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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전문직을 끌어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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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군의 남녀들이 삼각 사각으로 엮이던 전통적인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등장한 것이 전문직 장르드라마다. 그만큼 직업에 대한 디테일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 '멜로는 이젠 별로'라는 인식이 자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파스타'는 그 하나로서 멜로드라마가 거꾸로 전문직의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그 오랜 전통으로 볼 때, 드라마가 가진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극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그 속에 사랑과 이별이 빠질 수는 없다. 즉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추락은 그 본질적인 요소의 추락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무늬만 전문직인 캐릭터들과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돌고 도는 복잡한 삼각 사각관계의 멜로드라마는 그 내적인 장치를 모두 시청자들에게 들킴으로 인해서 식상해져 버렸다.

그 해법은 멜로드라마의 추락과 함께 부상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발견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문직의 세계, 권력과 욕망과 자기 성장이 부딪치는 그 세계 속에서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화제성으로 주목받았던 '하얀거탑'이 20%대의 시청률에 머문 것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멜로드라마와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결합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뉴하트' 같은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와 멜로드라마가 적절히 엮어지면서 시청률에도 성공하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재미적인 요소의 한 부분으로서 멜로를 활용하는 것이지, 멜로드라마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 멜로를 다루면서 전문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일의 세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었다. 커피 전문점이라는 공간과 그 금녀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고은찬이라는 캐릭터는 모두 직업적인 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위에서 이 청춘 멜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파스타'는 그 연장선에서 좀 더 직업적인 전문성이 확장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쉐프를 꿈꾸는 여성 요리사 서유경(공효진)과 새롭게 부임한 마초 쉐프 최현욱(이선균)의 밀고 당기는 멜로를 그리는 이 드라마는, 그 멜로의 틀 속에 직업적인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주방에서의 쉐프의 사랑은 자칫 요리사들에 대한 형평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이 멜로가 갖는 장애요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즉 직업이 사랑의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만 빠져 직업을 등한시하던 과거적인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양상이다.

'파스타'는 막내 요리사와 쉐프의 사랑을 그리면서 또한 여성 쉐프의 꿈을 꾸는 한 여성 직업인의 성장드라마를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멜로드라마는 성공적으로 전문적인 직업의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유경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자기 직업에 대한 사랑은 이 멜로드라마를 팽팽하게 해준다. 사랑 앞에서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은 현대 직업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일과 사랑 사이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이로써 '파스타'를 통해 한 단계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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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가 일과 사랑을 엮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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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파스타’와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러 모로 닮았다. 먼저 음식점이 배경이라는 점이다. 커피 전문점과 파스타 전문점은 이 드라마들에 묘한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들다. 그 공간에 포진한 꽃미남들과 그 속에 유일하게 서 있는 홍일점 주인공이라는 설정도 그렇다. 여기서 가능해지는 것은 일과 사랑의 공존이다. 일터라는 공간 속의 남과 여. 그것도 여러 명의 남자들과 여자 한 명이라는 설정은 이 여자 주인공의 일과 사랑이 가진 난관을 더 첨예하게 만든다.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고, 또 그 남자들 중 하나와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파스타’와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남자 주인공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공유)이나 한성(이선균)은 모두 한없이 여성들에게 부드러운 남자들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꽃미남 종업원들도 모두 수직적인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먼 수평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들이다. 하지만 최현욱(이선균)으로 대변되는 ‘파스타’의 라스페라에 있는 남자들은 위계질서 속에 서 있다. 마치 소리 지르는 게 일상인 듯 이들은 서로 자신의 위치가 높다고 으르렁댄다.

그러니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주지만, ‘파스타’의 라스페라는 늘 전쟁터다. 주방장은 사장과 늘 대립하고, 직원들 위에 군림하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새 주방장 현욱이 데려온 요리사들은 기존 라스페라의 요리사들과 대립하며 헤게모니 싸움을 벌인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유일한 여성인 서유경(공효진)은 편견에 얽매인 남성들의 세계와 부딪치며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라스페라의 주방이 환기시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직장의 세계, 그 위계질서의 세계 속에서 직장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상황을 라스페라의 주방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가진 남성 헤게모니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팀장 현욱의 마초적인 권위와 그 속에서 패배하지 않고 버텨내는 이제 막 인턴을 끝낸 사원(?) 서유경의 모습이 많은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라스페라의 주방이 또한 주방장 현욱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주방장이 바뀌면 주방의 풍경도 바뀌는 것은, 주방장의 마음이 고스란히 주방에 변화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욱이 라스페라에 오면서 주방은 전쟁터가 된다. 그것은 현욱의 마음이 ‘전쟁중’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과 성공에 상처 입은 요리사는 그 마음 그대로 주방에서 감정을 지워버린다. 주방에서의 사랑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일과 사랑을 다루는 멜로드라마의 접점이 생겨난다. 주방장 현욱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내는 라스페라의 주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존재 서유경은, 바로 그대로 현욱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드라마 ‘파스타’는 일과 사랑을 다룸에 있어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이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맛을 낸다. 현실의 축소판으로서의 주방과 상처 입은 주방장의 마음을 대변하는 주방을 일치시킴으로써, 그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멜로의 틀을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남자의 주방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와 그 남자의 마음을 여는 이야기가 서로 맞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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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시네요', '꽃보다 남자'일까, '커피 프린스 1호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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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의 대상이 되는 멋진 꽃미남들. 여성들이 들어갈 수 없는 그 금남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여성. 새로운 수목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서 먼저 떠오르는 건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왕자님들이 모여 있는 금남의 커피 전문점으로 성별을 숨긴 채 여자 주인공이 들어갔다면, '미남이시네요'에서는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성 아이들 그룹 속으로 역시 남장여자인 주인공이 들어간다.

