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와이프’, 불편한 판타지와 공감 가는 현실

“티격태격, 아웅다웅, 미운 정 고운 정 쌓아가면서 같이 나아갈 것.” “우리만의 전우애도 싹틀 것.”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결국 불편한 판타지를 돌고 돌아 공감 가는 현실 속에서의 대안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삶의 현실이 제아무리 부부를 지치게 만들어도 서로가 지지해주고 다독이는 것으로 하나하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회에서 특히 주목됐던 건 ‘육아문제’였다. 맞벌이를 하는 우진(한지민)과 주혁(지성)은 두 아이의 부모로서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이 외치듯 “전쟁‘을 치르며 살아갔다. 이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은 <아는 와이프>의 시작 부분에서 그려졌던 풍경이다. 하지만 같은 전쟁이라도 그 전쟁을 대하는 이 부부의 자세가 달라졌다. 그 때는 홀로 ’독박육아‘를 하는 우진과 현실에 치인 주혁이 서로 너무 힘들어 자신의 힘든 것들만을 들여다보며 상대방에게 비수가 되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줬다면, 이제는 함께 하는 육아로 그 전쟁을 현명하게 이겨나갔다. 

첫 회의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상황은 물론 그 입장은 정반대가 되었지만 마지막 회에도 똑같이 벌어졌다. 교육과 시험을 봐야하는 주혁에게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고, 마침 아이를 픽업해야할 우진이 은행에서 쓰러진 고객을 응급실까지 데려다주느라 가지 못하게 되자, 교육장을 벗어나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주혁의 모습이 그려졌다. 물론 주혁은 우진과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불가능한 도전’을 해나가듯 함께 공조(?)해 아이도 챙기고 간신히 시험장에도 도착할 수 있었다. ‘독박육아’가 ‘전우애’로 바뀌는 변화를 드라마는 보여줬다.

사실 <아는 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너무 상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현실이 힘들어도 부부가 함께 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말과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는 와이프>는 그래서 과거를 돌려 현재를 바꿔본다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그렇게 막연한 판타지로 바꿔놓은 현실이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 나아가 그 힘든 현실들 속에서 상대방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던 일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드라마가 초반에 그토록 많은 시청자들의 저항감을 불러일으켰던 건, 주혁의 철없는 선택이 불러온 불편한 현실들 때문이었다. 첫사랑에 성공해 이혜원(강한나)과 살게 되지만 그것이 막연히 생각되던 판타지였을 뿐,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는 걸 주혁은 깨닫는다. 그러면서 우진을 점점 다시 바라보게 되고 자신이 못해줬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달라진 현실 속에서는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 시청자들의 저항감이 워낙 커서 드라마는 개연성 부분에 많은 흠집을 남기면서까지 이를 되돌리려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주혁이 사실은 우진과 부부사이였다는 걸 고백하고, 우진이 그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여러모로 개연성이 부족했고, 두 사람이 함께 과거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새로이 다시 만나는 과정도 그럴 듯하게 그려지지는 못했다. 또 이 가상의 설정을 되돌림으로써 거기 등장했던 이혜원이나 윤종후(장승조)가 들러리가 되는 부분도 남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여곡절을 통해 다시 돌아온 곳이 바로 그 드라마 초반과 똑같은 현실이라는 건 곱씹어볼만한 부분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막연한 판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겪는 치열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전우애’처럼 피어나는 것이라는 걸 드라마는 먼 길을 돌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다소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꽉 채워준 건 연기자들이었다. 철부지 같은 선택을 함으로써 비난받는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차츰 참회하며 돌아옴으로써 그 매력을 잃지 않게 했던 주혁을 연기한 지성이나, 1인3역 정도는 한 것처럼 이 드라마에 기분 좋은 생기를 불어넣은 우진 역할의 한지민은 물론이고, 들러리가 될 위치에서도 친구로서의 따뜻한 우정을 공감하게 해준 윤종후 역할의 장승조나, 판타지 설정의 부족한 개연성마저 메워주는 따뜻함을 보여준 우진 어머니 역할의 이정은, 그리고 은행식구들과 주혁의 친구들 역할을 한 배우들까지 연기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단단한 매력들이 뭉쳐져 <아는 와이프>는 초반의 불편한 설정들이 만들어낸 위험요소들을 상당부분 걷어내며 끝까지 시청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주목되는 건 시종일관 7%대(닐슨 코리아)를 유지함으로써 tvN의 수목드라마 시간대가 어느 정도는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나름 성과도 적지 않은 <아는 와이프>였다.(사진:tvN)

