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일기’, 농사의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는 충분하지만

tvN 새 예능프로그램 <식량일기>가 첫 회에 주로 화제가 된 건, 과연 직접 알에서부터 부화시켜 키운 닭을 과연 잡아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즉 출연자들이 처음 상견례(?)를 할 때 사온 닭과 식재료들로 닭볶음탕을 해먹었을 때는 그토록 맛있기만 했던 그 음식을, 이제 그 재료들까지 직접 생산해 만들어먹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지자 과연 키운 닭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딜레마가 생겼던 것. 

이는 닭을 식량으로 보느냐 아니면 관계를 맺은 하나의 생명으로 보느냐의 차이였다. 내가 직접 키우지 않고 누군가 잡은 닭은 아무런 감정 교환이 없었다는 점에서 식량으로 볼 수 있지만, 알이 부화되어 나온 병아리들을 손수 키우며 그 과정을 들여다본 이들은 쉽게 그 닭을 식량으로 치부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중간에 갑자기 진중권과 최훈을 등장시켜 어찌 보면 ‘철학적’일 수 있는 이 딜레마를 두고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식량일기>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딜레마이기도 했다. 즉 알에서부터 병아리가 되고 또 병아리가 닭이 되는 그 과정을 담는 방식에 있어서,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재미 포인트가 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고 있는 ‘식량’이라는 관점을 보여주는 데는 불편함이 생겨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자라는 작물들이나 성장하는 닭을 그저 식량으로만 보며 무심하게 다룬다면 프로그램의 재미 부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화기에 달걀을 넣고 21일을 기다리며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탄생 과정은 신비하기까지 했지만 그렇게 감정을 부여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약간의 불편함은 피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 병아리가 닭볶음탕의 재료가 되는 걸 자꾸 상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현대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요리해 먹는 음식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길러진 것들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과물인 식량의 재료로서 닭고기를 요리해먹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그건 우리가 없는 것처럼 치부해온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어서라는 걸 이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가 충분해지는 만큼 <식량일기>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를 추구하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농사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다. 농사의 과정을 보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보는 재미를 주기는 쉽지 않다. 이건 이미 <청춘불패>나 <인간의 조건> 도시농부편 같은 프로그램들이 가졌던 딜레마이기도 했다. 다큐적인 의미는 충분했지만 그렇게 의미가 강해질수록 예능적인 재미를 추구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는 것.

과연 <식량일기>는 직접 키운 닭을 먹는다는 사실이 주는 딜레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농사라는 소재가 갖는 의미만큼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다큐적으로는 흥미로운 실험이지만 예능으로서의 의구심이 남는 대목이다.(사진:tvN)

‘슈가맨2’, 솔리드 대미 장식에 담긴 취지와 재미 사이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2>가 종영했다. 그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은 솔리드였다. 21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솔리드. 그들이 무대에서 부르는 ‘이 밤의 끝을 잡고’는 정말 이 마지막 <슈가맨>의 끝을 잡고픈 시청자들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또 전주만으로도 100불을 달성한 ‘천생연분’은 <슈가맨2>의 무대를 콘서트장처럼 만들어버렸다. 

솔리드의 노래는 방청석은 물론이고 안방극장 시청자들까지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노래의 가장 큰 힘은 역시 듣는 순간 그 시절로 우리를 되돌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솔리드의 감미롭고 때론 강렬한 목소리를 들으며 반가움에 눈물까지 흘리는 방청객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슈가맨2>의 대미를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이 솔리드라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취지와 재미 사이의 고민을 실감하게 한다. 사실 취지를 굳이 따지자면 솔리드를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게다. 많은 히트곡을 냈으며 지금도 대표적인 R&B 그룹이 아닌가. 게다가 김조한은 <나는 가수다> 같은 무대나 <무한도전> 가요제를 통해 지금도 ‘R&B 대디’라고 불리는 가수다. 

