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빵생활’, 공간은 감방이어도 이야기는 종합선물세트

우리는 감방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에 갖는 편견들이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딘지 답답할 것 같고 이야기도 수감자들 사이의 대결구도 같은 감방 소재의 장르 안에 머물 것 같다는 것들이다. 하지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면 이것이 한낱 편견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감방이야기가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건드리고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어서다. 

주인공 제혁(박해수)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건 어떤 쓸쓸함과 아픔, 슬픔 같은 것들이다. 겉보기에는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로 추앙받던 그가 굉장히 행복할 거라고만 여겨왔지만, 그는 자신의 생일날 교도소에서 차려준 특별한 야구 이벤트(?)에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토로한다. 교통사고에 재활치료만 한 줄 알았던 그가 사실은 위암 투병까지 해왔다는 것.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버텨온 자신을 사람들은 ‘노력의 아이콘’으로 추앙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나 힘들어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의 울분은 시청자들에게 먹먹함을 주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제혁 같은 ‘세상 제일 재수 없는 놈’이라 스스로를 말하는 인물이 보여주는 슬픈 정서만을 담지는 않는다. 같은 감방에서 지내는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같은 인물은 진지한 얼굴에서 나오는 혀 짧은 소리로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준다. 그는 그저 진지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캐릭터의 코믹한 설정 하나로 그건 웃음으로 전화된다. 마약을 복용하다 들어온 한양(이규형)은 그 해롱거리는 정신상태가 마치 아기 같은 느낌을 주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진다. 제혁의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이런 캐릭터들이 공존하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이완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다양한 감정들을 균형 맞춘다.

장기수(최무성)와 장발장(강승윤)의 이야기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인물들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증거다. 처음에는 어딘지 살벌한 느낌을 주었지만 차츰 장발장이 부르듯 ‘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인물로 다가오는 장기수. 조폭 시절부터 엮인 장발장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부채감 같은 걸 갖고 있는 장기수는 출소를 앞둔 장발장이 자신이 살기 위해 그를 무고한 사실에도 그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준다. 장기수는 그래서 이 감방이야기가 가진 어떤 훈훈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장발장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작업을 나가서도 도둑질을 하는 인물. 그리고 감방 검사에서 시계를 찼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자 그게 자기 것이 아니라 장기수의 것이라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다. 장기수와의 관계에서 마치 부자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지만 결국은 자기 버릇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발장에게서 느껴지는 건 어떤 반전의 감정이다. 물론 그가 그렇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어깨를 두드려준 장기수는 생각보다 더 큰 인물이다. 그가 했던 행동이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편하자고 한 일”이라는 것.

그러면서 감방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부정과 그로 인해 사필귀정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또한 이 드라마는 빼놓지 않는다. 동료들의 등을 처먹는 작업반장이 가구 만드는 대회에서 1등한 우승자의 상금을 가로채려 한 것이 결국 발각되는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통쾌함 같은 걸 선사한다. 

추락하는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제혁이라는 인물과 그 속에서도 웃음을 주는 카이스트나 한양 같은 동료의 이야기, 인간적인 먹먹함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섬뜩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장기수와 장발장 이야기 그리고 감방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위기와 반전의 이야기까지.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을 한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감방이라는 공간이어서 어딘가 한정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감방이어서 더 다채로울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는 역발상. 이것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웬만한 시청자들을 모두 빨아들일 수 있는 저력이 아닐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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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호 PD의 마법, ‘감빵생활’이 주는 판타지라니

도대체 이 따뜻함의 정체는 뭘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다보면 감방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도소는 구치소와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제혁(박해수)이 지내게 된 감방 안 사람들은 의외로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감방에 처음 들어가게 된 제혁이 보게 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로 라면을 끓여먹는 이야기는 이들의 반전 매력을 드러낸다. 마치 탈옥이라도 할 것처럼 쉬쉬하며 무언가를 공모하던 이 감방사람들은 그러나 그것이 뜨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으려는 ‘작전’이었다는 걸 보여주며 이들이 꿈꾸는 것들이 이런 소소한 것이 주는 행복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감방의 방장격인 장기수(최무성)는 겉보기에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기지만 장발장(강승윤)이 아버지라 부를 만큼 방 사람들을 챙기는 인물이다. 장발장은 닉네임처럼 빵을 훔치다 감방에 들어온 인물이고, 고박사(정민성)는 기업사기 전과로 들어왔지만 고발 고소 전문이다. 카이스트(박호산)는 도박으로 들어왔지만 뭐든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만물박사. 풍기는 포스와 달리 혀 짧은 소리로 ‘신라면’인지 ‘진라면’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오게 된 몽롱한 정신으로 할 이야기는 다 하는 나름 귀여운 캐릭터 뽕쟁이(이규형)도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주는 따뜻함의 원천은 이런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욕망들이다. 마침 방영하는 <영웅본색>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장기수를 위해 카이스트가 한 채널 밖에 나오지 않는 감방의 TV를 어떻게든 건드려 다른 채널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훈훈함을 준다. 결국은 장발장이 슬쩍 해온 리모콘으로 쉽게 채널을 돌려버리지만. 

