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 주원은 이 난관마저 이겨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극이어서 “이게 뭐지” 했을 시청자분들도 많지 않았을까. SBS 월화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는 우리에게는 레전드가 되어버린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원작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영화가 현대극으로서 대학생들의 청춘 로맨스였다면, 드라마는 아예 사극으로 시대적 배경 자체를 바꿔놓았다. 

'엽기적인 그녀(사진출처:SBS)'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얼마나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내려 안간힘을 썼는가를 잘 보여준다. 레전드가 된 작품과 비교되기 시작하면 리메이크된 작품의 운명이란 그 결과가 뻔해질 수밖에 없다. 원작에 대한 향수가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드라마는 아예 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엽기적인 그녀>를 구상하게 됐을 게다. 

물론 사극이라고 해도 그 안의 이야기 설정은 원작 영화가 가진 것에서 많이 따왔다는 것을 첫 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견우(주원)가 혜명공주(오연서)를 처음 만나 인연을 만드는 그 장면에서 술에 취한 그녀가 견우에게 토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영화에서는 지하철에서 그녀(전지현)가 견우(차태현)에게 토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어쩔 수 없이 모텔에 그녀를 데려간 견우가 토 냄새를 지우기 위해 샤워를 하다 오해를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 모티브는 사극으로 리메이크된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사극으로 재해석되었다고 해도 이처럼 <엽기적인 그녀>는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원작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던 전지현과 차태현의 그림자는 너무 짙다. 이런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렇게 드라마화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중국이라는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에서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팬덤은 여전히 뜨거운데, 최근 전지현이 <별에서 온 그대>로 화제가 된 후 다시 이 작품까지 주목받았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리메이크는 꽤 괜찮은 기획으로 다가왔을 게다. 

물론 사드 배치로 인해 생겨난 한한령으로 <엽기적인 그녀>는 그 애초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의 한한령은 조금 수그러드는 양상이지만 그 여파는 여전하다.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놓은 작품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엽기적인 그녀>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방영되게 됐다. 

원작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부담감과 중국과의 관계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은 콘텐츠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그녀>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 가능성은 다름 아닌 주원이라는 배우에게서 나온다. <제빵왕 김탁구>부터 시작해, <각시탈>로 우뚝 서고, 쉽지 않을 거라는 <7급공무원>, <굿닥터> 그리고 모두가 실패를 예견하기도 했던 일드 리메이크작 <내일도 칸타빌레>까지 주원은 드라마 불패를 써온 배우다. 그러니 <엽기적인 그녀> 역시 이 난관들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그저 운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원은 캐릭터를 200% 살려내는 남다른 연기력을 통해 드라마의 성공까지 거뒀던 배우다. 이번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상대 역할을 연기하는 오연서의 액션을 코믹하게 받아내는 주원의 리액션이 코미디의 상황을 더 빵빵 터트리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액면은 난관과 한계가 다분하지만 ‘그래도 주원이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푸른 바다’, 멜로와 현실은 어떻게 공명했을까

