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SNL>, 풍자 좀 하게 해주면 안 되나

 

KBS <개그콘서트> ‘11’ 코너에서 이상훈은 서로 비슷하여 견줘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묻는 유민상의 질문에 여당과 두 야당이라고 답했다. 여당도 두 야당도 모두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뜻을 담아낸 풍자다. “친인척이나 가족을 보좌관으로 채용하지를 않나. 홍보 리베이트에 휩싸이지를 않나.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분들이 이러면 어쩌느냐.” 그의 속 시원한 한 마디 한 마디는 시청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잠시나마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어지는 풍자. “두 얼굴을 가진야누스를 묻는 질문에 이상훈은 부산 경찰관들이라며 최근 부산에서 벌어진 경찰관들의 여고생 성관계 사건을 꼬집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것이 개그의 소재로 삼아지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은 어떤 통쾌함을 느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세태를 꼬집는 풍자가 가진 힘이다.

 

이 날 이상훈의 풍자가 더 특별하게 여겨진 것은 그가 지난 5월 어버이연합으로부터 피소되어 지난달 30일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던 사실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에서 이상훈은 계좌로 돈을 받기 쉬운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어버이연합이라고 답한 후, 그 이유로 가만히 있어도 계좌로 돈을 받는다. 전경련에서 받고도 입을 다물고 전경련도 입을 다문다.”고 말한 바 있다. 어버이연합은 이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사실 대중들에게 어버이연합이 하는 일련의 말과 행동들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질타를 받아왔다. 항간에는 어버이라는 단어를 어버이연합이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명예훼손을 이야기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어버이연합이 어버이를 훼손하는 느낌이다. 물론 정치적 사안들이야 다른 역학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개그와 코미디의 영역만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버려두는 게 그나마 답답한 현실에 작은 숨통이라도 틔워주는 일이 아닐까.

 

사실 이러한 외압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의 전성기 시절 최효종은 국회의원을 폄하했다며 강용석에게 고소당했고, 메르스사태를 풍자했던 민상토론이 결방되자 외압논란이 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상토론은 아예 이런 외압설을 소재로 끌어와 누가 하지 말라고 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져 대중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tvN <SNL코리아>는 본래 시사풍자와 19금 개그가 균형을 이루는데서 그 정체성이 만들어졌던 프로그램이다. 초기 위켄드 업데이트여의도 텔레토비같은 코너로 신랄한 시사풍자를 보여줬던 <SNL코리아>는 그러나 지금 이런 색깔이 사라진 지 오래다. 시사풍자가 갖는 품격이 사라지자 19금 개그의 선정성과 자극만 많아진 느낌. <SNL코리아>의 이런 변화에 대해서도 외압설이 끊이지 않는다. 어째서 <SNL코리아>는 그 날카로웠던 풍자를 거둬들였을까.

 

물론 누가 하지 말라고 합니까?”하고 물을 정도로 직접적인 외압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단체들이 심지어 고소까지 하는 이런 환경 속에서 개그맨들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개그콘서트>의 많은 개그맨들은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면 개그를 짜거나 할 때 소재나 표현에 있어 위축된다고 말한다.

 

적어도 웃음의 지대에서만큼은, 또 대중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에 대해서만큼은 좀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여유를 줄 수는 없을까. 만일 얼토당토않은 풍자라면 대중들도 호응할리 없고, 그런 호응 없는 풍자를 굳이 개그맨들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풍자는 어떤 식으로든 자체적인 기능에 의해 아무렇게나 만들어질 수 없다는 얘기다. 그만큼 공감을 추구하고 공감 받는 개그라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하더라도 수긍해주고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어른들의 자세가 아닐까.

 

항간에는 개그가 점점 재미없어진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그들이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분위기인가를 한번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개그맨이 고소당하는 이런 웃지 못할 개그들이 현실에 넘쳐나는 한, 우리네 희극인들은 더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잖아도 웃을 일 없는 세상, 풍자라도 시원하게 해줬으면. 답답하다 정말.