굳이 세대를 나눠 불을 켜는 것으로 추억을 소환시키는 장면을 비주얼화한 건 다름 아닌 이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이 ‘원 히트 원더’이기 때문이다. 강렬하게 하나의 히트곡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그들을 과연 지금 기억해내는 관객이 얼마나 있을까가 궁금해지는 대목이고, 그래서 켜진 불 하나 하나는 더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솔리드가 달성한 100불은 놀랍고 반갑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무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룹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슈가맨>이 가진 고민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프로그램이 잘 되기 위해서는 그 날 무대에 오르는 가수가 너무 몰라도 또 너무 알려져도 곤란한 게 이 <슈가맨>이 스스로 지운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넘어서기 위해 <슈가맨>은 시즌1과는 달리 시즌2에서는 그 취지에 대해 엄밀한 잣대를 세우지는 않았다. 솔리드를 포함해 쥬얼리나 양동근 같은 가수들이 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렇게 엄밀한 취지에서 살짝 유연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슈가맨2>는 꽤 괜찮은 시청률과 호응을 얻어냈다. 그것은 ‘원 히트 원더’라는 그 취지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추억을 소환해낸다는 재미를 시청자들이 더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 때 굉장한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무얼 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가수들을 소환해 노래도 듣고 당시의 이야기도 나누는 그 대목에 이끌렸던 것.

만일 <슈가맨>이 시즌3로 돌아오게 된다면 먼저 그 엄밀한 취지보다는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으로서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좀 더 취지에서 유연해질 수만 있다면, 주말 밤 ‘이 밤의 끝을 잡고’픈 시청자들의 추억 여행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사진:JTBC)

'전참시' 방송 파문, 고의성 없었다지만 의도는 다분했다

“이 사건에서 제작진의 ‘고의성’은 없었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이고 계십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저도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아 조사위원들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의 고의적인 행동이 있었다면 MBC는 그에 대한 강도 높은 책임을 물음으로써 좀 더 쉽게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누구 한 사람의 고의적 행위가 아니라 MBC의 제작 시스템, 제작진의 의식 전반의 큰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MBC로서는 한 개인의 악행이라는 결론보다 훨씬 아프고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결론입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세월호 뉴스보도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활용하고 거기에 ‘어묵’이라는 자막을 사용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마무리됐다. 결론은 ‘고의성’은 없었다는 것. 하지만 이 결론에 대해 대부분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공식 입장을 통해서 MBC 최승호 사장 역시 그런 반응에 대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 누가 세월호 보도 장면을 예능 프로그램에 재미를 위해 갖다 쓰면서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사결과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밝혀진 것처럼, 분명 그 세월호 보도 장면을 선택하고 뒷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한 건 제작진이다. 물론 그 영상을 선택한 사람과 직접 만진 사람 그리고 그렇게 흐릿하게 처리된 영상을 허용한 사람은 다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가 다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는 분명 그 장면이 세월호 보도 장면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승호 사장도 공식 입장에 이 부분에 대한 침통한 심정을 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세월호 영상인줄 알면서도 ‘흐리게 처리하면 세월호 영상인 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 해당 영상을 사용한 부분입니다. 타인의 아픔이 절절하게 묻어 있는 영상을 흐리게 처리해 재미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식이 문제입니다. 방송의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편집하는 영상이 누군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고민하지 않는 안이함이 우리 제작과정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리고 MBC의 시스템은 그 나쁜 영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만들어진 뒤에도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보도 장면이라는 걸 알면서도 재미를 위해 제작진이 그걸 활용했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고의성은 없었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의도’가 있긴 있었는데 그 ‘의도’가 도대체 뭐였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최승호 사장이 말하는 ‘고의성은 없었다’는 데 들어가 있는 의도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조롱이나 비하의 의도를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왜 하필 그 아픈 장면까지 활용하게 된 걸까. 여기서 드러나는 건 다른 의도다. 그건 바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어떻게든 ‘재미’를 주겠다는 그 의도이고, 그 ‘재미’를 위해서라면 뭐든 가능하다는 인식이 만들어내는 의도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재미를 위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행위까지 하는 그런 불순한 ‘의도’들이 생겨나게 된 걸까. 거기에는 ‘경쟁적인 환경들’이 존재한다. 시시각각 시청률로 환산되며 비교되는 방송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시선을 잡아끌려는 의도. 또 방송사 내부의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서 생겨나는 도덕적 해이. 그런 의도들이다. 

