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가 우리네 비틀어진 현실에 던지는 아픈 질문

어째서 바르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뿐인데 이들은 이렇게 힘들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에게 이지안(아이유)이 함께 사는 봉애(손숙)는 “좋은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도 그랬다. 최소한 바르게 살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건축구조기술사로서 건물의 위험을 미리 알아내고 건물주로 하여금 사고를 예방하는 일이 그의 일이지만, 회사는 고객이기도 한 건물주를 위해 문제를 눈감아주라고 강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본분을 벗어난 일이라며 자신의 일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박동훈의 ‘소신’은 그가 회사에서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장인 도준영 대표(김영민)의 오른팔이 된 윤상무(정재성)처럼 “라인을 잘 타야” 한다. 갖가지 비리와 음모를 저지르며, 일보다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를 하는 것. 그것이 성공의 길이다. 그와 대립각을 세우던 왕전무(전국환)의 라인인 박상무(정해균)는 결국 저들의 계략에 빠져 강등 퇴출되어버린다. 어떻게든 자기 자리로 돌아오려고 도준영의 뒤를 캐는 박상무 역시 다른 인간이 아니다. 그 역시 라인을 타고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못 저지를 부정과 비리가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박동훈은 그러기에는 작은 것들에도 신경을 쓰는 세심한 인물이다. 드라마 첫 회 첫 시퀀스에서 사무실로 날아온 무당벌레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을 때 이를 때려잡으려는 직원의 손을 제지하며 그 벌레를 잡아서 놔주려 했던 그 장면이 박동훈이라는 인물을 잘 말해준다. 그는 벌레 한 마리 쉽게 죽이지 못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렇게 살리는 벌레를 무심하게 툭 죽여 버리는 이지안도 삶이 그를 그렇게 내몰았을 뿐, 그 본심은 착한 인물이지만.

이지안은 그 첫 장면에 벌레를 죽이는 모습에서부터 어딘가 심상찮은 인물이라는 걸 드러냈고, 결국은 박동훈에게 잘못 배달되어온 뇌물을 훔치는 모습으로 그저 사무실 아르바이트 직원은 결코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또 도준영과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가 불륜관계인 것을 알아채고 그걸 은근히 협박하며 도준영에게 박동훈과 박상무를 모두 내보내게 해주겠다며 2천만원을 요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지안의 이런 행동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정의니 소신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들은 그에게는 배부른 소리였다. 그래서 봉애가 박동훈이 “좋은 사람 같다”고 말했을 때 그가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 쉽다”고 한 말은 그의 심사를 잘 드러낸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는 일 같은 건 자신에게는 ‘배부른 사치’로 여긴다. 사채업자에게 빚 독촉을 당하고 말도 못하며 운신도 못하는 할머니 봉애를 건사해야 하는 삶. 눈앞에서 할머니가 당하는 폭력 앞에 결국 칼을 들어 살인자가 되어버린 삶.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그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할머니를 건사한다는 그 상황이 이지안의 숨겨진 실체를 드러낸다. 일하고 들어와 자신은 봉지커피 두 봉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도 할머니에게 홍시를 사다 주는 인물이다. 혹여나 추울까봐 할머니가 누운 이부자리를 이리 저리 옮겨주는 인물이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 할머니가 달을 보고 싶어하자 마트의 카트를 훔쳐 할머니를 태우고 달을 보러 나가는 인물이다. 

그 누구도 바른 박동훈과 착한 이지안의 실체를 봐주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래서 어딘지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것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의 실체를 보게 된다. 박동훈을 직장에서 쫓아내고 대표로부터 돈을 받아내려 그의 핸드폰에 도청장치를 한 이지안은 어쩌다 그의 퍽퍽한 삶과 그 속에서도 바르게 살려는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카트에서 떨어진 과일을 들고 이지안의 뒤를 쫓아갔다가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박동훈은 달구경을 하고 돌아온 할머니를 집까지 업어다 주고는 이지안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착하다.”

