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누나’를 통해 작가들이 이제 귀 기울여야 하는 것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던 건 흔한 멜로드라마를 통해서도 사회변화나 사회적 사안들을 예리하게 건드린 부분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문제적 인물은 바로 윤진아(손예진)다.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버젓이 자행되던 회사를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던 인물. 일정 부분 ‘포기상태’로 살았던 그가 서준희(정해인)라는 인물의 사랑을 받고, 그래서 자신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그것이 그를 각성시켜 회사 내의 성차별과 성폭력 사안에도 맞서나가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이 기존 멜로와는 다른 진일보한 시각을 담고 있다 여겨져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후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클리셰’에 발목이 잡혔다. 일상의 문제들을 날카로우면서도 또 멜로가 가진 달달함과 풋풋함을 동시에 껴안는 그 어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그려왔던 초반의 이야기는, 김미연(길해연)이라는 흔해빠진 아침드라마형 결혼반대 엄마의 클리셰를 가져오면서 퇴행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불만은 여기서부터 불거졌다. 그리고 여기에 윤진아라는 캐릭터 역시 ‘변화한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생각 없는 모습’으로 퇴행하는 이야기가 담겨지면서 불만은 더욱 커졌다.

물론 이건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껏 수많은 드라마에서 써왔던 흔한 클리셰 공식들이다.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갈등이고, 따라서 멜로드라마는 사랑을 하는 남녀와 이를 반대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흔한 공식.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부터 우리네 <춘향전>이나 <시집가는 날> 같은 고전, 그리고 최근의 멜로드라마까지 이 공식은 바뀐 적이 없다. 다만 달라지는 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멜로드라마라도 사회적 의미를 띤 이른바 ‘사회적 멜로’라고까지 지칭하는 드라마들이 나왔던 건, 그 장애물이 이제는 양가 부모 같은 구시대적 클리셰에서 벗어나 사회적 갈등(신분이든 빈부든 취향이든)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랑을 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결혼 반대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지금도 일상적일까 하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드라마가 그런 클리셰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후반부의 동력이 그런 비판적 시각이라기보다는 그 ‘반대’가 갖는 갈등구조 자체를 활용하고 있다. 즉 클리셰를 통한 전형적인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건 작가가 기존의 드라마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런 면면들은 이 드라마가 ‘미투 운동’을 연상케 하는 회사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캐릭터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이 드라마가 그리는 윤진아를 포함한 몇몇 여성 캐릭터는 명민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용당하기도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를 테면 강세영(정유진) 같은 인물이 남호균(박혁권)의 감언이설에 속아 윤진아를 밀어내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그가 서준희를 좋아했었다는 설정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즉 흔한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질투라는 클리셰적 코드가 이 안에도 들어있다. 

윤진아가 각성된 인물로 그려지다 어느 순간 ‘민폐녀’가 되고만 건 결국 그 좋은 캐릭터의 설정이 ‘클리셰’를 깨는데 활용되기보다는 오히려 ‘클리셰’에 잡혀 먹히는 이야기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윤진아의 각성이 다시 전면에 나올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사안에서도 또 개인적 사랑에서도 더 이상 ‘포기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한 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담는 것이다. 마지막의 결론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과정과 선택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불편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지금의 상황을 뒤집는 결과가 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구조 자체가 흔한 ‘클리셰’의 공식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시청자들의 마음이 어째서 좋지 않은가를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그건 작가가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끌고 가기 위한 옛날 방식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클리셰는 이 드라마가 소재로도 잡고 있는 ‘미투 운동’ 같은 성차별에 대한 반대에도 반하는 일이 된다. 과거의 공식을 반복하는 클리셰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이 뚜렷이 들어가고, 심지어 양가 부모의 역할도 어느 정도는 고정되어 있다. 그걸 마지막에 가서 깨기 위한 설정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본래 그것조차 이 클리셰는 공식 중 하나라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우리는 꽤 자주 논란이 불거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직업 비하 논란, 성폭력 미화 논란, 성차별적 장면이 만들어내는 논란 등등. 그래서 논란이 나올 때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며 사과하지만, 그래도 또 논란은 터져 나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이것이 각각의 사안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껏 통용되어 왔고 작가들이 배워왔던 ‘드라마 공식(그건 다른 말로 클리셰다)’ 속에 그 논란거리들이 이미 내재해 있어서다. 결국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지만 볼게 아니라 이 흔한 공식이라는 뿌리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라면 이제 누구나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이 시대의 시청자들이 그 과정을 통해 보고 싶은 건 윤진아라는 과거 ‘클리셰적인’ 인물이 사랑을 통해 각성하고 그래서 회사에서도 또 집에서도 보다 당당한 ‘독립적인 인물’로 거듭나는 모습일 게다. 그 틀에 박힌 상황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아니라.(사진:JTBC)

