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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의 최강희,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

말기 암 판정을 받았지만 그 남은 짧은 시간마저 병치레로 자식이 고생할까 수술조차 받지 않으려는 엄마. 그 엄마 앞에서 늘 투덜거리기만 했던 딸이 억누르고 억눌렀던 눈물을 터뜨린다.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전형적인 신파의 한 장면 같지만, 실상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신파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예쁘게 눈물 흘리기보다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잔뜩 일그러져 심지어 못생겨 보이는 최강희의 얼굴을 보면 거기서 분명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인 채 근육만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는 종우(김명민).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나 끝가지 그 곁의 사랑이 되어준 지수(하지원).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구도는 역시 병원 소재의 전형적인 신파 같다. 하지만 김명민의 목숨을 건 연기투혼 앞에 절절한 종우의 심정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온 몸을 던지는 그 김명민의 연기 속에는 이미 루게릭병 환자인 종우라는 존재가 들어서 있다.

신파는 최근 들어 새롭게 하나의 흥행코드로 자리하고 있다.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올 최고의 흥행작 '해운대'가 신파 코드와 재난 블록버스터를 적절히 조화시켰다면, 그 뒤를 따라 여름 영화 시장의 쌍끌이를 했던 '국가대표' 역시 스포츠영화에 신파 코드를 접목시켰다. 결과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 과거 신파라고 하면 먼저 고개부터 돌렸던 관객들은 왜 이런 변화를 보인 것일까.

그것은 지금의 신파들이 과거의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우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눈물을 뽑아내려는 지상과제 하에 억지설정으로 일관하던 과거의 신파와는 달리, 이들 영화들은 눈물을 전제하되 최대한 자연스럽게 눈물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루게릭병에 걸려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종우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핑클의 노래를 부르는 하지원의 모습은 발랄하지만, 가슴 뭉클함을 안겨준다. '애자'의 최강희는 그 톡톡 튀는 캐릭터를 백분 소화해내면서, 신파마저도 상큼하게 만들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신파 코드가 대중문화의 신주류로 부상하게 된 것은 여러 모로 불황이 만들어놓은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대중들은 억눌린 감정을 풀어줄 대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끊임없이 웃던가, 아니면 울던가, 그것이 어느 것이든 가슴 속에 쌓아둔 감정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을 때, 관객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무언가 사회적인 메시지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신파는 어쩌면 이 시기에 그 본래의 뜻인 뉴 웨이브(新派)라는 의미를 갖게 될 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적 볼거리가 주는 마비적인 블록버스터처럼, 우리의 눈물샘과 웃음보를 자극하는 감정의 블록버스터는 그 밑바닥에 신파가 가진 끈끈한 관계성의 실타래를 무기처럼 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이 신파가 가지는 작위성을 뛰어넘어 그 눈물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아무리 작품이 그 진정성을 보여주려 한다고 해도, 그것을 구현해내는 연기자가 없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애자'의 최강희나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은 신파를 넘어서는 진정성을 연기를 통해 보여준 배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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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드라마의 조건, 돈이 아닌 작품성

대충 아줌마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직업이나 상황을 재료로, 삼각 사각으로 엮은 멜로를 조리법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조미료로 맛을 내곤 했던 금요 드라마들은, 이제 이 ‘달콤한 프리미엄’의 맛에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프리미엄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 조미료 가득한 금요일 밥상 위에, 제대로 된 맛을 선보이고 있는 ‘달콤한 나의 도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무미건조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입에 물린 도시라는 재료조차 달콤해진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의 편편들은 저 스스로 자신들의 맛이 최고라고 외친다. 시청자들의 드라마 밥상은 그래서 양적으로는 전라도 백반만큼 풍성해졌지만 그렇다고 젓가락이 모든 반찬들에 가 닿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메인 요리에서 밀려난 어떤 음식들은 재수 없게도 젓가락 한 번 가지 않은 채 물려져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들은 기본적인 맛에 충실하기보다는 일단은 젓가락을 가져가게 하기 위한 자극적인 방식들을 동원하게 되었다.

영화에 ‘5분의 법칙’이 있듯이 드라마에는 이제 ‘첫 회의 법칙’이라는 것이 생겼다. 첫 회에 모든 걸 보여주지 못하면, 그래서 그 입맛을 당기지 못하면 영영 젓가락이 오지 않을 거라는 강박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월화드라마들의 치열한 편성전쟁은 바로 그 첫 회에 ‘올인’하는 드라마들의 처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첫 회에 드라마들은 대부분 화려한 액션 신(사극)을 보여주거나, 해외 로케(멜로 드라마)를 하거나, 긴박한 상황(전문직 장르 드라마)을 연출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들이 첫 회 이후에도 그 맛을 계속 보여주는 지는 의문이다.

이런 첫 회에 강박적인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상반되게 ‘달콤한 나의 도시’는 그 첫 회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 드라마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은수(최강희)가 처한 상황, 즉 옛 애인은 결혼을 하고, 자신은 늘 똑같은 도시의 일상으로 챗바퀴 돌 듯 돌아가는 그 상황을 독백으로 담담하게 시작한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자극적인 영상 대신에, 커피 자판기 앞에서 늘 잔돈이 없다며 돈을 빌려가는 상사에게 ‘이 자판기는 1000원짜리 지폐도 들어간다는 걸 모르는 걸까’하는 식의 공감 가는 대사를 풀어낸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가장 진한 맛이라 할 수 있는 은수의 친구들의 일상들이 그 위에 겹쳐진다. 유희(문정희)나 재인(진재영) 같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꼭 존재하는 매력적이지만 물리지 않는 그 친구들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바로 이 담담하지만 점점 끌리는 맛을 가진 드라마다. 그것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자극적인 쓰디쓴 도시 생활 속에서의 달콤한 맛을 꿈꾸는 도시인들의 환타지가 조미료 대신 맛을 낸다. 따라서 이 맛은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프리미엄’인 것은 그 촘촘한 구성력과 연출력, 그리고 도시인들의 가슴에 콕콕 박히는 공감 가는 대사들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그것은 눈과 입과 귀를 먹게 하는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공감이라는 특제 조리법으로 조리된 마음을 열게 하는 맛이다. 금요일의 드라마 밥상이 그만큼 더 기다려지는 것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자극적인 밥맛에 입이 물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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