모가지 밖에 나오지 않는 닭볶음이나 일주일에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는 온수 샤워를 위해 끝없이 민원을 넣어 상황을 호전시키는 고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가 나오고 매일 온수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는 그 상황만으로도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이 교도소에 위기상황이 없는 건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작업실의 반장(주석태)은 제혁에게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지만 제 맘대로 되지 않자 그 어두운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제혁을 성추행하려 하지만 그 때 마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교도관 준호(정경호)에 의해 불상사를 피하게 된다. 제혁의 오랜 친구인 준호가 애써 힘을 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건 오로지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교도소가 제혁에게 주는 위기상황과 또 그를 보호해주려는 인물 사이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이 이 드라마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그 느낌이 주는 소박함과 훈훈함은, 사회와는 유리되어 있고 살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곳에서도 ‘슬기로운’ 방식으로 인간적인 삶을 희구하는 인물들의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감방생활을 보고 있는 것이지만 또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금 보게 되는 것.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좌절되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감방생활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먹기 위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를 먹기 위해서, TV의 채널을 돌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또 온수 샤워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래서 그것이 관철됐을 때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어떤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가는 건 엄두도 못내는 해외의 유명 리조트 같은 곳을 날아가야 판타지를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방 같은 뭐 하나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공간에서 아주 소소한 것들을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해내는 그 장면은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역시 신원호 PD답게 감방이라는 차가운 공간조차 사람 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왜 신원호의 마법이라 부르는 지 알 것 같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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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제시한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단순한 방법

사실 MBC 월화드라마 <파수꾼>이라는 드라마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리로 얼룩진 법 집행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이 법망 바깥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며 법이 집행하지 않는 정의를 대신 실현해가는 이야기는 실제 벌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수꾼>의 이 판타지적 이야기는 현실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검찰과 경찰이라는 사법 정의가 아직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그 지점을 제대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수꾼(사진출처:MBC)'

<파수꾼>이 그 문제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인물은 이제 검찰총장 후보로 낙점을 받아 인사청문회를 치르는 윤승로(최무성)다. 그가 그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건 다름 아닌 무수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밑거름 되었다. 모진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몰아세운 장도한(김영광)의 아버지가 그렇고, 그를 위해 증인으로 나섰다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공경수(키)의 어머니가 그러하다. 윤시완(박솔로몬)에 의해 어린 딸이 살해당했지만 그의 아버지 윤승로의 권력 앞에 오히려 도망자 신세가 된 조수지(이시영)도 마찬가지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되기까지 그 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만들어진 무수한 피해자들. 하지만 가해자는 바로 그런 비리를 통해 더 권력의 정점으로 오르고, 피해자들은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러니. 그래서 피해자들은 장도한을 중심으로 이 모든 걸 뒤집기 위해 스스로 파수꾼이 되기로 한다. 제대로 행사되지 않는 법 정의가 탄생시킨 것이 바로 윤승로라는 괴물이다. <파수꾼>은 윤승로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네 비극적 현실의 시작이 바로 법 정의가 권력으로 사유화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걸 말한다. 

하지만 제대로 서지 못하는 사법 정의가 만든 괴물은 윤승로 하나만이 아니다. 그로 인해 비틀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 인물들이 줄줄이 생겨난다. 그의 사주로 인해 수족이 되어 고문은 물론 살인까지 저지른 비리형사 남병재(정석용)가 그렇다. 그리고 어찌 보면 윤승로의 피해자인 장도한이나 그와 함께 하는 파수꾼들인 조수지, 공경수, 서보미(김슬기) 모두 또 다른 얼굴의 괴물들이다. 

