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명소가 된 촬영지들, 문제는 없나

평범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정자. 하지만 뭐가 새로운 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이유는 하나. 그 곳이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영신(공효진)과 기서(장혁)가 첫 키스를 한 장소란다. 또 다른 풍경 하나. 인터넷 영월군의 관광소개(http://ywtour.com)에 들어가면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만을 모은 지도가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이른바 명소라는 곳의 이름들이다. ‘영빈관’, ‘청록다방’, ‘청령포모텔’등등. 영화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중국집, 다방, 모텔이 관광 코스가 된 것이다.

과거 7,80년대의 여행이 관광이었다면, 90년대 이후의 여행은 체험이었다. 그리고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여행도 문화라는 겉옷을 걸쳐 입었다. 영화, 드라마 속의 공간을 찾아가는 이른바 문화여행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문화라는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일단 고개부터 돌린다. 물론 문화를 모른다면 그 곳은 아무 것도 아닌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그 평범한 장소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많은 이야기들을.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드라마는 세트장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며, 드라마는 끝나도 세트장을 남긴다. 나주시는 MBC드라마 ‘주몽’의 4만2천 평 규모 오픈 세트장 건립에 약 80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 3월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이 세트장을 삼한지 테마파크로 유료화한 뒤 50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그로 인해 14억 원의 직접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수익일 뿐, 직접 관광객이 지역에 소비하는 비용과 지역 홍보 및 나주의 이미지 개선 등 보이지 않는 수익을 포함하면 연간 600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시는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촬영지의 테마파크화를 만든 것은 드라마 ‘태조 왕건’. 30억 원을 들인 이 테마파크가 성공을 거둔 이후, 드라마 ‘해신’은 하나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완도는 해신 세트장을 유치해 2005년도 관광객 500만 명을 유치했으며 이로써 1600억 원의 지역경제파급효과를 거둔 공로가 인정되어 최근 제12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문화관광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고구려 드라마들의 부흥과 함께 세트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속초에 지어진 ‘대조영’ 세트장이 70억 원, 문경에 지어진 ‘연개소문’ 세트장 역시 60억 원을 들였다. 현재 가장 큰 테마파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태왕사신기’의 제주도 청암영상테마파크로 약 190억 원을 들여 제작되고 있다. 휴가철을 앞둔 지금 벌써부터 이 지역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여행은 좋지만, 문제는 없나
한편 영화의 경우,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인 영월이 될 것이다. 이 인구 4만의 시골은 영화 촬영 이후, 연간 12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2006년만 따진다면 지역 경제 유발효과가 92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지자체의 촬영지 혹은 세트장 유치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관광 수입은 물론 홍보 효과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방송사 입장에선 광고 이외의 별도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잘 지어진 세트장은 보다 높은 완성도의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특히 테마파크를 겨냥해 짓는 대형 드라마 세트장의 경우에는 그 실효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규모가 점점 비대해져가고 있는 반면, 실제로 그만큼의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때론 지자체장들의 치적을 위한 무분별한 유치경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테마파크의 부실화를 양산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주민과 그 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돌아간다.

문화는 장소를 향기롭게 해준다

테마파크를 겨냥해 대형 세트장을 지었다면 드라마가 종영하거나, 영화 상영이 끝났을 경우를 생각해서 향후 대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에 기대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심지어 폐가가 되어버리는 경우를 맞이할 수 있다.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는 ‘태조왕건’의 성공으로 2002년 34만 명, 2003년 37만 명이 찾았으나 그 후 특별한 관광상품을 개발해내지 못해 현재는 7만 명 정도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진 상태다.

문화의 시대, 문화가 여행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거대한 세트장이 전시행정의 하나로 읽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는 물론이고 사후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딱히 블록버스터나 마케팅이 아니라도 문화는 그 장소를 더 향기롭게 해준다. 새로운 세트장을 짓지 않고 그 동네의 일상을 고스란히 찍어내 오지 중의 오지인 증도라는 섬을 명소로 만든 ‘고맙습니다’ 같은 드라마나, 변방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낸 ‘라디오 스타’가 소중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 교보생명 사외보 <다솜이 친구>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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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 ‘주몽’이 남긴 숙제

분류없음 2007/03/07 12:26 Posted by 더키앙

역사와 재미 사이에 선 퓨전사극

‘드디어 ‘주몽’이 막을 내렸다. 35주 연속 주간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시청률 50% 넘겨 또 한 편의 국민드라마가 된 ‘주몽’. 그러나 ‘주몽’은 그런 성공 이면에 다양한 숙제들을 남겼다. 그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다.

‘주몽’만큼 퓨전사극이 가진 장점들을 잘 활용한 드라마가 있을까. 과거 ‘다모’, ‘상도’, ‘허준’, ‘해신’ 등에서 그 새로운 사극의 묘미를 맛보게 해주었던 퓨전사극은 ‘주몽’에 와서 그 정점을 이룬다. 이것은 퓨전사극의 중흥을 이룬 최완규(허준, 상도), 정형수(상도, 다모), 정진옥(해신)이란 작가들이 ‘주몽’이란 한 작품에 모두 모여있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주몽’은 이들 작품들의 요소들, 예를 들면 ‘상도’의 상단 이야기, ‘해신’의 해적이야기 같은 유사한 소재들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소재들은 마치 우리가 환타지 소설하면 알아야될 코드들(엘프나 골렘 같은 종족이나 그들의 특성 같은)처럼 이제 퓨전사극의 코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사극하면 당연히 퓨전사극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몽’ 마지막 회, 한나라군과 벌이는 요동벌 전투에서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라 황자경에게 칼을 내리치는 장면은 과거라면 도저히 상상도 못할 장면이었다. 갑자기 환타지나 무협지가 된 듯한 그 장면을 그러나 이제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런 경향은 ‘주몽’이란 작품 속에 무수히 나타난다. 비금선 신녀의 출현이나 주몽을 저주하기 위해 제를 올리던 부여의 마우령 신녀가 번개에 맞아 죽는다는 설정 같은 건 아무리 퓨전사극이라 해도 사극의 틀을 너무 벗어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사극을 표방하는 작품 속에서 재미를 위해 진지함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주몽’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의 ‘연개소문’을 보면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기를 끌어 모아 태연히 불을 뚫고 나오는 연개소문의 모습이 등장한다. ‘주몽’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과장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조영’은 그나마 진지한 사극의 틀을 온전히 유지하려 애쓰는 작품으로 보인다.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의 ‘퓨전’은 어쩌면 당연한 대세인지도 모른다. 무협, 환타지, 게임 등으로 달라진 시청자들의 마인드는 오히려 퓨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확실한 ‘퓨전’을 보여준 ‘주몽’은 재미있다. 우리가 신화와 역사를 통해 보았던 무표정한 인물들은 드라마로 퓨전되면서 톡톡 튀는 개성적인 인물로 재탄생되었다.

