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호불호 갈리는 압도적 볼거리와 약한 스토리 사이

영화 <안시성>은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로부터 시작한다. 달리는 말과 창과 칼을 들고 맞붙는 당 태종의 군대와 고구려군의 치열한 전장. 살점이 잘려져 나가고 피가 튀는 그 현장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연된다. 

그 영화의 도입 부분을 채운 전투 장면은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떤 걸 보여줄 건가를 말해준다. 제목만 들어도 그 내용을 모를 우리네 관객은 없을 소재. 20만 당나라 최강의 대군을 맞아 고작 5천의 병사들로 이를 물리친 양만춘 성주가 이끈 안시성 전투가 그것이다. 

KBS 대하사극 <대조영>에서도 다뤄졌고,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제작비 400억 중 상당한 액수를 소진시켜 결국 전체 드라마를 휘청하게 만들었던 게 바로 초반 안시성 전투 스펙터클이었다. 그 정도로 안시성 전투라는 소재를 재연해내려는 역사 콘텐츠들의 야심은 계속 있어왔다. 그러니 영화 <안시성>이 다루는 이야기는 이미 우리네 관객들이 대부분 아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재연해낼 것인가가 이 영화가 가진 관건이었다.

<안시성>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이고 도식적이다.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성주 양만춘(조인성), 그와 정치적으로 부딪치는 연개소문(유오성), 양만춘을 따르는 무사들로 부관인 추수지(배성우), 도끼를 쓰는 부월수장인 활보(오대환), 그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환도수장 풍(박병은)이 있고, 양만춘의 여동생인 백하부대장 백하(설현)와 그의 연인인 기마부대장 파소(엄태구)가 등장한다. 캐릭터 설명만으로도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갈 것인가가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그런 인물들을 <안시성>은 배치해놓는다. 

이렇게 쉽게 전형적인 인물을 사용하고, 안시성 전투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소재를 가져왔다는 건, 이 영화가 주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이라는 걸 명백히 해준다. 그래서 영화는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볼거리의 재미가 훨씬 더 관객을 몰입시킨다. 특히 우리네 사극에서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공성전’을 다룬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밀고 당기는 전투의 스펙터클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성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당 태종과 이를 막아내면서 반격을 가하는 양만춘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흥미롭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공격 속에서 이를 뒤집는 전략들은 ‘전쟁 스펙터클’이 보여줄 수 있는 극점들을 보여준다. 특히 공간감을 잘 인지하게 만든 연출은 관객이 안시성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여러 국면들에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렇게 스펙터클이 강렬하게 전편에 채워지다 보니 가끔씩 전투의 소강상태에서 이어지는 드라마들이 너무 소소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물을 다소 전형적으로 그려 놓은데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하고, 애초부터 인물을 파기보다는 전쟁의 양상에 더 집중하겠다는 영화의 전략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안시성>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볼거리를 찾는 관객이라면 <안시성>의 시종일관 이어지는 전쟁 스펙터클이 압도적인 재미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섬세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인물에 대한 평이한 이야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안시성>은 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시각과 청각이 아우러진 그 시스템 속에서 더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는.(사진:영화'안시성')

박사모 보이콧 <더킹>의 질문,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더킹>에는 우리네 역대 대통령들이 자료화면 그대로 등장한다.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들은 그저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배경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그들의 앞길이 꽃길이 되느냐 흙길이 되느냐가 결정되고, 그래서 마치 대선은 미래를 판돈으로 내건 도박판처럼 그려진다.

 

사진출처:영화<더킹>

지금껏 시국과 시대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조폭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었다는 건 우리네 정치사에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를 가늠하게 한다. 하지만 <더킹>의 주인공은 조폭이 아니라 검사다. 그것도 상위 1%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검사. 한강식(정우성)은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고 그를 오른팔 역할을 하는 양동철(배성우)은 어느 날 후배검사인 박태수(조인성)를 자신들의 라인에 끼워 넣는다. 영화는 태수라는 인물의 개인사이면서 그의 성공과 추락 과정들이 엮어진 시대사를 그린다.

