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청년들과 시장상인들의 소통이 시작됐다는 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이 낸 새로운 과제는 자신의 가게를 찾는 손님을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번 첫 번째 시식을 위해 찾아주셨던 주변 시장 상인 분들을 다시 초대해 마련한 자리에서 그 한 분 한 분이 어떤 메뉴를 시켰는가를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일 게다. 하지만 찾아주신 시장 상인 분들 중 한 분은 10년 전 찾아주신 손님 중 특이한 분들은 지금도 기억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만큼 자신의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을 기억하는 건 ‘장사의 기본’이라는 걸 백종원은 오랜 장사경험이 있는 상인 분들을 통해 직접 알려주려 했던 것. 

찾아주는 손님 자체가 없고, 찾아와서도 한 번 먹어보면 다신 오고 싶지 않다는 손님들의 반응은 대전 중앙시장 청년구단 식당들이 겪고 있는 총체적 난국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심지어 자신들이 하는 음식에 대한 아집과 편견까지 갖고 있어 도무지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백종원이 가져온 솔루션은 결국 ‘손님’이었다. 그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이 어떤 분들이고, 그 분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은 무엇이며, 또 그 분들이 음식점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 그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 총체적 난국을 넘어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식에서 드러난 것처럼 ‘김치스지카츠나베’ 같은 시장 상인분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메뉴는 이미 외면 받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짜거나 달거나 하는 맛의 문제보다 먼저 가장 가까운 고객인 시장 상인분들을 고려치 않은 메뉴 선정부터가 잘못이라는 것. 

메뉴가 이럴진대, 이 청년들이 시장 상인분들을 손님으로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리가 만무였다. 물론 몇몇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슨 메뉴를 시켰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얼굴을 익히고 서로 소통하면서, 그들도 시장 상인 중 하나라는 걸 인지시키는 것. 그것만큼 이 청년구단에 절실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놀라운 것은 시장 상인분들의 이 청년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가끔 찾아와 먹을 때마다 걱정이 되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는 상인분들은 그 누구보다 이 청년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계셨다. 그러니 바쁜 와중에도 찾아와 시식을 해주고, 음식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을 했던 것이었다. 

분식집을 운영하신다는 상인분은 어찌 보면 경쟁업체가 될 수 있는 이 청년구단 덮밥집의 신 메뉴를 먹어보고 날 계란보다는 계란 프라이를 해서 얹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조언까지 더해줬다. 따끔한 혹평을 하기도 했지만, 그 혹평 역시 그들을 그만큼 아끼기 때문에 해주는 말씀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찡하게 만든 건 손님 알아보기 과제를 냈을 때, 시장 상인분들이 자신이 먹었던 메뉴의 음식점 주인들에게 눈짓을 통해 힌트를 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 속에서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장 상인분들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결국 이 청년구단의 해법은 손님에게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시장 상인분들이 주고객이라는 걸 청년구단의 청년들은 드디어 인지하기 시작했고, 그 상인분들이 누구보다도 자신들을 걱정해주고 마음으로 도와주려 하고 있는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장사는 그냥 음식을 내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라는 걸 이들은 백종원의 과제를 통해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사진:SBS)

박열’, 우리에게도 이런 통쾌한 역사가 있었다니

최근 “이거 실화냐?”라는 표현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사실인데도 믿기지 않는 상황을 일컬을 때 하는 말. 영화 <박열>은 아마도 이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관객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걸 감독 또한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 영화는 “모든 게 실화”라는 자막 고지와 함께 시작한다. 

사진출처:영화<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로 시작하는 ‘개새끼’라는 박열의 시에 단박에 반해버린 가네코 후미코는 그에게 동거를 제안하고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드라마틱한 사랑과 삶은 도무지 실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는 시에서 드러내듯 스스로를 ‘개새끼’라고 치부하지만,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시대의 반항아. 