‘아는 와이프’, 이정은이 전한 진짜 사랑의 의미

“누구나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어. 가고자 하는 데로 간다는 보장도 없고 원하는 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야.”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에서 우진 엄마(이정은)가 서우진(한지민)에게 한 그 말은 아마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시간을 되돌려 다른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판타지가 아니라, 꼬이고 꼬여 풀기 어려운 실타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는 와이프>는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사람처럼 변해버린 아내 대신 첫 사랑을 선택해 다른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한 드라마다. 차주혁(지성)은 그렇게 시간을 되돌려 서우진 대신 이혜원(강한나)과 결혼해 살아가지만 그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자꾸만 서우진에게 눈이 가고, 과거 그에게 못해줬던 일들이 눈에 밟힌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혜원에게도 또 서우진에게도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한다. 

<아는 와이프>의 이런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요소가 되었다. 주인공인 차주혁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모든 주변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친구 윤종후(장승조)는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던 서우진이 차주혁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고는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이혜원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차주혁에게 이혼서류를 보낸다. 서우진은 차주혁에게 마음이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아는 와이프>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불편함을 풀어낼 수 있는 길은 바로 그 문제를 만들어낸 차주혁이 철저히 부서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주혁은 모든 걸 잃게 된다.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 전 재벌 회장인 장인만 믿고 했던 대출이 사기로 드러나 직장도 잃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잃는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간을 되돌린다. 

만일 차주혁의 선택으로 시간이 되돌려졌다면 그건 또 다른 불편한 요소를 만들었을 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그의 이런 판타지 시간여행이 주변인들의 삶이 꼬이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한 번 해보는’ 이기적인 선택처럼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두 번째 시간을 되돌리는 선택은 차주혁이 아니라 서우진이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 시청자들이 바라는 점이기도 하고 또 작가가 바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개 과정은 너무 급하게 진행된 느낌이다. 갑자기 차주혁이 서우진에게 우리가 부부였다는 걸 고백하고, 그걸 서우진이 믿게 된다는 설정은 사실 너무 빠르게 전개되어 개연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인물로 우진 엄마가 있었다는 점이다. 치매가 아니라 시간여행자였던 그가 서우진에게 과거로 갈 수 있는 동전을 주고 시간을 되돌리게 해주는 장면은 엄마로서의 마음과 아내로서의 마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그 역시 시간을 되돌려 죽은 남편을 살리려 했던 것이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그걸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또한 반드시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같이 살아야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 잘했지 여보?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당신을 구할 수 있었는데.” 우진 엄마가 남편의 사진을 보며 하는 이 말에는 회한과 가정이 담겨있지만, 또한 남편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 또한 담겨있다. 개연성 부족한 급전개였지만 그나마 우진 엄마의 이 한 대목이 있어 꼬이고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게 된 느낌이다.(사진:tvN)

갈수록 꼬여간다, ‘아는 와이프’ 풀어낼 방법은 있을까

어째서 이 관계들은 풀리지가 않고 꼬여만 갈까.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과거를 되돌려 달라진 현재를 살아가게 된 차주혁(지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그것이 판타지인 줄 알았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던 아내 서우진(한지민)으로부터 벗어나 첫사랑 이혜원(강한나)과 결혼까지 하게 됐으니 말이다. 재벌가의 딸과 결혼해 갖게 된 부유한 삶과 장인댁의 힘으로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그 이후부터 차주혁의 판타지는 서서히 깨져나간다. 어딘지 자기 입장만을 주장하는 이혜원보다 같은 은행으로 오게 된 서우진이 눈에 들어온다. 차주혁은 자꾸만 서우진이 눈에 밟히면서도 어찌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우진과 친구 윤종후(장승조)가 서로 사귀게 된 걸 지지해주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게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를 되돌리기 전 아내였던 서우진의 진가를 뒤늦게 알게 되고 그래서 후회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차주혁이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한번 선택했으면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차주혁은 과거의 아내인 서우진에게도 또 현재의 아내인 이혜원에게도 충실하지 못하다. 차주혁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져서일까. 이혜원은 점점 악역으로 그려진다. 그래야 차주혁의 이런 모습들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와 외도를 하고 자기 중심적인 본색을 드러낸다. 

