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작품 속 음식, 기존 먹방·쿡방과는 뭐가 다른가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걸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건 영화, 예능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다. 지금 같은 비수기에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는 <리틀 포레스트>,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그렇고, <삼시세끼>에 이은 <윤식당2>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들 이른바 소확행 작품들의 중심에 서 있는 음식이라는 소재다. 한때 먹방과 쿡방이 하나의 트렌드로 등장해 식욕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영상들이 넘쳐났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음식을 담은 소확행 작품들의 행보는 이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작품 속에서 음식은 그저 식욕을 자극하는 소재가 아니고 하나의 소통이자 치유가 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서울살이에 지친 청춘이 엄마가 떠나버려 빈 고향집으로 내려와 말 그대로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밭과 들에서 계절에 따라 나는 것들을 갖고 스스로 음식을 챙겨먹는 그 과정들은 패스트푸드와 편의점으로 대변되는 도시생활에서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청춘이 그 요리를 알려준 집 떠난 엄마와 소통하며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식을 통한 소통과 위로의 이야기는 손예진과 소지섭 주연의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등장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계란 프라이가 그렇다. 너무나 단순한 요리지만 아이를 위해 그걸 만드는 게 영 익숙하지 않은 우진(소지섭)을 위해, 다시 살아 돌아왔지만 곧 떠나야할 아내 수아(손예진)는 아들에게 계란프라이 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아내가 떠나고도 아들이 만들어주는 계란프라이에는 그 따뜻한 온기가 남다르게 남는다.

한편 최근 화제가 된 예능 프로그램 tvN <윤식당2> 역시 한식당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음식’이 빠질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음식은 그저 입맛을 돋우는 욕망의 대상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스페인 가라치코 마을이라는 낯선 곳에서 거기 사는 주민들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끈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영업을 종료하고 돌아오는 그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마치 이웃 같은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음식이 매개가 되어 생겨난 마법 같은 일이다.

이처럼 음식이 이른바 ‘소확행’ 라이프 트렌드를 드러내는 작품들 속에서 단골소재가 되고 있는 건, 그 일상적인 소재가 갖는 특별함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더라도 그걸 만드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 작은 연결고리는 그래서 작아도 확실한 행복이 되기도 하는 것. 그저 돈으로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 챙기는 음식을 눈여겨보게 되고 거기서 어떤 소통과 위로의 따뜻함이 주는 행복감을 대중들은 이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거대한 행복을 꿈꾸는 것이 허망하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이 찾아낸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다.(사진:영화'리틀 포레스트')

<화랑>이 유골무죄 무골유죄 청춘을 보듬는 방식

 

유골무죄 무골유죄.” 골품이 있으면 죄가 없고 골품이 없으면 죄가 있다? 이 조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삼국시대 신라의 골품제도에 빗댄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흙수저의 신라 버전쯤 될까. KBS 월화드라마 <화랑>이 그려내는 청춘들은 당대의 골품제도라는 태생적인 틀에 묶여 꿈이 있어도 펼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화랑(사진출처:KBS)'

무명(박서준)은 그 골품제도에 의해 많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인촌에서 함께 자라온 둘도 없는 친구 막문(이광수)이 그 신분제의 틈바구니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누이를 찾기 위해 왕경을 넘었다는 죄로, 또 절대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성골 삼맥종(박형식)의 얼굴을 봤다는 죄로 막문이 죽음을 맞이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무명은 본래 안지공(최원영)의 아들이었던 막문의 진짜 이름 선우를 자신이 대신 쓰기로 한다.