잊지 말아야 될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허준재(이민호)의 기억을 지우고 바다로 돌아간 인어 심청(전지현)이 다시 돌아와 사랑을 이어가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그렸다. 허준재는 청이 자신의 기억을 지웠지만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사랑은 지울 수 없었다며 그녀를 기억하고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런데 여기서 허준재가 지웠졌던 기억을 다시 복원하는 그 방식이 흥미롭다. 그는 훨씬 이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예감이라도 한 듯, 청이와의 일들을 일기로 기록해놨다고 했다. 결국 청이가 그의 기억을 지웠어도 그는 다시금 그 일기를 통해 그녀와의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건 전형적인 멜로물의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그간 기억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조금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엔딩이다. 물론 멜로물로서 바다와 육지로 각각 태어난 서로 다른 존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지만 다시금 돌아와 둘 사이에 생명을 잉태하고 그 존재가 바다와 육지 사이의 소통자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로맨스 판타지물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있는 엔딩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작금의 우리네 현실과 마주하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바다와 기억으로 환기되는 세월호 참사의 이미지들은 이 엔딩이 ‘진실을 담은 아픈 기억’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오게 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조난당했다 살아 돌아온 이들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것이 인어 심청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며 바다를 찾았던 허준재의 그 마음은 어쩌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나 그들을 위해 기도해온 많은 대중들의 바람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희미해지는 기억을 아파도 애써 기억해내려는 허준재의 사랑 또한 남다르게 느껴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절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기억의 기록’이 갖는 무게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사랑의 기억 같은 진실을 잊지 않고 보존한다면 그 애끓는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고 마치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기억은 차츰 그 아픈 상처들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사랑이라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 속 지나가는 듯한 에피소드의 대사로 등장했던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기억하겠다던 한 엄마의 절규처럼, 아픔은 사랑의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영원한 벌로서의 기억 또한 존재한다. 계모 강서희(황신혜)의 기억에 잊혀지지 않을 아들의 자살이 그것이다. 강서희의 기억은 사랑이 아니라 죄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는 기억이란 이처럼 어떤 것은 바람직한 사랑으로, 어떤 것은 또 다시 벌어져서는 안될 반면교사로서의 죄로 남겨진다.

허준재는 전생에서 바닷가 마을에 지방관으로 부임했던 담령으로 인어를 만났던 그 때의 기억 그대로 이생에서의 심청과의 미래를 준비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검사가 되어 지방검찰청에서 일하며 심청과 ‘소소한 삶’을 꿈꾼다. 사실 우리네 삶이 꿈꾸는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하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런 기억들을 많이 남기는 것일 테니.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래서 더더욱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푸른바다>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심청전의 재해석

 

심하게 멍청해서 심청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온 인어에게 허준재(이민호)는 그렇게 반 농담을 섞어 심청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바다와 관련 있는 심청이란 고전소설의 인물이 인어의 이름으로 떡하니 붙여진다는 건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바다로 뛰어든 효녀. 하지만 용왕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인물. 인어란 가상의 존재가 결국은 그렇게 바다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청 역시 그 부활의 기저에는 비슷한 맥락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저 코미디의 하나로 농담 반 진담 반 심청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건 그녀가 사랑하는 허준재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 처한 위기가 하필이면 눈이 멀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희대의 악녀인 강서희(황신혜)가 바꿔치기한 약으로 인해 서서히 눈이 멀어간다. 허일중이 심봉사의 재해석이라면, 강서희는 뺑덕어멈의 재해석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그래서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담령과 얽힌 인어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심청전의 모티브들을 상당 부분 끌어와 재해석한다. 허일중과 그 가족이 처한 위기가 인어 심청(전지현)이 처한 위기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된다. 허일중과 허준재 그리고 모유란(나영희)의 단란했던 집안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강서희와 그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이다. 강서희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유산을 가로채는 꽃뱀에 가까운 인물. 친구였던 모유란과 그 아들까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아들 허치현을 세웠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허준재의 진짜 가족이 다시금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건 아들 행세를 하고 아내 행세를 하며 사실은 허일중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가짜 가족을 몰아내야 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마대영(성동일)이라는 인물이 강서희, 허치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반 이 연결고리는 의문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차츰 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점점 확증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보면 허일중-허준재-모유란이라는 진짜 가족과, 마대영-허치현-강서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드러난다. 허준재의 가족이 사랑으로 얽혀있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욕망으로 얽혀있다. 허준재의 가족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그 연결고리들이 욕망으로만 이어져 있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가족 대 가족의 대결을 그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인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생의 좋은 인연은 현생의 좋은 인연으로 또 이어진다. 하지만 전생의 악연은 현생에서도 또 다른 악연으로 반복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가르는 건 그 관계가 무엇에 의해 형성되었는가에 의해서다. 단순한 구도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내세우는 그 두 개의 관계 축은 사랑과 욕망이다.