어머니가 아파 병원에 가는 일로 장인의 출판기념회를 가지 못한 차주혁은 아내 이혜원의 본색을 확인하게 된다. 이혜원은 대놓고 말한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대뜸 이혼서류까지 택배로 보내온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살려한다. 그리고 돈이면 뭐든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차주혁을 황당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우유부단한 선택과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차주혁이 비판을 받고, 그러자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 이혜원이 그 비판을 다시금 떠안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조금씩 차주혁에게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서우진은 결국 그 선을 넘어버린다. 술에 취해 차주혁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그에게 키스를 해버린다. 그것은 결국 선을 넘는 불륜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서우진마저 불편한 인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냐며 우려한다. 

어째서 이 관계들은 풀리지 않고 계속 꼬여만 갈까. 애초에 드라마가 그리려던 건 이런 게 아니었을 게다. 단순히 과거를 바꿔 바뀐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에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배우자에 대한 소중함 같은 걸 담아내려 했을 테니 말이다. <아는 와이프>라는 제목은 그래서 알고 있다 생각한 아내를 실상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남편의 후회스런 참회가 담겨 있다. 또한 그렇게 알게 됐다 해도 다시 부부의 연으로 이어질 수 없어 그저 ‘아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하는 남편의 처지도.

하지만 이런 의도와 달리 드라마가 그려내는 관계들은 비록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선을 넘는다’는 것 때문에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아내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를 신경 쓰는 남편, 남편의 부모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만 중요하다 생각하며 나아가 다른 젊은 남자와 불륜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아내, 또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아내가 있는 남자에게 다짜고짜 마음을 고백하고 키스를 하는 여자. 물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과정일 수 있지만, 그 선을 넘는 과정들이 주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과연 계속 꼬여가는 이 관계들을 풀어낼 방법은 있는 걸까.(사진:tvN)

바꿔보니 아니더라? ‘아는 와이프’ 호평과 혹평을 가르는 건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를 되돌려 첫사랑 이혜원(강한나)의 남편이 된 차주혁(지성)이 서우진(한지민)의 진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본래 멜로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코미디를 더 좋아하는 서우진. 그가 멜로를 좋아한다 여겼던 건, 울고 싶을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차주혁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서우진을 괴물로 만든 건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즉 <아는 와이프>는 ‘만일 ...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판타지를 통해 담아내면서 우리가 현실에 치여 놓치고 있던 것들을 그 체험을 통해 깨닫게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조금 뻔한 면이 있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지만 ‘지금 당신 옆에 있는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가상 체험일 수 있어서다.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마치 저 <구운몽>의 이야기처럼 모든 게 일장춘몽이었다고 끝나는 건 아닐는지.

가상 체험은 자못 자극적인 코드들을 담을 수 있다. 이를테면 남편이 아내를 바꿔 살아보는 이야기나, 아내가 미혼상태로 돌아가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는 그런 내용들이다. <아는 와이프>에도 이런 코드들이 들어간다. 차주혁이 과거를 바꿔 깨어났을 때 그의 침대 옆에서 함께 자고 있는 와이프는 이혜원이라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이혜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차주혁의 품에 안긴다. 바로 몇 분 전 서우진의 남편이었던 차주혁이 몇 분 후 이혜원의 남편으로 살아보는 것. 자극적일 수 있다. 

이는 서우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차주혁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긴 하지만, 자신에게 대시하는 윤종후(장승조)와의 관계에서도 싫지 않은 감정을 갖는다. 물론 서우진의 경우 진짜 판타지는 독박육아에서 벗어나 싱글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일 것이다. 차주혁과의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벗어나 있다는 그 사실. 