 

꽃다운 청춘들, 화랑이 모이는 선문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이 골품의 차별이 없다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물론 그 안에서 뼛속까지 골품의 틀에서 살아왔던 진골들이 선우 같은 반쪽(반만 진골)을 집단적으로 따돌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오로지 실력으로 판단하는 것 같은 기준들이 제시되는 건 <화랑>이라는 드라마가 현재에 어떤 판타지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골품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의 화랑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해야 하는(하다못해 빨래까지) 상황은 진골들에게는 힘겨운 일이지만, 애초에 천인으로 살아왔던 선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건 여전히 귀천을 따져 자신을 능멸하고 나아가 여동생인 아로(고아라)까지 희롱하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류(도지한)는 마치 현재의 비뚤어진 상류층들의 갑질 행태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우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반류가 선우에게 너 같은 반쪽이 시궁창이라고 말하자 선우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시궁창은 너지. 스스로 뭘 해본적도 없고. 그 자리에서 썩고 있는 너 같은 고인 물.” 이 대사가 말해주듯 이 귀족 자제들이 화랑으로 모인 선문에서 선우라는 이질적인 인물은 그래서 향후 이들 화랑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라는 골품의 틀에서 썩어가고 있는 그들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줄.

 

선우가 온 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는 인물이라는 건 이런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반영한다. 흥미로운 건 그에게 마음이 설레는 아로가 의원 아버지인 안지공에게 곁눈질로 의술을 배운 인물이라는 것. 아로의 캐릭터는 다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이다. 아로를 구하다 손바닥을 칼에 베인 선우를 치료하면서 다치지 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마치 상처받은 청춘을 보듬는 치유의 손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문에서 벌어진 화랑들의 집단 난투극으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로가 나서는 장면은 그래서 이 캐릭터를 보다 명확히 해준다. 또한 잠 못 드는 삼맥종을 옆에서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치유의 캐릭터 아로는 선우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어주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삼맥종을 잠시 쉬게 해준다.

 

이것은 <화랑>이라는 사극이 신라의 화랑들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청춘들을 보듬는 방식일 것이다. 물 수()를 보여주며 이것의 성격을 묻는 위화공(성동일)에게 삼맥종은 물은 선하다고 말한다. 늘 자신을 낮추고 밑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선우는 물이 고단하다고 말한다. 물은 몸속에서 금이면 금, 물고기면 물고기를 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위화공이 물 수()자와 함께 내놓은 표제어 왕()의 역할을 묻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우의 심경이 담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춘들의 고단함. 그 고단함을 없애줄 수 있는 건 더 고단하게 백성들을 위해 일하는 왕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그런 질문.

<닥터스> 김래원, 그가 의사이자 교사인 이유

 

의사는 환자를 치유하고 교사는 세상을 치유한다. 아마도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의학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홍지홍(김래원)은 교사이면서 의사다. 본래는 의사였지만 자신의 실수로 환자가 죽게 된 후 병원을 떠나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홍지홍은 말한다. 의사나 교사가 그렇게 다른 직업은 아니라고.

 

'닥터스(사진출처:SBS)'

병든 환자를 치유하는 일이 의사가 하는 일인 것처럼,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건 다름 아닌 교사가 하는 일이다. 진정한 선생님은 희망 없고 좌절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꾸게 만든다. 유혜정(박신혜)은 그렇게 홍지홍이라는 교사에 의해 구원받는 학생이다.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재혼 그리고 버려져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는 그녀는 희망 없이 망가진다. 그런 그녀를 홍지홍은 보듬어주고 자극시켜 다시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는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의학드라마가 남자주인공을 굳이 교사로 세워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닥터스>라는 의학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을 명확히 해준다. <닥터스>는 환자를 치유하는 의사만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한다. 물론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의학드라마가 늘 보여주던 피가 철철 흐르고 긴박하게 메스가 움직이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의술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람이 사람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보다 큰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병실은 그래서 큰 의미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교실이 되고, 병원은 세상의 학교나 다를 바 없다. 홍지홍과 유혜정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지만 다시 병원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치유해주며 성장시키는 존재들로 만나게 된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환자로 나뉘지만, 비뚤어져 아픈 세상에서 우린 모두가 의사이면서 환자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그를 변화시키고 치유해주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상처주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 입는 환자.

