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혼'에 특히 중요한 적당한 거리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행복하세요.”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조석무(차태현)는 느닷없이 강휘루(배두나)에게 존칭을 했다. 이미 이혼 도장을 찍었지만 같은 집에서 함께 지내왔던 그들은 완전한 이별을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여느 부부가 그러하듯 편하게 반말을 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강휘루가 드디어 집을 떠나 자신이 하고팠던 동화작가의 길을 가겠다 결심하면서 두 사람은 그 이혼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강휘루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 잔상에서 조석무는 벗어나지 못했다. 침대에서 우연히 발견된 강휘루의 머리끈을 계속 만지작거리는 건 조석무가 강휘루에게 갖고 있는 여전한 미련과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는 강휘루의 말에 그는 그걸 축하하며 “행복하세요”라는 존칭을 썼다. 그건 두 사람 사이의 실질적인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잘자요.” 조석무의 존칭에 강휘루 역시 존칭으로 이별을 고했다.

어쩌면 <최고의 이혼>이 담아내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 ‘거리감’에 대한 것일 수 있었다. 강휘루는 헤어지기 전 그 거리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 하면 상대가 자기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하고.” 그 말은 그렇게 거리감이 사라진 가까운 관계가 되면서 오히려 상대방을 잘 못 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일 게다. 

집을 나와 찾아가게 된 출판사에서 강휘루는 오기완(이종혁)을 만나고, ‘적당한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장 가까운데 가장 몰랐다”고 강휘루는 조석무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꿈인 동화작가의 길을 몰라줬다고 조석무에게 화를 냈지만, 그 또한 조석무가 음악에 꿈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려 하지 않았다는 것. 오기완은 “원래 가까우면 더 잘 안보여요”라고 말한다. 갑자기 강휘루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가까우니 형체가 잘 안보이죠?”라고 물으며 ‘적당한 거리’여야 잘 보인다고 말한다.

<최고의 이혼>이 이런 제목을 갖게 된 건 어쩌면 우리네 관계의 궁극적 목표가 결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혼 그 자체도 아니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그것보다는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진짜 목표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헤어지면서 서로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게 되는 조석무와 강휘루의 관계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최고의 이혼>은 그 관계 구조만 보면 뻔한 4각 관계가 아닐까 오해될 수 있는 틀을 갖고 있다. 조석무와 강휘루, 그리고 이장현(손석구)과 진유영(이엘), 이렇게 네 사람이 부부였다가 헤어져 각자가 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관계의 변주. 그래서 자칫 뻔한 4각 관계의 자극적인 늪으로 빠질 수 있었지만, 거기서 벗어나게 해준 건 바로 그 인물들 사이의 ‘적당한 거리’였다.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 조석무에게 진유영이 “자보자. 일단 한번 자보자”고 충격적인 제안을 하는 장면과, 갑자기 강휘루와 이장현이 격렬한 키스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껏 잘 흘러왔던 <최고의 이혼>이 결국은 4각관계의 늪으로 빠져드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끝까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면 안될까. 적어도 우리네 정서를 생각한다면.(사진:KBS)

만남 아닌 이별을 얘기하는 '최고의 이혼'

“조석무씨에게. 조석무씨라니 이렇게 적고 놀랬어요. 당신을 이름으로 부른 게 언제지? 너무 오랜만인 거 같아 왠지 긴장이 되네요. 일단 보고 드립니다. 저 집을 나갑니다. 방을 보고 놀랐습니까? 입 벌리고 있지 않나요? 지금 설명한 테니 입을 닫아 주세요. 있잖아요. 조석무씨 아무래도 이대로 같이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이혼하고 시간도 꽤 흘렀잖아요.”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강휘루(배두나)는 전 남편 조석무(차태현)에게 편지를 쓴다. 이미 이혼을 했지만 당분간 같은 거처에서 머물며 지냈던 그들이었다. 강휘루는 이혼의 사유로 조석무가 “너무 몰라서”라고 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뭐가 꿈인지 그런 것들을 조석무는 알려 하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는 것. 하지만 강휘루는 뒤늦게 자신 역시 조석무에 대해 제대로 알려 한 것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가 홀로 음악노트를 쓰고 있었고, 그의 후배 임시호(위하준)가 부르는 곡이 사실은 조석무가 만든 곡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강휘루는 드디어 조석무와 이혼한 것이 온전히 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 진짜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

