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젯거리 찾는 드라마들

네모난 세상/명랑TV 2007.08.03 13:14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 속에 꼭 있는 화제의 장면들

종영한 ‘쩐의 전쟁’의 한 장면. 갑자기 사채업소인 동포사가 춤바람에 휘말린다. 금나라(박신양)와 서주희(박진희)가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춘다. 단지 발랄하고 경쾌한 분위기만 드라마 상의 감정라인과 조우할 뿐 스토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몇 장면이 가진 효과는 커서, 다음날 인터넷에는 어김없이 이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네티즌들 사이에 화젯거리가 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 장면. MT를 간 카페 직원들과 사장이 함께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은 그대로 UCC로 변모하면서 ‘완소한결’, ‘어라라은찬’ 같은 문구들이 달라붙는다. 극중에서 은새(한예인)가 이 UCC를 올려 카페가 인기를 끌게 된 것처럼, 드라마가 방영된 후, 인터넷은 이 UCC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와 인터넷은 언제부턴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저 방영된 드라마에 대한 평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제 인터넷으로 오면서 새롭게 재창조되기도 한다. 장면들이 재편집되거나 서로 다른 드라마들이 엮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패러디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간략한 특징을 붙여 만드는 사자캐릭터 창조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화제성을 가장 잘 활용한 드라마가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거의 모든 캐릭터에 사자캐릭터가 붙은 이 시트콤은 그 날 밤 어떤 장면을 연출했는가가 어김없이 다음날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순재가 야동을 보고 악플을 다는 장면이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과 반응을 얻어낸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이 시트콤이 처음부터 인터넷의 화제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결과이다.

화제를 일으키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 중 여성 캐릭터들의 주먹다짐 역시 화제를 끌어 모으는 한 장치가 되었다.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김희애)을 업어치는 은수(하유미)의 장면은 오래도록 네티즌들 수다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최근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강북엄마 현민주(하희라)와 강남엄마 윤수미(임성민)가 한바탕 붙는 장면에서 ‘내 남자의 여자’의 주먹다짐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거라면 그저 심한 말다툼 정도로 처리되었을 이런 장면들은 이제 머리끄댕이 제대로 잡아 당겨주고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막싸움으로 변모했다. 그만큼 화제성이 충분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미 화제가 되었던 장면을 다시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최근 종영한 ‘불량커플’의 준수(유건)가 한영(최정윤)에게 피아노를 치며 프로포즈하는 장면은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했던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 창피해 자리를 뜨려하는 한영에게 “어이 거기, 핑크는 자리에 좀 앉지”라고 외치는 장면에 이은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열창은 화제가 된 시퀀스 전체를 가져와도 여전히 화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이다.

드라마가 네티즌 혹은 시청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드라마들의 홍보경쟁도 치열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티즌들의 입 소문은 이제 드라마를 소위 띄우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팬 서비스 같은 이런 장면들의 연출은 드라마의 흐름과 잘 맞물리는 한 그다지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때론 화제가 공감으로 가지 않고 비호감으로 가는 경우도 생긴다. 과도한 장면들의 남발이 그것이다. 드라마 진행과 상관없는 과도한 노출이나,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도 않은 관계의 남녀가 갑자기 키스신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들은 공감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가장 좋은 것은 드라마 자체가 갖는 이야기와 화제가 될만한 장면이 빈틈없이 딱 맞는 경우이다. 특별히 연출할 것도 없이 그런 장면들은 고스란히 화제가 되고 후에도 명장면으로 남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타석 홈런을 날린 은찬(윤은혜)과 한결(공유)의 포옹신에 이은 키스신이나,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와 서주희가 보여준 오이키스신 같은 것들이다. 저 드라마에 흔하디 흔한 포옹과 키스 장면이 이다지도 가슴 떨리고 오랜 잔향을 남기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 한 장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제를 만들어내는 장면의 연출보다는 장면의 극적 상황 자체가 화제가 될 때, 시청자들은 깊은 공감 속에 기꺼이 화제에 동참할 것이다.

참 잘한 ‘쩐의 전쟁’, 끝이 아쉬운 이유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에 대한 욕망과 그 헛됨을 드라마를 빌어 함부로 얘기하는 건 참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허망한 자기부정이 되거나 혹은 진부한 건전 드라마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쩐의 전쟁’은 다양한 장치(?)로 그 어려운 줄타기를 해낸 드라마다.