여 주인공인 고미남(박신혜)이 본래 수녀였다는 점은 이 아이들 그룹이라는 금남의 공간에서 앞으로 벌어질 우정과 애정을 넘나드는 로맨스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미남이시네요'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다. 국내최고의 인기그룹 A.N.JELL의 멤버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있는 꽃미남들이다. 황태경(장근석)은 능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이고, 제르미(이홍기)는 웃는 모습이 예쁜 꽃미소 꽃미남이라면, 강신우(정용화)는 웃지 않는 꽃미남이다.

이 꽃미남들의 면면은 '꽃보다 남자'의 F4를 연상시킨다.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라는 지칭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방영되었던 시기만 해도 어색한 것이었지만, 올 들어 일련의 꽃미남들이 쏟아진 드라마들을 통해 이제는 어떤 계보를 형성하는 느낌이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는 '내조의 여왕'의 30대 구준표 윤상현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그 윤상현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는 여성판 '꽃보다 남자'라는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만났다. '미남이시네요'는 그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드라마를 온통 꽃미남의 세상으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꽃미남이 드라마에 부여하는 판타지가 가진 파괴력을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주 시청층인 3,4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꽃미남들은 향수어린 순정만화 속 판타지를 그 드라마 속에서 찾게 만든다. 어딘지 구질구질한 현실이 삭제된 그 공간 속에서는 여성들이 원하는 모든 판타지가 꽃미남들과 함께 구현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꽃미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나타나는 경향은 마치 게임을 하듯 꽃미남을 아예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순정만화 속에서 갓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이들 꽃미남들에게서 현실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실과는 상반된 세계 속에 살아가는 듯한 그들은 상대적으로 보잘것없고 지극히 현실적인 여성을 중심으로 포진해 그녀를 꿈꾸게 만든다. 이 비현실성과 현실성의 부조화가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TV 이편에 앉아있는 시청자를 TV 저편의 세계와 이어주는 역할.

드라마가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꽃미남 드라마'의 계보화를 탓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공식처럼 굳어지는 것은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다. 또한 '꽃미남 드라마'는 어떤 선망의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그 위에 손쉽게 상업적인 덧칠이 가능해진다. 드라마의 구도가 공식처럼 세워지고, 그 공식 위에 역할 놀이 하듯 꽃미남들이 포진된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이들이 패션쇼라도 하듯 드라마가 상품의 전시장이 되고 마는 것은 이 드라마들이 갖는 상업적인 편향을 잘 말해준다.

물론 '미남이시네요'가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들이 걸어가는 그 계보를 따라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가진 드라마가 '꽃미남 드라마'들이 가는 그 길 밖으로 도드라져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적어도 지나치게 꽃미남을 표방한 '꽃보다 남자'보다는, 그래도 그 속에 여성들의 꿈을 잘 담아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니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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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기대와 작품 사이, 소통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 이처럼 중간에 서 있는 것은 그만큼 오인 받을 소지가 많다. 결혼과 연애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문란한 방탕으로 보이기 쉽고, 오빠와 연인 사이에 서 있는 것은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며,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불륜으로 보이기 쉽다. 특히 우리처럼 이쪽 아니면 저쪽이어야 하는 것이 마치 당위처럼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 그러니 '트리플'은 한 가지도 오인 받고 비난받기 쉬운 어려운 난이도의 소재들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돌아야 하는 드라마다.