조석무는 자신의 속내를 굳이 드러내는 일을 너무나 싫어했다. 그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진유영(이엘)에게 자신이 딱 한 번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안 좋을 일을 당한 여직원에게 회사 상사가 “힘내”라고 말하는 걸 보고 그 상사를 때렸고 결국 해고당했다는 것. 그 이야기를 했지만 조석무는 진유영에게 “힘내”라고 그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 “미안하다”며 돌아서는 조석무에게 진유영은 “고맙다”고 말한다. 표현을 잘 하지 않던 그가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고 그 마음이 전해질 때 갖게 되는 기쁨을 경험한다.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을 정리하듯 편지를 통해 강휘루는 조석무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적어나간다. “당신한테 사과한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미안해요. 어쩌면 나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모두 당신한테 전가했는지도 모릅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무심하고 이기적이라고. 같은 꽃을 보고 같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신을 탓했지만 생각해보니까 누구보다 이상한 사람은 나일지도 모릅니다.” 강휘루는 이제 헤어짐의 이유가 상대방의 잘못만이 아닌 나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여러 가지로 조절이 잘 안돼요. 좋아하는 사람과는 생활하는 데서 마음이 맞지 않고 마음이 맞는 사람은 좋아지지 않아요. 애정과 생활은 항상 부딪치고 뭐랄까. 그건 내가 쭉 안고 가야하는 성가신 병처럼 느껴집니다. 당신과 함께 영화를 보며 항상 10분씩 늦었잖아요.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약속장소에 항상 당신이 서 있었어요. 아 이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싶었어요. 그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멋진 풍경이었거든요. 당신을 몰래 보는 게 좋았습니다.”

함께 사랑하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강휘루는 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아”라고 말한 바 있다. 부부든 연인이든 사랑은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그래서 함께 부대끼며 살다 보면 모든 게 맞을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점들이 있어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일 지도. 강휘루는 그 다른 것들을 이제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상대방에 대한 자잘한 고마운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맛있는 밥 고마웠어. 따뜻한 침대도 고마웠어. 무릎위에서 머리를 쓰다듬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훔쳐보고 자세히 보고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소중한 행복이었습니다. 석무씨. 고마웠어요. 헤어지는 건 내가 결정한 거지만 조금 외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당신을 몰래 보고 싶을 때는 또 어딘가에서...”

이렇게 길게 써나가던 편지를 강휘루는 끝내 조석무에게 남겨주지 못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걸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강휘루는 편지를 남기는 대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오므라이스를 챙겨먹으라는 쪽지를 대신 남긴다. 때론 밥 한 끼를 챙겨주는 일 속에 더 많은 속말들이 담기기도 하는 법이다. 

<최고의 이혼>은 특이하게도 헤어지는 법을 말하는 드라마다.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들이 ‘만남’을 이야기한다. 우연히 어떻게 만났고 그 만남의 순간은 얼마나 빛이 났으며 설레었던가를 말한다. 하지만 만남만큼 사랑을 완성시키는 건 어쩌면 ‘잘 헤어지는 법’은 아닐까. 헤어짐이 서툴러 때론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는 우리네 사회에서 만나는 법만큼 중요한 건 헤어지는 법이다. 서로의 소소한 일들조차 고맙게 느끼며 헤어질 수 있다면.(사진:KBS)

‘1박2일’, 먼저 떠난 김주혁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들

‘제2회 최고의 가을밥상’ 특집으로 마련된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은 알고 보니 ‘영원한 구탱이형’ 故 김주혁을 위한 1주기 특집이었다. 김주혁이 특히 낙지와 돼지갈비를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는 멤버들은 그 날 ‘최고의 가을밥상’ 특집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다고 했다.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저마다 김주혁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한 바닷가 카페에 마련된 ‘특별한 사진전’에서 멤버들은 사진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김주혁의 모습을 보며 먹먹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생전 김주혁의 육성. “잘 지내고 있냐 동생들”이라는 그 목소리에 울컥해졌다. 아마도 <1박2일>을 떠나고 나서 보내온 육성이었을 그 목소리가 이렇게 고인이 된 1주기에서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1박2일>에 처음 김주혁이 출연했던 그 시절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회고하고 추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시청자들이 모두 기억하는 그 모습들이 새록새록 다시금 떠올랐다. 집에 급습해 잠자는 김주혁을 깨우며 장난치던 모습과, 그렇게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서먹해했던 모습, 그리고 그 유명했던 어느 시골에서 벌어진 인지도 대결에서 단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해 당했던 굴욕의 순간들... 그러면서 조금씩 <1박2일>이 익숙해지고, 멤버들과 형 동생 사이로 끈끈해지는 그 과정들이 다시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그는 김준호가 그리 웃기지도 않다 여겼던 이주일, 서영춘 선생님의 성대모사에도 자지러지듯 웃어주었고, 늘 의지했던 동생 데프콘에게 잘 해주라며 <1박2일>을 떠나서도 챙겨주려 했으며, <1박2일>의 선배격인 김종민의 아버지 빈소에 가서는 맏형답게 동생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막내 정준영과도 점점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형 같은 사람이었고, 배우로서도 큰 선배인 그는 유작을 통해서도 차태현을 극장에서 펑펑 울게 만든 사람이었다.