참 잘한 돈에 대한 풍자적인 접근
돈이란 소재가 얼마나 뜨끔한 것인가는 이미 이 드라마로 인해 촉발된 현실의 변화들에서 충분히 감지된 바 있다. 그러니 적당한 장치가 필요할 밖에. 이 드라마가 가진 만화적 연출과 스타일은 보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면서 동시에 드라마와 시청자가 적당한 거리를 갖게 해준다. 만일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게 보여주었다면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논란의 거미줄에 잡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만화 같잖아’하며 심각한 상황이 넘어가는 순간, 거기에는 묘한 풍자의 힘이 생긴다. 풍자는 자기부정을 통해 비틀린 세태를 함께 비웃으면서 새로운 자기 인식을 일깨우는 장치이다.

‘사채업자들에 의해 모든 걸 잃은 금나라(박신양)가 스스로 사채업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자체가 인간이 아닌 돈 중심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의 드러내기 싫은 속살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글자로 표현될 때만 아이러니하게 보일 뿐, 실제 현실은 당연한 것이니까. 이 사회에서 돈을 받아쓰다가 돈을 벌게 되는 상황이 시작되는 것은 금나라와 같은 상실을 실제 겪거나 혹은 겪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길 때이다. 그 때부터 금나라처럼 돈을 좇는 인생이 시작된다.

그러니 사채업자로 변한 금나라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잠재적 욕망을 대리해주는 통쾌함을 가지지만 실제로는 시청자가 보기에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결국 돈에 혈안이 된 인간(어쩌면 거기서 새삼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일 뿐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독특한 연출 스타일과 함께, 캐릭터 설정을 통해 금나라의 변신을 용인하게 만든다.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인물이 있다. 하나는 금나라의 스승인 독고철(신구)이고 또 하나는 서주희(박진희)다.

독고철과 서주희가 말하는 ‘참 잘했어요’
독고철은 이 드라마 상에서 돈이라는 욕망이 또한 좋은 욕망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인물이다. 그러니 금나라가 돈 귀신의 구렁텅이에서 개처럼 구르며 마음껏 욕망을 탕진하는 상황에서 그를 구원해주는 인물은 독고철이 될 수밖에 없다. 독고철과 금나라와의 수직적인 관계는 마치 사회에서 간도 쓸개도 빼며 하루를 살아낸 샐러리맨이 집으로 돌아와 이미 그 같은 경험을 하고 탈속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독고철은 금나라가 무언가 일을 제대로 할 때 돈으로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장을 찍어준다.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참 잘했어요’하고 등을 두드려준다.

하지만 그것은 집 안에서의 위안이다. 집 밖으로 나가면 돈 귀신에 슬쩍 슬쩍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속출한다. 그래서 필요한 캐릭터가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서주희다. 금나라가 서주희네 집의 빚을 해결해주고 그녀를 담보 삼는 순간, 그것은 금나라에게는 현실의 진창에서 구르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잠시 서주희에게 담보해주는 셈이 된다. 양심을 맡긴 채권자인 금나라는 흔들릴 때마다 담보인 서주희에게 달려와 맡겨둔 양심을 꺼내본다. 그가 아버지 같은 존재인 독고철에게서 배운 ‘참 잘했어요’라는 문구를 그녀의 채무노트에 찍어주는 순간, 스스로 ‘참 잘했다’는 위안을 받는다.

이 수직적인 관계로서의 독고철과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서주희라는 캐릭터로 인해 금나라라는 돈에 대한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두 가지를 얻게 된다. 첫째는 그의 욕망에 기꺼이 시청자들이 이입될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는 점이며, 둘째는 상반되어 보이는 욕망으로부터의 탈주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선 도통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박신양의 연기가 돋보이는 건, 이런 실현 불가능한 현실을 넘어선 이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한다.

엔딩이 참 잘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
이것은 또한 ‘쩐의 전쟁’이란 드라마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이중적 잣대(욕망 추구와 그 헛됨)를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그려낸 요인이 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차츰 드라마의 힘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애초에 독고철과 서주희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면서부터 예기된 결과이다. 사실 드라마의 힘은 욕망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 바, 돈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던 금나라가 최초에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한 독고철과 서주희라는 인물에 집중하면서 그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금나라의 욕망을 무너뜨리는 인물들이다.

