)을 밀어내고 장량(김일우)에게 접근하는가 하면 젊은 항우에게 유혹의 손길을 던져 그 속내를 알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모가비의 이 미인계는 권력 구도의 변화를 예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드라마 속의 멜로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항우에게 접근하는 모가비를 본 우희(홍수현)가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즉 모가비라는 악녀 캐릭터는 지금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관계들을 헤집고 들어가 그 안에 좀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중이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초반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였다면 이제는 모가비라는 절대 악이 세워짐으로써 모든 인물들이 목표를 갖게 되는 형국이다. 이것은 드라마 초반에 어딘지 지나치게 가벼운 듯한(물론 여전히 경쾌한 코미디를 유지하지만) 이 드라마에 진중한 무게감을 덧붙여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김서형의 악녀 연기는 때론 유혹적이고 때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딘지 밉지 않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악녀로서 군림하는 것만큼 확실히 무너지는 모습 역시 잘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거만하고 위세 등등한 악녀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혼자 남으면 자신의 과오가 드러날까 봐 초조해하는 보통여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인물. 그래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면이 묻어나는 악녀가 바로 김서형 표 악녀의 진면목이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물론 원전이 그러하듯이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이 두 인물은 선명한 선악구도로 나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다. 드라마 구조상 항우가 악역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는 사업적인 부분에서 악역이면서도 사적인 차원으로 내려오면 한 여자(우희)를 사랑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다뤄지고 있다. 따라서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좀 더 강력한 극성을 만들지 못하고 미션 대결로 끝나곤 하는 과정은 조금 밋밋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샐러리면 초한지'에는 숨겨둔 비밀병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모가비다. 모가비라는 절대 악녀를 세움으로써 이 드라마는 좀 더 선명한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가비라는 숨겨둔 악녀가 가능한 것은, 때론 부드럽고 때론 유혹적이며 무너질 땐 심지어 코믹하게까지 느껴지는 독특한 악녀를 연기해온 김서형이란 배우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김서형이 없었다면? '샐러리맨 초한지'는 코믹함과 팽팽함 그 두 차원을 모두 끌어안지는 못했을 것이다.

SBS 연기대상은 왜 무리수를 썼을까

정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대물' 말이다. 시작 초기부터 작가가 교체되고 PD까지 교체되고는 갈팡질팡하더니, SBS 연기대상에서까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너무나 지나치게 훈계조인데다 심지어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말이 갖는 뉘앙스는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다. 고현정은 정말 건방진 태도로 시청자들을 훈계하려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고현정이 한 말들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쳤다는 것 이외에 그 자체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보인다. 고현정은 이번 '대물' 작업을 하면서 특히 많았던 마음고생을 당당하게 밝힌 것이고, 이런 내부적인 문제들에 대한 외부의 왜곡된 시선들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 것이다. 작가와의 불화, 전적으로 의지하던 PD의 교체. 하지만 그래도 촬영은 계속되어야 하는 상황. 아무리 제작진의 지시를 받는 배우라고 해도 마음고생이 없었을까.

또 한 편으로는 나름대로 제작진 교체에 따라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한 비판도 했다고 보여진다. "그게 좋은 대본이든, 누가 어떻든 뭐하든, 그런 거랑 상관없이 그 순간 저희는 최선을 다하거든요."라는 말에는 대본에 대한 불만이 간접적으로 녹아있다. 나중에 참여하게된 김철규 감독에게는 "팔 벌려 환영해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고 밝혔고, 작가에게는 "저희가 일하면서 욕 많이 했던 우리 작가님, 진짜 당신이 미워서 욕을 했겠습니까."라는 말로 에둘러 비판하고는 "새해에는 당신에게도 행운이 꼭 갈 겁니다."라는 덕담으로 마무리했다.

