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샤3’가 윤두준과 백진희를 다루는 방식 왜 다를까

tvN 월화드라마 <식샤를 합시다3>에서 구대영(윤두준)은 보험설계사다. 그가 가진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은 먹방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설정이다. 영업을 하는 분들만큼 음식점을 잘 아는 분들도 없어서다. 결국 “식사 한 번” 하는 일이 중요한 영업의 한 부분이 되어 있어, 그 직업을 가진 구대영이라는 캐릭터의 먹방이 그저 먹는 장면을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구대영은 세컨드 잡도 갖고 있다. 한때 먹는 일에 그다지 소질(?)이 없었지만 이지우(백진희)를 만나면서 배우게 됐던 그 식사의 노하우들이 쌓였고, 결국 한 업체로부터 푸드 크리에이터 제안을 받았다. 그는 혼밥을 하는 1인 가구들이 집에서 간편하게 음식을 해먹을 수 있게 맛집을 연계하는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가 이 사업을 접게 되고, 그가 다니는 보험사에서 그에게 지점장 제안이 오면서 그는 갈등하게 된다. 결국 보험사를 나오는 선택을 하는 구대영은 향후 ‘식샤님’으로의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식샤를 합시다3>에서 구대영만큼 중요한 인물인 이지우(백진희)는 초반에만 잠깐 그가 간호사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왔을 뿐, 거의 직업적인 이야기가 빠져 있어서다. 심지어 그 초반을 보지 못했던 시청자들은 이지우의 직업이 무엇인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은 청춘시절을 오가며 먹방을 보여주는 것과 구대영과의 멜로 그리고 동생 이서연(이주우)과 계속 얽히는 악연, 인지장애를 겪는 엄마 강미숙(이지현)과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부다. 그에게서 직업적 부분들은 놀라울 정도로 삭제되어 있다. 

그것이 드라마가 다루려는 부분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구대영의 직업이 그토록 중요하게 다뤄지는 데 비해, 한 회에 거의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지우의 직업은 어딘가 균형이 깨져버린 느낌이다. 이 드라마는 과거 그토록 음식 먹는 일에 노하우를 쌓고, 또 그걸 즐겼던 이지우가 직장생활 10년 간 1인 가구로 살아가며 입맛을 잃어버렸고, 다시 만난 구대영을 통해 그 입맛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지우의 현실적인 삶이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인지장애를 겪는 엄마의 이야기와 그에 빌붙어 살아가는 이서연과의 아픈 관계가 등장하지만 일터에서 겪는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는 왜 빠져 있는 걸까.

이 점은 이 드라마가 부지불식간에 갖고 있는 남녀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번 시즌에서 특히 먹방은 물론 멜로 구도에서도 그만한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이지우와 이서연은 모두 직업적인 부분이 삭제되어 있다. 반면 구대영이나 선우선(안우연)은 일과 사랑 그 양면을 드러내며 드라마를 전면에서 이끌어간다. 

이지우와 이서연의 직업적 부분이 삭제되면서 생겨나는 건, 이 인물들이 드러내는 상처나 아픔 같은 것들이 그저 연인, 가족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만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건 인물을 단순하게 만들어버린다. 이지우가 먹방과 사랑에만 목매는 존재로 느껴지며 어떤 면에서는 너무 수동적이라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째서 구대영과 이지우를 다루는 방식이 이토록 다른 걸까. 이건 자칫 남녀 간의 성차를 당연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냉정하게 바라본 박유천과 이진욱의 문제

 

배우는 일종의 가면을 쓴 존재다. 대중들은 그것이 진면목이길 기대하지만 사실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판타지 속의 캐릭터를 연기해내는 것이 배우들의 역할이다. 물론 가면을 쓴다고 해서 가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기론에서 가면은 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꺼내놓는 일이다. 그러니 가면에도 배우 자신의 많은 모습 중 하나가 비춰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 좋은 배우이기도 하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사진출처:MBC)'

최근 벌어진 박유천과 이진욱의 스캔들은 배우로서 사생활 노출이 어떤 의미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이 배우들 누구도 자신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폭행이라는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며 파헤쳐지기 시작한 사생활은 그들의 배우로서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법적으로는 두 사람 다 무고를 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노출된 사생활들은 그간 그들이 쌓아놓은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거의 무너뜨렸다.

