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의 진짜 주역들은 아무개 민초들이므로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주연만큼 조연이나 단역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첫 회 등장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사라진 유진 초이(이병헌)의 엄마 역할을 한 이시아나, 의병활동을 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고애신(김태리)의 부모 역할을 한 김지원과 진구, 의병으로 미군과 싸우다 죽은 장승구(최무성)의 부친 역할의 윤경호는 그 짧은 출연해도 강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물론 이들이야 주인공들의 전사를 그려내는 역할이기 때문에 주목받은 면이 있지만, 그 외의 단역 혹은 조연들에 대한 반응들이 뜨거운 건 다른 이유들이 있다고 보인다. 이를 테면 과거에는 추노꾼을 했었지만 개화된 세상에서 전당포를 차려 살아가는 일식이(김병철)와 춘식이(배정남)나, 고애신의 유모로 못하는 게 없는 여걸 함안댁(이정은) 또 그와 짝패를 이뤄 고애신을 돕는 행랑아범(신정근), 유진 초이의 보좌 역할을 하는 여관 임관수(조우진) 같은 인물들이 그렇다. 

이들은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의병들의 투쟁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인 유진 초이나 고애신처럼 전면에 나선 역할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들 뒤편에서 보이지 않게 그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역할이다. 예를 들면 추노꾼이던 일식이와 춘식이는 유진 초이가 상자 속에 숨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그렇게 살아남기를 바랐던 것. 그래서 유진 초이는 미국으로 갔다가 군인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은 유진 초이와의 인연 때문에 그 전당포에 고종의 러시아 은행 비자금 문건을 보관하게 된다. 

함안댁과 행랑아범은 그저 ‘애기씨’ 고애신을 수행하는 이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밤이면 친일하는 자들을 저격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또 그걸 돕는 인물들이다. 총에 맞아 다친 고애신을 도와 상처를 치료해주고 포위망을 빠져나오는데 동행한다. 그들은 애기씨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위는 무의식중에 의병활동과 그리 다르지 않게 된다. 임관수는 유진 초이의 역관이지만, 의병 활동을 숨어서 하다 발각되어 조선을 떠나려는 여인을 도망치게 해주는데 앞장선다. 왜 그렇게 하냐는 유진 초이의 질문에 그는 답한다.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이라고. 그 한 마디는 가볍게 만 보였던 임관수가 가진 조선인으로서의 마음을 드러낸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처럼 주연들만큼 조연들의 활약에 시청자들이 열광을 보낸다. 그것은 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그 ‘아무개’로 불리는 의병들의 투쟁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상 전면에 드러난 이들보다 드러나지 않고 저 마다의 위치에서 싸우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스러진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서 장승구(최무성)는 다소 쓸쓸하게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의 모든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는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이런 의미로 보면 <미스터 션샤인>의 진짜 주역들은 살짝 뒤편으로 물러나 있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아무개로 남을 수많은 민초들.(사진:tvN)

