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짧아도 묵직한 여운으로 남은 까닭

우리가 희망하는 언론이 이런 것이 아닐까. tvN 수목드라마 <아르곤>은 아쉽게도 8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끝을 맺었지만 여러모로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엔딩까지 바른 언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줬다. 

'아르곤(사진출처:tvN)'

미드타운 비리 보도에 대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이 됐던 건 그것만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미드타운의 건물이 붕괴되고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현장소장을 희생양 삼아 넘기려는 이들. 그들은 정관계와 경제계, 검찰, 언론까지 뒤얽힌 게이트로 결국 부실공사로 인해 미드타운이 붕괴된 원인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았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한다. 멀게는 성수대교 붕괴와 삼품백화점 붕괴부터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그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비리가 누적되어 만들어진 참담한 결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사고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 데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했던 언론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서다. 언론 또한 게이트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드타운 비리를 보도하려 하자 HBC 사장이 나서서 모든 방송들을 사전 검열하려 한다. 그리고 아르곤은 방송 자체가 중단됐고, 기자들은 아르곤 스튜디오 출입이 금지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미드타운 건설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김백진(김주혁) 역시 자기감정에 휘둘려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 일에 일조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실을 보도하면 그가 지탄받을 일은 뻔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언론상 시상식장에서 자신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과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언론이 잘못한 것은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제대로 고치고 가야 한다는 그 소신을 지킨 것. 결국 그의 자성으로부터 미드타운 비리는 밝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한 적폐청산의 문제가 결국은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을 전제로 한다는 걸 <아르곤>은 보여줬다. 물론 그는 방송사를 떠나야 했지만. 

<아르곤>은 진실을 보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섬양식품의 신제품 분유로 인해 아기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런 거대기업과 맞서는 일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 보도를 주도했던 신철 기자(박원상)는 내부고발을 한 직원의 자살로 인해 오히려 강압적으로 취재를 한 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하지만 그 절망감을 딛고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그래도 꿋꿋이 진실을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는 김백진의 소신이었다. 그는 섬양식품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보도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것이 설혹 자신들의 과오를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언론을 소재로 했고 또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르곤>이 달랐던 건 보다 치열한 방송보도의 현장을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은 바로 김백진이었다. 그 같은 인물이야말로 우리네 대중들이 원하는 언론인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그는 언론인상을 거부하지만 그래서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에게 마음속으로 상을 주었을 것이다. <아르곤>은 짧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수상한 파트너’, 공적인 일과 사적인 감정 사이

“너는 인질이야. 니가 있어야 범인이 나타났을 때 내가 잡을 수 있지.”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에서 노지욱(지창욱)은 은봉희(남지현)를 자신의 집으로 들이며 그렇게 말한다. 변호사일도 접고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려 마음먹었던 은봉희의 마음이 흔들린다. 노지욱은 어느 날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툭 “너 내 사람 되라”고 했던 것이 진심이라고 말한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누가 봐도 이들은 밀당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인질’이라는 표현은 마치 그들의 동거가 범인을 잡기 위한 공적인 일처럼 만들지만 그건 누가 봐도 동거하자는 말이다. 또 “내 사람 되라”는 말 역시 노지욱이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합류해서 일하자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은봉희에게 ‘내 사람’이 되라는 사적이고 멜로적인 감정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은봉희는 ‘인질’이라는 말에 설렌다. 왜 이렇게 잘 해주냐고 묻자 “인류애”라고 했던 노지욱을 떠올리며 “인류애에서 인질로 발전했다”며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좋아한다. 이것은 <수상한 파트너>가 그리고 있는 멜로의 실체다. 거기에는 사적인 차원의 멜로와 공적인 차원의 일(변호, 진범 찾아 누명 벗기)이 겹쳐져 있다. 멜로적 상황이 나올 때마다 인물들은 그것이 그저 공적인 일일 뿐이라고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그 공적인 일 안에서는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적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또 한 축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적 편견의 문제나 진실과 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공적 사안과 사적 감정들은 뒤엉킨다. 은봉희를 아들의 살인범으로 생각했지만 풀려나게 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지검장 장무영(김홍파)은 그 사적인 감정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하는 은봉희에게 그는 그렇다면 진범을 잡아오라고 말한다. 그는 누구든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 셰프의 살해 용의자로 붙잡힌 택배 기사가 은봉희를 변호사로 지목하고, 그녀가 그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을 때 그녀 역시 공적인 선을 넘어 사적인 감정으로 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한다. 그 택배 기사의 상황이 자신이 과거 살인자로 몰려 있을 때의 처지와 너무나 똑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때 노지욱이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주었듯이 그녀는 그에게 동아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에게 노지욱은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말한다. 장무영도 또 은봉희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사적인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드라마의 실체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노지욱과 은봉희는 사건을 맡아 변호를 하면서도 멜로적 상황들을 놓치지 않는다. 택배기사의 변호를 하면서도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사건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얼굴이 아니라 사랑에 이제 막 빠지려는 연인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멜로적 상황을 일로서 슬쩍 감추는 그 방식은 오히려 이 멜로의 감정들은 더 강화시키는 힘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진짜 살인범을 잡아 누명에서 벗어나는 목표를 갖고 있고, 또한 억울한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의 변호를 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이러한 멜로적 상황들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게 만든다. 공적인 입장과 사적인 감정들이 겹쳐져 일과 사랑을 명쾌하게 가르지 못하고 혼재시키는 상황들은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완벽하지 못하고 어딘지 부족하지만 그것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것. 