간토대지진이 민중들의 소요사태를 일으킬 것을 걱정한 일본 수뇌들은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른바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일본인들이 죽창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조선인들을 살해하고, 그 와중에 박열(이제훈)은 대역죄라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인물은 자신을 사형시킬 수도 있는 일본의 재판부 앞에서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고 해야 할 말들을 연설처럼 쏟아내는 역전된 상황을 만들어낸다. 

“어차피 사형당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그가 일본의 재판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들은 저런 일이 실제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통렬하다. 그리고 평생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와 옥중에서 또 재판정에서 보이는 애정행각들은 애틋하고 뭉클하면서도 저들을 욕보이는 것 같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할 이야기를 하고 또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통쾌함. 

<박열>은 우리가 막연히 일제강점기라고 생각하면 핍박받고 당하는 우리의 모습들만을 떠올려왔던 것이 하나의 선입견이라는 걸 말해주는 영화다. 우리에게도 박열 같은 청년이 있었다. 총칼이 위협을 해도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했던 청년. 비열한 일본 제국주의 앞에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죽어나갔다는 걸 재판정에서 오히려 성토했던 청년.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가네코 후미코 같은 일본 청년도 있었다. 그녀는 일본인이었지만 잘못된 일제에 항거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과 소신을 위해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최종 사형 판결이 내려지기 전 그녀는 마지막 진술에 그 마음을 담았다.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재판관에게도 말한다.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한다. 설령 재판관들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결코 혼자 죽게 하지는 않겠다.”

<박열>은 일제강점기의 스무 살이 갓 넘은 한 청년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가 지금에도 전해주는 의미는 실로 크다고 여겨진다. 잘못된 세상에 대해 당당히 맞서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 했던 이 실존인물의 삶은 팍팍한 현실이 힘겨운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충분한 위로와 격려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에게도 이런 통쾌한 역사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건 실제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100% 실화다.

‘자체발광 오피스’, 당신은 어떤 회사를 원합니까

“회사란 게 꼭 자식 같습디다. 작은 것을 키울 땐 내 것 같지만 크고 나면 내게 아니에요. 직원들 거고 우리 제품 찾는 소비자 거고.”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허구동 과장(김병춘)이 주선해 서우진(하석진)이 만난 하우라인의 회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건 이 드라마가 진짜로 하려던 이야기일 것이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사실 <자체발광 오피스>가 지금껏 포커스를 맞춰 온 건 은호원(고아성)을 중심으로 한 인턴들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청년 실업에 대한 갈증들이 첨예하게 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어쨌든 하우라인이라는 회사에 들어와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한 이들이 처한 새로운 문제는 회사 자체의 시스템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이 청년 실업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는 뭐 누구 라인 이런 거 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저한테 하우라인은 사주의 전횡 없는 좋은 회사란 이미지가 있고 제가 일한 만큼 인정받고 제 동료직원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상식적인 직장이길 바랄 뿐입니다.” 회장이 회사를 “자식 같다”고 표현하자 서우진은 “상식적인 직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언제 직원들이 회사에 대단한 것을 바랐던가. 적어도 상식이 지켜지는 회사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던가. 

회장을 만나고 온 서우진에게 허구동 과장은 자신이 그를 회장과 만나게 한 이유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허구동 과장은 옛날 직장생활의 이야기를 꺼낸다. “부장님은 모르시죠? 월급날 누런 봉투에 월급 받아 이번 달에는 얼만지 침 묻혀가며 세고 속 주머니에 월급봉투 들어앉은 그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 계좌로 직접 입금되는 요즘과는 달리 어딘지 정이나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그 때의 회사.

“월급날 그 봉투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한텐 그 때가 회사는 내 집 같았고 동료들은 내 식구 같았고 그런 회사로 다시 되돌리고 싶습니다.” 허구동 과장이 말하는 회사는 지금은 너무 멀리 와 기억에서도 가물해진 그런 과거의 회사다. IMF 이후 칼바람에 사라져버린 ‘사람 냄새 나는 회사’. <자체발광 오피스>가 은근슬쩍 꺼내놓는 새로운 판타지. 