그런데 이런 ‘가상 체험’ 판타지를 더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것이 마치 스와핑 같은 불륜적 코드들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보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가상 체험 판타지지만 느끼기에 따라 그것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적 의미’로 다가오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저 자극적인 불륜 코드의 정당화로 느껴지는 분들도 있다. <아는 와이프>는 이 아슬아슬한 양극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호평도 나오지만 혹평 역시 쏟아지는 이유다. 

즉 과거를 바꿔 현재를 바꿔 살아보는 가상 체험 판타지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분들에게 <아는 와이프>는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 판타지가 너무 상투적이라고 여기는 분들은 <아는 와이프>가 너무 뻔한 주제를 내세워 사실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주혁이 과거를 바꿔 현재의 아내를 바꿔 살아가는 그 선택을 하고는, 이제 와서 서우진의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대시하는 윤종후를 막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시퀀스는 이 인물의 ‘찌질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어서다. 선택을 했으면 그만한 책임 또한 따른다는 걸 그는 왜 모를까. 차주혁의 그런 행동을 정당화라도 시켜주겠다는 듯, 그의 아내인 이혜원이 정현수(이유진)라는 가짜 대학생과 불륜적 상황을 보이는 이야기도 그렇다. 그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자극적 코드를 위한 설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일 ...었다면’이라는 판타지 코드가 가진 양극단의 느낌을 그나마 상쇄해주는 건 지성과 한지민의 연기다. 지성은 자칫 욕먹을 수 있는 차주혁의 우유부단함과 찌질함을 적당히 망가지는 캐릭터 연기를 통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인다. 한지민은 ‘하드캐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귀여움과 절절함과 털털함을 넘나들며 누구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더해준다. 그래서 이즈음에서 한번쯤 이 드라마가 하는 방식의 가정을 떠올리게 된다. 만일 지성과 한지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사진:tvN)

‘아는 와이프’, 한지민을 보면 우리의 착각이 깨진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그가 맞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때가 있다. 지금 삶의 맥락 바깥으로 살짝 벗어났을 때 우리가 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사람이나 삶은 의외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 의해 부추겨진 세속적인 욕망과 클리셰에 빠져버린 일상 속에서 진짜를 보지 못했던 삶이 그 바깥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건 서우진(한지민)이라는 인물이 다른 상황에서 얼마나 다른 인물로 다가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 차주혁(지성)에게는 분노조절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숨 막히는 아내였지만, 과거를 되돌려 첫사랑에 성공함으로써 재벌가 딸인 이혜원(강한나)과 결혼해 살아가게 된 차주혁이 다시 만난 그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랑스럽고 건강한 인물이다.

그렇게 바뀐 운명을 살게 된 차주혁의 시선을 통해 <아는 와이프>는 과거의 서우진과 현재의 서우진이 어째서 그리도 다른가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서우진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차주혁이 현실에 지쳤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던 것들이 그를 달라보이게 하는 것이다. 흔해져버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일터에서의 갑질과,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자신만이 전담해야 하는 일처럼 의무가 되어버린 독박육아. 남편은 자신도 힘들다고 자그마한 숨 쉴 공간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지지고 볶는 워킹맘으로서 숨막혀하고 있던 서우진이었다. 

그 때 차주혁은 서우진이 얼마나 힘겨워 하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만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과거의 운명을 되돌려 이혜원과 결혼하게 된 그가 자신이 다니는 은행에서 다시 서우진을 만나고 그가 얼마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는가를 새삼 발견하면서 그는 깨닫는다. 본래 서우진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 드라마는 차주혁이라는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지금 현재 평균치 남성들의 시선을 가진 차주혁은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의 한계를 가진 인물로 시작한다. 차주혁은 돈 많은 아내 덕분에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가는 드라마 속 남성들의 로망처럼 그려지지만, 정작 그는 조금씩 그것이 허망한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재벌가 장인 댁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살아왔던 배경이 완전히 달라 이혜원의 삶의 방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상경해 집을 찾은 자신의 부모에게 호텔을 잡아주겠다는 혜원의 말은 이해는 되지만 남편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 사서 내놓은 듯한 스테이크보다 그는 우연히 찾았던 서우진의 집 어머니가 싸준 갓김치가 더 당긴다. 그는 문득 서우진과 함께 갔었던 분식집의 떡볶이와 돈가스 그리고 빙수가 그립다.