드라마가 섣부른 해피엔딩으로 달려가지 않고 금나라를 정점에서 쓰러뜨리는 것은 장태유 PD 특유의 풍자의 칼날이 녹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지만 시청자들이 용납하기엔 어려운 설정이다. 독고철과 서주희라는 캐릭터를 설정했을 때부터, 장태유 PD는 금나라의 욕망을 끌어내리겠다는 생각을 한 셈이지만 그것이 꼭 그의 죽음으로 갔어야 했을까.

마동포가 원수라는 걸 알게된 금나라가 방황할 때, 독고철이 한 말이 있다. “너의 아버지를 죽인 건, 마동포가 아니라 돈”이라고. 결말은 금나라를 버리기보다는 돈을 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환타지적인 결론이라도 끄집어내는 게 안전했다. 이런 환타지가 싫다면 애초부터 독고철이나 서주희라는 캐릭터는 더 이상 금나라와 지금 같은 관계로 이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쩐의 전쟁’의 엔딩은 지금까지 금나라를 통해 욕망의 무한질주를 즐겨오다가, 차츰 그 욕망이 사라지자 아쉬워하면서도 여전히 그걸 그리워하는 작은 기대마저 부서뜨리는 힘이 있다. ‘쩐의 전쟁’은 그것마저 부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그것은 아쉽게도 지금까지 ‘쩐의 전쟁’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드라마의 결말은 작가가 내고 싶어서 마음대로 내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납득할 수 있는 끝을 보여주는 것이다.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다가 또 그 어수룩한 캐릭터들에 관조적인 입장이 되어 웃다가, 어느 순간 뜨끔한 기분을 느꼈던 시청자들은 이런 도장을 찍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줄타기 “참 잘했어요”라고.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마지막 엔딩이 나온 후로 이 도장에는 반어적인 뉘앙스가 하나 더 붙게 되었다. 그것은 아쉽게도 비꼬는 투의 “참 잘했어요”다.

드라마의 성공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와의 공감대가 아닐까. “정말 리얼하다”거나 “대사가 마음에 팍팍 꽂힌다”거나 혹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것은 모두 공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드라마들은 제각각의 방식을 추구한다. 최근 들어 보여지는 그 경향은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혹은 그 둘 다이거나’한 것이다.

리얼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vs ‘에어시티’
불륜이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내 남자의 여자’는 자칫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공식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랬다면 공감은커녕 비난만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가슴에 팍팍 꽂히는 김수현식의 대사의 맛에,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공감을 끌어냈다. 폼잡지도 않고 또 과장하지도 않는 드라마 전개는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정말 리얼하다’는 반응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이 불륜드라마는 시청률에서의 성공과 함께 불륜이란 소재를 한 차원 더 넓혔다는 가치평가까지 동시에 얻었다.

반면 리얼함으로 따지면 억울할 정도로 탄탄한 현장의 기록들을 해나간 ‘에어시티’의 경우엔 어떨까. 일단 실제 인천공항에서 촬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드라마의 리얼함을 설명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제작 전부터 국정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정도로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면 반드시 필요한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드라마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유는 이 좋은 소재들이 제대로 된 스토리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그 무게를 감당 못한 ‘에어시티’라는 비행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리얼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라리 만화 같은 이야기라도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라는 걸 이 드라마는 잘 보여주고 있다.

만화 같은 드라마, ‘쩐의 전쟁’ vs ‘메리 대구 공방전’
반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수목드라마들은 모두 만화의 속성을 갖고 있다. 만일 이들 드라마들을 만화적 장르의 틀로 구분한다면 ‘쩐의 전쟁’은 사실극화가 될 것이고, ‘메리 대구 공방전’이나 ‘경성스캔들’은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들 드라마 속의 대사들이나 액션은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만화적인 프레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현실적이지 않은 과장된 장면들을 오히려 재미로 전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게임과 같아서 일단 그 드라마가 취하는 룰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룰에 따라서 과장은 오히려 리얼한 재미로 둔갑하게 된다.

그렇다면 똑같이 만화의 속성을 취하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은 왜 성패가 갈리게 된 걸까. 특히 ‘쩐의 전쟁’과 ‘메리 대구 공방전’은 그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 돈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멜로 드라마의 퇴조가 가져온 여파에 억울할 것 같다.