공인 강용석과 일반인 강용석

 

SBS 박상도 아나운서가 자유칼럼그룹에 게재한 ‘강용석의 변신은 무죄?’라는 칼럼은 강용석이 방송으로 일종의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우리가 강용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정서를 갖고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썰전(사진출처:JTBC)'

혹자는 사적인 장소에서의 말 한 마디가 무슨 주홍글씨나 되느냐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문제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이 나왔던 장소가, 비록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였다고 하나 그것을 사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평소 친분이 있던 대학생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치인이라는 공인으로서 대학생과 만남을 가졌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걱정이랍시고 아나운서 지망한다는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일종의 ‘조언(?)’을 했던 것이다.

 

아나운서라는 특정 직업이 나왔기 때문에 아나운서 협회가 고소장을 냄으로써 이 문제만 불거졌지만, 사실 그 자리에서 나왔다는 다른 이야기들은 이 땅의 여성들 모두가 불쾌함을 느낄만한 것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는 말이나, 청와대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여학생에게 “그 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면서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한 발언은 심지어 사석이라도 정치인이라면 내놓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2년 전 <개그콘서트> 의 '애정남'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던 최효종을 고소했을 때 마치 공공의 적처럼 강용석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던 것은 그런 행위가 어떤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자신의 대중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이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강용석이 최근 방송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은 박상도 아나운서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방송이라는 마법이 만들어낸 ‘잘못된 기적’처럼 보인다.

 

국민 비호감으로 전락해 정치권에서조차 퇴출된 인물이 오히려 방송가의 뜨거운 인물로 급부상한데는 그만한 이미지 변신 전략이 깔려 있다. 강용석은 먼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으로 방송 이미지를 확보했다. <슈퍼스타K>에 출연해 오디션을 본 것은 그저 뜬금없는 행위가 아니었던 셈이다. 정치인으로서는 고소남으로 이미지화되었던 그는 방송인으로서는 지적질을 당하는 입장에 자신을 세웠던 것.

 

비호감 정치인은 스스로 대중들이 돌팔매질 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방송으로서의 입지를 마련한 셈이다. 게다가 그가 정치인으로서 변호사로서 갖고 있는 정보들은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의 MC들과 어떤 차별화를 만들었다. 늘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비슷비슷한 예능 프로그램의 멘트들과는 다른 ‘전문적인 느낌’이 주는 신선함이 거기에는 있었다. 강용석 이미지의 마법 같은(?) 변신은 이처럼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방송이 가진 힘이 작용했던 것이다.

 

박상도 아나운서의 글은 그래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 글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는 걸까. 여기에는 그가 글에 호명한 ‘대중’이라는 글귀에 대한 서로 다른 정서가 들어있다. “이런 그의 행태를 보면서 ‘그냥 웃자고 한 말이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 ‘도대체 대중이 얼마나 우스우면 저럴까?’하는 분노가 생겨납니다.” 여기서 박상도 아나운서가 하려는 말은 대중은 무섭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이 말은 강용석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급호감으로 바뀐 것에 대한 비판의 글들과 뒤섞여 정반대로 읽힐 소지도 있다.

 

즉 대중들이 강용석을 좋아하게 된 것에 대해 박상도 아나운서가 ‘우스운 대중’ 운운하며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박상도 아나운서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나쁜 이미지도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끌어와 포장하려는 방송이며, “사석에서는 이처럼 좋을 수 없다”는 일반인으로서의 강용석이 아니라 정치 일선에서 공인으로서는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방송인이라는 공인으로 서 있는 강용석에 대한 것이다.

 

물론 한 번 잘못하면 영원히 퇴출되어야 한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인에 대한 대중들의 허용은 일종의 정서적인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방송인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을 때 일종의 자숙기간을 갖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강용석은 그런 기간이 없었다는 것.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말 한 마디로 모든 걸 쉽게 뒤집는 건 어딘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썰전>에서 허지웅은 “<썰전>이 강변호사한테는 <힐링캠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강용석 변호사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에 대한 축하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의미도 들어 있다. 시청자들은 <힐링캠프>를 때로는 문제 연예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프로그램처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는 점이다. 박상도 아나운서가 제기한 문제제기는 그래서 그저 강용석 한 사람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작금의 방송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케이블, 종편에서 부활한 강용석, 공영방송에서 추락한 최효종

 

“국회의원 중에서 예능감이 뛰어나신 분 계십니까?” Jtbc <썰전>에서 강용석에게 박지윤이 이렇게 묻는다. 옆에 있던 김구라가 홍준표, 남경필 의원을 꼽고 또 누가 없냐고 묻자,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진심 없는 리액션을 보이고 있던 강용석은 결국 “강용석이죠 뭐.”하며 자신을 꼽았다. 그러자 김구라는 <썰전> 기사에 달린 강용석에 대한 댓글 이야기를 꺼내며 ‘칭찬 일색’이었다고 증언해주었고, 허지웅은 “‘썰전’이 강변호사한테는 <힐링캠프>”라고 덧붙였다.