아마도 이번 사태를 ‘일베’의 침투라고 결론 내리고 관련자를 처벌한다면 보다 명쾌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이 문제를 ‘외부의 적’이 만들어낸 사안으로 처리하면 ‘내부의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일베에서 만들어진 영상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지만, 이른바 ‘일베 논란’ 같은 사태들이 방송사에서 반복되어 터져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적지 않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방송사 내부에서 그 경쟁구도 속에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상식을 넘어서는 것조차 둔감해진 채 부절절한 영상을 편집해 사용하는 그 행위가, 일베에서 벌어지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 일베는 저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비뚤어진 경쟁적인 시스템 안에 이미 태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재미와 관심을 위해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들까지도 자행되게 된 환경. 

그래서 이번 사태는 일베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일베이고, 고의성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미 내재된 의도가 시스템 속에 이미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승호 사장이 말한 ‘MBC의 제작 시스템, 제작진의 의식 전반의 큰 문제’는 그래서 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방송사들이 이번 사안을 ‘먼 산 불구경’이 아니라 자신들 내부에 존재하는 ‘불씨’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사진:MBC)

‘숲속의 작은 집’, 저들이 이상한 걸까 우리가 이상한 걸까

이상한 즐거움이고 이상한 재미다. 도시에서와 정반대로 살아보는 재미와 즐거움. 뭐든 돈만 주면 다 만들어진 것들을 척척 살 수 있는 도시에서라면, 직접 물건을 만드는 일이 번거롭고 귀찮은 일 정도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숲 속에 덩그라니 놓인 작은 집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톱으로 썰어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선반 지지대에 걸어 옷걸이 하나를 만드는 일이 꽤 즐겁다. tvN 예능 <숲속의 작은 집>이 보여주는 새로운 재미거리다. 

늘 그냥 놓여져 있던 외투가 눈에 걸렸다는 박신혜. 만일 그런 작은 집이 아니라 도시의 아파트였다면 그런 게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일이다. 이미 마련된 수납장이나 장롱에 걸어두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은 집에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외투 하나를 수납할 수 있는 걸 나가서 사오는 일도 일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내 손으로 만들어본다. 그런데 늘 다 만들어진 것을 사기만 했던 때와 달리, 의외로 품을 파는 일이 즐겁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이 훨씬 내 것 같이 다가온다. 내 손길이 닿은 나만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만드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옷걸이를 만들고 세면대 옆에 수건걸이를 또 만드는 박신혜는 나무의 거친 껍질 면을 사포로 밀어 부드럽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나무껍질을 미는 소리가 그 껍질에 따라 다르다. 아무런 소리도 틈입하지 않는 숲 속에서 그 소리들의 차이가 미세한 것까지 느껴진다. 도시에서 우리가 청각의 즐거움이라고 하면 고작 귓구멍을 꼭꼭 막고 듣는 이어폰 음악소리 정도의 자극이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 숲속에서는 그저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오만가지 소리들이 즐겁다.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빗소리, 장작이 타는 소리, 개울가 물 흐르는 소리... 소리가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 컸던가.

<숲속의 작은 집>은 시작 전부터 나영석 PD가 단단히 얘기한 것처럼 ‘심심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심심하다’는 표현은 꽤 상대적인 개념이다. 숲 속이기 때문에 도시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과 비교하면 심심하다는 것. 아니 도리어 이 프로그램은 도시의 그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로부터 탈출해 적극적으로 심심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그 도시의 기준으로의 ‘심심함’을 추구하자, 그 심심함 속에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들이 발견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같은 미션은 멀티태스킹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한 가지에 집중하는 재미를 다시금 되살려주고, ‘한 시간 동안 책 읽기’ 미션은 다른 모든 걸 지워버린 채 몰입하는 즐거움을 깨워준다. ‘3시간 동안 식사하기’ 미션은 바쁜 일상 속에서 먹는 일이 온전한 즐거움이 되지 못하고 ‘때우는 일’이 된 우리의 새로운 식감을 열어준다. 

