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의 낭군님’, 진지함과 코믹함 다 되는 남지현과 도경수

사실 새로 시작한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의 인물관계도를 보면 그 이야기가 구조가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원수지간인 부모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 첫사랑, 왕세자라는 캐릭터, 몰락한 가문의 여인, 사고로 기억을 잃고 평민이 된 왕세자와 어쩌다 보니 혼인을 하게 된 여인,... 많이 봐왔던 조선시대판 멜로사극의 풍경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하지만 <백일의 낭군님>이 시선을 끄는 건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캐스팅이다. 이제는 아이돌 배우에서 ‘아이돌’ 딱지를 떼도 충분할 만큼 연기의 성장을 보여왔던 도경수와, 사극에서부터 현대극까지 아울러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성장해왔던 남지현이 그들이다. 첫 회에서 두 사람은 아련한 사랑의 감정과 아픈 가족사를 담아내면서도, 특유의 코믹한 설정들을 소화해내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왕세자 이율을 연기하는 도경수다. 시작부터 “불편한 건 나뿐인가”라는 유행어가 될 법한 대사를 반복하며 궁궐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묘한 코믹함을 만들어내는 이 인물은, 동시에 아버지인 왕(조한철)과 갈등하는 모습 또한 드러낸다. 결국 아버지의 사주로 인해 자신이 좋아했던 윤이서(남지현)의 아버지가 역도로 몰려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어머니 역시. 

그래서 궁궐 생활을 하면서 계속 엇나가는 이 왕세자는 아버지를 왕으로 세운 김차언(조성하)의 딸 김소혜(한소희)와 혼인을 맺지만 그를 피한다. 오랜 가뭄이 왕세자가 세자빈과 합방을 하지 않아 생긴 음양의 부조화 때문이라는 신하들의 이야기에, 왕세자는 조선의 노처녀, 노총각들도 모두 혼사를 시키라는 명을 내리지만 그것을 자신이 겪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결국 저잣거리로 나오게 될 그는 자신의 명 때문에 윤이서와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궁궐 내에서 그가 툭하면 내뱉었던 ‘불편함’은 그래서 향후 저잣거리에서 그가 겪을 진짜 불편함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 “얼굴만 번지르르하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내”가 된 그는 악처로 돌변한 윤이서에게 갖은 구박을 받는 존재가 된다. 살짝 비틀어진 관계의 역전이 이 멜로 사극의 코미디적 요소가 된다. 

이율과 윤이서는 각각 저잣거리의 이름을 갖고 있다. 원득과 흠심이라는 이름. 그래서 그들은 100일 간 일종의 가상부부 생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때론 가상이 현실이 되기도 하는 법이라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날 멜로는 기대되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들이 그 저잣거리의 서민적 삶을 통해 진솔한 사랑을 피워내고, 자신의 이름인 이율과 윤이서로 돌아왔을 때 바뀌게 될 변화들 또한.

많은 것들이 이미 예상되는 범위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시선을 끄는 건 역시 남지현과 도경수라는 믿고 보는 배우들 덕분이다. 그들이 만들어갈 코믹하고 절절한 멜로 사극이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해를 품은 달> 같은 대중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박보검-김유정, 김수현-한가인 같은 그림 같은 커플의 탄생이 될 테니.(사진:tvN)

뻔한 ‘훈남정음’과 울림 있는 ‘이리와 안아줘’의 희비를 가른 건

SBS <훈남정음>과 MBC <이리와 안아줘>가 같은 날 종영했다. 두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훈남정음>은 훈남(남궁민)과 정음(황정음)이 결혼을 약속했고, 정음은 훈남의 도움을 받아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갔다. <이리와 안아줘>는 지옥 같던 살인자 윤희재(허준호)가 납치한 한재이(진기주)를 채도진(장기용)이 구해내고, 자기 같은 괴물로 아들을 만들려는 윤희재의 도발 앞에서 윤나무는 스스로가 다르다는 걸 증명해냈다. 