주몽, 소서노, 금와, 대소, 유화부인, 오이, 마리, 협보 등등, 이제는 역사서를 보면서 바로 이 수많은 캐릭터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엮어내는 고구려라는 국가의 탄생은 당대 주몽과 유민들처럼 시청자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우리는 주몽이 한나라를 몰아내고 하나의 국가를 탄생시키는 그 장면을 보기 위해 끝없이 채널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잦은 완성도에 대한 논란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청률과 논란의 상관관계는 퓨전사극이 가진 재미와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주몽’이 처음 직면한 문제는 역시 퓨전사극의 가장 큰 문제인 역사고증 논란이다. 우리의 눈을 화려하게 사로잡은 등장인물들의 의상이 중국풍이며 건축물도 조선시대 양식이라는 점. 철기라는 게임의 레벨적 장치로 사극 전체의 재미를 끌어낸 드라마 도입부의 설정, 즉 한나라의 철기문명에 멸망한 고조선의 설정 역시 거짓이라는 점. 퓨전사극으로서 인물간의 멜로 구도를 만들기 위해 설정된 주몽과 소서노, 예씨 부인의 삼각관계 역시 지나친 설정이라는 점 등이 그것.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부여와 고구려의 관계에 대한 왜곡이다.

부여와 고구려의 관계를 지나치게 대결구도로 만들었다는 것은 고구려 건국이라는 이 드라마의 목표를 위해 부여라는 역사를 희생시켰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역사 속에서 부여는 고구려를 잉태한 모(母)국가 역할을 했고, 또한 온조가 세운 백제도 성왕 시절 수도를 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을 정도였다. 부여의 부정은 아무리 퓨전사극이라 해도 지나친 것이라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주몽’이 최초의 고구려사극이라는 점에서 그 부정적인 영향은 대내외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스케일 문제와 환타지 역시 퓨전사극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만일 정통사극을 주창했다면 고작 십수 명의 별동대로 수만의 한나라군과 맞서는 장면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비금선 신녀가 등장하면서 불거진 ‘신물3종세트’논란은 ‘주몽’이 가려던 환타지사극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후 논란이 점점 거세지자 후에는 결국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신물에 대한 이야기는 ‘주몽’의 목적이 점점 시청률쪽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청률에 대한 집착은 결국 우리에게 사상 유례 없는 주인공 없는 사극을 2회에 걸쳐보게 만들었다.

이런 시청률 지상주의는 결국 퓨전사극이 가진 함정이기도 하다. 사극에서 역사가 중심이 되지 않고, 재미가 중심이 되자 결국은 작품성보다는 시청률에 더 치중하게 된 것이다. 어찌 됐든 ‘주몽’은 우리에게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극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는 퓨전사극이 갖는 재미의 요소가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바로 그 재미라는 것 때문에 모처럼 나온 고구려사가 왜곡되고 재단된 것 또한 사실이다. 드디어 ‘주몽’은 끝났으나 문제는 여기부터다. 역사 자체도 재미거리로 변형시키는 강력한 퓨전사극의 맛을 보여준 ‘주몽’은 이후의 사극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냐 재미냐 양날의 칼을 쥐고 있는 퓨전사극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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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극 ‘주몽’이 연장에 돌입한 이래, 시청률은 조금씩 반등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장을 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겠다”던 애초의 약속은 실종된 상태. 여전히 에피소드식 전개와 개연성 없는 설정이 계속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긴장감의 결여. 현재 드라마 ‘주몽’의 전개방식은 사전에 모든 정보를 누출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보여주고 있다. 부분노가 부여에 있는주몽의 충실한 세작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이미 주몽이 죽었다고 판단하는 데다, 먼저 200여 명의 선발대만을 끌고 온 대소와 주몽의 전투는 보나마나한 것이 된다. 아무래도 이것은 스케일 논란을 벗어나려는 무리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그 결과를 짐작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다.

앞으로 벌어질 부여의 봉쇄 조치로 졸본이 위험에 처한다는 설정 역시, 이미 긴장감을 잃은 상태다. 그것은 벌써 저 해적대장 부위염이 자신의 아버지 유품을 꺼내놓을 때부터 시작됐다. 아버지가 본래 다물군이었다는 것. 그래서 주몽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은 굳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설정이다. 주몽 스스로의 설득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를 올리고 쓰러지는 주몽을 본다해도 거기서 어떤 긴장감을 찾기 어려운 것은 이미 주몽이 보내놓은 해결책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좀더 극적으로 끌고 가 결정적인 순간에 해결책이 제시되었다면 더 긴장도를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긴장감을 한층 더 떨어뜨린다. 부분노가 고작 네 명의 별동대를 데리고 가는 장면도 이해하기가 어렵고, 화공을 한다고 하면서 불화살 몇 번 쏘고 결국에는 백병전으로 가는 장면은 아무리 주몽과 대소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중요하다 해도 기대감을 무색하게 만든다. 더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한 겨울의 역병이라는 설정. 봉쇄조치에 이은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라고는 하지만 허점이 너무 많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드라마 전개에 있어 사족이 될 뿐인 난데없는 예소야와 설란의 유리 쟁탈전은 물론이고, 금와의 지나칠 정도의 광기(유화부인을 죽이겠다고 할 정도로)는 불필요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드라마적인 완성도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주몽’이 어떤 힘을 갖는 것은 그나마 캐릭터 자체가 갖고 있는 힘과 연기자들의 호연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 자신이 주몽인 것처럼 혼신의 열연을 펼치고 있는 송일국은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따뜻한 인간애까지 연기로 소화해내고 있으며, 역시 대소 역할의 김승수는 제대로 된 악역을 서릿발 넘치는 눈빛으로 연기해내고 있다. 주목할 인물로 최근 스토리에서 중요해진 부분노는 그 캐릭터 하나만으로 몇 회분의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다. 가장 연기력이 돋보이는 인물은 금와왕 역의 전광렬. 그 억지스런 설정에도 오히려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그의 호연은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기자들이 호연을 해도 긴장감이 떨어지면 드라마는 힘을 잃게 된다. 빠른 전개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확실한 호적수가 보이지 않는 ‘주몽’에서는 한 템포 늦춰야 한다. 이제 주몽을 대적할 호적수가 천재지변 같은 것이라면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장면들은 피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너무 주몽 혼자 앞으로 계속 달리는 형국이라 적으로 설정된 대소나 금와, 한나라가 뒤쫓아오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 외의 인물들, 예를 들면 영포나 설란, 원후, 유화부인 등등이 드라마에 재미를 주지 못하고 사족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몽’은 인물 전체가 움직이지 못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나왔다가 주몽에게 패퇴하는 장면만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기자들의 호연에 긴장감 있고 짜임새 있는 극적인 스토리가 덧붙여진다면 시청률이라는 호랑이에 완성도라는 날개도 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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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욕하면서 봤던 드라마

