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트> 이윤정 PD 연출의 마법

 

홍설(김고은)이 혼자 사는 자취집은 좁고 허름하다. 한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다. 그래서인지 유정(박해진)이 홍설의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공간은 더 좁아 보인다. 홍설이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따라주는 장면은 그래서 꽤 불편해 보인다. 물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아마도 욕실 같은 곳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데 그 좁고 불편해 보이는 공간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더 설레게 한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바닥에 매트리스 하나 깔려 있고 앉은뱅이책상이 하나, 옷장이 하나 정도 놓여진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좁은 공간이 너저분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가난한 여대생의 자취방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만, 어찌 보면 꽤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마저 든다. 아마도 실제라면 사뭇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tvN 월화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 나오는 공간들은 현실적인 요소들로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웹툰이 그려내듯 예쁜 느낌을 주는 걸까.

 

자취방은 문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와야 되고 창문 방범창이 걱정될 정도로 그 밖은 으슥하다. 실제로 속옷 도둑 같은 변태가 출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입구에서 유정이 처음 홍설에게 우리 사귈까?”라고 묻는 그 장면의 배경을 보면 초록빛의 나무 이파리들이 드리워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초록빛의 색감은 이제 파릇파릇 피어나는 유정과 홍설의 사랑을 더 풋풋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런 같은 장면이라도 거기서 어떤 따뜻함이나 설렘을 특유의 색감과 연출로 풀어내는 건 이윤정 PD의 대단한 재능이다. 이미 MBC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우리는 그녀가 드라마 공간들을 어떻게 마치 잡지 화보처럼 구성하고 연출해내는가를 목도한 적이 있다. 물론 이건 배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 배경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때론 세련되고 때론 정이 가며 때론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홍설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설정 상 굉장한 미인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김고은이라는 배우 역시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미모의 연기자로 세워진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런 미적인 것을 깨고 털털함을 드러내온 것이 김고은의 필모그라피였다. 그런데 <치즈 인 더 트랩>이 회를 거듭할수록 홍설이란 캐릭터가 점점 예쁘게 느껴지고 그것이 김고은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매력으로까지 여겨지는 건 아무래도 이윤정 PD의 연출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결국 좋은 PD란 캐릭터든 배우든 그 안에 숨겨져 있으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매력을 끄집어내는 연출자가 아닐까.

 

홍설의 부모가 하는 국수집은 동네 어귀에 있을 법한 작은 음식점에 불과하지만 이윤정 PD의 카메라에 잡힌 그 집은 마치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미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 미닫이문을 열고 나온 백인호(서강준)가 쓰레기를 들고 나와 옆 골목 쓰레기통에 툭 던지는 장면에서 그 동선 뒤편으로 보이는 국수집 외관이나 화장실처럼 보이는 문짝의 무심한 듯 칠해진 페인트 색깔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연출은 조명이 상당부분 역할을 할 것이지만 그 이전에 아기자기한 소품 하나까지 신경 쓰는 데서 가능해지는 것들이다. 사실 드라마라고 하면 모든 게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드라마는 결국 스토리와 캐릭터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재료들이 있어도 그걸 제대로 느낌 있게 만들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게다. <치즈 인 더 트랩>의 이윤정 PD는 그 연출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다못해 굴러다니는 쓰레기조차 예뻐 보일 지경이니.


동성애 편견 깨준 대중문화 콘텐츠의 힘

 

5월은 결혼의 달인가. 백지영과 정석원, 한혜진과 기성용, 장윤정과 도경완, 그리고 서태지와 이은성의 깜짝 결혼 소식이 발표된 데 이어, 눈에 띄는 것은 그 대열에 김조광수와 동성연인인 김승환과의 결혼발표 기자 회견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식 보도 사진 속에서 당당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두드림(사진출처:KBS)

동성애자들이 공식석상에서 결혼발표를 하고 입맞춤을 하는 사진 한 장의 의미는 크다. 1996년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본격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을 본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들의 사랑을 서로 주먹을 입에 대고 입을 맞추는 장면으로 대신했다. 영화 속에서마저도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려 했던 것. 하지만 이번 김조광수의 결혼발표는 이제 영화도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동성애자의 애정표현이 그만큼 당당해졌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몇몇 용기 있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가져온 변화가 크지만, 동성애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시각에 일조한 것으로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는 <크라잉 게임>이나 <해피투게더>,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해외영화를 통해서나 겨우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로드무비>나 <후회하지 않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같은 우리네 동성애 영화들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야 한정된 공간에서 보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치지만, TV 드라마가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게 된 것은 이제 이러한 달라진 시각이 일상화 단계로 넘어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커피프린스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같은 이른바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는 큰 화제가 되면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일조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였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실로 파격적인 시도라고 여겨진다. 동성애를 직접 다루면서 그것을 가족드라마의 틀로 엮었다. 즉 동성애자인 아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처럼 보였다. 드라마가 가족애를 통해 동성애자를 받아들였듯이, 사회는 인간애를 통해 그들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달라진 시선이 이제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가장 확연히 보여주는 건 예능 프로그램 속에 자연스럽게 유머의 한 부분으로 자리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홍석천은 이른바 게이조크로 불리는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를 끄집어낸 인물이다. <라디오스타>에 나와 거침없이 김국진의 얼굴을 쓰다듬고 동성애를 유머 코드로 올려놓는 홍석천은 그런 점에서 대중과 성소수자 사이에 훨씬 편안한 가교역할을 해주었다.