이 톡톡 튀는 새로운 형식을 가진 드라마는 그 기본구도를 멜로 드라마로 가져가면서, 만화적인 참신한 시도가 자칫 네 명의 청춘남녀가 벌이는 가벼운 드라마로 오인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메리 대구 공방전’이 그렇게 만화처럼 키득대는 것으로 끝나는 가벼운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반면 ‘쩐의 전쟁’은 만화적인 연출을 가져가면서도 그 태도는 늘 진지함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쩐의 전쟁’에 더 무게를 두게 하는 요인이다.

리얼함과 만화 같음, 그 얇아진 경계
재미있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상충될 것 같은 ‘리얼함’과 ‘만화 같음’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 간다는 점이다. 과거라면 ‘만화 같은 스토리’라는 문구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섞여 있었지만 요즘은 정반대가 되었다. 만화 같은 스토리는 이제 ‘재미있다’는 의미로 더 많이 읽힌다. ‘풀하우스’나 ‘궁’의 성공이 그걸 말해주고, 만화는 아니지만 만화적 감수성으로 성공한 ‘환상의 커플’은 만화적 재미가 이제 드라마 자체로도 생산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된 것은 만화가 그만큼 하위장르에서 상위장르로 승격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제 드라마의 리얼함이라는 것이 늘 검증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인터넷에 몇 마디 키워드만 넣으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현장의 목소리 앞에서 드라마의 리얼함이란 알몸은 그대로 시청자들 앞에 노출된다. 그러니 만화적 감수성을 담은 연출은 여러모로 장점을 갖게 된다. 리얼함의 시험대에 오르지 않아도 되면서, 그 만화라는 장르적 특징 속에서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쩐의 전쟁’이다. 만화적인 연출이 의도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상황이 늘 긴박한 이유는 바로 이런 장점들을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드라마의 공감대를 말할 때 우리는 장르나 소재 같은 겉으로 드러난 드라마의 모습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보여지는 건 만화적이지만 보면 볼수록 리얼한 드라마가 있는 반면, 보여지는 건 리얼하지만 그 안에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 리얼하지 못한 드라마가 있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에서 중요해진 건 탄탄한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태도로서의 진정성이다. 그것이 담보될 때, 드라마는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상관없이 공감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돈 vs 사람, 누가 이길까

돈 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신문을 펼치기만 하면 어느 면에서나 그 글자들 이면에 흐르는 돈 냄새를 맡게 되는 시대, 돈에 웃고 돈에 우는 물신화된 세태를 사채업자라는 직업을 통해 극화한 ‘쩐의 전쟁’은 이제 이 본격적인 질문에 근접해가고 있다. ‘쩐의 전쟁’이란 제목은 표면적으로 보면 금나라(박신양)로 대변되는 ‘착한 쩐’과 하우성(신동욱)으로 대변되는 ‘악한 쩐’의 전쟁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돈과 사람의 대결을 그려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칼바람이 도는 드라마 속에서 탈속한 듯한 인물로 그려지는 독고철(신구)마저, “사람은 돈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돈의 위력은 사람으로서는 넘어서지 못할 산처럼 보인다. 주인공 금나라 역시 마찬가지. 마동포의 지하금고에 숨겨진 돈 보물을 얻게되자 보이지 않는 돈의 욕망이 그를 잠식해 들어간다. ‘제일 무서운 것이 돈 중독’이라는 독고철의 말처럼, 금나라 역시 저 스스로의 돈 중독이란 무덤을 파고 들어간 마동포의 욕망을 느낀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모두 ‘돈의 노예’가 되느냐 ‘돈의 주인’이 되느냐를 두고 갈등한다. 금나라의 든든한 ‘담보(?)’인 서주희(박진희) 또한 거액의 돈 앞에 양심을 버릴 결심까지 하게 된다(물론 무위에 끝났지만). 금나라의 친구인 철수는 가족을 위해서라는 핑계 앞에 우정을 저버린다(이것도 역시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돈에 대해 아쉬울 게 없이 자란 이차연(김정화) 역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불량채권 해결을 위해 악명 높은 불량처리반(?)을 부른다.

이야기는 천사리 마을로 장소를 옮기면서 좀더 대결구도를 본격화시킨다. 독고철이 어려운 사람들의 일수를 받아 살 터전을 마련한, 천사리 마을은 독고철의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다는 점에서 그의 개인적인 사랑이 좀더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실천화된 공간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하우성이 내놓는 돈의 유혹 앞에 쉽게 흔들린다. “난 실패한 부자다.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어도 사랑은 안 그렇거든.” 천사리 마을과 그 마을에 살던 독고철의 옛사랑 이야기와 오버랩되면서 드라마는 금나라와 서주희의 사랑을 엮어낸다.