 

<닥터스>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의학드라마지만 병원이라는 틀 밖으로 이야기가 확장되고, 치유의 의미가 상징화되면서 병원 밖 이야기 역시 의학드라마의 범주로 끌어안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확장된 관점으로 보면 배운 것 없어 욕이나 할 줄 안다며 스스로를 비하하지만, 유혜정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녀를 성장하게 해주는 할머니 강말순(김영애)이야말로 세상을 치유하는 의사다.

 

흔히 의학드라마는 병원을 세상의 축소판으로 그리지만, <닥터스>는 세상을 병원의 축소판으로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아픈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 고통을 나누고 상처를 이겨내게 해주는 사람들도. 그러고 보면 <닥터스>라는 제목은 병원에 있는 의사들만을 지칭한 것 같지가 않다. 아픈 세상에 빛이 되는 홍지홍이나 강말순 같은 모든 존재들을 포함한 지칭이다.

 

홍지홍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 단지 그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환자를 살려내는 멋진 의사라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더 도드라지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의 캐릭터는 <닥터스>라는 드라마가 그 따뜻한 느낌으로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기분 좋은 변화를 주려는 그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 세상을 치유하는 게 작은 위로라면, <닥터스>는 꿈꾼다. 자그마한 힘이지만 의사 같은 드라마가 되고 싶다고.

<용팔이>의 속물 의사 주원, 굿닥터로 돌아가다

 

종영한 <용팔이>에서 최고의 수훈갑을 꼽는다면 역시 주원이 아닐까. 과거 <굿닥터>의 박시온 역할로 어눌하지만 착한 심성이 전하는 울림을 제대로 전해준 주원이었다. 그런 그가 <용팔이>로 와서는 자칭 속물의사를 연기했다. 돈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 그래서 병원에 가기 힘든 조폭들을 맨 바닥에 눕혀 놓고 치료하는 장면은 <용팔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용팔이(사진출처:SBS)'

하지만 자칭 속물의사는 사실은 돈 없고 배경이 없어 수술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속물의사는 껍데기고 사실은 저 굿닥터에 가까운 휴머니스트였다는 것. 겉으로는 까칠하고 돈만 밝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김태현(주원)이란 의사는 서민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휴머니스트의 심성을 숨긴 채 속물의사의 가면을 쓰고 12VIP병동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설정은 또 다른 기대감을 이어갔다. 거기 오래도록 감금된 채 누워있는 한여진(김태희)과 김태현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의 멜로 속에서도 주원은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태희를 상대로 하는 멜로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여진을 깨워낸 김태현은 그녀를 보호해주려 하면서도 그녀의 복수를 멈추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한 명의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그는 이 사회와 현실이 만들어낸 피의 복수라는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처럼 한여진을 치료하고 있었다. 김태현이라는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사람을 죽이라 사주하는 복수의 화신 한여진이 그저 악역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쁜 존재가 아니라 아픈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와서 김태현의 분량보다 한여진의 분량이 훨씬 많아졌고, 그 복수극이 오래도록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현의 존재감은 늘 드라마의 다른 한편을 차지했다. 즉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건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로 전염되는 질병일 뿐 피로써 치유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니 모든 걸 버리고 일층의원으로 돌아간 김태현은 한여진이 돌아가 치유 받아야 하는 곳이자 이 드라마의 주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진짜 복수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손에 더 많은 것을 쥘수록 점점 피폐해지는 한여진과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람들 가까이에 선 의사로 돌아가자 한없이 행복해진 김태현은 이 드라마가 말하는 진정한 복수극의 해법을 드러낸다. 저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배신하면서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시스템은 저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행복하게는 해주지 않는다는 게 <용팔이>가 전하려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 메시지를 앞에서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 캐릭터가 바로 김태현이라는 의사다. 주원은 이 의사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사랑과 치유까지의 변화과정들을 김태현이라는 캐릭터 하나로 제대로 꿰어냈다.

