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캐릭터, 독자, 작품은 누구의 것인가

 

작품은 진정 작가의 것인가. 몇 십 년 전만 해도 질문거리가 되지도 않을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지금 현재 예술의 영역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요한 물음이 되고 있다. 작품은 당연히 작가가 쓰는 것이라며 저자에게 신적 지위를 주던 시대는 조금씩 저물고 있다. 작가가 써낸 작품은 어떤 의미로는 작품의 내적인 동인에 의해(개연성 같은) 움직인다. 그리고 독자들의 욕망에 영향을 받는다. 이제 독자들의 요구는 작품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W(사진출처:MBC)'

또 작가가 애초에 써낸 작품도 온전히 작가의 창작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참조들과 정보들이 거기에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제작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집단 창작으로 들어가면 저자의 개념은 애매모호해진다. 누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고 썼는가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W>는 이렇게 변화해가고 있는 창작 방식을 염두에 두고 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만화 속 주인공이 현실로 뛰쳐나오고, 현실의 인물이 만화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판타지는 그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은 이 작품이 이 시대의 저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지점이다. 오성무(김의성)는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을 탄생시킨 저자지만, 그는 마음대로 강철을 죽이고 살릴 수가 없는 위치에 서 있다.

 

오히려 강철은 현실 속으로 걸어 나와 오성무에게 총을 들이대고 결국 쏴버린다. 물론 오성무는 죽지 않고 살아남지만 그 장면이 표징하는 건 저자의 죽음이다. 오성무는 강철에게 너는 허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허구가 그를 사경으로까지 이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강철이 대사를 통해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맥락이다. 그는 극중 주인공으로서 그 ‘W’의 세계가 맥락 있는 개연성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기를 원한다. 즉 오성무 같은 저자가 그를 탄생시켰지만 강철은 그 세계 안에서 함부로 휘둘리기보다는 그 개연성의 법칙을 믿고 자유의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 그에게 오성무가 자의적으로 내리려는 죽음에 그는 저항한다.

 

이것은 저자라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라는 걸 잘 말해준다. 흔히 말해 막장드라마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인물이 TV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웃다가 죽는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그렇게 했다간 작품을 망가뜨리게 되고 나아가 시청자들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엔딩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 논란이 첨예화됐던 사건은 이 관점에서 보면 저자의 의도와 시청자의 욕망이 부딪친 결과로 읽어낼 수 있다. <W>에서 강철이 저자인 오성무에게 총을 쏘고 스스로 한강에서 투신하는 걸로 결말을 내는 일은 그래서 독자들의 욕망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지금은 심지어 시청자(혹은 독자)의 요구에 의해 결말이 바뀌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W>의 오연주(한효주)이 의미하는 게 그 장면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후로 결말에 맞게 진행되는 것인지에 의문을 갖는 장면은, 영향력 있는 독자의 욕망이 을 지워버리고 계속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게 된 작금의 달라진 상황을 슬그머니 말해준다. 애초에 16부작이던 드라마가 20부작이 되기도 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 아닌가. 오연주의 욕망(독자의 욕망)은 그렇게 다시 강철을 살려냄으로써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그리고 이 오연주의 욕망은 <W> 시청자들의 욕망이기도 하다. 남자 주인공인 강철의 죽음은 더 이상 오연주와의 달콤한 로맨스도 또 과거 온 가족이 몰살당한 사건의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즐거움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연주의 욕망을 <W> 시청자들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것이 끝을 계속으로 만들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이라 할지라도. 즉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도 웹툰에서 새드엔딩을 맞은 강철을 되살리려는 오연주와 같은 입장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W>는 웹툰이라는 가상과 현실의 두 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를 담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작품에 대한 작가와 캐릭터 그리고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첨예한 욕망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는 현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재미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또한 이 만화 같은 이야기가 허무맹랑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클라라, 활동재개하려면 확실히 해둬야 할 것

 