 

인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허준재가 있는 반면, 인어를 물욕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은 마대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심청전에서 심청의 효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물질이 등가를 이루는 그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인어가 어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면, 우리 식으로 그런 사랑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보여준 인물이 심청이 아닌가.

 

그래서 <푸른바다의 전설>은 서구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어유야담의 담령과 인어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고는 이제 심청의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심청의 자기희생적인 도움으로(허준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뭍으로 나온 그녀의 자기희생은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허준재는 잃었던 자신의 가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설이 담고 있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더 간절한 진짜 가족의 회복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 더 간절해진.

같은 듯 다른 <도깨비><푸른바다>의 전생 활용법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SBS <푸른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구조는 비슷한 점들이 많다. 아마도 판타지 장르가 갖고 있는 이야기 틀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여겨진다. 도깨비와 인어라는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하고 늙지 않는 이들이 전생과 현생에 걸쳐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는 그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고 이 두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관이 같은 건 아니다. 두 작품의 현생으로 이어지는 전생의 활용법을 들여다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도깨비><푸른바다의 전설>이나 전생의 악연이 현생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건 흥미로운 유사점이지만, 두 작품은 전생과 현생이 이어지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도깨비>는 전생에 김신(공유)과 왕 그리고 왕비(김소연)의 악연이 먼저 보여졌다. 즉 전쟁의 신으로서 백성들의 추앙을 받는 김신을 질투한 왕이 왕비는 물론이고 김신까지 죽이는 전생의 악연이다. 하지만 이들이 현생에서 누구로 다시 태어났는지 또 어떤 인연으로 얽히는지에 대한 것들은 모두 의문에 붙여졌다.

 

<도깨비>는 바로 이 의문점, 현생의 저승사자(이동욱)와 써니(유인나) 그리고 도깨비가 각각 전생의 그 악연 속에서 어떤 인물이었던가에 대한 궁금증을 드라마의 동력으로 삼는다. 벌써부터 저승사자는 왕이었고 써니는 왕비였다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그것이 확실히 밝혀진 건 아니다. 하지만 <도깨비>가 활용하고 있는 이른바 전생의 비밀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참여해 다양한 추측들을 내놓을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되고 있다.

 

반면 <푸른바다의 전설>은 전생에 얽혀진 악연이 현생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즉 전생에 인어(전지현)를 잡아 욕망을 채우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이를 막으려다 그와 악연을 맺게 되는 담령(이민호)의 관계는 현생에서도 인어를 잡으려는 연쇄살인범 마대영과 그것을 막으려는 허준재(이민호)로 이어진다.

 

전생이 현생으로 그래도 반복되고 있지만 <푸른바다의 전설>, <도깨비>가 그 전생의 결말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왕비와 김신의 이야기를 일찌감치 내놓은 것과는 달리, 그들의 악연이 어떤 결말로 전생을 끝맺는지를 숨겨왔다. 결국 밝혀진 건 인어를 잡으려고 마대영이 던진 작살을 막기 위해 바다 속으로 뛰어든 담령이 대신 죽음을 맞이하고 그 사실을 안 인어가 그와 함께 자결하는 전생의 결말이다.

 

결국 <푸른바다의 전설>은 전생이 현생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보여줌으로써 현재 인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취하고 있다. 마대영이 조금씩 전생의 사실들을 알아차리고 인어를 향해 다가오는 상황들이 긴장감을 만들고 이를 막기 위한 허준재의 고군분투가 전생과 현생을 이어 벌어진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강력한 극적 장치로 흔히 사용되던 출생의 비밀은 그 지나친 클리셰로 인해 마치 막장드라마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깨비><푸른바다의 전설>은 판타지라는 소재에 걸맞는 전생의 비밀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나는 전생과 현생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드라마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보여줘 현생의 상황들에 극적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판타지 소재의 드라마들은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하나의 장르적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전생의 비밀이라는 장치는 어쩌면 보다 많은 판타지 소재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면 또 하나의 클리셰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이 장치가 만들어내는 궁금증과 긴장감은 확실히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인다. 출생의 비밀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푸른바다>, 그저 인어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기억 모티브