두 드라마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종영을 맞는 두 드라마의 입장은 완전히 다를 법하다. 애초의 기대작이었던 <훈남정음>과 별 기대가 없었던 <이리와 안아줘>가 거둔 성과가 너무나 상반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작 전 두 드라마의 액면만을 보면 당연히 <훈남정음>에 기대감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연기력으로 차곡차곡 팬덤을 만들어온 배우 남궁민에 그와 과거 <내 마음이 들리니>로 연기호흡을 맞췄었던 황정음이 아닌가. 반면 <이리와 안아줘>의 장기용과 진기주는 사실상 신인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기경력이 적었다. 

이런 캐스팅에 대한 상반된 기대감은 두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첫 회에 <훈남정음>이 5.3%(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했던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3.1%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보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희비쌍곡선을 그었다. <훈남정음>은 2.1%까지 떨어지며 역대 SBS 미니시리즈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5.4% 시청률로 마무리했다. 

물론 2%나 5%나 지상파 수목드라마로서는 충격적으로 낮은 시청률이지만, 두 드라마의 체감이 달리 느껴지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훈남정음>은 첫 회 방영된 이후부터 줄곧 너무 뻔하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이 지적받았다. 한강다리에서 자살을 하는 장면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은 대목으로 논란까지 이어지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가진 가벼움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희대의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요소를 통해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새로운 멜로 구도로 멜로 그 이상의 울림 있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살인자의 아들은 결국 그 악을 계승받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이 끝까지 이어졌다. 특히 엔딩에서 이제 모든 과거의 아픈 고리들을 끊어낸 채도진과 한재이가 12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머물러 있던 어린 자신들을 껴안아주는 장면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는 스릴러 요소를 더한 멜로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휴머니즘이라는 더 큰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는 것.

작품의 희비를 가른 건 이런 가벼움과 진중함의 차이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저 가볍기 만한 뻔한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더 이상 어렵다는 걸 <훈남정음>은 예시적으로 보여줬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재치 있고 코믹한 대사들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울림이 없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한계였다. 물론 남궁민의 연기는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였지만, 황정음의 늘 봐왔던 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연기를 잘해도 새로움이 없다면 시청자들에게 호평받기 어렵다는 것.

한편 장기용과 진기주는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아직 무르익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신인 배우로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보인다. 물론 이 작품은 허준호의 악마 같은 괴물 연기가 드라마 전체의 힘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용의 몰입은 이 배우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윤현무 역할을 연기한 김경남이나 역대급 눈물연기를 소화해낸 엄마 채옥희 역할의 서정연 같은 배우들이 돋보였다. 

워낙 많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들이 방영되었던 터라 이제 시청자들은 그 작품만의 독특한 새로움이 없다면 굳이 봐야할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됐다. 하루에도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고, 심지어 외국 드라마들을 시청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화단계로 접어드는 요즘이다. 뻔한 드라마보다는 실험작이 차라리 낫고 멜로 안에서도 진중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효용성을 갖는 이유다.(사진:MBC)

‘조작’, 남궁민의 코믹과 진지로 풀어낸 사회극

이건 남궁민이라는 배우를 아예 작정하고 만든 작품일까 아니면 어떤 장르물도 남궁민이 소화하면 그만의 색깔을 내는 걸까. SBS 월화드라마 <조작>은 그의 전작이었던 <김과장>과 더불어 마치 ‘남궁민표 사회극’ 2부작을 보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부조리한 지점을 정확히 파고 들어가 툭툭 건드리며 결국은 거대한 적폐를 치워내는 소시민 영웅의 이야기. 그래서 <조작>은 바로 그 남궁민이라는 배우의 독특한 색깔과 더불어 기대감이 생기는 작품이다. 

'조작(사진출처:SBS)'

이른바 찌라시라 불리는 애국신문과 권력과 결탁한 거대 언론 대한일보의 대결. 애국신문이 스스로를 ‘기레기’라고 내세우는 애국신문의 한무영(남궁민)과 정론인 양 권위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사실을 조작하는 적폐언론 대한일보의 구태원 상무(문성근)의 대결. 아마도 현실이라면 이런 대결의 결과는 뻔할 것이다. 힘 있는 언론이 영세한 인터넷 타블로이드 하나 무너뜨리는 게 어디 대수일까. 