욕하는 것만큼 쉬운 비평이 없다고 한다. 흠을 잡아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2006년 시청률 상위의 드라마들은 대부분 욕을 먹었다는 것. 그것은 분명 그럴만한 소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쩌면 욕을 먹는다는 건 그만한 기대감이 컸다는 반증은 아니었을까. 올 가장 화제가 된 SBS‘하늘이시여’, KBS‘소문난 칠공주’, MBC‘주몽’을 예로 들어, 많은 욕을 먹었으나 시청률은 높았던 드라마들의 논쟁점과 완성도, 중독성 등을 체크해보자. 혹 욕에 가려져 보지 못한 미덕을 발견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어쩌면 시청률과 욕의 상관관계가 밝혀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늘이시여’, 논란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주다

지난 12월1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에 의해 올해의 나쁜 방송으로 꼽힌 SBS ‘하늘이시여’는 논란드라마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본때를 보여준 드라마. 방영되기 전부터 자신의 친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시어머니와 호적 상 외삼촌을 사랑하는 조카의 관계 설정으로 ‘패륜 드라마 논란’을 일으켰다. 이영희 PD는 이에 대한 해명과 함께 “친 피붙이와 같이 키운 아들을 실제 친 피붙이인 딸과 결혼시키는 이 딜레마가 이 작품이 시청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다”라고 덧붙여 사실상 논란드라마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 해 9월10일 13.5%의 시청률로 시작한 ‘하늘이시여’는 2회부터 ‘분장사 비하 발언’으로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이후 배득(박해미 분)의 악녀 열연으로 조금씩 시청률을 높여간다. 11월 통산 18.4%의 안정된 시청률을 확보한 ‘하늘이시여’는 10회 연장 방영을 결정한다. 이것이 첫 번째 연장이다. 그리고 1월 특정 운동기구의 특징과 사용방법 등을 무려 5회에 걸쳐 방영하는 간접광고로 방송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를 받는다. 또한 어릴 때 헤어졌던 친딸을 나중에 며느리로 삼는다는 이야기의 기본 구조가 일본작가 렌조 미키히코의 84년작 단편소설 ‘어머니의 편지’와 유사하다며 표절 의혹에 휩싸인다.

이러한 논란에 힘입어(?) 1월 21.5%의 시청률을 확보한 ‘하늘이시여’는 2월 25.4% 시청률을 기록하며 75회로 연장을 결정한다. 두 번째 연장이다. 드디어 3월 28.8%의 시청률로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이 드라마는 4월에 다시 81회로 연장을 결정한다. 세 번째 연장. 그 와중에도 논란은 계속되어 치위생사 비하발언이 불거진다. 5월에 30%대를 넘긴 ‘하늘이시여’는 다시 4회 연장을 결정하고, 6월에는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청장이 직접 출연해서 불거진 ‘국정 홍보 논란’이 벌어진다. 드라마가 종반으로 향하면서 친딸을 며느리 삼는 문제에서 더 나아가, 홍파(임채무 분)와 영선(한혜숙 분)의 결혼 등으로 논란은 더 커져갔다. 여기에 무리한 설정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어이없는 죽음으로(홍파의 처 은지와 배득의 친구 소피아) 이른바 살생부 논란이 이어졌다. 이로써 7월에 40.2%의 시청률로 ‘하늘이시여’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란 오명을 남기고 종영했다.

제2의 ‘하늘이시여’, ‘소문난 칠공주’
4월에 시작된 ‘소문난 칠공주’는 시청률 50%를 넘긴 ‘바람은 불어도’(1996), ‘애정의 조건’(2004), ‘장밋빛 인생’(2005)등에서 성공을 보여준 문영남 작가를 내세워 주말 볼만한 가족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놨다. 그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단 한 달만에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소문난 칠공주’는 5월 드디어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 덕칠(김혜선 분)의 자극적인 애정신 묘사가 나오더니, 급기야 임신한 딸을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 방영된 것이다. 바로 그 다음주에는 덕칠의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한 남편 구수한(이대연 분)이 덕칠의 뺨을 때리는 장면과 이혼만은 안 된다며 덕칠이 자신의 손으로 자기 뺨을 때리는 장면이 방송됐다. 여기에도 모자라 덕칠 앞에서 구수한이 룸살롱 접대부들을 끌어안은 채 덕칠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이 정도 되면 주말 온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앉아 볼 수 있는 드라마는 포기한 것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계속 올라 7월 29%를 넘어 8월 33.6%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소문난 칠공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놓는다. 겁탈장면이 무분별하게 방송되는가 하면, 설칠이 친딸이 아니라는 출생의 비밀이 노출되면서(친부의 죽음이 나양팔과 관련이 있지만)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원수라고 표현하고 분노하는 대목이 나와 억지스럽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9월에 여타의 논란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30회 연장방영(총 80회)을 발표했고, 특정 제품의 간접광고로 권고조치를 받았다. 9월에 특히 논란을 많이 일으킨 인물은 셋째딸 미칠(최정원 분). 그녀와 시댁의 트러블이 자극적으로 방영되며 시청률을 35%대로 높였다. 이제 거의 포기하면서 관성으로 보게 되는 이 중독적 드라마는 한동안 이혼이나 여성비하 문제를 드러내며 40%대 고지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12월에 들어 미칠의 이혼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김해숙 분)가 “사위자식 개자식”이라는 대사를 내보네 막말논란을 일으켰다. 이로써 제2의 ‘하늘이시여’라는 명성(?)을 얻은 ‘소문난 칠공주’는 ‘주몽’의 시청률을 위협하며 순항(?)중이다.

