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이제 홍일지구대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열라 목숨 걸고 처맞고 일해도 결국에는 그런 놈들 한두 명 때문에 우리 경찰들 다 싸잡아서 비리경찰, 짭새, 양아치 경찰 소리하는 거 한두 번 들어?”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에서 은경모(장현성)는 오양촌(배성우)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부사수였던 이주영(장혁진)이 도박단과 성매매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에 눈이 돌아버려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오양촌을 나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양촌의 분노는 공감할만한 일이었다. 그래도 한때 함께 일 해왔던 부사수였기에 배신감이 더 컸던 것이다. 게다가 이주영은 오양촌의 사수가 사고로 죽었을 때 오양촌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증거물이었던 블랙박스를 감사실에 넘기지 않았던 전적이 있다. 결국 오양촌은 이주영을 챙기기 위해 지구대로 강등되는 걸 감수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 배신감이 얼마나 더 컸겠는가.

<라이브>에서 오양촌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 같은 존재다. 그는 사수를 잃었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고, 아내 안장미(배종옥)의 요구에 의해 결국 이혼까지 했다. 젊은 시절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이순재)는 이제 힘이 다 빠져 마치 사죄하듯 엄마의 병실을 다니는 것이 일과가 됐다. 결국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엄마의 연명치료를 끊어버리려고까지 한다. 그것이 자신들 마음 편하려고 하는 짓일 뿐이라고 한탄하며.

알 수 없는 분노가 가득하고, 모든 일들이 꼬여버린 듯한 상황이 바로 오양촌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은경모는 그에게 아픈 이야기를 쏘아댄다. “네가 경찰 레전드라고? 야, 웃기지 마. 넌 아무 것도 아냐. 내가, 동료가 의지할 수 있는 놈도 아니고 안장미가 남편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 놈도 아니고, 너는 그냥 동료, 여편네 걱정이나 시키는 성질 더러운 덩치 큰 애새끼야. 알아?”

그래서 화가 가득한 이 인물에게 어떤 불편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들여다볼수록 이 인물이 가진 아픔이나 분노에까지 공감하게 된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뒤틀어져버린 세상의 많은 이들이 어쩌면 ‘분노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이든 경찰 이삼보(이얼)가 앙심을 품은 고등학생의 사주에 의해 촉법소년들이 벌인 폭력에 가차 없이 당하는 장면은 단적이다. 

이제 나이 들어 대적할 힘이 없어 두들겨 맞은 일을 이삼보는 애써 숨기려 한다. 이제 시보로 부사수가 된 송혜리(이주영)에게조차 그는 사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늙은 사수’ 때문에 사건다운 사건을 맡지 못한다는 송혜리의 푸념에 발끈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과거처럼 혈기 넘치는 젊은 경찰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핸드폰에는 송혜리를 ‘내 마지막 시보’라고 적어놓는 그 마음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라이브>가 보여주는 경찰의 모습은 우리가 늘 봐왔던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삼보처럼 나이 들어 두들겨 맞는 경찰의 모습이 그렇고, 오양촌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등되는 경찰의 모습이 그러하며, 안장미처럼 경찰생활이 가진 특징 때문에 가정적이지 못한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같이 살아가는 경찰이 그렇다. 하는 일들도 엄청난 강력 사건만이 아니라 밤이면 주폭들에 의해 벌어지는 시비를 말리느라 온 몸에 멍이 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어딘지 거칠고 현실에 적응을 못하며 날뛰는 듯 보이는 오양촌의 분노와 상처가 불편하면서도 점점 공감하게 된다. 물론 은경모가 말하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게 진정한 레전드 경찰의 모습이겠지만,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에서 어떤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진다. 바로 이 지점이 <라이브>가 그리려는 있는 그대로의 경찰의 모습이 아닐까. 늘 상 아픈 사건들을 들여다봐야 하는 그 직업적 특성상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아픔과 분노를 느낄 수 있는 이들이라는 것.(사진:tvN)