“부장님 지금까지 비겁하게 도망만 치지 않았습니까. 맘에 안 들면 사표내고 더러운 꼴 피하시고 그래서 우리 회사로 오신 것 아닙니까. 이젠 바꿔보시죠. 맘에 안 들면 고치고 더러운 건 잘라내고 좋은 직장 자랑스러운 회사 만들어서 열심히 일해요. 여기서 왜 사장까지 못합니까. 집이 더러우면 자기가 치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우라인 우리가 그렇게 한번 만들어 보십시다.” 

허구동 과장의 이 말과 그 말을 음미하며 어떤 각성을 하는 서우진. <자체발광 오피스>는 이제 은호원을 중심으로 하던 청년 실업 문제에서 나아가 서우진을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좋은 회사 만들기라는 새로운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건드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젊은 세대의 공감은 분명했지만 중년층의 공감대가 애매했던 이 드라마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자체발광 오피스>라는 제목은 애초에 그 이중적인 의미로 좋은 회사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었다고 보인다. 즉 발광할 정도의 미쳐 돌아가는 비상식적인 회사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회사로의 변신. 서우진의 각성은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삼시세끼> 남주혁, 시골생활 적응기가 보여주는 훈훈함

 

금방 따갖고 온 방울토마토로 디저트를 만드는 차승원 뒤에서 유해진이 특유의 말장난 개그를 시작한다. “방토야? 방토?” 방울토마토를 줄여 방토라 부르더니, “오늘이 방토라며 방만한 토요일이라고 아재개그를 던진다. 손호준도 남주혁도 별로 반응이 없는 이 아재개그에 차승원만은 키득댄다. tvN <삼시세끼>가 흔하게 보여주는 풍경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첫 촬영 때 이 아재개그가 영 적응이 안돼 눈만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던 남주혁이 두 번째 촬영에 유해진과 짝을 이뤄 오리집을 뚝딱뚝딱 만들면서 아재개그에 대해 묻는다. 유해진은 아재개그를 하려면 뻔뻔해야 되고 몇 번 눈물도 흘려봐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듯 남주혁은 유해진이 이리와 보시게라고 말하자 시계요?”하고 물어 그를 웃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자.”하고 말하자 자요?”하고 또 아재개그를 던지는 남주혁에게 유해진은 대견해 죽겠다는 듯, “보람 있다고 말한다.

 

남주혁은 여러모로 이번 <삼시세끼> 촬영에서 가장 낯선 상황에 서 있는 인물일 게다.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손호준은 이미 만재도부터 익숙해져온 이들이지만 남주혁은 새로 합류했고 그들과 평소 그리 가까웠던 사이도 아니다. 게다가 가장 막내고 차승원은 모델에서 배우까지 대선배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남주혁은 전형적인 도시 청년이다. 입맛도 초딩 입맛이라 차승원은 그를 위해 어떻게 하면 달달 짭짤한 맛을 낼까를 고민하고, 유해진은 애들이 고기를 원한다며 일을 해 돈을 비축해놓으려고 한다. 청국장을 끓여내 어떻겠냐고 묻자 남주혁은 잘 먹진 않지만 나쁜 기억은 없다고 에둘러 자신의 입맛을 얘기한다.