사적인 이들에 대한 그녀의 고마움 표시 중에 등장한 반말은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보여진다. "미안하지만 제 개인적인 얘길 잠깐 하면,"이라는 단서를 미리 붙였고, 일일이 그네들의 이름을 지목하며 하는 말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진정성도 느껴졌다.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고현정의 수상소감은 첫째,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걸 표현했고, 둘째, 제작진과 작품에 대한 비판도 에둘러 했으며, 셋째,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공감이 아닌 반감으로 돌아온 것은.

그것은 그녀가 한 말의 내용이나 태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받은 연기대상이라는 상 때문이다. 과연 '대물'의 서혜림을 연기한 고현정에게 연기대상이 합당한 것일까 하는 의문. '대물'은 시청률에서도 선전하지 못한 작품이고, 그렇다고 작품성에 있어서도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고현정이 연기한 서혜림이라는 캐릭터는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도 못했다. 이것은 물론 고현정의 연기력 문제는 아니지만, 연말 연기대상에서 보는 것은 연기자의 연기력만이 아니다. 캐릭터와 연기자 사이에 만들어지는 그 조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고현정의 연기대상 수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거론되는 연기자로 정보석이나 이범수는 그런 면에서 보면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자이언트'는 시청률도 높았던 작품이었고, 정보석과 이범수가 연기한 조필연과 이강모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렬했다. 물론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빚은 구설수들은 어찌 보면 걸맞지 않은 시상이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고현정이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 정도를 받으며 이런 수상소감을 말했다면 과연 이런 구설이 나왔을까.

어떤 상은 수상자에게 아무런 영광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고현정은 할 말을 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문제였다. 고현정 스스로도 문제가 많았던 작품이라 술회하고 있는 '대물'에 대한 시상은 왜 그토록 무리하게 이루어진 걸까. 결과를 보라. SBS연기대상에 대한 신뢰도도 바닥에 떨어졌고, 제작진의 잇단 교체라는 악재 속에서 마음고생하며 열심히 연기해온 고현정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지 않은가.

이 땅에서 정치 드라마는 왜 어려운가

이 땅에 정치 드라마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이언트'는 극 초반부터 특정 정치인을 찬양하는 드라마로 오인 받았다. 60부작의 대장정에 첫발부터 이러니 그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다. 하지만 뚝심의 장영철 작가와 유인식 PD는 이 위기를 스토리로 넘었다. 시대극으로서 당대의 사건들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오면서도, 특유의 이야기성으로 극중 인물들이 현실의 어떤 인물과 비교되는 것을 막았다. 즉 정치를 다루긴 했지만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드라마 특유의 허구성으로 넘어서려 했다는 점이다.

'대물' 역시 그 시작은 '자이언트'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대통령 탄핵, 잠수함 침몰, 피랍사건 등 작금의 정치 현실을 초반부터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그 현실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 현실성은 실제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서혜림(고현정)이란 인물과 박근혜씨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친박계에서 흘러나왔고, 결국 '대물'의 인기는 박근혜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2007년도 MBC 드라마 '영웅시대'와 이명박 대통령처럼.

여당 측에서는 '대물'이 그려내는 여권의 모습이 너무나 부정적이라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서혜림을 위시한 몇몇 인물을 빼고는 조배호(박근형)나 강태산(차인표)은 패거리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그 주변인물들은 대부분 앵무새가 거수기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이 드라마 때문에 집권당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다루는 정치가 민감했다는 반증이다.

후반부로 오면서 서혜림의 모습은 박근혜씨보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닮아갔다. 선거 캠프의 유니폼 색에서부터, 야권 단일화가 파기되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는 점, 그리고 대통령 당선 된 직후 바로 탄핵을 받는 점 등이 그렇다. 물론 이런 이미지는 이른바 '회초리론'을 방송 토론에서 얘기할 때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물론 '대물'은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서혜림은 어떤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기보다는 여러 정치인들의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다. 하지만 '대물'이 다루는 정치에 실제 현실 정치가 보여주는 뜨거운 반응은 드라마에는 부담이 되었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초반부터 불거진 작가와 연출자가 모두 교체되는 상황은 물론 드라마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겠지만, 이 드라마가 특히 정치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더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물'은 본래 하려던 정치 이야기에서 뒤로 진행되면서 상당히 유화되고 정체가 흐릿해진 게 사실이다. 외압은 아니지만 정치에 대한 민감한 반응들이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다루는 만큼 '대물'은 '자이언트'처럼 허구를 통해 이 상황을 넘기도 어려웠다.