'트리플'이 가진 화법의 문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초반부의 스토리만을 놓고 보면 이 드라마는 실제로 논란거리들이 가득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 낯선 지대에 서 있는 남녀들의 관계가 그렇다. 조해윤(이선균)과 아무렇지도 않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로 돌아가려는 강상희(김희)와, 자꾸만 오빠가 좋아진다는 이하루(민효린), 또 친구의 부인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장현태(윤계상)는 드라마를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은 그 골치 아픈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다. 그들은 일단 먼저 행동하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장현태는 마음을 빼앗긴 최수인(이하나)에게 조금씩 다가가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집 담장을 뛰어넘는다. 집 마당에 농구대를 떡하니 세워두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그녀 앞에 불쑥불쑥 자신을 드러낸다. 이 행동은 아무런 고민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장현태는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고 행동은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후에 장현태의 고백으로 밝혀지는 것이지만, 아무 고민 없이 결행된 것들이 아니다. 장현태는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최수인의 집으로 가기까지 여러 번 그 동네 주변을 뱅뱅 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은 조해윤과 강상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쿨한 인물들은 좀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부터 보여준다. 하룻밤을 지내고도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던 강상희에게 조해윤이 "넌 그게 쉬운 여자잖아"하고 심한 말을 하자, 그녀는 비로소 자신도 고민을 했었던 것을 밝힌다.

이것은 '트리플'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화법이다. 이하루(민효린)는 신활(이정재)과의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오빠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어버린다. 강상희와 신활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질투를 느끼는 것으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행동이 먼저 보여지고,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쿨하게 그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이 드라마의 화법은 여러모로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선 이들이 그저 방탕하고 불륜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트리플'의 실패, 작품이 아니라 소통이다
이러한 오인되기 쉬운 감추려는 화법 속에서 이윤정 PD 특유의 감각적이고 팬시한 연출은 심지어 이런 기저에 깔린 관계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해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엇갈린 관계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얘기하는 규범의 틀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파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빠(친오빠가 아닌 관계로서의 오빠)인 줄 알면서도, 친구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또 그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최수인의 어머니가 죽음에 임박해서 딸의 불륜이 될 수도 있는 장현태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관계의 틀을 벗어난 순수한 사랑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시청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사이의 차이는 이 드라마의 화법이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윤정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콤비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달콤 쌉싸름한 커피향 같은 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트리플'은 그 엇갈린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무게로 판타지를 한없이 무너뜨린다. '커피 프린스 1호점'처럼 청춘들의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려했지만 '트리플'은 그 관계의 무게로 인해 순정만화의 기대치를 배반하고 만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조해윤이 보이는 것은 그가 그나마 이 기대치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주변인물들의 관계들을 보면서 투덜대곤 한다. 강상희에게도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장현태가 최수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듯 말할 때도 "그만해라. 이젠 지겹다"고 말한다. 조해윤과 강상희가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활이 "우리 중에 가장 재밌게 사는 놈은 너"라고 말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이처럼 뒤늦게나마 이 화법들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느끼고 있지만 그 돌파구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트리플'은 이 복잡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을 안고 멋지게 삼단 점프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소재적으로 오인되는 부분들이 많지만 시도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전하려는 메시지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삼단 점프를 하면서 정작 그걸 보고 환호해줄 관객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서 발생한다. '트리플'이 끊임없이 비난을 받는 것은 작품이 조악해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대중들의 기대와 맞춰가며 나가려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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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이 막장? 과연 그럴까?

블로거의 시선 2009/06/25 15:49 Posted by 더키앙
'트리플'은 인물의 관계로만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렌디한 설정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그 첫번째는 신활(이정재)-이하루(민효린) 사이에 싹트는 멜로 라인이다. (물론 피는 한 방울도 안섞였지만) 오빠-동생 하던 사이인 이들은 조금씩 애정의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신활-최수인-장현태(윤계상)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 멜로 라인이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고 그렇게 된 것이지만) 현태는 친구 신활의 아내인 최수인을 사랑하게 된다. 세 번째는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지만 조해윤(이선균)-강상희(김희) 사이의 멜로 라인이다. 이들은 우연히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강상희의 거리두기로 인해 조해윤은 그 사정거리 바깥에서 늘 마음을 졸이게 된다.