소지섭은 ‘빗속 산책’을 통해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찾았다. 마치 숲을 통째로 물에 우려낸 듯 밀려오는 그 냄새가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고, 이름 모를 꽃과 풀과 이끼 위에 올라앉은 빗방울들이 ‘빛 방울’처럼 달라붙어 그것이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품어내는 신비로움을 목격하게 해줬다. 도시생활에서는 도무지 발견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감각들의 향연이 그 ‘심심함’의 세계 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숲속의 작은 집>은 거기 피실험자로 등장하는 박신혜와 소지섭의 숲 속 일상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왜 공공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저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상한 건, 저들일까 아니면 우리들일까. 끊임없이 숲속 ‘심심함’ 속에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내려 노력하며 “행복해질까요?”를 질문하는 이 프로그램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들이다.(사진:tvN)

독한 드라마들에 가려진 편안한 ‘추리의 여왕2’의 가치

평범하지만 아줌마 특유의 관찰력으로 사건을 추리해가는 설옥(최강희)과 조직 내에서는 왕따를 당할 정도로 오로지 사건해결에만 뛰어들고 몸 쓰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형사 완승(권상우)의 조합.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2>는 국내에서 흔하지 않은 시즌2가 만들어질 정도로 그 캐릭터 조합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연쇄 방화사건 에피소드도 그 이야기 전개 과정을 보면 <추리의 여왕2> 특유의 색깔이 들어가 있다. 그저 평범하게 동네에서 벌어진 소소한 연쇄 방화사건처럼 등장하다가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는 방화사건으로 번지고, 거기서 범인이 붙잡히지만 완승의 집에 불이 나고 또 다른 범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식으로 이야기가 점점 커지고 심각해진다. 결국 인터넷에 올라온 방화 영상을 그대로 따라하는 카피캣이 방화사건의 전말로 드러나고 놀랍게도 약국집 아이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진다.

이런 점층적으로 확장되는 이야기와 더해져 완승과 설옥이 보여주는 때론 코믹하고 때론 달달한 케미의 재미는 이 살벌할 수 있는 소재를 편안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래서 여타의 범죄를 다루는 스릴러들과는 사뭇 다른 <추리의 여왕2>만의 관전 포인트가 생겨난다. 그건 조금은 편안하게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추리물’의 재미가 부여되는 것.

그런데 이런 남다른 재미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2>의 시청률은 좀체 오르지 않는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추리의 여왕2>는 CG를 활용해 정지화면에서 사건 현장 속에 들어가 완승과 설옥이 사건을 추리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그만큼 세련된 연출을 위해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첫 회 5.9%(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생각보다 저조하게 시작한 <추리의 여왕2>는 2회에 6.5%로 반등했지만 3회 만에 4.7%로 뚝 떨어졌다. 물론 많은 변수들이 작용했겠지만 이런 흐름은 경쟁작인 SBS <리턴>의 시청률 흐름과 반비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리턴>의 시청률은 <추리의 여왕2>가 시작하던 시점에 16.3%를 찍었지만 다음 회에 13.7%로 추락한 후 다시 16.2%로 회복됐다. 

마침 주인공이 교체되는 파행을 겪었던 터라 <리턴>의 추락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흐름이 나왔다. 이건 아무래도 드라마가 주는 자극의 강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리턴>은 이른바 ‘악벤져스’로 불리는 4인방의 엽기적인 범죄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 후에는 과거 이들 때문에 죽게 된 딸의 복수를 실행하는 최자혜(박진희)의 역시 독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추리의 여왕2>가 갖는 편안한 추리물의 재미는 어떤 면에서 보면 독한 드라마들 앞에서 진짜 소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2>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접근방식과 캐릭터가 주는 재미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피가 흘러넘치고 잔인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독한 드라마들이 주는 피로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이라면 오히려 <추리의 여왕2>가 주는 편안한 추리의 맛이 남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게다.(사진:KBS)