흥미로운 것은 고현정이 연기했던 '선덕여왕'의 미실과 '대물'의 서혜림 사이의 온도차다. 고현정은 이 두 정치 지도자를 연기했지만 '대물'의 서혜림은 미실만큼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어쩌면 이 땅에서 정치를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말해주는 것일 게다.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야 그나마 현실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정치라는 소재다. 언제쯤 정치를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진짜 리얼한 현실로서 다룰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올까. 드라마에서도 정치에서도 이미지가 아닌 진짜를 보게 될 그날은.

'자이언트'가 소화한 것, 다양한 장르, 시청층, 연기

실로 '거인'다운 소화력이었다. 드라마는 전형적인 시대극이지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고, 그 장르들의 문법들을 꿀꺽꿀꺽 삼켜버렸다. 중요한 건 '삼켰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 '소화해냈다'는 것. 시청자들이 원하고 필요한 것이라면, 그리고 흥미와 구미를 당길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삼켜서 기어이 소화해내고 마는 세계, 그것이 바로 '자이언트'의 세계였다.

시대극은 넓게 보면 사극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주 가까운 역사를 다룬다는 것. 이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작품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의 평가에 민감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에 있어서도 어떤 한계를 지운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이언트'는 초반부터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드라마로 오인 받았다.

하지만 '대조영'을 겪은 장영철 작가의 뚝심은 여전했다. 시대극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실제 사건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장영철 작가는 그 속에 인물들의 대결에 좀 더 과감한 허구적 상상력을 끼워 넣었다.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미션과 그 미션의 해결과정에 부딪치게 되는 대결구도는 사극의 장르적 특성처럼 '자이언트'의 꺼지지 않는 에너지원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극이 부여하는 현실감에 머무르지 않고 끝없이 상상력을 펼쳐나간 점은 초반의 오인을 뒤집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 것이다. 결국 이 뚝심은 오해마저 삼켜버리고 소화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초반의 시청률 부진은 단지 이런 오해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극적인 대결구도와 치밀한 심리전으로 흘러가다 보니 정서적인 공감대가 따라오질 못했다. 물론 남성들은 이 사극적인 특징에 매료되었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자이언트'가 어떤 전환점이 된 것은 뿔뿔이 흩어졌던 강모(이범수)와 성모(박상민) 그리고 미주(황정음)가 다시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자이언트'는 빠른 사건 전개와 반전이 주는 특유의 스릴러적인 특징으로 남성 팬들을 사로잡으면서, 동시에 가족드라마적이고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들을 덧붙임으로서 여성 팬들까지 끌어들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원수가 되어버린 가족들 속의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모는 다시 만난 정연(박진희)과 사랑에 빠지고, 미주는 민우(주상욱)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 아버지들이 원수라는 걸 알게 되고 헤어지게 된다. 다분히 작위적인 느낌이 있지만 말 그대로 이 멜로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은 시대극이 궁극적으로 끌고 가려는 하드보일드한 이야기들 위에서 말랑말랑한 매력을 첨부했다. '자이언트'는 자칫 특정 세대로만 집중될 수 있었던 시청층을 삼키고는 대중성을 확보했다.