‘미스터 션샤인’의 멜로는 어떻게 대의와 어우러졌나

역사왜곡 논란으로 시끄럽지만 역시 김은숙 작가의 멜로는 절묘한데가 있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총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멜로가 그렇다. 유진초이(이병헌)와 고애신(김태리)의 첫 만남은 일본과 야합하는 미국인을 저격하는 현장에서다. 그들은 복면을 한 채 같은 표적을 향해 총을 겨눴고, 저격이 끝난 후 도주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건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살피려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이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그 사건을 조사하게 된 유진은 애신을 불러 면담을 하게 되고, 이미 서로의 정체를 들킨 그들은 손바닥으로 서로의 하관을 가린 채 그 눈빛을 교환한다. 그건 애신이 동지인 줄 알았던 유진이 미국인이라는 그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이면서 좀 더 가까이 서로의 눈빛을 나누는 순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사라진 총기’가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 미군이 총기를 찾기 위해 애신의 몸수색을 하려 할 때 유진이 등장하게 된 것. 그건 애신과 유진이 미국과 조선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유진은 애신에게 번번이 사건을 수사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걸 귀띔한다. 저격사건은 본인이 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여겨지지만, 총기가 사라진 사건을 덮으려는 유진의 행동은 다소 의아한 선택이다. 애신의 스승인 장포수(최무성)가 총기를 훔쳐갔다는 심증을 가진 유진은 총포 연습을 하는 애신을 찾아와 곧 이곳에 미군들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 스승의 뒤를 캐는 거요? 아님 내 뒤를 캐는 건가?” 애신의 도발적인 질문에 유진은 드디어 속내를 드러낸다. 애초 조선에 들어올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그가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 “조선이 변한 것인지 내가 본 저 여인이 이상한 것인지. 잡아넣지 않는 걸로 방관했고 총을 찾지 않는 걸로 편들었소, 지금 그걸 수습중이고.” 이 절묘한 대사는 그간 그가 미국인 저격 사건을 수사하고 또 사라진 총기를 수사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애신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걸 드러낸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방관’했고 ‘수습’하고 있다는 건 그의 마음이 애신에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애신은 저격 사건이 있던 날 밤거리에서 유진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똑같이 유진에게 말한다. “어느 쪽으로 가시오.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그 말은 서로가 가는 방향이 같을 것이라는 ‘동지적 발언’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함께 숲길을 걸으며 유진이 애신에게 문득 묻는다. “그건 왜 하는 거요? 조선을 구하는 거.” 그러자 애신은 대의를 이야기한다. “꼴은 이래도 오백년을 이어져온 나라요. 그 오백년 동안 호란 왜란 많이도 겪었소.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지켜내지 않았겠소. 그런 조선이 평화롭게 찢어 발겨지고 있소. 처음엔 청이, 다음엔 아라사가, 지금은 일본이, 이제 미국 군대까지 들어왔소. 나라꼴이 이런데 누군가는 싸워야하지 않겠소?”

그런데 그런 대의보다 유진은 애신이 더 궁금하다. “그게 왜 당신이요?”라고 묻는 것. 그러자 애신은 “왜 나면 안되는 거요?”라고 되묻고 “혹시 나를 걱정하는 거면”이라 덧붙인다. 조선을 구한다는 대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걸 앞장서서 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유진은 “내 걱정을 하는 거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건 자신의 마음이 애신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걸 걱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인으로서 돌아온 자신과 조선인인 애신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 자신을 걱정하는 것인가. 대의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총을 겨누거나 총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동시에 설렘이 느껴지는 구한말 격변기를 배경으로한 김은숙 작가의 색다른 멜로구도가 절묘하게 다가온다.(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진구·이시아·김지원·윤경호 죽음에 담긴 의미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드디어 대장정의 깃발을 올렸다.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넘어갔던 유진 초이(이병헌)는 스페인 전쟁에서 공을 쌓은 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게 됐다. 미국인의 신분으로. 의병 부모를 잃고 홀로 할아버지댁에 맡겨진 고애신(김태리)은 부모를 그대로 빼닮아 사냥꾼인 장승구(최무성)로부터 총포술을 배우며 요인 암살자가 되었다. 낮에는 명망 높은 사대부가의 딸이었지만.

같은 요인을 암살을 하는 자리에서 유진 초이와 고애신은 복면 쓴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됐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지나치며 풍겨 나오는 화약 냄새에 서로에게 정체를 들켰다. 미국인의 신분으로 저격사건을 수사하는 척 하면서 유진 초이는 고애신과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 하관을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그 정체를 확인한다. 긴장관계와 함께 미묘한 멜로의 향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제 대장정의 깃발을 올렸고, 순항을 예고하고 있지만 그 전에 잊지 말아야할 조연들이 있다. 그들은 이 드라마의 첫 회에 전사한 인물들이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제 한 목숨 우물에 던진 한 맺힌 유진의 엄마(이시아)와 의병활동을 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애신의 부모(진구, 김지원) 그리고 신미양요 때 빗발치는 미군의 총탄에도 도망치지 않고 싸우다 전사한 장승구(최무성)의 아버지(윤경호)가 그들이다. 

이들의 죽음은 이 시대가 가진 아픈 공기를 드라마 전편에 깔아주었다. 열강들이 몰려오는 시기였고, 나라는 있으나 나라 걱정하는 이들은 별로 없는 조정과, 신분사회 속에서 사람 취급받지 못하며 살아가던 민초들이 사실상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던 이 시대의 공기. 어쩌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이들은 죽음으로써 담아냈다.