완성도에 대한 논란, ‘주몽’

위 두 편의 드라마가 주로 억지설정이나 자극적인 진행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다면 ‘주몽’의 논란이 위치한 지점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주몽’은 주로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이 많이 일었던 점으로 미루어 높아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결과로 생긴 논란으로 보는 게 옳다.

‘주몽’이 처음 직면한 문제는 역사고증 논란이었다. 등장인물의 의상이 중국풍이며, 건축물도 조선시대 양식이고 고조선이 한나라의 철기문명에 멸망했다는 드라마 도입부 설정은 거짓이며, 주몽과 소서노, 예씨 부인의 삼각관계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 등 퓨전사극이 가진 논란거리에 휩싸인 것이다. 그러나 ‘주몽’은 5월 첫방영에서부터 7월 말까지 단숨에 37%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소금산 에피소드’에서 실망한 누리꾼들은 8월 부영이 중도하차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9월에 들어 함량미달 전투신 스케일 논란이 고개를 쳐들었다. 주몽이 이끄는 별동대의 스케일이 고작 십수 명에 불과하다는 점은 300억 드라마라는 명성을 무색하게 했다. 그리고 40%대의 장벽을 맞은 ‘주몽’은 ‘주몽없는 주몽’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그 고지를 가볍게 넘어선다. 이 즈음 방송시간을 10분씩 더 잡아 광고수익을 높였다는 방송시간 편법운용 논란이 불거졌다.

그리고 10월에 들어서 여타의 논란드라마처럼 ‘주몽’도 슬슬 연장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이미 45%대의 시청률을 확보한 상태였다. 완성도에 대한 비판 여론도 깊어져 중순에는 ‘주몽은 납치 전문 판타지 드라마’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11월은 한달 내내 연장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최완규 작가의 연장불가 발언, 송일국의 연장 불가 선언, 그러나 약 2주도 되지 않아 송일국과 최완규의 연장 수용으로 이어지면서, 12월1일 송일국 20회 연장 최종 합의로 연장은 결정되었다. 포커스를 송일국의 입에 맞춤으로서 시청자들의 의견은 교묘하게 무시되었다. 그리고 12월에 들어 이른바 ‘신물3종세트’논란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사극으로서의 주몽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욕과 시청률과 완성도의 함수관계
위의 세 드라마를 하나로 싸잡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논란의 포인트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주몽’의 경우, 시청자들의 더 높은 완성도에 대한 주문으로 논란을 이해할 수 있지만, ‘소문난 칠공주’의 경우에는 기대감보다는 극중 자극적 설정들에 대한 혐오감 내지 분노가 논란의 이유였다. 여기에 ‘하늘이시여’는 이러한 드라마 내적인 논란은 물론이고 외적인 논란까지 덧씌워 논란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욕을 많이 먹는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이 보고 관심도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층위는 존재한다. 그것은 의도성의 문제다. ‘주몽’은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레 불거져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나머지 두 드라마는 애초부터 의도했다는 혐의가 짙다. 그것은 최초 설정 자체부터 논란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 드라마들을 모두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소재와 설정과 주제가 비정상적이고 자극적이라는 면을 빼놓고 보면, ‘하늘이시여’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네 가족관계가 가지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혈연의 끈끈함을 이 드라마는 정곡으로 찌르고 있다. 반면 ‘소문난 칠공주’는 완성도 면에서 여러모로 떨어진다. 이 주말극이 일일극의 느낌을 주는 것은 그때그때 임기웅변적인 사건 전개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한편 ‘주몽’은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만 시청자들의 더 높은 기대치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당연히 욕 또는 시청률은 완성도와 별 관계가 없다. 다만 욕이나 시청률이 관계가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중독성이다. 이 세 드라마는 모두 고른 중독성을 갖고 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나쁘다 판단되어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논란드라마가 확보하려는 궁극적인 것은 바로 이 중독성이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청률과 완성도는 마치 비례하는 것처럼 오인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시청률과 비례하는 건 중독성이다.

◆ 논란일지
하늘이시여
2005  9월10일 : 첫 방영
  9월11일 : 분장사 비하 발언
10월23일 : 배득의 이해할 수 없는 신데렐라 괴롭히기
11월16일 : 10회 연장 결정
2006   1월4일 : 간접광고로 방송위원회로 부터 법정제재
  1월19일 : 렌조 미키히코의 작품 표절 의혹
  2월27일 : 75회로 연장결정
  4월11일 : 81회로 연장결정
  4월24일 : 치위생사 비하발언
  5월20일 : 4회 연장결정
  6월5일 : 행정도시 홍보 논란
  6월17일 : 소피아의 죽음으로 살생부 논란
12월13일 : 민주언론시민연합 올해의 나쁜 방송 선정

소문난 칠공주
2006   4월1일 : 첫 방영
  5월22일 : 자극적 애정신 묘사/ 임산부 논란
  5월27일 : 룸살롱 시퀀스 논란
  8월2일 : 겁탈장면 방송
  8월13일 : 설칠의 키워준 부모 원수 발언 논란
  9월5일 : 80회로 연장결정
     9월 : 방송위, 마루제품을 간접광고로 권고조치
  9월25일 : 미칠의 시댁 트러블 설정 논란
12월10일 : 사위자식 개자식, 막말 논란

주몽
2006   5월1일 : 역사고증 논란 시작
  5월15일 : 첫 방영
  5월31일 : 방송시간 연장 논란(10분 더)
  7월25일 : 소금산 에피소드 논란
  8월7일 : 부영 중도하차 논란
  9월5일 : 함량미달 전투신 스케일 논란
  9월6일 : 예소야 송지효 캐스팅 논란
  9월13일 : 주몽 없는 주몽 논란
  9월18일 : 소탄등에 대한 고증 논란
  9월26일 : 방송시간 편법운용으로 광고이익 증가 논란
  10월9일 : 연장성 논란 시작
10월17일 : 납치 전문 판타지 드라마 논란
11월12일 : 최완규 연장 불가
11월15일 : 송일국 연장불가
11월27일 : 송일국 연장 수용
11월28일 : 최완규 연장 수용
  12월1일 : 송일국 20회 연장 최종 합의
  12월5일 : 신물3종세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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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역사를 날 것 그대로 꺼내 보여준다면 재미있을까. 예상은 부정적이다. 그래서일까. 역사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퓨전사극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퓨전사극의 계보는 과거 ‘다모’, ‘대장금’, ‘해신’ 등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지만 최근 열풍의 진원지는 역시 ‘주몽’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주몽’이라는 강력한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더 전개가 자유로워진 퓨전사극이라는 형식이 맞물린 결과다.

