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윅스>,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던 이유

 

<투윅스>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놀라운 드라마가 헤집고 간 파문은 꽤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듯하다. 우리네 드라마 현실에서 이처럼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성을 가진 작품을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윅스>는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성공하기 힘들다는 스릴러 액션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가족드라마의 문법을 성공적으로 묶어낸 작품. 게다가 그 안에 우리네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준엄하게 꾸짖는 시선까지 담아놓았다.

 

'투윅스(사진출처:MBC)'

2주라는 짧은 시간을 나눠 하루를 한 회 분량으로 풀어내는 형식미는 이 드라마의 시간을 훨씬 더 숨 가쁘게 만들었고 그 2주를 끝없이 뛰어다니던 장태산(이준기) 옆에 늘 함께 하는 딸 수진(이채미)을 판타지로 엮어내는 방식은 탈주극이 가족드라마의 테두리 안에 온전히 놓여질 수 있게 해주었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의미라는 통상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범죄자의 가족, 이를테면 김선생(송재림)과 한치국(천호진), 조서희(김혜옥)와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까지 가족 이야기를 확장함으로써 그 의미를 사회적인 시각으로 넓혀놓았다.

 

즉 자신의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타인의 가족을 걱정하는 장태산과 그 주변 인물들(임승우(류수영) 같은)이 있는 반면, 제 자식만을 챙기려 타인을 불행에 몰아넣는 조서희 같은 인물이 있고, 뒤늦게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김선생 같은 인물이 각각 사회적인 틀 안에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족주의가 가진 이중성이다. 모두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것이 가족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 때 가족주의는 가족 이기주의가 된다. 마지막 회에 이르면 <투윅스>는 그래서 가족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수진이는 사실상 두 명의 아버지를 갖게 된 것이고 박재경 검사(김소연)는 장태산 가족과 유사가족 형태를 이룬다. 장태산에게 살갑게 같이 살지 않겠냐고 묻는 한치국 역시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이렇게 가족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확장되자 드라마는 좀 더 사회성 있는 울림을 갖게 되었다. “내가 무서웠던 것도 니 마음이 약해서였고, 내 협박에 도망치지 못한 것도 니가 용기가 없어서였어. 선택은 니가 한 거라고 이 모자란 자식아.” 문일석(조민기)이 장태산(이준기)에게 던지는 이 말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건 5년마다 우리가 듣는 ‘선택’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조서희처럼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저마다 국민을 외치지만 정작 국민은 없고 사적 이익만 있던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이 모든 불행이 저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때문이라는 것. “뭘 시켜도 찍소리 못하는 놈”이었기 때문에 장태산의 불행이 비롯됐다는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그저 드라마의 한 대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조서희라는 악역이 권력이 목표가 아니라 돈이 목표라는 건 우리를 더 암울하게 만든다. 권력이야 5년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렇게 착복된 돈은 두고 두고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장태산을 변화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도망치기만 하던 장태산이 공세적으로 돌변해 문일석과 조서희 일당을 압박하게 됐던 것. 결국 마지막에 문일석과 장태산이 정 반대의 입장으로 바뀌었을 때 장태산은 자신의 선택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걸 걱정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태산도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이 이주 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주변사람을 진정 걱정한다면 제대로 된 선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토록 긴박한 탈주극에 이처럼 뭉클한 가족극이면서 동시에 이토록 날카로운 사회극을 한 작품 속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소현경이라는 작가 덕분이다. 이 작품을 쓴 소현경 작가는 이제 확실한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여겨진다. 주말드라마이면서도 미니시리즈의 긴박감을 엮어냈던 <찬란한 유산>으로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녀는 <검사 프린세스>, <49일> 같은 밀도 있는 작품실험을 거쳐 <내 딸 서영이> 같은 국민드라마를 만들어냈지만 진정한 성취는 <투윅스>를 통해 이뤘다 여겨진다.

 

<내 딸 서영이>가 익숙한 가족드라마 속에서 특별한 지점들을 뽑아낸 작품이었다면 <투윅스>는 낯선 설정 속에서 익숙함을 균형 있게 맞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물론 시청률에서야 <내 딸 서영이>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런 실험적인 시도로 10%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필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소현경 작가 특유의 균형감각 덕분이다. 이 작가는 보편적인 시청층이 요구하는 드라마적 설정들(가족 설정 같은)마저 장르 속에 잘 녹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좋은 드라마는 좋은 배우를 만든다. <투윅스>의 거의 모든 배우들이 호연을 펼쳤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의 중심을 만든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이준기와 조민기를 말할 수 있을 게다. 이준기는 이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혀놓았다. 아빠 연기를 제대로 소화해낸 이준기는 이제 좀 더 폭넓은 연기자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이 드라마의 사실상의 힘을 만들어낸 조민기의 악역 또한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연기자의 팽팽한 대결이 있어 <투윅스>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동시간대 시청률 2위로 종영했지만 <투윅스>는 2등짜리 드라마가 아니었다.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그렇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져간 점도 그러하며 또한 드라마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 역시 결코 작다 할 수 없었다. 시청률을 무시할 순 없지만 시청률만을 위해 만들었다면 아마도 이처럼 많은 성취들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윅스>는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다.