 

영화에서 이 1%에 해당하는 비뚤어진 권력욕에 물든 비리 검사들은 조폭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손에 피 묻히고 오물을 만지는 일들을 직접 하는 조폭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점점 권력의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태수에게도 그런 그림자 역할을 자청하는 고향친구 두일(류준열)이 붙는다. 라인을 타고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그에게 가족과 친구는 일종의 걸림돌이 된다. 이 권력 시스템에서 가족관계나 친구관계 같은 수평적 체계는 서열화 되기 마련인 권력 체계에는 점점 맞지 않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비리검사들이 하는 일이란 지속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은 권력을 바꾸게 되고 그럴 때마다 라인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추락하게 되는 게 이 권력 시스템의 룰이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알아맞히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태수의 목소리로 그가 겪은 일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깔린 내레이션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인물이 성공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선택들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하고 심지어 곤두박질치는 그 과정들을 똑같이 간접경험하게 만들고, 그 삶의 선택들을 반추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적 틀을 벗어나 어떤 통쾌함과 속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건 영화가 유지하고 있는 일종의 마당극 같은 풍자적 요소들 덕분이다. 다소 과장된 연출로 보여주는 이런 풍자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고구마 시국에 얹혔던 체기를 시원한 사이다로 가라앉혀주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마취적인 사이다에만 머무는 영화라는 건 아니다. <더킹>의 덕목은 이러한 풍자극의 사이다를 느끼게 해주면서도 동시에, 태수의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나쳐온 대통령들의 면면들과 그들이 대통령이었던 시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주고, 당시의 부조리들이 어떻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국을 만들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는 것.

 

흥미로운 건 영화 중간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모습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결정이 내려지고 비통해하는 야당 의원들 모습이 비춰진 후 국회에서 박근혜 의원이 웃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한 장면만으로 <더킹>은 기묘한 반전을 이루는 현 시국의 이야기까지를 끼워 넣는 효과를 만든다.

 

한편 박사모의 한 회원은 <더킹>을 보이콧 하자는 제안을 카페에 올렸다고 한다. 지난 <아수라> 무대 인사에서 박근혜 나와라고 외쳤던 정우성이 출연하고 있다는 이유다. 갖가지 드러나고 있는 부정들로 인해 탄핵 정국을 맞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여전한 무비판적 추종에 대해 <더킹>이라는 영화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디마프>, 조인성 특별출연이 특별하게 다가온 까닭

 

종영한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조인성이 나왔다. 그런데 그는 특별출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사실 조인성 정도면 어떤 드라마에서든 주연 자리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를 챙겨보려는 팬들도 적지 않을 테니.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하지만 조인성은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위치를 기꺼이 감수했다. 그가 맡은 연하라는 캐릭터는 슬로베니아에 거주하는 인물이다. 완이(고현정)와 함께 그 곳에서 사랑을 피웠지만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장애인과 유부남은 안 된다(물론 뒤에 와서는 이런 편견을 모두 깨지만)”는 엄마 난희(고두심) 때문에 그녀는 그를 떠나와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질책한다. 그럼에도 연하는 그 먼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그런 인물이다.

 

가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초반부에 등장하고, 점점 그가 당했던 사고와 그로 인해 완이와 떨어져 지내게 된 사연 등이 소개되며, 나아가 난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슬로베니아까지 날아온 완이와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하지만, 연하는 이 드라마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가 다리를 다친 후 그 자리에 멈춰선 수동적인 인물로 살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이를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귀국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면서 동시에 연하의 자기 극복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조인성이 이 역할을 맡아 드라마를 빛내주면서도 동시에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한 발 뒤편으로 물러나는 걸 기꺼이 감수했다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특별출연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무게감 있는 조연에 가깝다. 어르신들이 저마다 앞으로 나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연기자들은 드라마에서 자신이 서는 위치에 대해 민감하다. 특히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들일수록 자신의 역할이 보조적인 것에 머무는 걸 용납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는 분명 조연인데도 불구하고 과한 연기로 주연을 가려버리는 중견 연기자들도 적지 않다. 결국 드라마가 팀플레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아무리 연기력이 출중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건 드라마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어 마이 프렌즈>는 김혜자, 나문희, 신구, 주현,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같은 쟁쟁한 중견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분들은 모두 우리네 드라마에서 어머니, 아버지 역할을 해 오셨던 분들이다. 드라마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이 분들은 항상 뒤편에 서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 분들이 연기가 부족해서 그렇게 한 발 뒤로 물러나 계셨을까. 그것이 드라마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 분들이 그동안 어떻게 이 놀라운 연기력을 억누르며 뒤편에 서 있었는지가 놀라울 정도의 연기들을 보여줬다. 치매 연기를 하며 마치 아이처럼 우는 장면에서는 보는 이들을 모두 눈물짓게 만들었던 김혜자, 꼰대 남편에 대한 불만과 함께 여전히 남은 정을 보이는 따뜻한 연기를 선보인 나문희, 그 쉽지 않은 꼰대 역할을 제대로 보여준 신구, 속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씩씩한 엄마로서 딸과 화해를 해나가는 변화를 연기한 고두심, 친구에 대한 깊은 우정과 오랜 세월 순애보를 안고 살아가는 여배우 역할을 실감나게 보여준 박원숙,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는 이들에게 사이다를 안겨준 윤여정 그리고 노년에도 여전히 멋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주현까지. 어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명연기들이 펼쳐졌다.