장도한은 조수지를 움직이기 위해 그녀의 딸이 윤시완에 의해 살해되는 그 상황을 방조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모든 죄를 자신이 짊어지기 위해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윤승로를 잡기 위해 그가 ‘내부고발자’가 되면서까지 해온 일들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또한 사법 정의가 실현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해킹과 도촬을 해온 공경수와 서보미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법정의가 제대로 서지 못한 공간에 점점 많아지는 건 괴물들이다. 제대로 된 공적 사안으로 처리되지 않는 사법정의는 비리와 사적 복수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수꾼>이 사법정의 문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은 바로 윤승로의 아들 윤시완이라는 괴물을 통해서다. 잘못을 저질러도 윤승로가 그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해 덮어주곤 했던 아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괴물이 되어버린 것. 결국 윤승로에게 법의 단죄를 받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바로 괴물인 아들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윤승로는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은 잘못을 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검찰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이 말은 모순이다. 신뢰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비리들이 저질러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면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오히려 잘못은 인정하는 일이라고 <파수꾼>은 말하고 있다. 그것이 더 많은 괴물을 탄생시키지 않는 길이고, 거기서부터 겨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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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응팔>, 좋은 드라마엔 버릴 캐릭터가 없다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과 이인겸(최종원)이 대결할 때 갑자기 등장한 캐릭터가 하나 있다. 이름 하여 남꼴통(진선규)’. 앞뒤가 꽉 막혀 수사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다는 뜻에서 지어진 별칭이다. 그런데 순군부의 남꼴통은 이방원(유아인)을 잡아다 고신을 통해 아버지 이성계(천호진)를 옭아매려 하는 이인겸과 결탁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남꼴통은 사실 정도전과 뜻을 같이하는 인물로 이인겸의 뒤통수를 친다. 그리고 그 남꼴통의 이름이 뒤늦게 실제 역사의 인물인 남은이라는 게 밝혀진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 남은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인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가가 느껴진다. 사실 애초에 남은이라는 이름을 밝혔다면 이 캐릭터가 그리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들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꼴통이라는 별칭을 장치로 쓰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남은이란 캐릭터는 확실하게 매력적인 인물로 세워진다.

 

사실 이 드라마의 남꼴통 캐릭터를 연기한 진선규는 2010년부터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단역이 많았고 따라서 그리 주목되는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꼴통이란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 모습은 이 배우가 꽤 단단한 연기 내공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극의 인물로서 진선규는 진짜 고려시대에서 막 되살아난 듯한 리얼함을 잘 살려냈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것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캐릭터 하나까지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작품의 특징일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육룡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악역으로서 길태미(박혁권), 이인겸(최종원), 홍인방(전노민) 같은 인물이나 중심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이방우(이승효), 조영규(민성욱) 같은 인물들까지 저마다 매력을 갖추고 있다. 악역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악역을 세우지 않고 조역이라고 해서 보조적인 역할에만 놔두지 않는다. 이건 아마도 좋은 드라마가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N <응답하라1988> 역시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는 덕선(혜리)과 보라(류혜영)와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택이(박보검), 동룡(이동휘)이 젊은 세대 주인공으로서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들의 부모인 성동일, 이일화, 라미란, 김성균, 김선영, 최무성 같은 어른 세대들도 결코 변방의 캐릭터가 아니다. 김선영과 최무성은 아마도 <응답하라1988>이 되살려 놓은 중견배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선의 절친인 장만옥 미옥(이민지)과 정환의 형인 정봉(안재홍)이 비오는 날 운명적으로(?) 만나는 이른바 <늑대의 유혹> 패러디 장면은 이들 캐릭터에 대한 관심 또한 높여 놓았다. 미옥을 연기하는 이민지는 캐릭터 설정 상 못생김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제 공개된 얼굴은 완전 반전의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 자체가 그녀가 가진 연기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딘지 바보스런 캐릭터인 정봉은 심장병 에피소드를 통해 그 따뜻한 모습을 그려낸 바 있다. 자신보다 타인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드러났던 것. 그런데 정봉을 연기한 안재홍은 이미 영화 <족구왕>에서 전역 복학생 역할로 충무로의 신예로 떠오른 바 있고 최근에는 <도리화가>에서 이동휘와 감초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육룡이 나르샤>의 남꼴통이나 <응답하라1988>의 장만옥처럼 중심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캐릭터들이 많은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 시대에 달라진 중심과 주변에 대한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 주인공은 어쨌든 드라마 구조상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주변 인물들을 허투루 세워두지 않는 것. 이제는 좋은 드라마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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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보다 캐릭터, <응답>의 핵심은 예능 유전자

 