 

<라디오스타>에 나온 2PM의 준호가 한 프로그램에서 홍석천에게 돌발 볼 뽀뽀를 당했다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준호로 하여금 원빈과 이병헌을 세워두고 이상형 월드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홍석천의 선구적인 게이조크 덕분이라는 얘기다. 게이조크는 아직 예능에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지만, 웃음을 코드로 한다는 점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는 힘을 발휘한다. <SNL 코리아>의 신동엽이나 김민교가 하는 게이 코드의 콩트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편견은 여전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응원의 목소리도 많다. 무엇보다 다른 성적 취향을 이해해주자는 시각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동성애에 완강히 반대하던 기독교측에서도 이제는 논쟁이 되는 양상이다.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식인데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냐는 것. 이러한 변화는 동성애의 편견을 자연스럽게 깨준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성이란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지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맛좋은 카푸치노 같은 퓨전드라마, '커피하우스'

커피 특유의 진한 맛에 부드러운 우유, 게다가 달콤함을 더하는 계피가루... 표민수 PD의 새 드라마 '커피하우스'는 그 여러 재료들이 잘 섞여 부드럽고 달콤 쌈싸름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한 잔의 카푸치노를 닮았다. 커피 특유의 향을 내는 정극의 분위기는 톡톡 튀는 계피가루 같은 시트콤과 만났고, 탄탄한 쓴맛을 내재한 드라마는 달콤한 맛의 만화를 곁들였다.

과장됨과 진지함이 넘나드는 연출은 깔끔하고 세련된 영상미 위에 코믹함을 덧붙였다. 티아라 함은정의 연기도전과 강지환의 4차원 연기는 가수와 배우가 벌이는 독특한 앙상블을 선보였다. '커피하우스'는 표민수PD와 '거침없이 하이킥'의 송재정 작가가 만났다는 점만 보더라도 시트콤과 정극을 넘나드는 퓨전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을 쉬 짐작할 수 있다.

'커피하우스'의 승연(은정)은 궁전커피숍 집 딸. 그녀는 가슴 설레는 순정만화 속의 스토리를 꿈꾸지만 현실은 코믹만화의 너저분함으로 넘쳐난다. 취업도 못하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그녀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캐릭터. 궁전커피숍의 망가진 출입문 벨소리처럼 청춘은 삐걱대고, 마치 고장 난 화장실 문 때문에 갇혀버린 신세다.

잘 생기고 능력 있고 매너 있어 보이는 남자 앞에서 자신의 못난 치부를 드러내보이게 되는 그녀의 삶은 멋진 드라마를 꿈꾸지만 현실은 한 편의 시트콤이다. 그녀에게 비서를 제안한 이진수(강지환)에게 일과 사랑의 판타지가 넘쳐나는 로맨스를 꿈꾸지만, 현실은 취직도 로맨스도 아닌 기분 나쁜 거짓이다.

"당신은 아마추어잖아." 아무리 빚진 후배의 부탁이지만 비서로 취직시켜놓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진수가 '웃으면서 회를 뜨는' 그 말에 승연은 현실로 내쳐진다. '궁전커피숍'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에 아마추어의 향기가 넘쳐나는 커피를 끓여대며 살아온 그녀의 삶. 이 드라마는 그 시트콤 같은 아마추어적인 삶을 살아온 승연이 이 '웃으면서 회를 뜨는' 재수 없는 프로페셔널을 만나 일과 사랑에서 성장해가는 드라마다.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웃음의 코드는 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대립과 성장을 만나면서 진지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다. 시트콤에서 시작해 정극으로 향하고, 만화적인 설정에서 시작해 드라마로 변해가고, 과장된 웃음에서 시작해 진지함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승연이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어가는 성장과정과 맞닿아있다.

'커피하우스'를 흔히들 '커피 프린스 1호점'과 '풀하우스'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즉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갖고 있는 달콤한 판타지와 '풀하우스' 특유의 순정만화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뒤섞여 있다는 것. 이것은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단지 그 두 작품의 접합이 '커피하우스'인 것은 아니다. '커피하우스'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형식들(예를 들면 시트콤과 정극, 만화와 드라마, 웃음과 진지함, 아마추어와 프로 같은)이 퓨전되어 경쾌하면서도 자못 진지한 이야기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운이 좋다면 우리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그 맛의 조화가 오묘한 한 잔의 카푸치노 같은 드라마를 맛보게 될 지도 모른다.

동성애 콘텐츠, 어떻게 봐야할까

1996년도에 제작된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는 서로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주먹을 입에 대고 입을 맞추는 장면을 대신 묘사한다. 아마도 직접적인 표현, 즉 남자들이 진짜 딥키스를 하는 장면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영화적으로 연출하기가 힘들어서 그런 식으로 대신 표현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당시 대중들에게는 그 직설적인 장면연출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성애 코드도 아닌 동성애 자체의 문제를 포착한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이처럼 표현 수위에 있어서는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2008년 개봉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보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 속에서 동성애자로 출연하는 민선우(김재욱)는 자신의 사랑에 당당하다. 물론 성적인 묘사는 그다지 노골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동성애자로서의 선우에게 그다지 특별한 시선을 던지지 않는 영화의 태도에 있다. 이 영화는 마치 "넌 여자를 좋아해? 난 남자를 좋아해! 그게 어때서?"하고 말하는 듯이, 동성애적 상황 자체를 일상적인 공기처럼 다뤄버린다.