김주혁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는 대목은 매일 함께 동고동락해온 멤버들은 물론이고 <1박2일>을 하며 인연을 맺게 된 어느 시골의 어머니나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게 된 후배와도 그저 지나치는 관계가 아닌 늘 기억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어느 시골에서 인연을 맺은 어머니와 사진관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그 어머니가 “아들”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고, 함께 출연했던 후배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직접 전화까지 걸어 축하해줬다는 김주혁에게서 그 마음이 느껴진다. 삶이 힘들고 짧으며 어느 순간 갑자기 꺼지는 것일지라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바로 이런 따뜻한 마음이 그 후에도 계속 남아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1박2일>을 마지막으로 촬영하고 떠날 때, 늘 함께 했던 카메라맨이 눈물을 보이는 걸 보고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는 김주혁에게서 ‘아름다운 사람의 온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영화 <독전>에서 그 독한 악역을 소화해냈지만, 그 속에서도 특유의 김주혁의 면모들을 발견해내는 친구에게서 삶이 짧고 그렇게 끝나는 것이라 슬플지라도 누군가 진가를 기억해줄 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김주혁이 처음 <1박2일>에 출연해서 하차하기까지의 짧다면 짧은 그 과정은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생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 세상에 나오게 되어 어색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그 따뜻한 온기들 속에서 웃고 울고 즐거워했던 시간들을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은 누구나 끝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보면 누구나 한 순간처럼 느껴져 더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삶이 아니던가. 먼저 간 김주혁은 마치 ‘1박2일’처럼 짧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사진:KBS)

이엘·배두나에게 버림받은 차태현 통해 '최고의 이혼'이 하고픈 이야기

“10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모르네. 나 너와의 사이에 좋은 추억 같은 거 하나도 없어. 헤어질 때 생각했어.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이런 남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같은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시절 첫사랑 진유영(이엘)이 갑자기 내뱉은 이 말에 조석무(차태현)는 충격에 빠진다. 조석무는 진유영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목격한 후, 그 찜찜함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진유영을 찾아가 생각해준답시고 그 사실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진유영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은 우리가 흔히 이혼이나 헤어짐에서 상상하는 그런 극적인 이유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통 이혼이라고 하면 계기가 되는 엄청난 사건을 떠올린다. 무수한 드라마들이 불륜을 다루고 끔찍한 사건들을 그 헤어짐의 이유로 제시하듯이. 하지만 <최고의 이혼>은 그 사유가 자잘한 일상의 누적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들, 혹은 하필이면 상대방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 ‘기막힌 타이밍’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첫 회 만에 이혼을 하게 된 조석무와 강휘루(배두나)의 이혼 전 분위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어지자”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강휘루의 그 지점에서 되돌아보면 아주 자잘한 일상 속에 담겨진 무수한 상처들이 느껴진다. 강휘루의 앞에서 습관처럼 나오는 조석무의 한숨이나, 조금이라도 어질러진 걸 견디지 못해 잔소리를 해대며 치우고 또 치우는 조석무의 행동은 강휘루의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른다. 

물론 조석무는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출동해야 하는 보안업체 직원으로 고객들의 자잘한 요구들에 힘겨워한다. 그들에게는 별 것도 아닌 요구처럼 보이지만 조석무는 그걸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그래서 조석무는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비관주의자가 됐다. 젊은 날에는 꿈도 있어 기타를 치고 음악을 했지만 지금 그의 소망은 고양이와 함께 아무도 없는 산골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거나, 커피 한 잔에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즐기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그것을 강휘루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치부한다. 