'더킹 투하츠', 이승기에 맞춤인 이유

 

'더킹 투하츠'에서 재하(이승기)는 왜 항아(하지원) 앞에서 자꾸만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걸까. 자신을 거부한 항아에게 철저히 복수하겠다며, 그 마음을 빼앗은 후 헤어져 평생 잊지못할 상처를 주겠다는 엉뚱한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실행에까지 옮기지만 재하는 막상 자신을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항아를 보고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진다. 거기서 진심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히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말하려는데, 불쑥 항아가 "약혼을 하겠다"고 하자 또 마음이 바뀐다. "너랑 왜 내가 약혼을 하겠냐"며 독설을 날린다.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도대체 왜 재하는 이토록 변덕이 심한 걸까. 사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의 제목하고도 관련이 있다. 재하의 갈등은 항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재하는 제목처럼 두 개의 심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 하나는 남한의 왕제로서의 심장이고, 다른 하나는 한 남자로서의 심장이다.

 

그가 모의 훈련 중에 항아를 향해 총을 쏘는 상황은 이 재하라는 인물이 가진 두 개의 심장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남자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 나라의 왕제로서 인질이 되어 국익에 손실을 줄 바에는 총을 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물론 모든 게 모의훈련으로 드러났지만, 후에 재하는 항아와 행군을 하면서 그 때 상황을 얘기한다. 자기의 마음도 뻥 뚫리는 것 같았다고. 이것이 한 남자로서의 심장이 전하는 말이다.

 

재하는 이 두 개의 심장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래서 남자로서 항아라는 알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에게 흔들리다가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오래도록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점, 게다가 복잡한 정치적인 사안들과 맞물려 있는 결혼이라는 문제에까지 다다르면 또 마음 한 구석이 흔들리게 된다. 자신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제로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그는 또 개인이 아닌 왕제로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기자회견장에서 갑자기 항아가 약혼을 하겠다고 발표해버리자, 그 즉시 부인할 수 없는 게 왕제로서의 그의 마음이다(거부하면 이것은 남부 간의 불편한 관계로 이어진다).

 

이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왕제, 재하라는 역할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때론 완전히 개념 없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떤 순간이 오면 왕제로서의 근엄함을 유지하는 진중함으로 돌변해야 한다. 이것은 멜로 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날라리처럼 행동하다가도 때로는 마음을 찡 울리는 진심이 묻어나야 하는 인물이 재하라는 캐릭터다. 다행스러운 건 이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이미 이승기는 드라마와 예능, 가수 활동을 하면서 겪었다는 점이다.

 

그의 첫 이미지는 '황태자'였다. 그것도 누나들의 로망으로서의 황태자. 하지만 그 황태자가 '1박2일'이라는 예능을 통과하면서는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가 되기도 하고, 때론 허술함이 드러나는 허당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찬란한 유산'을 통해서는 개념 없던 황태자가 진솔한 청년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에서는 사랑을 알아가는 순수한 청춘을 연기하기도 한다. 또 홀로 '강심장'을 맡았을 때는 이제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드는 짓궂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킹 투하츠'는 이승기에게 이 황태자의 진중함과, 막내이자 허당으로서의 가벼움을 동시에 품게 하는 드라마다. 이 작품 속에서 이승기는 때론 지독할 정도의 악동의 모습이었다가 또 순간 진중한 모습으로 돌변해 그 악동 이면에 있는 왕제로서의(황태자의 삶으로서의) 쓸쓸함을 드러낸다. 이 두 가지 이미지의 통합은 '더킹 투하츠'의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왕제 재하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더킹 투하츠'는 지금껏 가수이자 연기자이자 MC로 활약하며 다양한 모습을 끄집어냈던 이승기에게 이 이미지들을 통합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 이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황태자의 탄생. 이것이 '더킹 투하츠'에 이승기가 맞춤인 이유다. 이승기는 지금 진정한 '킹'이 되기 위한 '투하츠'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니까.

소현경 작가, '49일'에서도 뒷심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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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사진출처:SBS)

'49일'의 소현경 작가는 뒷심의 작가다. '검사 프린세스'는 초반에 당시 경쟁작이었던 '신데렐라 언니'와 '개인의 취향'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차츰 반응을 일으키면서 후반에는 이른바 '시후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사실 '검사 프린세스'는 장르적으로도 쉬운 건 아니었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발랄함에 추리적인 요소까지 섞여 있었던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마니아적인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뒷심을 발휘하며 선전했다고 보여진다.

'찬란한 유산'은 작품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첫 회가 방영되고 나서 15%대의 시청률을 얻더니, 4회 만에 20%를 넘기고 국민드라마를 향해 질주했다. 이 드라마도 전형적인 주말 드라마 공식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었다. 즉 가족드라마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니시리즈 같은 긴박감을 잘 조화시켰다. 멜로 라인도 잘 잡혔고, 가족애를 끌어내는 스토리도 좋은 데다, 사회적인 메시지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특징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기는커녕 점점 뒷심이 붙었다는 것이다.