‘맨투맨’의 브로맨스, 멜로와는 다른 휴머니즘이 보인다

다크데스 여운광(박성웅)과 김가드 김설우(박해진). 닉네임만으로 보면 이 조합은 B급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배우로서 영화 속에서는 ‘나쁜 놈’으로 불리는 다크데스지만 실제로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와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남자 여운광.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특명을 받고 접근한 코드명 K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의 조합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두 남자들을 중심에 세우고 있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대놓고 브로맨스를 그려보겠다는 건 <맨투맨>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지할 수 있는 일. <맨투맨>은 보디가드와 배우라는 직업적 관계로 만난(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만난 것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여운광이 방문하기로 한 러시아의 빅토르 저택에서 목각상을 빼오는 것이 김설우의 임무지만,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며 조금씩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운광이 연기 연습을 하겠다며 김설우에게 여자 역할을 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코믹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져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의외로 여자 역할을 잘 연기해내는 김설우는 연기 연습이 끝난 후에도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몰입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이건 웃음을 위한 코미디 설정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또한 연기로 시작한 김설우의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과도하게 몰입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에서 멜로 관계는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운광의 1호팬이며 그의 매니저인 차도하 실장(김민정)은 물론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관계처럼 보인다. 여운광이 살뜰하게 차도하를 챙기지만 거기에 사랑의 감정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광은 한 때 그가 사랑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이별통보도 없이 모승재(연정훈)와 결혼을 해버린 송미은(채정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지만 아직도 그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광과 이미 결혼한 송미은 사이에 멜로 관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맨투맨>에서 집중되는 건 멜로가 아니다. 대신 여운광과 김설우의 관계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김설우를 처음부터 스토커로 오인했던 차도하가 여운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된다. 또 여운광과 차도하 사이에 흐르는 오누이 관계 같은 훈훈함이나, 김설우와 그의 국정원 담당관인 이동현(정만식) 사이의 형제 같은 모습도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이동현과 목각상 프로젝트의 국정원 팀장인 장팀장(장현성)의 관계도 사무적 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국밥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맨투맨>은 그래서 멜로 관계를 살짝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느껴지게 하는 그 훈훈함이 드라마의 중요한 정서로 깔려 있다. 멜로를 넘어선 휴머니즘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의 의미는 단지 여운광과 김설우라는 ‘남자 대 남자’의 의미에만 머무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혹 형식적 관계를 벗어버린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시그널>,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사이 시즌2 가능성

 

이토록 완벽한 엔딩이 있을까.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섣부른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새드엔딩을 그리지도 않았다. 이재한(조진웅)은 죽지 않고 차수현(김혜수)에게 돌아왔지만 김범주(장현성)를 살해한 후 실종되었다. 이렇게 과거가 바뀌자 박해영(이제훈)과 차수현의 미래도 바뀌었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총에 맞아 사망한 박해영은 되살아났고, 형의 누명이 이재한에 의해 밝혀지면서 가족은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차수현과 함께 했던 미제사건 전담팀은 아예 사라져버렸고 자신은 전혀 다른 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재한의 생사가 궁금한 그였다. 그는 이재한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했고 그 길에서 차수현을 다시 만났다.

 

드라마는 쉽게 그들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대신 이재한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요양병원을 찾아가는 박해영과 차수현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정도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재한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하지만 그가 죽었을 가능성 또한 드라마는 버리지 않고 열어두었다.

 

왜 이처럼 쉽게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또 그렇다고 새드엔딩을 보여주지도 않았을까. 아마도 해피엔딩을 마지막회에 갑자기 보여주는 건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지금껏 달려온 그 간절함의 기조를 상당부분 뒤집을 위험성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의 메시지는 마지막회에 담겨진 포기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그 엔딩에 있지 않은가. 섣부른 해피엔딩은 현실의 무수한 미제사건들에 대한 간절함까지 상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마치 드라마가 모든 걸 해결해준 것 같은.

 

그래서 끝까지 해피엔딩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시그널>은 세 사람이 모두 살아있다는 희망의 뉘앙스를 남겼다. 그 희망은 또한 시청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시즌2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 이재한이 병원에서 창밖을 보다가 뒤돌아서는 모습과 그 옆에 놓여진 무전기는 지금 바로 시즌2로 이어져도 아무 손색이 없는 엔딩이었다. 그만큼 작가도 시즌2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엔딩에서는 느껴졌다.