기획의도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뜨겁고 의로운 이름, 의병’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 그래서 첫 회에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그들은 바로 이 ‘무명’의 존재들이 사실상 그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누군가는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제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죽음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핍박하기만 했던 나라지만 그 곳에서 살아갈 아이들,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이들의 죽음은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후대들의 피에 각인된 삶의 동기가 된다. 의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부모를 둔 애신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차라리 죽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글로도 싸우는 방법이 있는데 왜 총을 드느냐는 사부 장승구에게 “한 나라의 왕후가 시해 당했습니다. 나랏님은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도망을 쳐 이 나라 저 나라 황제에게 글로 손을 벌립니다. 그 덕에 서양 대국들이 줄을 지어 조선에 간섭합니다. 글은 힘이 없습니다. 저는 총포로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애신도 장승구도 모두 그 부모가 갔던 길을 따라간다.

노비로 태어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부모를 본 유진은 그 때문에 조선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의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차갑게 식어버린 조국에 대한 마음은 과연 뜨겁디뜨거운 애신의 마음 앞에 과연 방관만 할 수 있을까. 먼저 간 그들이 심어놓은 마음의 씨앗들은 이 격변기 구한말에 어떤 선택 앞에 놓인 주인공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라마의 추동력을 만들어낸 인물이면서도, 사실상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인, 첫 회에 죽음을 맞이한 ‘이름 모를’ 그들이 더 빛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tvN)

‘감빵생활’, 신원호 PD가 보여주는 인물에 대한 무한애정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한 감방에서 지내던 고박사(정민성)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어 가게 된 그 과정을 보면 신원호 PD가 얼마나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는가가 느껴진다. 장기수(최무성)와 사실은 동갑이었던 고박사가 헤어지는 순간에 즈음에 서로 말을 놓으며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마치 장기수의 시선으로 다독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떠나는 고박사를 이송하는 팽부장(정웅인)이 가는 길에서나마 편하라고 수갑을 풀어주자 고박사가 법조항을 들먹이며 다시 수갑을 채우라 하는 장면도 훈훈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박사의 캐릭터가 아닌가. 겉으로는 툴툴대고 거칠어 보이지만 수감자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여 왔던 팽부장에게 고박사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떠나면서 고박사가 제혁(박해수)에게 남긴 노트 선물은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고박사의 방식으로 제혁에 대한 애정이 그 노트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제혁이 재활훈련을 할 때 매일 매일 던진 공의 수나 그 때 그 때 달라진 컨디션의 변화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늘 서류를 통해 잘못된 것들의 시정을 요구하고 툭하면 법 조항을 꺼내는 고박사라는 다소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인물이 어느새 정이 들었고, 그래서 떠나는 과정에서 그 예우를 다하는 듯한 마음이 고박사의 퇴장에서 여지없이 느껴진다.

드라마 초반에 장기수(최무성)와 마치 부자지간처럼 등장했던 장발장(강승윤)은 석방이 되어 감방을 떠나게 되면서 그것으로 끝이라 여겨진 바 있다. 실제로 장발장은 감방을 나서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 인물이었다. 하지만 장발장이 장기수를 잊지 않고 다시 면회를 오고 그와 함께 지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내놓는 장면을 보면 이 드라마가 장발장이라는 인물을 잊지 않고 끝까지 챙기려 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바로 이 장발장의 재등장이 있어 고박사의 퇴장 역시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처음 구치소에 제혁이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오게 된 법자(김성철)도 다른 교도소로 이감해가면서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돌아와 제혁을 돕는 인물이 되었다. 제혁에 의해 죽을 위기에 놓였던 엄마가 수술을 받은 은혜를 입은 법자이기 때문에 그는 제혁을 위해 어떤 일이든 보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일찍 퇴장했지만 다시 돌아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