그래서 <수상한 파트너>에는 그 흔한 갑을관계조차 혹은 절친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불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친구들 관계에서조차 가해자와 피해자로 선악이 구분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노지욱의 모친인 홍복자(남기애)가 운영하는 피자집에 은봉희의 모친인 박영순(윤복인)이 아르바이트로 들어오자 홍복자는 이른바 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전형적인 상황 속에서도 박영순은 결코 만만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갑과 을의 상황은 마치 친한 친구들이 툭탁대는 모습처럼 유쾌하게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오며 절친으로 지냈지만 노지욱의 여자친구와 불륜을 저질러 이제는 멀어져버린 지은혁(최태준)을 대하는 노지욱의 감정은 미움과 분노와 더불어 우정이 겹쳐져 있다. 그래서 노지욱은 지은혁을 결코 앞으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지만 그들을 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저지르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다. 

<수상한 파트너>는 온전히 로맨틱 코미디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또 진범을 찾아내고 그래서 누명을 벗는 법정드라마로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부분이 엮어져 만들어내는 공적인 일들과 사적인 감정들의 혼재와 그 안에서 슬쩍 슬쩍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쩌면 이 드라마만이 가진 특별한 재미가 아닐까. 그 부족하고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하는 모습들이 그토록 예뻐 보일 수가 없으니.

‘귓속말’, 첫 회만 봐도 우리 시국의 밑바닥이 보인다

“법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도적을 법비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법률회사 태백은 법비라고 하더군요. 도적떼나 되려고 법 배운 게 아닙니다.” 대놓고 시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라도 하려는 걸까. SBS 새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첫 회는 현 탄핵 시국을 맞은 우리네 현실의 적나라한 시스템을 화두로 던졌다. ‘법비(法匪)’. 지금 이 단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 치면 우리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이른바 ‘법꾸라지’로 지칭되는 이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귓속말> 첫 회 대쪽 같은 판사 이동준(이상윤)은 자신을 회유하려는 로펌 태백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바로 이 ‘법비’라는 표현을 썼다. 

'귓속말(사진출처:SBS)'

법비 로펌 태백은 정관계까지 광범위하게 권력을 뻗치고 있는 시대의 악. 태백의 최일환은 방산비리가 드러날 위기에 놓이자 그 진실을 추적하던 기자를 살해하고 그의 선배 해직기자였던 신창호(강신일)를 살인범으로 몰아 사건을 덮으려 한다. 그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증거도 나왔지만 태백의 힘은 막강하다. 판결을 맡게 된 대쪽 같던 판사 이동준마저 그 신념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만큼. 판사 임용을 저지하고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겠다는 위협 앞에 이동준은 결국 소신을 저버린다. 