 

도대체 이 인어라는 존재의 진짜 능력은 무엇일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을 보다 보면 슬쩍 드는 의문이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게 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먼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인어가 그려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삶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한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물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어의 관점으로 보면 뭍에서 잘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역시 능력이라 부르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이 세다? 이건 능력일 수 있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스페인 바닷가 마을에서의 추격전 정도다. 그것도 코미디로 처리된.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인어의 진짜 능력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존재. 이것은 실로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다. 중간에 살짝 에피소드를 들어간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아픈 기억을 가진 예은 엄마 이야기가 그렇다.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아이가 싸늘하게 돌아왔을 때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기억은 너무나 아파 지우고 싶지만 또한 지울 수도 없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인어가 기억을 지우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드라마가 설정하고 있지만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은 아파도 결코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예은 엄마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가 내세우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마찬가지다. 인어는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지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랑을 지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기억 모티브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시 허준재(이민호)의 아픈 기억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허준재는 계모 강서희(황신혜)로부터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가 떠나버리고 남은 자리에 계모가 들어서더니 그녀가 데려온 배다른 형 허치현(이지훈)이 그의 자리마저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 최면술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그는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훨씬 좋았다. 홀가분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포기한 건 미련 갖지 말고 잊어버려라아버지에게서 아무것도 안 받고, 안 엮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그는 청이(전지현)에게 진짜 보고팠던 아버지에 대한 속내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청이는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언제든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허준재는 또한 꿈속에서 전생의 자신이었던 담령을 만난다. 담령은 이미 과거에 인어와 인연을 맺었고 동시에 그녀를 죽이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악연을 맺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담령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허준재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남기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다. 허준재는 담령의 거처에서 발굴된 유물 속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자화상 속의 자신의 얼굴을 목도하며 놀란다.

 

허준재는 그래서 두 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이고 또 하나는 전생의 담령이다. 그 과거의 두 자신들은 모두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허준재는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왔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인어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인어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기억을 상기시키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픈 사랑이란 망각으로 지워지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기도 하니 말이다.

 

오랜 세월을 묻혀 있던 유물들이 발굴되어 허준재의 지워진 기억을 깨운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결국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 했지만 결코 지워서는 안되는 기억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이 똑같은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그렇게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유물로서 자신의 눈앞에 돌아온 것을 마주하게 됐다. 묻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묻어서는 또 다른 아픈 일들이 우리 앞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푸른바다> 주인공 캐릭터의 문제, 카메오가 신선해진 이유

 

역시 조정석은 잠깐 등장해도 확실한 존재감을 만드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캐릭터로 그가 나온 분량은 많지 않지만 지금껏 그 캐릭터가 회자되고 있는 건 결국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매력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도 조정석은 역시 빛났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남자 인어로 등장해 아직 인간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낯선 청이(전지현)에게 갖가지 조언을 해주는 모습은 저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승민(이제훈)에게 연애하는 법을 가르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간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며 광고 문구들이 사실은 물건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걸 설명해주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조정석이 이번 카메오에서 중요한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푸른바다의 전설>이 갖고 있는 비극적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인어가 인간에게 사람을 받지 못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다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버린 여인을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런 인어라는 존재가 가진 비극성은 조정석 같은 카메오가 아니라 주인공인 청이가 보여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이 청이라는 캐릭터에 순수함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그 비극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은 백지 상태의 모습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 웃음이 존재 자체의 비극과 잘 맞닿아 있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인어 캐릭터가 어딘지 박제된 인형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웃음은 그저 웃음으로 끝나면 조금은 허망하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 웃음이 어떤 비극과 연결되어 있을 때 캐릭터가 가진 페이소스 같은 것들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청이 캐릭터보다는 조정석이 잠깐 등장해 보여준 인어 캐릭터가 훨씬 더 그런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는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것이 그 이면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구조가 <별에서 온 그대>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합당한 지적이다. 외계인이나 인어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우리네 삶의 현실들이 우화처럼 드러난다는 이야기 구조는 거의 같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단지 유사해서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남녀주인공인 허준재(이민호)와 심청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코미디적 상황들이 자주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그저 코미디로 끝날 때는 자칫 깊이를 상실할 수 있다. 특히 판타지물의 경우, 코미디를 너무 가볍게 사용하면 이야기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조정석의 경우, 이미 <질투의 화신>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비극적 상황과 희극적 상황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다. 시청자들은 빵빵 터지지만 동시에 그 인물은 굉장한 비극 속에서 실제로 펑펑 우는 장면이 가능한 그런 연기자.