제혁을 찌르고 갔던 똘마니(안창환)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도 그렇다. 물론 이미 그런 폭력을 저질렀던 인물을 다시 한 감방에 들어오게 한다는 설정은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분명 이 인물은 다시 제혁과 어떤 관계의 반전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거의 모든 인물들이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떤 놀라움과 감동까지 줬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드라마에서 조연의 경우 몇몇 역할을 수행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것은 조연이 드라마 스토리를 위한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드라마일수록 주연만큼 조연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판정하는 기준으로서 주연이 아닌 조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의미가 있다. 그건 작품이 얼마나 세세하게 주변 인물들까지 허투루 활용하지 않는다는 걸 드러내는 일이고, 또한 작품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한 팀이 결성이 되면 마치 유사가족 같은 끈끈함이 만들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인물 하나가 빠지거나 새로운 인물이 들어가는 일은 그만큼 신중해진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 구성원들이 바뀔 때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나왔던가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비롯해 <응답하라> 시리즈까지 신원호 PD가 연출한 작품들을 보면 바로 이런 예능적인 팀의 끈끈함이 드라마 속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어느새 이 감방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제혁과 장기수,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한양(이규형), 유대위(정해인) 그리고 고박사까지 한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이러한 신원호 PD의 인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정성 때문이다. 

떠나는 고박사와 떠났다 다시 등장한 장발장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똘마니 같은 인물들의 들고 나는 과정에서 신원호 PD는 허투루 인물을 쓰는 법이 없다. 그 무한애정은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에 닿아 있다. 이를 테면 제혁의 친구 역할인 준호(정경호)의 남다른 훈훈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나, 그와 연애를 시작하는 제혁의 동생 제희(임화영)나 해수의 연인인 지호(정수정) 같은 인물들도 잠깐씩 등장하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남다르다. 이 많은 인물들이 하나하나 빛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 그저 우연히 생긴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신원호 PD의 정성어린 손길이 닿아 생겨난 당연한 결과다.(사진:tvN)

‘감빵생활’, 공간은 감방이어도 이야기는 종합선물세트

우리는 감방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에 갖는 편견들이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딘지 답답할 것 같고 이야기도 수감자들 사이의 대결구도 같은 감방 소재의 장르 안에 머물 것 같다는 것들이다. 하지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면 이것이 한낱 편견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감방이야기가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건드리고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어서다. 

주인공 제혁(박해수)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건 어떤 쓸쓸함과 아픔, 슬픔 같은 것들이다. 겉보기에는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로 추앙받던 그가 굉장히 행복할 거라고만 여겨왔지만, 그는 자신의 생일날 교도소에서 차려준 특별한 야구 이벤트(?)에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토로한다. 교통사고에 재활치료만 한 줄 알았던 그가 사실은 위암 투병까지 해왔다는 것.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버텨온 자신을 사람들은 ‘노력의 아이콘’으로 추앙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나 힘들어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의 울분은 시청자들에게 먹먹함을 주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제혁 같은 ‘세상 제일 재수 없는 놈’이라 스스로를 말하는 인물이 보여주는 슬픈 정서만을 담지는 않는다. 같은 감방에서 지내는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같은 인물은 진지한 얼굴에서 나오는 혀 짧은 소리로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준다. 그는 그저 진지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캐릭터의 코믹한 설정 하나로 그건 웃음으로 전화된다. 마약을 복용하다 들어온 한양(이규형)은 그 해롱거리는 정신상태가 마치 아기 같은 느낌을 주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진다. 제혁의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이런 캐릭터들이 공존하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이완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다양한 감정들을 균형 맞춘다.

장기수(최무성)와 장발장(강승윤)의 이야기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인물들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증거다. 처음에는 어딘지 살벌한 느낌을 주었지만 차츰 장발장이 부르듯 ‘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인물로 다가오는 장기수. 조폭 시절부터 엮인 장발장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부채감 같은 걸 갖고 있는 장기수는 출소를 앞둔 장발장이 자신이 살기 위해 그를 무고한 사실에도 그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준다. 장기수는 그래서 이 감방이야기가 가진 어떤 훈훈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장발장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작업을 나가서도 도둑질을 하는 인물. 그리고 감방 검사에서 시계를 찼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자 그게 자기 것이 아니라 장기수의 것이라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다. 장기수와의 관계에서 마치 부자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지만 결국은 자기 버릇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발장에게서 느껴지는 건 어떤 반전의 감정이다. 물론 그가 그렇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어깨를 두드려준 장기수는 생각보다 더 큰 인물이다. 그가 했던 행동이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편하자고 한 일”이라는 것.