양다리 사이에서 <질투>는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삼각관계의 관점이 독특한 드라마였다. 즉 보통의 삼각관계라고 하면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주인공이고 제3의 인물이 그 사이를 방해하는 연적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거꾸로 사랑하는 남녀를 옆에서 바라보며 아파하고 질투하는 제3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화신(조정석)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3년 간 자신을 따라 다닐 때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화신이 표나리(공효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친구인 고정원(고경표)가 그녀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면서다. 자꾸만 그들이 눈에 밟히고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대고 아파오는 걸 느끼게 되면서 이화신은 홀로 먼발치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한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의 마음이 이화신쪽으로 기울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가슴이 아파 아이처럼 투덜대고 지질하게 구는 그에게 연민과 동시에 귀여운 매력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속내를 표나리와 고정원에게 들킨 후 본격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친구와 주먹다짐까지 하다가 셋이 함께 사는 기묘한 동거까지 하게 되면서 표나리의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고정원에게 다른 여자가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하던 그녀가 이화신이 혜원(서지혜)과 키스를 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되고는 그녀 역시 자신의 사랑이 이화신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되자 상황은 뒤집어진다. 이제 이화신을 향해 표나리가 애정을 갈구하게 되고, 표나리는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그를 떠난다. 이화신과 표나리가 밀고 당기며 서로의 애정전선을 확인하고 있는 달달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고정원에게 다시 기울어진다.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혼자 버림받은 그가 못내 눈에 밟히는 것이다.

 

패자의 입장에서 어떤 연민의 대상이 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었던 이화신이지만 이제 그 입장은 고정원이 갖게 됐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이 아쉬워지는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 삼각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복잡하게 됐다. 물론 <질투의 화신>이라는 제목에 이미 적시되어 있듯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화신일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입장이 바뀌게 되면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독특한 사랑(질투하며 사랑하는)의 주인공은 고정원쪽으로 옮겨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의 전개가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이제 고정원과 이화신 모두가 꽤 괜찮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결코 쉽게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해피엔딩이면 다른 한쪽은 새드엔딩이 되니까.

 

이건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딜레마지만 동시에 그건 이 독특한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점을 담아낸 사랑이 아니라 여러 관점들이 동시에 투영된 사랑. 그래서 균형 잡기가 어렵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짜 사랑의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얽힌 관계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봐왔던 무수한 해피엔딩 뒤에도 숨겨진 새드엔딩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드라마라니

<질투의 화신> 조정석, 짠하고 찌질한데 웃기기까지

 

이 복합적인 감정을 뭐라 이야기해야 할까. 어찌 보면 짠하고 어찌 보면 찌질한데 또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SBS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감정 선은 이토록 복합적이다. 도대체 어떻게 희극과 비극이 이렇게 한데 어우러지는 게 가능할까.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표나리(공효진)를 사이에 두고 이화신(조정석)과 고정원(고경표)이 서로 다투는 장면은 우리가 흔히 멜로드라마의 삼각관계에서 봤던 그런 느낌이 아니다. 보통의 멜로드라마라면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할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진지하고 분위기 있는 모습들을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에서 그런 분위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다투는 장면은 찌질하고 좀스럽기 그지없다. 서로 자기가 더 사랑했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에게 포기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빈정 상한 이화신은 길거리에서 고정원이 협찬해준 옷을 모두 벗어버리기까지 한다. 그건 마치 초등학생들 같다. 제대로 성숙한 성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하지만 <질투의 화신>이 그리고 있는 이 삼각관계는 그렇게 찌질하고 좀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사실 삼각관계 속에서 누군가 멋진 말로 포기하고 그 꼬여버린 관계가 마치 운명처럼 포장되는 건 말 그대로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일이 아닐까. 실제로 사랑이란 그렇게 질투하고 질시하고 심지어 다 큰 성인을 아이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일 게다.