형만한 아우 없다고 했다. 속편이 본편을 앞지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는 다른 것 같다. 시청률로만 봐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이 <응답하라> 시리즈는 갈수록 강력해진다. 신원호 PD는 애써 겸손하게 망할 작품이라고까지 말했지만 시청자들의 선택은 그 말을 결국 뒤집어버렸다. 6% 시청률(닐슨 코리아)부터 시작한 드라마는 어느새 11%를 훌쩍 넘기고 있다. 케이블 드라마로서도 놀랍고 본편을 뛰어넘은 속편으로서의 <응답하라> 시리즈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이 시리즈가 가진 기존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작법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응답하라>시리즈는 기존 드라마들이 하듯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스토리라인보다는 오히려 캐릭터에 포인트가 맞춰진다. <응답하라1988>의 핵심 경쟁력은 그래서 쌍문동 골목집에 살아가는 제각각 개성강한 인물들에서 나온다. 덕선(혜리)을 중심으로 하는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박보검), 동룡(이동휘)이 젊은 세대에 맞춰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면, 그들의 부모인 성동일-이일화, 김성균-라미란 그리고 김선영과 최무성은 윗세대에 맞춰진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이 같은 세대끼리 우정과 정으로 엮어지거나 애정으로 엮어지는 그 관계의 변주는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이 된다.

 

쌍문동 골목집이라는 판타지적인 공간에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놓지만 어떤 일관된 스토리라인의 흐름을 만들어놓지 않은 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기존 드라마들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매회 이야기가 이어지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나올 지를 기대하게 하는 구성을 갖고 있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매 회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고 그 주제에 맞는 에피소드들이 매력적인 인물들을 통해 보여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는 마치 시트콤을 닮아있지만 그렇다고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트콤은 아니다. 단지 시추에이션이 있고 코미디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가 있다는 게 차별점이다. 그래서 덕선의 언니인 보라(류혜영)가 데모를 하고 경찰에게 잡혔을 때 엄마인 이일화가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천재바둑기사 택이가 아버지 최무성과 무뚝뚝하지만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진 기자 인터뷰를 통해 진심을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뭉클한 드라마적인 감동을 주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연속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 이야기는 뭘까 하는 궁금증을 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 궁금증은 누가 덕선과 결혼했나 하는 등의 인물들의 관계에서 나오고, 나아가 이것은 이 드라마의 힘이 결국 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응답하라>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고,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건 다분히 예능적인 그림이다. 예능은 애초에 어떤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청자를 끌 수 없는 구조다. 대신 캐릭터를 세워두면 그 인물의 매력에 의해 시청자들이 어떤 기대를 갖게 된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예능에서 잔뼈가 굵어온 인물이라는 점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어떻게 이들에게 최적화되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렇게 스토리라인을 잘 몰라도 인물의 매력을 알게 되면 빠져드는 드라마는 새로운 시청자들의 중간유입이 용이해진다. <응답하라1988>이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해나가는 건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 쌍문동 골목집에 사는 이들에 대한 아련한 판타지를 경험하고 있다. 스토리보다 먼저 캐릭터에 매료시키는 이 예능의 유전자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속편이 나와도 본편보다 더 강력해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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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가진 자들이 나누는 서민들의 판타지

 

돈 천 만원을 갚지 않으면 집이 경매로 넘어갈 판에 몰린 김선영.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웃 라미란과 이일화는 그것이 마치 제 일이나 되는 듯이 안타까워한다. 라미란은 몇 백만 원은 자신이 꿍쳐놓은 게 있다며 빌려주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빌려줄 돈 천 만원이 없어 아쉬운 얼굴이다. 그런 그녀에게 김선영은 지금껏 신세져 온 것도 미안한데 그럴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이런 장면은 <응답하라1988>이 갖고 있는 특별한 판타지를 잘 보여준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그토록 많이 그려왔던 판타지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백화점을 통째로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사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응답하라1988>은 그런 선망과 동경의 판타지를 그려 넣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채워지는 판타지는 돈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인간적인 정이다. 이 쌍문동 골목에서 가장 잘 사는 집은 아마도 택이네 집일 게다. 천재 기사로서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는 택이(박보검)와 봉황당이라는 금은방을 운영하는 택이 아버지 최무성은 그러나 전혀 그런 부유한 티를 내지 않는 인물들이다. 이웃의 부러움을 사기는 하지만 선망의 존재라기보다는 그저 마음 착하고 과묵한 이웃 정도다.

 

최무성이 김선영의 사연을 알게 되고 선뜻 천만 원이 든 통장을 내놓는 장면은 그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돈보다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걸 그 장면 속에서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최무성은 자신이 내주는 천만 원보다 쓰러진 자신을 구해주고, 냉장고가 비면 냉장고를 채워주며 함께 모여 때로는 떠들썩하게 웃을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준 박선영에게 더 고마워한다. 이런 장면에서 돈이란 저 뒤편으로 밀려난다.