 

'썰전'(사진출처:Jtbc)

2년 전 강용석이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던 최효종을 고소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놀라운 변화다. 게다가 강용석은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아나운서들에게 명예훼손으로 피소되기도 했던 인물이 아닌가. 여론의 지탄을 받으며 국민 비호감으로 전락하고 한나라당에서도 제명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던 강용석은 어떻게 이처럼 화려한 재기를 할 수 있었을까.

 

강용석의 인기비결은 지난 <썰전>의 방송 한 대목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이 날 주제는 지상파 봄 개편이었는데, 강용석은 “지상파 방송이 차별성을 잃었다”고 자못 진지하게 꼬집는다. 옆에 있던 김구라가 “공중파에서 섭외 들어오냐?”고 슬쩍 치고 들어오자 강용석은 굳이 부인하지 않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오매불망”이라는 것. 김구라는 “만약 들어오면 어떤 프로를 하고 싶냐”고 되묻는다. 강용석은 냉큼 ‘그것이 알고싶다’를 지목한다. 그러자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윤석이 마지막 일침을 던진다. “사회자로서요? 아니면 소재로서요?”

 

이 짧은 대화 속에는 강용석이 어떻게 방송에 소비되고 있는가가 들어있다. 강용석은 정치인이나 변호사로서의 위치에 걸맞는 진지함을 먼저 보이다가도 김구라가 속내를 건드리면 거침없이 그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과거나 비호감적 요소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거기에 대한 공격 또한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김구라가 그의 방송 멘토라고 강용석이 얘기했듯이 그의 방송 존재 기반은 초반 김구라가 대중들을 대신해 그를 공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강용석은 반발이 아니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꾸준히 보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강용석이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정서적인 전략이라면, 그가 정치인으로서 변호사로서 갖고 있는 다양한 정보들은 그의 말에 대중들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정보적인 전략이다. 그의 정보는 호기심을 채워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국회의원이 어느 사우나를 가고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하는 점은 대중들에게는 흥미로운 호기심을 자극한다. 즉 강용석에게는 김구라라는 천군만마의 지원자가 있는데다, 정서적인 전략과 자신만의 특별한 정보를 자원으로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Jtbc나 tvN 같은 지상파 바깥의 매체가 갖는 비주류적인 방송의 특징은 때론 자극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이야기에 멍석을 확실히 깔아주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강용석의 고소로 한 때 주가가 100배 이상 올랐다(최효종 스스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고 했던 최효종은 어째서 현재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까. 최효종은 현재 <개그콘서트>에서 ‘애니뭘’과 ‘위캔척’ 등에 출연하고 있는데 그 반응은 확실히 예전만 하지는 못하다. ‘위캔척’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척 할 수 있는 몇 가지 용어들을 알려주는 코너. 군대에 대해서 ‘꿀 빨았네’나 ‘치약미싱’ 같은 용어로 아는 척을 해보라 권하는 식이다. 최효종이 늘 해왔던 이른바 ‘공감 개그’의 하나지만 과거처럼 세태를 꼬집는 힘은 좀 약한 편이다.

 

강용석이 승승장구하는 반면, 최효종이 점점 주목받지 못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그들이 출연하고 있는 방송사(혹은 프로그램)의 이른바 ‘멍석 차이’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과거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상관없이 던져지는 최효종식의 거침없는 비판과 풍자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개그콘서트>가 최고의 개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일종의 책임의식은 소재의 제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기검열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런 분위기에서 헝그리한 개그가 나오기는 어렵다.