이 과정에서 신창호 살인죄로 형이 확정되고, 그의 딸인 형사 신영주(이보영)은 형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법이 무고한 서민들을 지켜주기는커녕, 권력자들이 마구 휘두르는 칼날이 되어 서민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현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네 참담한 법비들이 활개치는 현실이 드러난다. 아버지의 도움마저 물리칠 정도로 소신 있던 이동준 판사가 결국 무너지는 그 과정은 우리네 사회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 안 듣는 소신 있는 판사는 재임용 심사에서 누락시켜버리고, 그 싹마저 밟아버리기 위해 사찰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선 일을 판사의 권력 남용으로 몰아세운다. 갖가지 비윤리적인 일들을 해온 법비는 이동준 같은 판사를 끌어들여 이미지 세탁을 하려 한다. 위협과 함께 회유책도 따라온다. 태백에 무릎을 꿇으면 이동준을 사위로 삼고, 그의 아버지를 대통령 주치의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소신을 버리는 순간, 권력을 쥐게 되는 시스템의 구조. 게다가 충격적인 건 이들의 악행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까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악은 성실하다.” 탄핵 시국 속에서 법망을 피해가려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는 그 과정들 속에서 대중들은 이 대사가 실감났을 게다. <귓속말>이 첫 회에 보여준 건 그래서 이토록 성실하게 악행을 준비하고 처리해가는 그 우리네 현실의 밑바닥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을 첫 회에 드러낸 이유 또한 명백하다. 그 곳에 내버려져 더 이상 잃을 것조차 없는 신영주 같은 인물들이 온 몸을 던져 법비와 대항해가는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귓속말>이라는 제목에 담겨진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거꾸로 우리네 현실이 이런 소소한 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이 없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저들이 방산비리를 일삼으며 자신들의 권력의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소소한 서민들이 쓰러져 나갔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듣지 못하고 그저 작은 소리로 치부하는 현실. 하지만 그 작은 귓속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우리는 또한 이번 시국에서 느끼지 않았던가. 드라마 <귓속말>이 보여줄 시국과의 한판 승부에서 과연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해빙’, 얼었던 것이 녹으면 진실은 과연 드러날까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봄이 생각보다 일찍 오면서 예년보다 한강물이 일찍 해빙되었다는 소식이 깔리며 카메라는 이전에는 어떤 집들이 있었을 지도 모를 공지에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길을 따라 가다가 어느 한강변에서 불쑥 솟아오른 시체를 보여준다. 얼굴과 팔다리가 잘려져 몸통만 둥둥 떠오른 시체는 그것이 본래 사람의 육신이었는지가 애매할 정도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영화 <해빙>의 오프닝은 얼었던 것이 녹아 시체가 떠오른다는 그 사건이 던져주는 이미지와 그 의미들로부터 시작한다. 

사진출처:영화<해빙>

승훈(조진웅)은 이혼 후 미제사건으로 유명한 경기도의 신도시에 있는 선배의 병원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가 지내고 있는 건물의 집주인인 정육점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이 의심스럽다. 성근의 아버지인 정노인(신구)이 자신에게 내시경을 받으며 가수면 상태에서 내뱉은 토막살인을 의심케 하는 이야기가 그 의심을 촉발시킨다. 그는 필리핀에서 왔다가 집을 나가버렸다는 성근의 전 부인이 과연 가출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 의해 도륙당한 것인지를 의심한다. 승훈은 정육점에서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것이 비죽 뛰어나와 있는 비닐에 쌓여진 어떤 물건을 본 후 그것이 머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목 잘린 여인을 정노인과 성근 부자가 토막내는 악몽에 시달린다. 

