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과 ‘역적’, 시청률과 호평 왜 따로따로 놀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시청률이 갈수록 치솟는다. 7회 만에 20%를 넘기더니 8회에는 22.2%(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압도적 시청률만큼의 호평은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매회 기억을 잃은 박정우(지성)가 그 망각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단서 하나씩을 얻어가는 이야기 구조는 고구마 전개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게다가 그 박정우를 제거하기 위해 쌍둥이 형을 죽인 살인자이자 그 사장 자리를 꿰찬 재벌3세 민호(엄기준)가 감옥, 그것도 박정우가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는 설정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피고인(사진출처:SBS)'

그런데 어째서 <피고인>은 이런 개연성을 깨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치솟는 걸까. 그건 박정우라는 인물이 겪는 고통에 시청자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여기에 지성의 연기는 절대적이다) 예상을 깨는 스토리가 주는 반전 효과의 힘이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박정우가 같은 감방에서 도와줘 풀려난 성규(김민석)가 갑자기 자신이 그의 딸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알고 보니 그가 차마 그의 딸을 죽이지 못하고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또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반전이라고 해도 재벌3세가 사형수를 직접 제거하기 위해 감옥을 저 스스로 찾아들어온다는 설정의 이야기는 나가도 너무 나간 느낌이다. 즉 이것은 <피고인>이 시청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더 센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의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청률은 오른다. 개연성을 파괴하는 이야기만큼 자극적인 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호평이 따를 수는 없다. 

반면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연일 호평이 쏟아지는 것에 비해 시청률은 10%에서 답보 상태다. 경쟁작이 <피고인>이기 때문에 이 시청률은 물론 <피고인>과의 대결구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적>의 이야기는 그 세세한 면들을 들여다보면 홍길동전을 재해석한 요소들이 많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그런데도 왜 시청률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걸까. 

<역적>은 사극의 틀을 갖고 있지만 굉장히 진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모개(김상중)라는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고 면천되어 잘 살아가는 모습은 체제 반항적인 이 사극의 방향성을 분명히 해준다. 무엇보다 홍길동이 반쪽 양반의 피를 물려받은 서자가 아니라 순수 노비 아모개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역적>이 갖고 있는 계급성을 분명히 한다. 아모개가 길동에게 장수가 되라고 하고, 그의 형인 길현에게는 과거시험을 보라고 하지만, 그들이 모두 이를 거부하고 방물장수가 되고 아버지 일을 돕는다는 이야기도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드라마의 의지처럼 읽힌다. 

그래서 <역적>은 요즘 같은 시국에 더 많은 호평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금수저 흙수저 하지만 흙수저들이 금수저의 시스템에 편입되기보다는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청자들을 공분케 하는 악역으로 등장한 참봉부인 박씨(서이숙)의 면면들은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충”을 내세우며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아모개와 그 식솔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현재의 ‘애국’을 내세워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역적>은 이처럼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들과 그 속에서 시스템을 거부하고 스스로 역적이 되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현재의 시청자들로 하여금 호평을 쏟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시청률이 따라주지 않는 건 아무래도 사극의 주시청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수적인 장년층들에게는 드라마가 너무 리버럴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호평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많지만, 역시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이란 보수적인 장년층의 힘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보수화되어버린 MBC의 이미지 역시 <역적>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이다. 

시청률은 <피고인>이 가져갔지만 호평은 <역적>에 쏟아진다. 물론 완성도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피고인>도 <역적>도 근본적으로는 시대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고한 이들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고초를 겪는 상황이 어째서 현대극인 <피고인>이나 사극인 <역적> 모두에서 등장하고 있을까. 시청률과 호평은 따로 놀고 있지만 두 드라마의 정서적 지반이 비슷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도전>, 당신은 정도전인가 정몽주인가

 

역심인가 민심인가. 썩어 빠진 조정을 쇄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정도전(조재현)이 오로지 생각하는 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다. 그는 백성들을 위해서 잘못된 나라를 뒤집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한다. 그것은 민심이기도 하지만 또한 역성혁명이기도 하다.

 

'정도전(사진출처:KBS)'

충심인가 타협인가. 한편 정도전과 맞서는 정몽주(임호)는 그래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혁은 하되 그 개혁 또한 나라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 역성혁명이란 민심을 빙자한 정치적인 야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려에 대한 충심이기도 하지만 또한 타협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도전이 혁명을 위해 꺼내놓은 카드는 사전을 혁파하겠다는 전제 개혁이다. 가진 자들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려는 것. 이것 때문에 스승인 이색(박지일)과 그는 날선 대결을 벌인다. 결국 이색을 탄핵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를 반대하는 정몽주와 철회는 없다는 정도전이 다시 맞선다.

 

삼봉은 지금 정치를 포기하고 전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소임은 절충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공격을 서슴지 않는 것은 야만이란 말입니다(정몽주).” “정치의 소임은 세상의 정의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수백 년 간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밥버러지들과 절충이라뇨. 야합이고 불의이며 백성들에 대한 배신입니다(정도전).”