사실 영화 속으로는 이미 이러한 동성애가 꽤 빈번히 다뤄졌었다. 동성애는 '로드무비'나 '후회하지 않아'같은 우리네 작품들이 있기 전부터, 해외에서 들어온 영화들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소재가 되었다. '크라잉 게임'이나 '해피투게더'같은 작품들을 비롯해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우리네 문화 전반에서 특히 영화가 동성애를 더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이러한 해외의 작품들을 통해 영화 속에 상대적으로 어떤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의 특성상,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구획되는 점이 좀 더 과감한 성적 표현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TV는 이제 공공연히 동성애라는 단어를 드러내고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나 '바람의 화원'같은 작품들이 동성애 콘텐츠가 아니라 동성애 코드 콘텐츠를 선보였다면 그 연장선 위에 '개인의 취향' 같은 작품이 있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자리에 '인생은 아름다워'가 있다. 그만큼 동성애에 관대해졌다는 이야기일까.

동성애 콘텐츠와 동성애 코드 콘텐츠?
간단한 구분이지만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그리고 '개인의 취향'은 동성애 콘텐츠가 아닌 동성애 코드 콘텐츠이다. 이 드라마들에는 동성애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남장여자들이 등장하거나, 동성애자로 오인 받는 남자가 등장해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뿐이다. 이 드라마들을 보는 시청자들은 그가 사실은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드라마가 가져온 것은 동성애 코드이지 동성애 자체가 아니다.

'개인의 취향'에서 동성애자로 오인 받는 전진호(이민호)는 오히려 그 설정이 판타지로 작용한다. 그와 동거하게 된 박개인(손예진)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스스럼이 없고 오히려 남녀관계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까지 한다. 남자를 성적인 구분 없이 친구로 둘 수 있다는 것은 이 여성이 동성애자를 어떤 판타지로까지 여기게 되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서는 물론 동성애 코드지만 과거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에서 간접적으로 다뤄지던 동성애자들이 겪는 아픔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대중들이 갖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심적인 허용수준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성애 코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때론 재미있는 설정(질척한 성적 관계를 벗어난 남자친구가 주는 판타지, 그것도 이민호 같은 남자라면!)으로 오히려 즐기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후회하지 않아' 같은 작품에 관객이 들지 않는 것은 우리네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수현 작가의 새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동성애는 실로 파격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진짜 동성애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그것도 가족드라마의 틀 안에서.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를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한다. 태섭(송창의)은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유채영(유민)에게 어렵게 커밍아웃을 하고, 유채영은 그 상황을 힘겹게 받아들이면서 "미안하다"는 태섭에게 "그것이 네 잘못은 아니잖아"하고 말한다.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유채영과 그런 그녀를 두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눈물을 쏟아내는 태섭은 이들이 남녀 관계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김수현 작가가 바라보는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다. 수많은 사랑이 있고, 그것을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를 뿐, 틀린 사랑은 아니라는 것. 그것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공감까지 일으키고 있는 걸 보면 지금 확실히 우리가 바라보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걸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동성애 소재의 콘텐츠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그것이 점점 직접적으로 소수의 성을 다룬다고 해서 우리네 성 의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커밍아웃을 한 후 오히려 삶이 더 어려워진 동성애자들의 사례들은 이제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문화 속에서 동성애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는 있지만 성 소수자로서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왜 이렇게 동성애 콘텐츠들이 많아질까
그렇다면 여전히 편견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동성애가 대중문화 속에서 공기처럼 퍼져나가고 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이성애, 즉 이성 간에 벌어지는 멜로가 어느덧 식상한 어떤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깔려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삼각 사각의 멜로나 신파조의 설정들은 이런 인식의 밑바탕을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한편 영화로서는 늘 연말이 되면 쏟아져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 역할을 했을 터이다.

남녀가 등장하면 으레 생겨나는 이러한 멜로적 상황이 대중들에게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하자 영상 콘텐츠들은 오히려 동성을 그 자리에 대치시켜 멜로가 아닌 인간애를 다루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동성애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남녀 주인공을 세우려했다가 결국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세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준익 감독은 이미 전작 '왕의 남자'에서도 두 남자의 동성애를 끌어들여 예술혼과 인간애로 콘텐츠가 가진 주제를 확장시킨 전례가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영화가 단지 성 소수자들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어떤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동성애가 가진 인간애로의 확장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남녀로 구분되던 성별구분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속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명확히 나눠져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농경사회에서의 성별 역할의 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육체적인 노동력이 아닌 정신적인 노동력을 사용하는 정보사회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사라진다. 오히려 여성들의 노동력이 섬세한 정보사회의 업무에 더 적합해진다.