<아는 와이프>는 틀에 박힌 막연한 판타지들이 가진 허구성과 일상 속 깊이 스며들어 있어 체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네 삶의 불평등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재벌가 사위로 살아가는 차주혁이 게임 전용 소파까지 구비된 거실의 풍경이나, 은행에서 여직원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커피 심부름을 하는 그런 일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허구와 불편한 풍경들이 등장하는 건 그것이 당연한 삶이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판타지들이나 불편한 풍경들이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차주혁의 시선에서 가장 그 편견을 깨는 인물은 바로 서우진이다. 어떤 진상 고객 앞에서도 당당하고, 분노 조절 장애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 뒷얘기에조차 뒤끝 없이 풀어내는 털털함이 있고, 무엇보다 명랑하고 밝아 주변 사람들까지 밝게 만드는 건강한 에너지가 있다. 차주혁은 그를 보며 그가 알고 있던 그 아내가 맞나 다시금 눈을 의심하게 된다. 

서우진의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와 연결된다. 그래서 서우진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한지민은 우리가 알던 그 한지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귀여운 고등학생과 삶에 찌든 억척스런 워킹맘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밝고 사랑스러운 직장인의 모습을 넘나들며.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안다 착각하며 살아가는 걸까. <아는 와이프>는 그 이야기를 차주혁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채 살아온 남성의 시선을 통해 질문한다. 그가 봐왔던 것들과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표피적인 것들이었으며, 비뚤어진 것인가를 그가 서우진을 달리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통해 담아낸다.(사진:tvN)

‘아는 와이프’, 당신은 정말 당신의 와이프를 아는가

이젠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가 유사성 논란을 일으켰던 <고백부부>와 무엇이 다른가를 알겠다. <고백부부>가 현실에 치인 부부가 과거로 타임리프해 일종의 ‘리마인드 청춘’을 보여줬다면, <아는 와이프>는 만일 이 부부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과 살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통해 지금 바로 옆에 있는 배우자의 존재를 새삼 들여다본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준 건 과거를 바꾸자 아예 현재가 바뀌어 버리는 그 상황을 보여주면서다. 차주혁(지성)은 그 이상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과거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겪은 어떤 일들이 현재를 바꾸게 된다는 사실을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통해 알게 된다. 과거에 오토바이와 부딪쳐 가진 상처가 자신의 손에 흉터로 남아있는 걸 발견하게 된 것. 

왜 서우진(한지민)과 결혼했을까를 후회하고 첫 사랑 이혜원(강한나)과 이루어지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던 차주혁은 결국 과거로 돌아가 그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을 내비쳤던 이혜원과 연주회를 함께 보고 데이트를 하면서 키스를 하게 된 것. 그렇게 과거를 바꾸고 현실에서 깨어난 차주혁은 자신의 침대 옆에 함께 자고 있는 이가 서우진이 아닌 이혜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렇게 과거를 바꿔 차주혁이 서우진을 만나지 않고 두 사람이 부부로 이어지지 않게 되면서 서우진 또한 그 현재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침대에서 깨어나 달라진 와이프로 쾌재를 부르는 차주혁과 교차 편집되어 보여진 서우진은 홀로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다. 차주혁의 아내였을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서우진의 이런 상반된 모습은 누구와 결혼했는가와 나아가 ‘결혼 생활’ 그 자체를 통해 같은 사람이라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차주혁의 와이프로서 서우진은 일과 육아에 지치고 어머니까지 치매증상을 보여 도무지 출구조차 안 보이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남편만 보면 쏘아대고 심지어 분노 조절 장애를 보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남편이 몰래 사두었던 게임기를 물속에 던져버리는 일을 할 정도로.