 

그렇게 어색하고 낯설 수밖에 없는 남주혁에게 유해진은 조금씩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을 보인다. 차승원과 손호준이 요리부(?)를 꾸리고 오리 집을 만드는 유해진의 설비부(?)에 남주혁이 슬쩍 합류하자 유해진은 저기 있는 거보다 심적으로 훨씬 편해 여기가라고 말해 차승원의 깐깐함에 대한 두 사람의 공감대를 만들어놓는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일들이라 그 변화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실감하기가 쉽지 않지만, 남주혁은 아주 조금씩 이 시골 살이와 <삼시세끼> 팀들에 어우러지고 또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색하게 아재개그를 치고, 차승원이 만든 청국장을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다. 먹고 나면 척척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차승원처럼 일찌감치 설거지를 하고, 손호준이 입에 넣어주는 작은 방울토마토 몇 개를 맛나게도 먹는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겉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일들처럼 보인다.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해왔던 뚜렷한 미션의 성격 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밥 해먹고, 무언가를 만들고, 모내기를 하거나 복분자를 따는 일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아재개그 같은 걸 던지는 그런 일상들을 우리는 그리 오래도록 깊게 쳐다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삼시세끼>처럼 그 일상에 카메라를 깊게 드리우고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변화들을 발견하고는 의외의 따뜻함이나 훈훈함 같은 걸 느끼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점점 그들을 닮아간다는 것. 시골 생활이 영 어울리지 않을 법한 도시 청년 남주혁이 어쩌면 고창 주민처럼 보이는 유해진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그를 닮아가는 모습이 주는 훈훈함은 우리네 일상에 담겨진 기적 같은 변화들의 비의를 살짝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닮아가고 익숙해지는 것이 다름 아닌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이것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삼시세끼>의 숨겨진 비밀이다

<귀향>의 소녀들과 <동주>의 청년들

 

영화는 이미 자본의 경제가 된 지 오래다.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가 하는 점은 그 영화의 성패와 무관하지 않다. 극장에 얼마나 걸어주는가가 흥행의 관건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배급사가 투자사인 우리네 상황에서 투자규모가 큰 영화는 그만큼 극장에서 더 오래 많은 관을 내주게 된다. 그러니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설 자리 자체가 없다. 자본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영화 산업에 극명하게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사진출처: 영화 <귀향>

그런데 여기 이런 자본 시스템을 거스른 두 영화가 있다. <귀향><동주>. <귀향>은 국민 75270명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 12억을 모아 겨우 제작될 수 있었다. 물론 손숙 같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배급사에서 관심을 갖는 제작비 규모가 최소 20억 수준(홍보 마케팅비 포함)이라고 한다. 그러니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개봉관이 50개 정도로 얘기가 됐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개봉일 이 영화는 500여개가 넘는 개봉관을 확보했고 그 후로도 계속 개봉관 수를 늘려나갔다. 지난 7일 현재 267만 관객을 돌파했다. 작은 영화의 반란인 셈이다. 산업적인 논리로서는 도무지 벌어지기 힘든 일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공감대가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위안부문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그 공감대가 기억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

 

윤동주 시인의 청춘을 다룬 <동주>는 고작 5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사실 이 정도의 제작비로 이런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기획부터 연출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여 빈틈없이 제작된 결과다. 5억 원의 규모이니 역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개봉 당일 개봉관 수는 370개 남짓.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관수도 점점 늘어갔다. 지난 224일에는 467개 스크린으로 확대됐다. 관객 수는 90만 명을 훌쩍 넘어 이제 곧 1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귀향><동주>의 이 같은 선전에는 20대 청춘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과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지금의 청춘들이 일제강점기라는 한참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들에 호응한 걸까. 그 키워드는 결국 청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귀향>에서 무고하게 지옥으로 끌려간 소녀들과 <동주>에서 부끄러운 세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산화한 청춘들이 지금의 혹독한 취업 현실 속에서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을 공감하게 했다는 것이다. <귀향><동주>를 보며 흘리는 청춘들의 눈물에는 그래서 당대의 소녀들과 청춘들의 아픈 역사는 물론이고 지금 현재의 현실에 부대끼는 자신들의 아픔도 들어 있다.