남녀 구분은 이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으로 바뀌게 된다. 남자라도 여성성이 많은 사람이 있고, 여자라도 남성성이 많은 사람이 지금 시대에 남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동성애는 바로 이 시선 속에 자연스러움을 얻게 된다. 남성이지만 강한 여성성이 실제 생물학적 성까지도 변모시킨 존재로서 동성애자는 외계인이 아닌 우리들 중 한 사람으로 자리 매김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실제 사회의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시각으로 보면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프린스들이나, '개인의 취향'의 전진호 같은 캐릭터가 사실은 여성성을 더 많이 가진 남성들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문화 콘텐츠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여성성이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신모계사회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창조적인 생각과 감성적인 접근, 그리고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여성성은 사회를 바꾸는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 바로 이 키워드를 어쩌면 가장 잘 보여주는 것들이 동성애 콘텐츠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구분은 가장 모호해지고 대신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이 더 명징해진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동성애 콘텐츠에 깔린 성 상품화의 확장이다. 사실 동성애라 얘기한다면 여성과 여성의 동성애는 우리네 문화 콘텐츠 속에서 늘 등장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왜 그 콘텐츠들은 동성애 콘텐츠라고 구획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 여성과 여성의 동성애는 남성적인 시선을 위한 성 상품화로 나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가 동성애가 자주 등장한다고 얘기할 때 그것은 남성과 남성 간의 동성애를 의미한다.

이렇게 남성들 간의 동성애가 이제 눈에 띄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화구매자들로서의 여성이라는 존재의 위상이 그만큼 커진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등장하는 남성들이 모두 꽃미남들인 점은 과거 여성들의 성 상품화가 이제는 남성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동성애 콘텐츠, 중성적 사회로 가는 지표
확실히 우리의 문화는 이제 동성애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과감해졌다. 소재로서 아무 거리낌없이 활용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고, 어떤 것은 의도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는 경향까지 생겼다. '미인도' 같은 영화는 동성애 코드를 자극적으로 활용하여 성 상품을 극대화시킨 경우다. 이 영화는 신윤복이 남장여자였다는 설정 자체도 파격적이지만, 그 남장여자의 신윤복(김민선)이 남성의 옷을 벗어버리고 김홍도(김영호)와 과감한 섹스를 하고, 한편으로는 여성들끼리의 성적인 장면을 동시에 연출하는 그 지점이 더 파격적이다. 이 영화에서 남장여자, 즉 동성애 코드는 오로지 이 에로틱한 성적 상상을 위해서만 활용된다.

하지만 같은 신윤복을 다루었지만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는 '바람의 화원'을 보면, 이 동성애 코드가 한 예술가의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상징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윤복은 남성을 강요하는 조선이라는 사회 속에서 어쩌면 여성성을 무기로 한 평생을 싸우다 간 화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가진 남장여자의 활용은 어쩌면 가장 적절했다 판단되는 것이다. '바람의 화원'이 보여주는 상황은 저 '미인도'처럼 직접적인 표현은 등장하지 않지만, 오히려 더 동성애에 대한 접근을 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미의식(여성성)을 추구하는 자와 그를 억압하는 사회가 대립하는 상황 자체가 소수자와 다수자 사이의 대립상황을 에둘러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재를 다룬 전혀 다른 결과물의 두 작품은 동성애에 대한 우리네 성 의식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하나는 여전히 하나의 볼거리이자 성 상품으로 세워지는 동성애다. 여성을 좀 더 자극적으로 벗겨내기 위해 남성의 옷을 입혀놓는 것이나, 꽃미남들이 나와 서로의 아름다운 몸을 만지고 보여주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다른 하나는 점점 중성화되어가고 있는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로서의 동성애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겉으로 드러난 성별보다는 그 내면 속에 담겨진 남성성과 여성성을 주목하면서 그 미묘한 감정선들을 잡아낸다.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들보다는 어딘지 여성적인 섬세함을 가진 남성들이 점점 대중문화 속에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중성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사회의 징후들이다. 그 속에서 동성애는 그 단적인 지표가 된다.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고 있는 동성애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가진 성 의식은, 이 두 가지 방향 즉 성 상품화와 중성적 사회로의 지향 사이에 놓여진 긴장관계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성 상품화가 남녀의 성별의식을 기본 전제로 만들어진다면 중성적 사회로의 지향은 이 성별의식을 무너뜨린다. 아직까지 눈에 띄는 변화가 확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후자쪽으로 점점 무게중심이 이동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멜로가 전문직을 끌어안을 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군의 남녀들이 삼각 사각으로 엮이던 전통적인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등장한 것이 전문직 장르드라마다. 그만큼 직업에 대한 디테일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 '멜로는 이젠 별로'라는 인식이 자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파스타'는 그 하나로서 멜로드라마가 거꾸로 전문직의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그 오랜 전통으로 볼 때, 드라마가 가진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극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그 속에 사랑과 이별이 빠질 수는 없다. 즉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추락은 그 본질적인 요소의 추락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무늬만 전문직인 캐릭터들과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돌고 도는 복잡한 삼각 사각관계의 멜로드라마는 그 내적인 장치를 모두 시청자들에게 들킴으로 인해서 식상해져 버렸다.