초반부 욕망의 질주에서 드라마는 이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꿈틀대는 돈에 대한 욕망 대신 멜로 구도가 본격화되고, 천사리라는 환타지적인 공간이 등장하면서 조금은 도식적이고 교훈적인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초반부의 긴장감을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마동포(이원종)는 병원신세를 지고 있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독고철의 격언 같은 문구들은 초창기의 그것과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초반부의 경구들에는 ‘돈 벌기’에 대한 노하우를 담고 있었지만 이젠 ‘돈 제대로 쓰기’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내가 부자가 된 건 많은 가난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진실을 말하는 독고철의 이야기가 어딘지 나와는 동떨어진 교훈적인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혹 우리의 관심은 ‘부자’나 ‘돈 벌기’에 있었지 ‘가난한 사람’이나 ‘돈 제대로 쓰기’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돈도 있어야 가난한 사람도 돌아보고, 제대로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돈이 먼저인가, 아니면 돈에 대한 곧은 생각이 먼저인가 하는 고민 앞에서 우리 역시 돈과 사람이 대결하는 ‘쩐의 전쟁’의 한가운데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이 시대의 부자와 가난한 자

물론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현실이라는 기본 전제가 없는 한, 드라마가 가진 공감의 틀은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자를 동경한다거나 좋은 배경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그 사회가 가진 현실의 한 측면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들이 잡아내는 현실은 과거와 같은 그런 막연한 현실, 혹은 천편일률적인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좀더 구체적인 현실이다. 마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질 만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소재들이 드라마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쩐의 전쟁’, 개인부채 문제를 건드리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개인부채와 파산의 문제를 사채업자라는 구체적인 직업을 통해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는 ‘쩐의 전쟁’, 겉으로 보기엔 백수들의 희망가처럼 보이지만 밑바닥에 청년실업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메리 대구 공방전’, 그리고 우리의 암담한 교육현실은 물론 천민자본주의가 가진 천박한 현실 등 가장 첨예한 지역불균형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그것이다.

‘쩐의 전쟁’은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사채 대부업의 폐해에 직격탄을 날린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세상을 정작 드라마는 만화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현실의 반응은 뜨겁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대부업체 광고 중단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급격히 떨어진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금리인하까지 고려하게 된 대부업체들의 상황은 이 드라마가 건드린 현실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메리 대구 공방전’, 청년실업문제를 다루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장기화되고 있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다룬다. 3번 정도 회사의 문을 두드리면 입사할 수 있었던 70년대의 상황은 이제 아련한 향수가 됐다. 지금은 심지어 300번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취업의 문 앞에 청년들은 절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메리(이하나)와 대구(지현우)는 바로 그들을 대변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좀더 우회적으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메리와 대구가 처한 사회현실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 보다 드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갖는 꿈과 희망’의 이야기로 발전시킨다. 이것은 드라마적으로만 보면 좀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시도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다루는 현실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시청률 상승 같은 즉각적인 반응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 교육 불평등 문제를 다루다
새로 시작한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이 모든 사회문제의 총체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천민자본주의가 가진 경박한 세태는 물론이고, 강남강북으로 나누어진 지역 불균형의 문제, 입시위주 교육정책이 양산하는 사회문제가 들어 있다. 청년실업과 사채업의 문제가 이 교육문제, 경제적 불균형의 문제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고 그 지역에서 공부한 결과가 성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인 성공과 실패가 이렇게 부의 세습과 직결된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 세 드라마가 결국 다루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돈의 문제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 물론 부자는 모두 잘못됐고 가난한자는 모두 옳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 드라마가 그려내는 부자들의 모습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제대로 쓰는 이가 없기에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가난한 자라는 점이고, 그들이 이런 사회적 문제 앞에 취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힘겹게 만든 이 돈을 마치 경멸하는 것처럼 대하지만 결국 그 욕망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그만큼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물림의 틀이 견고하다는 방증이며, 그만큼 우리에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그 견고함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것이 이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평면적이기보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이유이며, 또한 이들 돈의 현실을 다루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더미 앞의 금나라 혹은 연예인들