그런 일상들이 오래도록 겹치고, 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해가 깊어지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동화작가가 꿈인 강휘루는 자신이 쓴 원고를 조석무가 한번쯤 읽어봐 주기를 바라며 식탁 위에 흩어 놓지만, 실수로 물을 흘려 젖은 원고를 조석무는 정리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잡동사니 정도로 여긴다. 결국 폭풍우가 치던 날, 문을 두드리는 게스트하우스 손님 때문에 두려워 조석무에게 빨리 와 달라 보낸 문자의 답변으로, 문밖에 있는 화분을 들여놓으라는 문자를 받게 된 강휘루는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조석무가 첫 사랑인 진유영과 헤어지게 된 이유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어째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는가의 이유는 진유영의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부였던 아버지에 그토록 의지했던 이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게 되면서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자신도 음악의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진유영이 작곡한 곡을 조석무는 그가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표절”이니 “쓰레기”니 하는 지독한 표현으로 폄하해버린다. 물론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이야기지만, 그 말은 아마도 진유영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상처로 남았을 게다. 그리고 심지어 밴드부에서 진유영이 만든 곡에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싸구려 꽃무늬 변기 커버 같은 음악”이라는 말을 한다. 게다가 하필이면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의 뉴스를 보면서 조석무는 진유영에게 “사람은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러니 조석무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한 진유영의 마음이 이해될 밖에.

물론 여기에는 일본 원작 특유의 독특한 정서가 깔려 있다. 즉 일본인들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그 정서가 깔려 이런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석무가 충격을 받는 건, 그가 무심하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다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몰라서다. 알고 보면 조석무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에 걸린 반려견을 어딘가로 데려가 버린 일 때문에 지금껏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충격적인 경험은 조석무에게 알 수 없는 분노와 체념, 깔끔한 것에 대한 집착, 부정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들을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이혼>이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연민’이 아닐까. 본래 비극이 가진 가장 큰 기능은 위에서 인간사를 내려다보며 그들이 저도 모르게 어쩔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 관계의 비틀어짐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갖게 되는 ‘연민’의 감정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 했고가 아니라 한 치 눈앞의 비극적 상황들을 모른 채 그 속으로 발을 들이는 인간의 소소함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연민의 감정. 

<최고의 이혼>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비극적인 선택들이 굉장한 사건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들 속에서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인간적 한계’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살아가고, 뒤늦게 그 이유들을 발견하며 충격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알아가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최고의 이혼>은 그래서 제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최악의 결혼’의 반대말처럼 다가온다.(사진:KBS)

이미 완성된 ‘거기가 어딘데’ 시즌2로 빨리 돌아오길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가 시즌 종영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즌2를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오만의 사막과 스코트랜드 스카이섬의 습지를 간 시즌1으로 <거기가 어딘데>는 이미 그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어느 정도는 완성한 면이 있다. 그러니 그 구성으로 또 다른 낯선 곳으로의 탐험을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가 어딘데>가 갖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의미는 먼저 그 소재의 확장을 빼놓을 수 없다. 여행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니 해외의 어떤 지역이든 카메라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심지어 정글까지 찾아들어가는 상황이 아닌가. <거기가 어딘데>가 시도한 오만의 아라비아 사막은 그런 점에서는 과거 교양 프로그램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공간을 예능 또한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시킨 면이 있다.

사막이라고 하면 막연히 끊임없이 펼쳐지는 모래만이 있어 그 스토리가 단순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또 다른 스토리들이 무궁무진했다. 50도까지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그나마 햇볕을 피하며 갈 수 있는 나무들을 중심으로 루트를 개척해가며 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했고, 걷고 또 걷는 그 단순한 풍경 속에서도 저마다 갖게 되는 소회와 느낌들이 있어 생각할 여지를 더 많이 주었다. 특히 우리에게 물 한 모금, 맥주 한 캔처럼 너무나 흔해 별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새삼스레 소중한 행복이라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면도 있었다. 

중요한 건 <거기가 어딘데>의 인물 구성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저마다의 캐릭터가 살아났다는 점이다. 오만편에서부터 대장 역할을 톡톡히 한 지진희는 <거기가 어딘데>만이 갖는 ‘탐험 예능’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실제로 탐험을 즐기고, 동료들을 챙기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조세호는 자칫 고행이 될 수 있는 탐험 예능에 ‘웃음’이 가진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 인물로, <거기가 어딘데>가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색깔을 더해준 인물이다. 자신 역시 힘겨운 도전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함께 하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했다. 그 웃음이 있어 고행은 즐거운 도전이 될 수 있었다. 