 

이들이 이렇게 속에 깊이 갖고 있던 연기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풀어놓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노희경 작가가 그 마음껏 그 연기력을 펼쳐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인성이나 이광수 같은 이른바 특별출연연기자들은 기꺼이 뒤로 물러나 이분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저 어르신들이 해왔던 그런 역할을 즐겁게 자청했던 것.

 

이것은 <디어 마이 프렌즈>가 전하는 메시지와도 상응하는 이야기다. 지금껏 막연히 꼰대로 치부되어 왔던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좀 더 담아내겠다는 것. 그러니 연기자들도 늘 뒤편에 있던 어르신들이 앞으로 나오고 앞에 서있던 젊은 배우들이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조인성과 이광수 같은 연기자들의 특별출연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물론 이런 배치와 이야기 구성은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어르신들의 모습을 무조건 긍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현재 고령화 사회의 길에 접어든 우리에게 어르신들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어버이가 어버이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연장자라는 것 때문에 그것까지를 모두 수용하고 긍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래서 현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네 어르신들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비전을 담아냈다. 중견연기자들은 기꺼이 그 비전을 절절한 연기로 전해주었다. 조인성과 이광수 같은 젊은 배우들이 비껴 준 자리에서.

<디마프>에 망라된 노희경 작가의 작품 세계

 

워낙 대단한 작가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노희경이라는 작가의 색깔이 원숙미까지 얹어져 이처럼 빛나는 작품이 있었던가.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드라마 작가라면 꼭 한 번 써보고 싶지만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희경 작가의 인생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노희경 작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 작가는 멜로를 그려도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의 인간애를 담는 작가다. 가족드라마를 해도 가족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양태를 잡아내는 작가다. 그런 그에게 <디어 마이 프렌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망라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물론 어르신들의 삶이라는 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이야기, 사랑, 우정 같은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며 겪게 되는 거의 모든 경험들이 녹여져 있다. 희자(김혜자)와 정아(나문희)의 둘도 없는 우정, 정아와 남편 그리고 부모와 자식으로까지 얽힌 한 집안의 가족사, 희자와 성재(주현)의 노년에도 피어나는 사랑, 희자와 충남(윤여정)의 친자매 이상으로 느껴지는 자매애, 난희(고두심)와 영원(박원숙)의 우정, 난희와 완이(고현정)의 자매 같은 모녀 사이, 완이와 연하(조인성)와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 게다가 노년을 맞아 갖게 된 치매나 암의 이야기까지...

 

생각해보라. 이 많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는 이 드라마의 면면들을. 그 중 한 가지 이야기만 갖고도 꽤 무거운 한 편의 드라마가 나올 것만 같은 무게감이다. 하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렇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노희경 작가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입으로 꼭꼭 씹은 음식을 넣어주듯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볍게 건넨다.

 

그 각각의 소재들이 갖는 극적 상황들이 놀랍도록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면서도 전체를 꿰뚫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놓지 않는다. ‘친구의 관점으로 들여다본 인생은 그 많은 아픔들을 긍정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하다. 드라마 곳곳에, 장애의 문제, 가부장제가 갖고 있는 폭력의 문제, 남녀 성차의 문제 등등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들이 번뜩이지만 그 양상은 갈등을 갈등으로 풀어내기보다는 그것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극점을 전제하여 얻어지는 어떤 통찰들을 통해 해결점을 제시한다는 점도 놀랍다.