클라라의 1인 기획사인 코리아나클라라는 그간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와의 소송을 끝내고 그녀의 활동재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보도한 한 매체에 의하면 그녀가 많은 작품 출연을 받았고 현재 한두 작품의 출연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작품은 드라마가 아닌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물론 클라라 본인에게는 이제 재도약의 기회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지리한 소송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이 회자되었고 그 말은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녀가 평소에 보여왔던 섹시 이미지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되었다. 마침 디스패치가 톡 문자 형식으로 보도한 내용은 마치 그녀가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유혹한 것 같은 뉘앙스를 갖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건 뉘앙스일 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클라라와 그녀의 아버지 이승규씨에 무혐의 처분이 내렸다. 대신 이규태 회장은 오히려 클라라를 협박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SBS스페셜>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규태 회장은 클라라의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그녀에게 막말로 너한테 무서운 얘기다만 한 순간에 보내버릴 수 있다”, “불구자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걸 왜 모르느냐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클라라 사건의 핵심은 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전형적인 갑을관계의 사례였다는 점이다. 클라라는 이 사건의 피해자였음이 명백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시사점을 확실히 해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그녀는 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원인제공자처럼 대중들에게 비춰졌고, 사건이 일단락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비난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녀가 확실한 자기 콘텐츠를 갖지 못한 채 단지 섹시 이미지하나만으로 연예활동을 하려고 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만일 그녀가 차근차근 연기경험을 해오며 자신의 경력을 쌓아왔다면 어땠을까. 만일 지난 사건 같은 일이 터졌다고 해도 대중들이 모두 그녀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섹시 시구 한번 던지고 너무 쉽게 드라마, 영화에도 나오고 예능에도 또 음원까지 출시하는 모습이 정상적인 과정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마침 터져 나온 사건의 화살이 섹시 이미지의 역린으로 그녀쪽을 향하게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그녀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다면 이제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해야 하고 또 그 입장에 합당한 노력의 시간들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녀의 소속사는 그녀가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중들은 아직도 그녀가 배우가 맞는지가 애매모호하다. 그저 화보의 주인공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의 옷을 척척 갈아입을 수 있는 배우의 모습을 그녀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다만 드라마든 영화든 일관된 그녀의 섹시 이미지만을 소비했을 뿐이다.

 

복귀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복귀 전에 스스로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본인은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복귀 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섹시 이미지만을 소비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논란 속에서 그녀는 또 다시 섹시 이미지의 역린을 경험할 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똑바로 바라보고 거기에 걸맞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지 않는다면 제2의 논란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신의 선물>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이다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을 선택했다? <신의 선물-14(이하 신의 선물)>은 마치 미드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새로움이다. 유괴된 딸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김수현(이보영)과 어딘지 허술하고 껄렁해 보이는 전직 형사 현직 흥신소 사장 기동찬(조승우)의 조합은 벌써부터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두뇌게임에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에 과거 김수현과 연인사이였던 강력반 팀장 현우진(정겨운)의 존재는 이 스릴러에 멜로적인 변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이미 복선으로 김수현의 딸 한샛별(김유빈)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고 또 딸을 구하기 위해 김수현의 희생이 필요할 거라는 걸 잔혹동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또 어떤 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기동호(정은표)와 그의 지적장애 아들 기영규(바로)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라는 인물도 그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 스릴러적인 장르 속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이 들어갈 전망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2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드라마의 첫 시작을 딸을 구하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칼을 잘라주고, 가시덤불을 껴안고, 눈알까지 빼서 호수에 던져주는 엄마의 잔혹동화로 시작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주는 셈이다. <신의 선물>은 타임워프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가 될 거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새로움은 기성 우리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음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스릴러나 형사물 같은 장르가 영화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껏 이 장르로 성공했던 드라마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성공한 작품이라면 김은희 작가의 <싸인>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은 드라마를 더 낯설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신의 선물>은 그 독특한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대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유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보영과 조승우 같은 톱 연기자들이 들어간 작품치고 첫 회 시청률이 6.9%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런 불리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우리네 시청률 추산 시스템 안에서 시청률을 얻기 위해서라면 멜로를 바탕으로 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훨씬 단순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다. 판타지? 그것도 멜로를 보강하는 차원에서만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우리 드라마 현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보영은 왜 굳이 이렇게 불리한 드라마를 선택했을까. “지난해 연기대상 받은 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상대 드라마가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시청률의 기대도 없고요. 우리가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장르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요.” 제작발표회에서 이보영이 던진 이 이야기는 그녀의 선택기준이 시청률이 아니라 작품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년 50% 시청률에 육박한 <내 딸 서영이>25% 시청률을 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이미 시청률로 얻을 것은 거의 얻은 이보영이다. 그러니 시청률 때문에 익숙한 드라마를 하느니 좀 더 실험적이지만 의미가 있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 게다. 그녀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재미있고 즐겁게 미드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촬영 중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는 새로움에 도전하고픈 그녀의 의지가 엿보인다.