하지만 <조작>은 바로 이러한 적폐언론에 대한 대중들이 갖고 있는 반감을 끄집어내 한무영이라는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정상적으로 맞붙어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거대 권력과 싸우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언론이 흘러가는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는 적폐언론을 무력화시키는 게릴라식의 대적이 된다.

적폐청산에서 그 대상으로 가장 지목되는 것이 사법정의와 언론인 것은 그것이 일종의 엇나간 권력의 쌍둥이처럼 공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사법이 무고한 이들을 희생자로 삼을 때, 언론은 그것을 기정사실인 양 조작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잘못된 사법과 언론은 마치 짝패처럼 기능한다. 권력 유지를 위해 기능하면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내며.

<조작>은 그래서 한무영이라는 좌충우돌 돈키호테 기자가 중요하다. 물론 현실성은 그다지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 독특한 캐릭터가 주는 판타지가 드라마에 대한 가장 큰 몰입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적당히 눙치며 들어가는 코미디적 요소와 이 사회적 문제를 건드릴 때는 심각해지는 진지한 요소의 결합이다. 

대한일보에 의해 살인자 누명을 쓴 채 5년 째 복역 중인 윤선우(이주승)가 재심을 요청하지만 받아들여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자신의 무고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한무영과 공조하는 과정은 전혀 현실적이지가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그럴 듯하게 만들어내는 건 다름 아닌 한무영이라는 캐릭터가 은근슬쩍 넘어가는 코미디적인 접근이다. 스스로 윤선우의 인질이 되어 탈주한 후 마치 인질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를 위한 방송을 내보내는 척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것은 말 그대로 한무영 스스로 말하는 이른바 찌라시, 기레기의 방식이다. 하지만 대한일보의 구악을 이미 목도하고 그것이 실제 우리네 언론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공감하는 시청자들은 그 찌라시, 기레기라는 지칭이 반어적 표현이라는 걸 알고 있다. 저런 돈키호테식 행동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정반대로 진실을 조작하는 적폐언론이야말로 찌라시, 기레기라는 것.

한무영의 코믹함과 진지함은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가진 그 양면적인 결을 통해 제대로 그려진다. 남궁민은 이미 <김과장>을 통해 우리가 확인했듯 코미디적인 과장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면서도, 동시에 절절한 진지함을 순간적으로 드러낼 줄 아는 배우다. <조작>에서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대체불가로 다가오는 건 그 캐릭터와 그의 연기의 결이 너무나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남궁민은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갖게 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향후 또 다른 남궁민표 장르물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

<달의 연인>, 무게감 주는 이준기와 강하늘의 존재감

 

이준기와 강하늘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는 사극이지만 청춘 로맨스의 가벼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여주인공 해수(이지은)는 현대에서 고려 시대로 넘어간 인물이다. 그러니 그 옛 시대의 감성들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황궁에서의 말투는 물론이고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사진출처:SBS)'

그래서 해수는 현대인의 자유로움을 통해 이 무게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낸다. 황자들은 그런 그녀의 자유분방함에 시선을 빼앗긴다. 청춘 로맨스는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사극의 진지함을 깨고 들어오는 가벼움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너무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태조 왕건이 나오는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너무 장난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 같은 사극은 그래서 그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너무 가벼움으로 흘러버리면 사극 특유의 진지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다고 그 진지함을 고수하다 보면 청춘 로맨스의 달달함과 코믹함이 주는 웃음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에서 가벼움을 주는 존재들은 해수를 비롯해 10황자 왕은(백현) 14황자 왕정(지수) 같은 인물들이다. 여기에 13황자 왕욱(남주혁)도 한 몫을 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딘지 숨겨진 슬픔 같은 게 묻어난다.

