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훈남정음’과 울림 있는 ‘이리와 안아줘’의 희비를 가른 건

SBS <훈남정음>과 MBC <이리와 안아줘>가 같은 날 종영했다. 두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훈남정음>은 훈남(남궁민)과 정음(황정음)이 결혼을 약속했고, 정음은 훈남의 도움을 받아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갔다. <이리와 안아줘>는 지옥 같던 살인자 윤희재(허준호)가 납치한 한재이(진기주)를 채도진(장기용)이 구해내고, 자기 같은 괴물로 아들을 만들려는 윤희재의 도발 앞에서 윤나무는 스스로가 다르다는 걸 증명해냈다. 

두 드라마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종영을 맞는 두 드라마의 입장은 완전히 다를 법하다. 애초의 기대작이었던 <훈남정음>과 별 기대가 없었던 <이리와 안아줘>가 거둔 성과가 너무나 상반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작 전 두 드라마의 액면만을 보면 당연히 <훈남정음>에 기대감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연기력으로 차곡차곡 팬덤을 만들어온 배우 남궁민에 그와 과거 <내 마음이 들리니>로 연기호흡을 맞췄었던 황정음이 아닌가. 반면 <이리와 안아줘>의 장기용과 진기주는 사실상 신인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기경력이 적었다. 

이런 캐스팅에 대한 상반된 기대감은 두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첫 회에 <훈남정음>이 5.3%(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했던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3.1%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보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희비쌍곡선을 그었다. <훈남정음>은 2.1%까지 떨어지며 역대 SBS 미니시리즈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5.4% 시청률로 마무리했다. 

물론 2%나 5%나 지상파 수목드라마로서는 충격적으로 낮은 시청률이지만, 두 드라마의 체감이 달리 느껴지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훈남정음>은 첫 회 방영된 이후부터 줄곧 너무 뻔하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이 지적받았다. 한강다리에서 자살을 하는 장면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은 대목으로 논란까지 이어지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가진 가벼움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희대의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요소를 통해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새로운 멜로 구도로 멜로 그 이상의 울림 있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살인자의 아들은 결국 그 악을 계승받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이 끝까지 이어졌다. 특히 엔딩에서 이제 모든 과거의 아픈 고리들을 끊어낸 채도진과 한재이가 12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머물러 있던 어린 자신들을 껴안아주는 장면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는 스릴러 요소를 더한 멜로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휴머니즘이라는 더 큰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는 것.

작품의 희비를 가른 건 이런 가벼움과 진중함의 차이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저 가볍기 만한 뻔한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더 이상 어렵다는 걸 <훈남정음>은 예시적으로 보여줬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재치 있고 코믹한 대사들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울림이 없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한계였다. 물론 남궁민의 연기는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였지만, 황정음의 늘 봐왔던 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연기를 잘해도 새로움이 없다면 시청자들에게 호평받기 어렵다는 것.

한편 장기용과 진기주는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아직 무르익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신인 배우로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보인다. 물론 이 작품은 허준호의 악마 같은 괴물 연기가 드라마 전체의 힘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용의 몰입은 이 배우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윤현무 역할을 연기한 김경남이나 역대급 눈물연기를 소화해낸 엄마 채옥희 역할의 서정연 같은 배우들이 돋보였다. 

워낙 많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들이 방영되었던 터라 이제 시청자들은 그 작품만의 독특한 새로움이 없다면 굳이 봐야할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됐다. 하루에도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고, 심지어 외국 드라마들을 시청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화단계로 접어드는 요즘이다. 뻔한 드라마보다는 실험작이 차라리 낫고 멜로 안에서도 진중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효용성을 갖는 이유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 허준호가 스스로 증명한 악역의 탄생

“악은 증명 당하는 것이 아니다. 악은 스스로 증명하는 것.”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에서 윤희재(허준호)는 그렇게 말했다. 연쇄살인범으로 감방에 들어가 사형수로 지내왔던 그는 결국 탈옥함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허준호가 윤희재라는 희대의 악역을 통해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증명해낸 것이기도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소름끼치는 긴장감이 가능했을까.