 

시청률? 사실 <신의 선물> 같은 드라마는 그 시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에 경도되어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우리네 드라마 현실 속에서 이런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 시도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부담스런 칭호를 과감히 벗어던진 이보영의 선택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녀는 시청률이 아닌 작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어쩌면 꽤 괜찮은 시청률로 보상받을 지도 모르겠다.

<세결여>, 김수현 작가표 드라마의 한계인가

 

여전히 똑같다. 재벌가 사람들의 수다와 누가 누구와 결혼했고 이혼했으며 또 결혼하려 하는가 하는 이야기. 게다가 여전한 문어체 대사 어투는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물론 이 속사포로 쏟아지는 문어체 대사는 과거에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김수현 작가표 명대사로 칭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하소연이나 넋두리 같은 문어체 대사는 관찰 카메라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감 없이 찍어 보여주는 시대에는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그럼에도 김수현 작가라는 이름 석자의 힘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메시지를 갖고 왔는지에 우선 이목이 집중된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제목이 담고 있는 것처럼 달라진 결혼관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과거의 결혼이라고 하면 어딘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면, 요즘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이혼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나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된 시대다.

 

과거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결혼을 목표로 하고 한 식구가 될 그 당사자들과 집안사람들 간에 야기되는 갈등들을 주로 다뤄왔다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난 후에 발생하는 삶들, 이를테면 이혼이나 재혼 같은 것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가장 파격적인 인물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지칭하는 주인공, 오은수(이지아)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지만 전 남편과 가진 아이와는 떨어져 살고 있다. 새 남편의 집안에서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오은수는 여자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다. 요즘 세태에서 이혼이라고 하면 “그래 그럴 수도 있어”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이 문제라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까지 포기하고 재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사회적 통념이 얘기하듯이 여성으로서의 잘못된 삶일까. 바로 이 질문이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기존 드라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흥미로운 건 오은수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이지아라는 점이다. 대중들 모르게 서태지와 함께 살았고 헤어졌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져 큰 파장을 만들었던 배우. 어찌 보면 상당히 오은수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지아라는 배우가 이 배역에 캐스팅 되었을 것이다. 김수현 작가가 이지아에게 주문한 말 “네 안의 틀을 깨고 나와라”라는 말은 그래서 작품의 캐릭터를 위한 얘기이면서, 동시에 이지아에 대한 충고이기도 하다. 즉 이 작품은 이혼에 대한 통념을 깨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또한 이지아로 대변되는 이혼녀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도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제의식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가 여전히 쥐고 있는 것은 가족이라는 틀이다. 물론 이혼을 얘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제도라는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을 생각해보자. 결혼? 이제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 정도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결혼이 주는 사회적 부담감이 너무 큰 데다가 ‘혼자 사는 삶’ 이른바 ‘싱클턴(Singleton)’이라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가 아닌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주제의식은 과거 세대에게는 파격적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지금 현 세대들에게는 고루하게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리얼하게 들리지 않는 문어체식의 대사들은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한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지아의 성형설이 먼저 불거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작용한다. 그 하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이지아의 표정연기가 대단히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고, 또한 드라마의 대사 톤들이나 천착하는 메시지가 그다지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수현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도발적이다. 엄마로서의 삶보다 여자로서의 삶이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이 그렇다. 하지만 요즘은 혼자 살아가면서 엄마로서도 여자로서도 살 수 있는 시대다. 굳이 결혼만이 유일한 여자의 삶의 선택지는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이 시선으로 바라보면 왜 저들이 저렇게 결혼과 이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지아 성형설이 먼저 불거진 데는 그만큼 몰입하게 되지 않는 드라마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분노, 연민, 죄의식까지 <비밀> 지성 연기 놀라워

