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특집’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1박2일’의 선택은 ‘20만원으로 여름 휴가 보내기’ 컨셉트 같은 생활밀착형 소재다. 고유가와 불황의 여파로 알뜰한 휴가 시즌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저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농촌 살리기의 일환이 되기도 하는 ‘농촌체험여행’을 선택한 것. 이 선택은 ‘1박2일’이 지향하는 곳이 서민들의 일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1박2일’ 출연진은 이 컨셉트에 맞게 4인 가족을 구성하고 나머지 두 명인 이승기와 이수근을 떼 놓고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4인 가족은 자연스럽게 캐릭터별로 재구성된다. 아빠는 강호동이 되고 엄마는 김C가 되며 아들은 은지원, 딸은 MC몽이 되는 식이다. 음식점에서 MC몽이 음식을 더 시키려 하자 강호동이 “안 된다”고 아빠처럼 말하는 반면, 김C는 “먹고 싶어? 그럼 더 먹어!”하고 말하는 장면은 가족의 일상을 그대로 재연한다.
재미있는 것은 나머지 두 명이 자체적으로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자청하는 곳이 방송국이라는 점이다. ‘홍진경의 가요광장’이 이 불청객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나는 ‘1박2일’팀과의 이원 생방송이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라디오 생방송이라는 구체적인 라이브의 흔적이 ‘1박2일’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것은 ‘리얼의 힘’이다.
‘1박2일’이 타 방송과 만나는 지점은 늘 화제를 불러 일으켜왔다. 그 첫 번째가 ‘전국노래자랑’이었다면 두 번째는 ‘충주대 게릴라 콘서트’에 이은 ‘생방송 뮤직뱅크’와의 만남이이었고 이제 ‘1박2일’이 만난 것은 ‘홍진경의 가요광장’이다. ‘홍진경의 가요광장’에서 방송을 하는 장면 바로 앞에 짧게 나마 ‘전국노래자랑’과 ‘충주대 게릴라 콘서트’의 장면이 깔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1박2일’의 특징인 일상성을 극대화하려는 편집이다.
라디오는 좀더 우리 일상과 가까운 매체다. TV가 일반인 출연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고는 해도 그것이 라디오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라디오라는 청각 중심의 매체는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전화기와 만나 언제 어디서건 즉각적으로 출연이 가능해지는 매체다. 또 사연 신청이라는 창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라디오를 일반인들의 일상 가까이 배치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수근과 이승기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할 때, 그 방송을 자동차 안에서 듣게되는 ‘1박2일’의 다른 출연진들과, 거기서 즉석으로 강호동과 전화로 다시 연결되는 가요광장 프로그램은 바로 이런 라디오의 일상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1박2일’은 바로 이 라디오의 일상성을 끌어와 좀더 현실에 밀착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환타지를 갖게 만드는(방송출연은 어쨌든 일반인들에게는 환타지다)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전국노래자랑’이나 ‘게릴라콘서트’편에서 이미 그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그 형식은 방송이지만 일반인에게 방송출연의 기회가 열려져 있는 ‘전국노래자랑’이 그렇고, 어느 날 갑자기 일상 속으로 스타들이 뛰어드는 형식의 ‘게릴라콘서트’가 그렇다.
이렇듯 ‘1박2일’과 방송이 만나는 지점은 늘 서민적인 일상과 닿아있으면서도 그 서민들의 환타지가 개입하는 공간이다. “나도 방송출연하고 싶다”는 환타지와 함께 ‘방송 출연할 가능성이 높은’ 현실성을 갖춘 프로그램에 ‘1박2일’의 출연진들이 틈입함으로써 얻어지는 건 그 스타로서의 화려함과 배치되지 않는 서민적인 친근함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상으로 들어오고 점점 생활 밀착형이 되어가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전략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제 카메라가 어떻게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들어가는가 하는 점은 리얼리티가 생명인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가장 큰 숙제가 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방송사의 얼굴은 드라마였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은 그 방송국의 이미지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 이 역할은 예능과 분담되고 있는 추세. 주중 한밤중의 토크쇼 전쟁, 주말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경쟁은 드라마 경쟁만큼이나 치열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에 있어서 방송3사가 저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것처럼 예능에 있어서도 그 색깔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MBC 예능, ‘연애’에 빠지다 ‘무한도전’이 주춤하는 사이, 새롭게 강자로 부각된 ‘우리 결혼했어요’. 짝짓기 프로그램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접목된 이 프로그램은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만 출연했던 각종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저마다 남녀를 출연시켜 짝짓기 프로그램을 그 안에 넣으려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이 ‘무한걸스’와 미팅을 했고, ‘1박2일’이 백두산으로 가는 여정에 승무원들과 짝짓기 게임을 했으며,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여자 출연자들이 출연해 남자 출연자들이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살아봅시다’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결혼의 환타지를 현실 버전으로 바꾸었다. 최근 MBC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MBC의 예능에 짝짓기 프로그램이 새로운 메인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SBS 예능, ‘가족’에 빠지다 SBS 예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라인업’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고배를 마신 SBS가 야심차게 꺼내놓은 카드가 ‘패밀리가 떴다’라는 점은 가족을 유달리 강조하는 방송사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패밀리가 떴다’는 물론 그 프로그램 포맷에 있어서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상당부분 유사한 점들이 있지만, 다른 점은 바로 출연진들이 유사가족을 형성하고, 전국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도 유사가족을 꿈꾼다는 점이다.