윤희재는 우리가 봐왔던 연쇄살인범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보통의 연쇄살인범이 가족 없이 홀로 지내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반해, 윤희재는 가족이 있다. 두 명의 친 아들과 재가했던 아내 채옥희(서정연)와 그녀의 딸 채소진(최리)이 그들이다.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게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 폭력적이긴 해도 그저 그런 가부장적인 아버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범죄들이 밝혀지고 그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하지만 윤희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한 감정 따위는 없다. 그는 세상을 싸워 이겨내야 하는 생존 정글로 생각한다. 그래서 장남인 윤현무(김경남)가 또래 불량한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을 보고도 도와주거나 말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일어나 그들과 다시 싸우라고 말한다. 그게 윤희재의 ‘아들 자격’이 있는 일이라고. 

그래서 윤희재는 자신을 공격하고 경찰에 넘겨버린 둘째 채도진(장기용)에게 장남보다 더 큰 애착을 갖는다. 그가 자신을 닮았다 여기는 것. 그래서 그의 형인 윤현무에게 “너는 동생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한다. 연쇄살인범이지만 가족이 있다는 이 사실은, 윤희재라는 캐릭터를 단순한 사회 부적응자가 아닌 세계관 자체가 다른 괴물로 만들어낸다. 그저 살인에 대한 욕망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가 채도진이 어려서 좋아했던 한재이(진기주)의 부모를 죽이고, 또 그녀마저 죽이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너를 약하게 하는 것들을 제거해주겠다”는 것.

<이리와 안아줘>는 사실상 이 윤희재라는 희대의 악역을 구심점으로 해서 흘러가는 드라마다. 그가 만들어내는 악이 그 주변 사람들을 침범해 들어오고, 채도진은 그것을 막아내려 온 몸을 던진다. 채도진이 주인공이지만, 그 반대급부로서 윤희재가 서 있기 때문에 주인공이 존재하고, 주인공의 연인인 한재이가 존재한다. 또 그 때문에 평생을 가슴 조이며 살아가는 채옥희(서정연)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 

드라마에는 악역이 있기 마련이지만, 윤희재를 연기하고 있는 허준호만큼 자기만의 아우라를 제대로 보여주는 악역도 없다. 지난해에 방영됐던 <군주>에서도 대목 역할로 강력한 극의 힘을 만들어냈던 그가 아닌가. 물론 악역에서만 그가 자기 존재감을 보여줬던 건 아니다. 과거 <주몽> 같은 작품에서는 주몽의 탄생을 이끌어주는 해모수 역할로 짧아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였다. 

<이리와 안아줘>에서 윤희재는 심지어 감방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있는 모습만으로도 드라마 전체에 압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악역이다. 어두운 감방에서 음영에 비춰진 주름살까지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고, 심지어 뒷모습만 봐도 섬뜩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마치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는 한 마리의 짐승 같은 거친 느낌. 그러니 감방 안에만 있어도 소름끼치던 이 인물이 탈옥해 사회 속으로 들어왔다는 그 사실은 시청자들을 더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허준호가 스스로 증명해낸 악역의 탄생. 실로 클래스가 다른 느낌이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 멜로만큼 궁금한 이 드라마의 인간관

과연 채도진(장기용)은 희대의 살인마인 아버지 윤희재(허준호)를 이겨낼 수 있을까.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진기주)의 서로 나누는 눈빛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지만, 그것만큼 궁금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보여줄 인간관이다. 인간은 악을 태생적으로 안고 태어난다고 해도 과연 그것을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을까. 또 그런 구원은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 

윤희재는 이미 체포되어 사형수로 감방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여전히 채도진과 한재이의 주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우고 싶은 그 과거를 끊임없이 다시 끄집어내는 장본인이 바로 윤희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서전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그것으로 본래 윤나무와 길낙원에서 채도진과 한재이로까지 이름을 바꿔 살아가는 이들 앞에 그 과거의 그림자를 다시금 드리운다. 