 

반면 바닥을 친 강용석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케이블과 종편에 출연했다. 그의 이 배수진은 논란이나 자극 자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케이블과 종편으로서는 오히려 자산이 되는 셈이다. 어쨌든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한때 정점을 찍었던 연예인은 여러 환경적 조건에 의해 평범해진 반면, 그 연예인을 고소함으로써 국민적 비호감이 되었던 정치인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효종이 정치적인 이미지로 자꾸 포장되는 것과 달리, 강용석은 연예인의 이미지로 포장된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이 두 사람의 길을 갈랐을 지도 모르겠다.

<개콘> 풍자를 바라보는 두 시선

 

<개그콘서트>의 날선 풍자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 <갑을컴퍼니>의 최효종, 새 코너인 <고스톱>의 김기열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가 그 포문을 열었다. <갑을컴퍼니>에서 최효종은 투표에 있어서 공약만 난무했지 실제 된 일은 없다며 늘 국민들이 을인 이유를 밝히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제발 국민 갑갑하게 하지 말고 국민 모두 갑으로 만들어 달라."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새롭게 시작한 코너인 <고스톱>의 김기열은 우유부단한 국회의원으로 등장해 끝없이 말을 바꾸는 정치인을 에둘러 풍자했다. 한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역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서민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기업들을 위한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면서 “하지만 한 가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코미디’를 지목하기도 했다. “웃기는 것은 자신들이 할 테니 나랏일에나 신경 쓰라”는 것.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늘 하던 <개그콘서트>식의 풍자였지만 여기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들의 ‘용감한(?) 풍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들의 개그가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던 것. 심지어 “코미디는 자신들이 할 테니 나랏일에나 신경 쓰라”는 말을 그대로 뒤집어서 “개그맨들은 개그나 해라 정치는 하지 말고” 식의 반응들까지 나왔다.

 

아마도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풍자의 대상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코너의 내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했다기보다는 오히려 풍자를 통해 “과거와는 달리 잘 해 달라”는 염원을 전한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 전이니 사실 업무에 대해 비판할 내용도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정치인들의 행보를 비판하며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번 대선은 참 많은 숙제를 남겼다. 과거에 지역구도가 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숙제였다면(이것은 지금도 그렇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기에 세대 구도가 또 하나 겹쳐진 상황이었다. 지역구도는 지역 간의 갈등을 만들지만, 세대 구도는 가족 내에서도 분열을 만들어낸다. 선거가 프레임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세대 구도를 프레임으로 잡는 건 그만큼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이런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되면 자칫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너무 다른 시선의 부딪침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함께 보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그저 개그 프로그램의 한 풍자 코너에 대해서 이렇게 날선 공방이 생기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풍자 코너 하나를 보면서도 그걸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사실 좋은 사회라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일 것이다. 개그의 한 표현수단인 풍자가 눈치를 보는 그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개그콘서트>의 풍자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누구든.


공감 없는 상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승승장구'(사진출처:KBS)

최근 이른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애정남'이 대세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줄임말인 '애정남'. 도대체 뭐가 애매하다는 것이고, 그는 또 그걸 어떻게 정해준다는 얘기일까. 먼저 간단한 몇 가지 애매한 상황을 제시해보자.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다가 마지막 한 개가 남았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그냥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덥석 먹자니 좀 그렇고. 또 누군가를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스킨십은 언제부터 해야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을까. 이런 애매한 상황은 너무 사소해보여서 안 보이는 것뿐이지 사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지하철에 앉아 가는데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탔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양보를 해줄 것인가. 하다못해 영화관에서 팔걸이는 어느 쪽으로 해야 옆 사람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사실 너무 소소한 일이라 이런 고민은 전혀 쓸 데 없어 보인다. 실제로 남은 음식을 누가 먹든, 팔걸이를 어떻게 하든 '애정남'이 늘 코너에서 말하듯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정말 쓸 데 없는 고민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애정남'이 건드린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이런 자잘한 것들은 고민의 대상에 끼워주지 않는 걸까. 꼭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지극히 공적이고 법제화된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중요한 의제로 제기될까. 왜 우리가 늘 생활하는 사소한 일상들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걸까. 그걸 조금만 심각하게 얘기해도 좀스러운 사람 취급을 하는 걸까. '애정남'이 열어놓은 것은 바로 이 거대담론들에 의해 가려지거나 소외되었던 자잘한 일상들의 소중함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따위 거대담론들이 도대체 내 살림살이를 얼마나 낫게 해주었는가 하는 냉소적인 시선도 들어있다.