결과적으로 시청률면에서 승승장구한 주몽은, 최근 연장방영에 대한 논란들마저 연착륙시켰다. 이례적으로 MBC 신종인 부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그간 거듭돼온 방송사의 고무줄편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주몽 만큼은 끝까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각인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가 나온 지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른바 ‘신물 3종 세트’가 논란이 되면서 ‘주몽’은 “이러려고 연장했냐”는 누리꾼들의 비판에 직면해있다.

드라마 ‘주몽’은 시청률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미 스케일 문제나,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억지설정, 고구려 건국보다는 부여패망에 더 집중되어 있는 듯한 전개구성 등등 완성도에 있어서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이 문제로 인해 ‘주몽’은 완성도의 비판 위에 그 정체성까지 의심받게 되었다. 그것은 과연 이 드라마를 더 이상 사극으로 봐야하는가의 문제다.

환타지 같은 전개와 환타지 그 자체는 다르다

‘주몽’이 시작과 함께 호평을 받은 것 중 하나는 그것의 전개가 게임이나 환타지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유사한 재미를 준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주몽’은 그 배치된 인물과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거의 롤플레잉게임을 닮았다. 시작부터 완성된 영웅이 아닌 단계적으로 미션을 완수하면서 업그레이드되는 영웅, 점점 강한 아이템을 얻어 가는 과정,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갑옷들 등등 그런 것들은 실제 게임과 환타지를 즐기는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것이 과도했던 걸까.

최근 비금선 신녀의 갑작스런 출연과 그 출연과정에서 보여준, 사극이라 하기엔 과도한 환타지적인 요소, 게다가 그녀가 주몽에게 제시한 “다물활 이외의 남은 두 개의 신물” 발언은 지금까지 위태롭게 유지해왔던 사극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과거 ‘주몽’의 환타지적인 요소를 굳건히 사극의 틀로 붙잡아두고 있던 인물들은 여미을을 중심으로 한 신녀들이었다. 그것은 과거 신권과 왕권이 혼재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사 속 실재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왕자들간의 경합에서 나온 다물활 에피소드는 여미을 신녀의 신탁만 있었을 뿐, 실제로 다물활의 어떤 환타지적인 능력을 보여준 바는 없다. 이것은 전부 여미을 신녀가 하는 말을 통해 그 상징적 의미가 전달되었던 것이다. 또한 일식이 일어나는 에피소드에서 역시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위에 여미을의 예언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여전히 환타지가 아닌 사극의 범주 안에 놓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미을이 죽고 사라져버린 예언의 힘 때문일까. 비금선 신녀의 갑작스런 등장(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빛과 연무에 휩싸인 화려한(?) 등장)은 그 선을 넘어버렸다. 게다가 그 신녀의 목적은 새로운 신물을 찾으라는 퀘스트의 제시이다. 이로써 ‘주몽’은 환타지적인 전개와 환타지 사이에서 하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넘어버린 격이 됐다.

퓨전사극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과거에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드라마 제작자들이 숨는 지점은, ‘이 드라마는 퓨전사극’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퓨전사극의 한계는 어디까지를 두고 봐야 하는 것일까. 퓨전사극이 주목받는 시대라 마치 정통사극은 역사, 그 자체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물론 사극 역시 역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역사를 극화한 것이 사극이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왜곡이 아닌 이상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사극으로 수용되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퓨전사극으로 넘어가면 이건 좀더 복잡해진다. 그 한계를 어디까지 두어야 사극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상식뿐이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삼국지’를 창작물로 생각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역사 자체가 상상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호지’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가상으로 설정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사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을 법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유기’는 다르다. 이것은 역사를 넘어서 완벽한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와 ‘수호지’가 역사소설에 가깝다면 ‘서유기’는 환타지에 가깝다. 이 역사소설과 환타지 사이가, ‘주몽’이 지금까지의 여타 사극들과 다르게 위치한 지점이다.

과거에도 ‘소금산 에피소드’에서 ‘주몽’은 이 서유기적인 면모를 보인 바가 있다. 드라마 인물들의 유기적인 전개가 이루어진 결과가 아닌, 신탁에 의해 준비되어진 결과는 시청자들을 실망시킨다. ‘주몽’의 사극제작에 있어서‘사료가 없다’는 것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상식을 넘어서는 공상이나 환상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저 무협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볼 때 처음엔 즐거웠으나, 차츰 ‘날아다니지 못하면 바보 되는 주인공들’에 식상해진 경험이 있다. 퓨전사극은 여전히 사극이며 환타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극으로 기대하고 있던 드라마가 그 경계를 넘어버릴 때 시청자들은 사극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 붕 뜨게 된다. 퓨전사극처럼 그것이 땅이 아닌 허공에 매달린 줄이라고 해도, 떠오른 몸은 다시 줄로 내려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한 판 줄타기의 소재가 어느 시대나 한두 번쯤 나올 수 있는 그런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오던 그 신화적 인물, 주몽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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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 속 사제간의 인생은 반복된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퓨전사극, ‘황진이’와 ‘주몽’에서는 사제간의 반복되는 인생유전이 독특한 재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주인공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고, 극의 대결구도를 만들어주며, 주인공이 성취해야할 일에 대한 목적의식을 부여하기도 한다.

황진이-백무 vs 부용-매향 :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
부용(왕빛나 분)은 황진이에 대해 칭찬을 하는 스승 매향(김보연 분)이 밉기만 하다. 그런 부용에게 매향은 말한다. “그렇게 명월이가 이기고 싶으냐? 내가 그 맘을 잘 안다. 천재는 늘 노력하는 준재를 가슴아프게 만드는 법이지.”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그것은 ‘황진이는 천재며 부용은 준재’라는 것과 ‘그런 마음을 매향은 잘 안다’는 것. 매향 역시 저 백무에게 같은 감정을 가졌었다는 말이다.

백무-황진이와 매향-부용의 사제관계는 천재와 준재라는 개념으로 반복된다. 이것은 마치 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를 보는 것만 같다. 매향은 스승이 백무를 총애했다고 생각하면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에게 가졌던 질투심과 증오심을 키우며 그것은 바로 부용에게도 이어진다. 재미있는 건 황진이가 백무에게 복수하려 매향의 수제자로 들어오면서다.