윤희재는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런 연쇄살인을 벌인 것이 ‘계승된 악’ 때문이라는 변명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채도진은 윤희재에게 반기를 든다. 한재이의 부모를 죽이고 한재이까지 죽이려 했던 윤희재를 막아선 건 채도진이었다. 그는 ‘악은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아버지가 희대의 살인마를 선택했던 반면 그는 경찰을 선택한다. 윤희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나약하게 만드는 것들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사람이 “강해지는 건 누군가를 지키려 할 때”라고 반박했던 바 있다. 그가 경찰이 된 이유다. 하지만 사형수 윤희재는 감방 안에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낸다. 자신을 따르던 추종자를 자신과 똑같은 살인범으로 키워낸 것. 

과거는 다시 반복된다. 윤희재에 의해 조종 받는 살인범은 과거 윤희재가 했던 방식 그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피 묻은 망치는 점점 채도진과 한재이에게도 다가오기 시작한다. 채도진은 악으로 얼룩진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찰을 선택했지만, 다가오는 윤희재의 그림자 앞에 자신도 모르게 광기를 드러낸다. 만일 그가 살인범을 잡는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윤희재와 똑같은 광기를 드러낸다면 그건 결국 그의 실패를 자인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과연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이리와 안아줘>가 흥미로워지는 건 이렇게 태생적으로 악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 있는 인물들 주변에 그들을 그 바깥으로 이끌어주는 따뜻한 손길들이 있다는 점이다. 채도진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한재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와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지만 진짜 엄마보다 더 엄마처럼 자신을 걱정해주는 채옥희(서정연)나, 아빠처럼 그를 돌봐준 고이석(정인기) 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채도진에게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결국 인간은 태생이 아무리 힘겹다고 해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살아갈 수 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인간관이다. 채도진도 그렇지만 그의 형인 윤현무(김경남)가 겉으로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악한 척하면서도 자신을 아들로 받아들이고 안아줬던 채옥희를 걱정하는 모습은 이런 인간관을 잘 드러내준다. 지독한 불행 속에 놓여져 있어도 다가와 안아주는 그 따뜻함이 어쩌면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윤희재의 팽팽한 대결구도 속에서 담아내고 있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 비극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좋아해서 미안해.”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의 채도진(장기용)은 한재이(진기주)에게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진심. 어린 시절 나무와 낙원으로 서로를 부르며 바라봤던 그들이지만, 채도진은 이미 그 때부터 그의 사랑이 만들어낼 비극을 예감했던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감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낙원을 밀어내려고도 했지만 이미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그의 아버지 윤희재(허준호)에 의해 한재이의 부모가 모두 살해당했고, 나무는 낙원을 지켜내기 위해 아버지를 경찰에 넘겼다.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힌 윤희재가 자신이 잡힌 건 경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들 때문이라고 밝힌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윤희재가 체포된 건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끝없이 따라붙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채도진에게 달라붙었고, 그건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이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윤희재는 감방에서 자서전을 내며 자신이 그런 괴물이 되게 된 것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탓이라고 변명한다. 그는 그래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피해자들에게는 비수가 된다. 살인자의 거짓 변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윤희재는 감방에 들어와 있지만 엇나간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흉기를 휘두른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그가 쓴 책과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찢어지는 상처를 입는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채도진은 스스로 방송사를 찾아가 자신의 얼굴을 걸고 그 책은 거짓이라고 밝히는 인터뷰를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낙원에게도 그랬지만 마치 나무처럼 버티며 아픈 이들을 지켜주려 한다. 

