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한 조우진이라는 씬스틸러 

2015년 영화 <내부자들>에서 그저 호리호리한 체형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얼굴로 등장해 역대급의 소름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충무로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배우가 바로 조우진이다. 이후 조우진의 작품 행렬은 말 그대로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브이아이피>, <보안관>, <더킹>, <부라더>, <리얼>, <남한산성>, <강철비>, <1987>까지 한국영화에 그가 빠지면 어딘가 허전할 정도가 되었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38사기동대>, <시카고 타자기>까지 드라마에서도 그는 조연으로 등장해 어김없이 장면을 훔쳐가는 씬스틸러로 자리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역대급의 2016년, 2017년은 사실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1999년부터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해 탄탄한 기본기를 익혔고, 2009년부터는 지금까지 갖가지 역할로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그 존재감을 넓혀왔던 배우였다. 다만 그 노력들이 쌓여 지금의 커다란 과실로서 나타났을 뿐이다. 어딘지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얼굴로 가벼운 코미디가 섞여진 연기를 보여주다가도, 그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 어떤 독기를 품어낼 때는 반전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배우. 그래서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그토록 많은 작품만큼 폭이 넓다.

<내부자들>의 조폭은 물론이고, <보안관>의 구수한 부산 사나이 역할, <더킹>의 수사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와 <시카고 타자기>에서 선보인 흥 많은 비서 역할 등등 다양한 역할을 제 색깔로 연기해온 그는 특히 올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흥행중인 영화 두 작품, <강철비>와 <1987>로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된 배우가 되었다. 

<강철비>에서 북한에서 급파된 요원 최명록 역할을 연기한 조우진은 이 영화가 가진 긴장감을 끌어올리는데 있어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북에서 벌어진 군부 쿠데타 때문에 남으로 내려오게 된 ‘북한1호’를 제거하기 위해 내려온 북측 요원 역할. 무표정한 얼굴로 거침없이 임무 수행을 위해 몸을 던지고 또 던지는 그 모습은 마치 <터미네이터2>의 T-1000을 보는 듯한 살벌함을 선사했다. 드라마 속에서 웃음 주는 비서 역할로 주로 그를 떠올리던 관객들이라면 그 반전 효과가 훨씬 더 컸을 게다.

하지만 <강철비>를 보고 <1987>을 본 관객은 이 작품 속에서 고 박종철 열사의 삼촌 역할을 연기한 조우진을 보며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문으로 인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박종철 열사의 시신 부검 현장에 입회하게 된 그는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아내는 그 얼굴 연기만으로도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부검 장면이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 얼굴 장면 하나 속에는 그가 이 비극적인 사건을 접하는 분노와 슬픔이 그대로 느껴질 수 있었던 것. 그것은 1987년 당시를 살아냈던 이들이 가진 감정을 그대로 표징해 보여주는 연기였다고 보인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만큼 그 주변을 받쳐주는 조연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씬스틸러들은 주인공 그 이상의 강렬한 연기로 작품 전체에 어떤 정조와 색깔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우진이라는 신스틸러가 그간 여러 작품 속에서 보여온 것이 바로 그런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다. 

올해는 특히 조연들의 활약이 눈부셨던 한 해였다. <범죄도시>로 일약 대중들의 스타가 된 진선규가 그렇고, 영화 <택시운전사>와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너무 다른 역할로 주목받고 있는 최귀화가 그러하며, <남한산성>의 허성태, <택시운전사>의 엄태구 같은 배우들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조우진은 드라마와 영화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고 2018년에도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나 영화 <창궐>에도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모쪼록 2018년에는 조우진 같은 좋은 배우들의 맹활약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사진:영화 '강철비')

‘시카고 타자기’, 이토록 문학적 상징들이 가득한 드라마라니

독특한 드라마. 아마도 tvN 새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런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총소리가 타자기 치는 소리를 닮았다고 해서 톰프슨 기관단총에 붙여진 별칭에서 따온 <시카고 타자기>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가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일종의 문학적 해석이 가능한 상징들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가 시카고에서 발견한 한 타자기는 그에게 기묘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타자기는 1930년대 경성에서 글을 쓰던 자신과 친구인지 동료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 유진오(고경표), 그리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듯한 전설(임수정)이 함께 어울렸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인지 아니면 한세주라는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타자기를 구입하려 하지만 팔지 않겠다던 주인은 타자기 스스로 자신을 한세주에게 보내달라고 찍어대는 기이한 광경에 놀라 결국 한세주에게 타자기를 보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타자기를 한세주에게 배달해주는 인물이 바로 전설이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우연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가 이를 허용해주는 건 다름 아닌 한세주라는 작가의 존재 덕분이다.

이 모든 우연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은 어쩌면 한세주라는 상상력이 넘쳐나지만 지금은 무슨 일인지 슬럼프에 빠져들어 점점 미칠 지경이 되어가는 작가가 재구성한 일들처럼 보여진다. 그것이 한세주의 욕망에서 비롯된 상상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즉 슬럼프에 빠진 그에게 전설과 시카고에서 배달된 타자기는 마치 동격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뮤즈’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전설이 계속해서 한세주에게 날리는 메시지는 “삼류소설 쓰지 말고 위대한 작품을 쓰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세주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은 했지만 스스로에게 느끼는 어떤 자책감과 그래서 더 커지는 욕망의 목소리일 수 있다. 자신의 소설을 그대로 따라해 모방범죄를 저지른 스토커의 등장은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자신의 소설은 마치 시카고 타자기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톰프슨 기관단총처럼 누군가에게 무시무시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만큼. 

게다가 그 스토커가 한 말, 한세주가 자신에게 살인의 영감을 주었듯이 자신이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었다는 말이 그에게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박힌다. 그래서 한세주에게는 너무나 상반된 영감을 제공하는 두 인물이 양편에 서 있는 셈이다. 하나는 장르 소설 속에서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을 그려내게 하는 영감을 주는 스토커 같은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삼류소설 쓰지 말고 위대한 작품을 쓰라며 영감을 주는 전설 같은 인물이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한세주를 끝없이 몰아세우는 건 전속 출판사인 황금곰 대표 갈지석(조우진)이다. 그는 소설을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 본다. 소설의 성공을 게임과 영화 등등으로 멀티유즈하여 엄청난 비즈니스로 만들어내려 한다. 그래서 슬럼프에 빠진 한세주에게 유령작가를 쓰자는 은밀한 제안을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유진오다. 그런데 드라마는 유진오라는 인물을 진짜 유령 같은 미스터리한 존재로 연출하고 있다. 어쩌면 그 역시 한세주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인물일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시카고 타자기>는 이처럼 창작자와 뮤즈라는 영감을 주는 관계를 멜로와 미스터리 등의 장르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전적으로 한세주라는 작가가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많은 판타지적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용인되고 이해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성공은 했지만 어딘지 불안하면서도 해소될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작가 한세주의 상상일 수도 있다는 문학적 개연성이 있어서다. 

이처럼 문학적인 상징들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을 대중적으로 설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건 이런 상징들을 인물들의 밀고 당기는 멜로와 스릴러가 덧붙여진 장르적 긴장감 그리고 판타지까지 동원해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내는 진수완 작가와 김철규 감독의 공력이 있고, 이를 제대로 받쳐주는 유아인이나 임수정, 고경표 같은 믿고 보는 배우들이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 타자기>는 지금껏 이런 형태의 드라마가 국내에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제작진에게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결코 쉽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독특함 안에서도 어떤 대중적인 공감을 이끌어가는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들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이런 도전적인 시도 그 자체에 이 드라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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