황진이를 통해 매향은 자신의 질투심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스승은 편애를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춤을 전수해주었던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자 매향은 부용의 질투심에 동병상련의 측은지심을 가지면서도 또한 그것이 부질없다는 걸 알게된다. 백무가 황진이를 매향에게 선뜻 보낸 것은 황진이에게 춤을 새로 추게 하려던 뜻도 있지만, 매향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한 뜻도 있었다는 말이다.

황진이-김정한 vs 백무-익환 :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 운명
황진이가 자신에게 가진 증오심을 이용해 춤을 추게 한다는 뜻이 있다 해도 어떻게 자신의 적이라 볼 수 있는 매향에게 백무는 선뜻 애제자를 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황진이가 백무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백무는 시종일관 자신과 동일한 상황(기녀라는 상황)에서 기예의 길을 가는 황진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황진이와 백무의 인생유전은 또한 황진이-김정한 그리고 백무-익환의 관계 속에서도 반복된다.

장악원의 부제조 영감 익환(현석 분)이 황진이를 시켜, 떠나려는 예판 김정한(김재원 분)을 잡으라고 한 사실을 알게된 백무(김영애 분)는 익환을 나무란다. 그러다 또다시 마음의 병을 앓을까 걱정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자 익환이 백무에게 말한다. “명월이는 자네를 여러모로 닮았어. 내가 자네보고 기예의 길을 버리고 오라면 자네가 왔겠나?” 이 말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황진이 역시 백무처럼 기예의 길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과 ‘익환 역시 정한처럼 백무를 사모했으나 그녀가 거절했다는 것’이다.

주몽과 해모수 vs 금와 : 동료와 경쟁자의 관계
드라마 ‘주몽’에서도 이러한 사제간의 인생유전이 드러나 보인다. 주몽의 스승은 다름 아닌 아버지 해모수. 해모수가 초기에 부여의 왕자, 금와와 다물군을 함께 이끌다, 후에 부득불의 함정으로 위기에 처하고 감금되는 상황은, 최근 주몽의 행적과 유사하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아들여 다물군을 이끈다는 점과, 아버지가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것처럼 자신도 예소야와 떨어져 지내는 점, 또한 가까웠던 금와와 적이 되어버리는 상황 등은 정확히 해모수와 주몽 그리고 금와 사이에서 벌어지는 반복이다.

이러한 반복이 되는 이유는 바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살아있는 금와의 존재 때문이다. 금와는 복합적인 성격의 캐릭터다. 명분상으로는 해모수와 함께 다물군을 이끌고 한나라를 치고 싶지만 부여가 처한 상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겉으로 해모수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여미을이 말한 대로 오히려 그것을 바라는 경쟁자로서의 마음도 갖고 있다. 해모수가 새로운 나라를 새우는 것은 부여에게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해모수에 대해 저 살리에르와 같은 질투심을 속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주몽에게도 연결된다. 사실 금와는 주몽을 보호하고 키웠다기보다는 그 잠재성을 부여라는 감옥 안에 가두고 있었던 셈이다. 주몽이 해모수를 따라 대업을 이루려고 나서자 상황이 반복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전설적인 존재의 카리스마를 이어받다
이러한 퓨전 사극에서 사제간의 반복되는 인생유전이 보이는 것은 드라마 상의 주인공에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다. 철부지였던 ‘주몽’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건 그의 아버지가 전설적인 존재인 해모수였다는 점이다. 그의 예사롭지 않은 탄생은 ‘지금은 저렇지만 앞으로는 대단한 일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또한 ‘황진이’라는 인물의 카리스마는 전설적인 무보, 학춤을 물려받은 백무가 그녀를 유일한 수제자로 지목하는데서 비롯된다. 황진이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백무의 라이벌이었던 매향의 군무까지 이어받으면서 독무와 군무 양쪽의 재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주인공이 이어받는 건 재능만이 아니다. 그들의 경쟁자까지 똑같은 인생유전을 통해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 1회전보다 2회전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경쟁의 생리 상, 2회전을 치르는 주인공들의 대결구도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 치열한 대결구도 속에서 그들은 또한 대업 혹은 운명을 이어받는다. 그렇기에 반복되면서도 그 반복 속에서 스승을 뛰어넘어 큰 일을 이루어내는 주인공의 길은 더 드라마틱하게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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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몽'의 연장 논란에 대하여

50%대 최고의 시청률을 바라보고 있는 MBC 창사특집드라마, ‘주몽’이 방송연장을 놓고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MBC측은 일찌감치 연장발표를 해놓고 제작진들과 출연진들을 설득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최완규 작가의 연장불가 발언이 불거져 나왔고 정형수 작가 단독체제로의 결론이 도출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몽 역을 맡은 송일국이 거부의사를 들고 나왔다. 뉴스에 의하면 MBC 부사장이 송일국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이번 상황은 MBC측의 성급한 결정과 발표에 먼저 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잘 되는 드라마의 연장방영에 쉽게 동조를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MBC측은 만만찮은 저항에 직면한 셈이다.

연장방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청자
일방적인 연장방영이 가져오는 폐해는 제작진과 출연진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그 파장이 크다. 제작진들과 출연진들은 우리네 드라마 제작현실의 특성상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계속 강행군을 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실제로 송일국은 쉴 틈 없는 촬영으로 인해 이미 심신이 피폐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완규 작가의 연장불가 이유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들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이미 세워진 차기 프로젝트의 진행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보다 밀도 높은 드라마의 완결성을 제공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총 제작비 300억 원대에 60회나 되는 이 드라마는 기획하면서 분명 나름대로의 60회 분량의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85회로 늘려진다고 해서 늘어나는 횟수만큼의 새로운 스토리가 추가될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 51회를 맞고 있는 ‘주몽’이 걸어온 길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현재 주몽은 전체적 완결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에피소드 중심의 스토리 진행을 하고있다. 굳이 그 사례를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고 최근의 것만 끄집어내도 그 증거는 쉽게 드러난다. 드라마 ‘주몽’은 갑자기 소서노가 보낸 비밀지도로 인해 한 회가 온전히 궁에 들어가 예소야를 만나는 에피소드로 흘러갔다. 소서노가 가진 비밀지도에 대한 아무런 복선이 없었다는 점과 굳이 어머니와 아내를 구하러 들어간 주몽이 그냥 혼자 돌아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앞으로도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걸 정확히 말해준다.