 

이화신과 고정원이 표나리를 두고 죽기 살기로 부딪치는 상황은 그래서 그걸 보는 입장에서는 웃음이 나지만 그들 당사자들에게는 실로 진지하다. 그 둘 사이에 나타나 무릎을 꿇고 둘 다 사랑하지 않겠다며 할머니가 될 때까지 혼자 살겠다고 말하는 표나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두 사람만큼 진지하지만 그 행동은 시청자들에게는 웃음이 터질 만큼 유치해 보인다.

 

서숙향 작가는 바로 이 지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될 때 심지어 유치한 아이처럼 되어버리는 그 순간을 포착해냈다. <질투의 화신>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그래서 사랑을 멋진 말로 포장하기보다는 그건 질투의 다른 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그래서 이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는 그들의 과장된 행동들이 대책 없이 웃기고 짠해지면서도 리얼한 느낌을 준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걸 드라마가 대놓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의 변화와 소용돌이를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질투의 화신>을 통해 새롭게 보이는 건 그래서다. 물론 그는 전작들에서도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바 있지만, 이 작품은 그의 그런 연기 가능성들을 거의 남김없이 뽑아내 보여주고 있다. 그 딱 맞는 와이셔츠가 잘 어울리고 기자로서의 카리스마까지 느껴졌던 이화신이 한 여자에게 푹 빠져 친한 친구와 유치하게 다투고 길바닥에서 옷까지 훌훌 벗어버리다니. 그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납득시킨 조정석의 진가가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질투의 화신>, 안쓰럽고 매력적인 질투하는 조정석

 

정원이는 나 보다 더 자상하고, 나보다 더 돈도 많고, 무엇보다 건강한 놈이다. 정원의 마음을 의심하지 마라.” 이화신(조정석)은 과연 사랑보다 우정을 택한 걸까? 그는 그가 사랑하게 된 여자 표나리(공효진)에게 친구인 고정원(고경표)를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심지어 그에게 바래다준다. 고정원의 모친이 그가 금수정(박환희) 아나운서와 사귄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내버리자 실망한 표나리를 위해 고정원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대신 얘기해준 것.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자주인공은 주로 질투를 하기 보다는 받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남자주인공들은 재력은 물론이고 외모, 스펙까지 빠지지 않는 인물이거나, 그런 것들이 빠져도 또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 적어도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든 남자주인공은 그래서 다른 남자의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은 제목이 아예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질투하는 인물화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표나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도 못한다. 그가 표나리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거라야 고작 주변을 빙빙 돌며 툴툴대면서 걱정을 해주거나 남모르게 질투의 감정을 드러낼 때다.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 가사 구절처럼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 이화신은 그래서 갈등하지만 그는 고정원의 사랑이 거짓일 거라고 오해해 힘겨워하는 표나리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의 마음을 전한다. 거기에는 질투의 감정을 뛰어넘어 표나리를 위하는 사랑이 담겨있고 동시에 친구인 고정원에 대한 우정 또한 담겨져 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고정원과 표나리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를 할 때 먼발치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화신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질투와 상처의 아픔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이화신이라는 인물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투의 화신>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특별한 캐릭터 덕분이다. 질투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 사랑을 드러내는 캐릭터.

 

무엇보다 이 질투하는 인물, 이화신이라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적지 않다. 사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보정 브래지어를 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도 본인은 굉장히 진지하고 나아가 절실하게까지 느껴지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코믹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통해 미친 존재감으로 등극했고, <더 킹 투 하츠>에서는 그와는 상반되는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마치 이 두 캐릭터를 조합해 진지하면서도 인간미 있고 그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한 듯하다. <오 나의 귀신님>을 통해 슬쩍 내보인 그 캐릭터는 이제 <질투의 화신>에서 제대로 매력을 뽑아내고 있다.