그렇게 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피해자 가족들이 나타나 때리면 맞고 질책하면 죄송하다 사죄하며 버티고 서 있는 채도진은 진짜 나무 같은 인물이다. 모진 바람을 맞아도 묵묵히 서 있는 그에게 역시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엄마 채옥희(서정연)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울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눈물조차 피해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채도진은 애써 눈물을 참는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을 때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이리와 안아줘>는 살인자의 아들 혹은 피해자의 딸이라는 굴레를 갖게 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 모진 현실 앞에서 채도진 역시 어쩌면 저 살인자인 아빠가 변명하듯 악을 계승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채도진은 악이 그렇게 길러지고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변명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드라마는 앞부분에 윤희재가 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채도진의 “악은 그저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말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채도진과 한재이의 사랑은 그래서 서로 표현도 제대로 못하며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삶이 살만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나무처럼 버텨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선택을 한 채도진과, 그 나무의 아픔을 느끼며 다가가 안아주는 한재이의 마음. 그들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가 담은 2차 피해 문제, 현실도 마찬가지

그들의 진짜 이름은 나무와 낙원이었다. 나무는 진짜 그 이름처럼 낙원을 위해 늘 묵묵히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고, 윤희재(허준호)라는 희대의 살인마인 아버지 때문에 늘 지옥에서 살아가던 나무에게 낙원은 역시 그 이름처럼 유일한 낙원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가 꺾어지고 낙원이 지옥이 되는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윤희재는 낙원의 부모를 살해했고 낙원까지 죽이려 했지만 나무가 막아섬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윤희재는 체포되었지만 과연 그걸로 끝이었을까. 가해자가 잡혔지만 피해자들은 결코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무와 낙원은 그래서 그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무는 채도진(장기용)으로 낙원은 한재이(진기주)로 살아가려 하지만 비정한 세상은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가 심상찮다. 제목만 보면 그저 그런 청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눈물과 분노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가슴 먹먹하면서도 동시에 지금의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 장면들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이 드라마는 살인자의 아들인 채도진과 그 살인자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가해자가 감옥에 들어가서도 참회록이랍시며 자서전을 써서 장사를 하며 버젓이 살아가는 반면, 피해자는 언론의 2차 피해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문제들을 담았다. 

최근 미투 운동과 더불어 더 자주 등장한 것이지만 ‘2차 피해’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적지 않게 등장했던 일들이었다. <이리와 안아줘>가 지목하고 있는 것처럼 그 2차 피해를 촉발하는 건 당장 이슈에만 눈이 먼 언론들이다. 윤희재의 자서전을 출간한 인물이 한 시사잡지 기자이고, 어떻게든 과거를 파내 이름까지 바꿔가며 살아가는 채도진과 한재이를 끝내 대중들 앞에 발가벗기고 다시 그 지우고 싶은 과거를 끄집어낸 이들이 바로 기자들이다. 

그 2차 피해는 윤희재가 살인마인 줄 모르고 결혼하며 살다 결국 사실을 알고는 딸과 도망친 채옥희(서정연)와 채소진(최리)에게도 벌어진다. 섬에 들어가 조용히 식당을 하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윤희재 자서전의 수입이 가족들에게 갈 것이라는 허위보도가 나오면서 이들은 다시 과거 윤희재의 지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해자는 웃으며 추억처럼 과거의 살인을 회고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끝없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 이건 지금 현재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닌가.

<이리와 안아줘>라는 이 드라마의 제목은 그래서 다시 읽힌다. 그저 청춘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제목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따뜻한 포옹을 해줄 수는 없냐는 질문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채도진과 한재이는 그 어린 시절 끔찍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안아준 적이 있다. 사건현장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나무에게 낙원은 다가가 원망을 하기보다는 끌어안아주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살아남으라”고 말해주었다. 

나무는 그 어린 나이에도 도망치는 채옥희와 채소진에게 “잘 가라”고 “멀리 도망치라”고 말해주었다. 채옥희는 두려움 때문에 딸을 데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어린 아이가 지옥 속에 서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두를 도망치게 했지만 정작 아이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버텨내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나무처럼.

어째서 한재이 같은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안아주지 못할까. 다만 그가 살해당한 유명배우의 딸이라는 사실을 유포해 연기자로서 새 삶을 살아가려는 그 안간힘을 밟아버릴까.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가 겪는 2차 피해의 굴레 속에서 그 누구도 안아주지 않는 살벌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이 그토록 절절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런 비정한 현실을 그들의 사랑에서 더더욱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사진:MBC)

‘나저씨’, 공간에 담긴 이 드라마의 진심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이지은)의 캐릭터는 몇 가지 특징으로 제시된 바 있다. 집으로 돌아와 배고픔과 정신적 허기를 자위하듯 마시는 두 봉의 믹스커피, 한 겨울인데도 추워 보이는 옷차림에 유독 시려 보이는 발목이 드러나는 단화, 그리고 이력서에 특기로 적어 놓은 ‘달리기’ 같은 것이 그것이다. 