물론 '49일'의 첫 시청률은 8%. 기대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소현경 작가에 대한 신뢰감은 충분하다. 분명 조금씩 시동을 걸고 차츰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어떤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 생각된다. '49일'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첫 회보다는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생기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첫 회는 이 얼키고 설킨 관계의 고리들의 복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신지현(남규리)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진실된 눈물 세 방울이 필요하다는 이 드라마의 장치는, 그 눈물을 흘려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즉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어딘가 야망이 엿보이는 민호(배수빈), 그녀의 옛 친구지만 어딘지 그녀를 사랑하는 듯한 한강(조현재), 둘도 없는 친구지만 숨겨진 속내가 있는 듯한 인정(서지혜). 첫 회는 이 관계들의 겉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스스로 죽고 싶어 하는 송이경(이요원)과 저승사자지만 어딘지 미스테리한 구석을 갖고 있는 스케줄러까지, 감질날 정도로 첫 회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회부터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그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랑한다 믿었던 민호와 둘도 없는 친구라 여긴 인정이 사실은 숨겨진 연인 관계였다는 게 드러난 것. 본격적으로 눈물 세 방울을 얻기 위해 직접 다시 보게 되는 그 관계의 실상들 속에서 앞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초반에 거의 힘을 쏟아 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들 드라마들은 중간쯤에서부터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초반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으면 중간에 다소 힘이 빠져도 관성적인 시청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달라졌다. 최근 시청자들은 보다가 재미없으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용두사미형 드라마들이 많이 양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물'이 그랬고 '도망자'가 그랬으며 '아테나', '마이 프린세스'가 그랬다. 하지만 과연 뒷심의 작가 소현경의 '49일'은 다른 면모를 보여줄까. 기대해볼만한 대목이다.

'나쁜 남자'의 김남길, '동이'의 한효주

사극과 현대극의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극을 연기하던 배우가 사극 속으로 들어갔을 때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반대로 사극 속에서 강력한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낸 배우가 현대극으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부담감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런 변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사극 '동이'로 간 한효주와 '선덕여왕'에서 '나쁜 남자'로 온 김남길이 그렇다. 어떻게 그들은 현대극과 사극을 그처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캐릭터를 들여다봐야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의 비밀병기로 등장한 비담이란 캐릭터는 사극 속이지만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다. 그는 '선덕여왕' 속 캐릭터들이 하는 것처럼 옛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캐릭터는 '선덕여왕'이라는 신라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툭 떨어진 현대인처럼 보인다. 이 지극히 현대적인 일상어투를 사용하는 비담은 심지어 공주(장차 여왕이 될) 앞에서도 반말을 한다.

그저 한없이 착하기보다는 욕망에 충실하며 때로는 지독히도 상대방을 아프게도 만드는 이 캐릭터가 갑자기 이 사극이라는 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 대중들이 열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극이라면 갖게 되는 그 형식적인 무게를 가볍게 깨버리는 그 파격, 그리고 그 파격 속에 자리한 현대적인 쿨한 감성이 버무려지는 순간, 그는 단번에 이 사극 속 모든 인물들과 대비되는 강력한 존재감의 캐릭터가 된다. '선덕여왕'의 후반부로 가면서 비담이라는 캐릭터가 조금씩 존재감을 상실한 것은 그가 악역으로 변신해서가 아니라, 차츰 사극 속의 인물로 변해가며 그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연기자 김남길은 비담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의 아우라를 그대로 갖게 되었다. 그의 연기자로서의 이미지가 비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은 그만큼 이 캐릭터가 그에게 부여한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나쁜 남자'. 심건욱은 비담이란 캐릭터의 현대적인 버전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나쁜 남자'라는 드라마는 저 비담이란 캐릭터의 아우라를 이미지로 보유한 김남길을 위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시니컬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속을 시원하게 하는 독한 어투나, 독해보이면서도 슬픈 눈은 이 드라마의 주제와도 그대로 닿아있을 정도다. '나쁜 남자'는 속물로 가득한 세상에 슬픈 눈으로 침을 뱉는 남자의 이야기다. 혹자들은 같은 캐릭터의 반복으로 김남길의 이미지 소비를 빠르게 하는 드라마라고 걱정을 했지만, 실제는 상황이 다르다. 김남길은 사극 밖으로 빠져나와, 현대극 속에서도 비담이 가졌던 그 아우라의 영역을 오히려 공고하게 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술한 대로 비담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캐릭터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찬란한 유산'의 은성이란 캐릭터는 현대극이지만 지극히 고전적인 캐릭터다. 착하고 맑고 씩씩하며 때론 지독한 상황에 빠져도 좌절하지 않는 전형적인 캐릭터. '찬란한 유산'에서 그녀가 돋보인 것은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심지어 악마적으로 보이는 현대적 욕망의 화신들과 그녀가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욕망의 시대에 살아남은 지극히 선한 천연기념물처럼 반짝인다.