그런데 그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착하다”는 말 한 마디가 너무나 아프고 짠하게 다가온다. 그건 삶이 지독할 정도로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착하게 살아가는’ 그 어려운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 절벽처럼 어두운 현실에서 ‘착하고 바른 삶’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삶의 절망감 같은 것들이 거기서 느껴져서다. 

어쩌다 바르고 착하게 사는 이들은 이렇게 힘겹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게 된 걸까. 오히려 부정을 저지르고, 적당히 비겁하게 현실과 타협하고, 성공과 이익을 위해서는 위악스런 행동들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더 잘 살아가는 현실이 된 걸까. <나의 아저씨>가 우리네 비틀어진 현실에 던지고 있는 아픈 질문들이다.(사진:tvN)

'신과 함께', 차태현과 함께 저승으로 이승을 위로하는 법만일 차태현이 아니었다면 이런 ‘바른 이야기’가 감동까지 줄 수 있었을까. <신과 함께-죄와 벌>은 실로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장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영화다. 안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착하고 바른 이미지를 갖고 있고, 어딘가 짠한 역할에도 잘 어울리지만 동시에 코미디적인 웃음까지 줄 줄 아는 배우 차태현. <신과 함께>는 그래서 ‘차태현과 함께’여서 그 영화적 효과가 배가 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과 함께>는 물론 주호민 작가의 웹툰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 그 자체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 작품의 세계관이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고층건물에서 아이를 안고 떨어져 내리는 김자홍(차태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소방관으로서 각종 사고들로부터 인명을 구해내는 걸 업으로 살아온 그의 죽음은 그래서 저승에서는 ‘귀인’의 등장으로 축하받는다. 죽음은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저승이라는 세계의 존재는 그 비극을 한 걸음 멀리 떨어뜨려 바라보게 한다. <신과 함께>가 저승을 여행하는 모험담을 그릴 수 있는 이유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세계, 저승을 여행한다는 콘셉트는 그 자체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이라는 7번의 재판을 거치기 위해 김자홍과 그를 수행하는 차사들이 겪는 모험담은 완전한 상상의 세계로 구축된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외국의 판타지물에서나 봐왔던 기괴한 괴물들의 공격이나, 칼처럼 자라나 지나는 이들을 찌르는 나무 숲, 중력을 무시하는 듯 둥둥 떠다니는 바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락과 상승의 아찔한 경험 같은 것들이 시각특수효과에 의해 실감나게 그려진다.

어찌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 같은 유치한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걸 조금 진중하게 만들어내는 건 저승에서 재판을 거칠 때마다 등장하는 김자홍의 삶이 주는 무게감이다. 저승의 세계는 끔찍한 면도 있지만 어딘지 가볍게 느껴지는 반면, 이승의 세계는 현실의 그 무거움이 김자홍이라는 ‘정의로운 망자’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너무나 가난하고 불행해 더 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던 그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인해 한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또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지며 살아온 김자홍의 삶의 진면목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저승의 다소 희극적인 세계는 이승의 비극과 균형을 맞추며 영화를 유치하지 않게 만든다. 

결국 김자홍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 비극이었다. 아픈 노모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다소 개발시대 가장들의 면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관객들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건 김자홍이라는 인물의 비극 속에서 남 이야기 같지 않은 구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 비극적인 삶이 결코 의미 없는 삶이 아니었고 나아가 염라대왕의 마음까지 돌려놓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고 말한다. 저승이라는 세계를 가져와 이승의 현실적 어려움들을 위로하는 이 영화의 방식이다. 지금이 어려워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지금 노력하며 착하게 살아온 그 삶들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걸 영화는 말해준다.

다소 교과서적인 이야기인데다, 감동의 원천 그 밑바닥을 보면 ‘효’라는 다소 전통적인 가치(물론 그 가치는 지금 더더욱 요구되는 것이지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이를 인물로서 보여주는 김자홍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전체의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이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지는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차태현이 주는 인간적인 호감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다소 오글거리는 교과서적인 주제가 설득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가 있어 영화는 시종일관 흥미롭고, 우습기도 하며 나아가 먹먹해지는 경험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사진출처:영화 '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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