역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드라마 ‘쩐의 전쟁’은 마동포(이원종)가 사무실 지하비밀금고에 숨겨둔 돈더미로 첨예한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의 두 욕망이 부딪치면서 시청자들은 돈에 대한 은밀한 쾌감을 만끽하는 중이다. 마동포가 숨겨놓은 돈이 몇 장의 수표도 아니고, 은행계좌의 수치도 아닌, 만 원짜리 돈더미란 점은 금나라(박신양)가 그 돈을 찾는 이야기를 자본주의라는 섬에서 보물을 찾는 이야기로 환원시킨다. 돈 다발이란 구체적인 돈의 형태는 수치로 포장된 자본주의 사회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그것은 보물이 아니고 돈이라는 점이다. 보물이야 낭만이라도 있겠지만, 돈 다발은 무언가 어둡고 음침한 구석이 있다. 그것도 사채업으로 서민들의 고혈을 짜내서 모아진 돈 다발은 더욱 그렇다. 비공개적인 돈의 흐름이 가능한 돈 다발에는 사실 그 돈을 벌기 위해 떨어진 땀 냄새보다는 누군가 흘린 피 냄새가 더 진동한다. 그 돈더미 앞에서 금나라는 갈등한다. 아니 그 어느 누구라도 그 앞에서는 갈등하게 될 것이다.

마동포가 서민들의 희망을 짓밟아가며 지하 비밀금고에 쌓아놓은 돈 다발의 적나라함은,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덧씌운 대부업체 광고의 포장을 벗겨버린 이 드라마의 적나라함을 고스란히 닮았다. 손만 뻗으면 자기 손에 잡히는 그 돈 다발 앞에서 갈등하는 금나라의 모습은, 대부업체들의 광고 앞에 선 연예인들을 연상케 한다. “무이자 무이자-”를 외치며 유혹하는 돈은 자칫 이미지 실추라는 살인적인 이자로 되돌아올 판이다.

적어도 ‘쩐의 전쟁’을 두고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란 얘긴 하지 못할 것 같다. 연예인들은 줄줄이 대부업체와의 광고 계약을 거절하거나, 취소했고, 대부업체들은 벗겨진 실체로 인해 추락된 이미지를 금리인하라는 최후(?)의 방법으로 넘어서려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살인적인 이자율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쩐의 전쟁’의 인기는 이런 현실까지 움직이는 리얼한 스토리, 연출, 연기 때문이거나, 드라마가 그리는 현실 자체의 지독함 때문이다. 혹은 그 둘 다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는 그저 ‘쩐’을 다루는 게 아니고, ‘쩐의 전쟁’을 다룬다. 즉 쩐에도 ‘좋은 쩐’과 ‘나쁜 쩐’이 있어서 서로 전쟁을 벌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선악구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란 욕망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그걸 구분하는 기준이다. 금나라는 바로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드라마 속 대사대로 “법보다는 주먹이 앞서고, 주먹보다는 돈이 앞서는” 세상에서 돈의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가 그리는 쩐의 전쟁의 승리자는 아마도 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사람이 아닐까. 돈더미 앞에 앉아 갈등하는 금나라도, 많은 연예인들이 광고라는 유혹의 쩐의 전쟁 속에서 포기함으로써 승리한 그 어려운 길을, 걸어가게 될까. 아마도.

흔히 시쳇말로 ‘돈에 웃고 돈에 운다’는 표현은 뒤집어 말하면 같은 돈이라도 그 얼굴(?)은 제각각이란 말이 된다. 돈에는 얼굴이 있다. 착한 얼굴, 나쁜 얼굴, 더러운 얼굴, 땀에 젖은 얼굴,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애증의 얼굴까지.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은 바로 그 돈의 다중적인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한 드라마다.

돈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의 금나라
사채업자란 직업의 설정은 돈이 가진 더러움과 숭배 사이의 간극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나라(박신양)는 돈, 특히 사채를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사람이다. 사채 빚 때문에 부모도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버렸지만 여전히 사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에게 돈은 똥보다도 더 더러운 존재다. 하지만 그는 “돈 많이 벌어 돈 땜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사채업에 뛰어든다. 여기서 돈의 얼굴은 바뀐다. 돈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숭고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이 아이러니하다. 그의 아버지를 자살로 이끌었던, 그래서 돈을 똥보다 더럽게 생각하게 했던 그 집요한 빚 독촉을 하러 다닌다. 드라마는 기술적으로 금나라가 돈을 받으려는 채무자들을 도박중독자, 조폭, 명품중독자 등으로 그린다. 이를 통해 금나라의 빚 독촉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주인공의 딜레마를 의도적으로 가려버리기 위함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이러니 가득한 금나라란 인물에 별 저항감 없이 감정이입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돈에 쪼들렸던 기억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일 그런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는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이 폭발적인 걸 보면 지금은 역시 돈이란 얼굴에 태연할 수는 없는 시대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니 드라마 초반부에 금나라가 가졌던 그 추락에 누구든 쉽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쓰레기를 주워먹으며 가지는 감정은 저 금나라가 그런 것처럼 복수심이다. 돈 나도 한번 벌어보겠다는 강력한 욕망이다.