 

역시 좋은 드라마는 좋은 캐릭터를 통해 좋은 연기자를 재발견하게 한다. <비밀>에서 유독 주목받는 연기자는 황정음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행 속에서 미칠 듯이 오열하는 황정음의 눈물 연기는 분명 <비밀>이 재발견한 그녀의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황정음만큼 놀라운 연기는 지성에게서도 발견된다.

 

'비밀(사진출처:KBS)'

이것은 지성이 연기하는 조민혁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놀라운 복합심리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지금껏 드라마에서 좀체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내면을 보여준다. 처음에 그 감정은 분노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뺑소니 사고로 죽게 한 이가 강유정(황정음)이라고 알게 된 그는 그녀의 남자친구로 하여금 그녀를 심판하게 해 감옥에 보낸다.

 

하지만 감옥에 보낸 것으로 조민혁의 분노는 멈추지 않는다. 가석방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강유정은 아이를 잃게 된다. 출소한 후에도 조민혁은 스토커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괴롭히는데 이상한 것은 그토록 처절한 복수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것이 그녀에 대한 자신의 연민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분노가 조금씩 연민이 되는 이유는 강유정이 하는 일련의 행동들, 이를테면 피해자 어머니를 매번 찾아가 끝까지 사죄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자신이 생각했던 파렴치한이 아니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는 모습에서 길바닥에 사고자를 버리고 도망가는 뺑소니범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 대신 그는 강유정의 옛 남자친구인 안도훈(배수빈)을 점점 의심하게 된다. 그녀가 진범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복수심과 얽혀 묘한 연민이란 감정의 형태로 생겨난다.

 

그러나 결국 뺑소니 사건의 진범이 안도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조민혁은 그에게 분노하면서 동시에 강유정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녀가 저지른 일도 아닌 일로 자신이 그녀를 비극의 끝단으로 밀어부친 것에 대한 죄책감. 조민혁의 죄책감은 그래서 그녀에 대한 극단의 사랑으로 바뀌어나간다.

 

“네가 신경 쓰여서 미치겠어! 그러니까 내 옆에 붙어있어!” 이 대사 한 줄은 실로 조민혁이 갖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거기에는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가 깔려 있고 그녀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무고한 그녀를 망가뜨렸다는 자신의 죄책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결국 그녀에게 배우는 마지막 감정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지키고 싶은 게 뭐지?”하고 그가 그녀에게 물었던 것. 그녀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모든 걸 끌어안는 진정한 사랑을 그는 알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복잡한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연기로 표현해냈을까. 지성이 연기한 조민혁의 초반 모습과 지금 현재의 모습은 거의 180도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을 죽인 살인자에 대해 분노했던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지금은 그 살인자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극단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지성이 얼마나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비밀>에는 유독 웃으면서 우는 연기가 자주 보인다. 배수빈이 미친 듯이 웃으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장면에서 실로 악마적인 느낌마저 주었다면, 차도에까지 뛰어들며 비밀을 지키려하는 강유정을 보며 웃으며 눈물 흘리는 지성에게서는 답답함과 연민, 분노, 사랑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묻어난다. 이것은 아마도 이 작품의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작가는 인간이 한없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갸녀린 존재라 여기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캐릭터가 있다고 해도 그걸 소화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황정음은 물론이고 지성, 그리고 배수빈과 이다희까지 이 작품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이 작품의 성공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작품에 좋은 캐릭터 그리고 좋은 연기다.