단순하게 표피적으로 그리고 부박하게 이들 관계를 말한다면 1. 오누이 멜로 컨셉트 2. 불륜 컨셉트 3. 자유를 빙자한 방종한 자유연애 컨셉트 정도라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트리플'이라는 드라마를 이렇게 쉽고도 단순하게 트렌디라는 색깔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항간에는 그래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고까지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막장이라는 용어가 참 애매모하하다. 나 역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늘 꺼림칙한 느낌을 갖곤 했는데, 이미 대중들에게는 막장이라는 용어가 그만큼 친숙하게 침투해 있었던 터라, 결국에는 다른 표현을 굳이 찾지 않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꽤 많은 오류들과(심지어는 심각할 수도 있는) 왜곡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막장이라는 용어부터 생각해볼 일이다. 막장은 말 그대로 바닥까지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 첫 번째는 윤리적인 것이다. 근친상간이나 성희롱의 뉘앙스가 들어 있다거나, 불륜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완성도에 관한 것이다. 인과관계가 잘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 얼개나 전혀 개연성이 없는 캐릭터의 행동 같은 대본의 요소들, 또 엉성한 연출과 이른바 우리가 발연기라고 하는 연기력까지 모두 이 완성도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데 예를 들어 김수현 작가가 쓴 '내 남자의 여자' 같은 작품은 불륜이라는 소재가 비윤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막장 드라마(당시에 막장드라마라는 용어는 없었으나 대신 논란드라마라는 용어는 있었다)라 불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륜이라는 그 소재를 끝까지 탐구하는 드라마로서 '명품 드라마'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마찬가지로 '가을동화'의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만들어가는 오누이 멜로 컨셉트를 가지고 역시 막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유는? 완성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흔히 막장이라고 부르는 용어에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윤리적인 잣대와 완성도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라는 것이다. 사실 소재만 가지고 윤리적인 잣대로만 판단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고대 비극을 막장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윤리적인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윤리와 비윤리를 넘어다니는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 놓이게 되는 인간 실존의 문제 같은 것이 오히려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재가 완성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 소재를 자극을 위해서만 끌어왔을 뿐, 아무런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거나 나름의 완성도를 구축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소재를 보고 "저거 또 막장이네"하고 쉽게 판단하고 또 그 판단이 대개는 맞는 이유는 작금의 드라마 시장이 작품보다는 상품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시청률에만 목을 맨 나머지 윤리적으로 뒤틀린 자극적인 소재만을 끌어왔을 뿐, 그저 그런 늘 보던 대로의 식상한 전개를 보여주는 드라마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소재가 등장만 해도 그런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리플'로 다시 돌아가서 이 잣대를 대보면 어떨까. 트리플이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소재들은 윤리적인 잣대로 봤을 때는 분명 오인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트리플'이 보여주는 이윤정 PD 특유의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연출은 실로 놀라운 영상경험을 하게 해준다. 4회에서 연출된 비오는 날의 정경은 영상 연출이 그 축축한 느낌이나 그 안에 서 있는 인물들의 감정선까지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윤정 PD의 카메라 앵글은 우리가 보통의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관습적인 앵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멈춰선 카메라 속에서는 인물들의 소소한 감정들이 그들의 동작에서는 물론이고 배경에서조차 묻어난다.

특히 배경은 이윤정 PD에게는 드라마의 또다른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드라마가 드러내는 감정을 잘 포착해주는 공간이 된다. 이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도 그렇고 '트리플'에서 세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소녀가 사는 공간에서도 그렇다. 이들은 종종 공간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색깔을 입히고 또 심지어는 지붕 위의 공간(수인의 집) 위로 올라감으로써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혹자는 이윤정 PD의 이러한 연출이 '막장을 위장하기 위한 위장전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연출이 가지는 작품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결과가 된다. 연출은 스토리에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스토리가 되기도 한다. 이윤정 PD의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트리플'이 가져온 소재들과 이 연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물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주제와의 맥락을 가질 때 우리는 이 드라마를 쉽게 막장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리플'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드라마일까. 막장이라 판단한다면 그 얘기는 뻔해진다. 그저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일 테니까. 하지만 이 공들여 만들어진 듯한 '트리플'을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억울한 점들이 많다. 아직 5회밖에 진행되지 않았던 고로(또 그 5회의 주제가 '웜업'이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는 아직 워밍업 단계였을 뿐일지도 모르므로 더더욱) '트리플'이 하려는 이야기를 속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본격적인 얘기조차 들어가지 않은 이 작품이 벌써부터 막장이라는 칭호로 보여지기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는 기우는 무리해서라도 '트리플'이 하려는 이야기를 예단하게 만든다.

따라서 여기부터는 나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는 '트리플'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트리플'은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삼고 있다. 김연아 마케팅을 위한 포석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 피겨스케이팅이 갖는 특징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이 드라마의 매회 구조가 그 특징들을 소제목을 삼고 어떤 삶과의 연관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빙판에 서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 미끄러운 공간이 가진 위험성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예술로 승화된다. 아슬아슬함과 위험함을 뛰어넘었을 때 발견하게되는 것은 극한의 아름다움이다.