 

너무나 작은 규모라서 설 자리조차 찾기 힘든 <귀향><동주> 같은 작은 영화들은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 있다. 모든 게 태생부터 결정되고 진짜 내용이 아니라 스펙에 의해 모든 미래의 성패까지 달리는 현실. 그것이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귀향><동주>에 대한 청춘들의 호응은 당연해 보인다. 그 영화가 처한 현실 또한 청춘들이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귀향><동주>의 이례적인 성공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기적이라 불리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남는다. 왜 이런 일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못할까. 왜 작은 영화들은, 또 청춘들은 거대한 영화들과 기득권자들에 의해 항상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때로는 이런 현실도 긍정적으로 바꿔낼 수 있다는 희망도 이 두 영화의 사례가 보여주었다. 결국 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만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중한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다

<삼시세끼>가 바꾸고 있는 시골 동네에 대한 이미지

 

작은 시골 동네에서 철물점을 하며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삼시세끼>에는 이른바 동식이네 철물점이 자주 등장한다. 읍내에 나가는 것이 농부의 로망이라는 이서진이 읍내에 나오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바로 이 동식이네 철물점이다. 처음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였지만 차츰 친숙해진 그들은 마치 동네 형 동생 같은 관계가 됐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서진이 철물점에 자주 가게 된 것은 집에 수리할 일들이 자꾸 생기기 때문이다. 고마운 계란을 낳아주는 닭들을 위한 집도 마련해 줘야 하고, 염소 잭슨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게 비닐로 바람막이도 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서진이 철물점에 가는 이유는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거기 다름 아닌 동식이가 있기 때문에 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사실 시골 동네의 철물점에서 물건을 사는 건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다. 필요에 의한 물건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왜 굳이 그 철물점에서 일하는 동식이라는 이름을 끄집어내고, 그를 마치 동생 찾듯이 찾는 이서진과의 관계에 주목했을까. 잭슨의 바람막이 작업에는 동식이가 집까지 와서 직접 일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인터뷰까지 방송에 내보냈다.

 

저는 강원도 정선에 녹송철물에 일하고 있는 임동식이라고 합니다.”라고 수줍게 말하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그에게 제작진이 묻는다. “영업비밀이 있으세요?” 동식이는 수줍은 듯, “어 해맑게 웃는 거?” 하며 진짜 그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비닐을 재단하면서 어리버리한 손호준과 프로페셔널 동식이는 대조된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거 비닐 안 재고 잘라도 되냐는 이서진의 질문에 그는 또 환히 웃으며 이미 자신이 팔 대중으로 쟀다고 말해 그를 감탄하게 했다.

 

<삼시세끼>가 동네 청년 동식이라는 인물을 오롯이 이 프로그램의 구성원처럼 포착해낸 데는 이 프로그램만의 성격이 묻어난다. <삼시세끼>는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작은 일상의 특별함들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시골 마을에서 만나는 그 무엇도 사소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철물점 동식이는 물론이고, 늘 가는 슈퍼마켓의 주인아주머니, 시장통의 풍경들, 그리고 가끔 물 마시러 들리는 관공서까지 이 프로그램에서는 중요한 소재이자 출연진들이 된다.

 

이렇게 소소함들에 한 걸음 더 다가가자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시골처럼 여겨졌던 이 정선의 마을이 점점 우리 마을처럼 친숙해진다. 동네 사람들은 남이 아니라 이웃이 되고, 그들의 삶 또한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삼시세끼>는 그 따뜻함을 갖고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 작은 시골 동네의 이미지를 바꿔가고 있다. 어딘지 한번쯤 찾아가 하룻밤이라도 지내고픈 그런 인간미 넘치는 공간의 이미지.

 

철물점에서 일하는 해맑은 웃음이 영업비밀인 동식이는 이제 스물 세 살이다. 그 나이의 청춘들은 도시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주는 동식에게서는 심지어 우리네 현실에 지친 미생의 청춘들이 부러워할만한 행복감마저 묻어난다.