 

<달의 연인>이 초반부에 가벼움을 먼저 보여준 건 전략적인 실패로 보인다. 갑자기 황자들 속에 뚝 떨어진 해수의 이야기부터 <달의 연인>은 너무 사극 같지 않은 가벼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가벼움을 드러내는 존재들인 해수나 왕은, 왕정, 왕욱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딘지 사극에 잘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건 이 사극의 초반 약점을 만들어냈다.

 

그나마 이 가벼움 속에서 사극 특유의 어떤 진지함과 무게감을 세운 건 4황자 왕소(이준기)8황자 왕욱(강하늘)이었다. 이 두 사람이 있어 <달의 연인>은 사극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왕소가 일찍이 어머니인 황후 유씨(박지영)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채 황궁 밖으로 내쳐져 신주 강씨 집안의 양자로 자라온 인물. 그는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늑대개의 거친 삶을 살았다. 3황자 왕요(홍종현)가 정윤 왕무(김산호)를 살해하려는 걸 막아내면서 왕소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왕욱은 왕소와는 상반되게 차분하고 자상한 인물이다. 고려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해수를 돕고 또 보호해주는 인물. 그 특유의 차분함은 사극이 가지는 진지함을 잡아내면서 또한 조금씩 해수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까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사극에서의 멜로도 해수를 사이에 두고 왕욱과 왕소가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연기력에 있어서도 이 작품에서 단연 빛나는 건 바로 이 왕소와 왕욱 역할을 연기하는 이준기와 강하늘이다. 이준기와 본래 사극연기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까지 모두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지만, 강하늘의 안정감 있는 연기 역시 돋보인다.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노려보는 이준기의 눈빛과 부드럽고 자애로워 보이지만 한층 무게감이 느껴지는 강하늘의 눈빛. <달의 연인>이 그래도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두 인물 덕분이다.

 

<달의 연인>은 첫 단추가 잘 꿰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어떤 반전의 기회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준기와 강하늘, 이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존재감과 매력이 아닐까. 작품이 가진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충분히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갈 만큼 매력적이다.

박보검, 사극도 현대극도 심각함도 코믹도 멜로도 되네

 

확실히 박보검은 준비된 연기자다. 이것은 이미 tvN <응답하라1988>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가 연기했던 최택이라는 천재기사의 캐릭터는 청춘 특유의 밝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아버지와 둘이 살아가며 바둑이라는 승부의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인물의 날카로움과 어두움도 갖고 있었다. 어눌한 듯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지만 어떤 순간이 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승부사의 면면까지. 한 캐릭터에서 이렇게 다채롭고 복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의 새로운 작품,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도 박보검의 연기는 확실히 출중하다. 물론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한 사극이지만, 사극 어투는 연기자들도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박보검이 연기한 왕세자 이영이라는 인물은 첫 등장부터 사극이 갖는 특유의 어투들을 잘 소화해냈고, 그러면서도 그걸 살짝 무너뜨림으로써 캐릭터의 코믹함과 긍정적인 성격을 동시에 보여줬다. 주상이 시찰하러 오자 술술 고전들을 외워보였지만 바람이 미리 적어둔 답변들을 날려버림으로써 그 진지한 척 했던 인물의 허당스러움이 드러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던 것.

 

물론 이영의 이런 허당기는 그 진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의도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정의 실세로서 권력을 틀어 쥔 영의정 김헌(천호진)은 향후 이영과 대결구도를 이룰 인물이다. 학문을 게을리 하며 어딘지 왕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영이 사실은 허허실실하고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점은 <응답하라1988>에서의 최택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최택이 진지하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뒤에 덕선(혜리)에 대한 사랑을 숨기고 있었다면,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은 허허실실 유쾌하고 웃는 얼굴 뒤에 조정을 걱정하는 진지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

 