이런 다양한 장르의 공존이 가능했던 것은 장르를 잘 이해하는 유인식 감독의 공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뭐든 해낼 수 있는 든든한 배우들이 있었다. 이 작품의 배우들은 어느 한 장르의 결을 연기했다기보다는 주어지는 모든 장르를 소화해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쉽지 않았다. 미주 역할을 한 황정음은 신파적이기까지 한 가족드라마의 여동생에서 갑자기 비운의 줄리엣이 되는 멜로드라마의 여자로 변신해야 했고, 그 후에는 가수로 성장해가는 성장드라마의 여성을 연기해야 했다. 민우 역할의 주상욱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에서 여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멜로 연기를 소화해야 했다. 박소태를 연기한 이문식은 적과 친구를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재발견된 배우는 정보석과 박상민이다. 정보석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악역으로 처음부터 마지막회까지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궁지에 몰아도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강한 카리스마는 이 드라마가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은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박상민은 액션연기에서부터 맏형으로서의 애틋한 가족애를 선보이며 주목받았고,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나 마지막 부분에 뇌손상을 입은 모습까지 말 그대로 연기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장군의 아들' 이후 밋밋하게까지 느껴졌던 그의 이미지는 '자이언트'를 통해 확고하게 연기자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자이언트'는 이처럼 연기자들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연기의 극점까지 낱낱이 끄집어내 삼켜버렸다.

그래서 거의 모든 장르를 삼키고, 시청률을 삼키고는, 연기자들의 거의 모든 연기까지 끄집어낸 '자이언트'가 결국 소화해낸 것은 강남과 개발로 축약되는 한 시대의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누군가는 복수하듯 처절하게 살아왔던 그 시대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꼭대기에 선 자의 처절함과 쓸쓸함'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뛰어왔던가. '자이언트'가 결국 돌아가는 길은 가족이다. 성모가 저 세상으로 떠난 후에 마치 그 자리를 메워주듯 막내가 찾아오고, 강모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 길은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기나긴 개발시대의 터널을 지나와서야 겨우 알게 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사극을 넘어선 시대극의 저력과 그 문제점

시대극 전성시대다. ‘제빵왕 김탁구’가 7,8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적 분위기를 넘어서 성장해가는 김탁구를 시대극의 틀 안에서 그리며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면, ‘자이언트’는 강남 개발이라는 소재를 시대극으로 풀어내며 경쟁 작품이었던 사극 ‘동이’의 시청률을 앞지르는 이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새롭게 시작한 ‘욕망의 불꽃’은 엄밀히 말하면 시대극이라고 하기가 어렵지만, 시대극이 갖는 장치들을 백분 활용하면서 연일 시청률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 시대극을 막강하게 만드는 걸까.

한때 시대극은 실패작의 전형처럼 여겨지곤 했다. 과거 방영되었던 ‘사랑과 야망’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다시 리메이크된 ‘사랑과 야망’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에 이어진 ‘로비스트’나 ‘에덴의 동쪽’ 그리고 ‘태양을 삼켜라’ 같은 시대극도 거의 모두 실패했다. 이유는 당연하다. 과거 시대극들이 갖는 성공에 대한 집착이 어딘지 시대착오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미 드라마들은 성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의 대세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대극들은 이들 작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물론 성공에 대한 집착이 그 속에도 꿈틀대지만, 이들 작품들은 거꾸로 그 집착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에 더 집중한다. 따라서 현재의 시대극들 속에 성공에 집착하는 인물들은 주인공이 아니라 대부분 악역들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구마준(주원) 혹은 서인숙(전인화)이나, ‘자이언트’의 조필연(정보석) 같은 인물들을 끝없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보이지만 그것이 결국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빵왕 김탁구’가 ‘행복’을 주제로 빵을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욕망의 불꽃’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나영이라는 성공하기 위한 욕망에 불타오르는 캐릭터가 바로 그것 때문에 얼마나 처절한 불행을 맞이하는가를 바라보는 드라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니의 자리까지 빼앗아 버린 그녀는 결국 정점에 도달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죄들이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개발시대가 남긴 아픔을 이 욕망의 불꽃을 가진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극이 과거의 가치관에 머물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확보하게 되면서 오히려 시대극이 갖는 장점이 부각된다. 그것은 폭넓은 시청세대의 가능성이다. 과거는 넘어서야 할 막장에 가까운 시대의 장벽이지만 한 세대에게는 향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성장드라마는 젊은 세대들의 판타지가 된다.