<해빙>은 이 낯선 곳으로 이주해와 살아가고 있는 승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영화의 중반 이후까지 관객들은 승훈의 관점에서 이 살벌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신도시, 정육점의 사건들이 공포영화 같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히스테리를 갖고 있는 이혼한 승훈의 전 부인과 아들이 끼어들면서 긴장감은 한층 더 커지고,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미연(이청아)이 프로포폴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건은 더 복잡해진다. 게다가 승훈에게 자꾸만 나타나는 전직형사 조경환(송영창)은 자신이 과거부터 이 마을에서 벌어진 미제사건을 지금껏 추적하고 있다고 말한다. 승훈의 시점에서 관객들에게 사건은 명백해 보인다. 분명 성근과 정노인이 연쇄살인을 벌인 범인들이라는 것.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승훈의 시점으로 나가다가 그가 경찰서 취조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점을 바꿔놓는다. 즉 승훈이라는 사람을 다시금 바라보는 형사의 시점으로 바뀌는 것. 그런데 이 형사의 시점으로 보면 승훈은 일종의 정시착란을 겪고 있는 정신질환자다. 조경환이 사실은 형사가 아니고 자신이 탐독했던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이며, 실제로는 자신의 선배이자 정신질환 담당의였던 남인수였던 것. 결국 그 많은 공포스런 사건들은 사실상 승훈의 망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사실 아내를 죽였고 미연마저 죽이려 했었다는 증언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혹시 자신이 망상 속에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영화 <해빙>은 한 가지 일관된 시점을 유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당혹감과 불편함을 줄 수밖에 없다. 믿었던 것이 깨지는 그 순간은 극중 주인공인 승훈이 겪는 “아닐 거야”라는 그 부정을 똑같이 관객들도 공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점은 맨 마지막에 가면 또 다시 뒤집어진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승훈의 망상일 뿐이었다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차량용 블랙박스에 찍혀진 영상으로 승훈의 아내를 살해하는 정노인이 포착되고 그것이 익숙한 듯 그 노인에게 항변하다 결국 시체와 블랙박스를 치워버리는 성근의 모습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해빙>이 주는 당혹감은 그 진실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가 진짜 살인자이고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알 수 없고 심지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승훈마저 어쩌면 내가 저지른 일인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왜 이렇게 시점의 변화를 통해 모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단서는 시작에 담겨져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오히려 숨겨져 있다. 왜 굳이 ‘해빙’이라는 모티브를 가져왔고 ‘덮여진 진실’이 드러난다며 사실은 드러난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모호해지는 상황을 보여줬을까. 영화가 맨 처음 보여준 지금은 말끔하게 밀어내져 버린 공지는 어쩌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쩡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 곳이 그런 곳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직접적인 가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밀려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여러 차례 밀어내지고 덮이고 다시 세우고 하는 것들을 반복하다보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찾아내기 어려워지는 지점에 이르고 만다. 그것이 강물이 녹아 시체가 떠오른다고 해도 그 아무런 단서가 남아있지 않아 진범이 누구인지를 찾아내기 어려운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분명한 건 시체가 있다는 사실이고, 공지가 밀어낸 자리에 아파트들이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그 사태를 만든 이들이 아마도 이런 상태가 아닐까.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라고 그들은 생각할 지도 모른다. 수없이 여러 사람들이 개입하고 그들의 행위들이 중첩되고 겹쳐지면서 그것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자신이 저질렀지만 그것을 까무룩 스스로 지워버리는 망상 속으로 숨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그들 가해자들에게만 생기는 증상이 아니다. 그건 피해자들 역시 나도 모르게 공모한 건 아닌가 하는 죄의식을 만들어낸다. 

<해빙>은 그래서 마치 얼음이 녹으면 진실이 드러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풀어지면서 더 복잡해지는 사건의 양상들을 여러 시점의 교차와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는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 복잡해지니 말이다. 하지만 이 복잡하고 불편한 이야기가 우리네 현실에 건드리고 있는 지점은 예사롭지 않다. 모든 게 명쾌해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도 명쾌한 것이 없게 되어버린 현실을 <해빙>은 공포에 가까운 시점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봄이 온다고 물이 녹는다고 진실이 모두 드러나기에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멈추면 안되겠지만.

‘재심’, 진실에 대한 갈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3년 6월 그리고 2015년 7월 이렇게 2회에 걸쳐 이른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뤘다. 그 사건은 이미 2000년에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살인죄로 검거된 15세 소년은 재판에서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구형받았고 결국 10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미 다 지나가버린 사건을 다시 들고 온 건 한 소년의 청춘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그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함이었다. 형사들의 강압수사로 모텔에 끌려가 몇 시간 동안 죽도록 맞고는 어쩔 수 없이 쓴 자술서 한 장이 만든 엄청난 비극. 