표절시비부터 강제 천만 영화 만들기 논란까지

 

영화 <광해>가 31일 만에 9백만 관객을 돌파함으로써 천만 관객 동원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 몇 년 동안 영화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CJ E&M이 추석 시즌을 목표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 되었다. 마치 예상한 시나리오대로의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는 <광해>. 하지만 여기에 대해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국내에서 천만 관객 영화라면 사실상 신드롬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텐데,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사진출처: 영화 '광해'

그 발목을 잡고 있는 첫 번째는 표절 시비다. <광해>는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를 표절했다는 논란을 받아왔다. 동아일보는 <광해>와 <데이브>의 18가지 유사점을 조목조목 짚어낸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 내용들을 보면 대통령 대신 왕이, 대역 직장인 대신 대역 만담꾼이, 비서실장 대신 도승지 허균이, 대통령 부인 대신 중전이, 각료들 대신 신하들이, 흑인 어린이 대신 어린 나인이, 경호원 대신 호위무사가... 등등. 대구를 이루는 것들이 너무 많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데이브>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광해>가 꽤 괜찮은 작품이라 여길 만하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이병헌의 1인2역도 단단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왕이라는 항상 서민들의 판타지가 투영되기 마련인 존재의 이야기를 왕이 된 평범한 민초의 시각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공감대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같은 상황을 두고 보면 기획적으로도 적절했다 여겨진다. 하지만 <데이브>와의 유사성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괜찮은 완성도가 오히려 너무 심했다고 생각될 수 있다. 표절을 했건 안했건 영화로서 너무 비슷한 것만은 사실이니까.

 

여기에 천 만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각종 마케팅과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까지 겹쳐지면 <광해>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가늠할 수 있다. 자사 계열 배급사의 영화에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스크린 수 밀어주기를 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특히 그 불공정성이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광해>는 개봉일에 상영관 689개를 확보하며 시작했지만 반달 만에 1000개가 넘는 상영관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무료 26%가 넘는 스크린 수 점유율이다. 이 정도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게 없어 <광해>를 본다는 볼멘소리가 이해될 법 하다.

 

또한 <광해>의 관객 수가 마케팅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허수라는 논란도 있다. <광해>는 CGV에서 이른바 ‘1+1’이라는 한 명이 보면 다른 한 명은 공짜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관객 수의 수치는 천 만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유효 관객 수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애매해진다. 결국 천 만 관객 마케팅을 위해 그 수치를 강제로 뽑아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고 있다는 얘기다.

 

<광해>는 콘텐츠적으로 괜찮은 완성도를 가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작품의 표절 시비나 배급과 마케팅 문제에 있어서 꽤 시끄러운 잡음을 내고 있는 영화인 것도 분명하다. 소급해서 생각해보면 <도둑들>이 올 여름 최고의 기록을 낸 데도 결국 대형 배급사의 마케팅 수완이 한몫을 했을 거라는 심증이 짙다. 이제 천 만 관객도 마케팅으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일까. 또 그렇게 영화가 작품보다는 상품에 더 골몰하는 처지가 된 것일까. 거대 자본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그림자는 국내 영화 산업 전체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슈마케팅, '불편한 진실'도 팝니다

사진=부러진 화살

요즘 영화관에 가면 영화 보기 전에 10분에서 심지어 20분 가까이 광고를 봐야한다. 작년 사회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킨 '도가니'나 올해 또 제2의 '도가니' 현상을 예고한다는 '부러진 화살' 같은 어딘지 광고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도 여지없이 광고를 봐야 볼 수 있다. '작품'과 '상품'은 언제부턴가 이렇게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부러진 화살'을 보기 전에 흘러나온 휴대폰 광고 중 개그맨 황현희가 하는 광고는 이 작품과 상품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최신 LTE폰을 소개하는 이 광고는 황현희가 '개그콘서트'에서 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패러디한다. 황현희가 LTE폰을 놓고 "과연 품질은 어디 있다는 걸까요?"하고 묻고 "모든 시에서 다 되지 않는 LTE가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이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가 광고하는 LTE폰만이 전국 모든 시에서 터지는 유일한 LTE라는 얘기다.