60회에 못한 완성도, 85회라고 가능할까
이러한 질질 끄는 스토리 진행을 볼 때, ‘주몽’의 연장방영은 아무런 명분을 주지 못한다. 이것이 명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재 ‘주몽’의 고구려 건국 상황이, 지금 방영된 51회 같은 내용이 아닌, 본래 60회 분량에서의 51회 내용처럼(물론 그런 것들이 사전에 있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긴박하고 숨가쁘게 돌아갈 때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본래의 목적대로의 60회 이야기를 다 끝내고도 더 할 이야기가 남았다는 것으로 연장은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MBC 부사장이 말하는 것처럼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한 연장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많다. 오히려 60회 분량에 완성도를 채워 넣지 못한(혹은 그걸 방조한) 자신들의 잘못을 시청자들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강하다.

문제는 이러한 연장방영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주몽’은 그 이외의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현재 51회까지 방영한 상황의 ‘주몽’이 60회에 끝나게 되면 남은 9회 안에 고구려 건국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까지 봐와서 알겠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드라마의 전개상 급격한 결론은 오히려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주몽’이 처한 딜레마이다. 연장으로 가자니 무리가 따르고 종전대로 끝내자니 전개가 어려워진 것이다.

주몽의 딜레마가 말해주는 것
이 딜레마가 말해주는 건 여러 가지다. 먼저 그간 ‘주몽’이 시청률에 기대어 방만한 태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시청률이 30%를 넘어서면서 벌써부터 ‘주몽’은 연장을 생각하고 있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이런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을까. 또한 미봉책이나마 연장을 생각해야 드라마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전체적 흐름을 타고 가는 완성도 위주의 드라마가 아닌 에피소드 중심의 드라마를 애초부터 생각했다면 왜 시즌제 드라마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시즌제 드라마라는 것이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생각은 지금에나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지금에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될까. 그나마 매력 있는 캐릭터에 훌륭한 소재, 게다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가능한 이 드라마를 시즌 드라마로 할 수는 없는 걸까. 많은 문제점들을 보강한 ‘주몽 시즌2’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건 ‘주몽’이란 좋은 소재가 이런 식으로 묻혀지고 끝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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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황진이

과거에 흔히 카리스마를 말하면 우리는 남성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KBS 드라마 ‘황진이’가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그 어떤 남성들의 그것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칼만 든다고 카리스마가 생기는 건 아니다
‘황진이’는 전개상 세 단계의 변신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것은 첫째, 첫사랑과 그 실패를 겪는 황진이, 둘째 그로 인해 세상에 독을 품는 황진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독이 세월에 녹아 한 커다란 인간으로 거듭나는 황진이가 그것이다. 지금 두 번째 단계를 지나고 있는 황진이에게서 그 카리스마가 물씬 풍겨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단계적인 변화의 원인으로 볼 때, 그녀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의 원천은 바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한(限)에 근거한다. 그 한은 자신의 운명과 그런 운명을 만든 세상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다. 은호(장근석 분)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자신의 연약한 마음가짐으로는 세상과 싸워 백전백패라는 뼈아픈 결론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 속에 칼날 하나를 품는다.

그 칼끝은 바로 저 조선 사내들의 위선을 향해 있다. 그녀는 부드럽고 아찔한 웃음을 지으며 이른바 세도가라는 자들의 본색을 드러내게 만들고는, 거침을 뽑아들고 그네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것이 단지 사내가 아닌 ‘조선 사내’의 이중성을 꼬집는다는 데서 그녀의 칼은 조선 자체를 향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녀는 당대로 보면 일개 기녀이다. 천출의 운명을 타고난 그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조선 전체를 향해 마음 속의 비수를 뽑아드는 그 지점이 그녀의 카리스마가 불을 뿜는 순간이다.

무예만 출중하다고 카리스마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이러한 대결구도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저 백무와 매향에서부터 비롯되어 황진이와 부용의 대결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황진이와 세상(여기에는 사대부집 양반네들을 비롯해 명나라의 사신까지를 포함한다)의 대결로 연결된다. 그녀는 세상과 겨루기 전 교방에서 그 무기를 키워왔다. 그것은 바로 시와 음악, 춤과 같은 재주(예술)이다. 이 재주를 얻기 위해 그녀는 저 무예를 수련하는 사극 속의 남성 캐릭터만큼 혹독한 시간들을 보냈다.

향악을 폐하려는 명나라 사신 앞에 거문고를 들쳐 메고 나타나는 황진이의 모습은 전쟁터에 나가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 더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 것은 거문고 연주가 아니다. 그녀는 ‘마음의 거문고 연주’라는 무기를 들고 나온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그녀는 겉으로 보이고 들리는 재주는 헛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을 제압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겉으로 드러나는 호화로운 의상과 신들린 듯한 연주, 날아갈 것 같은 춤사위에 있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무술 동작 몇 개만으로 얻어지는 카리스마란 실상 너무나 관습적이며 장면이 지나고 나면 잊혀지게 마련이다. 허나 마음에서 비롯된 이 강렬한 카리스마는 외상을 넘어서 내상을 입히기 마련이다.

갑옷만 입는다고 카리스마가 생기는 건 아니다
여기에 하나 더 황진이의 카리스마의 원천을 덧붙인다면 그 유려한 미장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사극의 복장들은 과거보다 더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패션쇼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볼거리가 그저 화면을 왔다 갔다 밋밋하게 움직이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황진이’의 화면들은, 그 어떤 화려한 CG 전투장면이나 색색의 갑옷보다도 더 아름답고 다이나믹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우리네 한복이 제대로 빛을 발하고 동작 하나하나에서 힘이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볼거리들을 진정 볼거리로 만들어주는 영상 미학에 있다. 타 사극에서 보여주는 나란히 장수들이 서서 화면 쪽을 바라보며 적의 동태를 얘기하는 화면 같은 관습화된 장면들은 극의 긴장감을 그만큼 흐트러뜨리기 일쑤다.

황진이는 사극이 포기한 유려한 미장센을 끌어들이면서 캐릭터와 극의 긴장감을 되살렸다. 카메라는 밑에서 위로, 또 위에서 아래로, 때론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서부터 롱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로 변화하며 인물들의 감정선을 잡아낸다. 그 아름다운 장면들 속에 마치 칼처럼 흐르는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사극이라고 다 같은 사극이 아니다
사극전성시대라고 한다. 흥미를 끌만한 소재와 캐릭터를 갖고 잔재주를 통해 시청률만 올린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사극은 아니다. 진정한 메시지와 함께 동시에 흥미로운 전개, 절제되면서도 강력한 대사들, 영상미학이라 해도 좋을 만한 화면 구성, 연기자들의 혼이 느껴지는 연기, 이 모든 것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훌륭한 사극이 탄생한다. 저 ‘대장금’의 힘은 바로 이런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이다.