배정남은 오지에서도 낭만을 찾는 인물로서 조금 현실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즐기려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조세호와 합을 맞춰 개그 듀오가 된 그는 ‘의욕’과 ‘현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탐험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그는 충실하게 수행했다.

마지막으로 차태현은 ‘보통의 기준점’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오지 탐험이 문제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것 자체가 도전으로 다가올 정도였던 그는 이번 탐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기회를 얻었다. 그 보통의 기준점이 있어 시청자들은 그 곳이 오지라는 걸 실감하게 되고 그걸 넘어서는 모습에 감동 같은 걸 느낄 수 있게 된다. 

탐험예능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고, 거기에 인물 구성까지 완성된 상황이니 이제 좀 더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을 떠날 일만 남았다. 물론 탐험이라는 특성이 ‘한계상황’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맞춰줘야 하는 중요한 숙제를 남기고 있지만, 바로 그런 경계들이 예능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교양과 예능의 경계 사이에 뛰어들어 탐험예능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듯이. 그 의미 깊었고 재미있었던 기억들이 지속될 수 있게 어서 시즌2로 돌아오길...(사진:KBS)


맥주 한 캔 나눠 마시는 짜릿함, '거기가'가 발견한 소확행

KBS 예능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에는 자막에도 그림자를 만들어 넣는다. 사실 처음 이 그림자가 들어간 자막을 봤을 때는 그저 디자인적인 표현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사막 횡단이 본격화되면서 그것이 그저 디자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제작진도 똑같이 경험했던 그 사막의 땡볕 속에서 한 자락의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시청자들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을 걸어서 횡단하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해 보이는 ‘탐험’이고,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도 특별한 재미요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가 어딘데??>는 그 단순함 속에 담겨진 의외의 관전 포인트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낮이면 심지어 5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의 기후 때문이다. 사실상 그 온도에 사막을 걷는다는 건 생존이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햇볕을 최대한 피해서 걸어야 하고, 작은 그늘이라도 찾아야만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건 단순해 보이는 사막 탐험의 명제지만, 그것을 실행해가는 탐험대에게는 매 순간의 작은 선택들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대장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지진희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를 해가 떠오르기 전에 주파해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강행군을 펼치지만, 언덕을 넘으면 나타날 거라 기대했던 나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멘붕에 빠진다. 기대와 실망의 반복은 자칫 의지 자체를 꺾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그걸 버티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지진희 옆에는 계속해서 웃을 수 있게 농담을 던지는 조세호와, 어딘지 힘에 부쳐 보이지만 그래도 끝없이 허세를 부리는 배정남과 묵묵히 동생들을 챙기는 차태현이 있었다. 게다가 이들을 찍는 제작진도 어찌 보면 대장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 책임감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힘든 길을 앞장서 나가 그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지진희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지진희가 이렇게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은 <거기가 어딘데??>가 가진 독특한 재미 포인트이기도 했다. 사막 탐험의 어려운 조건들을 하나씩 뛰어넘어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보여주는 흥미로움이다.

특히 사막은 작은 것들도 더 큰 울림으로 돌아오는 특유한 환경일 수 있었다. 도시에서라면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나무 한 그루, 그늘 한 자락이 사막에서는 엄청난 의미로 다가왔다. 일종의 거점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그 나무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편집에서조차 자막에 그늘을 넣어준 건 그런 의미였다.

또 1등으로 들어온 멤버에게 특혜를 주겠다고 선언한 제작진에게 지진희와 차태현이 각각 요구한 시원한 맥주와 콜라는 사막에서 마시니 그 시원함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한 모금씩을 나눠 마시면서도 도시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이 느껴졌던 것. 이른바 ‘소확행’이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멀리 있는 큰 행복이 아니라 작아도 가까이 있는 확실한 행복.

이것은 웃음에 있어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결코 웃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고, 심지어 ‘죽는다’는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게 되는 그런 환경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그 곳에서 조세호와 배정남이 나누는 작은 농담들도 더 큰 웃음으로 돌아왔다. 