거대담론들은 늘 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던져져왔다. 거기에 우리가 끼어들 틈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디 이런 상명하복식의 혹은 일방통행식의 거대담론으로 굴러가는 시대인가. 이제 우리는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엮어서 세상을 만들어가려 한다.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공약들이 공염불이 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온 유권자들은 이제 '우리들만의 소중한 약속'이 더 중요해졌다. 그 실천 가능한 것들이야말로 어쩌면 실제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다.

물론 '애정남'은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그런 코너가 아니다. 이것은 개그다.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을 통해 웃음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애정남'이 이런 애매한 상황에 내리는 일종의 지침이나 해법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은, 밑반찬일 경우에는 아무나 먹고(리필이 가능하기 때문에), 육류는 집게를 가진 사람이 먹으며(일한 사람이 먹는다), 나머지 기타 음식은 돈 내는 사람이 먹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애정남'이 건네는 답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 상황들이 곤란하고 애매하다는 것을 똑같이 공감한다는 것 그 자체다. 그 상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 "맞아 맞아"하고 공감하며, 일종의 해답을 찾으려는 그 노력 자체에 수긍하고 동조하게 되는 것. 이른바 '공감 개그'라고 불리는 '애정남'이 갖고 있는 대단한 경쟁력의 실체다.

따라서 '애정남'의 힘은 대중들이 현재 어떤 가려움을 갖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에 있다. 지난 추석 다음 아고라에 애정남이 올린 글은 그 단적인 사례다. 추석이나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것을 좋아할 며느리가 몇이나 있을까. 제사 지내고 나면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애정남'은 그런 며느리들에게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아침 먹고 설거지가 끝나는 순간 출발입니다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며느리를 탐탁찮게 여길 수 있을 시어머니에게도 한 마디 공감어린 충고를 곁들였다. "잘 생각하세요. 시어머니들. 이게 지켜져야 따님도 빨리 볼 수 있는 겁니다잉." 이 글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내용을 따다가 쓴 기사에 무려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붙었고, 그 내용도 대부분 "공감 백프로"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좀스럽고 어쩌면 곤란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를 애정남이 살짝 끄집어내는 순간, 빵 터지는 웃음과 함께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졌던 것. 물론 이렇게 인기발언을 제 맘처럼 해주는 '애정남'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졌다.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이런 현실 공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개그는 '애정남'뿐만이 아니다.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도 모두 현실에서 지나쳤던 일상을 가져와 공감을 바탕으로 웃음을 주는 소위 '공감개그'들이다. 하지만 이들 개그들과 '애정남'은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이 현실에 대한 태도다.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은 그 부조리한 일상의 현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것이라면, '애정남'은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지침(?)을 준다. 물론 애정남의 말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쇠고랑을 차지는' 않는 일이지만 '서로 지킴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행동을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걸 강조한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우리들만의'라는 한정이다. 저들의 쇠고랑 차고 경찰 출동하는 거대담론이 있다면, 우리들만의 자잘한 상황 속에서의 아름다운 약속이 있는 셈이다.

'애정남'이 구획하는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왜 이 개그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누군가 정해놓은 것들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대중들은 언제부턴가 저 스스로 약속을 정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국가나 세계가 주창하고 따르기를 바라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비록 작고 소소하다고 하더라도 나와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 물론 이 개그 속에는 저들의 법칙으로 구획되어 좀체 바뀌지 않는 단단한 세상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들어있지만, 그 안에는 또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대안도 들어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약속'은 무엇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동어반복일 지 모르지만 그것은 바로 '공감대'다. '애정남'이 애매한 상황에 던지는 지침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느 사안에 대해 특별히 수사적인 설변이 없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 어찌 보면 상식적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 지키지 않아 더더욱 돋보이는 그런 상식. 마음과 마음의 교감 혹은 동감. 거기서 생겨나는 동류의식. 이런 것들이 이 작은 코너 속에서는 번뜩인다.