 

집이 넘어가게 생겼는데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홀로 있는 최무성을 찾아와 살뜰히도 챙겨주는 김선영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 장면 역시 돈 문제보다 더 중한 것이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떡 진 머리까지 감겨주는 모습은 조금은 과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허용되는 건 그러한 정을 드러내는 판타지 역시 강력하다는 걸 말해준다.

 

중국의 바둑대회에 나간 택이를 따라간 덕선(혜리)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판타지가 깔려 있다. 국보급 존재인 택이가 대회에서 이기는 그 거창한 이야기보다 <응답하라1988>은 그 뒤에서 묵묵히 몇 시간을 기다려 초밥을 사다 방문에 걸어놓는 혜리의 이야기를 담아 넣는다. 택이가 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잘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은 혜리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걸 알게 된 택이가 혜리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마음마저 설레게 만든다.

 

혹자는 <응답하라1988>의 이야기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가 아니고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결국 드라마가 그리는 것들은 대부분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가 아닌가. 그리고 그 판타지란 그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저런 삶이 어느덧 판타지가 되어버린 현실. 선망이 아닌 사람냄새를 담고 있는 판타지는 그래서 우리시대에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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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의 가장 강력한 판타지, 쌍문동 골목

 

우리에게 골목이란 어떤 공간인가. 골목이 존재하려면 일단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집과 집들이 이어져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하고, 그렇게 이어진 집들이 두 줄 이상 있어서 그 사이에 공유공간을 두고 있어야 한다. 바로 그 공유공간이 다름 아닌 골목이다. 골목은 그래서 집과 집 사이를 수평적으로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아마도 8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방과 후 집에다 가방을 던져놓고 그 골목으로 뛰쳐나온 동네 아이들이 함께 다방구 같은 놀이를 했던 걸 기억할 게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골목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은 나이 들어 학교가 달라져도 여전히 그 골목을 매개로 친구이자 이웃처럼 지내기도 했다.

 

어디 아이들뿐인가. 저녁 준비 하다 양념이 미처 떨어진 걸 깜박했다 치면 아이들 시켜 이웃집에서 빌려오는 건 일쑤고, 때때로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마치 제 자식 문제나 되는 듯 이웃들이 함께 걱정해주기도 했다. 공간은 사람이 점유하기 마련이지만 그 공간은 거기 점유한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80년대 이후 아파트들이 도처에 들어서고 부동산 과열로 인해 그것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야하는 공간으로 바뀌어나가면서 골목이라는 공간은 점점 사라져갔다. 수평적 공간을 이어주던 골목 대신, 어느 곳에 있는 어느 아파트 몇 평이 그 사람의 지위를 표징하는 수직적 지표가 되는 사회의 도래.

 

<응답하라1988>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큰 판타지는 이렇게 사라져가는 골목이 아닐까. 이 드라마가 특이한 건 대단히 큰 사건을 다루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산타클로스를 믿는 한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온 이웃들이 반상회를 거듭하고 함께 얼음으로 된 눈사람을 만드는 그런 것이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물론 인물들의 끈끈함이 있지만 친구들이 함께 모여 마니또를 하고 어른들은 비오는 날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그런 장면들이 대단한 사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 드라마는 그들의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을 툭툭 던져 놓는다. 이를테면 선우(고경표)가 팔목이 안 좋다는 엄마 대신 병뚜껑을 따주는 장면을 옆에서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라미란의 시선 같은 것이나, 엄마 없이 자라온 택이(박보검)에게 한없는 미안함을 소주 한 잔으로 토로하는 택이 아빠(최무성)의 이야기를 앞에 들어주며 세상에 택이 아빠 같은 사람이 어딨냐고 얘기해주는 선우 엄마(김선영)의 뭉클한 시선 같은 것이다.

 

이렇게 선하고 착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함께 모여 한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웃들이 있는 곳. <응답하라1988>의 골목은 그래서 한참을 보다보면 그런 곳에서 살고픈 마음이 새록새록 들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저런 이웃이 있고 저런 친구들이 있고 저런 언니와 누나와 동생과 형들이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사는 맛이 날 것인가.

 

이 판타지를 <응답하라1988>은 쌍문동 골목이라는 공간 안에 채워 넣는다. 물론 그것은 너무나 이상적이라 현실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복고라는 것은 결국 기억의 왜곡을 통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이 아닌가. 그러니 이미 싹 다 밀어져 빌딩과 아파트가 세워진 곳에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골목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우리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골목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그것이 <응답하라1988>의 가장 강력한 판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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