극에서 우리가 느끼는 카리스마란 사실 극의 긴장감과 집중도와 다른 말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대결구도를 갖는다고 해서, 칼을 들고 휘두른다고 해서, 굉장한 무예를 갖고 있다고 해서, 화려한 갑옷을 걸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드라마 본연의 힘인 드라마성(갈등구조와 진정성 그리고 실험정신)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주몽’이 ‘황진이’에게 배워야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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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극의 영웅 뒤에 등장하는 그 부모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사극 속에 등장하는 영웅의 뒤에는 영웅을 키워낸 부모가 있고, 그 부모의 희생이 있다. 최근 고구려 사극 트로이카 시대를 열고 있는 고구려 사극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는 ‘부모, 가족 코드’가 시청자들의 피를 끓게 만들고 있다. 드라마 상에 등장하는 이들 부모들은 모두 똑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의 존재감은 각각 다르게 느껴진다. 이들 사극들은 영웅의 부모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사극 속에 등장하는 영웅의 가족들은 모두 해체되어 있다. 주몽과 해모수, 그리고 유화부인이 그랬고, 연개소문과 연태조가 그랬으며, 대조영과 대중상, 그리고 달기가 그랬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지 못한다. 주몽은 해모수를 만나기까지는 그저 철없는 왕자에 불과했고, 연개소문은 연태조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근본을 알지 못했다. 또한 대조영은 달기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개동이가 아닌 대조영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가족이 이렇게 해체되고 영웅이 자신의 신분을 모르게 된 것은 출생의 비밀과 연관이 있다. 주몽과 함께 등장하는 삼족오와, 연개소문과 대조영의 심상치 않은 탄생에는 모두 국가를 위협하는 대역(大逆)의 기운이 존재한다. 그러니 그들 가족이 온전할 리가 없다. 영웅의 탄생에 대역(大逆)이라는 모티브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시련을 따르게 하고 그 시련을 넘어서는 순간, 대역이 예고한 것처럼 거대한 국가, 혹은 영웅의 탄생을 예감케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웅을 다루는 신화나 전설에는 가족의 해체가 그 기본 전제가 되곤 한다.

부모들은 자식을 부정한다

그런데 이들 가족은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자신의 신분을 영웅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만나는 순간에 부모들은 자식을 부정한다. 주몽 앞에서 해모수는 자신을 아버지로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죽어갔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우연히 돌궐에서 자식인 연개소문을 만나게 된 연태조는 고구려에 대한 유업만을 남겼을 뿐, 홀연히 떠나버린다. 죽음 앞에서 달기는 자식인 대조영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어미임을 부정한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는 다시 부모와 영원히 헤어지는 순간이다. 드라마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구조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연출하게 해준다. 부모의 자식을 위한 거짓말과 그 거짓말이 탄로 나며 헤어지는 과정은, 갈망하던 가족의 인연이 막 생겨나는 그 즈음 다시 끊어버리는 효과를 준다. 그러자 영웅은 자신의 유업을 알게되고 그 의지를 한층 불태울 수 있게 된다.

자식을 위한 죽음 앞에 당당하다
이 마지막 순간에 영웅의 부모들은 기꺼이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 유화부인은 대소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 몰려 있으면서도 절대로 자신을 구하러 오지 말라고 주몽에게 서찰을 보내며, 달기는 대조영의 앞에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연개소문은 양상이 조금 다른데 그것은 연태조가 가진 자식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그는 연개소문을 자신의 자식이 아닌 고구려의 자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의 행보 또한 결국 그 자식을 위한 포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에게 유언처럼 남기는 말은 바로 대업이다. 사사로움보다는 대의를, 혈연보다는 백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들의 희생을 통해서 자식은 드디어 자신의 범주를 넓히게 된다. 한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은 연후에나 영웅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고구려 사극들은 그 영웅의 탄생에 있어서 부모들의 희생이라는 기본 모티브를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드러나는 과정에서의 힘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떤 부모의 드라마가 가장 강할까

‘주몽’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드라마 초반부 주몽이 갖지 못한 카리스마의 보완 기능이 컸다. 그런데 이 카리스마가 주몽으로 전이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주몽은 강한 카리스마로 부하를 이끄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의견을 묻고 지시하는 쪽에 가깝다. 죽은 해모수를 다시 살리고, 아직까지도 해모수의 잔영이 계속 드라마의 구석구석을 떠도는 것은 주몽의 부모가 주몽보다 더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반면 ‘연개소문’의 연태조는 부모라고는 하지만 선인 같은 인상을 갖고 있다. 이것 때문인지 부자 간의 드라마가 그다지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어찌 보면 작가의 잘못된 해석이거나, 놓치고 지나간 드라마 요소처럼 보인다. 그 수많은 세월을 이역을 떠돌다 만나게 된 자식에게 그다지 담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연태조가 속세를 벗어난 인물이라는 말은 되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아쉬움을 남긴다.

아마도 가장 적합하게 부모의 코드를 활용하고 있는 건 ‘대조영’인 듯 싶다. 대조영과 달기의 만남과, 눈앞에서 웃으며 죽어 가는 달기와 그걸 보며  흘리는 대조영은 일단 드라마적으로 가장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이다. 그것은 아마도 타 사극이 아버지와의 조우를 그린 데 비해 ‘대조영’이 어머니를 택한 데 있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강력한 힘 앞에 두 영웅들이 무력했던 반면, 어머니의 모정 앞에서 대조영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부여받게된다.

재미있는 것은 대조영이 아버지 대중상을 만나는 장면에서 자신도 아들임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때가 되기까지(이것은 또한 자신 스스로 충분한 카리스마를 만들 때까지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숨길 것이다. 주몽과 연개소문의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자신이 아버지임을 숨기고 있을 때, 대조영은 거꾸로 아버지에게 자신이 아들임을 숨기는 것으로 아버지의 카리스마에 눌리지 않는 힘을 얻고 있다.

드라마에 따라 조금씩 양상이 다르지만 고구려 사극들이 최근 그 힘을 받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 혈연, 가족이라는 카드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최근 우리네 드라마들의 화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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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숭배에 지배당한 위험한 우리 사회

정지영 아나운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