그 해법은 멜로드라마의 추락과 함께 부상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발견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문직의 세계, 권력과 욕망과 자기 성장이 부딪치는 그 세계 속에서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화제성으로 주목받았던 '하얀거탑'이 20%대의 시청률에 머문 것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멜로드라마와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결합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뉴하트' 같은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와 멜로드라마가 적절히 엮어지면서 시청률에도 성공하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재미적인 요소의 한 부분으로서 멜로를 활용하는 것이지, 멜로드라마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 멜로를 다루면서 전문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일의 세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었다. 커피 전문점이라는 공간과 그 금녀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고은찬이라는 캐릭터는 모두 직업적인 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위에서 이 청춘 멜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파스타'는 그 연장선에서 좀 더 직업적인 전문성이 확장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쉐프를 꿈꾸는 여성 요리사 서유경(공효진)과 새롭게 부임한 마초 쉐프 최현욱(이선균)의 밀고 당기는 멜로를 그리는 이 드라마는, 그 멜로의 틀 속에 직업적인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주방에서의 쉐프의 사랑은 자칫 요리사들에 대한 형평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이 멜로가 갖는 장애요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즉 직업이 사랑의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만 빠져 직업을 등한시하던 과거적인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양상이다.

'파스타'는 막내 요리사와 쉐프의 사랑을 그리면서 또한 여성 쉐프의 꿈을 꾸는 한 여성 직업인의 성장드라마를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멜로드라마는 성공적으로 전문적인 직업의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유경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자기 직업에 대한 사랑은 이 멜로드라마를 팽팽하게 해준다. 사랑 앞에서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은 현대 직업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일과 사랑 사이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이로써 '파스타'를 통해 한 단계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분명하다.

‘파스타’가 일과 사랑을 엮는 방식

‘파스타’와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러 모로 닮았다. 먼저 음식점이 배경이라는 점이다. 커피 전문점과 파스타 전문점은 이 드라마들에 묘한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들다. 그 공간에 포진한 꽃미남들과 그 속에 유일하게 서 있는 홍일점 주인공이라는 설정도 그렇다. 여기서 가능해지는 것은 일과 사랑의 공존이다. 일터라는 공간 속의 남과 여. 그것도 여러 명의 남자들과 여자 한 명이라는 설정은 이 여자 주인공의 일과 사랑이 가진 난관을 더 첨예하게 만든다.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고, 또 그 남자들 중 하나와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파스타’와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남자 주인공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공유)이나 한성(이선균)은 모두 한없이 여성들에게 부드러운 남자들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꽃미남 종업원들도 모두 수직적인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먼 수평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들이다. 하지만 최현욱(이선균)으로 대변되는 ‘파스타’의 라스페라에 있는 남자들은 위계질서 속에 서 있다. 마치 소리 지르는 게 일상인 듯 이들은 서로 자신의 위치가 높다고 으르렁댄다.

그러니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주지만, ‘파스타’의 라스페라는 늘 전쟁터다. 주방장은 사장과 늘 대립하고, 직원들 위에 군림하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새 주방장 현욱이 데려온 요리사들은 기존 라스페라의 요리사들과 대립하며 헤게모니 싸움을 벌인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유일한 여성인 서유경(공효진)은 편견에 얽매인 남성들의 세계와 부딪치며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라스페라의 주방이 환기시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직장의 세계, 그 위계질서의 세계 속에서 직장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상황을 라스페라의 주방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가진 남성 헤게모니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팀장 현욱의 마초적인 권위와 그 속에서 패배하지 않고 버텨내는 이제 막 인턴을 끝낸 사원(?) 서유경의 모습이 많은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라스페라의 주방이 또한 주방장 현욱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주방장이 바뀌면 주방의 풍경도 바뀌는 것은, 주방장의 마음이 고스란히 주방에 변화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욱이 라스페라에 오면서 주방은 전쟁터가 된다. 그것은 현욱의 마음이 ‘전쟁중’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과 성공에 상처 입은 요리사는 그 마음 그대로 주방에서 감정을 지워버린다. 주방에서의 사랑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일과 사랑을 다루는 멜로드라마의 접점이 생겨난다. 주방장 현욱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내는 라스페라의 주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존재 서유경은, 바로 그대로 현욱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드라마 ‘파스타’는 일과 사랑을 다룸에 있어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이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맛을 낸다. 현실의 축소판으로서의 주방과 상처 입은 주방장의 마음을 대변하는 주방을 일치시킴으로써, 그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멜로의 틀을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남자의 주방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와 그 남자의 마음을 여는 이야기가 서로 맞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미남이시네요', '꽃보다 남자'일까, '커피 프린스 1호점'일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멋진 꽃미남들. 여성들이 들어갈 수 없는 그 금남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여성. 새로운 수목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서 먼저 떠오르는 건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왕자님들이 모여 있는 금남의 커피 전문점으로 성별을 숨긴 채 여자 주인공이 들어갔다면, '미남이시네요'에서는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성 아이들 그룹 속으로 역시 남장여자인 주인공이 들어간다.

여 주인공인 고미남(박신혜)이 본래 수녀였다는 점은 이 아이들 그룹이라는 금남의 공간에서 앞으로 벌어질 우정과 애정을 넘나드는 로맨스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미남이시네요'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다. 국내최고의 인기그룹 A.N.JELL의 멤버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있는 꽃미남들이다. 황태경(장근석)은 능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이고, 제르미(이홍기)는 웃는 모습이 예쁜 꽃미소 꽃미남이라면, 강신우(정용화)는 웃지 않는 꽃미남이다.