 

이런 작품은 결코 단기간에 쓰일 수 없는 것이고, 단지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그려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 동안 작품을 해오고, 또 스스로도 많은 인생의 경험들을 쌓아오면서 갖게 된 진지한 궁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감히 노희경 작가의 인생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점들이 이 작품 하나에 망라된 느낌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했을까. 최근 tvN에서 유독 드라마 작가들의 많은 인생작(?)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그널>을 쓴 김은희 작가가 그렇고 <응답하라> 시리즈를 쓴 이우정 작가가 그러하며 <기억>의 김지우 작가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희경 작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역작들을 연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미생><시그널>을 연속적으로 성공시킨 김원석 감독은 필자에게 잘 하는 것을 해보고 싶은 대로 끝까지 하게 내버려두는작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얘기한 바 있다. 곱씹어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디마프>, 남은 건 친구뿐, 짠내 나는 꼰대들

 

이 어르신들은 죽음을 끼고 산다. 문정아(나문희)길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조희자(김혜자)는 너무 멋있다며 같이 죽자고 한다. 그들은 어르신 사진만 찍는 사진작가인 마크 스미스(다니엘 헤니)에게 찾아가 다짜고짜 영정사진을 찍으라고 명령한다. 거기서 박완(고현정)의 할머니 오쌍분(김영옥)은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 죽으면 울어라고 말한다. 그런 얘기 말라는 박완에게 할머니는 저승바다에 발 담근 지오래됐다고 한다. 그리고 걱정 말라며 지금은 골로 가는 것보다 집에 밭일이 더 급하다고 말한다.

 

'디어 마이 프렌드(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가 그려내는 흔한 장면들이다. 아예 대놓고 꼰대 드라마라며 우리가 꼰대라 치부하는 어르신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려는 드라마. 그래서인지 이 어르신들이 항상 옆에 친구처럼 달고 다니는 건 죽음이다. 조희자는 집에서 전구 하나를 스스로 갈지 못하고 망상 증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자 건물 꼭대기에 올라간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이지만 그 밑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이 다칠까봐 내려와 도로로 뛰어들기도 하고 한강 물로 뛰어들려고도 한다.

 

물론 미수에 그쳤지만 그런 조희자가 친구들 영정사진 찍을 때는 피했다가 살짝 사진작가를 찾아와 부탁해 찍은 사진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 채 찍은 그 사진 속에서 조희자는 웃는 것처럼도 보이고 우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찌 보면 부끄러워하는 소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겹쳐지는 얼굴을 보인다는 건 그 자체로 뭉클해지는 일이다. <디어 마이 프렌드>는 그런 드라마다. 우리가 막연히 꼰대라 치부하며 봤던 어르신들의 여러 얼굴들을 들여다보는 드라마.

 

그 나이에도 여전히 꿈이 있다. 꼰대에 구두쇠 남편을 둔 문정아는 힘들 때마다 자신을 붙잡아 놓기 위해 남편이 사탕발림으로 말하곤 했던 세계일주의 꿈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녀는 길 위에서 벼랑 끝으로 신나게 차를 몰아 죽음까지 날아간 <델마와 루이스>를 꿈꾼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집 구석을 벗어나 길로 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죽음을 향해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무작정 집을 나선 그녀는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조희자를 부른다. 결국 남은 건 친구뿐. 아마도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여진 것일 게다. 그리고 그들은 차를 몰고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찾아간다. 마치 <델마와 루이스>처럼 신나게 달려 나가지만 그들 앞에 놓인 건 그런 멋진 죽음이 아니라 사고로 벌어진 지독한 현실이다.

 

박완의 엄마 장난희(고두심)는 남편의 불륜을 집안에서 목격한 아픔이 있다. 또 여전히 그녀의 어머니가 돌보는 장애인 동생도 있다. 그래서 박완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모든 남자가 되지만, 유부남과 네 삼촌처럼 장애인은 안된다논란까지 야기한 대사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이런 편견들을 가감 없이 끄집어내 깨려는 목적으로 이런 대사를 집어넣었다. 결국 박완이 사랑하는 서연하(조인성)는 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장난희가 그 편견을 스스로 넘어서고 박완 또한 장애는 불편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걸 담아내려는 게 이 드라마가 가려는 목적이다.