 

<푸른바다의 전설>이 가진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이 가볍게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날아가는 판타지를 땅으로 끌어내려 어떤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의 희비극적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연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자의 공력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페이소스를 주는 인물들은 그래서 초반에 강남거지로 등장해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 홍진경이나 인어로 등장해 드라마에 어떤 쓸쓸한 정조를 남기고 가버린 조정석 같은 카메오다. 이 드라마가 살기 위해서는 카메오들이 갖고 있는 이런 희비극적 요소들을 남녀 주인공이 오히려 가져야 되지 않을까

<푸른바다>가 인어를 통해 말하는 기억, 가족, 사랑

 

우리 예은이 너무 착해서 엄마 돕겠다고 수학여행도 안 간 애예요. 정말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다시 못 깨어날 줄 알았으면... 다 해줄걸. 수학여행도 억지로 보내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 걸.... 엄마가 못해준 것만 생각나니까.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예은아..”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어 심청(전지현)은 병원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예은 엄마를 만난다. 그녀는 의료사고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우리 딸이 왜 죽었는지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냐고 청이 묻자 예은 엄마는 예은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살았을 적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는다.

 

내 비밀 들어볼래요? 난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가 있어요. 원하면 지워줄게요. 슬프게 하는 기억? 딴 생각 안 나면 안 슬프고 안 아플 수 있잖아요. 내가 해줄게요.”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어 심청의 제안에 문득 예은 엄마는 예은이와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눈을 뜨더니 말한다. “아니요. 죽을 때까지 아무리 아파도 가지고 갈 거예요.” 아픈데 왜 가져 가냐는 심청의 물음에 예은 엄마는 말한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기억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는 각별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 대구가스폭발사고 등등.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몇 년 간 벌어졌던 사건사고들만 해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까지 너무 많은 이들이 벌어졌다. 그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엄청난 아픔과 상처가 마치 트라우마처럼 우리들의 기억 속에 흉터를 남긴다. 너무 아파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tvN에서 방영됐던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기억의 시스템을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한 가장의 비극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희망을 통해 아프게도 담아냈다. 뺑소니로 죽은 아들의 기억을 지워내는 대가로 사실은 자신의 현재의 위치와 지위를 갖게 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이 가장의 이야기는 기억을 지우는 것과 권력 시스템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드라마 <시그널>에 시청자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까닭 역시 지워져가는 기억을 되돌려 그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형사들의 따뜻한 인간애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리며 그 미제사건을 풀어내려는 간절한 열망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그 판타지는 아무런 이물감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억을 다루는 드라마들 속에서 모두가 지워가는 그 기억의 언저리를 마치 유령처럼 세월이 지나도 계속 배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기억에 대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은 엄마가 그렇고, <기억>에서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던 가장과는 달리 결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아이 엄마가 그러하며, <시그널>의 그 많은 희생자 가족들이 그렇다.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인간 세계를 전혀 모르는 심청은 가족이 뭐냐고 같은 병실에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그녀는 진짜 몰라서 물어? 여기 간병하는 사람들이 다 가족들이잖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심청은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가족은 붕어빵 같은 거네요. 붕어빵들처럼 닮았고 따뜻하고 달달해.’