‘어서와’ 4개국 특집, 의미만큼 재미를 확보하지 못한 까닭

이탈리아, 독일, 인도, 멕시코. MBC 에브리원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마련한 특집에는 무려 4개국의 외국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각국의 친구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시청자들은 그들이 다시 오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래서 이번 특집이 성사된 것도 바로 이런 요청에 대한 프로그램의 화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다시 보고 싶었던 외국친구들이 무려 4개국에서 날아오고, 항상 여행 하며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지목됐던 제주도가 여행지로 잡힌 이번 특집은 여러모로 그 프로젝트 자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출연하는 인물들이 엄청나게 많고 그들이 각각 제주도의 곳곳을 여행하며 보여주는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큰 프로젝트로 진행된 이번 특집이 지금껏 한 나라 친구들씩 해왔던 여행들과 비교해 어째 재미가 덜하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분명 의미는 있다. 그리운 친구들을 다시 본다는 것이 그것이고, 그들이 이제 서로 간의 교류를 또한 보여준다는 건 지금껏 이 프로그램이 해왔던 방식과는 또 다른 이문화 비교체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아쉬움으로 지목되는 건 너무 출연하는 인물들이 많다는 점이다. 어떤 프로그램은 대형화되면 그 스케일이 주목을 만들기도 하지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에는 이러한 큰 스케일이 그다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사실 그간 이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반색했던 건, 굉장한 여행을 떠나서가 아니라 아주 소박하고 일상적으로 우리도 갔었던 여행지를 외국인의 시선으로 참신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나도 갔던 여행지에 저들도 가서 느끼는 공감대와 그들이 더해주는 새로운 시각에 흥미로움을 느끼게 됐던 것.

이번 제주도에서 벌어진 4개국 특집은 이러한 소박함과 ‘일상성’에서는 상당 부분 거리를 느끼게 한다. 4개국에서 온 외국친구들이 저마다의 여행을 하는 그 분량들을 병렬적으로 채워 넣다 보니 몰입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 뚝뚝 끊겨지게 되고, 이미 한 번 한국을 여행했고 또 방송에도 나오다 보니 유명인사가 된 이들은 그 면면 또한 ‘소박함’을 상당 부분 상쇄시킨다.

제주도라는 공간이 부여하는 ‘이벤트적인 성격’ 또한 여행의 일상적인 느낌을 지워버리는 요인이 되었다. 이를테면 감귤 따기 체험이나 감귤로 만든 맥주공장 견학, 카트라이더 경주 같은 체험들은 물론 제주도 여행에서 우리들도 하는 것들이지만, 이미 유명해진 이들이 하는 모습은 마치 저녁 6시대에 하는 프로그램들에서 외국인들이 등장해 그 곳을 소개하는 코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미 섭외된 곳을 유명해진 외국친구들이 일정에 맞춰 찾아가 체험하고 소개하는 이벤트적인 느낌은 그래서 이번 특집의 재미가 덜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보면 이번 경험을 통해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가진 매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가 다시금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보통의 외국친구들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우리네 문화에 대한 솔직하고 남다른 시각이라는 것이고, 이벤트적인 성격이 아니라 진짜 우리네 일상 속으로 소박하더라도 깊게 들어오는 체험이라는 것이다. 물론 포상의 성격이 강한 이번 특집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제작진들은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사진:MBC에브리원)

같은 타임리프라도 ‘명불허전’은 달랐던 까닭

마지막에 즈음해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왜 굳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사용했는가 하는 그 진심이 보인다. 조선 최고의 침구술 실력을 가진 허임(김남길)이 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로 떨어지는 그 설정이 처음에는 어딘지 그 이질적 시간에 놓은 인물이 겪는 흥미를 위한 것이 아닐까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조선의 의원이 현재에서 느끼는 황당함이 주는 코믹함이 있었고 침 하나로 위급한 생명을 살려내는 상황이 주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하지만 만일 이 드라마가 이러한 타임리프의 재미만을 추구했다면 그 메시지는 앙상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과 현재를 허임과 최연경(김아중)이 함께 오가며 겪는 파란만장한 상황들이 주는 흥미로움을 빼놓을 수 없고, 그러면서 두 사람이 차츰 가까워지고 서로 진가를 알아보며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주는 재미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명불허전>은 거기 머물지 않고 왜 이 드라마가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활용했는가 하는 이유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서 타임리프는 결국 각자 자신의 위치에 서서 소임을 다하는 것이 그 사람이 가장 빛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저 마음대로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허임이 죽어야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조선에 두고 온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의원이라는 설정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인물을 그대로 표상한다. 