이 꽃미남들의 면면은 '꽃보다 남자'의 F4를 연상시킨다.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라는 지칭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방영되었던 시기만 해도 어색한 것이었지만, 올 들어 일련의 꽃미남들이 쏟아진 드라마들을 통해 이제는 어떤 계보를 형성하는 느낌이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는 '내조의 여왕'의 30대 구준표 윤상현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그 윤상현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는 여성판 '꽃보다 남자'라는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만났다. '미남이시네요'는 그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드라마를 온통 꽃미남의 세상으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꽃미남이 드라마에 부여하는 판타지가 가진 파괴력을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주 시청층인 3,4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꽃미남들은 향수어린 순정만화 속 판타지를 그 드라마 속에서 찾게 만든다. 어딘지 구질구질한 현실이 삭제된 그 공간 속에서는 여성들이 원하는 모든 판타지가 꽃미남들과 함께 구현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꽃미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나타나는 경향은 마치 게임을 하듯 꽃미남을 아예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순정만화 속에서 갓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이들 꽃미남들에게서 현실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실과는 상반된 세계 속에 살아가는 듯한 그들은 상대적으로 보잘것없고 지극히 현실적인 여성을 중심으로 포진해 그녀를 꿈꾸게 만든다. 이 비현실성과 현실성의 부조화가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TV 이편에 앉아있는 시청자를 TV 저편의 세계와 이어주는 역할.

드라마가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꽃미남 드라마'의 계보화를 탓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공식처럼 굳어지는 것은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다. 또한 '꽃미남 드라마'는 어떤 선망의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그 위에 손쉽게 상업적인 덧칠이 가능해진다. 드라마의 구도가 공식처럼 세워지고, 그 공식 위에 역할 놀이 하듯 꽃미남들이 포진된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이들이 패션쇼라도 하듯 드라마가 상품의 전시장이 되고 마는 것은 이 드라마들이 갖는 상업적인 편향을 잘 말해준다.

물론 '미남이시네요'가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들이 걸어가는 그 계보를 따라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가진 드라마가 '꽃미남 드라마'들이 가는 그 길 밖으로 도드라져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적어도 지나치게 꽃미남을 표방한 '꽃보다 남자'보다는, 그래도 그 속에 여성들의 꿈을 잘 담아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니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대중의 기대와 작품 사이, 소통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 이처럼 중간에 서 있는 것은 그만큼 오인 받을 소지가 많다. 결혼과 연애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문란한 방탕으로 보이기 쉽고, 오빠와 연인 사이에 서 있는 것은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며,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불륜으로 보이기 쉽다. 특히 우리처럼 이쪽 아니면 저쪽이어야 하는 것이 마치 당위처럼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 그러니 '트리플'은 한 가지도 오인 받고 비난받기 쉬운 어려운 난이도의 소재들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돌아야 하는 드라마다.

'트리플'이 가진 화법의 문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초반부의 스토리만을 놓고 보면 이 드라마는 실제로 논란거리들이 가득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 낯선 지대에 서 있는 남녀들의 관계가 그렇다. 조해윤(이선균)과 아무렇지도 않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로 돌아가려는 강상희(김희)와, 자꾸만 오빠가 좋아진다는 이하루(민효린), 또 친구의 부인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장현태(윤계상)는 드라마를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은 그 골치 아픈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다. 그들은 일단 먼저 행동하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장현태는 마음을 빼앗긴 최수인(이하나)에게 조금씩 다가가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집 담장을 뛰어넘는다. 집 마당에 농구대를 떡하니 세워두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그녀 앞에 불쑥불쑥 자신을 드러낸다. 이 행동은 아무런 고민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장현태는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고 행동은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후에 장현태의 고백으로 밝혀지는 것이지만, 아무 고민 없이 결행된 것들이 아니다. 장현태는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최수인의 집으로 가기까지 여러 번 그 동네 주변을 뱅뱅 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은 조해윤과 강상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쿨한 인물들은 좀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부터 보여준다. 하룻밤을 지내고도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던 강상희에게 조해윤이 "넌 그게 쉬운 여자잖아"하고 심한 말을 하자, 그녀는 비로소 자신도 고민을 했었던 것을 밝힌다.

이것은 '트리플'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화법이다. 이하루(민효린)는 신활(이정재)과의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오빠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어버린다. 강상희와 신활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질투를 느끼는 것으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행동이 먼저 보여지고,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쿨하게 그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이 드라마의 화법은 여러모로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선 이들이 그저 방탕하고 불륜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트리플'의 실패, 작품이 아니라 소통이다
이러한 오인되기 쉬운 감추려는 화법 속에서 이윤정 PD 특유의 감각적이고 팬시한 연출은 심지어 이런 기저에 깔린 관계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해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엇갈린 관계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얘기하는 규범의 틀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파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빠(친오빠가 아닌 관계로서의 오빠)인 줄 알면서도, 친구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또 그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최수인의 어머니가 죽음에 임박해서 딸의 불륜이 될 수도 있는 장현태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관계의 틀을 벗어난 순수한 사랑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시청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사이의 차이는 이 드라마의 화법이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윤정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콤비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달콤 쌉싸름한 커피향 같은 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트리플'은 그 엇갈린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무게로 판타지를 한없이 무너뜨린다. '커피 프린스 1호점'처럼 청춘들의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려했지만 '트리플'은 그 관계의 무게로 인해 순정만화의 기대치를 배반하고 만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조해윤이 보이는 것은 그가 그나마 이 기대치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주변인물들의 관계들을 보면서 투덜대곤 한다. 강상희에게도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장현태가 최수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듯 말할 때도 "그만해라. 이젠 지겹다"고 말한다. 조해윤과 강상희가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활이 "우리 중에 가장 재밌게 사는 놈은 너"라고 말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이처럼 뒤늦게나마 이 화법들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느끼고 있지만 그 돌파구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트리플'은 이 복잡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을 안고 멋지게 삼단 점프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소재적으로 오인되는 부분들이 많지만 시도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전하려는 메시지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삼단 점프를 하면서 정작 그걸 보고 환호해줄 관객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서 발생한다. '트리플'이 끊임없이 비난을 받는 것은 작품이 조악해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대중들의 기대와 맞춰가며 나가려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리플'이 막장? 과연 그럴까?