'트리플'을 피겨스케이팅이 갖는 이미지와 연결시켜보면 바로 이 아슬아슬한 관계들 위에서 빚어내는 어떤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닐까. 드라마의 주축이 되고 있는 세 남자의 멜로 관계는 저마다 빙판 위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서로 빗나가고 엇갈리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그 일련의 모습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극적인 설정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미려한 연출이 말해주는 것은 "그래도 청춘은 아름답다"하는 전언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동성애 코드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우리에게 잘잘못으로 판단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청춘을 되새겨 보여주었다. '트리플'이 그 연장선에 있다면 이윤정 PD는 일관된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일련의 작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시작도 전에 논란에 휩싸이고, 막장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여전히 이 드라마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는 이 예감이 빗나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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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판타지, 피겨스케이팅, 승부의 세계

'트리플'이 기대되는 것은 이윤정 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이름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녀들이 새롭게 들고 온 '트리플'에서도 '커피 프린스'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멋진 남성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온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겪는 달콤한 로맨스를 다루었다. '트리플' 역시 멋진 세 남자들, 즉 신활(이정재), 조혜윤(이선균), 장현태(윤계상)가 함께 사는 공간에 이하루(민효린)가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커피 프린스 2호점'에 해당하는 판타지 공간 속에서 피겨 스케이팅의 꿈을 키워나가는 이하루는 멋진 세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로맨스를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저 마다의 매력을 보여주는 세 남자와 또 등장할 젊은 미소년 지풍호(송중기)는 이 드라마의 멜로 구조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장선으로 보게 해준다. 순정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남성들이 얼마나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인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트리플'은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을 뜻하는 용어이면서 동시에 이 세 커플(신활-조혜윤-장현태와 이하루-최수인(이하나)-강상희(김희))의 로맨스를 뜻하기도 한다.

'트리플'의 두 번째 기대감은 커피라는 문화적 코드에서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좀 더 동적인 예술적 코드로 바뀌면서 좀 더 다이나믹해질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정아 작가는 이러한 동시대적 문화적 감수성을 이야기의 향기로 피워낼 줄 아는 작가이며, 이윤정 PD는 마치 트렌디한 잡지를 구성하듯 경쾌하게 그 감수성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커피 자체가 드라마의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아름다움과 힘이 절묘하게 예술적으로 엮어진 새로운 문화코드는 '트리플'에 어떤 아우라를 형성한다.

피겨 스케이팅은 운동과 예술의 접목이 그 정점에 서 있는 스포츠다. 거기에는 기예를 방불케 하는 기술이 있고, 파괴력이 넘치는 힘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힘과 기술을 예술로 만드는 음악과 율동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가 현재 각광을 받는 것은 물론 김연아 선수 같은 세계적 스타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로마저 승화되어 있는 이 스포츠 자체가 갖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미 '태능선수촌'으로 스포츠를 다룬 전적이 있는 이윤정 PD가 이 미적인 운동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도 이 드라마에 걸게 되는 기대의 하나다.

세 번째 기대감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트리플'만의 승부의 세계에 대한 것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말 그대로 경쟁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의 판타지를 마음껏 그려냈다면, '트리플'은 끊임없이 주인공들이 경쟁 속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성장 과정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된다. 남자 주인공들은 광고의 세계에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이하루(물론 코치역을 하게 되는 최수인을 포함하여)는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승부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가진 조금은 자폐적인 판타지(경쟁이 배제된 공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를 '트리플'이 좀 더 열려진 세계 속에서의 판타지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경쟁 관계 속에서의 판타지란 때론 진정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콩달콩한 로맨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현실을 동시에 등장시키는 것. 이것이 '트리플'에서 느껴지는 세 번째 기대감이다.

물론 이 세 가지 기대감은 말 그대로 기대감일 뿐, 아직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가 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연출했던 판타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 지점에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트리플을 하기위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결국엔 해내는 이하루처럼, 과연 드라마도 이 세 가지 기대감을 동시에 넘는 트리플을 성공해낼 수 있을까.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의 사각거림처럼 그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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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에서 ‘쌍화점’까지 달라진 동성애 시선

SBS 2008 연기대상에 베스트커플 후보 부문에 ‘바람의 화원’에서 화제를 모았던 닷냥커플(문근영-문채원)이 후보에 올랐다. 당초에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단지 남녀 커플이 아니라는 이유로 후보에서 배제될 수는 없다는 네티즌 여론에 따라 그렇게 결정된 것. 어쩌면 이것은 그저 이벤트적인 후보 선정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여러 대중문화 속에 자리하는 동성애에 대한 달라진 시선을 생각하면 꼭 단순한 이벤트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실제로 ‘바람의 화원’의 러브라인에서 닷냥커플은 사제커플(박신양-문근영)보다 오히려 사랑을 받았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멜로가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면, 정향과 신윤복의 멜로는 그 자체로 절절한 감정이 묻어났다. 정향이 가야금을 뜯고 신윤복이 그 정향을 화폭 속에 담는 장면은 남녀 간의 그 어떤 멜로 연출보다 더 뛰어나게 감정을 표현해냈다. 즉 닷냥커플은 그저 여여커플이라는 겉으로의 시각 그 이상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작년 동성애 코드를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화제를 모았던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가장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대사는 아마도 한결(공유)이 결국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은찬(윤은혜)에게 “갈 때까지 가보자”라고 한 말일 것이다. 이 대사는 남녀의 성을 넘어서 사랑의 감정 그 자체에 손을 들어주는 것. “네가 남자라도 사랑한다”는 절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반드시 동성애를 지지하는 시청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성 구분이라는 장벽을 넘어서는 이러한 코드들은 적어도 대중문화에서는 이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개봉했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는 이러한 동성애의 시선이 거의 일상적인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천재 파티셰인 선우(김재욱)는 동성애자로서 가게 사장인 진혁(주지훈)을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해 왔던 인물. 물론 진혁은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그들의 대화는 마치 동성애를 하나의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과거 무겁기만 했던 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변화이다.