 

시즌2에 대한 의지가 작품의 엔딩에 담겨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늘 시즌2가 어려웠던 건 배우들이 모두 여기에 대한 동의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와 PD는 그 의지를 이미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이제훈은 일찌감치 시즌2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조진웅과 김혜수가 의지를 드러낸다면 시즌2는 기정사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지상파드라마가 시즌2를 요구받았어도 실현시키지 못했던 반면 tvN은 시즌제를 해왔던 점도 <시그널>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물론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막돼먹은 영애씨><응답하라> 시리즈 등은 시즌제를 통해 하나의 확고한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았던가. 이처럼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을 방송사가 외면할 까닭이 없다.

 

무엇보다 <시그널> 시즌2에 대한 요구는 이 드라마가 그토록 꿈꿔온 미제사건들의 해결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절함은 어찌 보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뛰어넘는 무전기 설정을 시청자들이 허용한 이유이기도 하고, 이대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포기하지 말고 이 드라마가 달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그널>의 시즌2를 열망하며 그로 인해 이 땅의 많은 미제사건들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게 만드는 간절함은 그러니 애초에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이기도 한 셈이다

<시그널>의 욕망, 조진웅의 몸과 이제훈의 머리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는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경찰이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지극히 당연한 대사지만 이 대사가 주는 울림은 너무나 크다. 상식보다 권력이 앞서는 법 정의 현실에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의 이재한(조진웅) 경사라는 캐릭터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어떤 권력의 협박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할 일을 실천해 가는 그런 인물.

 


'시그널(사진출처:tvN)'

이재한 경사는 지금의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당대의 형사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도사건 수사에서는 제보만으로 엉뚱한 인물을 체포함으로써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생각보다는 몸이 앞서지만 그가 여느 형사들과 다른 것은 정의에 대한 남다른 신념과 소신이다. 그의 대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지만 그는 죄를 지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심지어 잘 아는 사람이라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와는 정반대의 형사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총을 쏜 안치수(정해균) 같은 형사다. 그는 바로 이 원죄 때문에 상관인 김범주(장현성)와 같은 배에 타게 된다. 이재한 경사처럼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던진 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권력과 결탁해 제 배를 채우는 김범주나 안치수 같은 인물은 현재까지도 잘 살아간다. 이 부조리한 현실은 시청자들이 분노하게 되는 이유다.

 

이재한 경사가 몸으로 뛰는 형사라면 그와 무전기로 연결되어 있는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은 머리로 승부하는 형사다. 그는 프로파일러답게 모든 정황들을 사건현장의 작은 단서에서도 찾아낸다. 재벌가 자제로서 대도사건의 진범이자 이와 관련해 살인을 저지른 변호사 한세규(이동하)를 두뇌싸움으로 증언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사이다 같은 시원한 한 방을 보여준다. 요즘처럼 법을 잘 알고 그래서 법망을 이용하거나 빠져나가는 점점 지능화되는 범죄에서 박해영처럼 머리를 쓰는 형사가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무전기라는 판타지로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의 형사 이재한 경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의 조합은 그래서 완벽하다. 이재한은 몸으로 뛰고 박해영은 머리로 분석한다. <시그널>이 타임 리프라는 설정으로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를 각각 우직한 행동파와 과학수사의 상징처럼 엮어놓은 건 흥미롭다. 이 과거와 현재의 중첩이 그저 시간을 뛰어넘는 신기함만이 아니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어딘지 과학수사는 아니더라도 몸으로 더 뛰어 범인을 잡으려는 과거의 형사와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과학수사를 해나가는 현재의 프로파일러의 조합을 이상적인 형사상으로 그려내는 것.