 

우습지만 짠하고, 안쓰럽지만 매력적인 인물. <질투의 화신>은 바로 이런 비범한 캐릭터의 매력에 기반해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을 열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캐릭터가 이토록 공감 받을 수 있게 된 건 주인공보다는 주변인이 될 가능성이 훨씬 많아진 현실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제대로 흡수해 200%의 매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질투가 사랑이다,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

 

난 더 질투하는 엄마랑 살 거야. 더 질투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니까.” 빨강이(문가영)는 치열(김정현)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녀를 좋아하는 치열과 대구(안우연)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의 기준이 질투라는 걸, 자신을 두고 서로 같이 살자는 두 엄마들(친 엄마와 새 엄마) 이야기로 에둘러 말한 것. 이것은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독특한 사랑방정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이 드라마에서 빨강이가 중요한 것은 그녀가 흩어져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모두 엮어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절망한 그녀가 클럽에 갔다가 실랑이가 벌어져 경찰에 끌려가자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녀가 삼촌이라 부르는 락 빌라의 주인인 김락(이성재)은 물론이고, 그녀의 친삼촌인 이화신(조정석), 그녀와 함께 있던 치열의 누나인 표나리(공효진)와 그녀와 같이 온 고정원(고경표), 그리고 그녀의 친엄마인 계성숙(이미숙)과 새엄마인 방자영(박지영)이 모두 모인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모여 경찰서에서 나오며 그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진다. 표나리와 고정원, 이화신이 한 팀이고, 빨강이와 치열, 대구가 또 한 팀, 그리고 김락과 계성숙, 방자영이 나머지 한 팀이다. 그들은 그렇게 각자 팀을 이뤄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표나리를 사이에 두고 고정원과 이화신이 밀고 당기며,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치열과 대구가 또 친 엄마인 계성숙과 새 엄마인 방자영이 그리고 김락을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

 

<질투의 화신>은 이처럼 고교생의 풋사랑, 성장한 남녀의 일과 사랑, 딸을 두고 벌어지는 모성애 그리고 중년의 사랑 같은 다양한 양태의 사랑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 한 사람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론 앙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친구 그 이상이다. 심지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계성숙과 방자영이지만 그들은 빨강이의 엄마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빨강이의 집에 들어와 같은 침대에 누워 빨강이가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니 이 관계는 의외로 팽팽하다. 표나리와 고정원이 가깝게 지내는 걸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이화신은 질투로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그렇다고 거의 형제처럼 친한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회식 2차 노래방에서 부르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그저 유행가가 아닌 것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두 사람만이 공유한 비밀이 있다는 건 남은 한 사람을 굉장히 질투하게 만드는 일이다. 표나리와 이화신은 유방수술 동기(?)로서의 절대적인 두 사람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형의 장례식장에서 이화신이 절망하게된 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형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던 표나리와 고정원이 함께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웃는 장면 때문이었다. 자신과의 비밀인 유방암 수술을 한 사실을 고정원과 공유하는 줄 착각한 이화신은 그 비밀이 공개되는 것이 단지 창피해서 그렇게 화를 낸 것일까. 그것보다는 둘 만의 비밀이 공개됐고 그러면서 그들만의 비밀이 생긴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을까.

 

이미 빨강이가 말한 것처럼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은 그래서 누가 누구에게 더 친절하고 더 잘해주느냐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다. 그걸 바라보는 누군가의 폭발하는 질투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다가 차츰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사랑임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질투의 화신>이 그려내는 사랑법이다.

 

하지만 과연 질투만 더 많이 한다고 진짜 사랑일까.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대립하는 구도는 마치 솔로몬의 선택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치열하지만 결국 진짜 엄마를 가르는 건 아이를 위해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과연 <질투의 화신>은 어떤 선택을 하는 인물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힘들 때 내 편인 사람, 공표진표 로코의 핵심

 

사랑보다 더 강력한 게 내 편에 대한 판타지인가. 로맨틱 코미디가 그저 사랑만을 다루던 시대에서 이제 일과 사랑을 동시에 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이렇게 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양상은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고 또 영원히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는 사실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서숙향 작가는 일찍이 <파스타> 같은 작품을 통해 살벌한 일터에서 피어나는 로맨틱한 사랑의 이야기를 달달하면서도 짠 내 나게 그린 바 있다. 거기서도 주목되는 건 그 힘든 일터에서 남모르게 그녀를 챙겨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셰프라는 인물이 제공한 강력한 판타지다. 그저 사적인 남녀의 만남과 사랑의 과정이 아니라, 이제는 일과 얽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만큼 커진 현대인들의 욕망이다.