황현희가 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은 본래 르뽀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개그. 무언가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그 진지한 형식은 그대로 개그의 소재로 패러디된다. 그리고 그 코너는 또 한 휴대폰 광고에 패러디된다. 원본인 르뽀 프로그램의 진지함은 몇 번의 복제 패러디를 반복하면서 원본과는 전혀 다른 상품으로 전화된다. 그것이 심지어 '불편한 진실' 같은 소재라도 말이다. 요즘 광고는 이처럼 주의를 끌 수 있는 것이면 뭐든 삼켜버리는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러진 화살' 논란을 보면서 이것이 저 '불편한 진실'마저 흥행이 된다면 꿀꺽 삼켜버리는 괴물을 떠올리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사실 이 영화를 둘러싼 김명호 교수의 주장과 사법부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 글이 하려는 얘기와는 거리가 멀다. '부러진 화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그간 사법부에 쌓인 불신에 대한 공분이라는 정확한 분석 또한 이 글에서는 논외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건 아니건 세상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이슈가 된다면 뭐든 삼키기 시작한 영화의 본격화된 이슈 마케팅이다.

'도가니'의 성공은 대중들이 갖고 있는 정서에 불을 지름으로써 그것이 상품 마케팅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불편한 진실'은 어느 순간에는 '보는 것'이 인권이라는 놀라운 등식까지 만들어냈다. 이 말은 거꾸로 하면 '안보면 인권을 외면하는 행위'가 되는 것처럼 조장된다. 물론 많은 이들이 '도가니' 같은 작품을 통해 바뀌어진 현실에 박수를 친다. 실로 박수 받을 일이다. 영화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게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그 뒤에서 작동하는 상품 마케팅 논리를 놓쳐서도 안 된다. '도가니'는 상품으로서도 작품으로서도 성공적인 작품이지만 이렇게 이슈로서 성공을 맛본 자본은 또 다른 이슈를 상품을 위해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품 마케팅 논리는 때로는 필요하다면 없는 '불편한 진실'도 만들어내는 괴물이다.

물론 '부러진 화살'이 없는 '불편한 진실'을 만들어낸 작품이란 얘기는 아니다. 어쨌든 대중들이 생각하는 사법부란 영화에서 그려지듯이 어딘지 고압적이고 권력적이며 서민들의 이야기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로 자리해있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사법부 권력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래들마저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마저 대중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대중정서가 이럴진대, '부러진 화살'이 조금 편파적으로 사법부를 그렸다고 해서 거기에 뭐라 할 대중들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통쾌함을 느꼈을 지도. 즉 진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이러한 대중정서에 자리한 사법부에 대한 그간의 이미지다. 영화가 '불편한 진실'을 상업화하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대중정서를 건드리는 지점에서 폭발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의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작동되고 있는 상품 마케팅의 놀라운 힘을 경험하는 것은 또한 씁쓸한 일이다. 장애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의 법 제정을 이끌어낸 건 수많은 관련 사회단체가 아니라 영화 한 편의 힘에 의해서다. 지금 감히 사법부와 한 판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영화 한 편의 힘이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작품의 힘일까, 아니면 상품의 힘일까.

이슈가 넘쳐나는 세상, 거의 매일 새로운 이슈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이제는 뭐든 이슈화되지 않으면 대중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사장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 '불편한 진실'을 통한 이슈화조차 또 하나의 상품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작품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상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자칫 상품 논리에 의해 진실마저 사고파는 그런 세상이라면, '진실'은 사라지고 '불편함'만 가득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부러진 화살'은 작품인가, 상품인가.