앞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쌍화점’은 동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사랑과 질투의 대서사시다. 왕(주진모)의 총애를 받는 왕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지 못하고 자라나지만, 동성애자로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왕을 대신해 왕후(송지효)와 합궁을 하게된다. 그 때부터 홍림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제야 알게되고 왕후와 사랑에 빠져들고 점점 질투의 화신이 되어가는 왕은 상황을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전제가 성적 구분 자체를 넘어서는 미묘한 지점에 서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역시 중요해지는 건 성별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다.

이제 적어도 대중문화 속의 멜로 구도에서 성별 구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남녀 간의 멜로가 자진 상투적인 식상함을 벗어나 어떤 신선한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남녀의 역할구분은 이제 이 사회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은 물론 동성애 자체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녀구분에 대한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지금은 닷냥커플도 베스트 커플로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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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대중문화에 있어서 동성애는 이제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물론 동성애 코드와 동성애 컨텐츠는 다르다. 동성애 코드는 남장여자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 동성애 같은 상황을 연출하지만 분명히 이성애를 다룬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미인도’같은 것이 그 부류다. 반면 동성애 컨텐츠는 게이들의 문제를 천착한 ‘후회하지 않아’나 최근 개봉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같은 것들로 이들 컨텐츠들은 진짜 동성애자들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동성애 코드나 동성애 컨텐츠나 불문하고 바라보면 지금 대중문화 속에서 동성애라는 소재 자체는 과거처럼 음지에 숨겨진 그 무엇이 아니다. 특히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르면 동성애는 마치 공기처럼 일상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이 꽃미남 게이를 조연으로 세운 영화는 대중들에게 “넌 여자를 좋아해? 난 남자를 좋아해! 그게 어때서?”하고 묻는 것만 같다. 과거 무언가 진중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연상케 했던 동성애라는 소재에 익숙한 대중들은 이 명랑발랄한 동성애 영화에 오히려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지금, 동성애가 대중문화 속에서 공기처럼 퍼져나가고 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이성애, 즉 이성 간에 벌어지는 멜로가 어느덧 식상한 어떤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깔려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삼각 사각의 멜로나 신파조의 설정들은 이런 인식의 밑바탕을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한편 영화로서는 늘 연말이 되면 쏟아져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 역할을 했을 터이다.

이런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멜로가 아닌 인간애를 다루려고 하는 영상 컨텐츠는 때론 남녀의 출연을 꺼리기도 한다. 동성애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남녀 주인공을 세우려했다가 결국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세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준익 감독은 이미 전작 ‘왕의 남자’에서도 두 남자의 동성애를 끌어들여 예술혼과 인간애로 컨텐츠가 가진 주제를 확장시킨 전례가 있다.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남녀로 구분되던 성별구분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속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명확히 나눠져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농경사회에서의 성별 역할의 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육체적인 노동력이 아닌 정신적인 노동력을 사용하는 정보사회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사라진다. 오히려 여성들의 노동력이 섬세한 정보사회의 업무에 더 적합해진다.

남녀 구분은 이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으로 바뀌게 된다. 남자라도 여성성이 많은 사람이 있고, 여자라도 남성성이 많은 사람이 지금 시대에 남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동성애는 바로 이 시선 속에 자연스러움을 얻게 된다. 남성이지만 강한 여성성이 실제 생물학적 성까지도 변모시킨 존재로서 동성애자는 외계인이 아닌 우리들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실제 사회의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특히 금기시되었던 남자와 남자 간의 동성애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문화구매자들로서의 여성이라는 존재의 위상이 그만큼 커진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등장하는 남성들이 모두 꽃미남들인 점은 과거 여성들의 성 상품화가 이제는 남성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대중문화를 장악한 동성애는 그저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점점 중성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스포츠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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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밍족, 성별구분 없는 사회의 징후

본격야생버라이어티쇼 ‘1박2일’의 한 장면. 야생과는 어울리지 않을 곱상한 외모의 이승기가 한 겨울 손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정도의 물을 받아놓고 머리를 감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촬영 동안은 세수조차 하지 않는 부스스한 얼굴의 다른 멤버들은 감탄사를 늘어놓는다. 이 추운 날씨에 머리까지 감을 마음이 나느냐는 것. 처음 이승기가 이 야생에서의 하룻밤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의아해했던 대중이라면 차츰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트렌드였고 이승기라는 캐릭터는 그 트렌드가 아무리 야생이라 해도 지켜질 만큼 이제 일상이 되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승기는 여성 못지 않게 몸을 가꾸고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남성들, 즉 그루밍족들의 표상으로서 이 걸맞지 않을 것 같은 프로그램 속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어냈다. 그것은 남성들에게는 공감이었고, 여성들에게는 기호였다.