믹스커피와 단화 그리고 ‘달리기’. 언뜻 보면 별 상관이 없는 요소들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지안이라는 캐릭터는 혹독한 겨울 같은 현실에 내몰려 몸도 마음도 춥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몸을 데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발이 시려도 신을 수밖에 없는 그 단화를 신고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렇게 ‘추운’ 이지안을 바라봐주고 이해해준 인물이 바로 박동훈(이선규)이다. 동훈은 회사에서 믹스커피를 챙기는 이지안을 보고서도 그저 눈감아주고, 단화를 신고 다니는 그의 발목이 시릴 것을 걱정해준다. 또 무엇보다 이력서에 스펙 한 줄 없이 특기로 적어놓은 ‘달리기’라는 항목에 담긴 어떤 절실함 같은 걸 읽어내고 그를 채용한다.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고, 이지안이 자신을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드러났지만 박동훈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거지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이지안을 후계동 아저씨들이 늘 모이던 아지트 정희네로 데려가 잠시 그곳에서 지내게 해준다. 이지안은 마치 오래도록 쉴 곳을 찾지 못하고 그 추운 겨울 길바닥을 헤매다 이제 겨우 둥지를 찾아 돌아온 새처럼 정희 옆에서 잠이 든다. 

<나의 아저씨>에서 후계동이라는 동네도 또 그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드는 정희네라는 선술집도 어찌 보면 현실에 존재할까 싶은 판타지 공간이다. 하지만 이 공간은 바로 판타지이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지위도 위치도 빈부도 남녀도 상관없이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기를 나눌 수 있고,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판타지 공간.

이지안은 여러 차례 거처를 옮겨 다닌다. 사채업자인 광일(장기용)이 찾아내면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집이라고 하면 자신만의 쉴 공간이어야 하지만, 그 곳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버리는 광일 같은 타자는 결코 그에게 쉴 틈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봉애(손숙) 같은 부양해야할 할머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어린 청춘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혹독한 현실이다. 

그나마 그런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박동훈과 정희네에서 만난 아저씨들 그리고 정희(오나라)였다. 그들은 함께 이지안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근처 사는 후배에게 혼자 사는 그를 챙겨주라는 부탁까지 해준다. 차가웠던 그의 공간이 조금은 따뜻해진다. 하지만 박상무(정해균)를 좌천시킨 일이 발각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 이지안은 다시 고시원을 전전하며 떠돌게 된다. 그러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져 춘대(이영석) 할아버지를 찾아오고, 다행스럽게 동훈을 만나 정희네로 오게 된다. 그 먼 여정이 고단하지만, 그래서인지 정희네로 온 이지안이 그토록 안심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드라마가 담으려는 것이 바로 이 여정이었던 것처럼.

공간을 통해 <나의 아저씨>가 담은 진심은 ‘사람의 온기’다. 상처받았어도, 또 망했어도 함께 모여 있어 느껴지는 그 따뜻함. 동훈이라는 인물은 바로 그 ‘온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미운 짓을 해도 사람을 알기 때문에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는 그런 존재. 그래서 이지안이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밉지 않냐고 물었을 때 동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그런 동훈에게 이지안은 비로소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도청을 통해 들었던 동훈의 모든 소리들에게서 느껴지던 그 온기를. “아저씨 소리 다 좋았어요. 아저씨 말, 생각, 발소리. 사람이 뭔지 처음 본 것 같았어요.” 그는 지금껏 살아오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을 비로소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가 말하는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를 얘기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정희네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나듯, 힘겨워도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주며 버티고 서는 그런 존재를 말한다. 너무나 외롭고 괴로워 홀로 제정신에 잠드는 것이 힘들었던 정희는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둥지로 돌아온 듯한 이지안을 만나 비로소 어떤 편안함을 느낀다. 서로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별 이야기 없이도 이해되는 그런 편안함.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온기. 그것이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사람’이 아닐까.(사진:tvN)