 

박완과 서연하라는 여전히 빛나는 남녀의 안타깝고도 설레는 사랑이야기가 있지만 죽음을 무시로 끼고 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디어 마이 프렌드>는 단순한 멜로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나아간다. 박완은 사진작가의 집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라는 문구를 읽어낸다. 남녀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나 편견은 시한부라는 그 문구 앞에서 무색해진다.

 

젊어서 영원히 살 것만 같을 때는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죽을 것이라는 그 명제를 직시한 후 바라보는 삶은 완전히 다르다. 아픔도 이별도 사랑도 모두가 긍정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보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라는 말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 <디어 마이 프렌드>는 그런 얘기를 건네고 있다

<해피투게더> 서태지보다 <12> 조인성인 이유

 

서태지가 KBS <해피투게더>에 단독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에 대해 반가움보다는 불편함을 거론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작금의 달라진 예능의 생태계를 가늠하게 한다. ‘신비주의의 대명사이자 마지막 남은 신비주의라고까지 불리던 서태지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신비주의가 심지어 마치 연예인병처럼 거드름으로 느껴지는 시대다.

 

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서태지는 그간 좀체 내밀지 않았던 얼굴을 예능에서 보이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비주의를 벗어나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탈신비주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해피투게더>의 제목에 걸맞지 않게 다른 게스트 없이 단독 출연해, 그것도 유재석과 11 토크를 한다는 건 그래서 여전히 서태지의 이미지가 과거 9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이 서태지의 의도인지 아니면 <해피투게더> 제작진의 과잉 배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너무 과도하게 만들어진 신비주의 이미지가 버겁고, 그래서 보다 편안한 음악인 서태지로서 대중들에게 다가오려 마음먹었다면 일단 그 등장하는 방식부터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이른바 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할 게스트가 애매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이른바 이라는 것을 깨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게 서태지다. 물론 음악인으로서의 급은 당연히 지켜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서태지는 좀 더 자신을 일상인에 가깝게 내려놓아야 지금 시대의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인성이 <12>에 차태현 쩔친(쩔은 친구)’으로 깜짝 등장한 것은 여러 모로 서태지의 행보에 시사 하는 바가 많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로 그 어느 때보다 이미지가 신비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점에 자신을 찾아와 무작정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차태현에게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조인성에게 예능감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니 이런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이 부담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선배 형을 위해서 열심히 방송에 임하는 조인성에게서는 신비주의의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뭘 해도 CF 같은 그림을 만드는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깨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선수인 독하디 독한 <12>의 복불복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차태현과 함께 실미도로 들어오는 조인성을 보며 다른 게스트들과 출연자들 그리고 심지어 작가들마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조인성 같은 인물이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이질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면이 조인성의 <12> 출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지금 시대에 대중들이 스타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서태지는 좀 더 타인들과 함께 섞일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이미 지나가버린 신비주의 시대에 여전히 마지막 신비주의라는 불편한 수식어를 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요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 조인성의 <12> 출연에 쏟아지는 박수와 서태지의 <해피투게더> 단독 출연에 쏟아지는 불편함은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괜찮아 사랑이야', 조인성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나

 

조인성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었나? 역시 연기력은 좋은 작품을 만날 때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보여주고 있다. 조인성은 잘 생긴데다 바람기마저 있어 보이는 거의 아이돌에 가까운 추리소설 작가로 등장하지만 어느 순간 한 여자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남자로, 또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정신분열을 겪는 극단적인 캐릭터로 변주되더니 결국 이를 극복하고 이 모든 캐릭터를 하나로 묶어내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정신분열로 장재열(조인성)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고, 그 자신을 투영시켜 만든 한강우(디오)가 삼거리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은 그가 병을 극복해낼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에 충분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던 장재열이 맨발이었다는 점과, 자신이 만든 환영인 한강우 역시 맨발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해낸 건 그가 이 두 존재를 하나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된 단서가 된다. 각각의 캐릭터로 존재하며 분열되어 있던 자아가 장재열이라는 한 사람으로 묶여지는 것.