 

모두가 성공을 위해 도시로 모여들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작아도 자신만의 일이 있고 따뜻한 이웃들이 있는 시골의 삶은 어쩌면 하나의 로망이 될 지도 모르겠다. <삼시세끼>는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세세하게 포착해냄으로써 막연한 겉모습의 화려함과는 비교될 수 없는 소박한 시골 삶의 가치를 찾아내주고 있다. 동식이의 해맑은 미소는 진짜 시골 삶이 갖고 있는 행복의 비밀을 보여주었다.

 

<보이후드>, 시간의 궤적을 담아낸 궁극의 영화

 

시간을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만일 이 느낌이 궁금하다면 <보이후드>라는 영화의 165분에 빠져볼 일이다. 이 영화는 특별한 극적 스토리라인을 그다지 발견할 수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성장기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극중 메이슨 역할을 무려 12년 동안 연기해낸 엘라 콜트레인은 분명 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연기를 한 것이지만, 이 영화 안에 자신의 소년시절을 그대로 담아냈다.

 

사진출처: 영화 <보이후드>

6살의 메이슨은 앳되고 밝은 얼굴의 엘라 콜트레인을 보여주지만, 12년 간 15분 남짓의 영화 분량을 찍기 위해 한 해에 3-4일 정도 만나 찍혀진 그 얼굴의 변화는 천진함에서 어둠과 우울을 거쳐 깊이가 조금씩 만들어지는 아이의 성장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가 엘라 콜트레인의 다큐는 아니지만 그 얼굴의 변화와 그 속에 담겨진 느낌은 한 소년의 진짜가 틀림없다. 거기에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살아가면서 그 변화를 놓치기 마련인 시간이 남기고 간 궤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체험이다.

 

그렇게 들여다본 한 소년의 성장기란 어떤 것일까. 특별한 극적 내러티브를 사용하기보다는 그 정도 나이에 누구나 했음직한 고민들과 갈등들을 담담하게 영화는 풀어낸다. 엄마의 잇따른 결혼 실패와 의붓 아빠들의 폭력은 소년의 얼굴에 우수를 깃들게 만들고,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그 고통과 아픔들은 소년의 내면 속에서 성장통으로 변모하며 삶의 의미를 물어보게 한다. 소년이 던지는 진지한 삶에 대한 질문은 그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본 관객에게는 결코 웃을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물론 그 아슬아슬한 성장기를 잡아주는 건 때론 친구 같고 때론 기댈 언덕 같은 친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라는 소울 메이트 덕분이다. 이 영화를 찍은 리차트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선라이즈>를 함께 한 배우답게 에단 호크는 기꺼이 그 12년 세월의 흔적을 영화에 헌납했다. 고통을 수반하는 성장이 무에 그리 즐거울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 성장에 햇볕을 주고 물을 주는 메이슨 시니어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에 소년이 청년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영화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사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본다는 건 그 자체로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갑자기 떠난 신해철이 대학가요제 시절 무한궤도로 나와 그대에게를 부르는 옛 영상을 볼 때 느껴지는 것처럼, 또 그렇게 순수한 열정에 가득했던 그가 넥스트 같은 밴드로 돌아와 세상에 묵직한 메시지를 노래로 전달하는 그 변화의 과정을 보는 것처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누군가의 삶을 더 짧은 영상 속에서 한 눈에 바라보는 그 느낌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과 놀라움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보이후드>는 바로 그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서 더욱 특별해지는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12년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만일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궁금하다면 <보이후드>라는 한 소년의 앨범을 한번쯤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할 지도 모른다. 그 아무 것도 없다 여겨졌던 그 지나간 시간 속에서 어떤 기적 같은 힘을 보게 될 테니.