‘나저씨’, 우리에게 이런 퇴근길이 있다는 것만으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정희네 가게에는 이제 일터에서 퇴근한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술판이 벌어진다. 일터에서 겪은 스트레스들을 그 퇴근길 술 한 잔으로 풀어낸다. 왁자한 분위기에 술기운에 내놓는 과장된 이야기들은 그래서 어딘지 쓸쓸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퇴근길이 그나마 주는 위로다. 

하지만 정작 정희네 가게를 운영하는 정희(오나라)는 퇴근이 없다. 1층이 주점이고 2층이 집이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이 그의 일과다. 모두가 돌아가는 밤 시간, 정희는 퇴근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자신도 퇴근하겠다고 그들을 따라나선다. 퇴근 기분을 내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정희의 발길 역시 쓸쓸하다. 

정희네 가게가 문을 내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아저씨들과, 그 아저씨들을 따라나선 정희 는 이제 퇴근하고 돌아오는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이지은)을 만난다. 박동훈은 바람을 피운 아내 때문에 퇴근길이 고역이 되었고, 이지안은 늘 그랬듯 휴식보다는 챙겨야할 것들이 더 많은 퇴근길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저씨들과 정희 그리고 박동훈과 이지안이 함께 골목길을 걸으며 퇴근하는 그 길이 달라보인다.

수다쟁이 아저씨 제철(박수영)은 같은 동네에 사는 여직원을 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하고, 그의 이야기에 그만큼 직장 상사가 싫은 거라며 그의 친구가 대꾸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직장 여직원의 퇴근길을 함께 하는 박동훈이 눈치 없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하릴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정겹고 훈훈하다. 제철은 세상의 모든 부장놈들은 “미친 놈, 개놈, 죽일 놈들”이라며 굳이 혼자 가도 된다는데 오버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정희는 갑자기 살갑게 이지안에게 자신들도 아가씨 같은 20대가 있었다며 이렇게 나이들 거 생각하니까 끔찍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지안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한다. “전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이지안의 그 말에 정희도 아저씨들도 자못 진지해진다. 너스레를 떨며 농담을 하던 아저씨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이 20대 같지 않은 이지안을 바라본다. 그 의미심장한 말에 깊은 공감을 하는 눈치다.

계단을 올라 이지안의 집 앞까지 가는 길. 늘 혼자 외롭게 혼자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는다. 집 앞은 이지안에게는 상처가 떠오르는 곳이다. 빚독촉을 하는 이광일(장기용)에게 두드려 맞기도 했던 곳. 그래서 늘 불안함이 느껴지는 곳이지만 이렇게 함께 걸어 도착한 그 곳은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동훈의 형 상훈(박호산)은 갑자기 그 집 앞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창을 향해 누군가를 부른다. 동네 아는 동생이 창문을 열자, 상훈은 그에게 이 집에 사는 이지안의 안전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한다. 

“잘 자요”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정희와 아저씨들 뒤로 이지안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상훈은 “잘 자요. 또 봅시다.”라고 말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지안에게 정희는 “우리 가게 놀러오라”고 말한다. 박동훈은 들어가라며 “문단속 잘하고” 무슨 일 있으면 아까 봤던 이웃집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돌아가는 그들을 이지안은 오래도록 문 앞에 서서 바라본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퇴근길. 그 흔한 퇴근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의 아저씨>가 그려낸 이 퇴근길 풍경은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힘들게 살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거라는 것. 그건 나이 들어 이제 퇴직을 앞둔 중년들이나,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청춘들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아저씨>는 그 퇴근길 풍경 하나 속에 누구에게나 마주하고 있는 힘겨운 현실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퇴근길 하나가 주는 위안을 담아낸다. 