 

물론 이 상이한 성향의 두 사람이라도 같은 점은 있다. 그것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다. 과거 이재한의 상사였고 현재는 박해영의 상사인 김범주의 그 긴 세월동안 해온 권력과의 결탁과 압력에도 두 사람은 모두 소신 있는 수사를 해나간다. 결국 <시그널>의 공적으로서 한세규나 김범주 같은 인물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악의 고리이고 이재한과 박해영 두 사람 모두가 대결해야할 적이 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만큼 법 집행이 오래도록 권력과 결탁해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형사. 한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끝없이 두뇌를 사용하지만 모두 정의 실현에 갈증을 가진 그들의 조합은 이상적이다. 그 이상적인 조합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부조리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안치수, 김범주와 대결하는 이야기. <시그널>은 이 대결구도를 통해 지금 현재 우리네 서민들이 느끼는 공정하지 못한 법 집행의 연원이 꽤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만 같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그 뿌리 깊은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 그것이 이 두 시대의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형사들을 이어놓은 이유가 아닐까.

<어셈블리>의 진상필, 진상이 상필이 되기까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배워야하는 걸까. KBS <어셈블리>에서 진상필(정재영)은 집권당인 국민당의 백도현(장현성)에 의해 보궐선거에 기획 공천되어 당선된 초보 국회의원이다. 조선소 용접공으로 살아오다 정리 해고되어 복직투쟁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있는 인물이 되었지만 본래 국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상필은 이 바닥에서 정치 베테랑으로 잔뼈가 굵어온 최인경(송윤아)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녀의 전략을 통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진상필은 그녀를 자신의 선임보좌관으로 끌어들인다.

 


'어셈블리(사진출처:KBS)'

국회의원이지만 현실을 모르는 진상필은 마치 돈키호테 같다. 국민당은 의원들에게는 노란자위 분과인 예산위에 배치시켜 허수아비로 그를 활용하려 하지만 몰라서 무식한 이 의원은 거꾸로 국민당의 뒷통수를 친다. 국민당이 내놓은 추경 예산안을 결국은 국민의 빚이라며 반대하고 나선다. 그 과정에서 최인경은 그녀답지 않게 마음이 흔들린다. 본래 백도현의 지시에 따라 진상필을 허수아비로 세워야하는 것이지만, 의외로 이 바보 같고 우직스런 믿음을 보여주는 의원의 뜻에 동참하게 되는 것.

 

<어셈블리>는 진상필이라는 정치 무식자가 조금씩 정치를 알아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정치 현실을 잘 모르는 그에게 최인경은 정치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그녀에게서 실질적인 정치 현실을 배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가끔씩 역전된다. 즉 최인경 역시 정치에 욕망을 가진 인물로 정치 바닥에서 조금씩 성장해왔지만, 그러면서 점점 잃어가는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상필이 갖고 있는 순수한 믿음 같은 것이다. 정치라면 오로지 국민을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그 믿음.

 

실로 이 정치판은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밥 그릇 싸움이 치열하다. 국민당의 원조보수이자 반청파(반청와대파)의 거두인 박춘섭(박영규)정치란 머릿수 싸움이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에게 정치는 주고받는 거래와 같다. 추경예산을 추인하는 과정에서 국민당의 친청파(친청와대파)인 백도현과 거래를 한다. 추경 예산안을 밀어주는 대가로 자신 쪽 반청파 의원들이 얻어갈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인물. 같은 여당이지만 반대쪽에 서 있는 백도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언뜻 젊은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 역시 계파 정치의 거래와 대결의 한쪽 축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국민당과 영 어울리지 않는 진상필이 거기 들어오게 된 것도 결국은 이 박춘섭과 백도현의 거래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돈키호테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진상필이 의외의 심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을 얘기하는 대표에게 무슨 여기가 봉숭아학당이냐고 일침을 날린다. 중징계를 받을 위기에서도 굽히지 않던 진상필이지만 그는 길거리에서 시위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대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그는 백도현을 찾아가 무릎을 꿇는다.

 

이것은 어찌 보면 진상필의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뭐 하나 정치 현실을 모르고 순수한 열정만을 내세우던 그가 한 발짝 현실로 다가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성장은 불안한 것이기도 하다. 누구는 처음부터 계파정치에 빠지고 싶었겠는가. 대의를 얘기하며 하나하나 타협하다보니 결국은 그 깊은 수렁 속에 빠져 애초의 초심이나 순수 따위는 잃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진상필의 이런 행보는 성장이면서 퇴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현실적으로 성장이지만 본래 갖고 있는 순수성으로 보면 퇴보인 것.