 

결국 장재열이 정신분열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그 트라우마 속에 비틀어진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래서 상처투성이 한강우의 맨발을 장재열이 씻겨주는 장면은 자기가 자신의 아픔을 다독이는 장면이 된다. 물론 드라마는 장재열과 한강우의 캐릭터를 나누어놓지만 결국은 그것이 장재열의 내면이 확장된 장면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를 연기해내는 조인성은 사실상 자신 속에 있는 여러 캐릭터들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하는 연기를 해야만 한다.

 

장재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조인성이라는 연기자가 꽤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갖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그는 더 이상 외모가 수려한 조각미남의 틀에 갇히지 않는 배우가 됐다. 그 틀 속에 꿈틀대는 아픔과 상처가 조금씩 밖으로 비어져 나올 때 조인성의 또 다른 모습들이 발견되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운명적 멜로의 남자 주인공 역할에 딱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다분히 날카롭고 강하며, 때로는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가녀린 인물을 그 속에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연기자는 어쩌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여러 자아를 갖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조절되지 않고 그를 지배할 때 정신분열이 되겠지만, 완전히 캐릭터에 빙의된 연기자를 보며 소름이 돋는 것은 거의 그 정신분열의 단계를 보듯 전혀 다른 모습들이 연기를 통해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정신분열이 아니라 연기가 되는 것은 연기자가 그 많은 자신 속의 다른 모습 역시 또 다른 나라는 걸 인정하고 다독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조인성과 장재열은 닮았다. 조인성은 장재열이라는 역할을 통해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끌어내 연기라는 영역을 확장시켰고, 장재열은 분열된 자아를 또 다른 나로 인정함으로써 그 병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네 삶의 어려움이란 어쩌면 한 사람 속에도 이처럼 많은 자아들이 서로 부딪치고 갈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잘 화해시키고 하나로 껴안아주었을 때 상처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장재열을 정신분열의 늪에서 꺼내주는 구원의 손길은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다. 그들의 끝없는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들이 있었기 때문에 장재열은 조금씩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도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이처럼 깊어진 연기의 맛을 보여준 것 역시 작가와 PD 그리고 동료 연기자들은 물론이고 그를 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조인성에게 남다른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많은 모습들을 하나로 묶어내며 괜찮은연기자 조인성을 발견하게 만든.

 

노희경 작가는 왜 하필 정신분열을 멜로 소재로 삼았을까

 

멜로 소재에 정신분열이라니. 우리 드라마사에 이런 남자 주인공이 있었던가.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열(조인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왔던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아프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투영된 환시를 볼 정도로 아프다. 심각한 폭력을 겼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 의해 죽고 형이 대신 교도소에 갔다. 장재열의 집안은 그가 정신분열을 앓듯이 모두가 아프고 분열되어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대신 교도소에서 청춘을 보낸 형 장재범(양익준)은 그 억울함 때문에 동생인 장재범을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그에게서는 불쑥불쑥 내재된 공격성이 밖으로 표출된다. 어찌 보면 그는 심각한 폭력 행사를 해왔던 아버지를 닮았다. 출소한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쩔쩔 못하게 만드는 그 모습은 아버지의 폭력이 여전히 계속 이 집안에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는 정신과 의사인 조동민(성동일)에 의해 치료받고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장재열의 어머니는 사실은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해를 했지만 기억이 그런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 장재열이 아픈 것은 그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형을 희생시켰고 그것에 대한 깊은 죄책감으로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간다. 자책의 끝은 자살이다. 이런 문제적인 가정사에 정신분열이라는 심각한 상태를 가진 장재열이라는 남자주인공은 그래서 단순한 멜로의 주인공에 머물 수가 없다.