블로거의 시선 2009.06.25 15:49 Posted by 더키앙
'트리플'은 인물의 관계로만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렌디한 설정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그 첫번째는 신활(이정재)-이하루(민효린) 사이에 싹트는 멜로 라인이다. (물론 피는 한 방울도 안섞였지만) 오빠-동생 하던 사이인 이들은 조금씩 애정의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신활-최수인-장현태(윤계상)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 멜로 라인이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고 그렇게 된 것이지만) 현태는 친구 신활의 아내인 최수인을 사랑하게 된다. 세 번째는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지만 조해윤(이선균)-강상희(김희) 사이의 멜로 라인이다. 이들은 우연히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강상희의 거리두기로 인해 조해윤은 그 사정거리 바깥에서 늘 마음을 졸이게 된다.

단순하게 표피적으로 그리고 부박하게 이들 관계를 말한다면 1. 오누이 멜로 컨셉트 2. 불륜 컨셉트 3. 자유를 빙자한 방종한 자유연애 컨셉트 정도라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트리플'이라는 드라마를 이렇게 쉽고도 단순하게 트렌디라는 색깔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항간에는 그래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고까지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막장이라는 용어가 참 애매모하하다. 나 역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늘 꺼림칙한 느낌을 갖곤 했는데, 이미 대중들에게는 막장이라는 용어가 그만큼 친숙하게 침투해 있었던 터라, 결국에는 다른 표현을 굳이 찾지 않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꽤 많은 오류들과(심지어는 심각할 수도 있는) 왜곡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막장이라는 용어부터 생각해볼 일이다. 막장은 말 그대로 바닥까지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 첫 번째는 윤리적인 것이다. 근친상간이나 성희롱의 뉘앙스가 들어 있다거나, 불륜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완성도에 관한 것이다. 인과관계가 잘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 얼개나 전혀 개연성이 없는 캐릭터의 행동 같은 대본의 요소들, 또 엉성한 연출과 이른바 우리가 발연기라고 하는 연기력까지 모두 이 완성도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데 예를 들어 김수현 작가가 쓴 '내 남자의 여자' 같은 작품은 불륜이라는 소재가 비윤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막장 드라마(당시에 막장드라마라는 용어는 없었으나 대신 논란드라마라는 용어는 있었다)라 불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륜이라는 그 소재를 끝까지 탐구하는 드라마로서 '명품 드라마'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마찬가지로 '가을동화'의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만들어가는 오누이 멜로 컨셉트를 가지고 역시 막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유는? 완성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흔히 막장이라고 부르는 용어에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윤리적인 잣대와 완성도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라는 것이다. 사실 소재만 가지고 윤리적인 잣대로만 판단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고대 비극을 막장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윤리적인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윤리와 비윤리를 넘어다니는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 놓이게 되는 인간 실존의 문제 같은 것이 오히려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재가 완성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 소재를 자극을 위해서만 끌어왔을 뿐, 아무런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거나 나름의 완성도를 구축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소재를 보고 "저거 또 막장이네"하고 쉽게 판단하고 또 그 판단이 대개는 맞는 이유는 작금의 드라마 시장이 작품보다는 상품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시청률에만 목을 맨 나머지 윤리적으로 뒤틀린 자극적인 소재만을 끌어왔을 뿐, 그저 그런 늘 보던 대로의 식상한 전개를 보여주는 드라마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소재가 등장만 해도 그런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리플'로 다시 돌아가서 이 잣대를 대보면 어떨까. 트리플이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소재들은 윤리적인 잣대로 봤을 때는 분명 오인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트리플'이 보여주는 이윤정 PD 특유의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연출은 실로 놀라운 영상경험을 하게 해준다. 4회에서 연출된 비오는 날의 정경은 영상 연출이 그 축축한 느낌이나 그 안에 서 있는 인물들의 감정선까지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윤정 PD의 카메라 앵글은 우리가 보통의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관습적인 앵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멈춰선 카메라 속에서는 인물들의 소소한 감정들이 그들의 동작에서는 물론이고 배경에서조차 묻어난다.