즉 이 드라마의 타임리프는 그저 재미를 위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 그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장치를 통해 조선이든 현재든 그리 다르지 않는 서민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래서 의원이든 의사든 진정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주기도 했다. 

천출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으로 그 허탈함을 채워보려고도 했던 허임이지만, 그가 차츰 진정한 의원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과정도 이 타임리프를 통해서였다. 시간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픈 생명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침을 들었을 때 결국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즈음해서 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는 그 소임이 사적인 사랑의 차원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활용된다. 결국 허임은 조선으로 돌아가 왜란으로 피 흘리는 민초들을 위해 침을 든다. 침술은 값비싼 약재를 쓰지 않고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더더욱 좋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그 많은 민초들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건 작가가 이 장치를 그저 흥미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함의를 읽어내려 했다는 뜻이다. 시간대는 달라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고, 그 각자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소임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것. <명불허전>의 타임리프는 그 판타지 안에 꽤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같은 장치라도 얼마나 더 깊게 궁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 줬다.

‘알쓸신잡’, 삼겹살 하나에도 이런 씁쓸한 역사가...

아마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무심코 집어먹고 있는 삼겹살에도 이런 씁쓸한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걸 우리는 잘 몰랐을 지도 모른다. 경주로 간 tvN <알쓸신잡>. 아침에 일어나 베이컨을 굽고 모카커피를 내리면서부터 나온 수다에서 황교익은 베이컨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비싼 건 삼겹살이 비싸서라고 밝혔고, 그 이야기는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대량 양돈사업을 했던 시절의 불행한 역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시의 양돈사업이 일본 수출을 위해 만들어지면서 돼지의 안심, 등심이 수출되고 나면 남은 부위들을 우리가 소비하면서 삼겹살, 족발, 머릿고기, 내장, 껍데기 같은 것들을 먹게 됐다는 것.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김영하는 모카커피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함께 나눠 마시며 얼마 전 봤다는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마피아 같은 흉악범들이 교도소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보스가 독방에 들어가는데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 유일하게 있는 것이 바로 모카 포트라는 것. 그래도 커피 한 잔을 마시게 해주는 것. 그것이 이탈리안인들이 생각하는 인권의 최전선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만큼 그들이 커피를 사랑한다는 것. 

우리에게 음식은 그저 때마다 챙겨 먹는 어떤 것 정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많은 문화적인 배경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전날 밤 <삼국유사>의 설화와 전설 이야기를 하다, 문득 ‘단군신화’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나오게 된 쑥과 마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쑥과 마늘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황교익은 그것이 마늘이 아니라 사실은 달래였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어 먹을 게 그리 변변치 못했던 우리네 선조들에게 나물들 중 쑥과 달래를 먹은 이들이 생존한 그 이야기가 ‘단군신화’ 속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인문학 하면 굉장한 철학이나 두꺼운 책을 먼저 연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알쓸신잡>이 드러내고 있는 건 인문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이 프로그램이 인문학을 소재로 하면서도 여행이라는 틀을 가져온 것은 그래서 단지 그것이 나영석 PD의 단골소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 점이 보여준다. 여행을 통해 우연히 겪게 되는 일들과 보게 되는 것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흥미로운 지식으로 바뀌어가는 그 신비함을 찾아보겠다는 것. 그것이 이 프로그램이 굳이 여행의 틀을 갖게 된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경주하면 모두 유적들과 능을 떠올리지만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라며 엑스포와 놀이동산을 찾은 정재승은 그 엑스포라는 것이 세계의 과학사를 발전시킨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걸 이야기해준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산업적으로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뽐내기 위해 개최했다는 런던엑스포에서 수정궁이 지어져 유럽전역에 화제가 되고, 그 경쟁국들도 서로 기술을 뽐내기 위해 엑스포를 열게 되면서 과학이 진일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 가면 흔히 있는 핫도그와 콘 아이스크림 역시, 그 역사가 엑스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음식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작은 일상의 자잘한 경험들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사실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알쓸신잡>은 굳이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 가끔 보곤 하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는 사당이나 비각 같은 것들에도 굉장한 역사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유시민이 찾은 최진립 장군의 비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모두 의병으로 참전한 최진립 장군의 “이길 순 없어도 (나라를 위해) 죽을 순 있다”는 이야기나, 돌아가라는 걸 따르지 않고 그와 함께 끝을 같이한 노비 옥동과 기별을 위한 제사를 지금까지 그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알쓸신잡>을 보며 어딘지 ‘신비하다’고 느끼게 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던 손과 발에 툭툭 채였던 많은 것들이 저마다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는 것. <알쓸신잡>의 숨은 가치와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신서유기4’, 의미는 됐고 재미와 즐거움에 집중하는 진짜 예능의 맛