 

하지만 가족은 그저 달달하기만 한 존재들은 아니다. 드라마 말미 에필로그에 이르러 그 아주머니는 가족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항상 좋기만 하겠어?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나도 우리 아들 빚 갚아주느냐고 생고생이야. 그래서 여기 디스크 터진 거잖아.” 가족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남는 상처들이다.

 

허준재(이민호)에게도 그 상처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재혼해 같이 살게 된 형 허치현(이지훈)은 그의 자리를 빼앗는다. 그래서 결국 상처 입은 허준재는 집을 나와 살아가게 되지만 아픔만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가짜 아들 노릇하는 허치현이 무감한 것과, “미안해도 미안하다 말 못하고 보고 싶어도 또 보고 싶다는 말 잘 못하며살아가는 아버지와 허준재의 아픈 마음은 그래서 너무나 다르다.

 

허준재. 사람들은 아프고 슬퍼도 기억하고 싶어 해? 밥도 못 먹고 잠을 못 자도 기억하고 싶은 사랑은 뭘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인어라는 인간과는 다른 이질적 존재를 내세워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던 기억이니 가족이니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새삼 질문한다. 아파도 기억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아픈 기억과 가족과 사랑의 이야기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인어의 바다와 대비되는 인간의 바다

 

왜 하필 바다일까. 또 기억, 약속 같은 것들이 떠올리는 것은. 시국이 시국이어서인지 어떤 장면이나 대사들마저 그저 드라마의 한 대목으로 여겨지지가 않는다. 물론 드라마 제작자들이 이 모든 것들을 의도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나라에서 똑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공기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지 않았을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을 보다보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남다르게 다가오는 바다와 기억 그리고 약속 같은 단어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푸른 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어우야담의 인어이야기를 가져온 것처럼 담령과 인어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알게 되어 사랑하게 된 담령과 인어지만 사람은 뭍에서 살아야 하고 인어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는 그 다른 삶의 방식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바다는 그래서 이중적인 의미다. 바다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어린 담령에게는 죽음이지만, 그런 담령에게 다가와 그를 구해준 인어에게는 생명이다. 인어를 사랑하게 된 담령이 억지로 치른 혼사 첫날 밤 말을 달려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건 그래서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는 인어가 그를 구해줄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인어는 그를 구해주었다.

 

우리에게 바다란 그 의미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이전만 하더라도 낭만적인 어떤 곳이고, 생명과 풍요의 의미였던 바다가 아닌가. 하지만 참사 이후 바다는 잿빛의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구해줄 것이라 믿었던 그 신뢰들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통곡의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된 건 사랑이니 믿음이니 하는 순수한 언어들이 그걸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인어 같은 존재가 실제로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그럼에도 어우야담 같은 전설로나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고 그걸 잊지 않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까닭은 인어이야기가 주는 그 순수나 사랑, 믿음 같은 좋은 가치들을 지켜내기 위함이었을 게다. 그저 포획되는 물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과는 달리 바다가 그저 착취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을 살려주는 대지모 같은 곳으로 믿으려는 그 마음.