물론 시대극의 힘이 이처럼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두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시대극은 특성상 과거의 드라마들이 가진 자극적인 설정들을 끌어오게 마련이다. 그 설정들 자체가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설정들이 지나치게 자극으로 흐른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욕망의 불꽃’에서 낙태나 강간, 뺑소니 게다가 아이의 자살시도 장면이 등장하고, ‘자이언트’에서 납치와 폭력 수위가 높은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그 의미는 이해가 되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막장이라는 비판은 이런 부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시대극은 과거 어느 때보다 그 힘이 막강해졌다. 하지만 시대극이 본래의 목적인 시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보다 자극에만 더 치중하게 될 때, 그것은 자칫 시대극의 동반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극은 더 큰 감각적인 자극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것이 어떤 한계수위에 도달해 충족되지 않을 때 자칫 달라진 시청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멜로는 드라마의 독? 멜로에 대한 갈증은 여전

멜로는 여전히 드라마의 독일까. 트렌디 드라마들의 퇴조와 함께 멜로의 시대도 끝났다고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멜로드라마들이 시청률 40%대를 구가하던 건 이젠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출현은 멜로를 피해야할 어떤 것으로 치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멜로드라마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멜로가 사라졌을까. 멜로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물론이고 사극, 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그리고 실질적인 드라마의 성패를 뒤흔드는 존재로까지 부상하게 되었다.

'동이'와 '자이언트'의 시청률 곡선을 보면 멜로가 드라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동이'의 초창기 시청률을 끌어올린 장본인은 단연 동이(한효주)와 숙종(지진희)이 궐 밖에서 만나 벌이던 일련의 멜로 시퀀스다. 이른바 깨방정 숙종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 동이의 이야기는 이 사극에 힘을 부여했다. 그 후로 숙종이 정체를 숨긴 채 동이와 마음을 나누는 장면들이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동이가 숙종의 정체를 알게 되고 궐 내로 들어오면서부터 멜로는 주춤하기 시작한다. 대신 억울하게 궐 밖으로 내쳐진 인현왕후(박하선)를 복귀시키려는 동이와 장옥정(이소연)과의 대결구도로 이어지면서 시청률은 급하락했다.

이것은 물론 이 대결구도가 이미 여러 다른 사극에서 반복되었던 전형적인 틀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락하던 시청률을 다시 다잡은 것이 멜로로의 복귀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깨방정 숙종'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 '동이'라는 사극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왕이지만 서민적인 소탈한 모습은 동이와의 멜로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천민 출신을 사랑한 왕의 인간적인 모습은 이 사극이 가진 또 다른 축, 예를 들면 추리적인 요소 같은 것들을 소소하게 만들만큼 강력하게 다가온다.

한편, '자이언트'가 초반부 긴박하게 흘러가던 사건의 연속에도 좀체 오르지 않던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은 강모(이범수)가 어린 시절 헤어졌던 가족들인 성모(박상민)와 미주(황정음)를 만나면서부터이다. 물론 이 만남은 멜로가 아니지만, 이 두뇌게임을 치르는 것 같은 드라마에 어떤 감정을 부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이 당시 생겨난 강모와 정연(박진희)의 애틋한 멜로가 이어지면서 시청률은 급물살을 탔다. 현재 이 드라마에서 사건의 흐름보다도 더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미주와 민우(주상욱)의 멜로라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멜로는 늘 반복되는 삼각 사각으로 이어지는 관계, 항시 존재하는 신데렐라 이야기, 부모의 반대로 겪게 되는 혼사장애, 우연한 만남의 남발 등등으로 비판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멜로의 이런 경향은 작금의 드라마들 속에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와 소재들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그려지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멜로에 대한 갈증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멜로는 이제 드라마의 윤활유로서 자리하고 있다. 멜로는 과도하면 식상하지만, 적절하면 드라마에 윤기와 촉촉함을 더해준다. '동이'와 '자이언트'가 보여준 일련의 시청률 등락은 이런 멜로의 힘을 잘 말해준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겉껍질을 깨버린 주상욱