사진출처:영화<재심>

영화 <재심>은 바로 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시 끄집어낸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시금 영화로 끄집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는 점은 영화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재심>은 이 실화에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덧붙여 극화함으로써 사건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도 충분히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재심>이 영화를 통해 담고자 하는 건 저 <그것이 알고 싶다>가 처음 이 지나간 사건을 다시금 꺼내온 의도와 같다. 그것은 2000년에도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됐던 2013년, 2015년에도 또 지금 현재 2017년에도 여전히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는 걸 말해준다. 극중 변호사인 이준영(정우)과 피해자인 조현우(강하늘)가 던지는 질문,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그것이다. 

<재심>이라는 제목에 담겨져 있지만 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다시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이미 구형도 끝나고 감옥에서 수감생활도 마쳤지만 애써 그 고통스런 세월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여전히 진실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묻어둔 이들은 그 대가로 얻은 권력을 여전히 쥐고 살아간다. 다시 들여다보려는 이들로부터 그 진실을 다시 숨기려 권력을 이용하면서.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이렇게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가던 이준영과 조현우 모두 그 진실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삶을 찾게 된다는 점이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 일종의 서비스로 의뢰인의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의뢰인이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던 이준영. 그리고 진실을 묻어두고 심지어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한 후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아온 조현우. 그들은 그 묻어준 진실을 다시 꺼내려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구원을 받는다. 웃음이란 걸 잃고 살아가던 그들이 진실 앞에 연대하고 비로소 웃음을 찾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사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재심>을 보다보면 새삼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당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추적하던 담당PD는 강압수사를 했던 담당형사를 찾아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때까지도 버젓이 형사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인터뷰를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정식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대해 PD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경위님께서 정식절차를 말씀하십니까? 최영진(가명)을 정식절차에 의해서 수사하셨습니까?” 아무 답변도 하지 못하는 담당형사가 버럭 화를 내자 PD는 계속해서 묻는다. “모텔에는 왜 데려가셨습니까?” “왜 구타하셨습니까?”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건 이런 의혹들에 대한 계속된 질문이 아닐까. <그것이 알고 싶다>가 던진 질문이 한 억울한 소년의 삶과 잘못된 법 정의를 바꾸어 놓았듯이, <재심>은 그 이야기를 다시금 가져와 지금도 어딘가에 묻혀지는 진실로 인해 고통 받는 현실이 바꿔지기를 꿈꾸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푸른바다>의 눈 먼 어른은 진실에 눈 뜰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SBS <푸른바다의 전설>이 진실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몰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마주친 허준재(이민호)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시력을 잃어가며 죽어가고 있는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여기서 뭘 보고 계신 거냐구요? 여기 더 있다간 아버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구요.”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허준재의 이 외침은 어째 예사롭지가 않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며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란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심청전의 심봉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캐릭터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또한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표상하는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일중은 아들의 그런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고 사기 같다. “여긴 내 집이야. 내 집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한다고 그래.”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기에 자신이 거기 감금되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허일중의 비서 남부장(박지일)이 사고를 당한 것도 또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새 어머니 강서희(황신혜) 때문이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니가 지금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10년 만에 집에 들어와서 한다는 짓이 어머니를 모함하는 거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허일중 자신의 과거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 아버지 선택은 잘못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렇게 허준재는 얘기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니가 뭔데 그걸 판단해. 내 선택이야. 내 인생이고. 잘못 되지 않았어. 난 행복했다. 겨우 시력이 조금 떨어지는 걸 가지고 내 선택이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이 눈, 수술하면 다 나아져. 내 몸 상태가 나빠서 수술 못하고 있을 뿐이야. 수술만 하면은.” 그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은 강서희에게 농단된 삶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눈앞에 있는 저만 못 보시는 게 아니네요. 아무것도 못 보시네요. 아버지 인생이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지 볼 생각조차 없으시네요.” 허준재의 이 말은 사실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지 못하는 허일중은 진실을 모른다기보다는 진실을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무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애써 부정한다. “17년을 같이 산자신이 강서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고 싶다.

 

어째서 이들의 대화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을까. 허일중이라는 눈 먼 어른의 캐릭터를 통해 담아내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일부 눈 먼 어른 세대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눈 앞에 이미 저들에 의해 농단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일부 눈 먼 어른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않고 생각했던 그들.