이지안을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 정희가 문득 입을 연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려서도 인생이 안 힘들지는 않았어.” 인생 다 산 것처럼 자신들만 힘들다 생각했던 이 중년들은 문득 청춘들의 힘겨움도 만만찮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 가게에 놀러오라는 정희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적어도 퇴근길에서의 작은 위로 정도라도 함께 나누자는. 그래야 최소한 무너지지 않고 또 다른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 테니.(사진:tvN)

먹방 범람 시대 <조용한 식사>가 주는 힐링이란

 

방송사고인 줄 알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앞에 놓고 배우, 가수 같은 연예인들이 앉아 있는데 도대체 말이 없다. 일반적인 방송에서는 몇 초 이상 침묵이 흐르면 방송사고가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방송이 있다. 바로 올리브TV<조용한 식사>.

 

'조용한 식사(사진출처:올리브TV)'

<조용한 식사>는 그 외형적인 틀만 보면 요즘 트렌드가 된 먹방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먹방이 가진 틀에서 많은 것들을 뒤집어 놓았다는 점에서 특이한 먹방이다. 혼자 나와 음식을 먹는다는 점은 먹방과 같지만, 이들이 음식의 맛을 호들갑스럽게 설명하고 소개하는 장면 따위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존 먹방들과는 다르다.

 

<조용한 식사>는 제목처럼 그저 출연자가 조용히 음식을 먹는 것으로 오롯이 프로그램을 채운다. 한 사람 당 10분 남짓의 방송 분량에서는 그래서 이들이 얘기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전어를 앞에 두고 앉은 김뢰하는 잘 손질된 전어를 한쪽에서 구워 손으로 뜯어먹는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 먹는 장면과 소리들이 집중된다.

 

전어가 구워지는 소리나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 자체로 침샘을 자극한다. 옆에 놓여진 막걸리를 따서 잔에 따르는 소리 역시 먹는 장면 그 자체보다도 더 감각적이다. 그래서 먹방이 갖춰야 하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상황들은 모든 걸 단순화시켜버림으로써 오히려 강화된다. 말이 없고 특별한 상황도 없이 그저 먹는 것 하나에 시각과 청각을 집중시키는 것만으로.

 

물론 이들은 한 마디 하지 않아도 그 먹는 장면을 통해 그들의 성격이나 취향을 드러낸다. 김뢰하가 어딘지 거침없는 상남자의 성격을 손으로 전어를 뜯어먹는 모습으로 보여준다면, 강화도의 한 야외 포차처럼 보이는 곳에 앉아 갓 잡은 대하구이를 먹는 장기용은 신세대답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방송이야기를 하면서 새우를 먹는다. 초지진항에 앉아 활어회를 먹는 황석정은 회만큼 고추나 소주를 곁들이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털털한 캐릭터다.

 

<조용한 식사>에는 좌측 상단에 세 개의 단순한 태그가 자막으로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초지진항#활어회#황석정이나, ‘#홍대#수제버거#김기방식의 자막이다. 너무 단순한 포맷이기 때문에 이 세 개의 태그만으로도 그것이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는지가 모두 설명된다. 거기에는 누가 출연하고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먹는가라는 이 프로그램의 모든 정보가 망라된다.

 

배경화면이나 소음 그리고 거기에 가끔 얹어지는 음악은 <조용한 식사>의 훌륭한 미장센 효과를 준다. 김뢰하가 전어를 먹을 때 뒤편으로 펼쳐지는 파란 바다나, 김기방이 수제버거를 먹을 때 뒤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즐기는 홍대의 한 식당 같은 배경은 그들이 앉은 공간의 현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건 맛나게 음식을 먹고 있지만 식욕보다 더 채워지는 것이 그 시간이 주는 힐링의 느낌이다. 최근 들어 싱글족들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혼밥’ ‘혼술문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들의 문화가 쓸쓸함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에게만 충실할 수 있는 힐링타임이라는 걸 이 프로그램은 짧은 영상으로 보여준다. 먹방이 범람하는 시대지만, 참신한 역발상으로 입의 감각이 아닌 공간과 시간이 주는 느낌을 전하는 프로그램라니. 그 미니멀한 선택들이 의외의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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