그런 그녀가 사극 속의 주인공 동이로 분하는 것에서, 어떤 변신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담이란 현대적인 이미지가 현대극으로 와서 심건욱이란 캐릭터로 자연스러운 것처럼, 은성이란 고전적인 이미지는 사극 속 동이라는 캐릭터로 와서도 자연스럽다. 그녀는 여전히 밝고 맑고 그러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선한 캐릭터다. 게다가 '동이'라는 사극은 그 인물들의 대사가 이중적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어가 사용되지만 일상적인 자리에서는 현대어가 나온다. 이것은 깨방정 숙종(지진희)만이 아니라 동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극에서 온 남자, 사극으로 간 여자. 둘 다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작이 가진 캐릭터를 보다 공고히 하고 확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보통 똑같은 캐릭터가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 때 흔히 그 어색함이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 두 사람의 경우 그 이질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물론 사극과 현대극의 경계가 그만큼 얇아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들 배우들이 갖는 아우라가(옴므파탈의 절정을 보여주는 김남길과 인상녀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밝은 한효주) 꽤 크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검사 프린세스', 소현경표 멜로드라마의 사회성

"좀 전에 골라든 그 수백만 원 하는 가방, 그 동안 당신의 명품들, 인우 인생 짓밟은 대가라는 거 알아요? 인우 거 뺏은 거라는 거." '검사 프린세스'에서 인우(박시후)의 친구인 제니(박정아)가 마혜리(김소연)에게 던지는 이 말은 드라마의 시점을 살짝 돌려놓는다. 그동안 마혜리의 입장에서 진행되어오던 드라마는 제니의 이 역지사지를 제안하는 대사를 통해 인우의 입장을 풀어놓는다. 수백만 원 하는 가방에 명품들 속에서 공주로 검사로 살아오던 마혜리가, 자신의 삶이 사실은 한 가족의 인생을 파탄 낸 대가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를 개인적인 차원을 다루는 멜로에서 사회극으로 옮겨놓는다.

마혜리는 사회화가 덜 된 무개념의 공주 검사로 드라마에 등장한다. 검사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고, "예쁘게 하고 다니는 게 뭐가 나빠"하고 말하며, 산적한 업무에도 6시면 무조건 칼퇴근을 주장하는 이 무개념 공주 검사는 사회를 모른다.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삶 속에 머물며, 그 삶이 사회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알지 못하며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마혜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는 부모가 만들어놓은 단단한 출세 코스의 길 안에서만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삶(즉 함께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 삶에 몰두하는 마혜리의 모습은, 고속 경제 성장 끝에 부자의 반열에 오른 부모를 갖고 걱정 없이 자라온 이른바 상류층 자제의 모습을 표상한다. 그 부모인 마상태(최정우)는 대물림되는 그 가난이 싫어 독하게 한 시대를 살아내고 결국 성공의 길에 선 이전 세대의 치열한 삶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가난이 좋았다 이거야? 나는 아니야? 진짜 싫었어. 아주 끔찍하고 징그럽게 싫었어. 5대를 머슴살이에 날품팔이만 하는 집안, 그 대물림된 가난을 내 대에서 끊기 위해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당신 아냐? 내 자식부터는 이 마상태를 믿고 태어난 새끼, 토실토실한 살집에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보석보다 더 예쁜 눈에 해리부터 그 새끼도 그 새끼의 새끼들도 떵떵 거리고 대대손손 잘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 뭔가 잘못됐어. 이럴려구 한 게 아닌데 내 딸을 망치게 생겼어."

마상태가 던지는 참회 섞인 이 말은 '검사 프린세스'를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마상태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만들어놓은 그 부 위에서 마혜리가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나 누구나 우러러보는 검사라는 직업에 선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로서의 직업조차 부에 의해 대물림되는 우리네 사회를 잘 보여준다. 그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 갖게 된 그네들의 검사라는 직업에서 진정한 사회정의를 행하는 일이 어찌 쉽게 바랄 수 있는 일일까.

하지만 '검사 프린세스'는 이 대물림되는 부와 지위의 세상에서 그래도 희망을 꿈꿔보는 드라마다. 마혜리는 차츰 검사로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성장하는 캐릭터. 그녀가 '무늬만 검사'에서 차츰 진짜 검사가 될 때, 그녀가 궁극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의 숨겨진 과거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서 있는 부가 사실은 개인적인 성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인식은 아프지만 이 단단한 대물림의 시스템에 균열을 낸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마혜리 곁에 생겨난 윤세준(한정수) 검사와 서인우 변호사라는 존재는 그래서 단순히 '검사 프린세스'라는 드라마의 삼각 멜로 구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윤세준 검사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한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물이고, 서인우 변호사는 이제 검사로서의 삶을 이해하게 된 마혜리가 가족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갈등할 때, 복수나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그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검사 프린세스'는 어쩌면 소현경 작가의 일관된 사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은 대물림 되는 유산으로 표징되는 우리 사회의 진한 핏줄의식을 가족드라마라는 틀 위에서 뒤집었다면, '검사 프린세스'는 부는 물론이고 지위까지 대물림되는 사회 속에서 세워지기 어려운 사회정의를 멜로드라마라는 틀 위에서 뒤집고 있다. 무개념으로 시작한 마혜리라는 캐릭터의 성장과정 속에서 우리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성을 띠는 소현경표 멜로드라마가 가진 진면목이다.