 

이진욱이 말한 것처럼 무고는 정말 큰 죄.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법적으로 죄가 없는 이진욱이나 박유천에 대한 대중들의 감정은 결코 좋지 않다. 그것은 법적 공방 도중 흘러나온 원나잇이라는 표현이나 화장실같은 단어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상식적인 관계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이고 미혼이니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고루한 일이다. 그리고 이른바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에 대한 완고한 자세를 요구하는 사회가 그리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배우라는 직업과 이런 사생활 노출로 인해 생겨난 이미지들이 부딪칠 때다.

 

배우의 사생활 노출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배우라는 직업에는 그다지 좋을 수가 없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이미지에 선입견을 만들기 때문이다. 배우는 여러 가면을 써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대중들에게는 더 쉽게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서 배우라는 직업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결국 무고임이 드러났고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일이 문제가 되어 이미지에 직격탄을 입은 박유천과 이진욱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적인 입장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것이 사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만일 드러났을 때 그 반향이 배우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미리 조심했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어떤 면에서 보면 사생활 문제가 야기하는 윤리적인 문제보다 대중들이 더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로서 보였던 이미지와의 괴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괴리는 향후 이들의 연기에 대중들이 더 이상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억울해할 일이라기보다는 최소한 미안해야 할 일이다.

 

박유천과 이진욱 모두 남겨진 문제는 명백하다.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적인 문제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죄는 벗어났지만 배우의 가면 뒤에 보이지 말아야할 이미지가 노출되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 현재의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배우 이미지를 쌓아나가야 그나마 연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의 문제는 이미지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무고가 인정됐다고 해서 떳떳하다거나 당당하다는 식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 건 별반 소용이 없다. 이미지(든 실체든)를 부정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체시력, 기시감, 요즘 로코 남주들의 흔한 능력들

 

tvN <또 오해영>에서 남자주인공 도경(에릭)의 직업은 음향감독이다. 그는 사소한 음향조차 그저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프로다. 직원들은 쓸데없이 예술 한다고 투덜대지만 실제로 그가 만들어낸 음향은 확실히 작품을 더 빛나게 만든다. 술을 마시다가도 그 술집의 소리가 갑자기 좋다며 음향기기를 가져와 녹음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상의 소리들을 담기 위해 무시로 녹음기를 틀어놓는 그는 이 일에 푹 빠져 있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가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른바 로맨틱 코미디의 금수저는 아닌 캐릭터다. 금수저는커녕 그의 엄마는 그의 앞길을 막는 존재다. 억누르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식에게 손을 벌리고 또 스폰서에 가까운 남자를 여전히 찾아다닌다. 남자주인공은 직업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가족사는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다 가진 남자들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하지만 이런 남자주인공도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그걸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자주인공인 오해영(서현진)과 관련되어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보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기시감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이 능력은 도경이 오해영과 가까워지는 장치가 된다. 그녀를 걱정하게 되고 그녀가 위험에 처할까봐 그녀를 찾아 헤매게도 만든다.

 

사실 능력이라기보다는 장애에 가깝다. 그것이 그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그가 가진 장애이자 능력은 묘하게도 그가 가진 매력이 된다. 그것은 그 능력(?) 때문에 그가 타인인 오해영에 대해 자꾸만 신경을 쓰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타인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그래서 도경의 진짜 숨겨진 매력이다. 왜 이런 특징을 <또 오해영>은 굳이 남자주인공의 매력으로 집어넣은 걸까.

 

SBS <미녀 공심이>의 남자주인공 단태(남궁민)는 인권변호사다. 변호사라고 하면 로펌에 들어가 돈 많이 버는 그런 직업으로 많이 그려져 왔지만 <미녀 공심이>에서 단태는 변호사이면서도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뛰는 그런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공심(민아)의 집 옥탑방에 들어와 월세를 사는 인물이다. 그가 현실적으로 공심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단태에게도 남자주인공으로서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동체시력이다. 동체시력 때문에 폭력배들과의 싸움에서도 그는 여유롭게 그들을 물리치고 공심을 보호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능력인지 장애인지는 애매모호하다. 그가 동체시력을 갖게 된 건 그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어린 시절 목격하게 되면서다. 그 끔찍한 장면들은 무의식 속 기억 저편에 묻혔고 대신 동체시력이라는 능력을 갖게 된 것.