하지만 이 욕망은 금기와 동의어다. 자신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바로 그 (타인의)욕망이기 때문. 그래서 그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돈 벌어 돈 땜에 어려운 사람 돕고 산다’는 것이다. 신문 사회면에 ‘평생 벌은 몇 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미담이 그런 명분을 가당한 것으로 여기게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있다. ‘평생 벌은 몇 억 원’의 얼굴이 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금나라가 하는 사채업으로 돈을 벌어 어려운 사람 돕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표현한대로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시청자들은 기꺼이 금나라의 명분을 받아들인다. 현실에선 어려운 일, 드라마에서라도 주인공에 감정이입되어 신나게 돈을 벌어보겠다는데 뭐가 문제일까. 드라마 초기에 사채업이 보여주는 돈의 무서움은, 금나라가 사채업자가 되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면서 벌면 벌수록 즐거운 대상이 된다. 이제 돈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은 교차된다. 금나라의 여동생 은지(이영은)의 포장마차를 때려부수는 사채업자들을 보면서 더러운 돈에 혀를 차다가, 금나라가 불량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벌이는 기상천외한 장면들에서는 재미와 욕망의 대상이 된다.

쩐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이 드라마의 돈에 대한 집요함은 멜로조차 채권과 채무의 관계로 풀어낸다. 서주희(박진희)는 금나라의 담보(?)로 둘 관계는 외견상 채무자와 채권자로 설정된다. 그런 낌새를 차린 금나라의 옛 애인, 이차연(김정화)은 서주희를 불러서 그 돈 대신 갚아줄테니 그 관계를 청산하라고 말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금나라는 이차연을 찾아와 함부로 서주희를 대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순간, 이차연은 각서를 끄집어낸다. 그 각서는 ‘다시는 이차연을 만나지 않겠다’는 전제로 금나라가 돈을 빌렸을 때 쓴 것. 이차연은 금나라에게 돈을 갚고 이 각서 가져가라고 한다. 이차연이 채권자고 금나라는 채무자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멜로의 관계를 돈으로 풀어내는 이면에는 ‘돈이면 사랑까지 가능한’ 세태를 꼬집는 풍자가 들어있다. 실제 드라마 속 상황은 표현만 채권 채무로 했을 뿐,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지만 이런 얘기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돈에 대한 풍자적인 접근방식 때문이다. 이차연에게 하우성(신동욱)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 대신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이차연이 “나한테 데려올 수 있냐?”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 드라마의 멜로는 정확히 이 이야기가 하려는 돈의 이중성과 맞닿는다. 하우성이 말한 건 ‘돈이면 다 되는 세태’이고 이차연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사람 마음’을 말한 것이다.

돈에 대한 ‘쩐의 전쟁’의 메시지는 대부분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독고철(신구)이란 전설적인 사채업자에게서 나온다. “이제 그만 마동포 밑에서 나와 독립하라”면서 툭 던지는 말,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핵심에 근접한다. 자신은 다를 거라 명분 세우며 뛰어든 진흙탕 속에서 결국은 누가 누군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은 그 진흙탕의 원료가 돈이라는 다중적 얼굴을 가진 놈이기 때문이다. 결국 금나라의 아버지가 죽은 것도 “돈 때문이지 마동포 때문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돈 세상에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 돈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사채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대한 이야기의 극단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샐러리맨식으로 말하면 돈 벌기 위해서 간도 쓸개도 집에 놔두고 직장이란 전쟁터로 나가는 건 돈 벌어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지만, 차츰 돈에만 끌려 다니다가 행복을 내팽개치게 되는 식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사회라는 틀 속에서 누구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쩐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우리는 돈이란 다중적 얼굴을 가진 괴물과 싸우러 저 쩐의 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괴물과 싸울 때 가장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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