사실 여행과 접목된 게임예능은 나영석 PD 시절 <1박2일>이 거의 정점이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출연자들과 제작진이 각을 세우고 심지어 야외취침을 놓고 벌이는 게임에서 진 제작진이 비오는 날 야외취침을 하는 그 진귀한 풍경 속에 여행과 게임(복불복)이 접목된 예능은 정점을 찍었다. 

'신서유기4(사진출처:tvN)'

<신서유기>는 여러모로 <1박2일>의 그 아우라를 벗어던지기가 어렵다. 콘셉트가 여행에 게임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다, 나영석 PD부터 출연자들 역시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까지 전 <1박2일>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1박2일>로 다져진 팀워크는 그래서 <신서유기>가 나영석 PD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로 흘러가는 힘이 되어준다. 

<1박2일>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은지원의 탁구 대결 패배에 따른 삭발 투혼은, 그래서 송민호의 ‘탁구부심’에 의한 도발로 인해 자연스레 여행을 떠나기 전의 술자리 이야기로 오르고 그들은 나영석 PD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삭발’을 건 탁구대결을 성사시킨다. 가만 있어도 저절로 굴러가는 이 흐름 속에서 나영석 PD가 <신서유기>를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즐겁게 찍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출연자들은 저마다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데다 여행이 주는 ‘치기’ 같은 공기가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걸 온몸으로 체득해 알고 있다. 그래서 나영석 PD는 이들을 모아 놓고 특정 장소와 그 곳에서 벌일 게임 정도를 구성한 후 내버려두면 된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저들끼리 벌인 호기어린 말 한 마디로 결국 ‘송민호 삭발’이라는 어디서도 얻기 힘든 결과물을 얻으니 말이다. 

<신서유기4>의 게임은 그래서 인위적인 미션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저 저들이 만나면 늘 할 것 같은 그런 놀이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고, 여행이라는 특별함을 더해주는 것으로 그 놀이는 더 불이 붙는다. 여기에도 물론 베트남에 도착해 오바마가 들렀다는 음식점의 음식을 맛보게 한 후 바로 퇴장시켜 버스에 태운 후 맞추면 세워주겠다고 벌이는 퀴즈게임 같은 게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게임에서도 인위적인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건 제작진의 대표로서 나영석 PD 역시 이 프로그램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끼리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치고받으며 노는 모습이 있고, 나영석 PD가 더 재밌는 상황을 뽑아내기 위해 개입하는 것 역시 제작진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신서유기>의 장면들을 더 리얼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게임을 보는 리얼함과, 그걸 찍는 제작진의 메이킹 필름을 보는 듯한 리얼함이 섞여진 데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 역시 <1박2일>에서 이미 시도됐던 것들이다. 그렇지만 <신서유기>가 <1박2일>과 다른 느낌을 주는 건 여행지에 대한 강박이 없는데다 오롯이 예능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1박2일>이라면 여행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 복불복의 연속은 비판받을 소지를 갖지만, <신서유기>는 아예 처음부터 여행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캐릭터 게임쇼를 추구하고 있어 그런 비판의 소지가 없다.