 

<미녀 공심이>에서 재벌3세인 준수(온주완)는 공심의 로망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단태가 실제로 그녀를 남모르게 사랑하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모든 걸 가진 재벌3세는 여전히 로망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남자주인공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 오해영>의 도경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고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과, <미녀 공심이>의 단태가 남이 못 보는 걸 보는 사람이고 가난한 서민들을 돕는 인권변호사라는 점은 이들의 매력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얘기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봐주고 그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감해주는 능력이 있는 남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로맨틱 코미디에서 현실적인 능력은 남자주인공의 중요한 자질이 아니다. 그것은 물론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판타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로맨틱 코미디는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재벌3세 같은 인물을 통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더 이상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시대라고들 말한다. 그러니 한때 결혼과 사랑을 통해서라도 꿈꾸던 신데렐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더 현실적인 사랑을 꿈꾸고 그 안에서의 행복을 느끼길 원한다. 가난해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남자.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고 무시해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그런 남자. 지금의 현실은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주인공들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다

<태후>, 송중기는 군인이 아니라 슈퍼히어로다

 

세상에 이런 군인이 있을까. 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 사사로움 따위는 없다. 하지만 소신은 분명하다.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아랍의 무바라크 의장이 쓰러지자 자칫 잘못하면 국제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포기하라는 상관의 명령에도 군인 유시진(송중기)은 의사인 강모연(송혜교)에게 그를 살릴 수 있냐고 묻는다. 군인이라면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는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따른다. 이것이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 유시진이라는 군인의 면면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은 이중적이다. 분단국가로 살아오면서 늘 분쟁과 나아가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군인은 우리가 마음 한 구석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러한 보호하는 존재로서의 군인은 그 직업적 특성 자체가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랜 군부 정권의 폭력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그 상명하복의 권력 체계가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그것은 심지어 트라우마로 남아있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이 군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에게 당혹감을 준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라는 직업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실제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고 분쟁지구에서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일상에서 군인이라는 직업에 여성들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군부 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청춘들이라면 모를까(실제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선호는 높다고 한다) 그 힘겨운 시절을 겪어낸 세대라면 고개가 갸웃해질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군부 정권 시절과 그것이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적 체계를 공고히 하게 했던 시대의 공기를 겪어낸 중년여성들조차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든다. 이것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손발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마치 스파이물의 주인공처럼 위험지구를 넘나들고, 노인, 아이, 여자 같은 약자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인물에 빙의된다. 무엇보다 여성 앞에서는 끝없이 농담을 던질 정도로 부드럽지만 임무에 들어가면 액션 영화의 히어로처럼 맹활약하는 그 모습이 일상이 시시한 소시민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군인이 우르크라는 분쟁지구에서 하는 일은 적과 싸우는 일이 아니다. 주민들을 보호하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깔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소 시설을 건설하는 민간업체의 보호임무도 맡고 있다. 그리고 유시진은 이곳에서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무기거래상이 된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와 대립하게 된다. 또한 이곳에 벌어진 지진 때문에 무너진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물론 이렇게 판타지화되어 있는 유시진의 면면에 의해 가려지는 해외 파병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양의 후예>국뽕이라는 해석은 과도한 면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고 있는 해외 파병의 실체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없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를 국뽕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리면 남는 문제가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에 푹 빠져 일주일의 피곤을 날리고 있는 그 무수한 시청자들은 그럼 모두가 국뽕에 빠져버린 중독자들인가.

 

만일 <태양의 후예>가 군인 판타지를 앞세워 국가를 홍보하고 있는 이른바 완성도 높게 찍은 배달의 기수같은 드라마라면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반응할 수 있을까. 과연 <태양의 후예>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정당화하고 있을까. 해외파병 문제를 덮어 버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까. 아니 의도는 없더라도 실제로 이 드라마 한 편 때문에 해외파병 문제가 덮어지기는 하는 걸까.