 

하지만 그렇게 진실을 바로 바라본다는 건 실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푸른바다의 전설>은 에둘러 말해준다. 그 선택은 분명 잘못됐었지만 그걸 인정하는 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한 멀어가던 눈을 다시 뜰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과연 <푸른바다의 전설>은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그들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낭만닥터>, 갈수록 팽팽해지는 까닭

 

갈수록 더 팽팽해진다. 많은 드라마들이 초반에 팽팽한 긴박감을 유지하다가 중반을 넘기면서 흐지부지되고 결국 용두사미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걸 가장 잘 말해주는 건 시청률 곡선이다. 첫 회 9.5%(닐슨 코리아)에 시작했지만 8회 만에 20%를 넘겼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더니 17회에서는 25.1%를 기록했다. 이제 남은 건 20회까지 3회 분. 어쩌면 미니시리즈에서는 기록하기 힘들다는 30% 시청률 돌파도 그리 불가능한 수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 구조는 매 회 하나의 에피소드로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전체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런 점은 특별히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은 시청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저 한 편의 이야기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동시에 이를 계속 본방사수해온 시청자들 역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갈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성을 갖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강동주(유연석). 아버지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죽게 되자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냈던 소년 강동주를 떠올려보라. 그는 어떻게든 성공해서 힘 있는 자가 되어야 복수도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강동주는 그 때의 강동주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 김사부(한석규)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는 생각에까지도 이르고 있다. 신 회장(주현) 수술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었지만, 당장 수술이 위급한 환자를 외면하지 않고 김사부 모르게 수술을 시행한 그가 아닌가. 그에게 김사부가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자 깜짝 놀라는 강동주는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변화했다는 걸 잘 모르는 눈치다.

 

강동주의 성장담과 함께 그가 첫 회부터 연정의 마음을 드러냈던 윤서정(서현진)과의 사랑이야기 역시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물론 드라마에서 이 멜로 부분은 다른 극적 상황들의 이야기에 비해 그리 강조된 건 아니었다. 그저 드라마를 보는 또 한 축의 재미로서 달달한 그들의 멜로가 조금씩 깊어가는 걸 보여줬을 뿐. 하지만 이 역시 드라마를 애청해온 시청자들이라면 계속 몰입해서 보게 되는 유인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갈수록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중요한 에피소드는 역시 김사부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 어떤 의료사고가 벌어졌고 거기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변방으로 쫓겨나야 했던 김사부의 과거. 17회에 이르러 기자가 등장하고, 드디어 그 김사부의 과거 이야기가 본격화되며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시청률이 폭발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금 같은 시국에 특히 진실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용주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로 살아가는 그 캐릭터는 애초부터 진실의 문제를 화두로 담고 있는 인물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냐고 추궁하는 기자에게 오히려 진실을 알면 세상에 전할 용기는 있냐?”고 되묻는 김사부의 일갈은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걸 제대로 전하고 그 진실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매 회가 완결성 있는 이야기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고, 그 회의 연결이 인물들의 성장드라마와 멜로, 그리고 진실에 접근해가는 점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낭만닥터 김사부>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 힘을 내는 이유다. 물론 30% 시청률이 결코 쉬운 수치는 아니지만 어쩌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진실의 은폐, <솔로몬의 위증>이 건드리는 것들

 

저희 반에 빈 책상만 네 개예요. 그게 어른들의 보호고 도움이에요? 그럼 전 안 받을래요. 필요 없어요.” 고서연(김현수)이 말하는 빈 책상 네 개. 어째서 이 빈 책상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더 큰 잔상으로 남을까.

 

'솔로몬의 위증(사진출처:JTBC)'

JTBC 금토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은 학교에서 의문의 추락사를 한 학생 이소우(서영주)로부터 시작한다. 평소 그를 괴롭혀온 최우혁(백철민)과 그 친구들에 대한 미심쩍음이 있었지만 학교는 서둘러 이를 덮으려 하고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사실 학내 폭력사태나 혹은 자살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걸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학교 이야기는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너무나 많이 읽어온 것들. 그래서 <솔로몬의 위증>은 일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어쩐지 우리의 이야기 같은 현실감을 준다.