 

SBS <질투의 화신>은 그 배경을 방송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는 이 방송국의 구박덩이로 살아간다. 나름 프로이고 세세하게 준비해 내보내는 그녀의 일 기상예보는 아무도 주목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이 뉴스인지 아니면 쇼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어떤 일로 치부된다. 그런 그녀의 기상예보를 매일 매일 보는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어패럴업을 하고 있는 재벌3세 고정원(고경표)이 그 사람이다.

 

모두가 주목하지 않을 때 그녀를 주목해 바라봐주고, 그녀가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의 계략에 의해 해고통보를 받을 때도 그걸 알아봐주는 인물. 아무도 챙기지 않는 그녀에게 옷을 챙겨다주고 후배와 누가 방송에 나갈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때 은근히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 방송 후 쓰러져버린 그녀를 안고 병원에 바래다주고 엉망진창이 됐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도 잘 했다며 다독여주는 이가 바로 고정원이다.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표나리에게 완벽한 자기 편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고정원보다 더 가까이서 그녀의 진짜 편이 되어주고 있는 인물은 사실 이화신(조정석)이다. 그는 툴툴대는 성격 때문에 그녀에게 버럭 대기 일쑤지만 그러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의 기상예보 방송을 볼 정도로 그녀의 편에 서 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방송을 강행한 그녀에게 응급차를 보내려고 하지만 그 마음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고정원이 그녀를 향해 직진해온다면, 이화신은 쭈뼛쭈뼛 아닌 듯 다가와 버럭대며 슬쩍 마음을 꺼내놓는 츤데레다.

 

<질투의 화신>에 첫 눈에 반하고 확 불타오르는 그런 사랑은 없다. 또 재벌3세가 가진 현실적인 능력에 휘둘리는 신데렐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로맨틱 코미디에는 그녀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고 편들어주며 외적인 조건, 상황과 상관없이 그녀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고정원이 그렇고, 그 고정원의 배려에 마음이 흔들리는 표나리를 보며 질투하면서 조금씩 그녀의 편에 서게 되는 이화신이 그렇다.

 

<질투의 화신>이 코미디보다도 더 웃기고 때론 그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면서도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의 공감대를 가져가는 건 바로 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거기에는 삶과 일의 문제가 끼어들고 그저 확 타오르는 사랑 그 이상의 현실적 공감과 위안이 들어간다. 시종일관 웃다가 조금씩 그 인물들의 마음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현대인들이 가장 갈급해하는 그 욕망, ‘내 편에 대한 욕망때문이 아닐까.

<슈가맨>, 짜깁기로는 유재석도 어쩔 수 없다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을 찾아서(이하 슈가맨)>는 시작 전부터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유재석이 처음으로 선택한 비지상파 프로그램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다. 2%에 못 미친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유재석이라는 최고의 MC를 데려온 프로그램치고는 너무나 완성도도 또 화제성도 못 미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슈가맨을 찾아서(사진출처:JTBC)'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90년대 노래 한 곡으로 최고의 가수로 등극했다가 사라져버린 슈가맨을 찾아 그 곡을 리메이크해 차트 역주행을 하겠다는 콘셉트는 이미 <무한도전> 토토가나 <불후의 명곡>과 다른 아이템이 아니다. 오히려 슈가맨이라는 한정은 이들 프로그램보다 훨씬 불리한 위치만을 만들었다.

 

<무한도전> 토토가에 등장한 가수들은 지금은 잊혀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웬만한 시청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가수들이었다. 하지만 <슈가맨>의 가수들은 다르다. 첫 회에 출연했던 박준희와 김준석은 물론이고 2회에 출연한 유승범과 김부용도 마찬가지로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이들에 대한 화제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 건 그래서다.

 