예쁜 남자, 강한 여자 신드롬
예쁜 남자, 즉 꽃미남 신드롬이 솔솔 불어오는 와중에 몸짱 아줌마가 등장한 사실은 사회적으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왕의 남자’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했던 이준기가 꽃미남 열풍을 이끌면서 여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CF(예를 들면 화장품 같은)에 남성들이 속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이 운동으로 다져진 몸짱 아줌마의 출연은 여성들의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이어트 비디오를 찍어왔던 그간의 연예인들이 주로 요가 같은 부드러움과 유연성을 강조하는 운동을 했다면, 몸짱 아줌마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져 왔던 헬스클럽에서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과거 미스코리아는 미용실로 가고 미스터코리아는 헬스클럽에 모이던 시대에서, 이제는 남녀가 모두 헬스클럽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똑같은 덤벨과 벤치프레스로 근육을 만드는 시대로의 이행을 표상하는 인물이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중년이라는 나이마저 거꾸러뜨림으로서 이 시대의 변화 속도를 종과 횡으로 뛰어넘었다. 즉 수명연장으로 인해 고령화되어 가는 사회의 속도를 그 문화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데서 생겨나는 충돌과 함께, 성별의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속도를 거꾸로 몸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충돌을 모두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녀는 강한 여자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른바 미중년은 바로 이 두 속도 즉 달라진 나이와 성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교차점에서 등장한 새로운 종족이다.

동성애 코드 속에 숨겨진 성별의식의 변화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성별의식의 변화는 어떤 중간지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양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중간지대에서 발견되는 것은 동성애 코드 컨텐츠들에 대한 달라진 시선이다.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지층을 얻은 이안 감독의 동성애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은 사실상 마초적인 남성성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대표적인 영화였다. 마초의 상징이었던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를 다룸으로써 그 마초 이미지가 사실은 조작된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동성애 영화들에 대한 지지가 동성애 자체에 대한 시각의 수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며 따라서 본격적인 동성애 컨텐츠는 대중적인 기호와는 거리가 멀다. ‘브로크백마운틴’이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국내에서 동성애 코드(동성애를 직접 다룬 것이 아닌 그걸 차용한) 컨텐츠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분명하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동성애 컨텐츠는 아니지만 동성애 코드를 잘 활용해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되는 것은 역시 예쁜 남자들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말 그대로 프린스들이 커피를 파는(전적으로 여성들을 위해!) 공간 속에 여성을 포진시키기 위해 남장을 시킨 드라마다. 하나도 아닌 여럿의 프린스들과 동료로서 연인으로서 일한다는 이 설정이 수많은 이 땅의 달라진 성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여성들에게 간택받는 남자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성들을 이렇게 변화시켜 놓았을까. 그 변화의 요인은 육체노동이 점점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정보화 시대 속에서 달라진 남녀의 위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성 선택 이론을 말하면서 ‘남자는 과시하고, 여자는 선택한다’는 말로 인류 진화의 비밀을 소개한 바 있다. 흔히 마초적인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여성은 늘 남성을 선택해왔고 단지 그 기호가 마초적인 강한 남성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남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덜 문명화되어 자연적인 위협 요소들이 많았던 과거에는 여러모로 여성을 보호해줄 수 있는 강한 힘의 남성이 선택되었지만, 이제 문명화된 사회에서 강한 남성은 시대착오적 유물이 되었다.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을 필요가 없어진 여성들은 남성의 존재가치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거나 아니면 유희의 대상이거나 심지어는 종족보존의 대상 정도로까지 축소시킨다. 최근에는 배우자 없는 출산을 하는 비혼모(결혼은 원치 않지만 아이를 원하는 미스맘)가 등장하면서 종족보존에 있어서조차도 남성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기호에 맞춰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여성들이 원하는 모습으로의 변화는 이 상황에서는 거의 생존이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의해 교육되는 성별 없는 사회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지나치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본 결과일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속박하는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라는 공평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혹은 바라보길 원하는) 존재가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 외적인 야생조건 속에서 그 균형이 깨져 있었다면 지금은 바로 그 균형이 맞춰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엘리자베스 바댕테르는 그녀의 ‘남성의 여성성에 대한 편견의 역사’에서 “남성이 된다거나 여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지위, 사회적 위치, 문화적 역할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성별의식이란 사회적인 교육의 산물이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 미디어들이 보여주는 달라진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가 성별 없는 사회를 향한 교육적 기능을 어느 정도는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카우보이들의 상징이자 전유물이었던 청바지가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 되었듯이, 이제 성별 의식이란 점점 과거의 유물이 되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루밍족은 바로 그 성별구분 없는 사회로 가는 변화의 징후를 보여준다.
<본 원고는 삼성홈페이지(www.samsung.co.kr) 미디어 삼성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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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커프’