그러니 차주혁은 서우진의 일면만 본 것이다. 만일 자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완전히 다른 삶과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와이프를 전혀 상상하지조차 못했던 것. 그것이 어쩌면 진짜 와이프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이 <아는 와이프>다. 그 제목에는 흔히 잘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때의 뉘앙스를 담아 사실은 잘 몰랐던 와이프의 의미가 담겨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여기서 주목되는 건 서우진을 연기한 한지민이다. 첫 회에서 이렇게 망가져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살벌한(?) 와이프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이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한다. 그런데 고교시절의 그 풋풋하지만 어딘지 세 보이는 소녀의 모습까지를 생각해보면 한지민이 단 2회 동안 얼마나 하드캐리를 하고 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지민의 하드캐리는 이제 앞으로 또 이어질 전망이다. 결국 커리어우먼으로 멋진 모습을 보이는 그가 다시 차주혁을 만나 다른 관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거를 바꿔 현재가 바뀌고, 그 달라진 현재 속에서 또 다른 (과거) 와이프의 모습을 만나게 되며, 그래서 막연히 드세다고만 생각했던 와이프의 진면목을 찾아가는 이야기. 그 흥미진진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옆을 돌아보게 될 지도 모른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배우자를 당신은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하며.(사진:tvN)

악역이 뭐길래...이준호·김재욱·엄기준, 주인공만큼 빛나는 존재감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펄펄 나는 건 주인공 남궁민만이 아니다. 악역으로 등장해 이제는 남궁민과 짝패가 된 이준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얻었다. 그는 서율 이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반말을 하고 필요하면 폭력까지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윤하경(남상미) 대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면면을 드러낸다. 김과장과 대립하다가도 그가 죽을 위기에 몰리자 그를 구해주는 의외의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어,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물론 이준호는 드라마 <기억>이나 영화 <스물> 등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악역이 주는 힘일 것이다. 드라마에 긴장감과 갈등을 부여하는 역할로서 악역은 제대로만 연기해내면 주인공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껏 풋풋한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준호가 서율이라는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로 만든 반전 이미지는 그에게는 연기자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악역은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자의 새로운 결을 드러내게 해준다. 종영한 OCN <보이스>에서 중반 이후부터 등장해 마지막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 김재욱 역시 악역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등장만 해도 살벌한 느낌을 주는 모태구라는 악역은 조각 미남 김재욱의 이미지를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여성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 미남의 이미지가 거꾸로 살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재욱은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는 오히려 연기자로서는 어떤 장애요소로 작용한 면이 더 크다. 다양한 연기를 해내기에는 그 외모가 주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재욱 역시 모태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에서의 엄기준 역시 차민호라는 악역을 통해 새삼 주목받았다. 사실상 <피고인>은 주인공인 지성과 악역인 엄기준이 서로 치고 받는 그 힘에 의해 끝까지 탄력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과한 설정들과 개연성이 부족한 면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끝까지 힘을 유지한 것도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살인자 재벌2세라는 캐릭터는 지금의 대중정서가 공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 요소들을 통해 엄기준은 냉철하고 냉혹한 악역을 만들어냈다. 어딘지 선해 보이는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그래서 더 잔혹해지는 행동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강렬해질 수 있었다. 

악역은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연기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깨는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만든 배우들을 보면 저마다 확실한 악역의 필모그라피가 있다. 남궁민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보여준 악역의 힘이 있었고, 유아인 역시 영화 <베테랑>에서의 악역이 있었다. 이준호, 김재욱, 엄기준 역시 이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악역이 부여한 연기자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며.

‘피고인’ 시청자들이 그토록 사이다 엔딩 기대했건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종영했다. 모두가 바라던 해피엔딩. 박정우(지성)는 차민호(엄기준)를 결국 사형수로 감방에 집어넣으며 정의를 실현했다. 마지막 시청률도 28.3%(닐슨 코리아)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모든 것이 정의로 돌아간 해피엔딩에 최고 시청률까지 기록했지만 어딘지 시청자들의 반응은 찜찜하다. 사이다이긴 한데 어딘지 김빠진 사이다란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피고인(사진출처:SBS)'

가장 큰 문제는 이 드라마가 연장 2회를 더해 18회를 끌고 왔던 그 힘이 고구마 전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박정우를 다시금 원상태로 돌려놓는 방식을 반복하면서 생겨난 시청자들의 갈증을 동력으로 삼았던 것. 마지막회까지 이렇게 갈증들을 증폭시켜놓았기 때문에 웬만한 엔딩으로는 그게 채워지기가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차민호가 사형수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정신병자인 척 가장하며 법망을 피해나가려는 상황에 갑자기 나연희(엄현경)가 증인으로 등장해 자신이 차민호를 사랑했다고 말하며 아이 역시 차민호의 아들이라고 밝히는 장면은 너무 신파적이었다. 결국 그 증언이 차민호의 마음을 움직여 그 실체를 드러내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사형수가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결말이다. 