 

조용필의 ‘Hello', 왜 가왕인지를 증명하다

 

“19집 발매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축하한다'보다는 '감사하다'가 맞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을 받은 기분이에요.(박정현)" "팬들은 물론 후배 가수들도 조용필 선배님의 새 음악을 기대했습니다. 멋진 앨범을 발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자우림 김윤아)”

 

조용필과 태양(사진출처:태양 트위터)

“감사합니다.” 조용필이 10년 만에 낸 19집 ‘Hello'에 대해 후배가수들은 ‘축하’가 아닌 ‘감사’를 표했다. 이것은 쇼케이스 현장에 찾아온 팬들과 기자들도 마찬가지 분위기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 팬들은 연실 “오빠!”와 “조용필!”을 연호했고, 조용필의 말 한 마디에 비명을 질러댔다. 조용필이 ‘비련’을 발표했을 때, “기도하는-”하면 “꺅-”하고 이어지던 그 함성은 그가 4집 앨범을 발표했던 82년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왜 ‘축하’가 아닌 ‘감사’일까. 단지 선배라서? 아니다. 그것은 조용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가수라는데 있다. 그의 신곡 ‘Bounce'가 발표됐을 때 놀라웠던 것은 조용필이 여전히 오빠인 옛 세대들의 열광적인 반응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필이 누군지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조차 ‘너무나 세련된 곡’에 매료된 점이 감동의 실체였다. 지드래곤은 SNS를 통해 ‘Bounce'의 가사를 적어 자신의 팬심을 알렸고, 태양은 “Wow.. 조용필 선배님.... 미리듣기 음원이 이렇게 좋을 수가...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돼~들킬까 겁나~”라고 그 곡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것은 그저 젊은 가수들의 예우가 아니었다. 쇼케이스를 통해 선보인 조용필 19집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 음악적 트렌드가 모두 현재에 닿아 있었다. ‘Bounce’나 ‘Hello'는 모두 모던 락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하드락의 느낌까지 덧붙여진 데다, 조용필 특유의 지극히 한국적인 감성의 보컬이 만난 특정 장르를 얘기하기 어려운 그런 곡이다. 조용필이라는 가수와 노래 속에 모든 음악적 장르와 요소들, 심지어는 30년을 넘는 세월까지 모두 녹아 있는 느낌이다.

 

‘청년 조용필이 데뷔 앨범을 내듯 설레이네요~’ ‘환갑 넘어서 이 목소리, 이 감성 유지할 수 있는 사람... 대한민국에 또 누가 있을지? '헬로'랑 '길을 걷다'는 정말 아들뻘인 내가 들어도 촌티는커녕 가슴을 울리는 뭔가가 있다.’ ‘아버지와 제가 함께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곡에 쏟아진 젊은 세대들의 인터넷을 통한 공감은 그가 노래를 통해 세대와 시간과 국적과 장르를 넘어 소통시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Hello'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이 보여준 아시아와 미국, 남미, 유럽 그 어느 나라의 얼굴이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무국적형의 외모는 이 곡이 전하는 조용필의 메시지를 그 자체로 전하고 있다. 그 남자주인공이 기타를 치는 장면에 조용필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Hello'는 그래서 그 자체로 소통의 감동을 제공한다. 어떻게 노래 한 곡으로 이렇게 모든 벽을 허물어낼 수 있을까.

 

환갑을 넘긴 청년, 조용필은 그래서 그 존재 자체가 감동이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년이며, 그의 노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귀에도 쏙쏙 박힌다. 그의 음악 속에는 무수한 장르를 통과해내면서 그 경계를 무화시키는 원숙함이 묻어나고, 어떻게 들으면 민요가락 같은 한이 섞인 듯한 그 목소리는 강렬한 락에 얹어지면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는 모던하고 세련된 노래로 탄생한다. 그러니 그의 음악을 들으며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나 그 세월을 앞으로 살아낼 젊은 세대들에게나 조용필은 그 자체가 희망이고 감사일 수밖에.

 

조용필이 가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노래가 좋거나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다. 그건 그라는 존재 자체가 모든 걸 연결해주고 소통시켜주는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쇼케이스에서 사회를 본 김제동은 조용필에게 “이제 19집을 내셨으니 열아홉 청년”이라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스무 살 청년 조용필의 노래 역시 또 듣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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