‘아가씨를 부탁해’, ‘태양을 삼켜라’, ‘천만번 사랑해’

어딘지 2% 부족한 드라마들이 있다. 그저 보고는 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과 장면들이 나올 때면 왜 이걸 보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들. 시청률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은 드라마들. 어째서 이런 어정쩡한 드라마들이 나오는 것일까.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 ‘아가씨를 부탁해’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아가씨를 부탁해’. 실제로 이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가 갖고 있는 소구점들을 거의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 먼저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초부유층의 환상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 똑같다. 하인들과 집사들, 거의 성을 연상시키는 집, 잘 빠진 스포츠카에 패션쇼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의상까지, 이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가 드라마라는 틀을 거대한 판타지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하나의 광고판 기능을 하게 했던 그 장치를 그대로 가져왔다.

캐릭터도 성별만 바뀌었지 성격까지 똑같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가 여자로 바뀌어 강혜나(윤은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하려는 이야기는? 변함없는 멜로다. 윤상현이라는 매력적인 배우가 서동찬 역으로 등장해 강혜나의 집사 역할을 하며 멜로의 감정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 역시 ‘꽃보다 남자’가 금잔디(구혜선)를 통해 못된 부잣집 자제 길들이기를 했던 그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모티브를 그대로 따고 있다.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까지 유사하니 그 달달한 맛은 있지만 이 드라마만의 엣지가 부족하다. 시청률이 안 오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제2의 ‘올인’, ‘태양을 삼켜라’
‘태양을 삼켜라’는 제2의 ‘올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남자들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늘 내세우는 야망과 복수의 코드는 ‘올인’이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고, 배경인 제주도와 카지노 도박의 세계 역시 판박이다. 인물들 역시 어디선가 봐왔던 캐릭터들이다. 늘 이런 드라마에 존재하기 마련인 재벌 장민호 회장(전광렬), 그 회장의 망나니 후계자 태혁(이완), 그 태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대신 감방에도 들어가는 정우(지성),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멜로를 연출하는 수현(성유리). 게다가 그 주인공인 정우가 사실은 장민호 회장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드라마가 여기저기서 무수히 봐왔던 익숙한 코드들을 조합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가진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새로운 스토리가 없는 볼거리는 맥락 없이 이어지고, 결국 스토리까지 잡아먹는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올인’에서 이야기를 더 절절하게 만들어준 이병헌과 송혜교 같은 배우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캐릭터가 가진 식상함이 배우들의 연기마저 삼켜버리는 형국이다. 이 정도의스케일과 이 정도의 제작비를 투여하고 20%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찬란한 유산’이여 다시 한 번(?), ‘천만번 사랑해’
한편 새로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천만번 사랑해’는 여러 모로 ’찬란한 유산‘의 코드들을 가져왔다. ‘천만번 사랑해’는 대리모 문제를 내세워 우리네 사회가 가진 핏줄의식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려 하고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유산을 통해 문제제기 되었던 핏줄의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그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찬란한 유산’의 성공방정식을 거의 따라가고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가 만들어내는 가족의 파탄, 배다른 자식이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 그 역경을 일으켜줄 재벌집 아들의 존재 등등. 유사한 코드들이 곳곳에서 보여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찬란한 유산’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심지어 자식을 내쫓는 계모 같은) 드라마 분위기가 늘 밝은 톤을 유지했던 것에 비해, 이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자극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주말이라는 시간대에 ‘찬란한 유산’이 거둔 성공을 다시 거두려 한다면, 자극적인 소재와 보편적인 정서 사이에 균형 있는 이야기를 구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 본 듯한, 그러나 어딘지 2% 부족한 드라마들의 탄생은 이미 확고히 성공한 드라마들의 성공 코드들을 다시 활용하려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장르라는 것은 바로 그 성공 코드의 재배열이 주는 이미 기대된 결과를 확인하는 반복적인 즐거움에서 탄생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장르에도 변주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있다. 타 드라마와는 확실히 다른 한 가지는 분명 갖추고 있어야 그 드라마만의 존재이유는 그제야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 이 드라마들이 바로 그 존재이유를 찾아서 부족한 2%를 채우기를 기대한다.