 

물론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평소 최우혁과 그 친구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이주리(신세휘)가 그를 따르는 박초롱(서신애)과 함께 최우혁이 이소우를 죽였다는 고발장을 만들어 서연의 집 앞에 놓아두게 되고, 이를 입수한 언론이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터트리자 두려움을 느낀 초롱은 주리와 말다툼 끝에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된다. 즉 한 학생이 죽고, 다른 한 학생은 혼수상태가 되며 다른 학생은 그로 인해 심각한 충격을 받는다. 물론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고서연은 친구들의 책상이 하나씩 비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학교에서 벌어진 한 학생을 둘러싼 추리극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 고발극에 가깝다. 드라마가 고발하려는 건, 한 학생의 죽음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그 진실을 제대로 알려 하기보다는 자기들 유리한대로만 처리하려는 어른들이다. 그 어른은 다름 아닌 학교와 경찰과 언론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학교는 그럴 듯한 추모식을 거창하게 열었지만 그건 죽은 학생을 진심으로 추모하려하기보다는 서둘러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함이었다. 경찰은 고발장을 보게 된 후 이 사건으로 갖게 된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심리 상담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아이들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한 구실이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박기자(허정도)흥미에 더 관심이 많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보도를 내기 위해 그는 금수저 천지인 정국고에서 위선과 허위를 폭로하면서 정의를 수호하는” ‘정국고 파수꾼이라는 가명의 SNS 계정을 추적하려 한다.

 

박기자는 본래 사람은 자기 유리한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학생들은 가만있는 게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2학년은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나이라며 너 네가 어른들 도움 없이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연은 안다.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라고 했지만 결국 자기 반에 빈 책상만 늘어가게 됐다는 것을.

 

결국 <솔로몬의 위증>은 그래서 이렇게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거나 혹은 자기들 유리한대로만 하려는 어른들에 대항해 아이들이 직접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담는 드라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네 부끄러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부끄러운 현실들을 염두에 둔다면 아이들의 이런 반발에 심정적 지지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래서 <솔로몬의 위증>은 광화문 촛불 집회 현장에 나온 학생들이 또박또박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던질 때 어른들이 갖게 되는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것들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특히 교실에 빈 책상을 볼 때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아이들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낭만닥터>, 의사의 윤리를 묻다

 

병사.’ 사망진단서에 적혀 있는 이 글자가 예사롭지 않다. 군대 내에서의 구타가 의심되는 환자임에 분명하지만 거대병원 원장인 도윤완(최진호)은 주치의인 강동주(유연석)에게 병사라 적힌 사망진단서를 내밀었다. 그 사망진단서 맨 밑에는 강동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거기에 사인만 하면 환자는 병사로 처리되어버린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이런 양심 없는 행위에는 도윤완 원장이 말하는 보상이 따른다. 병원 내에서의 지위나 지원금 같은 것들. 의사로서의 성공을 목표로 갖고 있던 강동주는 흔들린다. 물론 돌담병원으로 오게 되면서 김사부(한석규)를 만나고 진정한 의사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지만 돈과 권력 앞에 그는 여전히 갈등한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의사의 양심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그토록 많은 의문사가 말 그대로 의문사가 되는 건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의혹을 남길 때다. 모든 죽음 앞에는 의사가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 죽음의 사인은 의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릴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런 조작된 사망진단서에 대한 이야기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벌어졌던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대해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가 내놓은 병사라는 사망진단에 의혹이 제기되고 학생과 노조가 나서 해임을 촉구하고 있는 사안이 그렇다. 의사는 이처럼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될 입장에 놓인다.

 

하지만 한 생명 앞에서 종종 그 선택은 윤리가 아닌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음주운전으로 6중 추돌사고를 낸 가해자의 부모가 오히려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 아들의 채혈을 했다는 이유로 윤서정(서현진)을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뻔뻔한 상황. 알고 보니 그 가해자는 강원도 도지사의 최측근이자 도의원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아픈 상처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그들이 그 진상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돈과 법은 심지어 그들이 저지른 일조차 가리는 마법을 발휘한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는 역시 낭만적인이야기를 보여준다. 가해자가 자신으로 인해 다리를 잃게 된 피해자와 가족들을 보고는 그들 앞에 나서 사과하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래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갑질 행태에 대한 사이다 일침을 담는다. “똑바로 쳐다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바로 알아야 반성도 할 거 아니야.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고 다 좋은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윤서정의 이 대사는 드라마 속에서만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드라마 바깥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갑질과 그를 통한 진실 은폐로 또 한 번의 죽음을 안기는 가해자들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외인에 의한 사망이 분명하지만 병사라고 기록하고 사인했던 어떤 이들의 비양심에 대한.