 

<푸른 바다의 전설>은 여기에 기억을 지우는 장치 하나를 더했다. 인어가 사람에게 키스를 하면 그 사람의 기억에서 인어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이야기를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으로 재해석했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지만 동시에 망각하는 존재다. 그래서 아픈 기억들은 지워내려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죽음의 선을 넘어서 아픈 기억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 망각의 기제가 작동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인어는 잊지 않고 기억한다. 아픈 기억들까지 모두 다. 그리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먼 바다를 헤엄쳐온다. 사람은 점점 아픈 기억이 지워져 가지만 바다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왜 최첨단의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인어 같은 동화적 존재를 얘기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인어라는 순수의 존재를 세워둠으로써 이성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을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돈을 뜯어내는 여고생들을 보며 그걸 똑같이 따라하는 인어가 오히려 어린 꼬마 아이에게 훈계를 듣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인어란 존재가 우리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인어의 바다와 인간의 바다가 다르다. 인어의 바다는 풍요롭고 모든 걸 품어주는 곳이지만 인간의 바다는 탐욕으로 피폐해진 곳이다. 인어의 바다는 기억하지만 인간의 바다는 망각한다. 인어의 바다는 약속을 지키지만 인간의 바다는 약속을 저버린다. 이런 대비효과는 아마도 <푸른 바다의 전설>이 인어란 존재를 굳이 도시 한 복판에 세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해준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건 분명 과잉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네 대중들의 기억의 트라우마 속에서 바다만 쳐다봐도 떠오르는 잔상을 지우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바다와 기억과 약속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런 남다른 의미들로 다가온다

<푸른바다>, 왜 하필 어우야담의 인어이야기일까

 

넌 좋은 사람이야. 내 손 놓고 갈 수 있었는데 잡았잖아 여러 번.” 인어 심청(전지현)의 한 마디에 순간 허준재(이민호)의 눈빛이 흔들린다. 늘 입만 열면 거짓말만 늘어놓는 머리 좋은 사기꾼 허준재는 여자에게도 진심보다는 허세와 너스레만 늘어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달콤한 거짓말에 넘어가던 여자들과는 달리, 심청의 말은 너무 진심이라 오히려 그를 뜨끔하게 만든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이 굳이 어우야담에 수록된 담령과 인어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이런 전설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현재에 새로운 인어이야기를 이어가려한 이유는 뭘까. 그건 어째서 동서양을 망라해 어디서든 인어의 전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왔고 그 전설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어란 인간과 바다의 경계에 선 존재다. 거기에는 인간의 세계와 바다의 세계가 교차한다. 인어 전설이 말하는 것은 바다가 가진 자연 그 자체의 순수함과 대비되는 인간 세계의 욕망이고 그 부딪침과 상생의 길이다. ‘어우야담에 기록된 담령의 이야기에서도 나오듯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어를 잡은 양씨(성동일)인어에게서 기름을 취하면 무척 품질이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는다날이 갈수록 부패하여 냄새를 풍기는 고래 기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자연을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욕망을 채워줄 물질로 바라보는 시각.

 

그래서 인어 전설에 등장하는 인간과 인어의 사랑은 어찌 보면 단순한 연애담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대변하는 인어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을 묻는 심청에게 허준재는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며 그건 항복이고 지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욕망 자체가 없는 순수한 영혼의 심청에게 이기고 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녀는 바로 허준재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 말이 또 허준재의 가슴을 파고든다.

 

거짓말만 늘어놓지만 그 때마다 툭툭 던지는 심청의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를 흔들어 놓는다. 즉 허준재라는 사기꾼이 이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삶의 방식이라면, 자연을 대변하는 존재로 나타난 심청은 그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진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짐으로써 그 삶의 방식이 어딘지 잘못되었다고 알려준다.

 

요즘 같은 시국이 보여주듯이 말이라는 것은 진심을 담기보다는 진실을 가리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처음 등장한 심청이 말을 하지 않고 표정과 행동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게다. 그녀의 말 없는 진심은 허준재라는 사기꾼의 말 많은 거짓과 대립한다. 그러면서도 이 심청이란 존재는 허준재의 속 깊은 곳은 아직 남아있는 순수한 한 지점을 믿고 그걸 끄집어낸다.