악인의 아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냥 지겨워서. 그냥 다 털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미주(황정음)의 무릎을 베고 누운 조민우(주상욱)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한다. '자이언트'에서 미주가 나타나기 전까지 조필연(정보석)이라는 절대악의 아들인 조민우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민우가 미주를 만나면서 그의 사적이고 내밀한 모습이 보여졌고, 그제야 조민우가 가진 진짜 캐릭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최근 조민우를 연기하는 주상욱이 주목받는 것은 드디어 본 매력을 드러낸 캐릭터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잘 생긴 얼굴에 분위기 있는 눈빛을 가졌지만, 주상욱이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들은 그의 매력을 한껏 끄집어내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다가'에서 그가 연기한 김강모는 지나치게 전형적인 부잣집 아들 역할이었다. 돈이면 뭐든 된다 생각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얻으려 하지만 결국에는 좌절하고 마는. 그래서 조금은 비열한 짓들을 하게 되는. '선덕여왕'에서의 월야 역할은 물론 '그저 바라보다가'보다는 나았지만 그 존재감이 적었다. 덕만(이요원)을 도와 그녀를 여왕의 자리까지 올리는 역할이었지만, 유신(엄태웅)이나 비담(김남길) 같은 굵직한 캐릭터들 속에서 월야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남았다.

'자이언트'의 초반부에서도 그 전형성은 또 반복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조민우는 마치 '그저 바라보다가'의 부잣집 아들 김강모를 반복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변했다. 드라마 속 부잣집 아들 혹은 악인의 아들 역시 악인일 수밖에 없다는 그 전형성을 깨면서 조민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상욱은 조민우를 통해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었다. 부잣집 아들이라고 왜 고충이 없을까. 아니 야망을 위해 가족들 앞에서도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아버지 조필연을 보면서 자란 아들 조민우는 어쩌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이런 이해의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귀 막아줄 테니까 눈 감고 가만히 있어봐요. 그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거예요." 조민우의 발견은 이렇게 그의 위로가 되어주는 미주의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그 시선 속에서 조민우의 힘겨움이 보였다. 첫 만남에서는 부잣집 아들의 돈 자랑에 재수 없어 하다가, 차츰 그의 가시 돋친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부드러움을 발견해가는 과정은 미주의 시선을 빌어 이 캐릭터의 속내를 대중들에게 전해주었다. 따라서 미주의 민우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대중들의 시선 변화를 유도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주가 민우의 귀를 막아주는 그 행동이 사랑스러운 것은 이미 우리가 민우라는 캐릭터의 힘겨움을 미주만큼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상욱이 조민우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캐릭터 운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한번 선은 영원한 선'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들을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조민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주인공 강모(이범수)를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면서 아버지 조필연을 돕는 악역이지만, 미주를 만나면 멜로의 주인공이 된다.

게다가 이 멜로는 이제 '자이언트'에서 유일한 것이 되었다. 강모와 정연(박진희)의 멜로는 후에 다시 등장할 것이지만 지금은 복수를 향해 달려가면서 두 사람의 꼬여버린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 '자이언트'라는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민우와 미주의 멜로는 한 줄기 숨통이 되어준다. 민우가 미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시 깊은 한 숨을 통해내는 것처럼, 시청자들도 이 장면들을 바라보며 쉴 새 없이 달리는 '자이언트'라는 욕망의 전차에서 잠시 동안의 편안함을 갖게 된다. 그러니 이 둘의 멜로는 주목될 수밖에 없다. 그 중 조민우라는 캐릭터는 더더욱.