<그알>이 검증한 물대포 위력, 이대로 괜찮을까

 

“15바라는 압력은 주요 선진국들보다 낮습니다.” 지난 9월 국정감사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그렇게 살수차의 안전성(?)에 대해 말했다. 직사되는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결국 317일 만에 사망한 백남기씨. 살수차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그래서 기자들도 살수차의 시연회를 통해 그걸 확인하려 한 바 있다. 하지만 그저 물 뿌리는 시늉만 냈을 뿐, 그 위력을 확인하는 실험은 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한 기자가 나서 방패를 달라며 자신이 직접 맞아 보겠다고까지 나섰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사진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실제 살수차의 압력을 그대로 재연해 실험에 들어갔다. 경찰실험의 보고서에는 그 정도 압력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적혀 있었다. 3미리짜리 유리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한 현장 검증은 그 장면만으로도 끔찍했다. 같은 강도인 15바로 맞춰 직수한 물에 고정시킨 책상은 부서졌고, 철제 프레임은 휘어져버렸다. 이를 받치고 있는 4백 킬로의 받침돌 두 개가 넘어가 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나무는 산산조각났고 1.2톤의 벽돌은 순식간에 허물어져 내렸다. 유리가 끄덕 없을 리가 없었다. 3미리 유리는 물론이고 5미리 강화유리까지 훨씬 낮은 수압에도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전직 의경들도 그 직사하는 물대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직사를 당할 경우 버틸 수 없다는 것. 심지어 균형 있는 보도를 위한다며 인터뷰에 임해 물대포는 안전하게 사용된다는 걸 말하던 또 다른 전직 의경도 당시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는 장면을 보더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는 영상을 보고 나서 되게 심각하네요. 저렇게까지 물대포 쏜 걸 본 적이 없어요..”라고 탄식했다. 15바의 강도로 직접 물대포를 맞으면 사람 살이 다 찢어져버린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물대포의 위력을 전제하고 보면 백남기씨가 왜 사망에 이르렀는가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담당주치의인 백선하는 사인을 병사라고 기록했고, 그 원인을 “6일 전부터 있던 급성신부전이라고 말했다. 이 의견을 근거로 명백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경찰측에서 부검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부검이 사인을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덮기 위한 것이라며 유족측이 반발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사실 물대포의 위력을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준 것처럼 현장검증을 통해 미리 보여줬다면 이런 부검 주장이나 사인을 병사로 기록한 것이 얼마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인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본인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입각해 양심적으로 사인을 병사라 기록했다고 하지만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른 사람의 사인이 급성 신부전증이라는 걸 누가 쉽게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2005년 쌀 개방 반대를 했던 농민대회에서 진압 과정에 자신의 방패에 의해 돌아가신 분에 대해 뒤늦게나마 사죄의 뜻을 전한 당시의 의경을 인터뷰했다. 당시 공격명령이 있었고 의경은 명령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진압하는 과정에서 방패에 찍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 때로 돌아가면 가족들한테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는 당시 경찰의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사건이 무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장면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고 남용될 때는 치명적이며 따라서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밝히고 있었다. 공권력에 의해 이유가 어떻든 국민이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사과가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청문회장에서 이용호 국민의당 국회의원은 결과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중태에 이르렀다면 사과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여기에 대해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아닙니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해서 사람이 다쳤다고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한 이후에 해야 되는 것이지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라고 답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현장 검증은 백남기씨의 사인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것 때문에 아직까지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필요하면 국가기관이 해야 할 현장 검증을 일개 프로그램이 하고 있다는 것. 그 검증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건 많은 시청자들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현장검증에 뜨거운 반응을 보내는 이유다. 그것은 또한 앞으로도 또 벌어질 수 있는 살수차를 동원한 진압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안타깝게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사인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그는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루속히 그를 편안히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특유의 그 진실에 대한 궁금증에 접근하기 위해 직접 현장 검증을 하는 방식으로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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