그토록 권력자들을 좌지우지하며 잘 빠져나가던 차민호가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에 감상적으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는 18회 동안 쌓아 놓은 정의 구현을 통한 사이다 결말에 대한 갈망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다. 갑자기 약해진 악역이 신파적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한 의도적 결말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진정한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구도조차 명쾌하다고 보기 어려운 <피고인>은 그래서 나아가 어떤 주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피고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드라마는 애초에 “누가 이 시대의 피고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담아낼 수도 있었다. 박정우라는 무고한 인물이 피고인이 되고, 정작 살인자인 차민호가 권력을 손에 쥐고 버젓이 잘 살아가며 법망을 빠져나가는 그 구도만 잘 살려냈어도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피고인>은 그런 주제의식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고구마 전개를 통한 시청률 낚기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였던 것. 물론 주제의식 같은 메시지보다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가 개연성을 잃어버리면서 억지 반전을 통해 만들어내는 충격요법이 진정한 이야기의 재미를 주기는 어렵다. 

최근 들어 이만한 시청률을 가져간 드라마도 드물었지만 <피고인>은 여러모로 적지 않은 문제들을 남긴 드라마였다.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시청자들의 혹평도 늘어갔다는 건 그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애초에 고구마를 통해 시청자들의 감정을 억압함으로써 시청률을 겨냥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제대로 된 엔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애초 사이다 엔딩은 고구마 전개의 끝에 보상처럼 주어질 것처럼 여겨진 환상이었을 지도.

‘피고인’,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답답하다’는 것이다. 아니 ‘답답하다’는 걸 넘어서 ‘해도 너무한다’는 것.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드라마 전개가 끝없는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흘러온 구성을 보면 지독하게 당하는 박정우(지성)가 그걸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이 차민호(엄기준)에 의해 그게 좌절되는 상황의 무한반복이다. 

'피고인(사진출처:SBS)'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아내를 죽인 범인이 아닌가 하는 그 충격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기억을 찾아 벗어나고, 차민호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딸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는 스스로 칼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어 딸을 만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고, 그래서 결국 탈옥한 후에는 어렵게 딸을 만나 자수함으로서 반전의 기회를 갖지만 차민호가 결정적 증거를 조작하고 심지어 박정우를 돕기 위해 자수한 성규(김민석)마저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한 도돌이표. 게다가 그 이야기 전개는 거의 막장에 가깝다. 차민호의 부친인 차영운 회장(장광)이 힘을 써서 박정우의 무고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인 칼에 대한 국과수의 조사를 조작하는 이야기는 그게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차회장은 그런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설명이다. 또한 자수한 후 진실을 밝히려던 성규가 구치소에서 살해당한다는 것에도 그다지 그럴 듯한 개연성 있는 설명은 없다. 다만 차민호라면 그 정도 힘은 당연히 발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을 뿐이다. 

즉 이런 개연성 없는 마구잡이식의 반전을 노리는 전개는 사실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끊임없이 박정우의 반격을 저지시키고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그래서 뒷부분에 이어질 사이다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키려는 의도. 이건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장 전개가 가속화될수록 <피고인>의 시청률은 갈수록 치솟는다. 25% 시청률을 넘긴 이 드라마는 이제 30%를 넘기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시청자들은 어째서 이런 막장드라마가 이렇게 시청률이 높을까 이야기하지만, 해답은 그것이 바로 막장드라마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드라마의 충실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시청자들을 잡아끌기 위한 낚시에 몰두함으로써 당연히 가져가는 수치. 그게 막장드라마의 유일한 존재의미가 아닌가. 