 

<태양의 후예>는 일단 군인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 않다. 유시진이라는 군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물론 날라 다니고 한다는 의미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끝까지 지키고 그것을 생각만이 아니라 실행하는 인물로서의 슈퍼히어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붕괴된 건물 속으로 뛰어들고, ‘만약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부상자의 상태를 팔목에 꼼꼼히 적어놓는 건 단지 그런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시진은 군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인물에 가깝다. 국가는 그를 부르지만 그는 자꾸만 자신의 연인의 안부와 안전이 걱정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지만 갑자기 부름을 받아 전장으로 뛰어가야 하는 그다. 재난지구에서조차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진영수(조재윤) 같은 인물이 그걸 가로막는 유시진에게 국민의 세금운운하며 몰아 부칠 때, 그는 국가를 위한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가를 얘기한다.

 

<태양의 후예>가 제아무리 유시진의 판타지에 빠져들게 만들어도, 해외파병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우리가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유시진 판타지가 군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희구하는 이상화된 슈퍼히어로(휴머니즘 같은 가치를 수행하는)이기 때문에 생겨나고 있어서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존재다

우리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행보와 가능성

 

어째서 나이 들어가는 배우를 보는 느낌과 코미디언을 보는 느낌은 다를까. 이순재, 박근형, 최불암. 나이 든 노년의 배우들에게서 연륜은 나이테처럼 쌓여 연기에서도 더 깊은 맛을 준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지워져가는 코미디언들을 떠올려보라. 한때 우리를 그토록 웃게 만들었던 고 배삼룡 선생이나 고 서영춘 선생.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때를 풍미했던 최양락, 김학래, 엄용수 같은 현역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코미디언들에게서도 배우들과는 달리 느껴지는 건 어떤 애잔함이다.

 


'김준호(사진출처: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아마도 그건 직업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늘 밝게 웃으며 웃음을 주던 이들이 어느 날 나이 들어간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데서 오는 애잔함. 하지만 그것뿐일까. 혹 배우를 보는 시선과 코미디언을 보는 시선이 다르고, 배우들이 가진 환경과 코미디언들의 그것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3회를 맞은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그런 것이었다. ‘부산바다 웃음바다라는 캐츠 프레이즈에 걸맞게 다이내믹 부산의 이미지와 왁자지껄 한 바탕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 페스티벌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이 행사를 이토록 세우려 노력하는 이들의 안간힘을 슬쩍 슬쩍 발견하게 될 때면 느껴지는 것이 저 애잔한 마음이다.

 

이 행사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지금껏 이끌어온 김준호에게서 느껴지는 것도 그런 것이다. 방송에서 보면 영락없는 살살이캐릭터지만 행사장에서 본 그의 모습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3회를 거치며 규모가 커진 행사에 꽤 많아진 하객과 관계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담소를 나누었고, 우리네 코미디와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설 수 있기 위해서 행사가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동분서주 속에는 왜곡되고 편향된 우리네 코미디의 현실 그리고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이 앞으로 나가야할 길들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네 코미디는 너무나 방송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다. 코미디를 얘기하면 <개그콘서트>, <웃찾사>, <코미디 빅리그> 정도를 얘기하는 수준이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공연형 코미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이 방송 코미디와 그다지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연형 코미디가 없고 방송형 코미디만 남아 있다는 건 코미디의 저변이 약하다는 얘기다. 해외의 코미디가 페스티벌 현장은 물론이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카페에서, 공연장에서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다면 우리의 코미디는 방송에 포박되어 있다.

 

방송형 코미디가 마치 코미디의 전부인 것처럼 되다보니 대사 중심으로 흐르는 개그가 그 중심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우리네 코미디가 본래부터 이런 편향과 왜곡을 갖고 있던 건 아니다. 굳이 남사당패 같은 먼 과거로 가지 않더라도 유랑극단이나 서커스의 시절 코미디는 만담만이 아니라 기예를 포함한 쇼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글링을 하거나 두발 자전거를 타거나 마술을 하고 심지어는 공중그네를 타면서도 코미디가 가능했다. 그건 저 남사당패 줄타기 명인이 제 몸을 살판과 죽을 판 위에 세워두고 그 아슬아슬함을 이완시켜가며 웃음을 만들 던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이번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개막식에 갈라쇼로 보여진 해외의 코미디는 대부분 기예를 포함한 공연형 코미디들이었다. 그들은 저글링을 하거나,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체조를 보여주고, 놀라운 복화술이나 마술은 물론이고 독특한 예술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 그림자 연극을 코미디와 버무려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은 논버벌이 훨씬 더 효과적인 코미디의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한때 저질 코미디로 비하하며 버렸던 그 공연형 코미디들을 저들은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형 코미디가 중요한 건 그것이 생활 밀착형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거기에 종사하는 코미디언들의 생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방송형 코미디는 물론 고유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코미디언들의 살길이 오로지 이 방송에만 집중된 구조는 오히려 이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그것은 생계를 넘어 코미디언에 대한 인식조차 너무 고정적으로 굳혀버린다.