왜 이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됐냐는 지진희의 질문에 조세호는 자신이 가진 고민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사막은 어쩌면 그 답을 전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당장 생존하기 위해 그늘을 찾는 일에 열중하면서 도시에서 가졌던 그 많은 고민들은 조금씩 지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게 따로 있을까. <거기가 어딘데??>가 사막에서 찾아낸 행복은 이런 자막으로 정리된다. ‘행복은 결핍을 통해 선명해진다.’(사진:KBS)

‘거기가 어딘데??’, 황량한 사막? 가득 채워진 사색거리들

사막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황량함’이 아닐까. 아무 것도 없고 버석버석한 모래만 밟히고 씹히는 그 곳을 횡단한다는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해 보인다. 제아무리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예능의 새 트렌드라고 하지만 사막이라는 황량한 곳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담는다는 게 무리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호진 PD가 굳이 사막을 선택한 건 그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또한 넉넉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누는 대화라면 그다지 주목되지 않을 이야기도 사막에서 걸으며 나누니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물론 이 곳에서 나누는 농담은 툭하면 나오는 ‘죽음’이야기와 더해져 웃음 또한 커진다. 희비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그 이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사막은 그 희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역시 넉넉하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사막이 배경이기 때문에 유독 잘 보이는 자막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치 있는 유머도 깔려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사색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귀들이 만들어내는 울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마치 사막이라는 빈 원고지에 하나하나 사색의 글을 적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번지점프 티켓을 샀어도 뛸 차례가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이런 공감 가는 문구로 시작한 3회 분은 ‘왜 굳이 황량한 땡볕을 걸으러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더하고, ‘이제 도로를 벗어나 이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을 적어 넣은 후, ‘이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음’이란 글귀로 이들이 드디어 사막횡단의 시작점에 들어서 있다는 걸 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 여정의 시작에 월프레드 세시저가 쓴 아라비아 사막 횡단기 ‘절대를 찾아서’의 한 대목이 소개된다. ‘우리 주위로는 훤히 드러난 지구의 뼈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래에 씻겨지고 있었다’ 사막이 어떤 곳인가를 잘 드러내는 그 글귀를 통해 ‘모든 안락함’이 40킬로 저편에 있는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막횡단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은 살짝만 뒤틀어내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지병을 토로하는 조세호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고 털어놓고 이어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는 두 번째 지병을 고백(?)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지병 고백은 웃음을 준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힘들 때도 긍정적인 걸 먼저 떠올린다고 말하는 조세호가 잠시 후 급격히 말이 줄어든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짐짓 비장하게 “탐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목표를(말을 못 맺음)..”이라며 무언가 명언을 할 것처럼 하다 결론을 못 맺는 조세호의 모습은 사막이 주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보여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냄으로써 사색과 웃음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사막 횡단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 그 혹독한 환경에 지쳐간다. 차태현은 일행을 살짝 벗어나 모래를 피해 걷기 시작하고 배정남은 동행하는 베두인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를 하소연을 하고 베두인은 노래를 부르며 그 지친 환경 속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 때 붙은 ‘사막 횡단 1시간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간다’라는 자막은 그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베두인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하는 장면에 더해지는 ‘베두인의 삶은 무척 고되다. 이방인은 물론 그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것은 삶 속의 죽음과 같다.’ 같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말이 들어간 자막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삶 속의 죽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뱀이 새를 잡아먹는 기이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장면을 덧붙이기 위해 유호진 PD가 요청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조세호의 과장된 연기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든다. 해가 살짝 저물어 온도가 38도로 떨어지자 “감기 들겠다”고 말하는 지진희의 한 마디가 만드는 웃음은 ‘삶 속의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 삶’ 역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사막의 절경에 감탄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막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해진 자막 역시 저 아이러니한 희비극의 공존을 잘 표현한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지진희가 “우리가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차태현과 조세호가 내놓은 이야기가 너무나 철학적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항상 사람은 생각한대로 하고 싶잖아. 계획대로 되고 싶고. 근데 계획대로 된 건 진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했을 때(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은?” 그러자 그 이야기에 조세호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태현이 형 얘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신인 개그맨 때는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으니까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욕심을 안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들이 또 오더라고요. 희한하게.” 