<피고인>은 여기에 일종의 위장술 같은 걸 사용한다. 그건 실체인 막장드라마를 가리기 위한 방법이다. 그 첫 번째는 연기에 있어서 믿고 보는 연기자인 지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몰입도를 높여놓았다는 점이다. 설마 지성이 저런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막장이겠어, 하는 착시효과가 이 드라마의 초반 몰입을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지성의 존재감이 드라마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막장드라마들이 흔한 가족드라마의 변형으로서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덧붙여진 가족복수극을 그려냈던 것과는 달리, <피고인>은 장르물에 막장드라마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로서는 미드에서나 많이 봐왔던 소재인 감옥이야기라는 장르적 외피를 보며 이 드라마가 주는 몰입감이 막장드라마의 기술 때문이라는 걸 부인했을지 모른다. 

<피고인>이 만들어낸 막장 장르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는 그래서 시청층의 외연을 넓혀놓았다. 막장드라마의 주 시청층이었던 중년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전개를 제공하면서도 이 드라마는 그간 막장드라마에 시큰둥했던 중년 남성시청자들마저 장르의 외피로 위장된 막장드라마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피고인>의 성공은 막장드라마와 장르극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막장드라마의 시대를 예고하게 한다. 장르물이 갖는 미드적인 세련됨에 막장드라마가 갖는 빠른 전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이는 방식. 그래서 높은 시청률을 가져가지만 시청자들로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어딘가 작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있는 듯한 불편함을 주는 드라마. 과연 이러한 변칙적인 드라마의 탄생은 괜찮은 일일까.

‘피고인’ 해도 너무한 고구마 전개, 개연성 부족

감옥에서만 빠져나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은 박정우(지성)가 탈옥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감옥 안과 다른 느낌이 없다. 그러고 보면 <피고인>의 지지부진한 전개와 답답함은 단지 감옥이라는 틀에 주인공이 갇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어떤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 전개 그 자체보다는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둬두고 질질 끌고 다니려는 의도가 더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피고인>이 시청자를 낚는 그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박정우를 한없이 힘겨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희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박정우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전개다. 소망을 이루는 것을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이 참기 어려운 갑갑함을 느끼게 만들고 아주 조금씩 소망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고, 기억을 서서히 되찾으면서 그 진범을 알게 되고는 복수를 소망하게 만든다. 또 감방에서 박정우가 도움을 줬던 성규(김민석)가 마치 아내와 딸을 죽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고 사실은 그가 딸을 데리고 보살피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려준다. 복수에 대한 소망과 딸을 만나고 싶은 소망 그리고 탈옥에 대한 소망을 계속 갖게 만들고 그걸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전개. 

탈옥을 한 후에도 이런 전개는 변함이 없다. 딸 하연(신린아)이를 만나기 위해 박정우가 그를 추격하는 경찰들을 따돌리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드라마 마지막에 보여주는 건 그의 딸이 차민호(엄기준)에게 먼저 붙잡혔다는 사실이다. 탈옥을 하면 무언가 고구마 전개에 있어서 숨통이 트일 것으로 여겼던 시청자들로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지연 전개와 함께 <피고인>의 문제로 지목되는 건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개연성 부족이 너무 많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죽은 걸로 알려져 있는 박정우의 딸이 이렇게 몇 달 째 가족들과 떨어져 성규와 함께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하연이는 이 모든 상황들을 다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탈옥해 금방이라도 붙잡힐 것처럼 보이던 박정우가 갑자기 나타난 서은혜(권유리) 변호사의 차를 타고 도주하는 설정도 그렇다. 서은혜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심지어 탈옥을 돕고 있는가 하는 점은 아무런 설명도 되어 있지 않다. 간수인 윤태수(강성민)가 탈옥하는 박정우와 그 일행에게 총을 겨누는 다른 간수를 제지하는 장면도 너무 간단히 처리되어 있다. 탈옥이나 탈옥을 돕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물론 드라마라고 해도 완벽하게 개연성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두는 지연 전개를 하기 위해,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엔딩에 박정우를 절규하게 만드는 반전상황을 집어넣기 위해 개연성이 무시되는 건 문제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지금 <피고인>은 끝없이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 위한 것에만 더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고구마 전개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는 어떤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끝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18부작으로 2부를 연장시킨 <피고인>이 18부 마지막까지 고구마만 던지다 끝에 가서 겨우 사이다 한 잔을 주는 전개를 보인다면 시청자들로서는 허탈해지지 않을까. 그것도 어떤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그저 시청률을 얻기 위한 목적에 그치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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