그러면서 감방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부정과 그로 인해 사필귀정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또한 이 드라마는 빼놓지 않는다. 동료들의 등을 처먹는 작업반장이 가구 만드는 대회에서 1등한 우승자의 상금을 가로채려 한 것이 결국 발각되는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통쾌함 같은 걸 선사한다. 

추락하는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제혁이라는 인물과 그 속에서도 웃음을 주는 카이스트나 한양 같은 동료의 이야기, 인간적인 먹먹함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섬뜩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장기수와 장발장 이야기 그리고 감방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위기와 반전의 이야기까지.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을 한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감방이라는 공간이어서 어딘가 한정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감방이어서 더 다채로울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는 역발상. 이것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웬만한 시청자들을 모두 빨아들일 수 있는 저력이 아닐까.(사진:tvN)

신원호 PD의 마법, ‘감빵생활’이 주는 판타지라니

도대체 이 따뜻함의 정체는 뭘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다보면 감방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도소는 구치소와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제혁(박해수)이 지내게 된 감방 안 사람들은 의외로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감방에 처음 들어가게 된 제혁이 보게 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로 라면을 끓여먹는 이야기는 이들의 반전 매력을 드러낸다. 마치 탈옥이라도 할 것처럼 쉬쉬하며 무언가를 공모하던 이 감방사람들은 그러나 그것이 뜨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으려는 ‘작전’이었다는 걸 보여주며 이들이 꿈꾸는 것들이 이런 소소한 것이 주는 행복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감방의 방장격인 장기수(최무성)는 겉보기에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기지만 장발장(강승윤)이 아버지라 부를 만큼 방 사람들을 챙기는 인물이다. 장발장은 닉네임처럼 빵을 훔치다 감방에 들어온 인물이고, 고박사(정민성)는 기업사기 전과로 들어왔지만 고발 고소 전문이다. 카이스트(박호산)는 도박으로 들어왔지만 뭐든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만물박사. 풍기는 포스와 달리 혀 짧은 소리로 ‘신라면’인지 ‘진라면’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오게 된 몽롱한 정신으로 할 이야기는 다 하는 나름 귀여운 캐릭터 뽕쟁이(이규형)도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주는 따뜻함의 원천은 이런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욕망들이다. 마침 방영하는 <영웅본색>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장기수를 위해 카이스트가 한 채널 밖에 나오지 않는 감방의 TV를 어떻게든 건드려 다른 채널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훈훈함을 준다. 결국은 장발장이 슬쩍 해온 리모콘으로 쉽게 채널을 돌려버리지만. 

모가지 밖에 나오지 않는 닭볶음이나 일주일에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는 온수 샤워를 위해 끝없이 민원을 넣어 상황을 호전시키는 고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가 나오고 매일 온수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는 그 상황만으로도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이 교도소에 위기상황이 없는 건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작업실의 반장(주석태)은 제혁에게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지만 제 맘대로 되지 않자 그 어두운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제혁을 성추행하려 하지만 그 때 마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교도관 준호(정경호)에 의해 불상사를 피하게 된다. 제혁의 오랜 친구인 준호가 애써 힘을 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건 오로지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교도소가 제혁에게 주는 위기상황과 또 그를 보호해주려는 인물 사이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이 이 드라마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그 느낌이 주는 소박함과 훈훈함은, 사회와는 유리되어 있고 살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곳에서도 ‘슬기로운’ 방식으로 인간적인 삶을 희구하는 인물들의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감방생활을 보고 있는 것이지만 또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금 보게 되는 것.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좌절되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감방생활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먹기 위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를 먹기 위해서, TV의 채널을 돌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또 온수 샤워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래서 그것이 관철됐을 때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어떤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가는 건 엄두도 못내는 해외의 유명 리조트 같은 곳을 날아가야 판타지를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방 같은 뭐 하나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공간에서 아주 소소한 것들을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해내는 그 장면은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역시 신원호 PD답게 감방이라는 차가운 공간조차 사람 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왜 신원호의 마법이라 부르는 지 알 것 같다.(사진:tvN)

'파수꾼'이 제시한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단순한 방법

사실 MBC 월화드라마 <파수꾼>이라는 드라마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리로 얼룩진 법 집행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이 법망 바깥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며 법이 집행하지 않는 정의를 대신 실현해가는 이야기는 실제 벌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수꾼>의 이 판타지적 이야기는 현실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검찰과 경찰이라는 사법 정의가 아직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그 지점을 제대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수꾼(사진출처:MBC)'

