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가면과 권력에 대한 중독의 상관관계

가면의 주인은 과연 누가 될까. MBC 수목드라마 <군주>에서 편수회에 의해 죽을 위기까지 처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보부상 두령이 된 세자 이선(유승호)은 궁 밖에서 힘을 모아 편수회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왕좌를 되찾으려 한다. 본래 ‘왕세자’라는 가면의 주인은 그였지만 지금 그는 ‘보부상 두령’이라는 가면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군주(사진출처:MBC)'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세자 이선의 빈자리에 편수회가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천민 이선(엘)에게 일어나는 변화다. 처음 그는 세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짜 세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것이 편수회에 의해 발각되고 세자의 죽음(물론 그건 진짜 죽음이 아니었지만)을 목격하며 대신 세자의 자리에 올라 허수아비 왕이 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내가 진짜 왕이 돼 편수회와 싸워 이기고, 만백성을 구하고, 가은 아가씨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그런 꿈을 꾸게 된다” 천민 이선은 왕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차츰 그 가면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자신의 사적인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 편수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가 편수회를 이겨내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사적인 욕망은 고스란히 공적인 욕망으로도 이어진다. 그것이 백성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사적인 욕망은 가은(김소현)에 대한 연정과도 연결되어 있다. 천민 시절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그녀가 아닌가. 마침 가은이 궁녀가 되어 궁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건 향후 천민 이선이 가은과 맺게 될 애증을 예상하게 한다. 천민 이선은 가은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가은은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세자라고 생각한다. 이제 ‘가면의 주인’이 되려는 세자 이선과 천민 이선이 겪게 되는 욕망의 충돌은 그래서 가은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사적 멜로로도 연결된다. 

하지만 <군주>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단지 이런 ‘가면의 주인’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대결과 삼각 멜로 때문이 아니다. 사극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가면 설정에 담겨진 또 다른 의미가 새롭기 때문이다. <군주>의 이야기는 애초에 왕(김명수)이 편수회에 짐꽃에 중독되는 입단식을 치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편수회는 그를 왕으로 세우지만 그 왕은 그 대가로 짐꽃에 중독되어 편수회가 주는 해독약을 정기적으로 먹지 않으면 죽음을 맞게 되어버린다. 이 초반 설정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중독과 같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가면은 처음 얼굴을 가리고 정체를 숨기는 용도로 등장하지만, 차츰 그것이 왕과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가면을 쓰는 순간부터 그것을 벗기가 어려워지는 ‘중독’ 상태가 되어버린다. 천민 이선이 갖게 되는 욕망은 그래서 권력에 대한 중독의 의미가 담겨진다. 정반대로 궁 밖으로 내쳐진 세자 이선은 그 왕세자의 가면을 벗은 후 민초들의 삶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진짜 왕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단지 가면을 통한 치기어린 욕망이 아니라 진심으로 민초들을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희망이다. 

<군주>는 편수회라는 비선실세와 대결하는 왕세자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또한 그 안에 천민 이선과 왕세자 이선의 ‘가면의 주인’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대결 역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천민 이선과 왕세자 이선 그리고 백성들까지 모두 중독(권력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소 낮선 가면 설정이지만 <군주>가 이를 선택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평이한 사극의 틀을 넘어서 다양한 의미들을 그 설정을 통해 담아내고 있으니.

일주일 내내, 드라마는 콩 볶는 중

 