SBS의 ‘가족’ 편향은 ‘스타킹’의 출연진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보통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발견되고, 몰래카메라의 새로운 버전인 ‘체인지’의 주류를 이루는 가족을 찾아가는 에피소드들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폐지가 결정된 ‘사돈 처음뵙겠습니다’는 물론이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와 유사한 ‘살아봅시다’가 좀더 가족들과의 대면에 집중하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SBS의 다른 예능들 예를 들면 ‘인터뷰 게임’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역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이템들이 주를 이루는 것도 그 특징의 하나가 될 것이다.
KBS 예능, ‘노래’에 빠지다 ‘전국노래자랑’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오락관’같은 장수하는 코너에는 늘 노래가 있어서 일까. KBS는 좀더 예능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노래로 대변되는 일상 생활의 즐거움이다. KBS 예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1박2일’은 물론 여행이란 아이템이 그 첫 번째 성공비결이 된 것이지만, 거기에서도 노래를 빼놓을 수는 없다. ‘1박2일’이 가장 파괴력을 보인 것은 ‘전국노래자랑’과의 만남이나, ‘충주대 게릴라 콘서트’같은 노래 아이템과의 만남에서였다.
이것은 물론 구성원들이 가수란 점도 작용을 한 것이겠지만, 노래 자체가 갖는 예능에서의 기본적인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결 노래가 좋다’나 ‘도전주부가요스타’같은 본격적인 노래 대결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열린 음악회’나 ‘윤도현의 러브레터’같은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은 바로 노래 자체가 갖는 이 같은 힘이 극대화된 것들이다. 이처럼 ‘불후의 명곡’이나 ‘해피투게더’의 ‘쟁반노래방’의 새로운 버전으로 읽히는 ‘도전 암기송’ 같이 KBS는 줄곧 노래가 주는 즐거움을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오는 경향이 있다.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이처럼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은 그것이 각 방송사의 사풍이나 프로그램 정책, 또는 한때를 풍미했던 프로그램의 경험 같은 것들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은 그때 그때의 트렌드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각기 다른 색깔을 극대화하는 부분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28년 된 ‘전국노래자랑’과 이제 1년이 채 안된 ‘1박2일’. 두 프로그램을 비교한다는 것은 마치 최고령 MC로서 지금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해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는 있지만 방송인의 내공으로 봐서는 한참 뒤에 서 있는 ‘1박2일’ 출연진들을 비교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경남 거창에서 벌어진 이 두 프로그램의 만남은 그 멀어만 보이는 거리를 단번에 좁혀버린 자리였다. 그 거리는 가장 최첨단의 길을 걷고 있는 프로그램과 가장 오래된 길을 걸어온 프로그램 사이의 거리이며, 각각의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세대 간의 거리이기도 하다.
그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프로그램의 취지와 특성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왜 모든 문화의 중심지는 도시 혹은 서울이어야 하고 시골은 늘 문화의 변두리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에 답을 하기라도 하듯 28년 전 등장한 프로그램이 ‘전국노래자랑’이 아닌가. 조금 촌스럽고 조악해 보이지만, 도시와 시골 사이의 거리를 메운다는 그 뜻 하나로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전국노래자랑’만의 힘이었다. 이것은 ‘전국노래자랑’이 시작된 지 28년 후 등장한 ‘1박2일’의 취지와도 같다. ‘1박2일’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숨겨진 우리네 풍경을 찾아다니고 소개하고 홍보한다는 것이 그 기본취지다.
‘1박2일’멤버들이 시골의 비닐하우스에 마련된 연습장에서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노래와 안무준비를 하고, 막상 무대에 나가기 전까지 시험을 앞둔 아이 마냥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무대 위에서는 말 그대로 ‘전국노래자랑’에 걸맞게 확실히 망가져 주고,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초조하게 시상발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경의인 동시에, 거창 주민들에 대한 경의의 태도다. 직업이 가수인 은지원, 이승기, MC몽이 전혀 가수로서 부각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의 만남이 이처럼 껄끄럽지 않게 된 것이 어디 이런 취지의 공통분모 때문만일까. 여기에는 이 두 프로그램이 모두 갖고 있는 노래와 웃음이라는 코드가 또한 맞아 떨어졌던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국노래자랑’의 재미요소는 ‘딩동댕’으로 대변되는 노래실력보다는 ‘땡’으로 대변되는 웃음에 있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토착적인 몸 개그가 작렬한다. 이것은 ‘아름답고 정겨운 전국 각지의 풍광들을 소개하겠다’는 ‘1박2일’의 취지를 전하는 방법이 웃음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취지와 특성이 잘 어우러진 ‘1박2일’과 ‘전국노래자랑’의 만남은 흔히 그저 까메오로 등장하는 이벤트 성격이 되곤 하는, 프로그램 간 이종결합 그 이상을 수행했다 평가할 만 하다. 거기에는 분명 두 프로그램의 목적인 웃음과 즐거움이 있었고, 그 취지인 시골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프로그램 사이의 이종결합은 그저 물리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물리적으로 연결했을 때는 어느 한 프로그램에 이득이 될지 몰라도 다른 프로그램에는 손해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화학적으로 연결해주는 것은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 가진 ‘같은 취지’다. 뜻이 같다면 형식은 조금 달라도 무방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