하지만 역시 박보검의 연기가 빛나는 건 뭇 여성들을 심쿵하게 만드는 멜로 연기다. 이미 첫 회부터 남자여자로 등장한 홍라온(김유정)과 인연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이영은 이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인 사극의 주요 색채를 멜로로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궁에까지 들어온 홍라온은 향후 이영과 다시 만나 조정을 농단하는 자들과 대립하며 사랑을 이어가게 되지 않을까. 자칭 연애 상담사인 홍라온이 정작 자신이 이영에게 빠져드는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른바 <응팔>의 저주라고 불리는 건 이 드라마에서 배출된 연기자들이 다른 드라마에서는 어쩐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데서 나온 이야기다. <딴따라>에 출연했던 혜리가 그렇고, <운빨로맨스>에 출연했던 류준열이 그랬다. 그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고아라, 손호준, 유연석이 모두 새로운 드라마에 투입되었지만 별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박보검만은 이 <응팔>의 저주에서 예외가 될 듯싶다. 그것은 박보검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온전히 준비된 연기자로서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갈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대극은 물론이고 사극도 되고, 심각함과 코믹 나아가 멜로도 되는 연기의 면면을 박보검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무도> 못친소, 외모 아닌 연기력으로 웃긴 우현

 

MBC <무한도전>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최고 매력남으로 뽑힌 우현은 과연 외모로 웃겼을까? 물론 그 시작은 외모였다. 하지만 그 끝은 외모와는 상관없는 우현의 대체불가 매력이었다. 노안 종결자라고 불리는 외모였지만 차츰 그 얼굴은 그토록 귀여울 수가 없는 얼굴로 바뀌어갔다.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 아이처럼 천진난만해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서 역시 외모는 보여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우현은 알려주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연예인 되기 전에 외모를 비관한 적이 있었다. 거울을 보면서 절망하고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외모 아닌 무기가 내게 있더라. 그걸 갈고 닦았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못난 것도 없는 우리니까 못친들이 주는 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겠다.” 그가 F1 수상소감으로 밝힌 이 말은 외모보다 훨씬 중요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가 말한 외모 아닌 무기는 도대체 뭘까?

 

적어도 이번 <무한도전> ‘못친소를 통해 느껴진 그만의 무기는 남다른 노력이고, 허물없는 모습이며, 그것을 통해 무엇보다 그가 더 갈고 닦았을 연기력이었다. 사실 연기란 가면을 쓰고 본 모습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많은 가면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니 적지 않은 나이에 이토록 허물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보여줄 수 있다는 건 그가 얼마나 연기자로서 준비되어 있는 사람인가를 잘 말해준다.

 

로데오를 타고 도넛 먹기를 할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려는 모습에서 그걸 보는 모든 출연자들이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지만, 정작 그걸 하는 우현은 내내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도넛을 먹으려 안간힘을 썼고 그러자 그 욕망까지 담겨진 리얼한 표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코미디의 본질이 아니던가. 타인을 웃기지만 본인은 절대 우습지 않은.

 

얼굴로 말해요퀴즈 게임에서는 놀라운 표정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치즈 같은 음식을 얼굴 표정 하나로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그의 표정 연기의 공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로 길게 늘어진 치즈를 쭉 빼 먹는 듯한 장면을 연출해보여준 것. 맥주와 콜라 같은 비슷한 문제에서도 그는 작은 차이를 통해 정준하가 그 얼굴을 읽어내게 만들었다. 결코 쉽지 않은 게임이지만 여기서도 우현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그 게임을 대했다.

 

마지막 매력발산에서 우현은 비슷하다고 늘 지목되는 통아저씨의 춤을 췄다. 똑같은 동작을 선보였다기보다는 그 비슷한 포인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절묘한 표정은 마치 통아저씨가 스튜디오로 나온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그리고 이어서 부른 박진영의 허니역시 한 치의 어색함이 없는 멋진 무대였다. 춤 동작 하나하나에 절도가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전이 있었으니 말이다.