드라마, 예능 시청률의 격전지가 된 주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던 시기, 주말은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랬다. 주말이면(금요일 저녁부터) 야외로 나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문화는 주말 시청률을 반 토막 내곤 했다. 특히 봄에 찾아오는 상춘객들의 급증이나 여름 바캉스 시즌에,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독한 불황의 여파일까. 아니면 점점 여가로 정착되어가는 영상문화의 영향일까. 이제 주말은 계절을 불문하고 시청률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먼저 드라마 시청률 경쟁의 불을 댕긴 것은 시청률 47%라는 괴력을 보인 ‘찬란한 유산’이다. 주말 드라마들이 주로 고정적인 시청층에 소구하는 가족드라마를 내세우며 평균적으로 20%대에 머물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찬란한 유산’이 남긴 유산은 실로 찬란하다고 할 수 있다. 47%라는 수치는 좋은 작품에 그만한 시청자층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찬란한 유산’은 가족드라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니시리즈적인 특징을 끌어안는 것으로 오히려 시청률 상승에 기폭제를 만들었다. 이것은 주말드라마하면 가족드라마라는 공식의 균열을 의미한다. ‘친구’나 ‘탐나는도다’ 같은 지금까지 주말에는 보기 어려웠던 드라마들이 주말에 포진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종영 후 전체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선덕여왕’으로 그 바톤을 월화로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주말은 드라마 시청률의 밭이라고 할 수 있다.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3회 만에 20% 시청률에 도달하고 있다. SBS 주말극장 ‘사랑은 아무나하나’ 역시 15% 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고,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는 떨어진 시청률에도 12%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20위 권에 들어있는 주말드라마가 총 네 편으로 전체 순위에 있는 아홉 편 중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주말 시청률 경쟁은 점점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격전지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전체 예능프로그램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KBS의 ‘해피선데이’가 따르고 있다.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그 다음이고,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는 한 때 이 경쟁의 대열에 있었지만 현재는 주춤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이 일요일에 집중되던 시청률 경쟁은 이제 토요일로 번져갈 조짐이다. 토요일 예능의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이 20%에 육박하는 시청률 상승을 맛보고 있으며, 토요일 저녁으로 자리를 옮긴 MBC의 ‘세바퀴’ 역시 16%대의 시청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KBS의 ‘천하무적 토요일’은 아직 9%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지만 잠재력이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때 ‘무한도전’의 시청률을 위협하던 ‘스타킹’은 조작과 표절 시비로 가라앉고 있지만 절치부심 재기의 발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MBC가 ‘무한도전’ 앞자리에 ‘스친소’를 폐지하고 대신 ‘우리 결혼했어요’를 포진시킨 점이다. 타 프로그램과의 경쟁 때문에 약화되긴 했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의 시간대 변경은 어쩌면 토요 예능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할 지도 모른다. 토요일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 경쟁은 이로써 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말해주는 주중시청률 표를 들여다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20위권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무려 9편에 이른다. 만일 주말의 의미를 금요일 저녁부터 계산한다면 ‘절친노트2’를 포함해 전체 주중시청률 20위 권에 든 프로그램의 반이 주말에 포진한 셈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과 함께 주말이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이라 예측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말은 오히려 시청률의 밭이 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그만큼 경쟁적이고 피곤해진 주중의 사회 풍경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말의 TV는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진 지친 현대인들의 여가로 자리하고 있다.

‘신파’라는 용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많다. 그 용어는 주로 최루성 멜로물, 자극적인 설정 남발, 뻔한 소재와 스토리 전개처럼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스토리텔링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러니 현재의 작품을 얘기할 때, 신파적이라는 말은 절대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부정적인 의미의 신파 코드들이 여전히 문화 전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때로는 호평받는 작품 속에서도 발견되며, 심지어는 이 코드를 버리고서는 대중성을 얻기가 어렵다고까지 말한다.

시청률 45%를 넘긴 국민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흔히들 착한 드라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호칭은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애매한 구석이 많다. 이 드라마는 물론 주제가 착하지만, 드라마의 극적 구성으로 보았을 때 여타 자극적인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이다. 아무리 계모라 해도 남편이 죽자(실은 살아있지만) 자식을 내치고 그 유산을 가로채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지체인 은성의 동생 은우까지 멀리 내다버리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은 자극이다.

그런데 이 극과 극을 치닫는 대립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른바 신파 코드(이것은 신파라기보다는 신파적인 코드들을 활용하는 것을 지칭한다)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계모에 의해 버려졌지만 착한 심성으로 하늘이 도와 결국, 잘 살게 되는 이야기 구조는 우리네 고전적인 이야기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으로, 신파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이 계모 백성희로부터 버려지지만, 그 착한 심성으로 거의 신적인 존재인 장숙자 여사(반효정)의 구원을 받는(게다가 왕자님인 선우환(이승기)까지!) 이야기는 소재적으로나 극적 구성에 있어 신파 코드를 잘 활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파 코드의 활용은 이미 우리네 드라마에서 흔한 것들이다. 대표적인 신파 코드인 출생의 비밀은 최근 드라마들만 예로 들더라도 쉽게 발견된다. 시대극을 표방한 <에덴의 동쪽>이 그렇고, 다시 리메이크된 <미워도 다시 한 번> 역시 그러하며, 심지어 최근 방영되는 사극 <선덕여왕>이나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는 <태양을 삼켜라>에서도 이 코드는 여전히 유용하게 활용된다. 그 이유는 그 신파적인 코드가 자극적인 감정 분출을 쉽게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유행했던 막장 드라마는 바로 이 자극적인 감정 분출의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신파적인 코드들, 예를 들면 출생 비밀, 불륜, 불치 같은 소재들을 섞어 심지어 개연성을 무시하고 나열했던 드라마들이다.