<파수꾼>이 그 문제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인물은 이제 검찰총장 후보로 낙점을 받아 인사청문회를 치르는 윤승로(최무성)다. 그가 그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건 다름 아닌 무수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밑거름 되었다. 모진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몰아세운 장도한(김영광)의 아버지가 그렇고, 그를 위해 증인으로 나섰다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공경수(키)의 어머니가 그러하다. 윤시완(박솔로몬)에 의해 어린 딸이 살해당했지만 그의 아버지 윤승로의 권력 앞에 오히려 도망자 신세가 된 조수지(이시영)도 마찬가지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되기까지 그 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만들어진 무수한 피해자들. 하지만 가해자는 바로 그런 비리를 통해 더 권력의 정점으로 오르고, 피해자들은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러니. 그래서 피해자들은 장도한을 중심으로 이 모든 걸 뒤집기 위해 스스로 파수꾼이 되기로 한다. 제대로 행사되지 않는 법 정의가 탄생시킨 것이 바로 윤승로라는 괴물이다. <파수꾼>은 윤승로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네 비극적 현실의 시작이 바로 법 정의가 권력으로 사유화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걸 말한다. 

하지만 제대로 서지 못하는 사법 정의가 만든 괴물은 윤승로 하나만이 아니다. 그로 인해 비틀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 인물들이 줄줄이 생겨난다. 그의 사주로 인해 수족이 되어 고문은 물론 살인까지 저지른 비리형사 남병재(정석용)가 그렇다. 그리고 어찌 보면 윤승로의 피해자인 장도한이나 그와 함께 하는 파수꾼들인 조수지, 공경수, 서보미(김슬기) 모두 또 다른 얼굴의 괴물들이다. 

장도한은 조수지를 움직이기 위해 그녀의 딸이 윤시완에 의해 살해되는 그 상황을 방조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모든 죄를 자신이 짊어지기 위해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윤승로를 잡기 위해 그가 ‘내부고발자’가 되면서까지 해온 일들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또한 사법 정의가 실현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해킹과 도촬을 해온 공경수와 서보미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법정의가 제대로 서지 못한 공간에 점점 많아지는 건 괴물들이다. 제대로 된 공적 사안으로 처리되지 않는 사법정의는 비리와 사적 복수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수꾼>이 사법정의 문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은 바로 윤승로의 아들 윤시완이라는 괴물을 통해서다. 잘못을 저질러도 윤승로가 그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해 덮어주곤 했던 아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괴물이 되어버린 것. 결국 윤승로에게 법의 단죄를 받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바로 괴물인 아들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윤승로는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은 잘못을 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검찰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이 말은 모순이다. 신뢰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비리들이 저질러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면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오히려 잘못은 인정하는 일이라고 <파수꾼>은 말하고 있다. 그것이 더 많은 괴물을 탄생시키지 않는 길이고, 거기서부터 겨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육룡><응팔>, 좋은 드라마엔 버릴 캐릭터가 없다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과 이인겸(최종원)이 대결할 때 갑자기 등장한 캐릭터가 하나 있다. 이름 하여 남꼴통(진선규)’. 앞뒤가 꽉 막혀 수사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다는 뜻에서 지어진 별칭이다. 그런데 순군부의 남꼴통은 이방원(유아인)을 잡아다 고신을 통해 아버지 이성계(천호진)를 옭아매려 하는 이인겸과 결탁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남꼴통은 사실 정도전과 뜻을 같이하는 인물로 이인겸의 뒤통수를 친다. 그리고 그 남꼴통의 이름이 뒤늦게 실제 역사의 인물인 남은이라는 게 밝혀진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 남은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인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가가 느껴진다. 사실 애초에 남은이라는 이름을 밝혔다면 이 캐릭터가 그리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들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꼴통이라는 별칭을 장치로 쓰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남은이란 캐릭터는 확실하게 매력적인 인물로 세워진다.