 

우현의 이 모든 매력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연기력이 아니었을까. ‘못친소에서 연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기를 하는 사람의 진솔함이 거기에 있었고,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자유로움이 느껴졌으며, 무엇보다 그간 갈고 닦은 무수한 표정들이 있었다. 가만히 노려보듯 있으면 어딘지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그 얼굴이 갑자기 생글생글 웃으면 아이처럼 바뀔 수 있는 공력. 연기력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타고난 것이 외모라면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 연기력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못친소가 우현을 F1으로 뽑은 것은 그 진짜 의도를 정확히 보여준 것일 게다. 못생겼다는 외모에 대한 지적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차츰 그들의 진면목이 드러나면서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됐던 건 다름 아닌 외모보다 더 중요한 그들만의 매력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현이 보여준 것처럼 그 매력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충분히 얻어질 수 있다는 것. <무한도전> 못친소가 하려던 진짜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기부문화, 지나치게 엄격할 이유 있나

 

요즘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사진들이 인터넷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이른바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사회운동의 하나로 희귀병인 루게릭병을 세상에 알리고 또 그 환우들에게 기부도 권장하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벤트다. 지목받은 인물들이 24시간 내에 머리에 얼음을 물을 뒤집어쓰거나 혹은 미국의 ALS 협회에 기부를 하는 일종의 게임처럼 벌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문화라고도 볼 수 있다.

 

'사진출처:이켠의 아이스버킷 SNS'

가끔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도 있지만 연예인들이 단연 많다. 아이돌 걸 그룹 베스티의 지목을 받아 유재석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인터넷에 올라온 후 점점 더 많은 연예인들의 행사 참여 동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연예인들의 참여가 점점 많아지면서 행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도 조금씩 생겨났다.

 

이켠은 유행처럼 아이스버킷 동영상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그 마음은 인정되지만 루게릭병에 관해서 알고들 하는 건가?”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그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의미에 대해 차가운 얼음물이 닿을 때처럼 근육이 수축되는 고통을 묘사한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게 엄밀한 이 행사의 의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따라서 그가 너무 재미 삼아 즐기는 것 같다. 그럴 거면 하지 마라고 일침을 가한 내용은 뜻은 알겠지만 너무 기부 같은 사회운동에 대해 엄격하게만 바라보는 시각이 들어가 있다.

 

물론 이켠은 후에 자신의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한 후 스스로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행사에 동참하는 뜻을 전했는데, 이 해프닝 속에는 우리가 사회기부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를 갖고 있다는 걸 살짝 보여주었다.

 

또 한편에서는 이 행사가 세간의 화제를 모으자 연예인들이 취지와는 상관없이 자기 홍보를 위해 행사에 참여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클라라와 전효성은 그래서 아이스버킷 릴레이에 참여하고도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 사실 여기에는 언론도 한 몫을 한 부분이 있다. 행사에 참여한 사진을 올리면서 그 뜻을 전하기보다는 오히려 볼륨감이나 속살같은 자극적인 단어들로 이들의 참여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자기 홍보를 위해 행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또 루게릭병을 알리는 행사지만 거기에 즐겁게 얼음물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이 비판받을 일인가는 의문이다. 이 행사에는 분명히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의 자기 과시욕 같은 것들도 들어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조용히 기부를 하지 SNS상에 굳이 동영상을 올린단 말인가. 흔히들 기부를 한다면 엄청난 의미부여와 진지함을 떠올리지만 바로 그런 점은 기부문화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스버킷 릴레이가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기부문화가 즐거울 수 있다(fun)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즐겁게 웃으면서 행사에 참여하고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리고 또 기부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약간의 자기 홍보를 담고 있다고 해도 권장될 일이다. 또한 루게릭병이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돕는 기부행사까지 고통을 강요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루게릭병을 앓는 환우들도 원치 않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기부문화가 너무 엄격하거나 진지함에 빠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항간에는 얼음물만 뒤집어쓰고 기부는 안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부란 반드시 금전적인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행사에 같이 참여하는 것도 어쩌면 또 다른 이름의 기부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기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건 그 어떤 의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연예인 홍보? 좀 하면 어떠랴. 그걸 통해 행사가 더 즐거워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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