한때 이러한 신파 코드들이 활용되는 드라마들이 외면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트렌디물이라 불리던 멜로 드라마들의 퇴조와 미국 드라마(미드) 열풍으로 일어난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환호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과연 신파적이고 트렌디한 멜로 드라마는 사라졌을까? 잠깐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호응은 낮았기 때문이다. 즉, 이성적으로는 감정 과잉 드라마가 식상하다고 얘기하고 있었지만, 감성적으로는 바로 그러한 드라마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현재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이제 미드식의 장르 드라마를 구사하면서도 그 안에 우리식의 신파 코드를 반드시 끼워 넣는다. <카인과 아벨>은 의학 드라마에 가정 비극(이 코드는 <찬란한 유산>과 유사하다)을 넣었고, <태양을 삼켜라>는 액션 드라마에 트렌디한 멜로 구조를 끼워 넣었다.

신파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신파가 주로 다루는 감정의 분출을 근간으로 삼는 콘텐츠들은, 드라마는 물론이고 연극, 소설, 대중음악 등에서도 하나의 지류를 이루고 있다. <친정 엄마와 2박3일> 같은 연극은 암에 걸린 딸이 친정 엄마를 찾아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전형적인 신파조의 극으로 연일 매진 사례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신파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들 즉, 틀에 박힌 대사나 연출 등을 벗어나 같은 소재라도 새롭고 진지한 접근을 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2009년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 역시 바로 이런 시각으로 읽어낼 수 있다. 신파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신파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신경숙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대중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또한, 대중음악에 있어서 신파적인 코드들은 주로 외환위기 시절에 활용되었었다. 조성모의 <아시나요>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나중에 등장한 이른바 소몰이 창법들의 창궐과 퇴조는 신파 코드가 가요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대변해 준다. 현재 발라드 가수들은 여전히 신파 코드가 담겨진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같은 웃음의 코드를 동시에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가수가 트리플 크라운(드라마, 가요,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이승기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분야 진출은 다양한 감정의 분출을 통해 캐릭터의 균형을 잡아준다. 이것은 마치 <찬란한 유산>이 구사한 감정의 양면 전략과 유사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드라마는 물론이고, 연극, 소설, 대중가요에까지 신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늘 어떤 시기에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에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파가 가진 어떤 힘이 우리네 문화 속에서 그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한국식’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사용한다. ‘한국식’ 블록버스터, ‘한국식’ 액션, ‘한국식’ 의학 드라마 등등. 그런데 여기서 ‘한국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네 정서 속에 자리한 특유의 ‘감정 중심 문화’와 ‘특유의 끈끈한 관계의 문화’가 들어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 할리우드식의 아드레날린 과잉의 드라마나 영화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끈끈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폭풍, 혹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콘텐츠에 더 익숙하다. 외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하드보일드한 감정 배제의 스토리텔링을 할 때, 우리는 끝없이 감정을 터뜨리고 끌어올리는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이것은 볼거리 위주의 콘텐츠들이 갖는 대규모의 투자와 대규모의 소비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우리네 문화 산업의 특징과도 연관이 있다. 우리는 볼거리보다는 그 속에 있는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물량 투자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작품은 물론이고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문화 콘텐츠는 여전히 인력에 의지하는 산업이다.

흔히들 신파라고 말하면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마련이다. 그 상투적인 설정과 뻔한 스토리, 게다가 그런 스토리에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리고 나면 이성적인 문화의 소비자들은 도리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감정에 치중하는 우리식의 문화 경향을 모두 후진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스토리텔링이란 그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부정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감정 중심의 스토리텔링이 갖는 힘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흔히 신파라고 했을 때 갖게 되는 부정적인 인상을 제거하면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발전적인 것이 아닐까.(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

'찬란한 유산'의 후속작, '스타일'이 갖지 못한 것

꿈의 시청률 47%를 기록하고 종영한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첫 회부터 17%의 시청률을 냈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고 해도 이런 수치는 이례적이다. 그런 면에서 '찬란한 유산'은 후속 작품에도 찬란한 유산을 남긴 셈이다. 하지만 정작 '스타일'은 '찬란한 유산'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서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스타일'은 먼저 외관이 화려하다. 칙릿을 추구하는 이 작품에는 무수한 명품의 이미지들이 꿈틀댄다. 명품 백과 옷들이 마치 광고로 도배된 패션잡지의 그것처럼 화면 전체를 도배하고 있고, 주인공들은 패션쇼를 하듯 연거푸 옷을 갈아입고는 마치 무대처럼 화려한 세트와, 화보의 배경처럼 판타지를 자극하는 장소에 서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 화려한 패션쇼를 연출하는 당사자들의 조각 같은 몸들은 이 화보 같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전시된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그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엣지'나는 상품들에 눈을 멀게된다. 박기자(김혜수)의 까칠함과 이서정(이지아)의 지질함이 주는 대비효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구도는 이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본 분이라면 심지어 식상하다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똑같은 설정에도 그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이 다르고, 그 인물들이 서 있는 화보(?)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그 영화의 내용보다도 시골출신 촌뜨기 주인공 앤드리아가 이것 저것 명품들을 입어보는 그 행위에 더 빠져드는 것과 같다. '스타일'은 확실히 이 칙릿의 대표격인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의 판타지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어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생활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판타지가 인물들을 통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스타일'의 스토리텔링 역시 마찬가지로 이 사회생활 속의 여성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스토리텔링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처럼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좀 더 압축적인 영화의 옷과 다를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옷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에서 비롯되는 바가 더 크다. 이 드라마에서 인물들은 지나치게 오버하고 있다. 박기자는 '엣지'를 남발하면서 확실히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지는 못하고 있다. 박기자가 가진 긍정적인 면들, 예를 들면 실력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서정 캐릭터에서 발견된다. 명품에 빠져 있지만, 배신한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신파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명품이 주는 쿨한 이미지와 신파가 주는 지질한 이미지의 충돌을 겪고 있다. 시청자들은 명품에 혹하는 그녀의 캐릭터에 감정이입되다가도, 남자친구 앞에서 구질구질하게 구는 그녀에게서 몰입을 방해받는다. 무엇보다 이 캐릭터는 안정되어 있지가 않고,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설정 속에 서 있다. 이서정 캐릭터가 이런 상태에 머물게 되면, '스타일'의 스토리텔링은 부각되기가 어렵다. 그 스토리텔링이 특별한 것도 아닌 이미 나와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현재 2회가 지난 '스타일'은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문제(혹은 욕망)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서정이 좌충우돌하는 그 장면들을 마음 속으로 공감하며 따라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남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드라마의 스타일뿐이다. 뭔지 몰라도 화려하고 감각적인 그 스타일.