 

진상필을 보좌하는 최인경은 그래서 어쩌면 거꾸로 그를 통해 새로운 성장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정치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는 최인경이 잃고 있던 그 국민을 향한 열정을 진상필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

 

<어셈블리>가 그저 정치를 주마간산식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진상필과 최인경의 관계다. 겉으로 보면 진상필이 최인경에게 배우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꾸로 최인경이 진상필을 통해 배우는 것 역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현실과 이상의 상보적인 관계는 어쩌면 우리가 정치에 진저리를 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사실은 잘 들여다보지 않으려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진상필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밑으로 들어온 김규환(택연)은 국회를 인간쓰레기들 사는 쓰레기장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의 대중들에게는 그리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사실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모습을 과연 우리네 대중들이 본 적이 있던가. 하지만 그걸 바꾸기 위해서라도 그 안의 생리를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진상필과 최인경이라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야하는 관계를 통해서



<풍문> 고아성, 정성주 작가의 깊이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캐릭터가 탄생했을까.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고아성)은 놀라운 캐릭터다. 한인상(이준)의 아이를 가져 그의 아버지 한정호(유준상)라는 상류층 괴물의 집에 포획된 존재처럼 보였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이 세상에 적응했고 괴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의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주무르는지를 터득해간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언니 서누리(공승연)가 상류층 자제를 잡아 그 세계에 입성하려 했다가 그 소문이 찌라시에 퍼지고 망신만 당하게 되자 서봄은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 서누리를 만나 따끔하게 현실을 인식시켜주고 최연희(유호정)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서정연)을 시켜 한정호의 업무 비서인 양재화(길해연)에게 그 물의를 빚게 만든 상류층 자제의 집안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한정호에게 이야기를 흘리게 한다.

 

결국 한정호가 그 상류층 자제의 집안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태는 반전된다. 즉 서누리가 그 상류층 자제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거꾸로 그 상류층 자제가 서누리를 쫓아다닌 사실로 이야기가 둔갑한 것. 이 소문은 다시 찌라시를 타고 퍼져나감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 집안의 비서들은 아주 조금씩 이 작은 사모인 서봄의 존재감에 압도당한다. 최연희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에게 자신은 시어머니와 달리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무릎 꿇리고 나아가 그녀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런 섬뜩한 면을 보이면서도 시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리숙한 듯 행동한다. 이선숙이 무릎 꿇고 있는 걸 목격한 최연희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서봄은 제가 뒤끝이 좀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마치 아이가 하는 행동인 것처럼 위장한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초반부에 보여준 것이 한정호라는 괴물을 블랙코미디식으로 풍자해낸 것이라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드라마는 이 슈퍼갑의 세계에 들어온 평범한 서민 을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은 자신을 대접해주는 척 하는 한정호 때문에 우쭐해하며 갑 행세가 주는 권력놀이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고, 서누리는 동생을 질투하며 자신도 그 욕망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유일하게 서봄의 엄마 김진애(윤복인)만이 이런 가족의 변화를 감지하며 불안해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 서봄이다. 그녀는 시부모 앞에서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하지만 뒤에서는 엄숙한 어른의 얼굴로 비서들을 혼쭐내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 또한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보여주는 지적 능력을 통해 최연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인 한인상에게는 여전히 연인 같은 풋풋함을 보여주고 친정에는 애틋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서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그녀는 섬뜩하면서도 애잔하다. 그 변화가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의 생존본능이라는 데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강해져야 친정 가족들도 보호해줄 수 있다는 자각은 서봄의 변화를 만든 동력 중 하나다. 그리고 자기가 결국은 기대야할 한정호와 최연희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티를 낸다. 고졸이라는 사실을 굳이 일깨우는 최연희에게 . 고졸 딸께요.”라고 말하는 어른 아이.

 

정성주 작가가 그리는 갑과 을의 세계는 거기 서 있는 인물의 태생적 문제가 아니라 그 위치와 시스템이 만드는 권력적 관계로서 그려진다. 즉 서봄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양가적 감정의 정체는 그녀가 을의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갑의 시스템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실로 정성주 작가가 가진 세계의 깊이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를 서봄이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고아성의 놀라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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