특히 배경은 이윤정 PD에게는 드라마의 또다른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드라마가 드러내는 감정을 잘 포착해주는 공간이 된다. 이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도 그렇고 '트리플'에서 세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소녀가 사는 공간에서도 그렇다. 이들은 종종 공간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색깔을 입히고 또 심지어는 지붕 위의 공간(수인의 집) 위로 올라감으로써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혹자는 이윤정 PD의 이러한 연출이 '막장을 위장하기 위한 위장전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연출이 가지는 작품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결과가 된다. 연출은 스토리에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스토리가 되기도 한다. 이윤정 PD의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트리플'이 가져온 소재들과 이 연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물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주제와의 맥락을 가질 때 우리는 이 드라마를 쉽게 막장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리플'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드라마일까. 막장이라 판단한다면 그 얘기는 뻔해진다. 그저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일 테니까. 하지만 이 공들여 만들어진 듯한 '트리플'을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억울한 점들이 많다. 아직 5회밖에 진행되지 않았던 고로(또 그 5회의 주제가 '웜업'이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는 아직 워밍업 단계였을 뿐일지도 모르므로 더더욱) '트리플'이 하려는 이야기를 속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본격적인 얘기조차 들어가지 않은 이 작품이 벌써부터 막장이라는 칭호로 보여지기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는 기우는 무리해서라도 '트리플'이 하려는 이야기를 예단하게 만든다.

따라서 여기부터는 나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는 '트리플'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트리플'은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삼고 있다. 김연아 마케팅을 위한 포석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 피겨스케이팅이 갖는 특징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이 드라마의 매회 구조가 그 특징들을 소제목을 삼고 어떤 삶과의 연관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빙판에 서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 미끄러운 공간이 가진 위험성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예술로 승화된다. 아슬아슬함과 위험함을 뛰어넘었을 때 발견하게되는 것은 극한의 아름다움이다.

'트리플'을 피겨스케이팅이 갖는 이미지와 연결시켜보면 바로 이 아슬아슬한 관계들 위에서 빚어내는 어떤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닐까. 드라마의 주축이 되고 있는 세 남자의 멜로 관계는 저마다 빙판 위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서로 빗나가고 엇갈리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그 일련의 모습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극적인 설정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미려한 연출이 말해주는 것은 "그래도 청춘은 아름답다"하는 전언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동성애 코드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우리에게 잘잘못으로 판단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청춘을 되새겨 보여주었다. '트리플'이 그 연장선에 있다면 이윤정 PD는 일관된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일련의 작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시작도 전에 논란에 휩싸이고, 막장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여전히 이 드라마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는 이 예감이 빗나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순정만화 판타지, 피겨스케이팅, 승부의 세계

'트리플'이 기대되는 것은 이윤정 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이름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녀들이 새롭게 들고 온 '트리플'에서도 '커피 프린스'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멋진 남성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온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겪는 달콤한 로맨스를 다루었다. '트리플' 역시 멋진 세 남자들, 즉 신활(이정재), 조혜윤(이선균), 장현태(윤계상)가 함께 사는 공간에 이하루(민효린)가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커피 프린스 2호점'에 해당하는 판타지 공간 속에서 피겨 스케이팅의 꿈을 키워나가는 이하루는 멋진 세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로맨스를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저 마다의 매력을 보여주는 세 남자와 또 등장할 젊은 미소년 지풍호(송중기)는 이 드라마의 멜로 구조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장선으로 보게 해준다. 순정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남성들이 얼마나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인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트리플'은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을 뜻하는 용어이면서 동시에 이 세 커플(신활-조혜윤-장현태와 이하루-최수인(이하나)-강상희(김희))의 로맨스를 뜻하기도 한다.

'트리플'의 두 번째 기대감은 커피라는 문화적 코드에서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좀 더 동적인 예술적 코드로 바뀌면서 좀 더 다이나믹해질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정아 작가는 이러한 동시대적 문화적 감수성을 이야기의 향기로 피워낼 줄 아는 작가이며, 이윤정 PD는 마치 트렌디한 잡지를 구성하듯 경쾌하게 그 감수성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커피 자체가 드라마의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아름다움과 힘이 절묘하게 예술적으로 엮어진 새로운 문화코드는 '트리플'에 어떤 아우라를 형성한다.

피겨 스케이팅은 운동과 예술의 접목이 그 정점에 서 있는 스포츠다. 거기에는 기예를 방불케 하는 기술이 있고, 파괴력이 넘치는 힘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힘과 기술을 예술로 만드는 음악과 율동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가 현재 각광을 받는 것은 물론 김연아 선수 같은 세계적 스타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로마저 승화되어 있는 이 스포츠 자체가 갖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미 '태능선수촌'으로 스포츠를 다룬 전적이 있는 이윤정 PD가 이 미적인 운동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도 이 드라마에 걸게 되는 기대의 하나다.

세 번째 기대감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트리플'만의 승부의 세계에 대한 것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말 그대로 경쟁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의 판타지를 마음껏 그려냈다면, '트리플'은 끊임없이 주인공들이 경쟁 속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성장 과정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된다. 남자 주인공들은 광고의 세계에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이하루(물론 코치역을 하게 되는 최수인을 포함하여)는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승부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가진 조금은 자폐적인 판타지(경쟁이 배제된 공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를 '트리플'이 좀 더 열려진 세계 속에서의 판타지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경쟁 관계 속에서의 판타지란 때론 진정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콩달콩한 로맨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현실을 동시에 등장시키는 것. 이것이 '트리플'에서 느껴지는 세 번째 기대감이다.

물론 이 세 가지 기대감은 말 그대로 기대감일 뿐, 아직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가 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연출했던 판타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 지점에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트리플을 하기위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결국엔 해내는 이하루처럼, 과연 드라마도 이 세 가지 기대감을 동시에 넘는 트리플을 성공해낼 수 있을까.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의 사각거림처럼 그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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