 

드라마의 겉면은 김태희가 연기하는 한여진이라는 캐릭터가 화려하게 이끌었을지 몰라도 드라마의 실제는 주원이 연기하는 김태현이라는 캐릭터의 소박함이 밀어주었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저들의 세계가 겉에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작아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세상은 살만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멜로는 왜 치료가 될까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여타의 멜로드라마들과는 다른 지점들이 발견된다. 그것은 멜로드라마 속의 사랑이 그저 남녀 간의 화학작용이나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걸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치유로서 다뤄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크건 작건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고 그걸 치유해주는 건 다름 아닌 사랑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제목에는 그 뉘앙스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장재열(조인성)과 그의 형인 장재범(양익준) 그리고 그 집안이 겪은 이야기는 10년이 넘은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까지도 그들의 삶 한 가운데 고스란히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계속 덧나가는 중이다. 문제의 발단은 장재열의 의붓아버지가 저지른 폭력이다. 그 계속되는 폭력 앞에 항거하다가 결국 그 아버지가 사고로 죽게 된 것. 넘어지다 장재열의 손에 들린 칼에 찔려 죽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은 장재범이 밀쳤기 때문이다.

 

사고로 처리될 일이 사건이 된 것은 장재범이 장재열을 보호하려다 생긴 일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증언하라고 말한다. 2년 정도 감옥 생활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10년이 넘는 구형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게 된다. 장재범이 그토록 장재열을 죽이려 달려들고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건 그러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의 심리 상담을 하는 조동민(성동일)이 아미탈을 통해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동안 외로웠겠다고 말하자 그가 오열하는 건 그래서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길 그토록 희구해왔던 것이다.

 

장재범이 감옥 안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낼 때 감옥 바깥에 남은 장재열이나 그 어머니 역시 자신들만의 감옥에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다. 장재열은 한강우(디오)라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환영으로 데리고 다닐 만큼 과거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어린 시절 폭력으로 점철됐던 그 무너진 옛집 주변을 서성거린다.

 

장재열을 치유시키는 것은 결국 지해수(공효진)의 사랑이다. 장재범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상처투성이로 나타난 그를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안고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하듯 등을 토닥여준다. 그러자 괜찮은 척 해왔던 장재열은 숨겨왔던 내면의 아픔들이 바깥으로 비어져 나오는 걸 느낀다. 그건 상처지만 그렇게 공유되는 상처는 치유의 첫 걸음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멜로가 치유로서 그려지고 있는 건 어쩌면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아픔과 상처가 얼마나 많은가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멘탈 붕괴의 시대라고 이 시대를 규정하듯이 우리는 너무나 아픈 비극적인 일들을 눈앞에서 겪고 있다. 장재열의 가족이 현재 겪고 있는 비극이 의붓아버지의 폭력에서 비롯됐듯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상처들은 과거 개발성장시대의 내재되고 내면화되었던 폭력들에서 비롯되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돌려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지금은 사랑도 치유로서 그려지는 시대가 됐을까. 그저 아름다운 사랑 따위는 이 병을 앓고 있는 시대에 사치나 허영처럼 여겨지는 건 아닐까. <괜찮아 사랑이야>가 전해주는 그 깊은 감동과 위안은 그래서 거꾸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상처들을 환기시켜준다. 이른바 멘붕의 시대<괜찮아 사랑이야>의 멜로는 병적 치유로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보고싶다>, 멜로가 사회적 메시지를 만날 때

 

“높은 담장 밖에서 너는 죄도 없이 고개 숙이고 있었어. 하지만 난 아버지 땜에 고개 숙이지 않을 거야. 수연아 사랑하자.. 우린 사랑하자. 더 많이 사랑하자.” <보고싶다>에서 한정우(박유천)가 이수연(윤은혜)에게 키스하며 깔린 이 속 얘기에는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결을 잘 보여준다. 이 대사는 한정우와 이수연의 14년에 걸친 사랑을 압축하면서도, 동시에 이 사랑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보고싶다'(사진출처:MBC)