 

백화점에서 신발을 사주고는 도망치려 했던 허준재의 발길을 돌려놓은 건 다름 아닌 그의 기억 속에 담겨진 어린 시절 엄마와의 기억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세상의 끝에서 자신에게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가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 그 아픈 기억은 그에게 세상의 끝같은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최소한 간다는 말이라도 해주기 위해 심청에게 돌아온 허준재의 그 마음 한 자락은 그래서 그 거짓으로 포장된 그에게 남아있는 순수한 한 지점을 드러낸다.

 

심청이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허준재의 장면은 그래서 자연을 대변하는 인어가 가진 순수의 세계와 거기서 떠나왔던 인간의 세계가 손을 맞잡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허준재에게는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삶이 다시 바다로 이어지는 세상의 시작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는 육지의 끝이 인어가 사는 바다의 시작이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물론 <푸른바다의 전설>1600년대에 쓰인 어우야담의 한 대목을 가져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로 엮어놓은 작품이다. 그래서 인어의 순수함은 바보스러움이거나 늑대처녀같은 말들로 표현되며 웃음을 주지만, 순간순간 그 인어가 꺼내놓는 진심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건 이 작품이 웃음 이면에 숨겨놓은 진지함이 그럴 때마다 슬쩍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말의 시대, 욕망의 시대 그리고 상실의 시대. 요즘 같은 시대에 그 순수함이란 전설로나 불리는 어떤 것이 되었다

동북공정에서 항일로, 일본 버리고 중국 향하는 한류

 

KBS <12>3.1절 특집으로 중국 하얼빈을 간다고 한다. 3.1절이라는 의미도 그렇고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라는 점은 이 특집이 갖고 있는 방향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항일의 의미로서 하얼빈이라는 장소는 우리와 중국의 뜻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지난 2008년 이른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와 민감했던 시기에 <12>이 떠났던 백두산행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당시 외교적인 갈등 상황 때문에 촬영 자체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독도, 가거도, 우도, 백령도에서 가져온 물을 백두산 천지에 붓는 장면은 나름 <12>의 방식으로 백두산을 생각하는 우리네 정서를 표현했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8년 전 중국과의 대립에서 마치 하나의 상징물처럼 존재하던 백두산을 갔던 분위기와 현재 항일이라는 동일한 뜻이 모이는 하얼빈 출국을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는 이토록 다르다.

 

물론 <12>이 중국과 공존하려는 최근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런닝맨>이 중국 상하이에서 찍은 이른바 ‘10인의 결사단특집을 떠올려 보라. 옛 난징루 거리를 재현한 곳에서 <런닝맨>이 게임을 하며 가져온 스토리는 다름 아닌 일제에 맞서 싸우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작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이 중국시장을 염두에 뒀고 또 실제로 중국 흥행에서 꽤 괜찮은 수익을 거둔 사실은 흥미롭다. 물론 초반 기록적인 흥행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지속적으로 이뤄지진 못했지만 <암살>이라는 작품이 중국에서도 관심을 끌어 모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로 주목받고 있는 전지현이 항일 독립투사로서 캐스팅되었다는 점이 주효했던 것.

 

올해 개봉을 준비 중인 김지운 감독의 <밀정>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과 그를 둘러싼 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여러모로 <암살>과 궤를 같이 하는 블록버스터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다룬 이준익 감독의 <동주>, ‘위안부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이미 해외에서까지 반향을 얻고 있는 <귀향>도 어찌 보면 이러한 항일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한류의 목적지는 일본으로 귀착됐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종착역이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 아베총리의 망언에서부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의 부재, 어이없는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의 정치적 사안들이 한일 간의 교류의 물꼬였던 한류마저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여전히 일본의 한류는 진행 중이지만 매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한류의 흐름과 비교해보면 한풀 꺾인 모양새다.

 

최근 들어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콘텐츠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 그래서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해외여행에 있어서 명확한 명분이 필요한 <12>8년 전 백두산을 갔던 데 이어 하얼빈을 선택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어쨌든 현재 우리네 한류는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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