그동안 드라마 속의 여성 캐릭터들이 진화를 거듭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현실이라는 축이 존재했다. 그들은 남성들의 낙점을 기다리던 수동적인 신데렐라에서 차츰 씩씩하고 생활력 강한 능동적인 존재로 변모해왔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남성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나이가 되기도 했고(‘여우야 뭐하니’, ‘올드미스 다이어리’ 등등), 촌스러운 이름이나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와 내면(‘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이 되기도 했다. 물론 빈부의 차이나, 태생의 문제는 대부분의 트렌디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그것들은 형태만 달랐지 결국 모두 남성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무엇이 여성들을 꿈꾸게 했나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이들 남성성의 그늘(제도) 안에서 꿈꾸던 여성시청자들을 오롯이 여성 자신에 집중시키면서 꿈꾸게 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성들이 꿈꾸는 곳이다. 그곳에는 저 트렌디 드라마에서 아직 왕도 되지 않은 왕자가 왕처럼 권위적인 폼을 잡는 그런 얼치기 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빈부, 사회적 위치, 나이, 외모, 심지어는 성별까지 그 어느 것도 편견이나 선입견이 존재하지 않는 무균질 순수의 왕자들이 그 곳에는 소년처럼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기초 얼개는 그러니까 이 여성들을 꿈꾸게 만드는 왕자들이 존재하는 카페 공간이 된다. 그 곳을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기웃거린다. 그녀는 사실상 현실 사회에서라면 가질 수 있는 모든 편견을 짊어진 여성 캐릭터. 번듯한 집안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며,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고, 성격이 여성스러운 것도 아닌 이 여성은 그러나 남장을 하는 순간, 그 모든 편견이 사라진다. ‘남자니까’라는 한 마디로 해결되는 이 상황은 정확히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남장을 시키면서까지 뒤집고 싶은 대상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 남장여자가 들어간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작가의 욕망이 투사된 공간이다. 편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왕자들로 가득한 이 곳은 따라서 여성들의 꿈의 공간이 된다. 현실에서 가장 낮게 취급되던 캐릭터가 모든 것을 꿈꾸고 이룰 수 있는 공간이 그곳이니까. 가족을 부양하는 일로 꿈 자체가 ‘엄마와 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던 이 소녀는 바리스타라는 그 이상의 꿈을 갖게된다. 최한결(공유)이라는 잘 생기고, 예의바르고, 능력 있고, 부자이면서도 라면은 냄비뚜껑에 먹어야 제 맛이라는 걸 알 정도로 털털한 왕자가 자신을 (남자라고 오인하면서도) 사랑하게 된다. 무엇보다 멋진 건, 하나 하나가 다 왕자의 면면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다.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
은찬이 여자라는 게 드러난 이후 드라마는 조금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 후반부야말로 이 드라마의 의미를 더 깊게 해주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청춘 멜로 드라마들이 사랑의 결실과 함께 끝나는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부분에서 일을 끄집어낸다. 일과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부딪침을 그러나 드라마는 역시 여성들이 꿈꾸는 방향으로 틀어간다. 한결이란 왕자는 은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네가 뭔가를 포기하게 되는 건 싫어.” 이 말은 정확히 지금 현재의 워킹우먼들이 희구하는 꿈을 찍어낸다.

한결-은찬 라인과 동시에 움직이던 한성(이선균)-유주(채정안)라인은 애초부터 이 부분을 건드려왔다. 일과 사랑은 현대 여성들이 이루고 싶은 두 마리 토끼다. 현실은 그 두 토끼를 잡는 것을 그리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으며 거기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우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말은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하므로 구속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결이 은찬을 배려해서 하는 말들은, 수퍼우먼, 알파걸이 되길 강요하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일하는 여성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여성들의 로맨스를 제대로 찍어낸 이정아란 작가의 공력과 더불어, 여성성이 가득한 캐릭터들, 갖고 싶게 만드는 소품들과 집들, 찾아가서 꼭 마셔보고 싶은 카페의 커피들, 그런 것들을 맛깔 나게 배치하고 연출해내는 이윤정이란 여성 PD의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솜씨, 그 안에서 실컷 웃고 울면서 즐겁게 놀아준 연기자들. 이 모든 것이 버무려져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성들을 꿈꾸게 한 드라마가 되었다. 그것이 한 때 환타지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최소한 꿈꾸게 만들었다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그만큼의 변화를 담보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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