이수연이 죄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살인자(심지어 실제 살인자도 아니었지만)라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후 그 아버지 세대가 씌우는 주홍글씨는 이제 한정우의 몫으로 다가온다. 이수연이 사망한 것처럼 꾸민 것도, 강형준(유승호)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그의 어머니를 정신병자로 만든 것도 모두 한정우의 아버지 한태준(한진희)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드라마 속 거의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바로 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한정우는 “아버지 땜에 고개 숙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한다. 그것은 그 시대의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연에게 “사랑하자”고 한다. 과거 어른들의 굴레 속에서 더 이상 그 자식들이 고통 받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다.

 

또한 어찌 보면 이수연은 한정우와 엮이면서 자신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휘둘리게 된 이 드라마 속 최대의 피해자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과거의 기억조차 하기 힘든 상처를 다시 바라보고 다시 한정우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까. 또 그녀는 자신을 14년 간이나 보살펴온 강형준이 그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돌변해 그녀에게 살인 누명까지 씌우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이수연은 이렇게 토로한다.

 

“벌 받아야지. 그런데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만 해줘. 정우야. 나 너 많이 미워했었다. 억울한 데 화낼 데가 없어서 복수해야지 그러구 너 괴롭히기도 했었잖아. 근데 네가 너무 사랑해주니까 미움도 싹 없어지더라구. 상처도 다 나아지고.” 이 드라마는 심지어 살인이 벌어지는 복수를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복수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가 복수를 통해서 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보고싶다>는 그 상처가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 길은 처벌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다. 나쁜 기억은 지워내고 좋은 기억을 더 많이 살리라는 것. 이것은 <보고싶다>라는 멜로드라마가 사회적 메시지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인 아픔, 특히 잘못된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통에서 벗어나는 젊은이들의 처절한 노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읽으면 어른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회와 그 사회에 의해 고통 받는 작금의 청춘들은 이 드라마의 이야기와 조응하는 면이 있다.

 

한정우는 이수연의 발에 난 상처를 보며 묻는다. “아직도 볼 때마다 아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아니. 이 상처 보면 아빠 피해 도망치던 기억보다 네가 지금처럼 내 발등 감싸주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 그 기억 속에서 어린 한정우는 어린 이수연의 발에 난 상처를 손바닥으로 가리며 이렇게 말해준다. “이제 안 아프지? 안보이니까.” 그리고 손 마술을 한다. “쏴- 지워졌다. 나쁜 기억. 이제 다시 만들면 돼. 좋은 기억.” 고통이나 상처는 그 제공자에 대한 복수로 인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내는 좋은 기억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고통 없는 좋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이 드라마는 한정우의 흥미로운 농담으로 그 메시지를 전한다.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끼오- 문간 옆에는 거위가. 꼬끼오- 배나무 밑엔 염소가 꼬끼오- 외양간에는 송아지. 꼬끼오-” 한정우의 농담에 까르르 웃는 이수연에게 그는 이제 진짜 노래를 불러준다.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문간 옆에는 거위가. 꽥꽥 꽥....외양간에는 송아지. 음메- 도로 위에는 경찰들이 거기서!” 깜짝 놀라는 이수연에게 한정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이 노래에는 깊은 뜻이 있어요. 암탉은 꼬꼬댁, 송아지는 음메, 경찰들은 거기서. 다 각자 위치에서 제목소리를 내면서 살자는 뜻이지. 김형사 아저씨가 그러셨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멜로가 존재할까. 남녀 간의 달달한 사랑의 대화 속에서조차 사회적인 메시지가 불쑥불쑥 나오는 멜로라니. 심지어 취조실에서조차 눈물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보고싶다>는 멜로드라마이면서 동시에 휴먼드라마이고 또한 사회극의 하나라고 볼만 하다. 흔히 퇴행적인 신데렐라로만 달려감으로써 점점 가치를 잃어가던 멜로드라마는 이로써 <보고싶다>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었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91)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80)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088,009
  • 310492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