사막은 ‘평범한 사람도 사색을 하게 하는 땅’이다. 또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온 대신 신비로운 오후가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도 있었다”며 놀랍다는 지진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대목 그대로다. 사막은 황량하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 곳은 더 많은 사색거리와 이야기들을 채워주고 있으니.(사진:KBS)

‘거기가 어딘데??’, 사막이어서 가능한 새로운 묘미들

<1박2일> 시절부터 그랬지만 유호진 PD에게 일이 의외로 커지게 되는 건 애초부터 기획된 결과만은 아니다. 사막 탐험 예능이라는 KBS의 새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도 마찬가지다. “왜 하필 사막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유호진 PD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박2일> 시절부터 해외로 나가면 어떤 걸 해볼까 고민해왔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해외여행을 담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져 더 이상 새로운 걸 찾기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건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사막이 떠올랐고, 막연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녀온 답사여행에서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사막.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러니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피해야할 곳 1순위에 올랐을 공간이 어쩌면 사막이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아예 닿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 오히려 유호진 PD의 마음을 끌었다. 거기에 오롯이 인물들을 투입하고 그들이 마치 빈 도화지에 써나가는 그 행적의 기록들을 담아내는 건 ‘새로운 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 주어야할 재미 부분을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서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걱정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첫 방송분을 들여다보니, 그게 기우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출연진들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만으로도 빵빵 터지는 예능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발대식에서 다들 “어쩌다 낚였다”며 그 자리에 모인 지진희, 차태현, 조세호, 배정남은, 심지어 사막 탐험을 설명하기 위해 탐험가 남영호 대장이 등장하자, “어쩌다 보니 남영호 대장까지 등장한다”며 슬슬 사막 탐험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대장을 맡게 된 지진희는 처음에는 과도한 의욕을 보이다가 조금씩 드는 불안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고, 차태현과 조세호는 어쩌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됐는가를 후회하고 걱정하는 모습으로 또 배정남은 그 와중에 별 생각없이 자신의 역할로 주어진 먹을거리 담당에 충실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물론 그 웃음은 이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방영될 사막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생고생이 주는 힘겨움과 웃음의 양면은 의외로 희비극을 넘나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쩐지 짠하지만 그래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희비극적 요소는 다름 아닌 우리네 삶을 닮아있는 ‘사막을 걷는 행위’에서 이미 시작된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걷는 행위’는 우리가 도시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흥을 이끌어낼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늘 보던 일몰 하나도 사막을 배경으로 떨어질 때 전혀 다른 감흥이 생겨나는 것. 또 음식 하나를 먹는 일이나,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일, 또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그 일 자체가 문득 그저 눈앞에 닥친 일들에 바삐 살아가던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진중한 질문을 던지게 하지는 않을까. 

유호진 PD가 그 선택의 이유로 말한 것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빈 도화지 같은 공간이 바로 사막이다. 그리고 그 사막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일 수 있다. 어디로 걸을 것이며 그 빈 곳에 무엇을 그려 넣을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거기가 어딘데??>라고 묻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곳을 향해 걷는다. 그것은 생존의 길처럼 여겨지지만, 때론 그 길은 남다른 삶의 의미들을 만나게 되는 ‘실존의 길’이 되기도 하니.(사진:KBS)

눈물 가득 ‘황금빛 내 인생’과 ‘신과 함께’, 흥행하는 까닭

너무 신파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 누구도 눈물을 참기 힘든 상황 설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방송 전체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렇고, 개봉 5일 만에 350만 관객을 넘어서며 일간 관객 수 순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이 그렇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각 대중들의 가장 큰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 두 작품에는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져 있다.

인사이트<황금빛 내 인생>은 서태수(천호진)의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크리스마스의 한 풍경으로 시청자들을 울렸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 가장은 가족들에게는 원양어선을 탄다고 했지만 본래부터 삶을 정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 상태가 심상찮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곧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끼며 웃음을 터트린다. 크리스마스에 그는 자신이 맞이할 수도 있을 죽음을 ‘휴식’으로 받아들인다.