 

KBS 주말사극 <정도전>에서 정도전과 정몽주가 대립하는 이 장면들은 무려 6백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역사지만 지금 현재 우리네 현실과 고스란히 맞닿아 또 다른 울림을 만들어낸다. 비단 옷을 입고 있는 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배고픈 걸인들의 모습이 과거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정도전이 그 걸인들과 길바닥에 앉아 만두를 나누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그것이 그토록 대중들의 마음을 사무치게 한 것은 현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은 어느 순간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고 몇몇 가진 자들의 배만을 불리게 해주며 거짓말을 일삼으니 국민이 국가를 국가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정도전>은 끝까지 고려를 선택하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 정몽주와, 국가가 아닌 백성을 선택해 조선을 세운 정도전을 대립시킨다. 이 둘의 설전은 그래서 지금 현재 국가냐 국민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립을 환기시킨다. 한쪽에서는 그래도 애국을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힘겨운 현실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국민을 말한다.

 

역사책을 열어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극화한 정통사극 <정도전>이 이토록 대중들의 반응을 얻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막힌 과거와 현재의 조우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결국 현재에 의미 있는 과거를 찾아내는 일이 아닌가. 국가인가 국민인가를 묻는 <정도전>의 질문은 그래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도전인가 정몽주인가.

<정도전><기황후>, 비교대상일까 아닐까

 

KBS 주말사극 <정도전>의 현장 공개에서 서인석은 요즘 퓨전 사극들도 많이 나오고 그런 작품들이 사랑받고 시청률이 나오다 보니 그것이 정통인양 흘러간다. 시청률만 높으면 작품성은 어떻든 성공한 작품으로 본다. 반면 시청률이 낮으면 대접을 못 받는다. 가치관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기황후> 같은 퓨전사극을 겨냥한 발언이다.

 

'정도전(사진출처:KBS)'

<정도전>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서인석의 발언에도 묻어나듯이 정통사극이다. 역사 자체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는 사극. 물론 정통사극이라고 해도 일종의 해석이나 관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이것은 역사 자체도 그렇다. 역사란 누군가의 사관이 바탕이 된 기록이 아닌가. 그러닌 이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정통사극 역시 지금의 현재적 관점으로의 재해석은 당연한 일이다.

 

<정도전>의 현재적 관점은 흥미롭다. 여말선초의 상황에서 주로 우리네 사극들이 포착했던 인물은 이성계나 이방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굳이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 자체가 현재적 관점을 드러낸다. 누가 대권을 잡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잡더라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이것이 정도전이 꿈꾸던 세계다. 그는 민초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고려든 조선이든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 관점은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공감을 줄 것이다. 대선 후 공약처럼 달라진 적이 과연 있었던가.

 

<정도전>의 비교점으로 제시되는 <기황후>가 비슷한 시기인 고려 말 상황을 그리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 비슷한 시기에 기황후라는 인물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래서 정도전을 선택한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그렇다면 기황후는 현재적 관점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기황후라는 인물은 역사적으로는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까지 오르는 그 과정은 드라마틱하지만 역사적으로 기황후는 고려를 농단하고 침탈하기까지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기황후>는 그 인물 선택 자체가 맹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황후>의 현재적 관점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드라마적인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여성사극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기황후>의 핵심적인 이야기는 여성의 성장드라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션 구조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안에는 멜로 역시 빠질 수 없다. 실제로 <기황후>는 승냥(하지원)과 황제 타환(지창욱)의 멜로와 연철(전국환)일가를 몰락시키기 위한 지략 대결이 내용의 대부분이다. 역사적 사실이 거의 배제된 이 드라마는 마치 게임이나 멜로드라마 같은 이야기라는 점이다.

 

따라서 <기황후>를 과연 사극으로 볼 수 있느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사극의 범주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옛이야기를 사극으로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사극으로 보는 관점이다. 물론 여기서 전자는 <기황후> 같은 퓨전사극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정도전> 같은 정통사극을 말하는 것이다. 퓨전사극이나 정통사극 모두 사극이라는 단어를 붙였지만 그 사극의 의미는 이토록 다르다.

 

흥미로운 건 퓨전사극과 정통사극 하면 늘 공식적으로 분류하곤 했던 퓨전은 진보적이고 정통은 보수적이라는 틀을 최근 <정도전><기황후>가 뒤집고 있다는 점이다. 퓨전사극이 진보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역사가 결국은 승자들의 기록이라는 관점과 맞물려 있다. 즉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민초들의 이야기를 상상력을 통해 다룬다는 점은 퓨전사극이 진보적인 뉘앙스를 풍겼던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기황후>는 그 행보가 거꾸로 되어 있다. 민초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승자가 된 권력자의 이야기를 미화하는 느낌마저 주기 때문이다. 반면 <정도전>은 정통사극을 보여주면서도 대단히 진보적인 정치의 일단을 보여준다. 주말 저녁 KBS 사극이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시청층을 겨냥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결국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를 가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정통사극이냐 퓨전사극이냐가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일 것이다. <정도전>은 그래서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얘기한다. 반면 <기황후>는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의 몰입을 추구한다. 이 두 드라마를 보는 관전 포인트는 같은 사극이라는 이름을 붙였어도 이렇게 다르다. 물론 호불호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동안 역사를 뒤집어 조명되지 않던 민초들의 삶을 보여주던 퓨전사극의 그 진보성이 그리운 건 왜일까.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45)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34)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109,787
  • 129755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