 

왜 하필 노희경 작가는 이런 정신분열을 앓는 남자 주인공을 세웠던 것일까. 노희경 작가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작품의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을 했지만 본래 하고픈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회적 편견에 대한 것이라는 것. 따라서 <괜찮아 사랑이야>는 최근 들어 사적 멜로가 점점 사라지고 점점 늘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멜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멜로로 접근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은 개발시대를 거치며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지표로 포장되며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되던 것이었다. 그 과정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거대한 사회적 트라우마도 있었고 비정규직의 문제에서부터 크고 작은 사회적 아픔들이 존재했다. 외형적인 경제성장으로 겉은 번지르르 해졌지만 속은 상처투성이인 우리 사회는 그래서 장재열식의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버지 시대의 폭력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그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 우리는 정치 현장이든 사회의 사건사고든 또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0년 연속 자살률 1위다.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파괴로 몰아가는 것일까. 자신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장재열은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사회의 안타까운 희생자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의 틀로 아버지의 문제를 살짝 저 뒤편으로 숨겨두고 있지만 장재열의 정신분열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폭력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건 장재열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의 문제 또한 아버지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애를 앓고 있다. 평생 어머니의 병수발을 받아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닌 것을 그녀는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혐오한다. 그녀에게 남성과 스킨십조차 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생긴 건 어머니의 불륜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근원을 따라가면 무기력한 아버지가 서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그리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이처럼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하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이 가정의 비극이 시작된다. 한 가족은 집단적인 정신증을 앓게 되고 다른 한 가족은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겪었고 또 지금도 겪고 있는 사회적 병증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사회적 권위들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명량>이나 교황이 신드롬을 일으키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래도 노희경 작가는 이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장재열로 대변되는 우리들에게 괜찮다고 등을 다독인다. 장재열이 정신분열이라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의 주변에서 그를 위해 울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나마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파리한 얼굴로 힘겨워하는 장재열을 껴안아 주는 지해수와 주변인물들에서는 그래서 이 작가가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듯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사랑은 과연 사회적 치유를 얘기할 수 있을까. 흔히들 사랑타령이라 표현하며 사랑의 가치가 경제적 지표 같은 현실적 가치에 비해 사치일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 사랑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할 유일한 길이라는 걸 말해준다. 물론 여기서 사랑은 사적인 사랑 그 이상의 소통이나 공감 같은 사회적 사랑을 포괄하는 것이지만.

 

<괜찮아 사랑이야>가 깨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보는 시선은 편견 그 자체다. 그래서 심지어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어도 정신과를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괜찮아 사랑이야>가 보여주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각별한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거기에는 편견마저 감싸 안는 드라마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괜찮아 사라이야(사진출처:SBS)'

이광수가 투렛증후군 연기를 위해 각별히 노력한 이유 중에는 자칫 잘못하면 그 연기가 해당 질환자를 희화화시킬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던 것처럼 <괜찮아 사랑이야>가 정신질환자들을 소재로 다루는 방식은 극히 조심스럽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특정한 정신질환자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도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의 정신적 상처를 갖는다는 얘기를 건네고 있다.

 

장재열(조인성)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으로 한강우(디오)라는 환상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다는 상황이 그렇다. 그는 모든 여성들이 보기만 하면 하트를 날리는 연예인에 가까운 추리소설작가다. 그런 그가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네 편견을 깨준다.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어딘지 괴상하고 이상하게 생긴 무서운 존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장재열 같은 멋진 남자는 그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주는 멋진 남자다. 특히 이 드라마에는 캐스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예를 들어 지해수(공효진)가 찾아간 윤철의 부인은 정신분열 환자지만 외모는 평범 이상으로 출중하다. 해수가 재열에게 그녀를 가리키며 예쁘지 않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조연으로 잠깐씩 등장하는 정신질환자들의 배역으로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범 이상의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한 건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보인다. 정신질환자의 이미지? 혹여나 싸이코라고 부르는 그런 섬뜩함이나 불편함을 떠올렸다면 이 드라마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뒤집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지해수라는 정신과의사 역시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설정일 것이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정신과의사. 그러고 보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건 작건 자기만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다소 간의 부딪침과 소란이 있을지 몰라도 모두 문제없이 잘 살아간다는 게 이 드라마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장재열과 지해수는 어찌 보면 둘 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지해수는 장재열이 무언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안고 살아가겠다는 그에게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그래도 필요하면 약도 먹고 상당도 받으라는 것이 고작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불륜을 지속적으로 목격한 후 남자와의 스킨십을 거부하는 지해수에게 장재열은 그냥 확 해버리라고 말하며 그녀를 계곡 물 속에 빠뜨려 버린다. 지해수는 그에게 그냥은 그냥이네.”라고 답하며 자신의 트라우마가 별게 아니라는 걸 점점 확인해간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치 <다모>의 한 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멀쩡해 보여도 우리는 모두 다소 아프게 저마다의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괜찮다는 것. 그것은 감기 같은 병일뿐이라는 것. <괜찮아 사랑이야>는 재열과 해수의 로맨틱 코미디를 빙자해 정신 질환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고, 결국 한 똑같이 아픔을 느끼며 살아가는 자들의 인간애를 얘기하고 있다.