오랜만에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외투까지 하나 사 입은 이 가장은 자신이 죽었을 때 나올 사망보험을 보며 어차피 정리하려 했지만 이렇게 병으로 죽는 것이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며 좋아한다. 죽음을 오히려 휴식으로 받아들이고, 병사하는 것을 오히려 안도하는 가장의 모습은 아마도 동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나 그걸 바라보는 자식 세대들까지 가슴 먹먹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영화 <신과 함께>는 인명을 구조하다 죽음을 맞이한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이 사후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거치면서 그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후 세계의 모험담을 그린다는 점에서 스펙터클에 판타지 블록버스터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김자홍이 가진 휴머니즘과 ‘효’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김자홍 가족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으로, 실제 영화관을 여지없이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어놓는다. 제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만큼 감정을 격동시키는 것이 있을까. <신과 함께>는 그래서 가장 비현실적일 수 있는 판타지를 그리면서도 이 눈물을 통해 현실의 무게감을 담보해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보는 이들에 따라서 지나치게 신파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비판적인 반응 또한 나오고 있다. 너무 익숙한 코드들이지만 어쨌든 가장 효과적인 코드로서 신파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물론 그 장면들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것은 어쩌면 가족 간에도 각박해진 현실에서 촉촉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대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빛 내 인생>과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이러한 신파적 코드에 대한 호불호는 이처럼 극명하게 나뉜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두 작품을 통해 지금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일관된 정서가 바로 ‘울고 싶다’는 그 비감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많은 작품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추락하는 주인공들’에 대한 대중적 호응과 공감에는 이런 정서가 깔려 있다. 이제 누군가가 잘되는 걸 보는 것보다는 잘 안 되는 걸 보면서 공감하는 측면이 더 강해졌다. 신파든 아니든, 대중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울고 있고 그래서 작품들을 통해서라도 그걸 풀어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사진:KBS)


'신과 함께', 차태현과 함께 저승으로 이승을 위로하는 법만일 차태현이 아니었다면 이런 ‘바른 이야기’가 감동까지 줄 수 있었을까. <신과 함께-죄와 벌>은 실로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장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영화다. 안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착하고 바른 이미지를 갖고 있고, 어딘가 짠한 역할에도 잘 어울리지만 동시에 코미디적인 웃음까지 줄 줄 아는 배우 차태현. <신과 함께>는 그래서 ‘차태현과 함께’여서 그 영화적 효과가 배가 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과 함께>는 물론 주호민 작가의 웹툰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 그 자체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 작품의 세계관이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고층건물에서 아이를 안고 떨어져 내리는 김자홍(차태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소방관으로서 각종 사고들로부터 인명을 구해내는 걸 업으로 살아온 그의 죽음은 그래서 저승에서는 ‘귀인’의 등장으로 축하받는다. 죽음은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저승이라는 세계의 존재는 그 비극을 한 걸음 멀리 떨어뜨려 바라보게 한다. <신과 함께>가 저승을 여행하는 모험담을 그릴 수 있는 이유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세계, 저승을 여행한다는 콘셉트는 그 자체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이라는 7번의 재판을 거치기 위해 김자홍과 그를 수행하는 차사들이 겪는 모험담은 완전한 상상의 세계로 구축된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외국의 판타지물에서나 봐왔던 기괴한 괴물들의 공격이나, 칼처럼 자라나 지나는 이들을 찌르는 나무 숲, 중력을 무시하는 듯 둥둥 떠다니는 바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락과 상승의 아찔한 경험 같은 것들이 시각특수효과에 의해 실감나게 그려진다.

어찌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 같은 유치한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걸 조금 진중하게 만들어내는 건 저승에서 재판을 거칠 때마다 등장하는 김자홍의 삶이 주는 무게감이다. 저승의 세계는 끔찍한 면도 있지만 어딘지 가볍게 느껴지는 반면, 이승의 세계는 현실의 그 무거움이 김자홍이라는 ‘정의로운 망자’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너무나 가난하고 불행해 더 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던 그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인해 한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또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지며 살아온 김자홍의 삶의 진면목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저승의 다소 희극적인 세계는 이승의 비극과 균형을 맞추며 영화를 유치하지 않게 만든다. 

결국 김자홍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 비극이었다. 아픈 노모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다소 개발시대 가장들의 면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관객들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건 김자홍이라는 인물의 비극 속에서 남 이야기 같지 않은 구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 비극적인 삶이 결코 의미 없는 삶이 아니었고 나아가 염라대왕의 마음까지 돌려놓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고 말한다. 저승이라는 세계를 가져와 이승의 현실적 어려움들을 위로하는 이 영화의 방식이다. 지금이 어려워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지금 노력하며 착하게 살아온 그 삶들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걸 영화는 말해준다.

다소 교과서적인 이야기인데다, 감동의 원천 그 밑바닥을 보면 ‘효’라는 다소 전통적인 가치(물론 그 가치는 지금 더더욱 요구되는 것이지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이를 인물로서 보여주는 김자홍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전체의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이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지는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차태현이 주는 인간적인 호감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다소 오글거리는 교과서적인 주제가 설득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가 있어 영화는 시종일관 흥미롭고, 우습기도 하며 나아가 먹먹해지는 경험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사진출처:영화 '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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