마케팅이 단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아마도 '애정남'이 주는 교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이제 상품보다는 문화를 팔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문화라는 것은 바로 '애정남'이 보여주는 그 공감이라는 장치를 통해 만들어지고 공유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만일 공감이 없다면 문화도 없다. 그러니 이를 확대해서 얘기하면 공감 없는 상품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아마도 마케팅의 기본일 것이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이나 공감하게 한다는 것이 그다지 달리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미는 약간 다르다. 공감은 단순히 물건 하나에 심어진 이미지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총체적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드는 회사나 장인의 진심이 더 중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일 그 진심을 대중들이 공감하게 된다면, 상품 판매는 특별한 프로모션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게 될 테니 말이다. '애정남'은 바로 그런 달라진 대중들의 시선을 슬쩍 보여주고 있다.


최효종과 '나꼼수'가 보여주는 대중정서

'승승장구'(사진출처:KBS)

최효종은 '승승장구'에 나와 자신의 풍자 개그에 대해 명쾌한 한 마디를 남겼다. "풍자가 기분 나쁘면 진짜로 그런 사람이란 뜻"이란 거다. 즉 '사마귀유치원'에서 국회의원을 풍자한 자신의 개그에 고소로 맞선다는 것이 결국은 본인이 그런 국회의원이란 걸 자인하는 셈이란 얘기다. 이것은 풍자가 가진 힘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풍자는 말해지는 순간, 진영을 나누는 힘이 있다. 웃는 사람과 웃지 못하는 사람. 게다가 이것은 웃음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웃지 못하는 사람마저 웃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최효종의 풍자 개그와 그것에 대해 한 국회의원이 제기한 고소에 대해 개그맨들은 일제히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얘기했다. 대중들 역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빈다.', '개그를 다큐로 받아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최효종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은 분명 정치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이것을 '정치적인 의도'로까지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실 모든 이들의 사회활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맥락을 갖게 마련이니까. 최효종은 개그맨이고 또 풍자에 관심이 있다. 그러니 현실의 문제들을 웃음의 소재로 끌어올 수밖에 없다. 웃는 사람이 있으면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구분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

우리가 흔히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하는 말에는 은연 중에 개그(확장에서 보면 대중문화)와 정치가 분리된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혹은 여기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가 들어 있다. 개그가 정치에 억압받던 시절의 트라우마다. 정치가 개그를 저질 판정 내리면서 스스로는 고급한 어떤 것(실제로 고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으로 구분지으려 했을 때의 이야기다. 고 이주일씨가 정계를 떠나며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고 말한 일화처럼, 사실 정치나 개그나 질적인 차이는 별로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러니 정치를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여길 필요는 없다. 개그도 정치를 함의할 수 있다.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가 대중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은 것은 이 풍자가 가진 진영 나누기의 효과로 볼 수도 있다. 즉 지금껏 정치라고 하면 진보니 보수니 하는 해묵은 논쟁과,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에서 드잡이를 하는 풍경을 신물 나도록 봐온 대중들에게 김어준이 들이댄 것은 이런 소위 '정치적인 행위'라고 붙여지는 것과 정반대되는 일련의 행위들이다. 그간 비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사적인 이야기', '근거 없는 농담', '상황극', '조롱' 같은 행위들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지한 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뭔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기성 정치 앞에서 이런 지극히 가볍고 맥락도 없고 어디로 튈 지 전혀 알 수 없는 한 편의 개그 같은 이야기들은 확실히 진영을 구분해 버렸다. 정치인 양 얘기하면서 사실은 권력을 탐미하는 기성 정치의 비정치성. 전혀 정치 같지 않은 '잡놈'들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대중들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해 그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나는 꼼수다'의 정치성. 아니 이것은 어쩌면 대중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인 지도 모른다. 대중은 어딘지 현실과 멀리 떨어진 저 기성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 보다는 좀 더 가까이 있는 우리 일상에 정치가 깃들길 원한다.