 

<괜찮아>, CF처럼 살지만 상처투성이 현대인들에 보내는 위로

 

왜 하필 조인성이어야만 했을까.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장재열은 마치 광고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가 집에 들어오면 마치 아파트 광고의 한 장면 같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면 냉장고 광고 혹은 생수 광고처럼 보이며,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면 자동차 광고 같다.

 

그렇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 덕분이다. 그가 공개된 DJ 부스나 클럽에서 음악에 맞춰 살살 춤을 추기만 해도 순간 그 장면은 광고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조인성이 광고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미지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그저 걷거나 숨만 쉬어도 광고 같은 완벽한 비주얼과 느낌을 보여준다.

 

하지만 광고란 일종의 환상이다. 사람은 결코 광고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열은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광고 같은 삶이 사실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아프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맨발로 피가 나도록 집으로부터 도망쳤던 인물이고,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놔두고 도망쳤다는 것을 자책했으며, 그러던 어느 날에는 아버지에게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트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 상처는 현재의 장재열의 주변을 여전히 맴돈다. 그래서 한강우(디오)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가상을 만들어내고는 그를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보듬어 안고 때로는 함께 웃으며 밤거리를 달리는 중이다. 광고 같은 삶? 그렇게 쿨하고 멋지게 보여 지고 싶지만 그것은 결코 장재열의 현실이 아니다.

 

그는 어쩌면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는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형 장재범(양익준)은 그의 말대로 억울하게 동생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엄마는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형을 범인으로 지목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장재범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도 사실은 이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어느 게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투약하면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아미탈 같은 약물의 힘을 간절히 원할 정도로.

 

하지만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가족이 모두 비극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장재범이 교도소 철창 안에 갇혀 지내고 있지만 장재열 역시 마음의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그 둘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떨까. 이미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린 그녀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처럼 광고처럼 쿨하게 보이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아픔 하나씩을 껴안고 살아간다. 홈 쉐어라는 어찌 보면 쿨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거 환경 속에서 광고의 한 장면 같은 파티를 벌이는 그들이지만,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그들은 다시 자신을 기다리는 상처를 껴안고 잠들어야 한다.

 

당찬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는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목격한 엄마의 불륜으로 일종의 남성 기피증을 갖고 있고, 멀쩡한 허우대에 쿨한 성격의 박수광(이광수) 역시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찾아온 투렛증후군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재혼해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며 아픈 이들을 돕는 조동민(성동일)도 마찬가지다. 껄껄 거리고 웃는 그의 얼굴 이면에도 어떤 허허로운 아픔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깔끔하고 쿨하고 괜찮아 보이는 현대인들의 삶 이면에 놓여진 결코 괜찮지 않은 아픔을 꺼내놓고는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드라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은 각각 힘겨워 하지만 의외로 타인에게 간단한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스킨십 기피증을 갖고 있는 지해수에게 그냥 하면 된다며 장재열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지해수는 그 방법을 결벽증을 가진 환자에게 적용한다. 사랑은 상대방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그 주변 사람들까지 치유시켜준다.

 

겉보기에 우리의 삶을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광고 속의 삶을 꿈꾸고 어느 정도 성공한 이들은 그 삶을 현실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멀쩡해 보이는 삶의 진면목은 심지어 병을 앓을 정도로 아파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상처다. 사랑? 물론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다. 다만 모두 상처받은 이들이라는 타인과의 공감과 그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교감이 그래도 우리네 삶을 괜찮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괜찮아 사랑이야>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섹스 이야기를 그토록 입에 달고 다녀도 섹스 한 번 하지 못하는 스킨십 거부증을 갖고 있는 지해수와 연예인인지 작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장재열의 사랑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희망이자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화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없다. 다만 괜찮다고 애써 말하며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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