 

사실 이 드라마의 남꼴통 캐릭터를 연기한 진선규는 2010년부터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단역이 많았고 따라서 그리 주목되는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꼴통이란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 모습은 이 배우가 꽤 단단한 연기 내공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극의 인물로서 진선규는 진짜 고려시대에서 막 되살아난 듯한 리얼함을 잘 살려냈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것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캐릭터 하나까지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작품의 특징일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육룡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악역으로서 길태미(박혁권), 이인겸(최종원), 홍인방(전노민) 같은 인물이나 중심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이방우(이승효), 조영규(민성욱) 같은 인물들까지 저마다 매력을 갖추고 있다. 악역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악역을 세우지 않고 조역이라고 해서 보조적인 역할에만 놔두지 않는다. 이건 아마도 좋은 드라마가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N <응답하라1988> 역시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는 덕선(혜리)과 보라(류혜영)와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택이(박보검), 동룡(이동휘)이 젊은 세대 주인공으로서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들의 부모인 성동일, 이일화, 라미란, 김성균, 김선영, 최무성 같은 어른 세대들도 결코 변방의 캐릭터가 아니다. 김선영과 최무성은 아마도 <응답하라1988>이 되살려 놓은 중견배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선의 절친인 장만옥 미옥(이민지)과 정환의 형인 정봉(안재홍)이 비오는 날 운명적으로(?) 만나는 이른바 <늑대의 유혹> 패러디 장면은 이들 캐릭터에 대한 관심 또한 높여 놓았다. 미옥을 연기하는 이민지는 캐릭터 설정 상 못생김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제 공개된 얼굴은 완전 반전의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 자체가 그녀가 가진 연기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딘지 바보스런 캐릭터인 정봉은 심장병 에피소드를 통해 그 따뜻한 모습을 그려낸 바 있다. 자신보다 타인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드러났던 것. 그런데 정봉을 연기한 안재홍은 이미 영화 <족구왕>에서 전역 복학생 역할로 충무로의 신예로 떠오른 바 있고 최근에는 <도리화가>에서 이동휘와 감초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육룡이 나르샤>의 남꼴통이나 <응답하라1988>의 장만옥처럼 중심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캐릭터들이 많은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 시대에 달라진 중심과 주변에 대한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 주인공은 어쨌든 드라마 구조상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주변 인물들을 허투루 세워두지 않는 것. 이제는 좋은 드라마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지 않을까.



스토리보다 캐릭터, <응답>의 핵심은 예능 유전자

 

형만한 아우 없다고 했다. 속편이 본편을 앞지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는 다른 것 같다. 시청률로만 봐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이 <응답하라> 시리즈는 갈수록 강력해진다. 신원호 PD는 애써 겸손하게 망할 작품이라고까지 말했지만 시청자들의 선택은 그 말을 결국 뒤집어버렸다. 6% 시청률(닐슨 코리아)부터 시작한 드라마는 어느새 11%를 훌쩍 넘기고 있다. 케이블 드라마로서도 놀랍고 본편을 뛰어넘은 속편으로서의 <응답하라> 시리즈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이 시리즈가 가진 기존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작법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응답하라>시리즈는 기존 드라마들이 하듯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스토리라인보다는 오히려 캐릭터에 포인트가 맞춰진다. <응답하라1988>의 핵심 경쟁력은 그래서 쌍문동 골목집에 살아가는 제각각 개성강한 인물들에서 나온다. 덕선(혜리)을 중심으로 하는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박보검), 동룡(이동휘)이 젊은 세대에 맞춰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면, 그들의 부모인 성동일-이일화, 김성균-라미란 그리고 김선영과 최무성은 윗세대에 맞춰진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이 같은 세대끼리 우정과 정으로 엮어지거나 애정으로 엮어지는 그 관계의 변주는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이 된다.