대중의 기대와 작품 사이, 소통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 이처럼 중간에 서 있는 것은 그만큼 오인 받을 소지가 많다. 결혼과 연애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문란한 방탕으로 보이기 쉽고, 오빠와 연인 사이에 서 있는 것은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며,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불륜으로 보이기 쉽다. 특히 우리처럼 이쪽 아니면 저쪽이어야 하는 것이 마치 당위처럼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 그러니 '트리플'은 한 가지도 오인 받고 비난받기 쉬운 어려운 난이도의 소재들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돌아야 하는 드라마다.

'트리플'이 가진 화법의 문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초반부의 스토리만을 놓고 보면 이 드라마는 실제로 논란거리들이 가득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 낯선 지대에 서 있는 남녀들의 관계가 그렇다. 조해윤(이선균)과 아무렇지도 않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로 돌아가려는 강상희(김희)와, 자꾸만 오빠가 좋아진다는 이하루(민효린), 또 친구의 부인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장현태(윤계상)는 드라마를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은 그 골치 아픈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다. 그들은 일단 먼저 행동하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장현태는 마음을 빼앗긴 최수인(이하나)에게 조금씩 다가가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집 담장을 뛰어넘는다. 집 마당에 농구대를 떡하니 세워두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그녀 앞에 불쑥불쑥 자신을 드러낸다. 이 행동은 아무런 고민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장현태는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고 행동은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후에 장현태의 고백으로 밝혀지는 것이지만, 아무 고민 없이 결행된 것들이 아니다. 장현태는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최수인의 집으로 가기까지 여러 번 그 동네 주변을 뱅뱅 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은 조해윤과 강상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쿨한 인물들은 좀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부터 보여준다. 하룻밤을 지내고도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던 강상희에게 조해윤이 "넌 그게 쉬운 여자잖아"하고 심한 말을 하자, 그녀는 비로소 자신도 고민을 했었던 것을 밝힌다.

이것은 '트리플'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화법이다. 이하루(민효린)는 신활(이정재)과의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오빠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어버린다. 강상희와 신활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질투를 느끼는 것으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행동이 먼저 보여지고,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쿨하게 그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이 드라마의 화법은 여러모로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선 이들이 그저 방탕하고 불륜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트리플'의 실패, 작품이 아니라 소통이다
이러한 오인되기 쉬운 감추려는 화법 속에서 이윤정 PD 특유의 감각적이고 팬시한 연출은 심지어 이런 기저에 깔린 관계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해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엇갈린 관계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얘기하는 규범의 틀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파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빠(친오빠가 아닌 관계로서의 오빠)인 줄 알면서도, 친구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또 그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최수인의 어머니가 죽음에 임박해서 딸의 불륜이 될 수도 있는 장현태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관계의 틀을 벗어난 순수한 사랑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시청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사이의 차이는 이 드라마의 화법이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윤정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콤비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달콤 쌉싸름한 커피향 같은 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트리플'은 그 엇갈린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무게로 판타지를 한없이 무너뜨린다. '커피 프린스 1호점'처럼 청춘들의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려했지만 '트리플'은 그 관계의 무게로 인해 순정만화의 기대치를 배반하고 만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조해윤이 보이는 것은 그가 그나마 이 기대치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주변인물들의 관계들을 보면서 투덜대곤 한다. 강상희에게도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장현태가 최수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듯 말할 때도 "그만해라. 이젠 지겹다"고 말한다. 조해윤과 강상희가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활이 "우리 중에 가장 재밌게 사는 놈은 너"라고 말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이처럼 뒤늦게나마 이 화법들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느끼고 있지만 그 돌파구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트리플'은 이 복잡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을 안고 멋지게 삼단 점프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소재적으로 오인되는 부분들이 많지만 시도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전하려는 메시지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삼단 점프를 하면서 정작 그걸 보고 환호해줄 관객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서 발생한다. '트리플'이 끊임없이 비난을 받는 것은 작품이 조악해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대중들의 기대와 맞춰가며 나가려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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