주상욱이라는 연기자가 제 가치를 드러내며 주목받게 된 것은 물론 이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기회로 제공한 조민우라는 캐릭터의 힘이 크다. 하지만 모든 기회가 그 자체로 성공을 이뤄주지 않듯이, 이 조민우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낸 주상욱의 노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상욱에게 조민우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이제 본격적인 연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다른 얼굴들이 있을 지 자못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회의 양극화를 잘 드러내는 대사, "네까짓 게"

"네가 뭔데. 네까짓 게 뭔데 내 자존심을 건드려!" 이 대사는 '나는 전설이다'에서 차지욱(김승수)이 그 아내 전설희(김정은)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사는 화를 못 참아 돌발적으로 나온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습관적으로 아내를 이런 식으로 부르곤 한다. 이 상류층 집안사람들도 전설희를 늘 이런 식으로 대한다. 뭐 하나 가진 것 없고 그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전설희가 언감생심 이 좋은 집안에 시집왔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식이다. 전설희의 시어머니는 입에 '네까짓 게'를 달고 산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전설희는 그런 시어머니에게 말한다. "결혼 내내 어머니께 수도 없이 들었던 네까짓 거라는 말 더 이상 듣기 싫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이보다 서민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대사를 찾기가 어려운 것인지, 다른 드라마에서도 '네까짓 게'는 종종 등장한다. '자이언트'에서 황정식(김정현)의 엄마로 나오는 오남숙(문희경)은 가끔 배다른 자식 정연(박진희)에게 '네까짓 게'라는 표현을 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 해도 할 말 안할 말이 있기 마련이지만, 자신의 못난 자식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야심은 심지어 정연이 죽기를 바라게 만든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서인숙(전인화) 역시 이 말의 애용자다. 그녀는 남편 구일중(전광렬)이 데려온 김탁구에게 이 말을 쓰며 폄하하더니, 이젠 자신의 아들 마준(주원)이 사랑하게 된 신유경(유진)에게 "네까짓 게 감히" 어딜 넘보냐며 그녀를 밀어낸다. 이미 종영한 '나쁜 남자'에서도 '네까짓 게 감히'는 등장한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이 드라마 속 비극을 양태한 희대의 악역이었던 신여사(김혜옥)의 전매특허다. 문재인(한가인)은 어렵게 자신이 구해온 유리가면을 깬 것에 대해 홍태성(김재욱)을 나무라다가 신여사에게 뺨을 맞는다. "네까짓 게 감히 뭔데 선을 넘어와!"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일련의 드라마에서 모든 악역들이 "네까짓 게"를 외치는 것에는 어떤 공통점이 추출된다. 첫째 그 대사를 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부를 손에 쥐고 있는 초상류층들이다. 둘째, 그 "네까짓 게"를 듣는 대상은 이 초상류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혹은 그 이하인) 서민들(서민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셋째, 이 "네까짓 게"라는 소리를 듣는 인물은 신분상승을 꿈꾼다. 그래서 그런 소리를 하는 이들을 실력으로 넘어서려 안간힘을 쓴다.

이 공통점들은 작금의 우리 사회가 가진 점점 심화되어가는 양극화와 그것에 대한 서민들의 양반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초상류층의 안하무인격의 행실을 재수 없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력으로 그 문턱을 넘어서려 안간힘을 쓰는. 이것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왜 성장드라마가 그토록 인기가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장(신분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은, 그 성장의 욕망이 사실은 거의 태생적으로 정해져 여의치 않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니까.