본격적으로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에 국내의 펜션에서 모여 캐릭터를 선정하는 게임을 먼저 벌이는 건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걸 명백히 드러낸다. 여행지는 그저 이 재미의 분위기를 가중시키기 위한 배경이나 장치가 되어주는 것일 뿐. 그래서 <신서유기>는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필수인 것처럼 되어 있는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온전히 예능 본연의 맛, 즉 재미와 즐거움에 집중하는 ‘코어 예능 프로그램’ 같은 느낌을 준다. 

한때는 의미와 재미를 접목한 <1박2일>이 여행과 게임을 통해 어떤 정점을 찍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신서유기>는 그 포스트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이다. 의미를 찾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진 만큼 온전히 예능의 재미가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프로그램. 그래서 그것이 예능의 중요한 의미일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바로 <신서유기>다.

‘무도-어느 멋진 날’, 재미와 감동에 배려까지 모두 잡은 콩트 콘셉트

초등학생이 단 한 명인 초등학교.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섬, 녹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이 섬을 배경으로 한 특집을 한다는 사실은 섣부르게도 그 감동적인 풍경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이 찾아와주면 소원이 없겠다던 한 할머니는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생이 달랑 한 명이고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그 섬은 많은 이들이 떠나는 섬이고 외지인의 방문도 별로 없는 곳이 아닌가. 그 곳에서 <무한도전>이 ‘어느 멋진 날’을 보내겠다는 그 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일 수밖에.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실제로 녹도의 유일한 초등학생 찬희와 껌딱지처럼 그와 붙어 다니는 여동생 채희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고 한 편으로는 가슴 찡하게 했다. 오빠가 하는 걸 똑같이 따라하는 동생. 또래 친구가 오빠밖에 없어 어디든 따라다니는 동생의 모습은 한없이 귀여우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우편배달부가 되어 편지를 전하는 양세형이 육지에서 섬으로 전해진 딸의 편지를 어르신에게 읽어주는 대목은 먹먹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한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셨고 또 자식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홀로 섬에서 지내시는 어르신. 물론 자신은 그 곳에서 이웃들과 언니 동생 하며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시지만, 그런 말에서조차 자식들을 위한 배려가 묻어난다. 

그런데 이 녹도를 배경으로 한 특집을 <무한도전>이 ‘어느 멋진 날’이라는 콩트 콘셉트로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사실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였다면 ‘방문자’의 입장에서 녹도 주민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콩트 콘셉트로 애초부터 녹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로 <무한도전> 멤버들과 게스트로 찾은 서현진이 일종의 역할극을 했던 것. 바로 이 지점은 이 특집이 녹도 주민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 그들의 삶을 그저 바라보며 눈물을 뽑아내기보다는 그 삶 속에 살아가는 일원으로 좀 더 담담하게 그 따뜻한 녹도에서의 하루를 전할 수 있었던 것. 

유재석과 서현진이 찬희와 채희의 선생님으로 ‘산중호걸’을 안무와 함께 부르고, 정준하가 <윤식당>을 그대로 패러디해 ‘전식당’을 차려 마을 어르신들에게 파전과 김치전을 내놓으며 수다를 떨고, 박명수가 간호사로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해 일종의 ‘웃음치료’를 선보이며, 양세형이 우편배달부로 어르신들에게 뭍에서 온 편지를 전하는 그 장면들이 훨씬 명랑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콩트 콘셉트 덕분이었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예능이 감동을 전할 때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집을 지어 주거나 선물을 주면서 그 반응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공익적인 느낌을 주는 예능을 할 때 너무 관찰자의 시점으로 접근하면 자칫 대상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멋진 날’의 콩트 설정은 그런 점에서 보면 배려가 돋보인 선택이었다. 외부자의 시선이 아닌 동문의 시선으로 녹도의 삶을 전할 수 있었다는 그 지점이 이 특집의 웃음과 감동을 더 깊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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