 

왜 코미디언들은 아티스트가 되면 안 되고, 배우가 되면 안 되는가. 왜 웃음을 준다는 사실이 그토록 저평가 받아야 한단 말인가. 왜 개그맨들은 잔뜩 보이는데 코미디언들은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이 되었나. 왜 한때 우리네 삶에 즐거움을 주었던 동춘 서커스 같은 기예를 포함한 웃음들은 지금 어느 변방으로 밀려난 공터에서 쓸쓸한 천막을 치며 살아가게 됐을까.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의 그 왁자함과 유쾌함 이면에 이처럼 왜곡된 우리네 코미디의 현실을 되돌리려는 간절함과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김준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만>, <미생>, <피노키오>가 꺼낸 칼끝이 향하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럭저럭 살만해 보인다. 아니 심지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한 걸음만 다가가면 온갖 뒤틀어진 욕망과 부조리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직업의 세계. 이런 의미로 보면 지금껏 대충 직장을 하나의 배경으로 다루고 그 위에 멜로 같은 이야기를 덧붙인 드라마들은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막연히 직장인의 로망을 말하는가.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제 전문직 드라마라는 표현은 구태의연해진 지 오래다. <오만과 편견>의 검찰, <미생>의 종합상사, <피노키오>의 언론사. 지금 현재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과거 전문직 드라마라고 불리던 드라마들의 호칭 자체가 무색해진다. 과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은 직업의 세계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그 디테일을 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면 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만들어냈던 것이 사실이니.

 

물론 의학드라마는 예외다. 무수히 반복되어오면서 디테일 역시 깊어진 게 의학드라마다. 하지만 검사나 기자 혹은 직장인을 다루던 전문직 드라마들의 디테일은 요즘 방영되고 있는 MBC <오만과 편견>이나 tvN <미생>, 혹은 SBS <피노키오>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들 드라마들은 좀 더 심층적인 취재가 아니라면 도무지 나오기 어려운 직업의 디테일들을 다룬다.

 

과거라면 이런 디테일은 시청률을 가로막는 저해요소가 됐을 것이다. 적당한 디테일에 조미료처럼 처지는 멜로가 드라마의 흥행공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당한 디테일은 이제 대중들에게는 리얼리티의 부족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니 거꾸로 깊어진 디테일은 실감으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디테일이 깊어진 이들 세 드라마가 시청률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오만과 편견>이 다루는 검찰은 막연히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디테일들이 들어가 있다. 문희만(최민수)같은 부장검사를 보다보면 전형적인 비리 검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가도 검찰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간힘을 쓰는 현실적인 검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검찰의 일원이 될 것인지 개인으로 남을 것인지를 구동치(최진혁) 수석 검사에게 묻는 문희만의 모습에는 시스템과 개인으로서 검사의 소신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미생>은 지금껏 우리가 종합상사라고 하면 해외에서 물건 떼다 파는 정도로 생각했던 그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또 직장인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샐러리맨의 애환 같은 통상적인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중독자들처럼 보이는 <미생> 상사맨들의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 가진 아픔과 기쁨을 모두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공감의 폭은 바로 이 디테일로 인해 커질 수밖에 없다.

 

<피노키오>는 그저 기레기로 치부되던 드라마 속 기자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다. ‘진실을 두고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보도경쟁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단독을 잡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는 현장 이야기가 들어간다. 기자가 나오면 으레 등장하는 클리쉐들은 디테일 속에서 무색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디테일에 승부하는 이들 직업 드라마들 속에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모두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이 주인공이라는 점이고, 그 사회 초년생에게 어떤 지침을 알려주는 직장의 멘토가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의 한열무(백진희)라는 초년생을 이끌어주는 수석 구동치가 그렇고,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라는 계약직을 끌어주는 오차장(이성민)이 그렇다. <피노키오>의 신입 기자 최달포(이종석)에게는 YGN 사회부 시경캡인 황교동(이필모)이 있다.