극중에서 서우진(류시원)은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라는 이유로 박기자의 인터뷰를 거절한다. 그는 어떤 요리로서의 진정성에 도달하려고 하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그 캐릭터의 진정성을 잘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준비된 듯한 인터뷰 멘트와 역시 화보 같은 배경 속에 서 있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타일'이 서우진의 목소리로 비판했던 그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 같은 상품 전시장의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드라마가 전하려는 스토리텔링의 중심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의 키는 이서정이 쥐고 있다. 드라마에 있어서 스타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스타일만으로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찬란한 유산'은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스타일이 아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던 드라마다.

소통하는 드라마와 겉멋에 빠진 드라마, 그 명암

작품의 질적인 부분은 일단 차치하자.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평가만을 놓고 볼 때, 작품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질적인 부분보다는 시청자와 작품 간의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두 드라마가 이 소통에 있어서 상반된 길을 걷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대를 넘어서 거의 모든 대중들의 공감을 통해 시청률 40%를 넘어선 ‘찬란한 유산’과, 세련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인물설정으로 이제 시청률 5%대로 추락한 ‘트리플’이 그것이다.

드라마를 대중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봤을 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드라마가 구사하는 화법이다. 그런 면에서 ‘찬란한 유산’의 화법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 이것이 지나치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심지어 세련된 느낌마저 상쇄되기 때문이다. 모든 걸 세세히 설명해주는 화법은 겉으로 보기에 폼이 나지 않게 마련이지만, ‘찬란한 유산’은 그런 겉멋에 연연하지 않는다. ‘찬란한 유산’은 고은성(한효주)이 어떻게 바닥까지 떨어지고 그 바닥에서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만나고 다시 어떻게 조금씩 상승하는가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주제가 간결하고도 명료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을 말하고 있고, 따라서 시청자들은 이미 초반부터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다 파악하고 있다. 이런 경우 드라마는 철저히 시청자들과의 공감을 목표로 흘러간다. 고은성은 좀 더 잘 되어야 되고, 백성희(김미숙)는 파멸해야 하며, 고은성을 도왔던 인물들은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고은성을 통해 선우환(이승기)과 그 가족들은 좀 더 성장해야 한다. 드라마는 바로 이 시청자들의 바람을 하나씩 이루어주는 과정이 된다. 즉 소통은 이미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트리플’은 정반대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가 어렵게 설정되어 있다. 오빠-동생 사이에서 싹트는 사랑(신활과 이하루)이나,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것(장현태와 최수인), 결혼을 외면하고 바라는 사랑(조해윤과 강상희)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겪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니 ‘트리플’은 시작부터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벽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트리플’의 주제가 바로, 이런 상식 밖의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숨 쉬고 사랑하고 아파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런 어려운 주제의식은 작가와 PD의 대단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리플’은 그 도전적인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전혀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빗나간 사랑의 풍경을 예쁜 그림으로만 보여주려고 했다. 소통은 겉모습으로 덮어지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관계 속에서 서로 고민하는 모습들이 비춰질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그래 저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리플’의 주인공들은 이런 고민이나 표현을 지질한 어떤 것으로 여기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고민은 차치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모든 건 다 지나가고 해결될 것이라고. 이 주제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네 시청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굉장히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만은 분명하다.

‘찬란한 유산’이 바로 그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드라마로서 보다 효과적으로 공감을 가져갈 수 있었다면, ‘트리플’은 소통의 벽에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을 뛰어넘어야 하는 드라마로 어떤 공감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쩌면 작품을 대하는 PD나 작가가 가진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에 대한 쌍방향의 소통이 늘 순간순간 일어나는 요즘, 늘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는 마음은 제작자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한때의 성공이 가져온 지나친 자신감은 때론 독이 되며, 반대로 오랜 기간 묵혀졌던 힘겨운 시간들은 때론 약이 된다. ‘트리플’의 참패와 ‘찬란한 유산’의 성공은 바로 그 갈림길에서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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