"네까짓 게 감히!"라는 드라마 속 대사를 들으며 왠지 가슴 한 켠이 울컥했다면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이 사회가 가진 욕구불만의 옆구리를 제대로 짚은 것이다. 물론 이건 드라마 속의 한 대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대사가 환기시키는 어떤 울분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거기서 물질로 사람이 평가되고, 또 그 물질조차 태생적으로 규정되는 갑갑한 현실과,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적으로 모욕을 주는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스토리의 풍부함이 다른 '자이언트'와 '동이'

'자이언트'의 급상승, '동이'의 추락. 무엇이 이 희비쌍곡선을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스토리의 풍부함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이언트'는 25회 한 회가 다룬 스토리만 보더라도 실로 긴박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꽉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강모(이범수)는 제임스 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숨긴 채 본격적으로 건설 사업에 뛰어든다. 사채업자인 백파(임혁)를 찾아가 고효율 시멘트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며 투자를 제안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실험 끝에 흙을 단단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한편 강모가 정식(김정현)과 조민우(주상욱)에 의해 죽게 됐다고 생각하고 복수를 꿈꾸는 정연(박진희)은 만보건설의 후계자를 뽑는 임시주총에서 주주들을 설득해 결국 후계자로 뽑힌다. 보궐선거를 앞둔 조필연(정보석)은 성모(박상민)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의심하지만 성모는 임기웅변으로 위기를 넘긴다.

'자이언트'의 25회 한 회 스토리는 이처럼 무려 세 가지의 굵직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이 굵직한 에피소드 사이사이에는 강모 남매들의 끈끈한 가족애도 들어가 있고, 정연과 정연의 친모인 경옥(김서형) 사이에 놓여있는 모성애도 있다. 게다가 새롭게 시작된 조민우와 이미주(황정음)의 멜로 라인도 흥미진진하다. 어느 하나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들의 성찬은 '자이언트'라는 음식에 복잡 미묘한 맛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흩어지지 않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재빠르게 흘러가는 묘미는 이 드라마에 다이내믹함을 더한다.

그렇다면 '동이'의 이야기는 어떨까. '동이' 41회가 다룬 내용은 실로 앙상하다. 그 내용은 검계가 동이(한효주)를 살해하려 하지만 실패하는 에피소드와 동이가 찾던 수신호의 비밀이 밝혀지는 에피소드. 동이의 어릴 적 동무인 검계의 수장 게둬라(여현수)와 동이가 해후하는 장면이 나왔지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이 두 에피소드 간에 연결고리가 별로 없이 갑작스럽게 동이가 수신호의 비밀을 풀어낸다는 점은 지금 '동이'의 이야기가 어떤 큰 흐름의 맥락을 잘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스토리가 풍부하지 못하다보니 이야기의 진행은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검계의 동이 살해기도와 게둬라와 동이의 만남이 회고조로 드라마의 한 회 분량의 거의 반을 채우고 그 와중에 숙종과 동이의 늘상 같은 반복되는 로맨스, 그리고 한 번씩 들어가기 마련인 주식(이희도)과 영달(이광수)의 코미디가 들어가고, 다음 회와의 연결고리로서 수신호의 비밀 에피소드가 제시된다. 드라마의 도입부분이 전편과의 이어짐이고 후반부가 다음 편과의 연결고리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동이'의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단순한 편이다.

그렇다면 '자이언트'와 '동이'가 가진 이야기의 풍부함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캐릭터다. '자이언트'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쏟아놓는 반면, '동이'에서 이야기를 내놓는 캐릭터는 거의 동이에 국한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동이라는 한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꿰어놓는 작업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에피소드가 동이로만 귀결되는 것은 이야기를 단조롭게 만든다. 만일 '동이'에서 동이의 주변인물들, 예를 들면 서용기(정진영)나 인형왕후(박하선), 차천수(배수빈) 같은 캐릭터가 동이에만 몰두하지 않고 좀 더 개인적인 욕망을 드러냈다면 이야기는 좀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결국 이 두 작품을 가른 것은 캐릭터를 통해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의 풍부함이 가진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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