 

쌍문동 골목집이라는 판타지적인 공간에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놓지만 어떤 일관된 스토리라인의 흐름을 만들어놓지 않은 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기존 드라마들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매회 이야기가 이어지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나올 지를 기대하게 하는 구성을 갖고 있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매 회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고 그 주제에 맞는 에피소드들이 매력적인 인물들을 통해 보여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는 마치 시트콤을 닮아있지만 그렇다고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트콤은 아니다. 단지 시추에이션이 있고 코미디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가 있다는 게 차별점이다. 그래서 덕선의 언니인 보라(류혜영)가 데모를 하고 경찰에게 잡혔을 때 엄마인 이일화가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천재바둑기사 택이가 아버지 최무성과 무뚝뚝하지만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진 기자 인터뷰를 통해 진심을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뭉클한 드라마적인 감동을 주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연속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 이야기는 뭘까 하는 궁금증을 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 궁금증은 누가 덕선과 결혼했나 하는 등의 인물들의 관계에서 나오고, 나아가 이것은 이 드라마의 힘이 결국 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응답하라>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고,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건 다분히 예능적인 그림이다. 예능은 애초에 어떤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청자를 끌 수 없는 구조다. 대신 캐릭터를 세워두면 그 인물의 매력에 의해 시청자들이 어떤 기대를 갖게 된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예능에서 잔뼈가 굵어온 인물이라는 점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어떻게 이들에게 최적화되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렇게 스토리라인을 잘 몰라도 인물의 매력을 알게 되면 빠져드는 드라마는 새로운 시청자들의 중간유입이 용이해진다. <응답하라1988>이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해나가는 건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 쌍문동 골목집에 사는 이들에 대한 아련한 판타지를 경험하고 있다. 스토리보다 먼저 캐릭터에 매료시키는 이 예능의 유전자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속편이 나와도 본편보다 더 강력해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응팔>, 가진 자들이 나누는 서민들의 판타지

 

돈 천 만원을 갚지 않으면 집이 경매로 넘어갈 판에 몰린 김선영.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웃 라미란과 이일화는 그것이 마치 제 일이나 되는 듯이 안타까워한다. 라미란은 몇 백만 원은 자신이 꿍쳐놓은 게 있다며 빌려주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빌려줄 돈 천 만원이 없어 아쉬운 얼굴이다. 그런 그녀에게 김선영은 지금껏 신세져 온 것도 미안한데 그럴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이런 장면은 <응답하라1988>이 갖고 있는 특별한 판타지를 잘 보여준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그토록 많이 그려왔던 판타지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백화점을 통째로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사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응답하라1988>은 그런 선망과 동경의 판타지를 그려 넣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채워지는 판타지는 돈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인간적인 정이다. 이 쌍문동 골목에서 가장 잘 사는 집은 아마도 택이네 집일 게다. 천재 기사로서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는 택이(박보검)와 봉황당이라는 금은방을 운영하는 택이 아버지 최무성은 그러나 전혀 그런 부유한 티를 내지 않는 인물들이다. 이웃의 부러움을 사기는 하지만 선망의 존재라기보다는 그저 마음 착하고 과묵한 이웃 정도다.

 

최무성이 김선영의 사연을 알게 되고 선뜻 천만 원이 든 통장을 내놓는 장면은 그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돈보다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걸 그 장면 속에서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최무성은 자신이 내주는 천만 원보다 쓰러진 자신을 구해주고, 냉장고가 비면 냉장고를 채워주며 함께 모여 때로는 떠들썩하게 웃을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준 박선영에게 더 고마워한다. 이런 장면에서 돈이란 저 뒤편으로 밀려난다.

 

집이 넘어가게 생겼는데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홀로 있는 최무성을 찾아와 살뜰히도 챙겨주는 김선영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 장면 역시 돈 문제보다 더 중한 것이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떡 진 머리까지 감겨주는 모습은 조금은 과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허용되는 건 그러한 정을 드러내는 판타지 역시 강력하다는 걸 말해준다.

 

중국의 바둑대회에 나간 택이를 따라간 덕선(혜리)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판타지가 깔려 있다. 국보급 존재인 택이가 대회에서 이기는 그 거창한 이야기보다 <응답하라1988>은 그 뒤에서 묵묵히 몇 시간을 기다려 초밥을 사다 방문에 걸어놓는 혜리의 이야기를 담아 넣는다. 택이가 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잘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은 혜리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걸 알게 된 택이가 혜리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마음마저 설레게 만든다.

 

혹자는 <응답하라1988>의 이야기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가 아니고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결국 드라마가 그리는 것들은 대부분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가 아닌가. 그리고 그 판타지란 그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저런 삶이 어느덧 판타지가 되어버린 현실. 선망이 아닌 사람냄새를 담고 있는 판타지는 그래서 우리시대에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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