과거와는 달리 대중문화가 이제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대중정서가 가진 힘이 실제로 정치적인 힘이 되는 미디어 환경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효종은 사실 '애정남'에서부터 이런 대중문화가 가진 정치적인 힘을 부지불식 간에 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상의 '애매한 것을 정해준다'는 그 행위는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키지 않는다고 쇠고랑차지는' 않지만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법의 범주와 일상의 범주는 자연스럽게 대결하게 되고, 거기서 그 공감대를 공유하는 '우리'라는 연대가 생겨난다. 그 공감대가 대중문화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울 시장 선거를 통해 급부상한 세대가 2040이다. 이 세대들의 특징은 어쩌면 이러한 대중문화와 대중정서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사회의 길이 결정되고 그 흐름이 동맥경화가 되어버린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 세대들은 문화를 통해 그 답답한 속내를 풀어내고, 같은 처지를 가진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갖게 됐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정치와 대중문화가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 여기지 말자. 그리고 최효종이 말한 것처럼 '풍자가 기분 나쁘다'는 것은 어딘지 대중정서와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웃지 못하면 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콘', 깊어진 공감, 신랄해진 풍자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렇게 후보가 돼서 당선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그냥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되요. 선거 유세 때 공약도 어렵지 않아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던가, 지하철역을 개통해준다던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되요. 이래도 당선이 될까 걱정이라면 상대방 진영의 약점만 잡으면 되는데 과연 아내의 이름으로 땅은 투기하지 않았는지 세금은 잘 내고 있는지 이것만 알아내세요. 아 그래도 끝까지 없다면 사돈에 팔촌까지 뒤지세요. 무조건 하나는 걸리게 돼있어요. 이렇게 여러분들 이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국회의원이 될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 이렇게 쉽게 국회의원이 돼서 서민을 위한 정책 펼치세요."

'개그콘서트'의 풍자가 더 독하고 신랄해졌다. '사마귀유치원'은 그 정점이다. '어린이 여러분'이 아니라 '어른이 여러분'을 상대로 하는 '사마귀유치원'은 대놓고 정치적인 문제들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풍자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예쁜 집에 살고 싶다'는 어른이들의 소망에 대해 최효종은 천연덕스럽게 "교대에 가면 된다"며, "초봉이 140만 원"인데 "숨만 쉬고 살면 89세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어요. 너무 쉽죠?"하고 말한다. 또 아이를 낳을 경우에는 "1인당 양육비가 2억4천씩 들기 때문에 아이들과 숨만 쉬고 살았을 때는 217세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의 자질문제에서부터 집 마련은 언감생심인 서민들의 현실적인 고충까지 풍자의 대상에는 거침이 없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물론 '개그콘서트'는 현실풍자가 그 바탕에 늘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 강도가 이토록 강해진 건 최근의 일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사태를 전제해두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료주의와 무능력한 위기대처능력을 사정없이 꼬집는다. 당장 테러가 일어날 상황을 긴박하게 브리핑하지만, 거기에 대해 첫 마디는 "안돼-"인 상황.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안되는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음으로써 결국 위기에 대처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무능력. '비상대책위원회'나 '사마귀유치원'은 보는 내내 깔깔 웃게 만들지만 그 밑에는 그간 답답하고 억눌려왔던 서민들의 감정들이 꿈틀댄다.

이처럼 독한 풍자가 대중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 풍자가 꼬집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딱히 비판적인 현실 풍자가 아니라고 해도 '애정남'이나 '생활의 발견', '불편한 진실' 등, 현실을 공감하게 하는 코너들이 많아진 것도 최근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변화다. '애매한 것을 정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그 상황에 대한 공감을 동력으로 가져가는 '애정남'이나, 진지한 상황 속에서도 본능적인 욕망을 발견하게 되는 '생활의 발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을 슬쩍 끌어들여 그 심리를 파고드는 '불편한 진실' 등은 모두 '현실 공감'이 그 핵심이다. '그래 그래 나도 저랬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

'개그콘서트'는 물론 여전히 '슈퍼스타KBS'나, '감수성', 'N극과 S극'처럼 몸 개그를 기반으로 하는 개그들이 있지만, 최근 그 흐름을 주도하는 건 이 풍자와 현실에 공감하게 되는 말 개그들이다. 이것은 '개그콘서트'가 과거 마빡이나 갈갈이류의 초중등학생들이 좋아했던 몸 개그에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풍자를 이해하는 나이든 세대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고무적이다. 일요일 저녁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해피선데이'가 '개그콘서트'에게 왕좌를 내주고 있는 것. 이렇게 된 것은 물론 '개그콘서트'의 깊어진 공감과 신랄해진 풍자 덕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어쩌면 그만큼 더 팍팍해진 대중들의 삶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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