물론 유승범의 질투같은 곡은 들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노래다. 동명의 드라마 OST였기 때문에 무수히 들었을 곡이고, 또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특정 상황에 자주 등장했던 곡이다. 그나마 반가운 곡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이 원하듯 차트 역주행을 시킬 만큼의 반향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슈가맨>의 형식이 그만큼 시청자들을 빨아들일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 그 날 출연할 슈가맨이 누구인가를 퀴즈 형식으로 풀고, 그를 무대 위에 소환해 토크를 하는 건 너무 전형적이다. 마치 오래된 옛 가수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스튜디오에서 별다른 장치 없이 이렇게 슈가맨을 불러 주목시킬 수 있는 건 <무한도전> 정도가 될 것이다. 낯선 슈가맨을 이미 캐릭터가 다 잡혀 있는 프로그램에 세우는 것과 그렇지 못한 프로그램에 세우는 건 그 차이가 너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무대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원하듯 슈가맨의 노래와 리메이크곡이 차트 역주행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음악쇼적인 요소다. 그런데 <슈가맨>의 무대란 너무 어정쩡하다. 토크쇼를 하는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누가 시켜 노래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노래를 들으며 함께 호응해줄만한 관객도 없다. 물론 승패 판정을 위한 관객 몇 명이 있지만 이런 정도로 노래가 전하는 감동을 전해주기는 어렵다.

 

<슈가맨>은 유재석을 데려온 프로그램치고는 너무 안이한 기획이다. 물론 2회 파일럿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완성도를 채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발군의 역량을 가진 유재석이라고 해도, 소재에서부터 프로그램의 완성도까지 너무 빈틈이 많은 이 프로그램을 살리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새로운 투유 프로젝트가 필요한 상황이다. <슈가맨을 찾아서>의 앞에 굳이 투유 프로젝트라고 붙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재석과 유희열을 중심으로 몇 개의 파일럿을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제 프로그램의 성패가 스타 MC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시대는 지났다. 물론 유재석 같은 스타가 있다면 훨씬 유리할 것이지만, 그래도 잘 기획된 프로그램이 우선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짜깁기 정도로는 유재석도 어쩔 수 없다.



선조의 내우외환, 통지자의 자격은 어디에 있나

 

새롭게 시작한 MBC 사극 <화정>은 광해군(차승원)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광해군의 비극을 낳은 선조(박영규)로부터 시작된다. 임진왜란을 전혀 예측하지도 못하고,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도성과 백성들을 버리고 파천을 거듭한 왕. <화정>에서 광해군이 선조의 사후에 그토록 불안정한 집권 속에서 가까운 이들까지 숙청해버리는 일을 하게 된 건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앉히고도 든든한 지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정(사진출처:MBC)'

독살이 의심되는 선조의 죽음 앞에서 광해군은 그 숨겨놓았던 울분을 토해낸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면서 왜 자신을 그렇게 밀쳐내려 했는가 토로하며 죽어가는 선조에게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른 왕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선조가 자신을 그렇게 미워했던 이유가 자신이 아버지와는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또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얻은 세자 광해군. 반대로 왕이지만 백성의 손가락질을 받는 선조. 선조의 질투가 이런 비극을 낳았다는 것.

 

선조의 무능함이 어떤 비참한 결과로 국가를 이끄는가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징비록>에서의 선조의 모습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해온 일련의 잘못된 선택들을 하나하나 아프게도 꺼내 놓는다. 파천을 그토록 반대하는 류성룡(김상중)을 결국 좌천시켜버리고,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거둔 신각(박경환)을 상관의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참수시킨다. 뒤늦게 그 사실은 안 선조는 이를 되돌리려 하지만 이미 형은 집행된 후였다.

 

무능한 왕을 대신해 승전보를 가져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왕의 그늘 바깥으로 밀려나 있던 인물들이다. 전라좌수사로 바다를 지켜 왜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린 이순신 장군이 그렇고(그는 심지어 무고를 당해 훗날 백의종군하게 되지 않던가), 의병으로 분연히 일어나 전세를 바꾸어버린 곽재우 장군이 그렇다. 이렇게 되니 왕에 대한 지지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조가 이순신을 질투했다는 얘기가 그저 풍문만은 아니라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중요한 건 왜 이 무능한 왕 선조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두 사극에서 동시에 다뤄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두 사극에서 선조는 중심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극들이 갖고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의 어떤 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 이토록 무능한 왕의 실정이 지금 현재 사극의 어떤 배경이 되고 있는 걸까.

 

<화정>의 김이영 작가가 밝힌 것처럼 사극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 때문에 굳이 그 시점의 이야기가 다시 그려진다는 것이다. 선조의 시대가 전쟁과 정쟁으로 피폐된 나라 살림과 이로 인해 굶주리는 백성들의 시대로 기록된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화정><징비록>은 그런 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면 통치자의 자격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왕은 한 사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한 사람의 무능함은 엄청난 비극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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