 

사회 초년병들과,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은 멘토들은 함께 힘을 합쳐 부조리한 현실과 맞선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조직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의 적은 검찰시스템이 되고, <미생>은 샐러리맨들의 직장 시스템이며, <피노키오>는 보도 경쟁에 내몰려진 방송 시스템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 직업을 다루는 세 편의 드라마는 다른 것 같아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업이 갖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항하는 청춘과 멘토의 공조체계가 그것이다. 어째서 서로 다른 직업을 다루면서도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나오게 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하는 직업의 세계가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취업도 어렵지만, 막상 들어가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스템의 현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비극들이 어떤 직업 속에서도 상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꾼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해진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덮어버리고 갔을 때는 좀체 정체가 드러나지 않던 막막하고 먹먹한 현실이다.

 

<개과천선>의 김명민, 우리들의 불편한 자화상

 

역시 김명민이다. 그가 연기하는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의 김석주라는 변호사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첫 회부터 일제에 강제 징용당한 어르신들의 반대편에서 서서 일본기업을 변호하는 김석주는 피도 눈물도 없는 로펌 변호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 재벌 2세의 강간치상을 변호하면서 피해자 여자 연예인의 치부를 드러내 자살시도까지 하게하고 결국 그녀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지독한 악마지만 그에게서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지는 건.

 

'개과천선(사진출처:MBC)'

<개과천선>의 로펌 변호사는 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변호인>의 변호사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것은 인권변호사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라 고용 변호사냐 아니냐의 차이다. <개과천선>에서 김석주가 다니는 차영우펌은 돈 되는 재벌 그룹들을 주 의뢰인으로 상대하는 로펌이다. 차영우펌의 직원이랄 수 있는 김석주는 따라서 이들 재벌 그룹들의 갖가지 귀찮고 더러운 일들을 처리해주며 살아가야 한다.

 

재벌들이 이러한 로펌에 변호사들을 자신들의 일에 대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일은 때로는 무고한 샐러리맨들의 생활터전을 빼앗는 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재벌2세들의 여자 문제 같은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치졸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일들은 양심에 불편함을 준다. 따라서 로펌 변호사들이 그 불편함을 대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김석주라는 변호사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결국은 차영우펌이라는 조직에 고용된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욕망이 존재하겠지만 그도 그런 일들을 겪으며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 조직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개인으로 돌아오면 죄책감이 없을 수 없다. 바로 그 죄책감이야말로 그가 돈을 버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김명민의 연기가 주목되는 지점은 김석주라는 인물에서 악마 같은 직업인의 모습과 언뜻 언뜻 숨겨진 인간적인 고충이 적절히 드러난다는 점일 게다. 김석주는 악명 높은 변호사로 극화되어 있지만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네 샐러리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조직의 생리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다. 따라서 돈을 벌기 위해서 때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직업과 생계라는 이름으로 죄책감이 상쇄된다. 김석주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불편한 자화상이다.

 

과거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라는 끝없는 욕망을 가진 천재외과의사가 과오를 저지르고도 대중들이 그에게 연민을 보낸 까닭 역시 그 인물에게서 샐러리맨의 비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끝없이 오르기 위해 뭐든 저지르지만 결국은 제 몸 하나 망가뜨리는 결과에 처하는 안타까운 삶. <개과천선>의 김석주라는 인물에게서는 그래서 그 장준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흥미로운 건 이 김석주가 사고를 통해 전혀 다른 인물로 말 그대로 개과천선을 한다는 설정이다. 이건 어쩌면 혹여나 조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불편하게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가 아닐까. ‘모든 걸 다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건 그 불편한 삶의 끝단에 서면 누구나 떠올리는 소망일 게다. 이 변신과정에서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저력은 여지없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피도 눈물도 없는 데드마스크가 심지어 바보처럼 실실 웃는 얼굴로 바뀌는 그 과정이 주는 통쾌함이란.

 

<개과천선>은 그래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판타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젊은 날의 마음이 생계를 위한 밥벌이와 무한 경쟁 속에서 서서히 희석되어 어느 새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어쩌면 처음으로 돌아갈래하고 외치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과천선>의 김석주라는 인물에게서 우리는 삶에 희석되어 없는 것처럼 치부하던 일상인들의 불안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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