월화드라마 대전에서 SBS <닥터스>KBS <뷰티풀 마인드>의 성패를 가른 건 무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건 바로 멜로다. 공교롭게도 같은 의학드라마 장르지만 <닥터스>는 멜로가 있고 <뷰티풀 마인드>는 멜로가 없다. 그것도 <닥터스>의 멜로는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대사나 행동들이 적극적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에서 수술은 그 보조자를 누구로 하느냐 마저 멜로적인 구도로 그려진다. 혜정(박신혜)이 홍지홍(김래원)의 수술에 보조로 들어가기로 하자 서우(이성경)는 질투를 하며 자신도 들어가겠다고 요구한다. 또 혜정에게 마음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정윤도(윤균상)는 아예 대놓고 혜정에게 자신의 수술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처럼 <닥터스>에서는 대부분의 사건과 상황들이 멜로로 귀결된다.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와 홀로 서려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지 못하는 혜정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홍지홍과의 멜로를 통해서다. 또한 그녀가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과정 역시 홍지홍, 정윤도, 서우와 엮어지는 멜로적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향후 아마도 이어질 현성병원의 후계 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 역시 어떤 식으로든 혜정과 홍지홍의 멜로를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닥터스>의 성공은 의학드라마의 전문성도 물론 깔려 있지만 다름 아닌 멜로드라마의 달달함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KBS <태양의 후예>가 지상파의 시청률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도 결과적으로 보면 멜로다.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 그리고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가 전쟁, 재난 상황 속에서 그려낸 멜로의 힘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만큼 강력했다.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 난항을 겪던 수목드라마에 다시 두 자릿 수 시청률을 만들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KBS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그 힘은 멜로에서 나온다.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최단기간 4천만뷰를 넘어서며 벌써부터 <태양의 후예>의 뒤를 이을 작품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그토록 주말극에 힘을 실으려 노력했던 SBS가 그나마 성과를 가져온 작품은 <미녀 공심이>. 가족드라마도 복수극, 장르물도 아닌, 어찌 보면 평이해 보이기까지 한 멜로드라마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 누가 알았으랴. 안단태(남궁민)와 공심이(민아)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일주일의 피로를 녹이는 중이다.

 

tvN이 월화드라마라는 새로운 편성시간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멜로의 힘이다. <치즈 인 더 트랩>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한 tvN 월화드라마는 <또 오해영>으로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다.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도 단연 높았던 <또 오해영>은 확실하게 tvN 월화드라마 브랜드를 구축해냈다. 이어진 <싸우자 귀신아>가 첫 회에 4%를 넘기는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이제 믿고 보는 tvN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생겼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싸우자 귀신아> 역시 외피는 공포물에 코믹을 섞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달달한 멜로라는 점이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박봉팔(옥택연)이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 김현지(김소현)와 가까워지는 이야기. 박봉팔과 엎치락뒤치락하다 입을 맞추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살짝 떠올리게 된 김현지는 그 기억을 되살린다는 이유로 그와 다시 입을 맞추려 한다. 코믹 공포물이 멜로로 귀결되어 가는 증거다.

 

이제 의사가 나와도 귀신을 만나도 그 귀결은 멜로다. 사실 과거 같으면 기승전멜로라는 수식은 비판적인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과거 기승전멜로드라마가 비판받았던 건 멜로로 귀결돼서가 아니라 그 과정들인 기승전이 너무 디테일과 전문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멜로 하는 드라마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병원의 의사들이 보여주는 디테일한 상황들이 문제였다는 것. 하지만 <닥터스> 같은 드라마가 보여주듯 요즘은 멜로로 귀결된다 해도 그 안에 병원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멜로로 귀결되는 것이 드라마 다양성의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멜로에 집중되고 그것이 계속해서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건 그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멜로 중독을 만들고 있는 걸까.

 

지금의 시청자들이 조금치의 무거움이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건 이미 여러 드라마들의 성패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제 드라마는 더 이상 작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고 때로는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니 보다 직접적인 즐거움을 원하게 되는 것이고,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단연 멜로가 주는 달달함을 원하게 되는 것.

 

이것은 거의 멜로 중독에 가깝다. 직장인들이 하루의 피곤을 맥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듯, 이제 하루를 살아낸 시청자들은 멜로 한 편으로 잠시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그 중독의 대상이 하필이면 멜로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냄새가 나는 장르의 총아가 바로 멜로가 아닌가. 지금의 대중들이 어디에 갈급하고 있는가가 이 멜로 중독이라는 증상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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